평범하게 고시엔을 꿈꾸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의젓한 형 사토 레이지는 그런 인간 이었다. 그런 형이 변해버린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와 형이 아버지를 따라 아야카미쵸를 나와 도시로 갔을 때 였다. 형은 무언가에 홀린 듯, 사람이 바뀌기 시작했고. 점점 질 나쁜 무리와 어울려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형은 준폭력단 이라는 무리를 이끌었고, 형에 대한 안좋은 소문은 점점 퍼져나갔다. 아마 아야카미쵸에도 퍼졌겠지_
아무튼 상냥하고 의젓하던 나의 형이 바뀌어버린 이유, 지금 나에게 닥쳐오는 비일상의 근원 어쩌며 나 역시 바뀌어버릴 수 있다는 증거. 내가 궁금해하던 모든 이유가 눈 앞에 있었다.
이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반짝이는 적발을 살랑이고, 오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 나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찢어버릴 수 있는 그 손끝이, 손가락이, 손이 점점 나의 얼굴을 향한다.
나는 그저 그 무기력함과 공포에 절망하며 어느새 눈동자에 차오른 눈물을 흘리며
나의 혈족들이 해왔던 것 처럼, 똑같이 반응 할 수 밖에 없었다.
"야마후시즈메님 도와주세요___"
그렇게 채념한 순간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하나 확실히 알게 된게 있다면 미쳐버린 나의 형 역시, 싸움터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체, 나와 똑같이 읊조렸을 것 이라는 미묘한 확신이었다.
아름다운 해변 속속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이언트 코즈웨이 해변, 몰디브 해변, 캘리포니아, 파파콜레아…. 그렇지, 아이슬란드의 요쿨살론도……. 길어지는 상념이 작은 파동에 끊겼다. 어둠의 푸르름이 담겨 본래보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이 아야나를 향한다. 실상 한 바퀴 돌기에 여긴 내게 너무 좁은 무대지. 하나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함구한다. 대신 물살을 가르며 아야나를 따라갈 뿐. 시원한 바람결이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차게 식은 뇌는 이성을 끌어오지만, 달밤은 감성을 끌어온다. 스미레는 높낮이 부재한 어조로, 숫제 지나가는 날씨를 묻듯 질문을 던진다.
"사쿠야 선배님 포목점에도 방문해서 옷 치수를 맞췄사와요~ 거기가 어디였지? 토코요? 그런 이름이었사와요! " 라고 덧붙이며 헤실헤실 웃는 모습은 분명 거짓이 아니다. 진실이 담겨있다. 다만 무언가가...무언가가 이상하다. 무언가를 모르는 채 이런 일이 있었다고만 이야기하는 느낌?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으로 "알고 있는" 느낌? 이게 구체적으로 무슨 느낌인지는 스미레만이 알 것이다.
카와자토 아야나의 기억은, 조작되어 있다.
"스미스미 선배님도 사쿠야 선배님을 아시는 것이와요? "
죠세 사쿠야 를 아느냐 고 물어보는 것은 필히 사쿠야 선배님을 아는 것이렸다! 단순한 생각으로 헤실헤실 웃으며 물어보는 아야나였다.
이것도 구체적으로 중요한 설정은 아니라 지금까지 말한 적은 없는 이야기인데, 시트를 처음 만들 때부터 류지의 선조 할아버지는 사실 야마후시즈메를 두려워했을 거란 설정이... 있었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절묘하게 통할 줄이야.... 기쁨의 오타쿠 미소😏😏😏😏
>>248 원곡 pv 일러스트도 아주 예술이니까 꼭 봐주기😎 마음에 들어해준다면 나도 고마워 헤헤헤
어찌됐든 카와자토는 요괴의 일가니까, 「인간」인 쪽의 나를 배려한다고 저렇게 얼버무려서 말을 정리한 것일까. 조금은 짓궂은 마음을 품고 언젠가는 물어볼 수 있으려나, 하고 일부러 여지를 남겨놓는 소리를 해보았다. 자, 「인간」인 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 말이다.
"?"
곧 이어지는 말에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조금은 시큰둥한 얼굴로 시라카와 유우키를 마주볼 수 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을 하는 아오이의 말에 유우키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와자토 일가의 아가씨를 시종으로 두는 이라니. 엄청난 재벌가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카가네라는 재벌가는 자신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유우키는 말을 아끼면서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아오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합의하에 한... 그러니까 일종의 장난이나 놀이 같은 계약인건가요? 그거?"
물론 한가지 가능성이 더 있긴 했다. 이를테면 신이라던가. 혹은 더 강한 요괴라던가. 하지만 그것까지 굳이 캐묻진 않으려고 하며 유우키는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천천히 정리했다.
"아니. 그게... 시종이라고 하기엔 그때 슬쩍 봤는데 일방적으로 놀림받고 장난을 당하시는 것 같아서..."
물론 자신도 자세하게 본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본 광경은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가 일방적으로 눈앞의 선배를 괴롭히는 광경이었다. 물론 괴롭힌다기보다는 그냥 장난을 치고 까부는 것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어 그는 적당히 혼자서 납득하려고 하며 살며시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아무튼 아야나님이 악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은 아닐테니... 귀엽고 예쁘게 봐주셨으면 해요. 선배. 후훗. 뭐, 너무 피곤하거나 곤란하게 하면 저에게 얘기해주셔도 되고요. 그렇다면 제가 나중에 조용히 얘기를 해볼테니까요. 하지 않는 방향으로요."
