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아앗:□ 동접인걸 모르고 이제야봤네 아까워라~~(울망) 가족여행이면 편하지만은 않겠지만 음식이 맛있는건 좋다:) 여행의 백미는 먹거리와 볼거리 아니겠어?(히죽히죽) 연화들 여행 좋다X9 알콩달콩한 사이가 되어서 방방곡곡 다니며 서로 챙겨주는거 상상만 해도 몽글몽글해~~(초롱) 암튼 즐거운시간 보내 연주~☆★
삼도천을 보았다는 말에도 연은 그저 고개만 끄덕여줄뿐이었다. 실제로 유화는 나흘동안 위독한 순간이 있었기에 그때라고 생각하면 믿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곳에서 자신을 보았다니 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저 강제로 끌려와 모시게된 윗사람일테니 원망의 대상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몰골이 엉망이었던 것도,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따로 조치를 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그래, 살겠다고 생각했으면 살아야지 ... "
초면에 그녀에게 보인 태도는 방어적인 부분에서 기인하던 것도 있었다. 가문의 내정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는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의 존재는 너무나도 명확히 보였을 것이고 처음엔 유화 또한 그 범주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청해서 데려온 공녀라곤 하지만 어쨌든 한때 적국이었던 곳에서 온 사람이니까. 허나 그런 범주는 빠르게 흐려지고 연은 화에게 어느정도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미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겨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화도 의식이 돌아왔으니 그동안 뒷전으로 내팽개쳐놨던 일들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 너는 ... "
허나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화의 손길에 일어나려던 연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서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집무실로 만든 방과 이곳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으니 말이다. 햇빛이 강렬한 한낮에도 복도에 암막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 움직였던 그였다. 하지만 유화 자신의 상태가 이렇게 안좋은데도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 네가 빨리 나아야 나도 푹 쉴 수 있을 것이다. "
그래도 정신을 차렸으니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화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 같아보여 연은 화들짝 놀라며 화의 어깨를 살짝 짚어 누르려했다. 답답해서 앉아있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나흘을 누워있던 사람인데다 아직 몸의 상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정상적인 거동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연은 화가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하고선 말했다.
" 다 나을때까진 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안된다. 애당초 그런 상태로 어딜 가려는 것이냐? "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런 부분에선 무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기에 연은 짐짓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화에게 말하고선 옆에 앉아 화의 손을 살며시 잡으려하며 말했다.
으앙 너무 늦었지!! 미안해!! (머리박) 여행 다녀와서 밀린 일들도 처리하고 하다보니 너무 바빴지 뭐야 ... 거기에 오랜만에 쓰려니 손에 잘 안잡히는 느낌이라 주말 내내 고민하면서 썼다 ... 오래 걸린 것치곤 퀄리티가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예쁘게 봐주면 좋겠어! >< 일주일 잘 보냈을까? 유화주도 바쁜 느낌이라서 항상 걱정된단 말이지 ... 혐생은 고달파 (,_,
생각해보니 유화는 저택에 와서 화장을 조금이라도 했을까? 예전에 연이랑 외출했을때 말곤 안했을 것 같기도 하고. 연이랑 화가 좀 더 가까워져서 예쁜 옷을 잔뜩 입게 되었으면 좋겠는걸~~
답레는 천천히 줘도 좋으니까 항상 현생이 먼저야!! 이번엔 내가 너무 늦어버리기도 했고 ... (,_,
유화의 화장이라니 연이가 곱씹어보게 될 정도로 예뻐지는거 아닌가 몰라~~ 안했을때도 예쁘겠지만 화장은 더 돋보이게 해줄테니까 :3 헉 유화가 직접 지어준 옷이려나 ... 연이는 대놓고 선물 해주기 힘들어서 고민 좀 하겠네 (긁적) 어떻게 할지 지금부터 열심히 고민해보게쒀!
어쩌면 이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도 얼굴에 놀란 빛이 스쳐도 애처롭고 위태롭게만 보이는지? 못 쉰 티가 역력한 게 보여서인지 실은 마음이 여리고 순한 사람임을 깨달아서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저주에 심신을 갉아먹히고 있을 게 뻔해서인지 셋 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지금보다는 나아졌으면, 삶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에게는 유일무의할 희망을, 처음부터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할 정도로, 내가 독하고 기만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이 언젠가 밝혀질지라도, 그게 살아갈 의욕을 앗아가는 마지막 한방울이 되진 않도록
몽롱한 정신에서 새어나가는 말이었으나 아주 정신을 놓은 결과물은 아니었다. 무릇 윗전이 잘못되면 아랫것들에게는 더 큰 화가 미치는 법. 그러니 이 정도는 아랫것이라면 으레 입에 올릴 만한 말이리라. 그렇지 않아 어색하다 해도 이 사람은 더는 무리해선 안 되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그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것이었다. 하여 되는 대로 붙들었건만 그는 도리어 유화가 나아야 쉴 수 있겠단다.
유화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야 주객전도다. 어떻게든 그가 쉬게 해야 했다. 시녀 처소로 가면., 거기까진 못하더라도 이 방을 나서면 . .. 아니, 암만 못해도 이 침상만 비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비스듬히 돌린 몸을 팔로 막 지탱할 찰나, 그가 제지하고 들었다. 가뜩이나 힘이 안 들어가던 팔이 더 후들거렸다.
"... 도련님께서.. , 몸을 누이셔야 할.. . 자리가 아니옵니까.. ..."
나름 우겨 봤으나 노기 섞인 음성에 기운이 쭉 빠졌다. 어깨에 닿은 사뭇 조심스러운 손길에 온기가 도는 건 그나마 상태가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방증일지? 아직 나쁘지 않을 때 몸조리를 해야 할 텐데. 그래서 뻗대 봤으나 손에 감기는 포근함에 사지가 풀리고 말았다. 그걸 의식했을 땐 도로 침상에 늘어진 뒤였다. 그대로 정신까지 놓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강녕해야 자신도 산다는 말에 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죽는 사람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을 지나고서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빈말일지라도 그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갔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하는 유화의 어깨를 살며시 눌러서 누워있게한 연은 화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내가 머무는 방은 신경쓰지 말거라.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유화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가 처소를 옮기고싶다고하면 한 시진도 안되어서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의 방이 꾸며질 것이다. 거기에 암살 시도가 한번 들어온 이상 계속해서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도 위험한 일이기에 계속해서 방이 옮겨지고 있었다. 원래 쓰던 방에 유화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옮기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기에 경비만 더 철저하게 세우고 있었다.
