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하고 어두운 어스름으로 물들어 검게 변해가는 저녁 무렵이다.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서 이름 모를 한 용병은 숨을 몰아쉬며 아군을 호출한다. 무너져가는 콘크리트 뒤에 기대어 서니 여름의 무더위에도 차게 느껴지는 철골의 스산함이 등골을 파고든다.
[인질은 확보했나]
몇 번이고 보낸 암구호에 일부러 도청을 피하기 위해 보급된 구시대적인 무전기는 지직거리기만 할 뿐 목소리를 되돌려주지 않는다. 제기랄, 몇 번이고 험한 육두문자를 짓씹으며 겁과 긴장에 질린 벌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지만 여전히 시야에는 그 무엇도 잡히지 않는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의념각성자의 몸뚱아리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보이지 않는 적습에 의해 순식간에 고립되었음에도 그는 적의 움직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등골이 싸해지고 무엇보다도 시린 붉은 빛이 근처에 스쳤다. 본능의 경고로 한 발짝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바로 목이 달아났을 것이 분명했다. [다들 어디있나. 응답하라!]
"X발!" 궁지에 몰리자 으아아악 비명보다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그는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고 이윽고 사방에 뜨겁고 붉은 빛이 난만하게 피어가는 잎처럼 산란했다.
"이제 근처에 적군은 더 없어보이어요." 암살자, 린은 방금 전 쓰러진 용병대의 대장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며 그의 사망을 이 상황을 달가워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동료에게 전했다.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지요?" 용병이 그토록 찾던 인질인 보기에도 제법 귀하게 자란 듯한 어린아이가 강산의 뒤에 딱 붙어 있었다. 린의 환각으로 앞의 비명과 처참한 광경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게 적당히 가려놓았지만 그럼에도 그 분위기는 어쩔 수 없어 떨고 있었다. 몇 시간 전 어느 재벌가 인물의 부탁으로 그의 어린 아들을 안전한 곳까지 호위하게 된 두 사람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기습을 시도한 용병을 꽤 마주쳤고 린은 이 상황에 무감각한 것처럼 굴고 있었다.
"꽤나 곤란한 일에 휘말린듯 하오니 이쯤에 발을 뺄까 싶사와요. 일당은 채웠기도 하고, 목표지에 도달하였으니 말이어요." 슬슬 아이를 맡기고 돌아가자는 의사를 전하며 안타깝지만 우리는 더 할 게 없다는 어조로 동료를 돌아본다.
'에휴 저 바보를 어쩌면 좋을까.' 아마 조금만 린이 더 솔직했다면, 적어도 몇 년 전의 사춘기 시절이었다면 딱 그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보았을 게 분명했다.
"아무튼, 붕어빵은 더 이상 안돼요." 아마 한 동안은 붕어빵에 입도 대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린은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였다. 형식이 협박일 뿐 그 겉치레를 벗겨내고 내용물을 보자면 영락없는 데이트 신청일텐데, 물론 그녀는 상대가 이 상황을 벗어난 것에 안심할 뿐 전혀 그런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물론 그렇기에 이리 얌체처럼 마음껏 구는 것도 맞았다.
"강철씨랑요?" 궁금하다는 얼굴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부엌에 쌓아둔 붕어빵은 생각의 한켠으로 사라지고 같이 갈 카페에 대해 관심이 기울었다. 그보다도 생각보다도 더 기뻐하는 얼굴인데. 장난이 좀 심했나. //18
강산의 속삭임과 함께 강산과 아이의 주변을 감싸던 배리어가 걷힌다. 암살에 특화된 린이 전열에서 용병들을 처리할 동안, 마도로 여러 상황에 대응이 가능한 강산이 후열에서 방어 혹은 반격에 집중하는 작전. 나쁘지 않았다. 강산은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 "이제 괜찮다. 다친 곳은 없지?"라고 말하며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는 다시 린에게 고개를 돌린다.
"호위 대상은 무사해. 그렇지만...혹시 모르니까 주변에서 조금만 더 지켜보고 가도 괜찮을까?"
불안하게 굳은 아이의 표정과...오늘 의뢰 중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제안해본다.
"마츠시타 씨 먼저 철수해도 된다. 나는 그냥 가자니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긴 했다. 아이 하나 없애자고 용병을 이렇게 많이 고용해? 게다가 꽤 집요하게 쫓아온 녀석들도 있었던 건 같단 말이지. 이 정도로 집요한 녀석들이라면 어쩌면...목표를 코 앞에 두고 방심한 때를 노릴지도 모른다. 게임이나 만화 같은 것에서 간혹 본 전개다.
