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검었어야할 머리카락과 눈은 각각 하얗고 붉은 빛을 띄고 있다. 하얗다고 새하얀 것이 아니라 마치 새어버린 것 같은 머리카락은 정돈되지 못한채 흐트러져 있었고 붉은 눈은 빛을 잃어 탁해진채 그저 허공만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창백한 피부와 눈 밑의 그림자는 그의 피폐함을 더더욱 강조하고 있었고 항상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진 이마는 더욱 예민해보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제국 최고의 미(美) 중에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무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키는 큰 편에 속했고 근골도 너무 작지 않은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분위기는 건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느껴지는 고귀한 기품이 그가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듯 하다. [ 178cm / 65kg ]
# 성격 - 남과 대화하는 것을 꺼려하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다. 거기에 매사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편도 적지 않은지라 사용인들의 불평이 나날이 커지는 중이다.
- 사소한 일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며 특히나 공무에 관련된 일이 틀어지면 스트레스로 앓아누울 지경까지 가버린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 기본적인 심성은 나쁘지 않은지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는 일도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삭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자기합리화까지 해버리는 수준.
# 가족관계 아버지 목정 강(木楨 强), 어머니 유 화란(流 花蘭), 3남 1녀 중에 3남. 2명의 형과 1명의 여동생.
# 과거사 목정(木楨)씨 가문은 소유한 어마무시한 넓이의 숲을 이용해서 막대한 자산을 축적함과 동시에 제국의 전통적인 무(武)가 이다. 한창 제국이 팽창할때 남부 방면군의 사령관을 맡아서 남부의 주요 국가였던 아라를 패퇴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의 진격로에 있던 많은 아라 국민들은 전쟁범죄에 노출 되었고 그 전흔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수준이다.
잔혹한 범죄가 황제의 귀에 들어가 그를 만류하기에 이르렀을때 그 행위는 멈추었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법사도 있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마법사는 강력한 저주를 걸었고 그 저주는 목정씨 가문에 대대로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제국의 핵심 귀족이었던 목정씨 가문은 저주를 어떻게든 흘려내는 법을 찾아내었는데, 자식들 중에 한명에게 그 저주를 오롯이 뒤집어쓰게 하는 것이었다. 연은 삼남이었던 탓에 모든 저주를 받아내야하는 입장이 되었고 가문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 호 깊은 수면, 좋은 향, 평화로운 분위기, 티타임, 단 것
# 불호 꿈, 공무, 피, 햇빛, 자극적인 맛
# 기타 - 그가 갖고 있는 가문의 저주는 피를 갈구하고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 본디 가문의 직계들에게 모두 돌아가는 저주였지만 가문의 노력 끝에 직계 한명에게만 몰아줄 수 있게 되었다. 해주는 저주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다. 저주를 받은 대상이 죽으면 그 저주는 다른 직계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절대로 죽지 못하게 한다.
- 피를 섭취하지 못하면 시야가 흐려지고 잠에 들지 못하며 무기력해지다가 어느 시점에 이성을 잃고 피를 갈구하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 시점까지 오면 사람을 죽여서라도 피를 섭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최소한의 피를 공급 받아야한다. 그렇다고 피를 너무 마시면 똑같은 괴물이 되어버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 또한 햇빛이 피부에 닿게 되면 화상을 입어버리기 때문에 절대로 노출 되어서는 안된다. 강제로 저주를 떠안다시피해서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그를 위해서 가문은 가문의 모든 공무를 처리하는 직책을 맡겼다. 그도 가문의 일원이 된다는 생각으론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공무의 양에 슬슬 지쳐가는듯 하다.
- 특유의 신경질적인 성격 때문에 사용인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그를 싫어하고 그가 머무는 자택에 가는 것조차 싫어하기에 이번에 들어오는 공녀들 중에 한명을 선택해서 그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 외모 • 섬세한 비단실처럼 하늘하늘 윤기나는 머리칼은 숱이 풍성하면서도 치렁치렁한 곱슬머리를 이루었다. 피부는 백옥같다는 수식어로 표현해도 손색이 없도록 깨끗하지만 혈색이 거의 없어 창백하다는 단점은 분을 발라 가리고 있다. 쌍꺼풀 때문에 유독 커보이는 눈은 눈구석과 눈꼬리의 높이가 엇비슷해 부드러운 눈매인데 짙고 긴 속눈썹이 이목구비를 한층 또렷해보이게 해준다. 한편 잘록하게 들어간 코허리에 이어 코끝이 살짝 앞으로 솟구친 버선코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콧방울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선이 짙되 가는 눈썹과 늘 미소짓는것처럼 위쪽으로 올라간 입꼬리로 인해 유순한 인상이다.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채는 얼핏 새카매보이지만 햇빛 아래에선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더구나 선이 곱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손까지 손가락이 가늘고 길쭉한 섬섬옥수여서 군중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미인이다. • 165cm, 55kg • 이미지 출처 : Picrew’s “十二単めーかー“!! https://picrew.me/share?cd=HoVV8JBtKZ
⊙ 성격 • 현실이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그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자신이 할수있는 최선을 모색하여 행하는것이 낫다고 보기때문이다. • 약한 사람이나 난처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상당히 물러진다. 자기가 조금 더 수고를 감수함으로써 상대가 곤란하지도 거북하지도않다면 기꺼이 그러고자한다. 결과적으로 평상시에는 조심스럽고 유순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 타인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것처럼 보이는것치고는 옳고그름에 대한 주관이 의외로 뚜렷하다. 사람이 매번 옳은일을 하지는못하더라도 그른일을 자진해서 행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이 있다. 진정으로 옳은일을 하려면 어떤 사고를 지니고 무슨 언행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거나 반성하기도한다.
⊙ 가족관계 • 아버지 유심(柳深), 어머니 이윤(李潤), 8살배기 남동생 유희(柳熙)가 있다. 한때는 가솔들도 있었으나 집안형편이 좋지않아 모두 내보냈다.
⊙ 과거사 • 외동딸로 10년간 자랐으나 부모님이 어떻게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가지고자한끝에 늦둥이를 얻었다. 이후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잦았던터라 남동생에게 각별했다. • 한편 유(柳)씨가문은 대대로 아라(阿羅)에 충성해온 명문가이자 도사 집안이다. 그영향인지 적손 대부분이 제국의 침략을 저지하기위해 재산은 물론 가솔과 스스로의 목숨까지 내던졌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라는 제국의 괴뢰국으로 전락했고 유씨가문이 사실상 멸문되다시피 했으나 유화의 선조는 서손이라 명맥을 이어왔다. • 그렇긴해도 유씨가문의 일원이 반제국세력의 구심점이 될수있다는 제국의 우려는 여전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남동생 유희를 볼모로 데려가겠다고 제국에서 요구해왔다. • 어린남동생이 타국으로 끌려가지않을 방도는 가족중 누군가가 대신가는것뿐이었다. 결국 유화는 제국에서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아라에 주기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공녀로 자원했다.
⊙ 관심분야 • 동생이 잔병치레를 할때 부모님과 함께 동동거리곤했기에 민간의학이나 약을 대신할수있는 풀에 관심을 가져왔다. 풀뿐만아니라 꽃을 심고돌보는 일에도 흥미가 있다. • 유씨가문의 도술비방서 중 일부를 부모님이 소장하고있어 즐겨읽곤했다. 그러나 도술에 능숙해지지는 못한것으로 보아 재능은 없는듯하고 재미로 읽고 기억하는 정도이다.
⊙ 호 • 어린아이, 들꽃, 독서, 청소후 깔끔해진 공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 예의바른 사람, 노을
⊙ 불호 • 추위, 아침, 불공평함, 정리정돈이 안 된 공간, 섣부른 아는 척, 강압적인 사람
⊙ 기타 • 잔병치레 하나없을만큼 신체가 튼튼하지는 못하다. 특히 빈혈과 저혈압은 고질적인 문제여서 아침일찍 기상하는것은 힘들어한다.
