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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공포라는 것은 제법 강력한 것이었다. 반복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입된다면 종당에는 그 관련된 것조차 두렵게 되었다.
그러니 내 기억의 근본에서부터 시작된 두려움은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었으나, 결국 지독히도 박혀버린 스산한 상실의 경험은 기어코 성운에게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이기적인 말들로 스스로 벽을 치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옆에서 성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기쁨도 즐거움도, 혹나 분노도 아님을 알았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쓰릴 정도의 서글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걸 들으면서도 내 팔은 더욱 강하게 내 무릎을 안을 뿐- 이었을, 텐데.
내가 그렇게 굴어도, 성운이 아무리 슬퍼도, 턱에 닿는 손은 전혀 차갑지 않았다. 여전한 온기에 굳은 줄 알았던 턱이 자연스레 이끌려 성운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현실이 도망치지 말라며 나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한 마디, 한 마디, 성운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아랫입술이 뜯길 듯 물리고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리고 나의 무심함이, 나의 이기적인 언행이 성운을 어떻게 괴롭히고, 상처 입혔는지 상기시킬 때마다 무형의 가시가 심장을 거칠게 찔러댔다.
차라리 화를 내었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텐데. 힘으로 누르며 윽박지르고 손이라도 올렸으면 내 마음 만은 편했을 텐데.
하지만, 하지만...
...이내 성운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기어코 어찌 그리 잔인하냐 했을 때 짧은 사이 짓씹어 너덜해진 입술을 열어 말을... 했다.
"너는, 너도, 연락 제때 받은 거 아니잖아. 너도 늦게서야, 나중에서야 본 적 있잖아."
언젠가 잃을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관계 따위, 반드시 사라질 신기루 같은 거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연구소로, 보러 왔었는데 뭐 어쩌라고. 누가 약속도 없이 오래? 와달라고 했어? 네가 멋대로 와놓고, 따라와서 그래놓고."
그럼에도 너는 나를 따라왔고 그럼에도 너는 내 곁에 있어도 되느냐 물었고 그럼에도 너는, 지금 내 앞에 있고.
"멋대로, 네 멋대로, 그래, 그래놓..."
아. 눈 앞이 흐릿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음이 머리를 거부하던 순간은 몸이 이건 아니라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울음도 없이, 그저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나를 이제 그만 인정하라며 쥐어흔들던 나는.
숨이 막혀왔다. 그러나 모자란 숨 그 이상으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말이 있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아냐. 아니야. 아니야. 이럴려고 온 게 아니야. 이러려고, 옆에 있어달라고 한게 아니야. 오늘도, 이런 얘기를 하려고 온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연신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쉼 없이 흐르는 눈물에 성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은 착각에 손을 뻗어 그 얼굴을 감싸려 했다. 이런 때조차 다정한 온기가 손에 닿기를 바라며 울먹였다.
"나, 나 있지, 오늘은 나가지 말고, 같이 있자고 하려고 했어. 저번 휴가는, 둘이 못 있었잖아. 그 뒤에도, 제대로 못 봤잖아. 그리고, 우리 할 얘기도, 많잖아. 그러니까, 나가지 말고, 둘이서, 못 다한 얘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고, 내일은 뭐할까, 그런 얘기, 하려고 했어. 그리고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미안했다고, 너 못 본 척 했던 거, 제대로 연락, 못 한거, 이런 얘기, 이제서야 해주는 거..."
오늘은,
"사랑, 한다고, 나도, 이제 너 없이는 안 된다고, 제대로 말, 하고 싶었어..."
무너진 철벽 뒤로 한 사람의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동시에 숨길 수도 무시할 수도 없게 된 그 진심은, 전해지기엔 이미 늦었을까.
모르겠다. 그저 북받친 울음을 참으려 이미 너덜한 입술을 꾹 깨무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커리큘럼을 위해 찾아간 연구소에서 오랜만에 태블릿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태블릿 화면엔 계획서로 보이는 문서창이 띄워져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더라. 중1에 영락으로 오고 두번째니까, 4년만인가.
