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답니다. 아는게 많을 뿐. 시라카와군. 당신과 만나는건 소녀 처음이랍니다." '경계하는 촉은 있어보이네. 적당히 하지 않으면 꼬리밟힐테니 매사했던 신비주의로 가는게 좋겠지' 재차확인하는 소년에게 여신은 그저 친절히 이번에 만나는 것이 초면이라고 명시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냥 아는게 많다는 것을 해석을 달리하자면 주변에 발이 넓은 사람일지도 모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테고.
"소녀도 잘부탁드리죠. 이 땅에 조화의 약속을 수호하기 위해서. 모두와 친해지고 싶은게 소녀의 뜻이니까요." '잘부탁하지는 않아. 그저 불화와 이루지 못할 약속의 복수를 위해서. 친한척 연기를 해줄게.' 소년의 인사 움직임을 지긋히 관찰하던 여신은 펼쳤던 부채를 소리내며 접는 것으로 그 인사에 답했다. 무례한 느낌은 전혀 들지않았다. 소년이 추론한대로 조금은 윗사람의 입장에서 아랫사람을 대하듯 반응한 것같았으니까. 동작에 결례가 없었기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범한 출신은 아니네. 분명. 누군가를 섬기는 쪽인가.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니 나중에 알아볼 필요가 있겠는걸.' "토코요라는 이름의 포목점의 딸일뿐이네요."
여신이 말한 곳은 기껏해야 이 아야카미쵸에 입점한지 십년도 채 되지않는 그런 이름의 가게였다. 다른 가게들 사이에서 특출나게 도드라진 점은 없었다. 그럼에도 십년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스며든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전통의상을 제공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암시가 걸려져있는 곳이니까. "출신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저 평범이라고 할 수 있네요. 전통 의상을 다루는 포목점에서 자랐으니 조금은 격식을 차릴뿐이랍니다."
그 말에 그는 살며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할법한 말이 아니라고 판단한 탓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가 이 땅에 조화의 약속을 수호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자는 요괴? 혹은 신? 하지만 당연히 유우키에게 그것을 구분할 능력은 없었다. 애초에 요괴와 신의 존재를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라카와 가문이 요괴 가문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어쩌면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으나 유우키는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정말로 만일의 경우에는 자신처럼 사람일 수도 있었으니까.
"토코요라."
그녀가 말한 포목점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그는 흥미를 보였다. 자신도 아는 가게였으니까. 물론 그 가게에 직접 들어간 적은 없었다. 그냥 물건을 사거나 할때, 간판을 본 정도였다. 원래라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곳이었으나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며 유우키는 살며시 흥미를 보였다.
"후훗. 그렇군요. 확실히 전통적인 뭔가를 다루면 그런 분위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여름쯤에 유카타를 하나 맞추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 포목점에 가야겠네요. 원래 아는 사람 가게에서 하나 더 사주고 싶어지기 마련이잖아요? 아. 혹시 남성과 여성 다 다루고 있나요?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 한 명을 대동할 수도 있다보니."
어지간하면 혼자 갈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야나로 데리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그렇게 질문을 하며,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에 잔뜩 떨어진 벚꽃잎을 살살 손으로 털어냈다.
"벚꽃은 다 좋은데, 이렇게 머리에 가득 떨어지는 것만큼은 조금 번거롭네요. 이렇게 털어내도 가끔 털어지지 않고 달라붙는 녀석들이 있으니 말이에요. 선배의 머리도 한번 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이었다면 제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본 상황에 미안해해야 마땅하다. ……아니, 좀 더 근본부터 따지자면 꽃잎이 거슬린다며 나무를 후려치는 짓부터 하지 않았을 테고. 아무튼간에 뻔뻔하기 그지없는 무신께서는 꽃으로 범벅이 된 상대를 여전히 탐색하고만 있다.
불통스러운 성격에 남에게 굽히는 법 없는 신이라 언제나의 태도를 고수할 뿐, 그도 최소한의 자기객관화는 한다. 등교 첫날부터 같은 반 학생이라는 어린 인간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리던 말 기억한다. 중간중간 무어라 알 수 없는 단어를 섞어 쓰긴 했다만, 짐작하건대 말씨가 이상하다느니 하는 소리였으리라. 그런 반응에 비하자면 저 자는 제법 공손했다. 게다 스스로 허락을 구하는 자세까지 취한다라. 흠, 갸륵한지고. 무신은 알아서 섬기는 자를 썩 좋아하는 편이었다.
"허하마."
본래 마음먹었던 대로라면 이대로 쭉 걸으며 모든 나무를 꺾을 요량이었는데, 기회를 달라 하니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사토 가를 본거 삼은 이래 다소 의미가 퇴색되긴 했어도 소기의 목표는 인간 여럿에게서 신앙을 얻는 것이었으니. 무신은 순순히 상대의 곁에 가 앉았다. 모르는 자의 바로 곁에 앉는데도 스스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너희는 화유(花遊)가 즐거운 모양이로군."