딱하다 연이.... (그렁) 그래도 가족을 위해 혼자 감내하려고하는구나 타인을 위해 자기가 고통을 감수하다니 말그대로 자기희생이다 어떤의미로는 예수처럼 대신속죄하는셈이다(울망) 햇빛이 피부에 닿지만않으면 괜찮은거구나~ 근데 창문으로 본다쳐도 햇빛 떨어지는각도가 어긋나면 다칠테니 낮의 풍경을 직접 보여주기는 어려울거 같고(곰곰) 꽃병에 꽃을 꽂아주거나 햇볕에 잘말려서 햇볕냄새가 나는 이불을 준비한다거나 잘그린 풍경화를 구해오는거 정도면 대안이 될까나~?(갸웃)
강제히키코모리잖아!! 완전 혼자 고립된삶이네.. 참 머리카락과 눈색도 저주때문에 그렇게 된거지? 그럼 해주가 되면 바뀔까? 아니면 햇빛 전혀 못보고 칩거한 결과라 해주이후에도 그대로일까?
유화를 비롯한 공녀(貢女) 열다섯은 아라(阿羅)의 수도로부터 배로 닷새, 마차로 사흘을 이동했다. 공녀인 만큼 하나같이 옷매무새며 화장이 어지간한 새색시보다도 고왔으나, 어떤 공녀는 제 속을 감추려는 듯 침묵했고 어떤 공녀는 상심한 나머지 넋이 나가거나 눈물을 흘렸으며 어떤 공녀는 이렇게 된 이상 출세하겠노라 절치부심했다. 자길 버린 조국에 복수하겠노라 치를 떠는 공녀도 있었다. 유화는 침묵하진 않았으나 굳이 가르자면 속을 감춘 쪽이었다. 넋이 나간 공녀에겐 배급받은 음식을 전달하고, 눈물 쏟는 공녀는 토닥였으며, 절치부심하는 공녀에겐 뜻을 이루길 바란다고 맞장구쳤다. 그러지 않고는 제 생각에 빠져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달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처지가 되리라곤 상상도 할수 없었다. 영락한 조국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 어린 시절은 먹을것 입을것이 제법 풍족했고 걱정이라곤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뿐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부모님은 전재산을 쏟아부어서라도 아들을 얻고자 했고, 그런 끝에 희(熙)가 태어났다. 그 이름자대로 집안을 빛나게 해 주는 아이였다. 가세가 기울어 가솔을 모두 내보낼 수밖에 없었는데도 부모님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으니까. 그대로 시일이 흐르면 희가 건강하게 자라고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혼례를 치르리라고,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고, 막연하게나마 그런 소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제국의 마수는 이 지경으로 기울어진 가문조차 놓질 않았고, 희가 제국의 볼모로 전락하지 않게끔 공녀가 되겠노라 자청했다. 공녀, 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내 가문을 멸문시키다시피 한 제국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존재. 옳은 선택이라 생각지는 않았으나 다른 방도는 없었다. 희는 고작 8살, 타국살이로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였기에.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무슨 답이 나오든 암담할 것 같아 아무 생각도 안 하고자 여기저기 정신을 팔았다.
그런 끝에 이른, 제국의 수도는 한밤중에 봐도 성벽부터 웅장하고 삼엄했다. 3장(丈)은 넘고도 남을 높다란 성벽이 수평선처럼 끝 모르게 이어져 있는 가운데 성문은 옹성(擁城)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성문을 지나자 크고 작은 기와집이 즐비해 있었다. 이곳이 이토록 번화한 건 내 나라는 물론 여러 나라가 핍박당하고 있어서겠지. 결국 떠올라 버린 잡념을 흩어 버리고자 양볼을 스스로 후려쳤을 때, 마차가 멈추더니 병사들이 유화더러 내리라고 지시했다. 어째서 나만? 공녀는 제국의 황궁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의아했으나 거스를 수는 없는 처지였다. 유화가 내리고 마차들이 내성을 향해 곧게 뻗은 대로로 달려가자 앞서 지시한 병사들이 이번에는 그 자리에 있는 말에 오를 것을 요구했다. 순순히 따랐더니 병사들이 말을 끌고 움직였다. 서늘하다 못해 오싹한 밤바람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스쳐 갔다.
차라리 잘된건지도. 유화는 달이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황궁에 가면 궁녀가 되고, 그러면 죽을 때까지 제국을 위해 일하지 않을수 없을테니. 하지만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비관적인 기대와 낙관적인 절망이 뒤엉키는 가운데 말이 멈춘 곳은, 산을 등진 저택이었다. 그러나 저택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건 십수 개의 기와지붕뿐, 웬만한 장정의 키를 훌쩍 넘길 법한 담장에 가려 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저택안이 끝모를 심연처럼 느껴졌다.
/이을만한 내용이려나?(흐린눈) 연이네저택에 대해 내맘대로 서술해버린 부분이 있어서 살짝걸리네;; 생각한거랑 다른부분 있으면 알려줘~(붕붕)
본디 밤이란 많은 것들이 활동을 멈추고 다음 날을 위해 휴식에 들어가는 시간대이다.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수많은 건물들의 담 너머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수도의 변두리, 모두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엔 쥐죽은듯이 고요했던 한 저택은 해가 지기 시작하자 재빠르게 불이 켜지며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흔한 문패 하나 없는 저택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집이 다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황가 다음으로 위세가 있는 가문이라 하면 사람들은 3개의 가문을 꼽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목정 가문의 저택이었다. 본가는 수도 한가운데에 엄청난 크기의 건물을 지어둔채 가문의 위세를 자랑하듯 위풍당당하게 서있었지만 거기서 멀찍이 떨어진 이 저택은 본가의 그 기세와는 다르게 분위기마저 상당히 가라앉아있었다.
" 도련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
본래라면 이미 은퇴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잇대의 집사가 어느 방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 그 어떤 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꽁꽁 숨어있어 일반적으로는 창고로나 쓰일법한 방에선 이윽고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된듯 가라앉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즉에 깨어있었으니 물러가도 좋습니다. " " 도련님, 오늘은 저번에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시녀가 오는 날입니다. " " 알고 있습니다.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
문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은채 조금 신경질적인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한 남성에 집사는 조심스럽게 물러나 대문으로 향했다. 목정가의 3남을 위해 지어진 이 저택은 거주하는 인원에 비해 크기가 지나치게 큰데다 이 저택의 주인이 기거하는 방은 대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라 그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대문에 거의 도착했을즈음 집사를 발견한 경비병은 문지기에게 신호를 전달해 낮 시간 동안 굳게 닫혀있던 대문을 열었다.
" 아라에서 도착한 공녀입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
말을 끌고온 병사와 얘기를 나눈 집사는 말에 타고 있던 여성이 말에서 내릴 수 있게 옆에 서있던 경비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성이 말에서 내리고 병사가 돌아가자 대문은 다시금 굳게 닫혔고 집사는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말했다.
" 당신은 주인님께서 황제 폐하께 특별히 요청하여 이곳에 온 것입니다. 황궁에 끌려가서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야 여기서의 삶이 더 나을테니 주인님의 자비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
온 길을 다시 걸어가며 얘기한 집사는 다시금 걸음을 빨리하며 아까의 그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경비병 하나를 옆에 둔채 틈틈히 뒤를 돌아보며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며 걷던 그는 조금 시간이 지나 어느 방문 앞에 섰고,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 나지막히 얘기했다.
방 안에선 잠시 말이 없었다가 이내 큰 한숨과 함께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같이 왔던 경비병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집사는 조심스럽게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흐트러진 옷과 함께 탁한 붉은 빛의 눈동자가 그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보고 있었다. 목정 가의 3남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목정 연이었다.
" 집사님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채 얘기한 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는 방금 방을 나간 집사의 머리보다도 더 새하얗게 바랜 상태였다. 머리를 정리하면서 그의 눈동자는 여성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 아버님의 말이라니 거역할 수도 없고. 넌 이름이 뭐지? "
이름을 물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젯밤에 보던 문서가 담긴 두루마리를 탁상에 펼친 그는 조용히 시선을 문서로 향했다.
