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을 잡응 유우가의 손은 차가웠다. 그보다 신겨주는 거였어?! 신발이야 그럴 수 있다쳐도 양말까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주 어릴 때가 아니고서야 양말을 신겨준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니까... 어쩐지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지켜봤다. 그러다 슬쩍 올려다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쳐서,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응! 에헤헤. 엄청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빨리 열어봐! .....어때? 마음에 들어? 아, 손수건은... 자수는 좀 엉망이긴 하지만."
손수건은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면 좋겠네. 내 선물을 풀어보는 유우가를 보며 어떨까, 어떨라나 하고 살짝 몸을 기울였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서툰 자수 부분을 손으로 더듬던 유우가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에?갑자기??
"응? 응. 뭔데?"
뭘 물어보려고...? 선물에 대한 감상 대신 던져질 질문에 살짝 긴장하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만년필을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있었다. 나는 그런 고급 학용품과는 전혀 연이 없던 사람이니까 말이지.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히 들지만 그냥, 학생이 군것질을 참아가면서 선물한 것을 내가 가치있게 써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손수건, 그렇게 비싸보이지는 않지만 서툴게 자수를 넣은 것이 특별한 그 손수건이 마음에 걸렸다. 크게 걸렸다. 메이사가 어떤 녀석인가? 꼬리에 달린 빨간 리본에 걸맞게 우악스럽고, 아기자기한 손재주와는 연이 없는 녀석 아닌가. 그런 애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가며 자수를 놨다. 내 이름을.
확언하건대, 나는 그런 노력을 할 만한 인간이 아니다.
아니, 더 분명히 말하건대.
“메이사, 너 나 좋아하냐?”
나는 좋아할 만한 인간이 못된다.
어떻게 모르겠냐? 마음에 사람을 들여놓는 게 무척이나 오래 걸리는 메이사가 나를 대뜸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 뿐인가.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고, 다른 애한테 열쇠를 줬다고 쿡 찌르질 않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하잖아. 모모카랑 싸웠던 계기는 내가 못 들은 척 해줬지만, 그럴 수 있을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다 들었다.
무엇보다, 한심한 유우가여도 좋다고 했는걸.
그 때는 내가 모른 척 했다. 프리지아의 연장으로 묻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렇지 않더라. 메이사는 그 이전 이후 언제나 꾸준히, 한결같이, 나를 좋아하던 녀석들이 하던 눈빛 그대로 날 바라봤다.
알았다. 다 알고 있었는데, 난 늘 모른 척 해왔다. 그리고 구태여 묻지 않았다.
고작해야 9개월 만난 사람이다. 그 나잇대에는 나같은 반푼이도 다 어른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어른과 어울리며 ‘나는 다른 또래들과는 달라’ 하는 기분에 취할 수도 있고. 마사바에게서 느껴지는 열등감, 또래와 사이가 갈라지는 불안감, 그런 것에서부터 회피하려 주변의 가장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징하게도, 그 눈빛이 바뀌질 않아.
그래서 나는 아주 쓰레기같은 내 본성 그대로 물었다. 네 입으로 다시 말하게 한다. 너는 날 좋아한다고.
...좋다. 한 가지 사실 먼저 짚고 가보도록 하자. 큰 키와 덩치만큼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이 중요한 순간에선 눈치가 모자란 바보라는 것 정도는 레이니・왈츠도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약간 파생해 보자면, 사람의 모든 단점이 그러하듯 다이고의 눈치 또한 때로는 레이니와의 상황에 +가 되고 -가 되기도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라는 사실을 새로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냐고? 이쯤에서 시점을 돌려 레이니에게로 돌아간다면, 다이고가 양팔을 잡아당긴 덕에 다이고에게 바싹 붙은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몸 안을 가득 채우던 열기와 두근거림이 서서히 감정의 바다 저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면서, 레이니는 눈을 질끈 감는다.