영락의 방침은 학생 스스로 커리큘럼의 틀을 잡고 연구소는 이를 보조해주는 식이기에 중1 때 대략적인 틀을 잡아놓고 지금까지 그에 맞춰 커리큘럼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는 능력에 큰 변화가 없어 변동 없이 자잘한 바리에이션만 추가하면 진행했지만 이제는 레벨이 올라 엘리트 반열에 들어섰으니 슬슬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연구소에서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 여기도 그냥 다른 곳처럼 정해주면 안 되나? 이거 너무 재미 없어-" "시끄럽다. 벌써 일주일이나 밀렸으니 얌전히 해."
그리고 지금, 일주일째 새로운 틀을 작성하지 못 해 늘어진 내가 있었다. 마감기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라도 빨리 제출할수록 새로운 걸 할 수 있으니 그만큼 내게 이득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끽해야 다친 거 낫게 하거나 뇌신경 비틀어버리는게 무슨 소용이라구." "그걸로 이미 훌륭한 쓸모가 있지 않냐. 특히 너한테는." "그럼 그걸로 해도 돼요?" "해도 되긴 하는데 뒷일은 책임 못 진다." "에- 재미없어." "일은 원래 재미 없는 거다."
커리큘럼의 틀은 온전히 학생의 의사와 의지대로 작성되어야 하기에 유준도 이럴 때는 말을 아끼곤 했다. 덕분에 오늘도 못 쓰고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하... 대체 뭘 하라고, 나가지도 못 하는 거..." "나가면 되잖냐." "네? 어딜요?" "연구소를 나가면 되잖냐. 꼭 내부에서만 하란 법은 없으니." "아?"
순간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찰나와 같은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태블릿 위로 스타일러스를 휘갈겼다.
자그맣고 폭신하거나, 무뚝뚝하니 얼굴에 표정이 없거나, 이 소년은 둘 중 하나였다. 온 몸으로 자신이 무해함을 표현하며 다가오거나, 혹은 간지러운 감정을 무뚝뚝한 얼굴 뒤에 감추고 너를 기다리거나. 천진하거나, 혹은 순진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슬퍼하거나 화낼 줄 알았다. 슬프고, 화가 났다. 매 순간 너와는 가장 좋은 것만을 나누고 싶은데, 왜 이렇게 반대로만 되는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더 상냥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더 재치있었더라면, 하다못해 더 쿨했더라면, 하다못해 더 강하기라도 해서, 너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그 모든 것들을 죄다 깡그리 구겨버리고 언제라도 너한테로 달려갈 수 있었더라면─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하고, 답답하고, 한심한 자기 자신이 미워서 화가 났다. 그 화내는 것마저도 어설퍼서 그 분노는 너에게만 쏟아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네 야속함에 튀겼고, 자신에게도 튀겼고, 네가 자신을 만나지 못한 상황 그 자체에도 튀겼고, 지금 이 순간에도 튀겼다.
화를 돌이켜 바락바락 따지던 네 목소리가, 눈에서부터 차오른 뜨거운 열기 때문에 덜컥 막혔다. 잠잠히 듣던 성운은, 네 멋대로, 에서부터 네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나직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나라고 항상 네 연락 따박따박 잘 받는 거 아니지. 그런 주제에 ■나게 제멋대로고, 그 제멋대로 안되면 이렇게 화가 난다고. 그런데 천혜우, 네가 먼저 말했잖아······ 네가 먼저 이게 시답잖은 농담 따위가 아니길 바랐잖아······. 나도 그랬다고······. 네가 나를 원했으니까, 나도 널 그만큼 바란다고······.”