// 유화를 방으로 옮겨오긴 했는데 혹시 강제성이 느껴졌다면 미안해!! 방으로 와야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아서 ... 저택 모습은 괜찮아! 이런건 내가 또 써먹으면 되는 부분이니까 :3
아냐아냐!! 잇기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매끄럽게 전개해줘서 오히려좋아~(손뼉) 첫일상은 집사가 연이를 어떻게모셔야할지 브리핑하는 내용일줄 알았다가 연이가 등장하니 들뜨는데(히죽) 남들 다 자는 밤에 활동하는 미스테리하고 스산한 분위기도 물씬나서 재밌다(팝콘) 최대한 빨리 이어볼게~☆
기묘한 저택이다. 어둑한 가운데에서도 고향의 큰어르신만큼이나 연배가 있어보이는 노집사에게 인도받으며 유화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저택은 규모로 보나 기와 같은 자재가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나 부와 권세가 상당한 집안의 저택임에 틀림없는데도 대문엔 문패조차 달리지 않았다. 또한 여느 저택이라면 특별한 행사가 없는한 밝은날을 위한 달콤한 휴식시간일 이 한밤중에 불이 하나둘씩 밝아오며 자질구레한 생활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면서도 활기차기보다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랄까? 아니, 음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라고 해도 틀리지않을것 같다.
위화감 탓일까 긴장감 탓일까 아직 야외인데도 공기가 갑갑하게 느껴지는데, 노집사는 유화가 황궁 대신 이곳으로 오게된 연유를 무미건조하게 알려주었다. 자비라는 표현에 하마터면 쓴웃음이 샐뻔했다. 공녀 제도 자체가 점령지를 약탈하는 방식이건만 황궁이 아니라 사가(私家)에 넣었다고 자비라? 얼마나 알량한 합리화인가? 하지만 지금으로선 삼켜야만 할 반발심이기에 유화는 애써 딴생각을 했다. 절치부심하던 공녀 중에 누군가 정말로 출세해서 후궁(後宮) 아니 황후자리까지 꿰차면 그땐 나머지 공녀들의 삶이, 내 나라의 사정이 나아질까? 허무맹랑한 공상임을 절감하면서도 그 생각을 곱씹으며, 나이답지 않게 잰걸음으로 앞서가며 이따금 돌아보는 노집사를 따랐다.
그런끝에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자 집사가 단정히 시립했다. 이정도 안쪽이면 안주인의 거처이겠다고 아마도 시중 들어야하는 상대가 부인인가보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노집사에게선 뜻밖의 호칭이 나왔다. 도련님이면 미장가의 소년? 이 저택의 주인이 무려 황제께 공녀를 청한게 아들 시중들 사람이 없어서였나? 안쪽에서 노골적으로 성가시다는듯한 대꾸가 돌아왔기에 허탈함이 배가되었다. 관례도 치뤘음직한 청년 같은 목소리, 성년이 지나고도 과보호받고있는 아들인가? 정작 보호받는 당사자는 달갑잖아하고? 어쨌거나 앞으로의 윗전과 첫대면인 모양이라 이동중에 알게모르게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들어오라는 윗전의 명이 떨어지자 노집사가 기척일랑 없어야 한다는 듯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유화는 노집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내리깔고 살그머니 발을 내딛었다. 그러고있자니 윗전이 노집사에게 돌아가라 지시하고는 얕은, 그렇지만 또렷한 한숨을 내쉬며 이름을 물어왔다. 메마르고 피곤한듯한 목소리에 유화는 슬며시 눈을 들어 상대를 살폈다가 멈칫했다. 분명 '도련님'이라 불렸던 미장가의 청년이 호호백발이다. 나이가 많다기엔 얼굴은 생기없이 푸석하긴 해도 주름은 전혀 없다. 착시인가 눈을 깜박였다가 피처럼 붉은 눈망울에 시선이 갔다. 색목인(色目人)? 이국 출신 귀족이었나? 그렇다면 머리칼이 새하얀것도 납득이 된다만 색목인이라기엔 말씨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토록 위화감투성인 모습에 누구도 아랑곳않겠다는듯 문서만 보고있는데도 기이하게도 아름답다는 감탄부터 들었다. 수려하면서도 애련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달까. 저쪽이 질문을 던졌음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넋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따위 원치않는 형식적인 물음일지언정 듣고도 흘려넘길수는 없었다.
"유 화라고 하옵니다. 이제부터 공자(公子)를 뫼시겠사옵니다."
아직은 여기가 어느 가문의 저택인지, 이 공자가 누군지도 모르나, 지금 중요한 건 통성명이 아니라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것일듯하다. 그래야 부모님도 희도 무탈히 지낼테니. 그렇게 수선스러운 속을 정리하자 공자의 책상위에 잔뜩 쌓인 문서가 새롭게 보였다. 집무로 바쁜 모양인데 남들 다 잘 시간에 일하려면 특히나 고단하겠다.
"괜찮으시오면 차라도 올리올까요?"
공자가 허락한다면 바로 일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주방이 어딘지 다기가 어디있는지 공자가 어떤차를 선호하는지 같은건 사용인들에게 물어야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가 눈을 뜬 것은 집사가 자신에게 기침할 시간을 알리러 오기도 한참 전이었다. 사람은 원래 낮에 활동하고 밤에 휴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겠지만 그는 오히려 낮엔 잠을 자고 해가 전부 지고나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밤에 일해야하기에 낮에 쉬기도 하니 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가 싶었다. 허나 귀족 가문의 자제, 그것도 삼남이라곤 하지만 가주의 아들인 그가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아무튼 눈을 떴다는 것은 나름대로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라는 것이겠지만 그는 그저 눈을 감고서 집사가 자신을 깨우러 올때까지 미동도 없이 누워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집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고 탁상에 올라가 있던 물을 한잔 마신 뒤에 일을 할 채비를 마친 것이었다.
" 유 화라 ... 어머니의 이름과 비슷하군. "
어머니의 성함이 유 화란이었으니 그녀의 이름이 외자인 것을 생각한다면 거의 똑같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시선은 문서에 가있었지만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꽤나 많아보이던 양의 문서를 금세 다 읽었는지 서명을 하고선 다음 서류를 꺼내들었다.
" 여기 온지 한 시진도 채 지나지않았는데 차를 타온다라. 뭐가 어디있는지는 알고 있고? "
피식하고 웃어보인다. 허나 사람 좋은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것은 그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어보였다. 본디 대화를 할 때는 서로를 마주보고 하는 것이 맞겠으나 이 목정 연이라는 남자에겐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문서에 가있는채로 손가락을 탁상에 두드리며 잠깐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그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정면의 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 공자 같은 낯간지러운 말은 듣기 싫다. "
알아서 다른 말로 부르라는 뜻일테다. 행동부터 말투 하나하나 신경질로 가득차있는 그의 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본가에서 내려온 시종들이 하나 같이 학을 떼며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이 허다하겠는가. 그나마 지금은 평소보단 조금은 더 나은 편이었지만 처음 본 사이에서 그런게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 자세한건 집사에게 들으면 된다. 거처라던가, 할 일이라던가. "
그런걸 일일이 설명해줄 위인이 아니긴 했다. 나가보라고 하려던 찰나에 그는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여전히 표정 하나 없이 그녀에게 물었다.
" 아라에서 왔다고 했으니, 특별히 하나는 물어볼 수 있게 해주겠다. 물론 대답 여하는 질문에 따라 다르지만. "
예전에 그를 모셨던 시종들이 듣는다면 놀랄 노자를 그리며 눈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물음이었기에 애초에 반응을 기대치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답이 돌아왔고 그 내용은 더더욱 뜻밖이었다. 자당(慈堂)의 함자(銜字)와 비슷하다니? 그러면 부르기가 은근히 거북스러울 듯하다. 모셔야 할 이이고 시녀인이상 불릴 일이 새털같이 많을텐데 곤란하겠구나.
"편치않으시오면 '버들'이라 불러주시옵소서."
