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이 붉게 내려앉아 하늘을 새빨갛게 불태운 뒤, 땅거미가 어둑하게 깔리고- 마침내 온전한 어둠이 찾아온 시간대에. 달도 별도 그 자취를 감추고, 이따금씩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가로등불이 희미하게 이정표처럼 서 있는 골목길에. 그것은, 스스로에게 오만하게도 인간의 이름을 붙인 요괴는,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하얀 담배를 익숙하게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타오르는 연기가 희끄무레한 안개 퍼지듯, 가로등빛 아래서 흩어진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묵직한 감각이 폐 끝에 닿을 즈음에, 새하얀 연기를 뱉어냈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면서, 바짓단에 잡힌 손을 바라보며.
"놓아, 주시겠습니까."
"제발, 당신... 히노카와 가문의 사람이지? 신문에서 봤어. 약을... 약을 주지 않겠는가? 폐병때문에..."
길게 이어지는,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사내의 애걸.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고, 그에 배신당해 추락했으며,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도 않은데다 관심조차 없을 그런 말들이, 귀에 닿지 못한 채 의미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모금 더, 깊게 담배연기를 삼킨 뒤에, 천천히 입 밖으로 흘려내며. 그것은 차디 찬 눈으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천년을 살았다. 긴 시간을 살아오며, 처음엔 이런 사연들을 듣는것이 즐거웠다. 인간이란 것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어떠한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가는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탐욕으로 귀결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는, 미치도록 지루할 뿐.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귓가를 매만진 후에, 검지 끝을 후, 하고 입김 분 뒤에.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넘기며, 무릎을 구부려 앉아 사내와 눈을 마주한다.
"안타깝군요."
사내는 자신을 동정한다고 생각한걸까. 지긋지긋한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그리 희망을 보았을까. 그것이 입가에 담배를 물고, 다시 한 모금. 연기를 삼킨 뒤에, 사내의 얼굴에 후, 연기를 뱉자, 사내는 콜록거리며 팔을 휘젓는다.
"열이 나고."
사내의 얼굴이 조금 빨갛게 물든다. 땀 한 방울이 사내의 뺨을 타고 주륵, 흐르자, 당황한 듯 떨리는 눈동자.
"심한 고통이 느껴지며."
사내가 커헉, 하며 소리를 낸 뒤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진다. 쌕, 쌕 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결국 사지가 썩어들어가..."
사내의 손톱까지 새카맣게 물들고, 더이상 숨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제서야 평온을 느끼는 듯. 그것은 반쯤 타버린 담배를 사내의 앞에 툭 던지며.
"병사하다니. 안타깝습니다."
말을 마치고, 천천히 일어나, 주머니에서 다시금 담배를 꺼내어 익숙하게 입에 물었다. 자욱하게 연기를 뱉으며 다시금 앞으로, 그저 가로등 불을 이정표 삼아 걸어간다. 그것은 충분히 차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음에도, 구태여 걷는것을 선택했다. 그것은 자극을 갈구하는 괴물이었다. 그 자극이, 불만족스러워 오히려 불쾌만을 선물한다고 하더라도,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아무런 자극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그 괴물에게는 더욱 큰 고통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또 다시 해후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느릿하게 담배연기를 뱉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괜찮습니다. 부딪히지도 않았으니."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제 앞의 붉은 기 도는 사내를 내려다보고. 그것은 다시금 입을 떼었다.
담배냄새. 순간적으로 들어온 향에 그는 손끝을 떨었으나 그저 찰나의 일이었다. 정신차려야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성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자신보다 키큰 사람 자체가 보기 힘든편이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글쎄, 지금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듯 했다.
"그래도 딴 데 보다가 부딪힐뻔 했으니까요."
혹시 발을 밟은건 아니겠지? 그는 조심스레 다시 살폈으나 그건 아닌듯했다. 하긴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도 않았으니까. 살짝 본것 뿐이지만 남성은 일단 성인.. 인듯 했다. 가로등이 있다곤 하나 빤히 보는것은 실례니까 확실하게 본것은 아니었지만. 담배도 피고있고, 복장도 그렇고. 적어도 자신보단 나이가 많겠지싶다.
"네?"
그러나 그저 사과만하고 지나치려던 시점에서, 상황이 조금 틀어져버린것을 느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과, 거기에서 이어진 말이 쎄함을 느끼게하긴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는 한두걸음 물러서며 동요하지 않고 남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앞에 무슨 일이라도 났나요?"
만약 영화마냥 사건이라도 일어났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토록 평온하게 남에게 충고하지 않는다. 물론 그냥 공사중이라거나 그런 별거아닌 일일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뭐랄까.
그냥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가늘어지고, 다소 경계하는 느낌이 더해진다. 그럼에도 남성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는다. 이것이 그저 늦은 시간에서 비롯된 괜한 걱정이라면 그걸로 좋다. 사실 여기서 뭘 할 생각이 있는것도, .. 아니니까.
그것은 제 눈 앞의 붉은 기 도는 사내의 손 끝이 떨린것을 놓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무표정한 사내의 얼굴 속, 그 입꼬리를 살짝 올리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본디 사람의 얼굴이란것은 감정을 알아채기 쉬운 것이었다. 멍하게, 무표정으로 있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슬픔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고,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피로를 엿볼 수 있었다. 분노, 슬픔, 피로, 환희... 특히 눈은 마음의 창인 만큼 감정을 담고 있는것이 정상이나. 그것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입꼬리가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살짝 올라갔더라고 하더라도, 인상이 변하지는 않았으리라. 무의미함. 어떤 감정조차 못 느끼는것 같은 그런 인상으로, 그것은 느릿하게 담배연기를 삼키고 뱉으며 자욱한 안개를 만들었다. 눈 앞의 사내는 교복을 들고 있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것은 자켓의 안주머니 안에서 담배를 꺼내어 사내에게 자연스레 권했다.
“상냥한 분이시군요. 저야말로 앞을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부주의했네요. 괜찮으시면 한대, 피우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음에도, 입에서 나온것은 언뜻 다정하다고도 할 수 있을만한 말이라. 어쩌면 괴리감을 느낄만한 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내가 두어걸음 물러나며 자신을 경계하자, 곧 지루해지기라도 한듯,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담배연기를 뱉었다. 바라던 반응이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경계하는것 만큼 지루한 반응이 없었다. 자신과 맞설 힘을 가진 신이나 요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퇴마를 업으로 하는, 속세와는 동떨어진 특이한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경계를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이 무섭고 저것이 무섭고. 그러나, 길고도 긴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을 잃어버렸기에, 성가심만 남았다. 눈 앞에서 엄니를 드러내는 호랑이를 만난다고, 두려워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역병을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 인간은 없다. 하물며 저 사내의 앞에 있는것은 역병이었다. 역병에게서 두 걸음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가까이에 있거늘.
”가로등이.“
”꺼져있더군요. 이대로 쭉 가신다면, 곤란해지실지도 모르기에.“
”저도, 꽤 긴 시간 불빛 없이 걸어왔답니다.“
그것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 저 뒤쪽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귀찮았다. 시체 같은 이야기를 사실대로 하는것도, 또 한 구의 시체를 늘리는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