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자리를 향해 들어왔다. 여러 소란과, 대응이 있던 곳으로. 그 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있었다. 꽤나 큰 가격을 들여 구매했을 차의 흔적과,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의념의 흔적들. 거기에 더해 여러 기억이 가려진 듯한 공간의 의념까지. 마치 누군가가 읽는 것을 꺼려하는 듯 말이다. 그녀는 손을 뻗어 책상 아래에 손을 댄다. 곰방대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녀의 눈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진다. 앉은 품새는 170의 키가 갓 넘은 듯한 키에,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살짝의 무거운 무게가 있다. 무기를 다루는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게. 그녀는 그것을 기록하며 자리에 앉는다. 곰방대의 연기가 조금 더 진해지고, 그녀는 더 깊은 소리를 쫓기 시작한다. 반대편의 의념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 자리의 의념은 꽤 선명하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것을 쫓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느껴지는 것은 감정 정도였다.
불안감, 당참, 자신감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고, 찻잔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감정은 안도로 변한다. 그 후의 감정은 협상과, 어느정도의 만족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곰방대를 뒤집어 그 연기를 꺼낸다. 이곳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감각이 천천히 멀어지고 범인의 감각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눈 앞에 보글거리는 거품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원하시는 정보는 찾으셨습니까. " " 별로. "
손을 터는 그녀의 모습에 만족한 듯 사내는 등을 기대며 웃음을 짓는다. 그 미소만으로도 이 판의 승기가 그녀보다는 저 남자에게 향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웃기지도 않는 비전을 구한다 싶더니. 이런 게 목적이었나? " " 무슨 말씀을. "
그녀의 핀잔에 대고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의념 각성자가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사소한 부작용을 마주한다면... 그것도 운명인 법이지요. " " 원한다면 그 비전. 추출해줄 수도 있다만. " " 하하... 별말씀을. "
남자는 그리 말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듯, 고요한 기세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닿고 있음에도 그녀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사자가 고양이의 시선을 받는다 한들 경계하는 일은 없다. 단지 귀찮은 것의 눈치가 보일 뿐. 이 위치에서 그녀를 해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도 없다. 그나마 잠시의 여흥이라도 가능할 존재라면 눈앞의 사내가 다일 터.
" 알고 있겠지만 추출한 녀석들의 힘은 모두 특별반 그놈들에게 돌아갔다. "
불만있는 듯한 그 목소리에도 사내는 큰 답을 하지 않았다.
" 이전의 녀석들. 그러니까. 2세대의 특별반 녀석들에게서 추출했던 기술과 비전은 내가 가진 것은 더 없단 얘기다. "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는 탁자 위로 두 발을 올렸다. 다리를 꼬면서 한껏 소파에 기대어, 꽤나 짙은 어둠 투성이의 천장을 바라보며 물음을 내뱉는다.
" 덕분입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이번 일에 그들이 꽤 성장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 " 멍청하긴. "
소파를 한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그녀는 남자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은근한 살기가 있었다.
" 나는 녀석들을 정리하고 한 녀석에게 그 힘들을 몰아주고 싶었다. 단 한 명의 완벽한 초인. 투왕과 같은 불완전한 초인이 아니라. " "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초인마저도 13영웅이지 않습니까. " " 13영웅? "
하, 하고 그녀는 비웃음을 뱉는다.
" 그래. 무력만을 본다면 투왕은 13영웅에 속한다. 개념화 역시도 성공했지. 하지만 그 녀석은 늑대야. 무리를 이루지 않는 늑대. 단지 제 아비가 남겨놓은 유산을 후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키는 것이 목적일 녀석에게 헌터의 미래를 맡기라고? " " 그렇다고...... " " 이제 와서 그러는 게 옳다 그르다 따윌 우리가 따질 역할이 되느냐? "
그녀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결국 지금의 명성들은 모두 희생 위에서 이뤄진 결과였다.
" 잊지 말거라 꼬마야. "
그녀는 마치 손자를 아끼는 듯한 할머니의 손길로, 남자의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 너도, 나도, 우리도, 그들도. 세상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여 성장한단 사실을 말이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안하고 나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혹은 바티칸 이후 신생교단의 교주로서 무너진 교단을 다시 일으키고 신도를 이끌기 위해 인간적인 면모를 감추거나 버리려고 했기에 다양한 가면을 쓸 줄 알아야 했다. 가면에 어울리는 연기를 하려면 그 역에 어울리는 인물묘사를 할 줄 알아야함으로 그녀는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살아남기 급급한 행동방식에서 벗어나 타인의 심리를 읽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여전히 린은 알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상적인 영웅을 흉내내며 길을 걸으려 하면서도 가끔은 이에 탐탁치 않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평소 예의바르고 차분하게 행동하지만 실제의 그는 꽤 거칠며 충동적이다.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는 듯 말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한없이 비관적이고 그 앞날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 날 이후로, 그가 카티야 지마를 잃은 이후로 카티야처럼 붙들고 있던 선의에 대한 목표도 잠시 상실한 것 같았다. 상실의 시간이 지나니 그는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원한다며 그녀에게 말했었다. 작은 선의가 모여 큰 선의가 되는 세상을 믿고 싶다고 이 비탄의 구렁텅이에서 조금이나마 나아갈 희망을 그는 상실감을 잊기 위해서라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시네는 어려운 시간을 이겨낸 그가 희망을, 빛을 잡아보겠다는 소망을 좀 더 성장하고서 여전히 꿈꾸고 있다 믿어보기로 했다. 여전히 어떤 생각으로 저를 바라보고 웃어주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하면 자신은 지금으로서도 되었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의 욕심을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린은 아무런 사심없이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못되었다. 해가 어느새 기울어가며 새하얀 눈이 가득 쌓여 희게 펼쳐진 지평선 위로 붉은 해가 주홍빛으로 넘실거렸다. 바라본 하늘은 천천히 어두워져가고 내려다본 상점가의 불이 하나 둘씩 켜진다.
"광장에 불꽃놀이를 보러 가요." 그가 축제에 관심을 보인 이후 꾸준히 생각했던 말을 생각하지 않고서 솔직한 바램 그대로 내뱉는다. 앞으로의 나날도 옆에선 그의 마음도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지만 이 순간만은 온전히 그대로 즐기고 싶었다. 나시네는 석양이 넘어가는 설원의 신사에서 지평선에 걸쳐 마지막 빛을 내는 태양의 짙은 적색과 같은 적안으로 그를 오롯이 담았다.
"이번에도 어두운 얼굴을 하면 이래봬도 여린 사람인지라 상처받아서 혼자 들어가 버릴지도 몰라요." 여운이 남는 순간에 픽, 일부려 이를 깨려는 것처럼 대도시의 골목에서 쏘다녔던 시절과 똑같이 샐쭉 웃으며 어서 출발하자는 듯 손을 당긴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