" 정 걱정되면 얼른 나아서 네가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
여전히 자신에 대한 걱정만 하는 유화에게 너그러운 목소리로 한마디한 그는 범인을 찾았냐는 말에 방금의 그 부드러운 태도는 없어지고 잠깐동안 경직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환자 앞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지 헛기침을 두어번하고선 답했다.
" 잡아서 경부(警部)에 넘겼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이젠 정말 가야할 시간이었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몸조리 잘하라는 말과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자신이 머물던 방이 아닌 저택의 지하실로 향하며 어느새 따라붙은 병사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며 지하실의 어둠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좋은 점심!! 어젠 새벽이라 쓰고 잠들었지 뭐야~ 막레라서 좀 짧은 느낌이 있네 :3 유화가 말끔히 나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부에 넘겼다곤했지만 사실 지하실에 아직도 가둬놨다는 후문이 ... (긁적) 유화가 의식이 없던 나흘 간의 일은 독백으로 짬짬히 찌고 있으니까 기다려줘! >:3
와아 주말이 끝나간다 ... (슬픔) 유화주 좋은 주말 보냈을까?! 후후 비장의 대사가 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해주법을 유화가 알고 있었다는걸 안다면 어떤 반응일까 ... 궁금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을 알려면 결국 두 사람은 알콩달콩해져야하기 때문에 ... (엄지척) 무리가 안되게 천천히 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헉 본가에 소환되는 에피소드라 재밌을 것 같은걸!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연이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해서 ... 괜찮을까!
목정 가의 삼남이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은 최대한 입단속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전반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실 목정가 정도의 귀족 가문에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긴했지만 가문의 경호 수준이 생각보다 미흡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부의 적이 벌인 일이긴 했지만 애초에 최근 동향이 수상하다는 것을 다른 가문에서도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으니 목정 가문에서 몰랐다는 사실은 옹호 받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니 가문의 직계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문에선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 아버지께서 부르신단 말입니까? "
그리고 암살의 대상자였던 연은 한밤중에 자신의 방에 앉아서 서신을 가져온 집사를 바라보고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주를 받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저택으로 쫓겨나듯 옮겨온 그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애초에 생활 패턴 자체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 그가 찾아가봤자 가족들은 대부분 잘 시간이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어머니나 형제들은 가끔 그를 보러 왔었지만 아버지는 정말 큰 일이 아니라면 그를 부르는 일이 없었다. 물론 연도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랫동안 보지 않았으니 불편하다고 생각되어 그런 표정일뿐.
" ... 화는 왜 데려오라는 것인지 아십니까. " " 저는 그저 아들에게 서신을 전달 받았을뿐입니다. 제가 본가에서 받아온 것도 아닌지라 주인님의 의중은 ... "
단순히 그의 아버지가 부르는 것이라면 가문에 일이 있다고 여길 것이고 그렇다면 적혀있는 날짜 전날에 본가로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아버지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 한들 본가로 불러들이는 것은 자신이 마땅히 참여해야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서신엔 유화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반드시 같이 오라는 말까지 쓰여있었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물론 본가에서도 전부 보고 받고 있겠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하던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서신은 좀 더 이질적이었다.
"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길 빌어야겠습니다. "
그 사건 이후로 몸을 회복한 그녀를 연은 부쩍 가깝게 대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연을 보필하기 위해 데려온 공녀였지만 그는 다른 이들보다 곱절로 화를 찾곤 했다. 사실 독살을 막아준 은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택의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이상한 일인 것도 사실이었다. 평소엔 노집사 이외에는 그가 저렇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 저택엔 없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연의 행보는 본가에 그대로 보고 되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 가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 화를 불러주시겠습니까? "
연은 집사에게 화를 호출한 뒤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온후한 아버지지만 목정 가의 가주가 되었다는 것은 그 온후함 뒤에 숨겨진 다른 면모가 분명 있다는 것이고 연은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의 지시로 살뜰히 보살펴졌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기에 식사와 수면도 꼬박꼬박 하면서 유화의 건강은 이 저택에 처음 왔을 때보다도 나아져 있었다. 다시 그를 시중 들기 시작한 이후의, 얼핏 사무적이지만 소소하게 감도는 부드러운 기류도 마음 놓이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이 저택 사용인들은 말해 왔으나 이따금 비치는 엷은 미소는, 무표정에 가까울지언정 그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임을 드러내 주었다. 처음 봤을 때만해도 곱디곱고 수려한 눈에 박힌 핏물 같던 붉은 눈동자는 이제는 어느 집에서나 꺼뜨리지 않도록 지켜 내야 하는 불씨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드는, 그 사람을 속이고 있으면서도, 그가 완전히 건강해질 수는 없고 그게 저주 때문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껴 버리는, 살아남아 다행이라는 포근함. 당연히 일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식사 준비를 전담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정 걱정되면 얼른 나아서 네가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식재료, 물, 양념장 따위를 하나하나 검식해 가며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기존에 그 일을 담당하던 사용인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불안했던 탓이다. 중독됐을 당시의 고통이 아직 생생하거니와 다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그가 또 무리하지 않을지 두려웠으나, 은수저로 검출되지 않는 독도 있다는 걸 똑똑히 확인한 이상 다른 수가 없었으니. 그런 감정과 책임감에 눈이 가려져 간과해 버리고 만 부분이 있었다.
-" 잘나셨어, 정말. 지 혼자 도련님 모시나? "
-" 우린 언제 독 탈지 모른다 이거지? "
-" 야, 야, 듣겠다! 쟤가 도련님께 이르면 우리만 경 쳐! "
기존에 식사 준비를 맡았던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점. 들으라는 듯한 쑥덕거림이 끊이질 않는 건, 유화가 그 점을 간과해 버린 결과다. 소리를 한껏 낮춘 건, 이쪽에서 따지면 뒷말한 적 없다고 발뺌하기 위함이겠지. 자업자득이라고는 하나 참아넘길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유화는 나물을 무치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사용인들은 시치미를 뗐다. "뭐? 뜬금없이 뭔 생각?"
"소인이 도련님께 고하면 여러분들을 경치게 할 수 있으리고 생각하시냐 여쭈었습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 근처에서 그런 말씀 나누시는 건 화를 자초하는 짓 아닙니까? 제가 도련님께 여러분을 험담하길 바라십니까?"