착석하자마자 슬며시 고개 들고, 꽃 내리는 하늘 바라보는 표정 무뚝뚝하기만 했다. 특별히 불쾌함도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뿐인 낯이다.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자연현상에 불과한 일에 인간들은 무어 그리도 들뜨는지. 무신은 인간과는 달리 보다 필수적이고 직관적인 것들에 더욱 관심이 동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눈에 띄는 격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으나 도시락통 소리가 들리자 곧장 눈길이 그리로 향한다. 그간 류지를 부려먹으며 갖은 공진─맛난 고기반찬─을 받은 끝에 생겨난 일종의 조건반사다. 으레 부끄러워할 법도 한 반응이건만, 무신은 과연 수치를 모르는 작자였다.
허하마. 라니, 처음엔 어르신을 대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뭔가 귀족, 아니 왕족 정도 되는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저건 귀족의 수준이 아니니까.. 하지만 현대에 왕족수준의 힘을 가진 사람이 있던가. 그는 그러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으나 곧 별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미소지었다.
"그럼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괜찮을런지요?"
"아까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와서지만. 사실 누나니 뭐니 하며 부르는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헌팅이라던가, 그런걸 하는 인싸쪽 인간이 아니었던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여성의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자신의 이름은 키미카게 카즈키라고 먼저 알렸다. 상대가 예의범절을 꽤 중요하게 여기는듯 했으니 말이다. 정작 본인은 그걸 따지지 않는게 정말 왕족같기는 했으나.. 그건 접어두기로 했기에 그는 꽃잎들을 돗자리 너머로 치워뒀다.
"아~ 솔직히 말하면 안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다들 웃고 떠드는데 처량하게 혼자 잠이나 자고 있었죠~"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였음에도 그는 태연히 여성과 같이 앉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의 소란으로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고 조용해진 이들도 있다. 좋군.
"고작 꽃이 좀 피었다고 떠드는 사람들도, 시끄러운 웃음소리도, 피어난 꽃도~ 별로였는데."
"마침 그 모든걸 처리한 여신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괜히 하던짓도 아닌걸 해본거에요."
나름 진심이었다. 별다른 논리없는 충동, 그러나 그는 그러면 어떠하리, 하고 생각하면서 도시락을 열어보였다. 햄이나 계란, 고기들이 가득한 도시락통 두개. 두개를 만든것도 쪽팔리긴 하지만. 옛날 생각에 어릴때 좋아하던 반찬만 들어있는것도 쪽팔렸다. 그러나 그걸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는 젓가락을 여성에게 내밀어보았다.
"굳이 방문하시겠다면, 예약제임을 주의바랍니다." '내 일이 많아지는 게 정말 나는 싫단 말이지?' 여신은 조금 일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사무적인 느낌으로 그렇게 말했다. 환영한다는 느낌보다는 일손이 바빠서 딱딱 끊어지게 말하는 느낌이었을까. 추론하자면 포목점에 일을 그녀도 조금은 거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그 가게는 실제로 적은 양의 수주를 받고 사쿠야 본인이 일해 납품을 하고 있었던게 진짜 이유지만. "전문은 여성복이지만, 남성복도 다룰 수 있답니다. 단 지금은 일이 밀렸으니 다음번 만날때 예약이 가능한지 통보하도록할까요." '여름 시기의 일을 두개 받는거라면 조금은 빠듯할테니 나도 일정을 정리해야하거든. 하지만 수확은 있나.' 생각보다는 일을 거드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이 일을 돕는다면 값어치 이상의 고풍스러운 옷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인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사쿠야가 생각하기에, 이 소년은 섬기는 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쪽도 짐작가는 바는 있다. 그렇기에 교두보를 만들 수확은 존재하기에 거절할 생각은 없다. "가능하다면 가게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소년이 벚꽃을 털어내고 그리 말하자, 여신 역시 자신 머리위로 스며든것만 같은 꽃잎들을 자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털어내지는 않는다. 마치 벚꽃이 스며드는 것 조차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저 한마디 이야기를 할 뿐이다.
물론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이미 예약은 가득 차서 옷을 못 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유우키에게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가게로 가면 될 일이니까. 하지만 예약을 받을 정도면 상당히 고급적인 곳은 맞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작게 감탄했다. 가능하다면 그 옷을 꼭 얻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하. 그렇다면 운이 좋길 바래야겠네요. 언제 한 번 가게로 찾아갈게요. 제 쪽에서."
물론 그녀가 먼저 찾아온다고 한다면, 그 또한 말릴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만나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테니까. 어쨌건 빠른 시일내로 아야나에게도 의견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우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한편 벚꽃을 굳이 털어내지 않으며 그 또한 꽃구경의 흐름이라는 말에 그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꽃잎을 받아내는 것도 꽃구경의 재미기는 하니까요. 후훗. 저도 이번엔 털지 말아야겠어요."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는 것이겠지. 그렇게 판단하며 유우키는 자신의 머리를 한 번 더 털려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말이 저렇게 나왔으니, 자신도 한번 이번엔 털지 말고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어 그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다시 벚꽃을 가만히 구경했다. 꽃잎을 잡을까 말까 시도를 해보다가 그는 굳이 잡으려고 시도하지 않으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많네요. 이런 상태라면 벚꽃을 느긋하게 구경하기도 힘들 것 같고... 다음에는 아침 일찍 자리를 잡을까 싶어요. 사실, 오늘은 자리를 잡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확인하러 온 정도라서... 선배는 오늘이 본격적인 꽃놀이인가요? 아니면 저처럼 자리를 보러 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