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uplay>1597031091>311 타누키다이쇼 린게츠. 인간 이름, 야사카 린게츠. 대략 2천년도 넘게 살아온 그럭저럭 장수한 너구리 요괴. 한 때는 어느 지역을 장악하며 너구리 요괴의 신화를 써내려가기도 했던 몸. 본체의 털보다 많은 시간 동안 얻은 경험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시대가 변하는 것을 지켜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21세기라는 첨단 기술의 시대에서도 즐겁게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었다.
뭐? 신이 영락했으니 이제 요괴의 시대? 에이, 그게 뭔 재미야! 자유롭게 사는 게 가장 좋다. 열불내고 다니면 피곤만 하지 뭐가 좋담. 신앙이 사라져가는 신이 어떤 모습인지는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게 있으니 잘 알고 있다. 내가 신좌를 걷어찬 건 그 신이 꽤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오오래산 너구리는 지금 이 상황이 가장 즐거웠는데뭐야저거
"...형님 여기서 뭐하세요."
정정한다. 어떤 상황이 아니라 대부분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여유를 잃지... 편의점에 들러 (어른으로 변신해) 구입한 맥주 두 캔과 가게에서 반찬가게에서 포장한 가라아게를 흔들거리며 걸어가던 중에 오랜 인연인 신을 만나게 될 줄 알았겠냐 그것도 이런 상태로.
난 아직까지도 그곳에 누워서 뺨을 바닥에 짚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봐, 그것 알아? 봄 밤의 보도블럭도 꽤 차갑더라...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어... 머리에는 사과가 놓이고, 허리에는 부스럭거리는 빵과 우유가 놓인 신(神) 식탁이 된 채로 죽어가는 눈으로 검어져가는 하늘을 보는 것도 꽤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 건가
"...형님 여기서 뭐하세요."
뭐지, 뭔가 굉장히 익숙하고도 그리운 소리가...
"형님 진짜 여기서 뭐하세요? 저기요? 아오아카가네노카미사마?"
또 들려왔다. 사람은 죽기 전에 지금까지 겪은 일을 쭉 돌이켜보는 주마등을 겪는다던데 신도 똑같은 걸까, 나도 지금 익숙한 장면과 사람들을 돌이켜보고 있는 주마등 단계에 지금 접어든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죽음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만 같다... 아, 방금 나 조금 멋졌다―
...라고 몇 시간 묵은 허기와 기력없음에 머릿속에 헛소리가 돌아다니고 있을 뿐, 그냥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멍하니 보도블럭 위에 누워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조치가 필요할 듯 싶다... 이 아무것도 못 먹은 폐급 신한테는...
situplay>1597031091>336 퐁! 하는 소리가 난다. 뭐에 빠지는 소리냐고? 아무렴! 아니지! 뭐가 터지는 소리다. 곧 물에 빠졌던 형상은 나뭇잎 한 장이 될 테고 뒤에서 한 161cm는 될까? 싶은 귀여운(강조) 미소년이 하얀 소녀의 정수리를 가볍게 툭 친다. 바로 나다. 바케다누키 야사카 린게츠다!
"힘조절은 제대로 해야지- 평범한 인간은 네 생각보다 훨씬 연약하다?"
금새 다시 만난 하얀 머리 강아지 요괴는 딱히 변한 것 없어 보였다. 여전히 하얗고,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아직 어리지. 손을 뻗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려고 하며 씨익 웃었다.
>>512 헉 린게츠주 나 실수로 린게츠주 레스를 제대로 못봤네 미안해~!! 🤔🤔🤔 확실히 잘 안맞을것같다고 하기도 했었구, 아키히로가 마냥 착한 아이는 또 아니니가... 그래도 나 관계 되게 다양하게 먹는 편이라서 🥰 관심있으면 저쪽에서 천천히 얘기해봐도 좋아! 편하게 얘기해주면 고맙겠네.
