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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고찰한다는 말은 딱히 틀린 것이 없었을테다. 어찌 됐든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정확히 어떤건진 잘 모르겠지만, 애린이 '직접 겪어봐야 아는 셈' 이라고 하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였을테다.
" 그것도 그렇네. " " 이래서 녹슨건 문제란 말이야~ "
녹슨 것이라는건,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그야 저지먼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인간관계에 회의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던했으니까.
" 딱히 잃어버리진 않았지만, " " 옛날에는 좀 조용하긴 했지. " " ...아니, 냉랭했다고 하는게 좋으려나. "
남의 물음에 대답도 안하고, 필요한 소통은 단지 고갯짓으로만. 그것은 단지 '조용하다' 라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말을 바꾸었다. 잃어버린 기억은... 적어도 그것은 동월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니, 딱히 그곳에서 얻을 내용은 없을테다.
" ..... "
딱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해주었겠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애린의 행동은 동월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속히 말해서 고장났다고 하는 것이다. 뭐, 대충 무슨 표현을 하고싶었는지는 알것 같았고, 그것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 이렇게 쓰는거다 감자같은 녀석아. "
멍하니 애린의 행동을 바라보던 동월은, 이내 빙긋 웃으며 주먹을 쥐었고, 그것은 속절없이 애린의 정수리를 향해 꽂힐 준비를 했다. 크게 아프진 않겠지만, 충격 정도는 조금 있을테다.
" 뭘 기대한건 아니지만, " " 누구를 엄청 닮았었거든. "
즐겁고 시원하고 유혹적인 남성을 닮았었지.(?) 라고 덧붙인 동월은 혼자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테다. 그래도... 방금 전의 농담과는 다르게, 애린의 차분하고 온화한 웃음은... '여자애' 라기 보다는 '여성' 의 느낌을 주었던 것도 같다.
" 그래 인마. 그 정도면 충분히 아프고 불편한거지. "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병원에 가봐라' 같은 잔소리를 했겠지만... 동월은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 애린도 익히 알고 있는 이유 때문일테지. 그것은 입에 담는 것 만으로도 동월을 공포에 빠트릴 수 있을테니까. 적이 알았다면 동월에게 이길 수 있는 필승 전략이라고 할 만큼 말이다.
" ....! "
기대어도 된다는 말에, 또다시 분위기를 바꾸고선 자신에게 밀착해오는 애린을, 잠시 놀란 눈빛으로 본다. 애린의 검지가 동월의 입가로 다가왔지만, 동월은 딱히 그것에 맞춰 말을 멈춰줄 생각은 없었다.
" 오히려 당연한 걸로 생각하라고 그러는거다만. "
여전히 자신의 입가에 애린의 손가락이 있다면, 그 손도 잡아서 슬며시 내리려 할 것이다.
" 기억이 나지 않으면 뭐든 편하게 물어봐라, " " 걷는 것이 힘들다면 기대어라. " " 그 사소한 걸 들어주는게 힘들 리도 없다만은. "
다만 사소한 일이라는 핑계를 대며 사소한 이유로 넘어가는 것은 힘드려나.
" 내가 없는 동안은, 그렇게 할 수 있냐? " " 매번 잊어버려도 매번 똑같이 대답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지? " " 걸을 때마다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지? " " 내가 너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있는건 아니지만.... " " 그래도 나와 같이 있는 시간 만큼은, " "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그런 이유였다. 애린이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고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어떤 사람들인지, 커리큘럼은 어떤 식으로 받는지, 다른 친구는 있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일 뿐이다. 다만 서로의 생존을 약속한 사이인데, 등을 맡길 수 있어야 하는 사이인데...
" 오히려 그것밖에 못해주는게 미안할 지경이라고. "
아무리 순간적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진 행동이었다고는 해도, 동월은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내뱉는 경향이 있었다.
" 으으음..... 그런걸까. " " 어려운 얘기긴 한데, 그래도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
마음의 창이라. 그럼 자신의 새하얀 시선은,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걸까. 실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 ......뭔놈의 덮밥 이름이 그래. "
슈퍼엑스트라곱배기야 그렇다 치자. 쳐맞는 말이라니. 당장에 욕쟁이 할머니가 나와서 욕을 슈퍼엑스트라곱배기 수준으로 뱉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주문은 해야겠지...
" ....그럼 나는 할말 못할 말로. "
핵폭탄맛. 아마 이 가게에서 제일 매운 맛일테다. 원래라면 적당히 매운맛을 시켰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애린이 시키기도 했고, 축제라는 청춘을 즐기기 위해서 조금의 고통을 감내하기로 한 것이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와 물이 반이나 남았네 급의 말장난이지만 그렇게나마 덧붙인 리라는 태진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팬덤 싸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온더로드는 인기가 많고 판이 넓은 만큼 떠드는 입도 많았다. 사람이 모여 떠들면 소란이 일어나기 마련. 이따금 라이브 방송 같은 걸 할 때 봤던 채팅이나 sns의 다툼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진다. 다시 생각해도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수도랑 냉방이 끊기셨으면 집에 가는 건 어렵겠네요."
역시 의무실이나 병원에 들른 뒤 기숙사에 문의라도 해 보는 게 낫겠다. 재학 중인 학생을 돕는 프로그램 정도는 마련되어 있겠지. 정 어렵다면 임시로라도 지낼 곳을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글쎄요, 태진 선배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은 건 태진 선배님이 공포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구해진 사람들이 염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본인 탓으로 돌리지는 마셨으면 해요. 그리고... 누가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건 확실히 좋지 못한 상황이었겠죠. 많이 힘드셨겠어요."