-" ...... "
"아니라면 그만둬 주십시오. 제가 이제까지 주제넘게 나선 점은... 잘못했습니다. 도련님의 진지 준비를 어찌 할지 가르침을 주시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러고서 사용인들의 눈을 하나하나 쏘아보는데, 부엌 문간에서 노집사의 부름이 들렸다. 유화와 나머지 사용인들이 일제히 노집사를 향해 고개 숙이자, 노집사는 인사는 됐다며 유화에게 도련님께서 급히 찾으신다고 전했다. 이 집안의 일을 뭐든 꿰고 있는 것 같은 여느 때의 태도와는 달리 심상찮은 기색이었다. 뭔가 일이 터졌구나. 유화는 급히 그의 처소로 향해서는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서신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최근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한 서신은 내용 자체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다. 내부적으로 논의할 것이 있으니 쓰여있는 날짜에 본가로 오라는 내용과 함께 아라에서 데려온 공녀까지 같이 오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앞의 내용이야 이따금 있던 일이었으니 상관 없었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굳이 공녀를 함께 데려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동안 화에 대해서 신경 하나 안쓰던 가문에서 갑자기 그녀를 콕 찝어서 얘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부분이었다.
" 마땅한 정보가 없으니 대처가 힘들군 ... "
본가에서도 저택의 정보를 잘 알고 있듯이 저택에서도 본가쪽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인원들이 있었다. 마치 스파이 같아 보이지만 어차피 같은 가문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에게서도 적당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불러서 논의할 정도의 일이라면 적어도 본가 내부에서는 어떻게든 그 소문이 돌았을텐데 이번엔 정말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 어서오거라. "
최근에 외적으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쭉 나열해보았지만 자신을 부를 일이 없다는 사실만 추가될 뿐이었다. 결국 논의는 허울뿐이고 실제 목적은 화를 데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명령이 있었나? 그랬다면 자신도 동시에 알았을 것이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생각 속에서 그를 꺼내준 것은 문이 열리며 들려온 목소리였다. 최근 연이 가까이 지내고 있는 저택의 시종이자 아라에서 넘어온 공녀, 서신에 적힌 이름의 주인을 바라본 연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 내일 밤 중으로 본가로 떠나야하니 채비하거라. "
서신에 적힌 날짜는 이틀 뒤였지만 낮엔 움직이지 못하는 연이었으니 전날 밤에 움직여서 본가에 미리 가있다가 낮에 가족들을 만나는 형식이었다. 그가 참여하는 회의는 특별히 햇빛이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제작된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화의 얼굴을 보고 그에게서 나타났던 반가움은 금세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목정 가의 가주는 겉으로 보여주는 온후함 뒤에 누구보다 냉정함을 갖고 있는 냉혈한이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고 설령 그것에 자식들이 필요할지라도 가차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가문의 이익을 따지게 된다면 그런 것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 ... 입고갈 옷은 따로 집사가 마련해줄 것이다. 그러니 옷가지는 챙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
화가 입고 있는 옷이 저택의 시녀복이라는 것을 알아챈 연은 집사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시하고선 화에겐 나가도 좋다는 손짓을 보냈다. 대체 어떤 의도로 자신과 화를 부르는 것일까. 분명 일거리가 눈 앞에 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느라 밤을 지새울듯 싶었다.
으악 주말 끝났다!! (사망) 후후 유화가 좀 더 당돌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이전엔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텐데 이젠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 픽크루도 진짜 이쁘다~~ 나중엔 AU 같은걸로 현대 배경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걸 보니 해보고 싶어졌어~~ 하 유화가 너무 예쁘니까 우리 연이가 상대적으로 티가 안나는구나 ... 분발해라 목정연!
노집사에게서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나 보다. 아주 잠깐 은은한 웃음기가 스치기 무섭게 그가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그보다 수심에 찬 얼굴에 가까워졌으니. 몸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일지?
그런데 용건은 간단했다. 내일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가도록 채비하라. 가주家主의 셋째 아들이 종가에 가는 건 하등 특이할 것 없는 일일 게다. 유화도 동행하는 게 뜻밖이라면 뜻밖이지만 시중 들 시녀 몇이 딸려 가는 것 역시 대수로울 것 없다. 하지만 그는 옷가지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 주면서도, 나가도 좋다고 손짓하고서도, 계속 고심하는 눈치다. 일거리도 붙잡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일까?
선뜻 발을 못 떼다가 그가 아직 식전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고민거리가 무엇이든 영양 섭취를 하고서 생각하는 게 수월하지 않을지?
"진짓상을 준비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물러나 도로 주방으로 향하니, 좀 전에 험담을 했던 사용인들이 여전히 흰 눈으로 본다. 저들로서는 당연지사. 유화는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사용인들은 자기들끼리 소리 죽여 수군거린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감정이 있을 테니 대번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줄 리는 만무하다. 독살 미수 사건이 유화에게 명줄 끊길 뻔한 사달이 아니라, 그의 눈에 들 수 있었던 행운이라고 여기고들 있다면, 검식을 넘기는 것도 썩 마뜩지는 않으리라. 그래도 이건 양보 못 하겠다. 양보했다간 어디에서 일하든 마음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자기네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들이 믿고 있다면, 이대로 밀어 붙여도 나쁠 건 없을 거다. 저들도 뻗댈 구실은 마땅찮을 테니
-" 맘대로 해. 언젠 안 그랬어? "
아니꼬운 티를 감추지 못한 답. 그래도 됐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수습한 뒤 식사를 준비해 돌아가 보니, 그는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다. 유화는 아직 김이 가시지 않은 음식들을 탁자에 차려 놓은 뒤, 나직이 그를 불렀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시옵니까?"
그가 대답해 줄지, 침묵할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그가 편한 대로 한다면 족하리라. 다만.. ..
"조금이라도 드시옵소서. 끼니를 거르시오면 머리가 더 어지러우실 것이옵니다. 검식은 마쳤사옵니다."
그는 화의 말에 식사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중이었기에 웬만해선 식사 시간을 헷갈리거나 하는 일은 잘 없는 일인데 오늘따라 그랬다는 것은 고작 서신 하나가 그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연은 본가에서 떨어져나오며 좀 더 멀리서 그의 가문을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단순히 적자에 첫째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가주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단순하게 가문을 다스리기엔 그의 가문은 너무나도 커졌고 그 자리가 갖는 책임감과 주는 압박감은 남다른 것이었다.
