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마무리되어간다. 이제 삼 월 동안에는 겨울을 펼치기 위한 비행이 아니라 걷기 위한 비행을 해야 한다. 열공을 가로질러, 신린룡 시라토키노 오로치는 흐릿한 신비 속에 몸을 숨기고 한 줄기 겨울 바람이 되어 겨울숲으로 떨어졌다. 땅에 내려앉아 가볍게 앞발을 들어 어깨를 털면, 용의 형상이 마치 어깨에 쌓인 눈처럼 털려 겨울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겨울숲을 가로질러 도로변으로 걸어나올 때, 시라토키노 오로치의 모습은 이미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재킷에서 눈을 털어내고 있는 하얀 머리의 여성, 시라스카 이로하로 화하여 있었다.
이로하는 겨울을 걷어내기 위한 비행을 퍽 좋아했다. 겨울의 신은 봄도 퍽 좋아했기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과 생명의 지고 핆은, 셀 수 없이 많은 순환을 거쳐온 겨울의 신에게도 매번 새로이 경이로운 것이었다. 보아라, 벌써 가판대에 새 작물이 올라와있지 않은가.
이로하는 가죽재킷 아래 받쳐입은 후디 안에 들어간 눈을 후디를 뒤집어 탁탁 털며 가판대로 다가갔다. 지리멸렬하면서도 그래서 깜찍한 텍스트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로하는 쉬이 돈을 지불하지 못하고 가만히 가판대의 작물들을 보고 서있었다. 분명 서벅서벅하니 익은 무라던가 메밀소바에 곁들여먹는 간 무라던가 하는 것들은 좋아하는데, 요리하는 법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응, 이걸 산다고 해도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모르겠어.
방학 중 퇴사는 사치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굴려야 하는 법. 도시락 가게 아르바이트를 방학 한정으로 주 3일 근무에서 5일 근무로 변경했다. 근무 시간을 늘려 자금이 넉넉해지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듯하다. 역시 사람의 여유는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넉넉한 발걸음이 밟는 것은 가게 바닥이 아닌 흙 바닥이다. 가게 사장님이 장 좀 보고 오라며 물품 적힌 메모지와 돈 몇 푼을 쥐여준 까닭으로. 계란말이 그림이 그려진 메모지에 당근, 오이, 계란, 무 등이 적혀있는 것을 확인 후 시장으로 향했다. 계란말이 그림이 그려진 깜찍한 메모지에 당근, 오이, 계란, 무 등이 적혀있는 것을 확인 후 시장으로 향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여긴 어디지.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걷다 보니 요상한 길로 들어와버렸다. 이곳엔 야채와 과일이 풍족한 시장도 없었고, 익숙한 낙서가 그려진 담벼락도 없었으며, 늘 시장 입구에서 반겨주는 삼색 고양이도 없었다.
……큰일이다. 나, 미아가 되어버린 걸까.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불안감에 눈알을 굴리던 스이의 시야에 무언가 걸렸다. 무인 채소 가판대였다. 목적지와는 달랐지만 목적인 물품들은 어떻게 잘 찾아왔네……. 그런데 이렇게 휑한 곳에 덩그러니 무인 가게를 차리다니.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그보다 이거, 파는 거 맞나? 판매용 퀄리티가 영 아닌 듯한데…….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진열된 채소들을 훑어본 스이는 주변을 휙 둘러봤다. CCTV 없음. 사람 없음. 이렇게 허술하고 불안한 환경에 정말 아무 장치 없이 가게 주인이 가게만 내버려 두고 있을까? 혹시…… 어디에선가 보고 있다면…… 오히려 럭키다. 본인은 지금 엄연히 미아다. 길잡이가 간절히 필요했다. 겸사겸사 야채도 좀 사고.
스이는 큼, 크흠, 하며 헛기침으로 극의 포문을 열었다. 경고문 종이를 못 본 체 지나치며 실수인 척 돈 넣을 병도 툭 쳐서 떨어트리고.
“아아— 이거 참, 누가 여기에 기부를 해두고 갔나. 돈 넣을 곳이 없으니 기부로 봄이 옳겠지. 운이 좋아, 전부 가져가버려야겠다.”
크지도 않은 품에 정말 가져가려는 양 채소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멘트까지 슬쩍 흘리며.
situplay>1597032124>882 지켜주고 싶다니 큰일날 소리를. 챙겨주려고 하다가 기회를 엿본 청동기 신님으로부터 찰싹 달라붙어져서 척수까지 쪽쪽 빨려버린다고? 😌 물론 그 청동기 신에게 그럴 만한 잔머리가 있을지는 차치해두고 🤭🤭 린게츠의 호의로 인해 일단 노숙 생활은 청산했지만 아직 흠잡을 곳이 넘쳐나는 신님이니 그쪽을 노리면 된다, 인간이여――
>>929 오? 오오ㅡ!! 개시 직후부터 바로 손님인거야?! 얏바... 뭔가... 뭔가 반짝반짝거리는 사람이다!!! 텐션 위험할정도로 엄청 올라가는데요?! 아니 그런데... 음... 구경만하는건가? 좋다구~? 엄청 열심히 기른거라구~? 시중에서 사면 이 가격에는 절대 못구한다? 최대한 열심히 념을 보낸다. 닿아라... 나의 마음...!!!>>933 "도둑이야아아아아!!!!! 경↗️찰↘️아➡️저⬆️씨이이이이↗️!!!!!!!!!!!"