그래, 이게 아닌데. 하고, 금이 간 마음의 벽 사이로 휘청휘청 새어나오는 눈물에, 성운은 네 손을 붙들어서 자기 뺨에 갖다대었다.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 손끝에는 온기로 선명했다. 이 온기가 아직도 다정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네가 알던 것보다 좀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그런 너한테, 나와 같이 있으면서 같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만 나누고 싶었는데······ 내가 고집만 센 모질이 새■라서, 뭐가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를 분노케 하는 이 모든 고통이, 다 너를 사랑하기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나, 내가 그런 모질이 새■라는 이유만 갖고 널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네가 나가지 말자고 하면, 룸서비스 시킬까 물어보고, 너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도, 전부 다 대답받을 생각 없으니까 말이라도 꺼내보고, 네가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대답해주고, 내일은 파도 풀이나 가서 신나게 수영이나 하자고도 말해보고,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시답잖게 넘기고, 연구소에서 나 이명 지어준다는 거 이야기나 꺼내보고······ 그래, 최고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최악이더라도, 너랑 같이 있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성운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그는 남은 한 팔을 뻗어서, 널 있는 대로 끌어안았다. 참으로 어설프고 어줍잖은, 그다운 포옹이었다.
“여전히, 그 초여름 휴가날에 그랬던 것처럼, 관람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널 사랑하고 있다고······.”
문득 따뜻한 손가락이 네 아랫입술을 매만지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깨물지 말라고, 네 이빨을 톡톡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그 손가락이 건네는 말대로 네 아랫입술을 잠깐 놔주면, 그게 얼마나 너덜해졌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의 메마른 입술이 가까워져온다.
“그러니까, 날 버리지 말아줘.”
늦었는지, 때를 딱 맞췄는지, 일렀는지, 잘 모르겠다. 어찌됐건 소년의 마음은 우당탕 쓰러졌고, 그 김에 네 철벽은 와르르 무너져내렸고, 결국에는, 네 마음과 소년의 마음이, 이렇게 정면으로 충돌해버리긴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스트레인지라는 곳은 스킬아웃들끼리의 끈끈하거나 팽팽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 나타난 이방인은 쉽게 의심을 받기 마련이다. 혹시 저지먼트 부원들 중에 스트레인지로의 잠입을 도와줄 만한 이가 없을까? 저번에 오즈 검거 작전 당시, 오즈는 몇몇 부원들을 보고 마치 그들을 잘 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애린을 보고 그 아보카도 옆에 미친 토끼라고 아는 척을 한다던가, 태오나 나랑을 보고 무언가 안다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던가. 마치 그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스킬아웃과 엮였거나 스킬아웃이었기라도 했다는 듯.
─그러나 그들이 한때 스트레인지에서 지냈다거나 스킬아웃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거나 한때 스킬아웃이었다거나 하는 것을 책망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성운이 그들을 떠올린 것은, 그들에게서 스트레인지를 활보할 때 필요한 조언 같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 자신의 캐릭터가 한때 스킬아웃이었거나, 스킬아웃 혹은 스트레인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거나, 스트레인지에 자주 드나드는 캐릭터인 분들에게. 오늘은 성운이와 같이 훈련해보는 건 어떠신가요?
# 성운이 윤강목과 금교 파이낸스의 뒷조사를 하기 위해 스트레인지로 잠입하는 데에 조언을 해주거나, 성운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윤강목과 금교 파이낸스에 대한 조사 현황을 공유받게 되며, 성운에게 조언이나 충고, 지적 등을 해줄 수도 있고, 원하신다면 짧은 일상으로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 항상 말씀드리듯 강요의 의도는 없으며, 훈련 주제가 생각나지 않거나 조금 다른 느낌의 훈련을 해보고 싶다고 하시면 이런 것을 고려해보시면 어떻겠는지 겸손히 제안드릴 뿐입니다. 흥미가 없으시다면 별다른 언급 없이 부담없이 스루해주세요!
>>304 깩 (팩트에 당해 사망) 성운이가 유한이더러 조사할 게 있어서 스트레인지에 잠입해야 되는데 누구한테 조언 구하는 게 좋을까? 하고 톡 보낸 걸 유한이가 받았다고 가정하고 쓰시면 편할 거라 생각해요. 짧게 멀티일상을 돌릴 수도 있구요. (일상레스 도중에 훈련레스로 삼을 만한 답레(능력을 사용하거나 저지먼트 활동에 임하거나)에 >>0을 붙이면, 그 답레를 그날의 훈련레스로 인정해주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