" 딱히 대단한건 아니다만 ... "
그 사건이 있고 나서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철저한 검문을 거치게 되었다. 그것은 식사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가 먹을 음식들은 사전에 검식을 해야했고 그 담당은 오롯이 화의 몫인듯 했다. 연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선 집사에게 항의도 해보았으나 다른 일에 대해선 최대한 연의 의견을 존중하던 집사도 이번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편애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고달플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연은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함부로 내색하거나 그러진 않고 있었다.
" 본가에서 날 부르는 일이야 흔치는 않아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네 이름까지 거론되었다는 것이 꽤 신경 쓰이는구나. "
굳이 화의 이름을 서신에서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말을 허투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물어도 똑같은 답을 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인데 화를 자신의 저택에 보내놓고 한번도 신경을 쓰지 않다가 이제 와서 신경을 쓰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 뭐, 계속해서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 문제니. "
연은 옅은 미소와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식사를 했어야하는 시간을 넘겼으니 시장기가 돌고 있었고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본가로 향할 날이 되었다. 본가와 저택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긴 했지만 최근 그의 주변의 경계가 삼엄한 것처럼 호위들도 빠르게 구성되고 있었다. 결국 평소와 달리 저택은 한낮부터 분주한 분위기였고 그에 따라 저택의 주인인 연도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눈을 뜨게 되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실내복이나 외출복 말고 정말 제대로 차려입은 그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를 매일 같이 보는 시종들 또한 잠깐 넋이 나갈 정도였으니 그 분위기가 대단했다.
" 너도 여기 타거라. "
그는 가마에 타기 전에 화쪽을 바라보고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놀란 눈치였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요즘 얌전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주인이 어떤 성격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도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약속 시간이야 내일 오후였지만 당장 가서 집 안 사람들을 만나야할 수도 있는데 본가까지 걸어온 상태의 화를 보여주기엔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별히 집사에게 당부를 하여 화를 좀 더 치장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잠이 안 왔다. 창을 등지고 돌아누워도 마찬가지다. 유화는 한숨을 내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가는 건 여느 시종이 따르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길 정도면, 그를 독살하려는 시도를 미수에 그치게 해 줬노라 덕담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다. 과연 무슨 용건일지? 자기네 가문이 우리 유(柳) 가를 멸문의 위기로 몰고 간 걸 알아서 찝찝해졌다? 아니, 목정 가에서 멸문시킨 가문이 한둘이 아니라 그부터가 밝혔거늘, 가주가 우리 가문의 사정을 의식할 리는 없다. 혹은 유 가의 비술에 대해 알게 됐다? 만에 하나 그런 사정이라면 어찌해야 할지? 고신拷訊이라도 당했다간 배겨 낼 재간이 없을 터인데. 그렇다고 지금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심란함만 더해진다. 결국 유화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마루로 나가 아침 노을을 보고야 말았다.
유화가 잠을 다소 설친 것과는 별개로,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향할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한낮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고, 날렵해 보이는 호위들이 총검을 착용한 채 줄지어 있었다. 다소 격식을 갖춘 외출인 만큼 유화도 평소보다 훨씬 치장해야 했다. 국화 무늬를 수놓은 분홍색 창옷[氅衣] 위에 노란 옷섶을 보랏빛 꽃으로 장식한 연분홍빛 감견(坎肩, 조끼)을 덧입은 뒤, 다른 시녀의 도움으로 정수리에 얹은 가발에다 주먹만 한 장미꽃 장식을 둘 달았다. 그리고 창옷과 같은 색의 구슬이 늘어진 귀걸이를 걸고, 화장 역시 창옷과 비슷한 색감으로 마무리한 다음 하얀 깃털 무늬가 장식된 연봉의를 걸쳤다.
채비를 마치고 마차가 준비된 곳으로 나갔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느 때라면 완전히 어둑해진 뒤에야 활동하는 그가 이미 마차에 오른 뒤라 우선 놀라고, 그 차림새에 또 다시 놀랐다. 평상복과도, 햇빛의 탑을 보러 갔을 때의 외출복과도 다른 분위기로 격식 있게 꾸민 모습이 수려하면서도 기품 있다 못해, 바라볼수록 일종의 황홀경을 주는 듯했다. 너무 넋 놓은 거 아닌가? 두근거림을 가라앉혀 보려는 듯 유화는 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나름의 노력은 그의 한마디로 무색해졌다.
"소인도 말이옵니까?"
저도 모르게 곁눈질을 하니 사용인들도 놀란 눈치다. 당연하다. 주인이 시녀와 한 가마에 타겠노라 한 것이니. 사람들 눈도 있고, 종가로 가는 길인데 괜찮을지 저어되었지만, 지체하는 게 오히려 그나 사용인들에게 폐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있었다. 가마에 오르고 보니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어쩌면 좋을지? 유화는 있는 힘껏 몸을 움츠렸다. 눈 둘 곳이 마땅찮아 눈도 꾹 감았다.
화가 조심스럽게 가마에 오르자 행렬이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마차를 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이만한 행렬을 이끌고 수도에서 마차를 끌고 간다는 것은 안그래도 복잡한 수도의 통행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거기에 본가와의 거리는 생각보다 걸어갈만한 거리였으니 마차보단 가마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가마를 들고 가는 이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지만. 거기에 가마는 당연하게도 마차보다 작았고 자연스럽게 화와 연은 조금 붙어있을 수 밖엔 없었다.
" 불편해도 좀만 참거라. "
아무리 본가가 가깝다고하더라도 제국의 수도는 크기가 방대했기에 한 시진은 족히 걸어야하는 거리였다. 그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있어야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 될 것이라 미리 당부하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가마는 생각보다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는데 연은 흔들림을 보정해주는 기구가 따로 설치되어있는 가마라는 것을 집사에게서 미리 들은 상태였지만 예전에 타고 다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승차감에 신기한듯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 걱정하지 말거라. 본가에서도 별 일은 없을 것이니. 대신 그곳에선 항상 나와 같이 있어야한다. "
혹여 누군가 들을까 옆에 앉은 화에게 작게 속삭인 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니 눈이 피로했던 탓이다. 그렇게 있으니 어느새 가마는 목정 가의 본가 앞에 멈추어섰다. 가마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뜬 그는 도착했다며 가마의 문을 여는 가마꾼의 말에 천천히 가마에서 내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본가는 연이 머무는 저택이 왜 별채 정도로 취급되는지를 여실히 알려줄 정도였다.
