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꼭 일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라던가." 특별반에 들어오기 전까지 폐쇄적인 생활을 했던 탓인지 상당히 육감이 좋고 경계심이 높은 면모와 다르게 꽤 순진한 구석도 있었다. 물론 그런 그가 아닌 이런저런 일들이 많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운수 하나하나에 매달리다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니 정상적인 반응이기도 했다.
물론 잠시의 모든 행동을 굳이 분석해서 일일히 생각하는 그녀도 그녀였다.
"저는 평생 헌터여도 괜찮은데, 헌터라 하더라도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을 수 있잖아요." 평생, 린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단위의 시간이다. 은퇴를 그릴 때까지 살아있을 수는 있을까. 혹은 살아남더라도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이 말하는 사업이라면 언제나 기회는 있을것 같고, 또 올해 준비하기에는 많이 벅차지 않나요. 소길이라 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얘기, 지금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읊는 것일테니까요." 그러니 해낼 수 있을거에요. 살며시 마주잡은 손을 좀 더 단단히 잡으며 그의 눈을 마주하고 차근차근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수뽑기는 재미로 하는 거니까요." "마침 저의 즐거운 하루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나요? 기사님."
한 사람이 자리를 향해 들어왔다. 여러 소란과, 대응이 있던 곳으로. 그 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있었다. 꽤나 큰 가격을 들여 구매했을 차의 흔적과,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의념의 흔적들. 거기에 더해 여러 기억이 가려진 듯한 공간의 의념까지. 마치 누군가가 읽는 것을 꺼려하는 듯 말이다. 그녀는 손을 뻗어 책상 아래에 손을 댄다. 곰방대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녀의 눈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진다. 앉은 품새는 170의 키가 갓 넘은 듯한 키에,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살짝의 무거운 무게가 있다. 무기를 다루는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게. 그녀는 그것을 기록하며 자리에 앉는다. 곰방대의 연기가 조금 더 진해지고, 그녀는 더 깊은 소리를 쫓기 시작한다. 반대편의 의념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 자리의 의념은 꽤 선명하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것을 쫓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느껴지는 것은 감정 정도였다.
불안감, 당참, 자신감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고, 찻잔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감정은 안도로 변한다. 그 후의 감정은 협상과, 어느정도의 만족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곰방대를 뒤집어 그 연기를 꺼낸다. 이곳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듯한 감각이 천천히 멀어지고 범인의 감각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눈 앞에 보글거리는 거품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원하시는 정보는 찾으셨습니까. " " 별로. "
손을 터는 그녀의 모습에 만족한 듯 사내는 등을 기대며 웃음을 짓는다. 그 미소만으로도 이 판의 승기가 그녀보다는 저 남자에게 향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웃기지도 않는 비전을 구한다 싶더니. 이런 게 목적이었나? " " 무슨 말씀을. "
그녀의 핀잔에 대고 남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의념 각성자가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사소한 부작용을 마주한다면... 그것도 운명인 법이지요. " " 원한다면 그 비전. 추출해줄 수도 있다만. " " 하하... 별말씀을. "
남자는 그리 말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듯, 고요한 기세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닿고 있음에도 그녀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사자가 고양이의 시선을 받는다 한들 경계하는 일은 없다. 단지 귀찮은 것의 눈치가 보일 뿐. 이 위치에서 그녀를 해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도 없다. 그나마 잠시의 여흥이라도 가능할 존재라면 눈앞의 사내가 다일 터.
" 알고 있겠지만 추출한 녀석들의 힘은 모두 특별반 그놈들에게 돌아갔다. "
불만있는 듯한 그 목소리에도 사내는 큰 답을 하지 않았다.
" 이전의 녀석들. 그러니까. 2세대의 특별반 녀석들에게서 추출했던 기술과 비전은 내가 가진 것은 더 없단 얘기다. "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는 탁자 위로 두 발을 올렸다. 다리를 꼬면서 한껏 소파에 기대어, 꽤나 짙은 어둠 투성이의 천장을 바라보며 물음을 내뱉는다.
" 덕분입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이번 일에 그들이 꽤 성장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 " 멍청하긴. "
소파를 한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그녀는 남자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은근한 살기가 있었다.
" 나는 녀석들을 정리하고 한 녀석에게 그 힘들을 몰아주고 싶었다. 단 한 명의 완벽한 초인. 투왕과 같은 불완전한 초인이 아니라. " "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초인마저도 13영웅이지 않습니까. " " 13영웅? "
하, 하고 그녀는 비웃음을 뱉는다.
" 그래. 무력만을 본다면 투왕은 13영웅에 속한다. 개념화 역시도 성공했지. 하지만 그 녀석은 늑대야. 무리를 이루지 않는 늑대. 단지 제 아비가 남겨놓은 유산을 후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키는 것이 목적일 녀석에게 헌터의 미래를 맡기라고? " " 그렇다고...... " " 이제 와서 그러는 게 옳다 그르다 따윌 우리가 따질 역할이 되느냐? "
그녀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결국 지금의 명성들은 모두 희생 위에서 이뤄진 결과였다.
" 잊지 말거라 꼬마야. "
그녀는 마치 손자를 아끼는 듯한 할머니의 손길로, 남자의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 너도, 나도, 우리도, 그들도. 세상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여 성장한단 사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