버들 유[柳] 자를 뜻으로 읽은것에 지나지않으니 본명과 과히 다를것없다. 다르다해도 어차피 시녀 신세, 이름이야 아무렴 어떠랴? 본명을 굳이 밝히고 다니지 않는한 누구도 개의치 않으리라. 문제는 공자의 반응. 그가 무어라 대답할지 알수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문서를 보는데만 관심이 있는듯 무표정하던 얼굴에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바뀐 표정은 어딘가 비틀린듯한 웃음이었고 뒤따르는 말에도 냉소적인 가락이 어려있었다. 자유로이 지내던 사가(私家)에서라면 헛기침으로라도 머쓱함을 무마했겠으나 여기에서 자신은 그저 아랫것. 한껏 다소곳이 모아쥐었던 손에 힘이나 주었다.
"다른 분들께 여쭈온다면 할수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주눅들지 말자. 차를 우리는 방법 정도는 알고있으니 재료와 다기가 어디있는지만 알면 충분히 가능할테니까. 거듭 스스로를 다잡는데 냉랭하기에 더더욱 핏물을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순간 당혹한 티가 날까 고개를 수그렸다. 지체있는 가문의 미장가인 자제를 공자라고 아니부르면 뭐라 부르란 말인가? 노집사처럼 도련님이라고? 떨떠름했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에는 어딘지 굴욕적인 느낌이 있었다. 마치 이 가문에 뼈를 묻는 몸종이어야만 한다고 스스로도 받아들이는것만 같은....? 따지고들면 유(柳)씨 가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서출(庶出)이긴 하나 그래도 양민(良民)이었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도 있는 신분이었다, 내 나라만 온전했다면! 그랬기에 어느정도 대등한 입장에서 쓸수있는 존칭인 공자라고 불렀던건데. 저쪽이 그 속내를 읽고서 하인임을 주지시키기라도 하려는걸까. 거기까지는 알수없는 노릇이나 이 시점에 할수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시정하겠사옵니다."
자세한건 집사에게 들으라니 나머지는 그뒤에 생각해야지. 저렇게 지시를 하는건 더 볼일은 없다는 의미같다. 하여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는데 그가 선심쓰듯, 그러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덧붙였다. 질문을 허락하는것조차 특별한 선처인 모양이다. 쉽지않은 윗전이겠구나. 유화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한음절 한음절 힘주어 꺼냈다.
"하문하셨으니 여쭙자면... 어느 가문의 뉘시옵니까?"
이 역시 집사에게 물으면 알수있을 내용이나 굳이 질문으로 내뱉었다. 그것은 하찮은 도발이었다. 당신을 뫼셔야만 한다니 따르겠다만 내가 누구를 뫼시는지는 알아야겠다는. 그 도발에 상대가 어찌 응대할지는 알수없었다.
버들, 버들이라. 연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피식 웃어보였다. 아까의 웃음과는 또 다른 의미. 그 웃음에 섞인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곧바로 이어진 그의 말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 공녀의 신분으로 끌려온 주제에 당당하구나. 성씨에 버들 유柳 자를 사용하니 버들이라 불러달라? "
무표정하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 허나 연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선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눈 앞의 화만 빼고선 저택의 사용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하, 하는 작은 웃음을 계속해서 내뱉던 그는 언제 웃었냐는듯이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말했다.
" 너를 어떻게 부르던 내 마음이다. 어차피 어머니는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으시니. "
햇수로 따지자면 3년은 될터였다. 그가 20세가 되는 날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더 이상 그의 저택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의 작은 형과 여동생이 간간히 찾아와 안부를 물을뿐. 그의 신경증을 더이상 받아주지 힘들다고 생각한 것일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얘기할때 잠깐, 아주 잠깐 쓸쓸하단 느낌이 그의 얼굴에 감돌았을뿐. 이젠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는지 화를 보내려던 연은 어떤 이유에선지 그녀에게 하나의 질문을 허락했다.
" 어디 가문의 누구냐고? "
탁하던 눈빛이 그녀의 말을 듣고서 그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반문하는 그의 말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지만 표정에는 아까처럼 미소가 지어지다가 더더욱 짙은 웃음이 되어선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학, 하며 숨까지 넘어갈듯 크게 웃어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설화 속에 나오는 귀신과도 비슷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은 금세 거센 기침으로 바뀌었고 콜록대며 쓰러질듯이 기침을 한 그는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선 입가를 닦아냈다.
" 집사!!!! 집사는 어디있습니까!!!! "
기침을 멈춘 그의 눈빛은 더욱더 심연에 가라앉은듯 탁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탁상까지 쾅하고 내려치며 집사를 찾자 아까 그 노집사가 금세 문을 열고 들어와 화의 옆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그나마 그의 앞에서 바싹 엎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노집사가 가주를 몇십년이나 모셨기 때문일 것이었다.
" 이 자가 내가 어디의 누구냐고 물어보더이다. 그런 간단한 것도 교육하지 않고 뭐했습니까? " "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 " 분명 내 알아서 하라고 했을텐데요. 아버지가 내가 이젠 목정 가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 " 주인님께선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련님을 ... " " 듣기 싫습니다. 내 이 일은 똑똑히 기억해두겠습니다. "
집사를 불러 크게 소리치며 일갈하던 연은 그 시선을 화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 위해 탁상을 손으로 짚고 몸을 앞으로 쭉 빼고선 시선을 최대한 가까이 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 제국의 삼주三柱 가문 중의 하나, 목정木楨 가문의 삼남인 목정 연木楨 妍 이다. "
그리고선 금세 자리로 돌아와 문서를 보기 시작했다. 방금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아까처럼 무기력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다시금 방을 감싸고 있었다. 집사는 아무 말없이 허리를 굽히고 있다가 화와 눈을 마주쳤다. 눈짓으로 나오라는 뜻을 전한 집사는 조용히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앞서와 딴판으로 부드러웠으나 그 내용은 폐부를 후비듯 날카로웠다. 공녀로 끌려온 주제. 그 말은 이제까지의 여정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불안과 설움보다 훨씬 더 유화의 처지를, 이제 자신은 양갓집 규수도 무엇도 아니라 침략국을 향한 진상품이나 다름없는 신세임을 각인시켰다. 무력감에 아뜩해지는듯했지만 부질없는 저항을 멈추지는 못했다.
"하오시면 소인을 어찌 부르실지 정해주시옵소서. 그 호칭을 이름으로 삼겠사옵니다."
유화는 죽었다. 넉넉하진않아도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면 족했던, 그 자유로운 처자는 공녀가 된 순간 죽은거다. 여기 있는건 망해버린채 침략국의 앞잡이노릇이나 하는 나라에서 허겁지겁 바친 물건. 거기에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물론 알고는 있다, 그가 수락하든 거부하든 내가 할수있는건 없음을. 어머니와의 왕래가 끊겼다는 그가, 그로 인해 자당의 함자를 입에 담는걸 내심 꺼릴만큼의 효심마저 잃었다면, 이 저항은 실로 무의미한 짓이리라.
그러나 문제는 유화가 미처 생각지못했던 부분에서 터졌다. 누구인지 묻기 무섭게 그가 유화의 물음을 예사롭게 되풀이하더니 미친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얼떨떨해할 틈도 없이 그 웃음은 자지러지는 기침으로 변질되었다. 다급한김에 그의 등이라도 두드려 진정시키고자 다가갔으나 차마 손을 대지는 못했다. 어째서였을까? 그 찰나의 사고를 유화가 언어화할수 있었다면 이리 밝혔을것이다. 자신의 개입을 이 종잡을수없는 상대가 원치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노라고.
