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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은 두 손을 깍지끼어 턱을 괴고는 데이터가 일목요연히 정리된 책상 위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목요연히 정리된 CCTV 영상이나 녹취록, 영수증 스캔본 등의 범죄 증거 자료들은 당장 재판에 채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느 날 이 때 있었던 이 범법이 이 스킬아웃 집단의 소행임을 명백히 정리해두고 있었다. 사실상, 그 기록들은 이 스킬아웃들의 연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연대기에는, 스트레인지 출신이거나 아니면 굳이 범죄조직이 아니더라도 조직 경영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이건 너무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매우 명백한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이 스킬아웃 집단은, 그 구성원들을 지나치게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느 집단이 그렇지 않겠냐만, 집단의 목적은 집단의 이익이다. 그 구성원들이 스킬아웃들로 이루어진 스킬아웃 서클이라면,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익은 모든, 혹은 대부분의 구성원들의 생존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존에 적합하지 않거나, 무리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팽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합법적 영역에서 스킬아웃은 활동이 제한되니, 다소 탈법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일 또한 흔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인원 손실이 생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스킬아웃 서클이 겪는 인원의 손실은 그 결이 달랐다. 위험한 불법 물품들이나 수상쩍은 자금의 중간 운반책으로 소모되는 것은 평범한 지경이요, 다른 더 큰 스킬아웃 조직들간의 항쟁에 총알받이로 내몰리거나, 다른 스킬아웃 조직이 저지른 범죄를 덤터기쓰거나, 혹은 아예 샹그릴라를 먹고 스트레인지의 어느 구역에서 거의 자살테러에 가까운 무모한 특공을 강행하거나, 심지어는 지하경매장에 팔려나가거나, 뒷돈을 받고 그 구성원을 연구소에 넘겨주거나, 심지어는 지하 불법 투기장에 출전하거나 여기에 차마 쓰지 못할 업종에 종사하도록 사실상 몸값을 받고 팔려간 기록까지 남아있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서 사육되며 하루하루 한 마리씩 도축되어가는 가축들 같지 않은가.
그들을 도축하는 누군가가 확실히 존재함은 일목요연했다. 꼬마가 스킬아웃 은신처에서 가져다준 단말기의 보안 프로그램을 해제하자, 익명 메신저 앱에서 이 일들의 거의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사실상 강요를 당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기록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언제까지 너희가 갚아야 할 돈이 얼마다. 내가 일을 알아왔다. 이 일을 하면 너희는 이만큼의 돈을 얻을 수 있다. 이 정도 돈이면 이번 달 원금과 이자는 물론이고 추가적인 상환도 이만큼이나 가능한데 해볼 테냐. 위험한 일이긴 해. 뭐, 나한테서 들은 것보다 돈이 적다고?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그치들이 너희들한테 돈을 그만큼밖에 안 준 이유가 있겠지. 너희가 뭔가 실수를 했거나 그럴 거야. 그것도 아니야? 운이 안 좋았네. 뭐 우리 같은 바닥인생들이 돈 떼이는 게 한두 번이간. 뭐 내 돈이 떼였냐 니들 돈이 떼였지. 그래도 한잔해, 이번 달치 상환액은 메꿨잖아?
이 메신저에는 결코 이 「누군가」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법적 증거로 사용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 누군가가 이 스킬아웃 집단에 상당히 큰 빚을 지우고 있는 채권자라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눈물범벅이 된 이 차일드에러 꼬마는, 그 「누군가」를 「금교金鮫 파이낸셜」로 지목하고 있었다. 한창 인첨튜브 따위를 이용할 때 광고차단 프로그램이나 프리미엄 혜택을 이용하지 않으면 짜증스럽게 생긴 캐릭터들과 함께 짜증나게 귀에 달라붙는 징글 송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제3금융권 대부업체였다.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야. 연구소가 파산하고, 갈 데가 없었을 뿐인데··· 그래서 폐건물에 임시로 머물러살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우리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이랑 의존하고, 가급적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싶었는데······”
“어느날 작은형이 크게 다쳐서 돌아오면서부터 모든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어······.”