" 신분을 밝혀라! " " 목정 가의 삼남이신 목정 연님의 행차이다! 문을 열어라!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때쯤 출발했으니 행렬이 막 도착했을땐 이미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달이 그 자리를 채우려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니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경비병들이 예의주시하며 지키고 있었으니 이러한 검문은 당연한 절차였다. 사람이 십수명은 한번에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대문 옆의 쪽문을 열고 경비병들이 나와 신분 확인을 하니 어떻게 해도 열 수가 없을 것 같던 거대한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도착했다는 사실이 재빠르게 전달 되었는지 그가 대문을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사내 하나와 수많은 시종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서있었다.
"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 멀리서 오는 것도 아닌데 항상 너무 거창합니다. "
그를 맞이한 것은 본가의 집사, 동시에 연의 저택에 있는 집사의 아들인 사람이었다. 연이 저택을 떠나올때 아버지에게 집사의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연에겐 삼촌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을 따라온 시종들과 본가에서 그를 맞이하려 나온 시종들이 합쳐져 어느새 거대한 행렬이 되어있었고 그 맨 앞에서 연은 집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화는 자신의 뒤에서 바로 따라오라고 귀띔을 해주고선 말이다. 이미 밤이 되어버렸고 아버지와의 약속은 내일 오후였으니 일단 본가에 있는 그의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사실상 독립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본가에 위치한 그의 방도 다른 방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 네가 쓸 곳은 저 곳이다. "
본디 연을 시중 들어야하는 시종 하나가 남아있어야 했지만 이번엔 화도 따라온터라 그는 다른 이들은 모두 물러나라고 한 뒤에 화에게 자신의 방에 딸린 다른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사용할 방은 저택에서 사용하는 방보다 한참은 더 넓었고 마치 집처럼 딸려있는 방도 몇개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중 하나를 화에게 쓰라고 한 것이었는데, 그 방마저 규모만 작을뿐 깔끔하게 청소 되어있는데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연은 침대에 걸터앉아 답답했던 겉옷을 벗어버리고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좋아하는 곳도 아닌데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언젠가부터 그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마에 탄 유화가 불편할 걸 걱정해 줄 줄이야. 하지만 말은 채 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렸다. 그의 바로 옆에 타서, 어둑한 가운데에도 희디 흰 비단실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머리칼이, 화장에 가려져 퀭함보다 유려한 눈매과 고운 빛만 돋보이는 눈이, 윤곽이 조각처럼 매끄러우면서도 낯빛 역시 조각처럼 창백한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워서, 경탄과 애련함에 동요해 버렸다는 소릴 어떻게 당사자 면전에서 하겠는가. 그저 제 얼굴이 보기 민망하게 홧홧하리라 짐작하며 고개 숙일 따름이었다.
그때 숨결 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마차 안인데도 행여 누가 들을까 의식했을까. 분명 안심시켜 주려는 말이건만 짠했다. 정말로 별일 없으리라 생각한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므로. 줄곧 불안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같이 다녀야 한다 신신당부하는 것이고. 아무 소리 않은 척 눈 감는 그가 고단해 보였다. 그렇잖아도 푹 자지 못 하는 사람이 일찍 거동했으니 실제로도 고단할 것이고. 하여 유화는 제가 입은 연봉의를 벗어 그에게 둘렀다. 목이며 등쪽에 찬 공기가 들지 않게끔 틈을 메꾸면서. 얕지만 규칙적인 숨소리가 이어질수록, 좁은 공간이 유발하는 긴장감도 풀려 가는 듯했다.
그런 끝에 마차는 멈추었고, 유화는 그에게서 연봉의를 거둔 뒤 뒤따라 내렸다. 그렇게 목도한 목정 가의 본가는 경악스러울 만큼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아니, 누가 대궐이라 소개했대도 유화로서는 위화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하남(河南)의 왕궁보다 훨씬 웅장한 저택이었으니. 지평선에 가까운 아득한 데에나 산이 까맣게 보일 뿐. 주변은 어딜 둘러봐도 하나하나가 웬만한 민가보다 더 큰 집채 아니면 제국의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 초록빛이 만발한 뜰이었다. 그의 저택에서 봤던 붉은 동백도 도처에 널렸고, 간간이 붉은 동백과 모양이 꼭 닮은 하얀 꽃도 보였다. 제국과 아라의 국력 차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만 최고 가문이라도 그래도 귀족 중 하나일진대, 이 정도로 위세가 어마어마할 줄은. 이 모든 게 우리 가문과 조국을 핍박한 대가일지니 분해야 마땅하건만 도리어 기가 꺾였다. 그 통에 지극히 공순한 태도로 그를 맞이하는 본가의 사용인들을 보면서도 남들 따라 고개를 숙였을 뿐 얼은 나가 있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건, 바로 뒤따라 오라는 그의 귀띔 덕분이었다. 이 복작거리는 와중에도 유화에게 신경을 쏟는 것도 놓치지 않은 것은 대관절 무엇을 염려하는 탓인지. 유화 역시 바짝 긴장한 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곁방도 여럿 딸린, 이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할 법한 그의 방에 이르렀을 땐, 한 일이 없는데도 기운이 쭉 빠졌다. 이곳에서도 다른 사용인을 내보낼지언정 화는 곁방에 머물라 지시한 것은,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우려한 탓일지. 그가 벗은 겉옷을 정돈해 놓으려니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저택에서도 심신이 편안한 날이 흔치는 않았다만 이곳은 더욱 불편한 눈치다. 피로를 푸는 데 좋다는 지압이라도 하면 좀이나마 긴장을 풀지? 아니, 그보다.. .. 유화는 그 방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가 식사할 시간이 다 됐다.
"진지를 못 드셨잖사옵니까. 준비해 달라 전하겠사옵니다."
그의 저택에서라면 고하고서 바로 주방으로 갔을 것이나, 이번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오는 곳인 데다 워낙 으리으리해 주방을 찾기까지 한참일 것도 문제였으나, 본가의 사용인들이 어련히 알아서 준비할까 하는 방심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 건, 몇 번이고 제 곁에 붙어 있으랬던 그의 신신당부였다. 하여 유화는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갱~☆신~★X9 주말은 언제나 순삭이네(눈물) 요즘 계속 바쁜거 같은데 주말엔 좀 쉬었어?:) 별건 아니고 본가 가는길의 유화옷차림으로 생각해둔 짤 하나 올리고 가~:3c >>386 올리면서 같이 올린다는걸 그만 깜박했지 뭐야(데헷) 글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이미지로 상상이 잘되면 좋겠다;> 암튼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붕붕)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라 전하겠다는 화의 말에 연은 손을 내저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본가의 시종들은 연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하던 사람들도 있을만큼 노련한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연의 평소 생활 습관에 대한 것도 저택에서 전부 다 알아왔을테고 지금쯤이면 식사는 진즉에 준비되어 방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여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도 좋다는 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저택의 식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진수성찬이 연의 앞에 빠르게 차려지기 시작했다.