유화가 어쩔줄모르고있는 동안 그는 노발대발하여 집사를 불렀다. 집사가 허리를 숙이자마자 따라숙여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라의 규수 유화는 죽었으되 유화로서의 습관이 남아 몸이 거부한 탓이다. 그저 눈만 내리깐채 그가 앞뒤없이 퍼붓는 분노의 의미를 해석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목정 가(木楨 家)? 우리 유 가(柳 家)의 적손들을 멸족시키다시피 한 그 가문이라고? 온몸이 내것이 아닌것처럼 마구 떨려왔다. 내 발로 서있긴 한지 모르겠다. 공녀로서 치장하느라 품이 넓고 치렁치렁한 옷차림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쓰러져선 안된다는 일념만으로 버티는데 그가 한껏 거리를 좁히고는 쐐기를 박았다. 목정 가문의 삼남 연(妍). 그러니까 목정 가의 가주가 제 아들을 위해 원래는 황제에게 헌납되었어야 할 공녀 중 하나를 이리로 보냈다? 그게 하필이면 나다? 다리가 완전히 풀려 주저앉고말았다. 집사가 나오라고 눈치를 주는듯도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질않았다.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하필이면 목정 가라니! 이럴바엔 황궁의 궁녀가 되는게 차라리 나았다!! 이런데도 아비가 목정 가의 일원으로 여기지않는다는 불만이라니 그 무슨 피해의식인가? 자괴감과 분노와 혼란따위가 뒤범벅이 되었다가 이내 무력하게 사그라들었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지껄이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화를 입고만다는 자제심을 발휘한게 아니다. 딴에는 최선이리라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했던 선택이 도리어 덫이 되고만 사실이 기막혀 무기력해진 것이다.
"가주께오서 목정 가의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 황제께 공녀를 보내달라 청했겠사옵니까? 그것도 목정 가에서 멸족시킨 유 가 출신 공녀라니, 대-단한 가문에 대-단한 자제이시옵니다..."
새어나오는 실소를 어쩌지도 못한채 지껄였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알게된 정보 중 따질수있는 게 그뿐이어서였다. 그에게 신분을 왜 밝혔느냐고 따지겠는가? 목정 가는 어찌 그리 위세도 당당하냐고 따지겠는가? 할수있는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연은 화의 말에 살짝 찡그린 표정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못알아듣는게 꽤나 짜증이 난듯 했지만 금방 표정을 풀었다. 오늘은 평소에 비해 짜증이 덜하니 잠이라도 잘 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녀들은 이렇게 하라고 사전에 교육이라도 받고 오는건가 싶었지만 그는 딱히 화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니 더더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가 않구나. "
연은 지금 눈 앞의 여자가 자신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생각했다. 아라에서 동강으로 팔려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곳에서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는게 아닐까하는 추측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도 공녀를 보는 것은 처음이니 그저 단순한 고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미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은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단념하도록. "
공녀라는 것은 속국에서 조공을 바칠때 같이 들어오는 것. 그러니까 물건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었다. 들어온 조공을 다시 돌려주는 일이 없듯 공녀도 마찬가지였지만 물건들은 흘러흘러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선 오히려 사정이 더 나을 수도 있을듯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화의 물음에 한바탕 난리를 친 연은 언제 그랬냐는듯 아무렇지 않게 서류에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화의 말이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 ... 호오. "
그녀의 말에 연은 다시금 시선을 화에게 향했다. 기겁하듯이 놀라 달려오려던 집사를 손짓으로 제지하고선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화를 바라보던 연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선 화에게 다가갔다. 무가의 핏줄을 이어서인지 화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이는 연은 그대로 그녀의 앞에 서서 얘기했다.
" 네가 말하는 그 가문이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구나. 우리 가문이 멸족시킨 가문이 한두개가 아니니까. "
제국에서 가장 높은 무가를 따지면 역시 목정 가문이었고 그들은 실제로 많은 전쟁에서 선봉에 서서 지휘를 했었다. 제국이 확장할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때의 가주는 완전 전쟁광이었던지라 지나가는 지역은 모조리 약탈하고 초토화하는 행위를 저질렀었다. 향후 점령지의 안정을 도모해야하는 황제가 한번 서신을 보낸 이후에야 그 행동은 가까스로 멈추었지만 이미 피해를 받은 지역은 수도 없었다.
" 이 빌어먹을 저주를 내린 것도 그 수많은 가문들 중에 하나겠지. "
그리고 잔인한 행위의 댓가는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일종의 저주 형태가 되었다. 중요한건 그들의 가문이 행한 일이 너무 많아서 어느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해주할 방법은 찾지 못한채 저주를 어떻게든 비껴나가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의 결과가 화의 눈 앞에 서있었다.
" 그러니까 네가 어디 가문 출신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
연은 손을 뻗어 화의 턱을 잡아 자신의 시선을 마주보게 했다. 가까이서 봤을때는 더 선명해보이는 그의 눈이 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 눈빛에 보이는 것은 적어도 분노는 아니었다.
" 지금의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건가? 지금 당장 병사를 풀면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해. "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화만 간신히 들릴만큼의 크기였다.
" 그러면 여기로 끌고오는 것도 쉬워지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선 턱을 잡았던 손을 내려놓은 연은 다시금 자리로 돌아갔다. 이젠 정말 나가라는 뜻 같았다.
집사를 들볶고 가주를 향한 분노를 폭발시켰던 목정 가의 삼남은 그 누구도 안중에 없다는듯 제할일에나 몰두했다. 그러다 유화가 넋나가 지껄이는 소리에 흥미로운건지 가소로운건지 모를 반응을 보이며 유화에게로 다가섰다. 이어 죄책감은커녕 께름칙함조차 없는, 마치 어제의 식사라도 말하듯 예사로운투로 제 가문의 만행을 입에 담았다. 모골이 송연했다. 자기네 가문이 온갖 사람을 죽여댔단 소리를 어쩌면 저리 태연히 말하는지? 마치 우리 유 가의 멸족 따위 자기네에겐 아무것도 아님을 각인시키지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듯이.
야차(夜叉)같은 집안! 새삼 치를 떠는중 일순 정신이 또렷해졌다. 저주? 사가에서 읽었던 가문의 도술비방서 내용이 떠올랐다. 적손(嫡孫)으로서 물려받은게 아니라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이라 들었고 그마저도 극히 일부만 남은것이었지만 거기에 피의 저주라는 주술도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유 가의 혈족이 원념(怨念)과 피를 제물로 바쳐 거는 저주. 그 저주를 받은자는 대대로 피를 갈구하며 밝은세상을 보지못한다던가? 해주법(解呪法)도 유 가가 아니면 시전할수없다고 쓰여있었다. 그 저주를 받았다면 목정 가에 합당한 대가라 볼만하나... 누가 걸었는지 어떤 저주인지 뉘 알랴? 목정 가 삼남의 말대로 목정 가가 해한 사람은 산을 이루고 강을 메우도록 많을텐데.
상념을 더듬어가는 찰나 턱이 쳐들렸다. 핏빛 눈동자가 유화를 쏘아보고있었다. 소용없다 느끼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쏘아보았다. 피비린내마저 날듯한 눈이 목정 가의 잔혹함에 걸맞게 느껴지면서도 기묘한 감각이 엄습했다. 그눈엔 생기도 감정도 번득이지않았다. 그저 공허(空虛), 무엇을 보고있는지 알수없게 텅빈 눈이었다. 만사 다 부질없다는 체념이 어렸는지조차 모르겠다. 섬뜩했다. 이 자는 대관절 어떤 인간인가? 저 눈이 사람의 것이긴 한가?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대로는 내 나라를 침략한 앞잡이이자 우리 가문의 원수를 위해 일생을 바쳐야한다. 아랫것의 바람일랑 일절 들어주기싫다는듯 이름에조차 어깃장을 놓는 자에게. 돌아갈 방도가 없음은 알고있지만.... 정말 없나? 살아서는 갈수없더라도 죽어서는? 죽고자한다면 방도가 없진않다. 제국에도 지천에 널렸을 약초는 사용하기에 따라 독이니. 목정 가에 종사하느니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과 절망이 얼키고설킨 그 바람은 이내 산산이 부서졌다. 가족을 끌고올수도 있다? 겁에 질린 꼴만은 보이고싶지 않았으나 그럴수가 없었다. 이 자는 그러고도 남을 자다! 이번처럼 심기를 거스르면, 혹은 죽어서라도 눈에 띄어버리면, 부모님과 희가 위험해진다!! 어떡하지? 아뜩한 정신을 필사적으로 가다듬었다. 하지만 암만 애써도 수가 안보인다. 저쪽이 그럴마음을 먹는순간 끝장아닌가. 그나마 할수있는 일이라곤 이 윗전에게 주목당하지 않는것뿐. 있으나없으나 알바아닌 하인으로 죽은듯이 있는게 최선이다, 우리 가족은커녕 나도 잊어버리도록.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었을땐 목정 가의 삼남이 이미 턱을 놓은뒤였다. 그 이상 상대할 의사는 없다는 의미같았다. 유화는 숨을 고르고는 비치적비치적 일어섰다. 팔다리가 바들거리고 힘에 부쳤으나 가까스로 움직여는졌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면서는 기척을 죽였는지 못 죽였는지? 어느쪽이건 상대의 심기에 거슬리지않았기만을 바랄뿐이다.