사정인즉슨 이러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생활비를 벌려던 작은 형이 다른 서클에서 내용물을 비밀에 부친 택배의 배송을 의뢰받아 그것을 옮기다가, 강능력자 불량배에게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물건은 물건대로 빼앗기고, 작은 형은 중상을 입은 채로 안티스킬에 연행되고, 그 서클은 소포 분실의 책임을 그 아이가 소속된 서클에 물었다. 작은 형의 보석금과 치료비는 어찌어찌 서클원 전체가 주머니를 털어 해결은 했으나, 분실한 소포가 값나가는 불법 약물이었기에 그것을 변상하는 것은 도저히 서클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때 큰형이라 불리던 서클 리더를 비롯한 몇몇이 소포를 찾아오겠다고 샹그릴라에 손을 대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포를 빼앗아갔던 이들을 응징할 수는 있었으나 소포의 내용물은 이미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는 상태였고, 이때 사용한 샹그릴라 값과 소포 변상 비용을 금교에서 빌렸다고. 그리고 금교에서 빌린 빚을 상환하는 데에 이 소포의 남아있는 내용물을 2차 유통하는 것으로 그 얼마를 변제했으나 충분치 않았으며, 빚이 이상하게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갔다고. 그 때부터 그들이 속해있던 서클은 급격히 범죄 서클로 전락해 갔다고. 샹그릴라에 빠진 이들도 갈수록 늘어났고, 몇몇은 심지어 도박에까지 빠졌다고. 그런 그들에게 불법적이고 위험한 일거리를 계속 알선해온 게 바로 금교 파이낸셜을 뒤에 업은 윤강목, 그 녀석이라고.
“이봐······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바로 안티스킬을 찾아가거나 저지먼트를 찾아왔어야지······.” “당신들 같은 지원금 따박따박 나오는 엘리트들이 뭘 알아! 스킬아웃들 간의 네트워크가 평범하고 합법적인 일들 사이에 얼마나 폭넓게 퍼져있는 줄 알기나 해? 짭새에게 꼰질러바쳤다가 단체로 찍히면 단가 센 배달 일이나 건축 일 같은 걸 따낼 수 있을 것 같아? 보험 없이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약들이 스킬아웃들한테는 얼마나 귀중한데, 그걸 구할 수 있을 것 같냐구······.” “······사정도 모르고 말해서 미안하다.”
성운은 한숨을 나직이 내쉬었다.
“그래서, 너는···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너희들을 누가 뒤에서 사주했건 그렇지 않았건, 너희가 이미 범죄자 서클인 건··· 바뀌지 않아.” “···응. 우리 모두 잡혀들어가도 싸. 벌을 받아야 돼. 우리 다 잘못했으니까··· 그렇지? 우리는, 나쁜 사람들인 거지···?” “······.” “하지만, 윤강목도, 얘도 매한가지 나쁜 놈이잖아······.” “······네 말이 맞다면, 그렇지.” “윤강목도 벌을 받게 해줘. 나쁜 놈이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사하는 것도, 저지먼트의 일이잖아, 응?” “······.”