"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 " 알겠습니다. "
몇명이나 이 상을 차리기 위해 왔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가져온 음식들을 모두 내어놓고서 사라진 하녀들 뒤로 집사가 문을 나가기 전에 나지막히 얘기했고 연은 그를 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분명 혼자서 먹기엔 과하게 많은 양이었지만 다른 국가의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다는 목정 가문의 위세를 상징하는듯한 상차림이었다. 근데 어째서인지 준비된 식기는 한 명의 것이 아닌 두 명의 것이었고 방금 지은듯 김이 모락모락나고 있는 쌀밥 또한 두 개가 놓여있었다.
" 네 몫의 식사도 준비해달라고 했다. "
그렇다고 겸상까지 하는 것은 분명 용납받기 힘든 일이었지만 유화는 어쨌든간에 연의 시종이었고 그녀와 어떤 것을 하던 연의 마음이었으니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족 정도는 되어야할듯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뻔한 것이었고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연이 예상하지 못할리도 없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선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 검식 같은 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있던 곳보다 몇배, 아니 몇십배는 경계가 삼엄한 곳이다. 그리고 음식을 먹어보는 사람들도 따로 있으니 말이다. "
안전으로 따지면 연이 머무는 저택보다야 본가쪽이 훨씬 형편이 좋았다. 그렇기에 그가 독살 당할 뻔했을때 본가에서도 여러 논의가 오갔었지만 당사자인 연이 극구 거절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내버렸었다. 그만큼 그가 이곳에 머물기 싫어하는 이유는 있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단지 변해버린 모습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을뿐이다. 화가 식사를 하는지 중간중간 바라보며 천천히 식사를 마친 연은 수저를 내려놓고서 흐음, 하는 작은 한숨과 함께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었다.
얍얍 갱신!! 월요일을 알리는 갱신이 되어버렸자나 ... (눈물) 나는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쁘다 ... 그래도 답레는 어떻게든 짬짬이 잇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야! >< 하 연이 옆에서 유화를 떨어트려 놓는다니 안된다 안돼 ... 곧 밝혀질 내용이긴 하지만 유화가 서신에 따로 이름이 적힐 정도였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야! 연이도 그래서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고 ... 나쁜 짓을 당하진 않겠지만 작은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달까 :3
올려준 옷은 잘 봤어!! 후후 유화랑 상당히 잘 어울리는 옷이네. 저기서 좀 더 고급진 옷을 입혀주고 싶지만 좀만 더 기다려야겠네. 혹시 일상 이어가다가 모르는거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기야!! 목정 가의 대한 설정은 내가 다 갖고 있는거니까 말이야 :3 ...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손을 들어 말렸다. 본가의 사용인들이 준비해 줄 거라는 의미일지? 그럼 그때까지 지압이라도 하고 있어 볼까. 하여 그의 의사를 물으려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더니 식사를 준비했노라 고해 왔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자마자 날렵하면서도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손쉬운 일이라는 듯이 척척-누구라도 저쯤은 할 수 있어 보이도록 척척 해내는 건 정말로 숙련된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의 식사를 차려 놓았다. 그처럼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동작도 놀라웠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건 산해진미를 수십 첩은 차렸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수라상 이상 아닌가. 그도 모자라 밥이 한 그릇 더 있다. 식기도 하나씩 더... 어째서인지? 말문이 막혀 눈만 깜박이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이 떨어졌다.
"소인의 식사도 말이옵니까?"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다. 검식용이 아니라 정녕 겸상을 하겠단 말인가? 목정 가의 직계가, 아라 출신 공녀와? 앉으라는 듯 그가 자기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키는데도 선뜻 몸이 안 움직여졌다. 지금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얼떨하게 서 있는데, 그가 태연스레 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흠칫 손을 뻗었으나, 검식도 필요 없단다. 검식하는 사람들이 아예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기운이 쭉 빠져 손을 거둔 채 주춤거리다 가까스로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의중이 무엇일지? 제국에서 손 꼽히는 가문에서 나고 자란 이다. 아무리 분가를 했기로서니 사용인을 격의 없게 대하는 태도가 무슨 뒷말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러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유화는 아직도 김이 가시지 않은 하얀 쌀밥을 내려다보다 숨을 골랐다.
그의 저택에서도 이런 처신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본가까지 와서는 보란듯이 한다. 이런 처신이 그에게 이로울 리 만무한데도. 그런즉, 그 자신을 위한 처신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 그때, 불현듯 그가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오기 전까지 줄곧 유화의 일을 걱정해 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혹 소인을 감싸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가주의 아들이 이토록 각별히 대하는 사용인이니 섣불리 건드리거나 접근하지 말라고, 종가宗家의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는 심산 아닌지? 그리 추측하면서도 아리송했다. 사용인들한테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의 가족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므로.
의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상 이상의 대저택이자, 그가 원하는 바에 맞춰 시중들 수 있는 사용인들, 이미 검식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을 만큼 철두철미한 보안. 이런 종가에 머물지 않고 그가 따로 나와 살게 된 것은 어째서인지? 저주 때문에 밤에만 생활할 수 있는 몸임을 감안해도 이상하다. 이만한 규모의 대저택이면 별채에서 따로 지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을 테니.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다 보니, 그가 식사를 마치도록 유화는 수저를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가 또다시 상념에 잠길 즈음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그렇게 가다듬어진 의문은 하나. 그의 안전을 고려하면 여기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은가?
"본가로 돌아오시면 이전 같은 불상사가 없을 것이온데, 분가해 지내시는 연유가 있으시온지요?"