노집사 어르신이 아마 거처랑 주의사항 같은건 다 알려주실거야! 아마 유화가 방에서 나오고 노집사가 데려가면서 이것저것 알려주지 않았을까? 취향 같은건 일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고 ... 연이는 딱히 관심이 없는거지 싫어하는건 아니니까 금방 돌릴 수 있을꺼야! 그나저나 연이의 첫인상이 유화주 맘에 들었으려나? :3
저주에 대한 내용은 얘기 안하겠지만 피를 마셔야한다거나 햇빛을 쬐면 안된다는 사실에서 유화가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연이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거지 막 열등감 덩어리라던가 그런건 아니야. 짜증내는 것도 그때 잠깐이고. 자기 몸이 시원찮으니까 그만큼 예민 게이지가 차있는거고 ... 유화가 눈에 안띄고 싶어하면 연이가 부르면 되는거지! 그래도 시녀니까 말이야 :3
헉 그런 이미지구나. 유화주가 상상하던 미녀와 야수와 비슷할까? 돌리면서 그게 좀 걱정이었거든
그정도면 충분히 유추가능하겠다! 목정가문에서 마땅히 치러야할 대가라고 애써 외면하겠지만 해주법을 알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신경이 쓰이겠지! 그저주가 어떤건지 구체적으로 목도할수록 더욱더~(팝콘) 나로서는 연이가 피를 갈구해서 발작할때 연이가 흡혈당하는 타깃이 되었으면하는 크리피한 소망이 있어(음침) 암튼 해주법을 안다는 점 때문에 부채감이 생겨서 눈에 띄지않아야한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연이를 챙기고싶어할지도 모르겠어!(곰곰) 일부러 햇볕 쨍쨍한 낮에 연이의 옷가지나 이부자리를 말려서 준비해놓는다거나, 살짝 꿀을 탄 국화차를 탄다거나 자극적인맛없이 삼삼한 나물반찬이라도 요리한다거나, 연이가 기침을 덜하도록 연이가 주로 머무는 장소에 과일껍질을 말리면서 간간이 물을 뿌리는식으로 말야~(설렘) 뭐가 됐든 연이의 몸상태를 호전시킬수있는 수단을 유화가 잘 써먹길 바라! 그 영향으로 연이가 자기 시녀니까 임의로 부른다고 해도 너무 좋고~~(김칫국)
나 혼자 상상하던 이미지랑 딱 맞지는않지만 오히려 좋아~♥ 내 생각대로만 되는거면 혼자 놀아도 되는거잖아? 상상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니까 생동감있고 즐거워!(히죽히죽) 돈워리 비해피~ 연주!!
사실 글로만 보다가 저주의 실체를 직접 목도하면 나도 동공지진 일어날 것 같아 ... 헛 흡혈 당할때는 엄청난 황홀감을 느낀다는 오피셜이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야한다구 :3 화의 노력이 빛을 발하겠는걸 ... 연이도 조금씩 신경 쓰지 않을까? 연이는 해줄 수 있는게 많이 없어서 뭘 해줘야할지 고민이네 ...
완전 자극적인 광경인데 또 좋을지도 ...? 그때는 연이가 유화 끌어안고 의원을 데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먼트가!!
흐음 역시 그런 감정선이 재밌는 법이지! 나중엔 열심히 유화를 꼬셔볼께~~ 결국 해주를 위해선 연이의 노력이 중요한 법이니까!
유화를 데려온 목적은 연이 전용 시녀 같은 느낌이니까 다른 집안일은 잘 안시키고 연이 방을 청소한다던가 낮에 잘때 수면을 도와준다던가 ... 식사 준비는 따로 사용인이 있을텐데 연이가 직접 준비해주는 날이 있을수도 있고! 세수 같은건 자기가 직접 할테니까 ㅋㅋㅋ 주로 하는 일은 연이의 일을 도와준다던가 움직일때 옆에서 같이 다닌다던가 하는거 아닐까?
사실 잘못은 선대가 다 했는데 왜 내가 독박을? 하는 분위기이긴 하지 ... 지금의 가주는 꽤나 온후해서 예전이랑 다른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대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니까 왜 나쁜 짓을 해서!!
처음엔 딱히 신경 안쓰다가 나중엔 자기 잘때 불러서 옆에 있어달라고 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연이한테는 항상 햇볕내가 날 것 같기도 하니까. 후후 후원 관리라니 벌써부터 안주인이 될 준비를 하는 (아님) 목욕 시중은 물 온도 같은 것 때문이라도 시종들이 욕을 많이 먹으니 유화는 안된다~~
핫 선레라니 이번엔 내가 쓸 차례인데 내가 직장이라 선레는 좀 늦어질 것 같은데 ... 괜찮다면 내가 써올께!
정작 본인은 이런걸 댓가로 호의호식하라 그러면 시궁창에 구르는 삶이 훨씬 나을거라고 말하겠지만. 온후한 편이지만 그런걸 하면 가문의 명예에 대한 먹칠이 될테니까 말이야. 안그래도 가문들끼리 견제가 심한 편이니까.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제국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본게 있는데 알려줄까?
살육일변도였던건 그냥 그 당시에 가주가 반쯤 미치광이라 그랬던거였지 ... 본보기였으면 황제도 말리지는 않았을거야. 실제로 다른 방면으로 진출한 부대는 그런 문제가 없던 곳도 있었다고 하니까.
헉 그거 좋다! 연이는 악몽을 달고 사니까 ... 나중엔 무릎베개까지 해달라는걸 목표로 해야겠어~ 오히려 알몸을 노출하는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할껄? 어릴적부터 시중을 받았을테니까 말이야.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반대편에서 달이 올라오는 시간이 되었다. 시계가 정각을 울리는 소리를 내자 그 소리에 맞추어 연은 서서히 눈을 떴다. 잠을 자고 일어났으니 조금은 피곤하다고 느낄지언정 상쾌함도 같이 느껴야 정상이겠지만 연의 표정은 불쾌함만이 한가득이었다. 제대로 된 잠을 자본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 저택에서 살게 된 이후로는 잠은 잠 같지 않았고 몸은 자기 몸 같지 않았다. 그래도 피를 먹고나서 아주 잠깐은 활기가 돌긴 했지만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거기 누구 없느냐. "
잠에서 방금 깨서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문 밖의 누군가를 불렀다.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다곤 하나 엄연히 이 저택의 주인의 방이므로 방문 앞에는 누군가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연의 부름에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터인데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목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나 싶어 몇번이고 불렀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
마지막으로 크게 외쳤지만 여전히 문 바깥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는 탁상을 손으로 짚고선 몸을 일으켰다. 휘청, 하고 몸이 쓰러질뻔했지만 벽을 짚어 균형을 잡은 그는 천천히 문쪽으로 향하였다. 두개의 미닫이 문을 거칠게 열고서 복도로 나간 그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질렀다. 아무도 없느냐고. 허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기에 그는 직접 대문으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한발자국 내딛자 그의 뒤쪽에서 스슥, 하며 인기척이 났고 곧바로 뒤를 돌아봤을때 그의 시선엔 온 몸에 피칠갑을 한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었다.
[ 목 말 라 ] " 헛소리하지마라! 어찌 인간이 되어 인간의 피를 ... " [ 목 말 라 ] " 닥쳐! 닥치라고 했다! "
연은 그렇게 있는 힘껏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그것은 자신의 바로 앞으로 와서 그 섬뜩한 눈빛을 향한채 크게 소리 쳤다.