얼마나 걸었는지는 몰라도 여름의 더위와 타인의 체중을 이끄느라 지친 탓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저만치에 십자 무늬가 있는 하얀색 천막이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옳게 온 것 같다. 너무 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의무실이 멀리 있었다면 중간에 힘이 전부 빠져서 태진을 끝까지 부축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리라는 한발 더 내딛으며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죠. 태진 선배님이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가 다쳤을 거예요. 또한 죽은 사람의 사연은 안타깝고 애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사람의 사망이 태진 선배님의 탓은 아니에요. 그건 그렇게 만든 범인의 잘못이죠. 오히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주었기에 그 사람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이미 떠난 사람의 의중을 지레짐작 하는 건 의미 없는 행동이긴 하지만... 저라면 그랬을 거 같네요."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모르지 않는다. 리라는 말을 고르며 몇 발자국을 더 옮겨간다. 이제 축제장에 설치된 의무실도 거의 코앞이다.
"태진 선배님은 잘못되지 않았고 역겹지도 않아요. 제 눈에는 충분히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선배님만 보이는걸요? 개인이 모든 걸 전부 수용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우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설령 모순적이어도 앞뒤가 맞지 않아도 리라는 허투루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인첨공은 말씀하신대로 역겨운 구석이 적지 않아요. 매일 좋지 못한 꼴을 보다가 햇빛 나는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괴로운 것도 무리는 아니죠. 하지만 선배님 곁에는 저지먼트 친구들이 있고, 같은 3학년 선배님들이 있고, 저도 있잖아요? 엔터테인먼트 하나는 만능인 후배."
그러니까 기왕이면 함께 고민하고 협의점을 찾아봐요. 혼자 괴로워하다 곪지 말고, 지금처럼 속 이야기도 나누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잡담 쭉 읽는데ㅋㅋㅋㅋㅋㅋ 인천 코뿔소파들 같으니(...) 이게 스킬아웃이야 저지먼트야! 박호수 하나로 이렇게까지 어그로를 끌다니 조금 뿌듯 아아닙니다...
온 사람들 어서오고 다녀오는 사람들 다녀와! 그리고 인정한다 운전은 남이 해주는 게 최고야 내가 하면 피곤해
situplay>1597030134>97 대쟝늑대... 다정해............. 이게 리라 여친이라니 믿기지가 않네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어떻게 이런? 이런 아이가 실존? 뽀뽀해버려야지(랑이 랑주 같이 쭈왑) 정말 대박 상여자야 흑흑 감동... 리라도 나중에 미스틸테인이든 뭔 이상한 잔챙이든 랑이 건드리면 와다다 해줘야지 절대 지켜
엄청 표현 잘했는데!!! 히히히 너무 좋아 난 종이에 그린지 오래돼서 간만에 종이그림 보니까 좋네... 귀여워 예뻐 봑봑. 금테 둘러서 한참 보다가 나중에 후대에도 물려줘야지 이제부터 보물입니다(?)
모든 QR코드를 지나치며 빠르게 걷고있다. 하늘에서 드론으로 만들어내는 코드, 철판에다가 용접하고 있는 코드, 달고나 QR코드맛... 하나같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것들 투성이라 곧 폭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디선가 'QR코드에 질려버린 당신!' 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 홀린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본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은 수용하기 어려운 말도 있다.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 가득하지만, 구태여 입에 내지는 않는다. 내 탓이 정말 아닐까. 최소한 손에 닿지는 않았을까? 내가 스스로를 더 망가트려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내가 어떤 증오를 받더라도 속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냥 그렇게 하겠다. 미움 받는 거야 이젠 생각해보면 익숙하지 않나.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수 밖에.
의무실이 가깝다. 그건 지금 내 흐린 눈으로도 보이고 있다. 젠장. 꼴사납구만. 최애 아이돌에게 이런 위로를 받으며 부축받고 있다는 사실이.
다리에 힘을 준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다잡아야만 한다. 마침내 땅을 강하게 딛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부축한 팔을 떼어놓으려 한다.
"...이제 됐어."
손으로 겨우 끌고 있던 가방을 열고, 수건 하나를 건넨다. 최애의 이마에 땀을 맺히게 하다니 최악이로군. 땀을 닦을 때 쓰도록 건넨다.
"알아서 움직일 수 있으니까, 가도 돼. 같이 온 사람도 있을거 아냐."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함께 있을 자리가 아니다. 팬과 아이돌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존재지. 나는 지금 쓰잘데기 없이 가까워져 있을 뿐이다. 사치는... 이쯤 하면 충분히 부렸어. 끙, 하고 짐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남은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의료 텐트 쪽으로 두어걸음 걷다가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그거, 쓰고 나서 그냥 버려."
수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서 다시 걸어간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지만 여전히 이를 악물고 전진한다. 분명 심성 자체는 감사한 일이지만... 나하고는 엮여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때묻지 않은 사람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도시에 살면서 고민이 있고 생각이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피 묻은 놈한테 가까이 둬야 할 이유도 없다. 그게 앞으로도 계속 피를 묻혀갈 놈이라면 더더욱. 부디, 그러지 않도록 누군가가 지켜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