제 처지 하나 자각 못 하는 천진함에 얼이 빠지면서도 무심결 조소가 인다. 마냥 모른 채로 굴기엔 심심찮고, 역으로 본색을 탄로 내자니 뒤에 올 수습이 귀찮았다. 여태도 제 무리의 시선은 저 보라색 공을 향해있으니 관심 꺼질 즘까지 가지고 놀았다간 기어이 몸통에 바늘 수십 개는 꽂혀야 끝 날 성싶음에, 공을 깨무는 시늉하며 마냥 고민만 거듭했다. 언제부터 요괴 따위의 안위에 관심을 뒀냐마는, 뭣도 모른 채 놀잇감 행세나 하고 있는 순진함이 외려 동정을 낳았다.
"미야비, 라이터 없지?"
끄덕이니 공 갖고 일어섰다. 화장실로 가 세면대 넘치게 물을 담았다. 너머로 흘러 구둣발에 채이기 시작하면, 손에 쥔 것을 아래로 넣어 놔준다. 물먹어 꿉꿉한 소매에 괜스레 부아가 나선 아픔 느끼기 직전까지 꾹 찌르고 손 거뒀다.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는 모습이 제법 귀엽다. 가만히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것이 이곳의 상황을 확인하려 하는것 같다. 조용히 두리번 거리던 푸른 눈동자는 이내 곧 나기를 향한다. 후히히 웃으며 탱 탱 탱 화장실 바닥으로 통 통 통 튕겨나가듯 떨어지다가, 곧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쁘장한 인간 소녀의 모습으로.
"쨔자잔! 학생들의 수호천사 아야나님인 것이와요. 그런데 저의 모습은 왜 궁금해지신 것이와요? "
냉기에 극도로 강한 게 인어다. 헌데 척추를 타고 흐르는 이 한기는 무어인가. 창백한 뺨에 핏기가 슬몃 가신다. 묘한 느낌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던 스미레가 의구심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고 이상을 감지한 그때. 머리채 끄트머리가 삐죽 설 만큼 소름 한 줄기가 머리끝부터 발끝으로 추락했다. 입매를 꾹 다문 채 즐겁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아야나만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것밖에 행동할 수 없었다. 확장된 동공이 찰나이나 영원처럼 흔들렸다가 한차례 몰아친 밤바람에 냉정을 되찾았다. 내버려 둬.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건들지 마. 한 번 더, '인어'가 말했다. 스미레는 태연을 가장한 낯으로 웃었다.
"같은 반이니 단연. 왠지 죠세와 아는 듯하여 물어봤어. 별다른 일은 없었고? 죠세가 네게 뭐라던?"
미소 지은 입매와 상반되게 휘어진 눈꺼풀에 감춰진 눈은 차게 가라앉아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조작을 건드리거나 깨트리지 않도록.
"오이잉? 별 일 없었사와요! 그냥 포목점에 가서 옷을 맞춘 게 다인 것이와요. 별 말 하신 것 없는 것이와요. "
이번에도 그녀는 아까와 똑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다.
"진짜인 것이와요~ "
후히히 웃으며 스미스미 선배님에게 다가가 요 수면 아래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아닌 요괴. 이정도야 얼마든지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쫄래쫄래 스미스미 선배님을 향해 수영해 움직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리 수영이다. 카에루족 티를 어디 안 벗어난다고 딱 그 모습이다.
"스미스미 선배니이임, 아야나 스미스미 선배님 무릎베개 해도 되어요? "
"슬슬 지치는 것 같사와요~ " 라 덧붙이며 물 위에서 파닥거린다. 아, 진짜로 지치는 건 아니고. 그냥 무릎베개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짜로....
사쿠야 선배님에 대해선 왜 물어보시는 것일까? 사쿠야 선배님에게 뭔가 있으셔서 그러신걸까? 모르겠다. 무릎베개나 하자.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있는게 좋을 것 같다.
정말로? 정말 그래? 마치 누군가 그러라고 입력한 것을 그대로 출력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의지도, 영혼도 없는 고철 덩어리. 거기서 스미레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무력감이 물밀듯 밀려온다. 물에서 숨 쉬는 인어임에도 꼭 익사라도 할 것 같았다. 우스운 일이지. 허나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여기까지. 고작 요괴 하나에 매달려서 인어의 명예를 저버리는 짓만큼 꼴사나운 일도 없으니까. 오늘도 스스로를 버리고 인어를 택한 스미레는 귓전을 때리는 속내들을 목청 뒤로 밀어 넣으며 기어이 웃었다.
“그러니. 그거 참… 즐거운 경험이었겠네.”
속도 모르고 무릎베개나 해달라 조르는 아야나의 작은 머리통을 보며 착잡한 심정을 내리눌렀다. 뭐가 좋다고 그리 헤실 거리며 웃니. 너,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는 아니? 바보 같은 계집. 흠결 없는 미소는 아야나가 뒤를 돌면 금이 갔다. 입술 안쪽 여린 살을 짓이기며 정신 차리라 스스로를 일갈한 스미레는 평소와 같은 낯으로 이리 오라 손짓한다.
“우리 어리광쟁이. 지치면 해주는 이 스미레도 참.”
물 속에서 부유하며 아야나를 끌어안고 무릎베개를 해준 스미레는 영영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되짚고 되뇌었다. 닿지 못할 말이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