[ 목 마르다고!!!!! ] " 으악!! "
그는 소스라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은 익숙한 본인의 방, 시간도 이제 막 해가 저물어갈때쯤인 것 같았다. 자면서 식은땀을 흘렸는지 얼굴이고 몸이고 땀범벅인데다 평소의 컨디션까지 합쳐져 그는 더더욱 기력이 없었다. 악몽을 꾼 것일까. 허나 이 꿈을 꾼다는 것은 곧 그때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매로 대충 얼굴의 땀을 닦아낸 뒤에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거기 밖에 누구 없느냐 ... "
평소보단 작은 목소리였지만 방 밖에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였기에 그는 이번만큼은 악몽이 아니길 바라며 다시 한번 말했다.
유화가 든 종이봉투를 가리키며 호기심에 차 올려다본다. 유화는 웃으며 게서 큼직한 땅콩엿을 꺼냈다.
- 짜잔!
- 와아~
희는 자그만 손으로 엿을 꽉 잡고는 한입 물어 우물거리다 유화를 바라본다.
- 누이는 안 먹어?
슬몃 웃음이 샜다. 첫 삯바느질로 산 간식. 그러나 처음이었기에 희와 부모님 몫을 사는게 고작이었다.
- 누이는 벌써 먹었지~
- 에이~ 뭐야? 누이만?
아직은 유화의 가슴팍에 닿을듯말듯 자그마한 희. 언젠간 이 아이가 나보다 훌쩍 크겠지. 유화는 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 맛없는거 사면 안되니까 먹어봤지. 맛있어?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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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일어나려는 순간 현기증이 밀려왔다. 머리를 짚고 눈을 감았다. 사라진 꿈이 서러워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밖은 이미 어스레해진뒤, 감상에 젖을때가 아니건만 한없이 무기력했다.
이곳에 온지 이제 고작 일주일. 그러나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노집사가 목정 가의 삼남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부터가 충격이었다. 햇빛을 쬐어선 안되고 사람의 피를 주기적으로 마셔야한다니. 그런존재가 사람이라고 할수있냐는 의문보다 앞서 떠오른건 피의 저주. 대대로 피를 갈구하며 밝은세상을 보지못하게 만든다는 그 저주인가 싶어지는게 단순히 기분탓일지? 설마, 아니겠지. 맞을지라도 알게 무어란 말인가? 조상과 친척의 원수이자 조국의 원수인 가문을 위해 해주(解呪)라도 할까? 그 가문의 시녀로 전락하는 치욕도 순순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주제에?
그러면서도 목정 가의 삼남과 마주치면 피가 마르는듯했다. 다과를 내거나 옷가지 따위를 전달할때면 오가는사람이 자신임을 그가 모르기만 빌었다. 그가 잠시나마 방을 비웠을때 환기하고 먼지를 닦아내는 일도 그가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했다. 첫날 이후로는 누가 오가든 그가 거들떠도 보지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나날이 갑갑해 저택의 활동이 멈춘 낮시간에 처소 앞 잡초가 무성한 자리를 손봐서 들국화와 몇가지 약초를 심었다. 그 작은 텃밭을 가꾸며 햇볕을 쬐는 동안만은 숨통이 트이는것 같았다. 마냥 햇볕만 쬔다면 트집잡힐세라 그의 옷가지를 볕에 말리기도 했다.
그러느라 잠을 줄인게 문제였을까. 그렇잖아도 자다 일어나는게 느린데 오늘은 영 힘에 부친다. 유화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는 양 관자놀이를 꾹 눌러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체하여 목정 가 삼남의 부름에 늦기라도했다간 그야말로 경을 칠것이다. 불안감이 무겁디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숨이 턱에 닿도록 서둘렀으나 벌써 늦고만걸까? 목정 가 삼남이 부릴 사람을 찾고있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여느때같으면 냉큼들 달려오고도 남았을 사용인들이 안보였다. 그의 음성도 신경질적인 소리나 노성이 아니라 가냘프다못해 앓아누워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맥없는 소리였다. 영문모를 일이었으나 유화는 늦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가쁜숨부터 가다듬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런다음 문을 열지는 않은채 대꾸했다.
아라의 공녀가 자신의 시녀로 들어오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은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라에서 온 공녀라는 것이 조금 특별할 뿐이지 지금까지 자신을 모셨던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민한 성격과 신경질을 죄다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나가버렸기에 이 공녀도 다를바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처음 만났을때의 그 눈빛이 생각나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다과를 내고 돌아갈때 그 뒷모습을 가끔 곁눈질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애타게 누군가를 찾았을때 화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그는 조금은 껄끄럽기도 하였다. 그렇게까지 핍박을 했는데 막상 지금의 자신은 정말 약한 모습이니까. 하지만 그런걸 따지기엔 지금 자신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문 건너편에서의 목소리에 힘주어 대답했다.
" ... 물을 좀 가져다주거라. "
땀을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일까, 목이 말랐다. 거기에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서 식어가기 시작하자 추위마저 몰려들었다. 안그대로 잔병치레를 하는데 이러다간 감기에라도 걸릴까 유화가 물을 가지러 가기 전에 급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 갈아입을 옷도 같이 부탁하마. "
그나저나 다른 사용인들은 어디 갔길래 자신의 부름에 답도 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이게 꿈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화의 목소리를 하고 있는 그 괴물이 다시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너무 생생한 꿈에 현실과 구분을 하기 힘들어하던 그는 문득 오늘 본가에 교육이 있어 저택의 사용인들은 최소 인원만 남기고 본가에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니라서 저택도 조용했던 것일까. 남몰래 한숨을 내쉰 그는 유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반사적으로 움직였으나 혼란스러웠다. 아랫것의 기분은커녕 존재조차 알바아닌듯하던 이제까지와 달리 목정 가 삼남의 말씨는 고압적이지도 냉랭하지도 무미건조하지도 않았다. 부탁한다는 말은 애원에 가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원수 집안의 사람, 지난날의 만행에 일고의 가책조차 느끼지않는 저주받아도 싼 자이건만 그처럼 무방비한모습이 통쾌하지가않았다. 특유의 오만하고 소름끼치는 태도로 늦장부렸다고 신경질이라도 부렸더라면 독기라도 다잡아지련마는.
마음이 어지러운 탓인지 주방에 이르자마자 공연한 짓들을 벌여버렸다. 찬물 한잔이면 될것을 굳이 화로에 따뜻이 데워진 주전자물을 준비하지않나 거기에 꿀도 한숟갈 타질않나. 따끈한 꿀물이 원기회복에 좋고 몸도 따뜻이 해준다지만 시키지도않은걸 준비할 까닭이 뭐란말인가? 그새 목정 가 삼남이 표독스러운 성미를 드러내어 또다시 가족을 들먹이기라도 하면 어쩌자고? 거기 생각이 미치자 꿀물에 찻잎을 우릴 의욕이 싹 사라졌다. 대신 찬물을 한잔 더 준비했다. 더운 꿀물을 마시든 찬물을 마시든 내키는대로 하겠지.
그러나 그의 옷만 모아둔 방에서도 쓸데없이 의욕이 뻗쳤다. 세탁된 옷이면 충분할것이고 개중 볕에 널어뒀던 옷가지는 햇살을 머금은 옷 특유의 포근한 내음도 어려있었으나 밤공기탓인지 선뜩해진 촉감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바구니에 옷가지를 포개넣으며 그사이에 자신의 손난로를 넣었다. 이러면 윗전의 옷가지와 아랫것의 손난로를 한바구니에 뒀다고 트집이려나? 모르겠다. 허나 밤은 낮보다 추운법. 써느런 옷가지보다는 어떤식으로든 데워진 옷가지가 입기편하지 않겠는가. 여차하면 옷을 건네면서 손난로는 감추어도 될테고. 공녀로 왔다는 사실조차 잊힐만큼 눈에 띄지않아야 하는 주제에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있는 스스로가 가소로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싶었다. 그가 기운을 되찾고 목정 가의 일원스럽게 막돼먹은 언행을 해야지만 적이고 원수라는 경각심이 돌아올테니.