“유혹하는 거잖아. 다이고가 안아줬으면 해서.”
돌봐줘야 하는 귀여운 아이가 아니라, 여자로 봐줬으면 하는 거잖아. 눈을 감는다고 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는 않기 때문에, 괜히 다이고의 어깨에 얼굴을 비벼 유카타에 선명한 눈물 자국을 남겨놓는다.
바닥에 누워있는 다이고의 위로 겹쳐진 레이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바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다이고는 레이니를 보던 시선을 올려 천장...이 아니라 미닫이문으로 향했다. 바보라는 말을 들었고, 바보같은 행동은 맞지만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다이고는 이걸 어째야 하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미안해 레이니."
내가 바보 같다는 것도 알고, 네가 뭘 원하는지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 어깨에 느껴지는 레이니의 움직임과 조금 눅눅해지는 옷자락, 다이고는 레이니의 양 팔을 잡았던 손을 움직여 레이니를 꼭 끌어안은 채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인이긴 하지만 동시에 내가 담당하는 아이인데! 감정대로 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만 내 양심이 너무 아파...! 아니, 내 감정대로 행동한다면 직업윤리적으로 양심이 아플 것 같아!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 다이고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끝없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레이니 엄청 좋아하고... 진짜 다 해주고 싶단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무턱대고 하는 건 좋지 않잖아... 그렇지?"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각종 선택지 중에서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보이는 게 있었지만 다이고는 얼른 그 선택지를 지웠다.
긴장하면서 들은 물음은 예상 밖이라고 해야할지, 이제와서?라는 느낌이라고 해야할지... 잠시 눈을 깜빡이며 유우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쩌면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 신발 특유의 딱딱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느낌을 만끽하며, 넓은 현관을 지나 현관문 앞으로 걸어간다. 비록 현관이지만, 어쨌든 집 안이다. 뒷문도 분명히 존재는 하지만, 툇마루로 빠져나가는 것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퇴로는 지금 서 있는 현관과 이어진 현관문이지. 그리고 그 문은 지금 내가 막고 서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면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고."
유우가에게 등을 돌린 채로 현관문을 잠근다.
"누가 있던 없던 간에 집에도 안 들이고."
체인까지 확실하게 걸어둔다. 철컥 차락하는 쇳소리가 멎어 현관에 잠시 정적이 찾아온다.
"...날 깔아뭉갰을 땐 발로 차서 반쯤 죽여놨을걸." 팔을 당기는 일도 없었을거고. 그리고 정적을 깬 조금은 살벌한 말과 함께, 이걸로 당장의 퇴로는 모두 막았다. 유우가는 그야말로 덫에 걸린 생쥐나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라니 이 무슨 무서운 생각이람. 파파가 알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옥상에서 말했었잖아. 난 유우가를 좋아해. 한심하고 미덥지 못한 유우가도 좋아." "유우가도 프리지아도 좋아. 계속 같이 있고 싶어. 마구로가 끝난 지금도, 그리고 중앙에 가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쭈욱."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체인을 걸어둔 현관문에 한 손을 쭉 짚은 채로 말했다. 바깥공기에 직접 닿는 현관문은 아까 전 유우가의 손만큼이나 차가웠다. 아니, 역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은 이후에도. 계속. "...유우가는? 어때?"
어중간한 물음. 나는 겁쟁이라서, 확실하게 말하는 건 무서워.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느릿하게 뒤돌았다. 그리고 유우가를 보며 말했다.
"유우가. 손, 엄청 차갑더라. 조금 녹이고 가. 거실에 히터도 코타츠도 틀어놨어." "감기 걸리면 큰일이잖아. 나도 마구로 끝난 뒤에 고생 좀 했으니까..."
마구로 기념 이후, 그리고 온천 여행 전. 이상하게 레이스 직후에 몸 상태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감기몸살이 나서 꽤 앓았었지. 온천 여행 전에 다 나아서 다행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