으아아아:□ 주말에도 출근했다니 그거 끔찍하잖아X6 고생많았어 연주!! (부둥부둥) 그렇게까지 현생에 갈리는데도 잊지않고 찾아줘서 고마워.. .8ㅁ8(그렁그렁) 유화를 콕 찝어서 데려오라고 한 이유가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곧 밝혀진다니 그때까지 잘 참아보게써:9(불끈) 일단은 연이의 의중만 궁금해서 그거위주로 물었고 얼마쯤은 연이의 의중을 넘겨짚기도 했는데 제대로 본거일지 궁금하다~:3c 목정가에 관한 정보를 다루게되면 모르는거 바로바로 물어볼게X> 고마워~~ 주말에도 일하고 또 월요일이라 고단하겠지만 한주 잘 보내길 바래!!(붕붕)
기껏 유화의 몫까지 식사를 준비해주었건만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은 당황한듯한 기색과 함께 연에게 물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쳐줘도 화는 연의 직속 시녀와 다름이 없었다. 신분이동이 꽤나 자유롭다곤해도 제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니 주인 되는 자가 시녀와 겸상을 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이 걱정할 일이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도 제국에 오기 전엔 나름 아라의 귀족 가문의 영애였을테니 이러한 작태를 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수저를 내려놓은 연은 화를 바라보고선 말했다.
" 그러한 뒷말도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
한낱 시녀가 명을 거절할 수 없을테니 결국 그 화살은 명을 내린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의 입장이 목정 가의 삼남이니 앞에서 대놓고 비난할 사람은 몇명 없겠지만 가문의 입지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누군가에겐 불호령을 들을 수도 있을 정도의 일이기도 했다. 연은 다시금 수저를 쥐려다 이어진 화의 질문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 내일 만남에는 가족 전체가 다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분명 너도 같이 가게 되겠지. "
아버지의 서신에서 화의 이름이 적혀있던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의미였다. 그들의 입장에선 화가 연 대신 독을 먹고 죽을뻔한 것은 당연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연의 저택에서 지금까지 검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방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울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고 당연하게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화를 부른 이유는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 아니고 독살 미수 사건 그 이후의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 물론 주로 얘기하는 것은 아버지와 큰 형님 정도겠지만 ... 결코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
그녀가 아라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있었던 간에 이미 제국에 공녀 신분으로 온 이상 좋은 취급을 받긴 어려웠다. 물론 가끔 좋은 사람을 만나서 나름 괜찮은 삶을 사는 공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곤 했다. 그러한 취급이어야할 공녀가 감히 명문가의 후계와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은 연의 가족들 입장에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 그렇기에 미리 선수를 쳐두는 것이다. 너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고. "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연은 다시금 식사를 시작했다. 애초에 소식을 하는지라 그의 식사는 금방 끝났고 수저를 내려놓고서 입을 닦아낸 그는 내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들려온 화의 목소리에 끊어져버렸고 그는 화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 숨이 막힌다. "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듯 했지만 더 이상 말하기 싫은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향했다. 그는 말하기 싫은게 있으면 자리를 피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더 묻는다면 필시 화를 낼 것이기에 아예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탁상에 앉고나서 종이에 무언가를 쓰려다 이내 유화쪽을 다시금 바라보면서 말했다.
" 식사는 내가 부탁한 것이니 꼭 먹었으면 좋겠구나. "
그렇게 말한 연은 쓰던 것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의 날림체로.
으윽 주말의 끝이라니 말도 안된다 ... 유화주는 주말 잘 보냈을까?! 다행히도 이번주는 수요일에 쉬는 날이 있단 말이지! 후후 ... 푹 쉬는 날이 되면 좋겠다. 나도 그 날은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쉴 생각이니까~~ 핑퐁도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연이의 가족들이 화를 불러온 이유가 밝혀졌다! 물론 아버지의 생각을 연이가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이럴 것이다~ 하는 것이지만 나름 연이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후후 ... 아마 잠도 제대로 못잘것 같은데 화랑 같이 밤을 새는 에피소드도 재밌을 것 같네!!!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도 궁금하고~~
뒷말을 저어하는 유화와 달리 그는 태연했다.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 말은 무심한 듯 유심했다. 체면이 깎이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유화가 신경 쓰일 일은 없게 하겠다는, 선언처럼도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까닭이 있는지? 이 사람이 사별의 아픔을 되새기지는 않게 하고자 살기로 했으나, 난 일개 공녀고 그는 상전이거늘.
그 의문은 한숨에 이은 설명에 풀려 나갔다. 종가宗家의 일원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 유화도 가게 된다는 것. 유화를 데려오라 기별하였고 가족 전체가 모이는 자리에 참석까지 시킨다면, 용건 중에 유화의 일도 있을 것이 자명했다. 시녀, 그것도 공녀 신분의 시녀가 독살을 막았노라 치하하기엔 너무나 거창한 자리. 그런즉 그 자리는 유화를 추궁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컸다. 모르긴 해도, 저가 사경을 헤맬 때 가주의 아들인 그가 몇 날 며칠을 보살펴 줬던 일이 알려진 게 아닐지?
역시나, 그의 예상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좋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유화는 무릎에 얹은 두 손을 모아 쥐었다. 그가 가혹한 운명에 짓눌렸고 실은 타인을 위하고 염려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 그만 보고자 할지라도, 그는 역시, 목정 가의 일원이다. 좋든 싫든 목정 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종가에 이르니 그걸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를 감싸고자 하는 건,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이리라.
"누를 끼쳐 송구하옵니다. 하옵고 고맙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식사를 들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더 들어도 좋을 텐데, 그럼 조금은 기운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만 가득이었다. 이제껏 나지막하고 작게, 원래도 활기찬 음성은 아니다만 그의 저택에 있을 때보다도 힘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가 식사를 마치고도 분위기는 무거웠다. 뭐로든 시름을 덜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다 넌덜머리 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듯한 한마디가 정적을 깨뜨렸다. 이어 그는 더 거론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유화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정확히 어떤 심정인지, 어째서 그렇게 느끼는지 헤아릴 도리는 없으나, 그가 이곳을 갑갑해한다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공연한 것을 물었다. 안들 어떻고 모른들 어떻다고.
무언가를 쓰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착잡해하다 흠칫했다. 돌아볼 줄은 몰랐는데,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느새 온화한 빛을 띤 수척하지만 수려한 얼굴로, 맥없으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식사를 권했다. 그 순간 묘하게도 상상,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를 것의 나래가 펼쳐졌다. 어쩌면 그는, 이런 진수성찬이 아닐지라도, 편히 대할 수 있는 이와 식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그런 시간이 고팠을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런 거라면.. .. 가슴이 찡했다. 묻지 말고 그냥 먹을 것을.
". ..하오시면., 감사히 들겠사옵니다."