박 교수의 병원은 인첨공 바깥의 평범한 병원과는 사뭇 달랐다. 20년 앞선 기술이 의료 기술에도 적용됐기 때문일까, 바깥사람들의 상식과는 다른 것이 몇 있었다. 가령 눈을 떴을 때 들리는 삑삑거리는 일정한 심박 소리 말고도 이따금 딸깍, 혹은 또르륵 소리나 다량의 물이 빠져나가는 듯 꼬르륵 무언가 잠기는 소리가 그랬다. 최첨단 스캔 장치가 현재 신체 상태의 전반적인 수복 진행도와 앞으로 며칠 정도 치료를 받으면 완벽히 나을 수 있는지 결론을 도출하는 소리와, 적당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호흡 유지 장치의 소리였다. 누군가의 생명을 멋대로 재어보는 기분 나쁜 소리다. 태오는 겨우 눈을 뜨기가 무섭게 생각했다. 그리고 팔 하나를 겨우 움직여 유지 장치를 코와 입에서 떼어내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묵직하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더라? 스킬아웃에게 잘못 걸려서 얻어맞고 칼로 협박도 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 나리께서 구해주셨지. 나리의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고, 혜우의 소리도 들은 것 같았는데 그건 꿈인 건가 싶다. 머리가 아직 많이 지끈거리는 걸 보니 생각을 오래 하면 안 되겠다는 감이 앞섰다.
"……."
태오는 눈을 흘겼다. 다른 손이 유달리 따끔거려 보니 링거가 연결되어 있었다. 영양 상태 때문에 그렇겠지, 태오는 오늘따라 가뿐한 몸 상태에 저 수액이 보통 것은 아니겠구나 짐작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흘겼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꽃이 든 바구니에 시선이 꽂혔다. 태오는 손을 뻗었다. 영원히 살아있으나 실상 죽은 것으로 만들어진 가짜 생명 중에서도, 유일하게 영원히 죽어있되 죽은 것으로 만들어진 것을 쥐었다. 특수한 기능이 있기 때문일까, 이것도 꼴에 꽃이라고 장미 내음이 났다. 제법 인공적인 향이지만 태오는 개의치 않았다.
"달 지고 까마귀 우는 서리 가득한 하늘, 강가엔 단풍나무, 고깃배 불빛에 잠 못 이루는 밤."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중 종소리 출렁이는 객선에 와닿누나."*
태오는 고개를 들었다. 커튼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찌 오늘은 한시를 다 외울까? 학교 시험에 나오니?" "인생 무상하며 헛일이니 그렇지요……." "몸이 아직 다 안 나았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프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나는 게 사람이란다." "내가 그 부정에서 위로를 받는다면, 어찌할 셈인가요……." "그렇다면 시간을 줘야겠지. 충분히 위로 받아야 하지 않겠니."
태오는 침묵했다. 와위라곤 하나 느껴지지 않았기에 가까이 오라는 듯 꽃을 든 손을 까딱였으나,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바쁘단다." "하나만 답해주고 가요." "건방져." "……왜 나를, 잡아가지 않아요?" "응? 지금 당장 잡아갈 건데? 선지자랑 너랑 둘 다 데려가서 뼈만 남을 때까지 굴려먹을 거야. 그리고 2학구에 팔아치울 거고."
짙은 거짓이 느껴졌으나 태오는 입을 꾹 다물기만 했다. 남성은 농담이라고 덧붙이더니, 사라지기 전 눈을 휘었다.
"그런데 그거 아니? 이거 전부 네 망상이야."
남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태오는 홀로그램 꽃을 쥔 채 남성이 사라진 곳에 멀뚱히 시선을 꽂았다.
'스킬아웃들이 우글거리던 이 건물에 유령이 나타난다더라...' '사실 공간이 비틀려서 나타나는 것이라더라...' '스킬아웃들도 무서워서 점점 사라졌다더라...' 그 중 가장 소문이 많은 스킬아웃의 근거지의 건물이 곧 철거되어 없어진다고 하는데. 그 곳에 만일 동월이 왔다면...
어딘가에서 인기척을 느꼈지만 순간 사라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어느 순간 인기척이 점차 빠르게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하다가. 사라졌을 겁니다. 그렇게 인기척의 흔적을 따라가다보면..
-정말이지!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금방 사라졌고. 높은 층에 천장이나 벽에 구멍이 난 곳에 다다르면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을 등져 역광 때문에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동월이 붙잡는다면..? 수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