안돼!!! 절대! 안돼! 비록 경찰이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믿음을 배신할 이유는 아니야!!! 아니 이건 진짜로 킷쇼이!!!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대도 저렇게 멀쩡한걸 훔쳐가?!
염이 닿았다. 좀 지나치게 닿았다. 사유가 보낸 염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신으로서 한창 시절 때 자신에게 참배를 올리던 신자들의 그것과 꽤 비슷한 선명도였기 때문이다. 가판대를 멀거니 바라보던 키큰 성별미상의 미인이 갑자기 사유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정면으로 아이컨택. 사유의 머리색과 엇비슷한 파르스름한 눈동자가 사유의 감홍색 시선과 마주친다.
그리고 상황이 야바이 전개 중점. 늘씬한 미인이 난데없이 무 하나를 집어들고는 사유에게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다.
아잇, 깜짝이야. 품에 채소를 가득 안은 채 어깨를 움찔 떤 스이가 태연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제자리에 돌려놓곤 허리에 양손을 척, 하고 올렸다. 흐으음… 하는 묘한 소리와 함께 소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 완료. 화려하고 특이하니 기억하기도 쉽네. 그리고 매우……. 스이의 시선이 소녀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갔다.
“작네.”
앗, 속마음이 무심코.
언제 속마음을 내뱉었다는 양 표정을 갈무리하곤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쉿! 일단 진정해 봐. 네가 이 가게의 주인이야? 나는 널 내 앞으로 끌어내려고 이런 연극을 벌인 거야. 나는 도둑질 같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구.”
자 봐. 하며 주머니에서 심부름 품목이 적힌 메모지와 값에 맞춘 현금을 꺼내 보였다. 하늘에 맹세코 부끄럼 한 점 없다는 낯으로.
번듯한 집도 얻?고 평?범한 생활을 만끽하며 길을 걸어가고 있던 내 눈에 띄인 것은 사람 없는 채소가판대였다. 요즘 인간들은 인―타―넷또라는 것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도 거래를 하는 줄로 알았는데, 아직 이런 것도 남아있구나. 무심코 인간들의 기술 발전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졸졸 다가가서 깊이 눌린 후드를 슬쩍 들추며 쓰인 글씨를 읽었다. 야바이... 텐션... 사유쨩... 피엥... NG...
"...뭐??"
도대체 이게 무슨 경박한 문자 작성 방식이란 말인가. 심지어 글씨 하나하나에는 으레 담겨야 하는 미의식이 없었다. 가나의 변천과 함께한 오래된 신으로서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방식이었다!!! 꼰대의 구성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굉장히 오래 살아온 연식에, 하나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짙은 향수에, 마지막 하나는 현재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이다. 우연찮게도 이 모든 구성 요소에 부합했던 아오이는 눈썹이 역(逆) 팔자로 서면서 꼰대답게 요오오즘 젊은 것들은, 을 시전하는가 싶었지만...
오이며 무가 개당 80엔!!!!!!!
"이, 이히히..."
80엔이라는 달콤한 소리에는 이기지 못했다...
"이, 이게 다 몇 개야... 한 둘 셋 넷―――"
바리바리 싸들어서 집까지 가져가면 분명 린게츠가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겠지??? 역시 아오아카가네노카미사마!!! 믿고 있었습니다!!!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80엔은 10엔짜리로도 충분히 낼 수 있다. 10엔이 뭐가 그렇게 대수냐고 한다면― 이 신, 청동기의 신이거든. 그리고 10엔은 어설프게나마 일단 청동이다. 신은 제 소관에 닿는 신의 기적을 이뤄낼 생각에 이미 헤실헤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때릉때릉때릉때릉―
수많은 10엔이 넓은 소매 속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아오이는 수많은 채소를 제 팔 안에 가득 차도록 안더니 짐짓 들뜬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명시된 거래는 정확하게 따랐다는 것도, 굉장히 오래된 신다운 구석이었다.
다만 문제점은 하나였다.
저 채소, 얼마큼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나 하고 저만큼이나 안아간 것일까..................❓❓❓❓❓
>>953 후후후후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네! 그 무로 말하자면 사이즈부터 맛까지 완벽해서 그냥 팔지 말까도 고민했던... 엣 뭔가 다가오고 있는것 같은데?! 에 춋, 눈 마주친거야?! 뭐야?! 왜 무를 들고 오는건데?! 누가 좀 카마쵸! 이 일단 어디 숨어야!!! 저기 나무뒤면되나?! 위장 완성도.dice 1 100. = 69>>957 "앙?! 안 작아! 도둑이면 예의라도 차리라고!!!"
뭐야 이 인간?! 도둑인가 싶었더니 대뜸 무슨 파워워드인건데?! ...뭐 돈은 냈으니 오늘은 넘어가지만!
"뭐야 평범한 미아였던건가. 이런데서 길을 잃어? 쵸WWWWW 우케루WWWWWW"
도심이랑 떨어져있기는 해도 나름 도로도 제대로 있고 그냥 길대로만 걸어도 길을 잃지는 않잖아 JK. 웃음을 멈출수가 없는데요?! 사유쨩 지금 너무 웃어서 복근붕괴인데요?!
"이쪽 뒷길로 올라가면 우리집뿐이고, 도로는 반대로만 가면 돼. 그리고 지금 손에든거, 제대로 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