그때까지도 밥과 국과 익힌 반찬들은 식지 않았다. 더욱이 하나같이 산해진미였으니, 가족들 생각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희는, 이런 음식 구경도 못 해 봤을 텐데. 나만 호사를 누리는구나. 목이 메는지 잘 안 넘어갔지만, 물을 마셔 가며 넘겼다. 살기 위해 끼니는 거르지 않기로 했거니와 그가 먹길 바란다 했으니.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깜짝 놀랐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사용인들이 들어와 뒷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먹자마자 들어왔다는 건, 내가 먹는 동안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단 걸까? 그의 분부 때문에? 한마디 말도 없이 신속히 치우고 물러가는 사용인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철저히 훈련되어 있구나.
한편 그는 어떨까? 유화는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그에게로 다가섰다. 그가 갑갑해하는 곳임을 자각해서일까. 그의 저택에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어색하다. 그래도 심호흡을 하고 말을 건네 본다.
뒤늦게나마 유화가 수저를 드는 것을 보고서 연은 시선을 돌려 자신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휘적이며 써둔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와 유화가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당장 내일의 일이다. 자신을 제외한 형제들은 모두 혼인을 한 상태이고 여동생도 정혼자가 있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이 차이가 좀 있는 큰 형도 그에겐 여전히 어려운 상대였다. 언제나 듬직한 존재였던만큼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유화가 식사를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어졌고 간간히 들리는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은 유화가 수저를 내려놓자마자 들어온 시종들의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인해 깨졌는데 그마저도 순식간의 일인지라 시종들이 방을 빠져나가자 방금과 같은 정적이 다시금 흐르려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화의 목소리에 의해 멈춰섰다.
" 으음 ... "
제국 자체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긴했지만 제국에 와서 가장 오래 지낸 곳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연이 살고있는 저택이었다. 그리고 제국에 와서 저택을 나와서 바깥에 이렇게 오래 있어본 것도 처음일테니 어쩌면 그 못지않게 그녀 또한 이곳이 불편할지도 모른다는게 연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기에 화의 말을 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있던 붓을 내려놓고서 잠시 고민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 그럼 옆에 앉겠느냐? "
의자를 가져와서 옆에 앉으라고하며 그는 박수를 두어번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 시종이 빠르게 그의 앞에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며 섰다. 연은 그 시종에게 무언갈 가져다달라고 한 뒤에 나가보라 손짓했고 남자는 들어올때와 같은 속도로 빠르게 방을 나가버렸다. 뭘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다른 옅은 미소를 지은 그는 화가 옆에 앉자 유화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이렇게 있으면 마음이 좀 더 편하구나. 마치 내 저택에 있는 느낌이라. "
이곳에선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으니 행동 거지를 더 조심해야하는데다 그의 집처럼 햇빛이 철저하게 막혀있는 구조가 아니라 돌아다니기도 위험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런식으로나마 작게 풀어내려고 유화를 자신의 옆에 앉힌 것이었다. 그는 그러다 유화의 머리를 보고선 머리카락을 만져도 되냐고 아까와 비슷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후 >>400은 나의 것이다! 벌써 400레스라니 빠르다 빨라! 노동절에 쉬지 못한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 나는 푹 쉴 수 있어서 이렇게 늦게까지 깨어있지! 사실 잠을 깊게 못자는 것도 있지만 ... 유화주는 내일 일 끝나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맞아 가주께서 친히 불러다가 심문 비스무리한걸 하는거지! 우리끼리의 이야기에선 보이지 않지만 최근 공녀 출신 후궁이 귀족 사회 전반에 큰 이슈가 되고 있거든. 제국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후궁이 생겨버리면 자칫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황제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서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후후 마자 우리 완전 잘했어~~ (엄지척)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8ㅁ8) 유화주도 나도 현생이 혐생이네 ... 나도 주말이 완전 휴일이 아니라는게 너무 슬픈 일이야 ... 응응 맞아 그때 말해줬던 그 후궁이야! 너무 메인이 되지 않게 조금씩 스쳐지나가듯이 언급해주려고 하고 있어 :3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해도 되는 건 어디까지인가. 그의 등 뒤에 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때마다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어색함.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해주解呪임을 알기에. 당장 주어지는 일이 바쁘면 이런 잡념도 안 드련만. 지금은 너무도 고요하고 적막하여, 그의 저택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단둘이라는 느낌이라 머리를 비우기 힘들다. 더욱이 내일 받을 추궁에 대한 부담도 있음에랴. 피의 저주가 거론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되 해주법을 알고 있는 이상 부담이 안 생기지는 않았다. 분부할 일이 없냐고 물은 것도 다분히는 머릿속이 어지러운 탓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는 쓰던 것을 멈추고 이쪽으로 미소지었다. 보일 듯 말 듯이지만 확실한, 이제는 알아볼 수 있게 된 미소. 그리고 옆에 앉겠냐는 권유. 조금은 마음이 나아진 걸까. 유화는 대답 대신 그의 옆으로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 사이 그가 박수를 쳐 사용인을 부르더니 -고요한 방을 울리기엔 충분했으나 문 밖까지 들릴 만한 소리였는지 모르겠는데 용케도 듣고 들어왔다. 밖에 있으면서 이 안의 사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만큼 시중을 철저히 들고자 함인지, 이쪽을 염탐하기 위함인지까지는 가늠을 못 하겠다.- 지시를 내렸다.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한 것 같은데, 가져다 달라는 게 무엇인지는 유화가 알아듣지 못했다.
어쨌거나 유화가 그의 옆으로 다가앉자 그는 유화의 귓전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다른 데로 새지 않게 하겠다는 듯 잔바람처럼 바로 불어넣는 속삭임. 거기엔 본가를 버거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해 손이나 무릎께에 모을 때, 또 다른 잔바람이 귀에 훅 꽂혔다. 멍해지는 동시에 두근거렸다. 귓가에 닿은 숨결보다 고동이 더 크게 울리는 듯했다. 지위로만 따지면 공녀는 물건이나 다를 바 없으니 제 마음대로 해도 거칠 것 없건만, 굳이 묻는 까닭은 나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봐서일지? 단순히 사별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걸 알면 날 어떻게 볼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유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미燕尾를 풀었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칼이 까만 폭포수를 드리우듯 흘러내렸다. 이런 반응이 엉뚱한 해석을 불러올 수 있음은 안다. 시침侍寢을 들겠노라 청하는 걸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감행한 것은 어째서인가?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각오했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저 한 가지. 공녀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겠다면 나 역시 공녀의 차림새는 그만두겠다는, 그런 막연한 감각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