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X를 담아、나로부터。 편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직접 전해도 괜찮습니다. ※ 누가 내 편지를 옮겼을까? 신발장에 감춰도 좋습니다. 장난꾸러기가 건들겠지만요! ※ 수수께끼의 편지함 누구에게 갈지 모르는 랜덤박스에 넣어봅시다. 상대도 랜덤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
흉측한 낌새 사라진 자리엔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한 마디 구른다. 좋았느냐고. 뭐, 맛있어 보이는 것을 보니 좋기는 했다. 그런데 입맛만 다시고 못 먹게 생겼으니 결과적으론 좋지 않다. 그런 생각 곧장 입 밖에 내놓으려다, 길게 말하기도 귀찮아 대충 대꾸했다.
"군침이 돌긴 하더군."
탁 트인 공간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한 입만 먹어도 안 되나?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식탐 다시금 도질 듯해 시선을 먼 밖으로 두었다. 슬며시 팔짱 낀 채 힘 빠진 느른한 눈으로, 부드러운 봄 햇살 내리쬐는 교정을 바라보길 잠시. 들려온 물음에 무신은 다시금 곁으로 눈길 옮긴다.
언제부턴가 편지가 유행을 하더니, 천천히 그 유행의 불길이 줄어가는 것을 유우키는 단번에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당장 반에서도 오늘은 무슨 편지를 보낼까~ 라고 고민하던 이들이 슬슬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받을 이는 받았다고 하고, 받지 않은 이는 받지 않는 그 편지 소동에서 유우키는 딱 2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껏 받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만 해도 유우키는 방과 후 자신의 신발장을 굳이 열어서 가만히 바라봤지만 여전히 자신의 신발을 제외하면 텅 비어있었다. 물론 학교의 학생이 조금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받는 이보다 받지 못하는 이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한통 정도는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내년에도 이거 유행하려나."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그럼에도 유우키는 굳이 더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괜히 미련이 남았는지, 신발장을 또 가만히 바라보지만 역시 보이는 것은 없었고 그는 결국 한숨을 쉬면서 신발장을 약하게 닫았다.
"아가씨는 받았을런지. 아니면 다른 친구들은 받았으려나."
그런 혼잣말을 하면서 그는 괜히 신발장 근처에서 서성였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지난날 공연이 있었기에 조금은 여신도 피곤해진 참이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육체적인 피로도는 없다. 매일 정진하던 실력을 펼쳤을뿐이고. 그것으로 인한 피로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이상한 관객이 없는 피로도를 만든게 원흉이었다. 이른바 스트레스 성이라는 것이겠지.
신발장앞에 도착하니 아직도 공공연하게 그 유행이 끝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신발장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도 보였고,
"아."
그리고 그 사람이 안면이 있다. 지긋히 인기척을 싹지우고는 신발장을 열어보며 시라카와 유우키라는 이름의 소년이 무언가 기대한 것처럼 도착한게 없어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 나이때의 청춘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정작 여신이 받은 것이라곤 바보같은 내용의 결투장이었는데 말이지.
팔짱을 끼고 오른발로 바닥을 콕콕 찌르는 것이 아무리 봐도 약간 초조함과 괜히 아쉬움이 가득 섞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결국 포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유우키는 슬슬 다른 곳으로 발을 옮기려고 했다. 딱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아. 선배.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에 맞춰 그 역시, 평소의 인사법 ㅡ팔을 굽혀 살며시 집사가 인사하듯 인사하는 그 자세ㅡ을 보이면서 싱긋 미소를 보였다. 그녀도 돌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3학년이면 조금 더 늦게 가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또한 자유였으니 유우키는 이내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뜩 이 선배가 방금 자신이 한 행동들을 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절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머리를 긁적이더니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물론 그의 인사 방식을 보고, 묻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 뒷조사는 마친상태였지만서도, 그것을 빌미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반쯤은 떠보는 방식의 질문이었을지도. 이후,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본 상황에 대해 논하자 여신은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무것도 보지않았다. 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여신의 입장에선 그런 인간적인 우스꽝스러운 면이 무척이나 놀리기 좋은 이야기였는지,
"신발장에 편지가 들어오지 않은 것에 아쉬어 현실도피를 하는 소년을 소녀는 보지않았다. 이야기 할수있을지."
아하하 거리며 재밌는 볼거리를 본듯 웃을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마저도 인간미를 위한 기만이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