여전히 강산의 옷자락을 꼭 쥐고서 아이가 말없이 하얀 얼굴을 끄덕인다. 강산이 아이를 살피는 것을 바라보고서 린은 그 물음에 답한다.
"이런 임무를 안해본 것은 아니온지라, 여기 제일 윗선으로 보이는 자가 제거되었으니 나머지가 남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할 것이어요. 저희 말고도 고용된 자들이 있을테고." 운을 띠우다 다시 강산을 바라본다. 부드럽지만 강단있는 금빛의 눈과 그 아래 불안으로 가득차 그녀를 올려다 보는 아이의 말간 눈이 적안에 비쳤다 감기며 사라졌다. 눈을 감고서 흩날리는 바람에 날리는 흑발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다시 돌아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선 채로 다시 말을 잇는다.
"정 걱정되신다면 목적지 내부까지 호위를 하도록 하겠사와요. 소녀가 보기에도, 이번 의뢰는 심상치 않은 부분이 많으니 말이어요." 척 보아도 예측불사함이나 방식의 비열함과 치밀함이 가문 내 이권 다툼 혹은 집단 끼리의 본격적인 분쟁에 휘말린 게 분명했다. 특히 어린아이를 인질로 노린다는 건 어떻게든 회유가 안되는 상대의 약점을 잡기 위함인 경우가 대다수고, 문득 그와 유사한 일이 떠올라 린은 일부러 아이를 맡는 것을 피하고 마도사인 강산이 방어에 더 유리하다는 말로 자신은 공격에 전념했다.
"강산군께서는 어찌 보시는지요." 자신의 의견을 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혹은, 그녀가 이리 되어야 했던 이유를
>>863 만나고 싶은 상대가 있거나 만나기로 약속한 상대가 있으면 높은 확률로 게이트에 출입가능한 것을 보아 특별반 인원들의 의지에 영향을 받는거 같지만 항상 그런건 아니라(진행 중에는 안열림, 만날 약속없는 기습일상) 도대체 무슨 규칙성으로 열리는 건지 알 수 없다.
>>863 오...? 이거 제가 생각했었다가 잊고 있었던 아이디어랑 비슷하네요. 이거랑 성질이...완전히 같진 않지만 비슷한 공간이 있죠? 코인샵이랑 미니카지노..? 코인샵은 꿈과 현실의 경계라는 설정이 있었고 그래서 제가 그 설정을 활용한 공유몽 일상을 돌린 적도 있었죠. 미니카지노도 카지노에서 나가면 다시 사용했던 장소로 되돌아가고...
그래서 코인샵이랑 같거나 비슷한 방법으로 언제든 들어가거나 다른 인원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이를테면 코인샵 옆 카페테리아 혹은 정원이라든가...?)
강철씨께서 추천해 주셨구나. 추천자가 여자(...)만 아니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 그에 대해서는 적당히 흘려들으면서 린은 알렌을 바라보았다. 강철하고는 바티칸에서 죽순 베이글에 대한 잡담도 했었으니 그가 알렌에게 카페를 소개해 줬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물론 알렌이 케이크나 쿠키등의 디저트에 대해 언급한 건 평소 그녀 안의 그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의외인 얘기라 어쩌면 조금은 놀란 기색이 스쳤을지도 모른다.
"네에...좋을 것 같아요." 설레발을 쳐서 일을 망칠 수는 없어! 그녀 내면의 린이 이런 저런 로망에 부풀며 설레어 하는 나시네를 밀어넣고서 긴장이 풀리는 마음을 꽉 동여맨다. 다시 미소 짓는 얼굴로 조금씩 풀려가는 얼굴로 부드럽게 강철씨가 소개해준 곳이면 분명 좋을 것 같다며 다시 한번 작은 목소리가 아닌 평소의 나긋한 목소리로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어머, 저랑요." 오늘 왜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 다시 한번 꽃밭으로 달려갈 것 같이 기뻐요를 연발할게 분명할 분위기의 나시네를 내면의 린이 밀어넣고서 침착하려고 애쓴다.
"저를 생각해주셔서 고맙다고 해야할까..." 결국 어이없다는 듯 혹은 즐겁다는 듯 푸흣 웃음을 가볍고 짧게 터뜨리고서 말없이 지그시 그를 바라본다. 그러다 그가 긴장할 때쯤 입꼬리를 올리고 눈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