2천년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은 그 편린도 찾아볼 수 없다. 바닥에 누운 채 말 그대로 죽어가는 이 폐인.. 아니 폐신을 어찌해야할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걸 참지 못했다.
"어휴"
청동기의 신. 그래. 청동기. 이미 유행이 지난지 세기로만 세도 20은 훌쩍 넘긴 그거. 아주 오래 전에 붐이 끝난 청동기의 신이 바로 저 사람..아니 신이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신 다운 품격이 있었고, 강함이 있었다. 무슨 변덕인지 새끼너구리 요괴였던 자신을 거둬 세상과 술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내가 형님을 가만히 두지 못하게 된 것이지. 그래도 오늘은 상태가 나쁜 것 같았다. 어디보자, 아사 직전이 딱 저랬던 것 같은데. 일단 뭘 먹이는 게 맞겠다 싶어서 봉투를 들어올렸다.
부스럭거리며 봉투에서 가라아게 하나를 꺼내고는 몸을 숙였다. 아- 하고 입을 벌리라는 상냥한 말은 어차피 닿지 않을 테니, 그대로 형님의 입에 쑤셔넣으려 한다.
"자, 자, 밥 드세요 밥. 근데 텅 빈 속에 기름진 걸 먹으면 안 좋다는데- 에이 그래도 신인데 괜찮겠지 뭐!"
안되면 좀 앓고 말 것이다. 예전이면 정말 상상도 못한 태도로 형님을 대하는구나 싶어서, 새삼 웃음이 나왔다.
>>528 후히히 당연히 괜찮지~ 오히려 아키히로가 다른 사람들 낮게 보고 그러는데, 나는 얕잡혀보이기 싫다니 그런건 이상하잖아? 🥰 나는 진짜로 이것저것 잘 먹어서~ 내가 너무 린게츠주에게 들이댄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 린게츠주만 괜찮다면 어떤 느낌으로 선관 생각해두고 있는지 임시어장에서 들어보고싶어!
이 마을에 요괴건 신이건 많은줄은 알았지만... 한밤중에 길 한복판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오늘도 늦은 밤까지 영혼을 수확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던 카메츠는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요괴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얘는 인간들에게 숨길 생각이 없나? 이러다 부서지면 얘도 내가 거둬서 치워야하나?? 별의 별 생각이 들던 와중 저 멀리 버려진 가구와 그에 붙어있는 폐기물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 . .
"영차. 이러면 누가 놀라서 부수지는 않겠지."
이내 카메츠가 자리를 뜬 곳에는 조각상 하나가 폐가구와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채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다음 날 눈을 뜬 사가라 테루만이 알 일이었다.
한껏 주마?등이 스치는가 하면... 이제는 입안에 뭔가가 쑤셔져 들어온다... 뭐지? 장례의식 중인가? (시즈하: ?) 옛날에, 그러니까 야요이 시대 때 장례식을 이런 식으로 치렀는데,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 같은 걸 넣으면서... 극락왕생을 빌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그립군...)
와작.
뭐지? 씹힌다. 와작와작와작와작. 슬쩍 누워 있으면서 비축되었던 힘을 꺼내서 뭔지 모르겠으면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영유아의 심정으로 와작와작와작 그 식감을 즐겨보았다. 그렇게 씹고 있다 보니... 맛있다?? 닭고기 맛이 난다... 그런 식으로 식감과 그 맛을 탐닉하고 있다보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직접 손으로 잡아가며 게걸스럽게 와작와작와작우물우물우물 적극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꿀꺽.
그 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서 '한 그릇 더! (お代わり)'를 외치듯이 그 맛있고 힘나게 해주는 것들이 가득 들었을 종이봉투로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봉투의 주인을 확인했다.
"어...? 어어...? 허어...?"
"...린...게츠...?? 린게츠????"
멍청한 표정만큼 멍청한 목소리가 나왔다. 살짝 혀에 힘을 덜 준 것 같은, 그래, 그런 덜떨어진 목소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