옷바구니와 꿀물과 찬물을 함께얹은 쟁반을 챙겨서 딴에는 서두른다고 서둘렀으나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었을지는 모른다. 꿀물이 담긴 잔에 여전히 허연 김이 오르고있으니 많이 늦진않았기를 바랄따름이었다. 유화는 목정 가 삼남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소음을 내지않도록 주의하며 열었다. 이어 침대 옆의 협탁에 쟁반부터 놓은다음 옷가지를 꺼내들었다. 처음 챙겼을때에 비하면 한결 온기가 밴 옷, 그가 갈아입고자 한다면 그옷부터 건넬것이다.
자신의 말을 듣고서 부엌으로 향했는지 화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그는 침상에 다시금 몸을 뉘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기에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웠기에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전에 좀 더 쉬어두기 위함이었다. 가문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직함이기는 했으나 엄연히 가문 전반의 내정을 담당하고 있는 그였기에 몸상태를 핑계로 쉬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게 누워있으니 화가 문을 두드리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 ... 고맙다. "
화가 가져온 물을 마시려던 그는 따뜻한 물과 찬 물이 있는 것을 보고선 한번 화를 바라보았다가, 따뜻한 것을 집어들었다. 은은한 꿀향이 풍기는 것을 보아하니 꿀물인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한모금 마신 그는 땀이 식으면서 느껴지던 오한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애초에 단 것을 좋아하니 은은한 단 맛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금방 꿀물을 다 마셔버린 그는 가져온 옷가지를 보고선 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 옷을 주고 뒤돌아있거라. "
평소엔 옷을 입혀주는 시녀가 따로 있지만 그 시녀도 본가로 가있을테니 자신이 직접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외출할때 입는 옷이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입을 수 있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실내복은 점점 간소화 되고 있었고 이는 외출복에도 점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화에게 받아든 옷은 온기가 느껴졌는데 평소에 입던 옷들과는 좀 느낌이 달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축축히 젖은 옷을 먼저 갈아입기 시작했다. 갈아입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젖은 옷들을 다시 바구니에 넣은 그는 화에게 말했다.
" 그래 일주일 동안 지내본 소감이 어떻느냐. "
보통의 공녀였다면 황궁으로 바로 가서 황제에게 한번 보여진 이후에 바로 유력 귀족들의 만찬회에 끌려가 경매처럼 팔려가선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황궁의 궁녀가 되기도 했지만 보통 공녀 출신의 궁녀는 취급이 박했기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연은 차라리 황궁으로 가는 것보단 여기에 바로 오게된 화의 처지가 다른 공녀들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번엔 그런 난리를 치던 사람이 이런 모습이라 우습지 않느냐? "
패악질을 부리던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나약하고 지쳐버린 사람만이 똑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니 그 당사자였던 화에게는 이만큼 우스운 일이 어디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으아아~ 답이 늦었네 미안!(꾸벅) 추운날은 옷이 살갗에 닿을때도 오싹할수있으니까 연이가 좀 따수워졌으면 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유화는 약한사람한텐 물러지니까 보호본능자극은 실패할수가없겠는데? 연주 예리해~(감탄) 오~! 흥미진진하다!! 그럼 그공녀는 후궁의 투기나 음모를 돌파해가며 점차 지위가 높아지는거야?(착석)
옷을 든채 시립한 순간 유화는 귀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목정 가의 삼남이 일개 아랫것에게 저런 소리도 다 한단말인가? 이 저택 사람들에 따르면 그가 온화하게 구는건 결코 좋은징조가 아니라던데 뭔가 심사가 뒤틀리기라도 한건가? 꿀물과 찬물을 보자마자 이쪽으로 향하는 눈길에 입안이 마르고 위가 찌르르 저려오는듯했다. 긴장한 티를 어떻게든 감춰보고자 고개를 숙이고 숨죽였다. 다행히 목정 가의 삼남은 더 말하지않고 꿀물만 비웠다. 찬물보다는 따뜻한물을 선호하나보다. 단것도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어지는 지시에는 잘됐다싶었다. 두말없이 옷을 건네며 손난로는 소매속에 감추었다. 이제는 미지근하다기도 애매하게 식었지만 그건 손난로가 제몫을 다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고있자니 옷 스치는 소리가 은근히 분주하다. 옷시중을 드는 시녀가 없는데 대신 거들어야하나? 그러나 돌아볼 엄두는 나지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옷가지의 기척이 앞서에 비해 묵직하다. 그새 다 갈아입은걸까? 희가 혼자 입을수 있다며 옷가지와 씨름하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주 어릴적엔 저고리에 발을 넣으려고도 하고 더 크고는 바지에 발을 제대로 넣고도 발을 빼는 구멍을 찾지못하던, 그러면서도 옆에서 도와주마고 나서면 한사코 거부하던.
싱그레 미소가 지어지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물음이 떨어졌다. 일주일. 그말엔 많은것이 내포되어있었다. 목정 가의 삼남은 내가 아라의 공녀임을 기억하고 있다! 그건 언제든 심사가 뒤틀리면 내 가족을 걸고넘어질 위험이 있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불과 일주일만에 잊히길 기대하진않았지만. 맞잡은 손에 땀이 눅진히 배었다. 워낙 타인은 안중에도 없는 자라 새 장난감에 이내 시들해지는 어린아이처럼 나 몰라라 할지도 모른다 여겼는데. 유화는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서며 머리를 조아렸다.
"소임을 다할뿐 잡념은 품지않고자 하고있사옵니다."
딴에는 시녀에게 요구되는 덕목일법한 내용으로 고르고고른 대답이었다. 목정 가의 삼남 역시 공녀에게서 솔직한 심경을 듣고픈것은 아니리라. 설령 맞다한들 무어라 말하겠는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것 같지않은 곳이라고? 어느새 그대에게 예사로이 허리를 숙이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든다고? 그러다 이어지는 질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대관절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지? 우스워하길 바라기라도 하나? 그럴리가!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날이 화창하다하여 웃는 사람은 드무옵니다. 날씨란 맑은날이 있으면 궂은날도 있기 때문이옵니다. 사람의 변화무쌍함이 어찌 날씨의 변화만 못하겠사옵니까?"
날씨가 오락가락하는걸 이치에 어긋난다고 꾸짖겠는가 불공평하다고 꾸짖겠는가? 그런다고 원하는날씨가 오지도않는데. 마찬가지로 목정가 삼남의 변덕도 뭐라 탓하든 소용없다. 이는 스스로를 다잡는 말이기도 했다. 이 자가 지금 평범한 사람처럼 유순한 모습을 보이고있다해서 착각해선 안된다는. 저런 모습은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일시적인 변덕에 불과하다는. 목정 가의 인간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차나 다름없을수록 제국과 목정 가는 적이라는 분별력이 오기로든 독기로든 유지될것이므로
잡념을 품지 않는다라. 고향에서 강제로 제국까지 오게 된 공녀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도읍의 중심에 있는 자신의 본가에서 나와서 이 저택에 왔을때도 한동안 심란했는데 자신보다 몇십배는 먼거리를 오게 된 화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일개 시녀에게 지나친 관심을 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다른 시녀들의 눈도 있으니까 말이다.
" 고작 일주일 됐는데 잡념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겠지. "
사실 그는 저번 화와의 첫만남에서 가족을 들먹인 것을 꽤나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장남과 차남이 두살 터울이고 차남과 삼남이 여덟살, 다시 삼남과 장녀가 두살 터울이라 위의 2명과 아래의 2명이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곤 했다. 거기에 결국 가문은 장남이 이끌어갈 것이고 차남은 장남의 옆에서 보좌를 하게 될테니 삼남과 장녀는 그런 면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상당히 무뚝뚝한 장남과 그보단 덜하지만 자상하다곤 하기 힘든 차남과 달리 삼남과 장녀는 성품이 좀 더 온화했고 활기찬 편이었다. 비록 지금은 오랜 세월 저주에 의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서 어릴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 그런걸로 탓할 생각은 없다. 시종의 생각까지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꿀물로 몸을 덥히니 생각보다 몸 상태가 괜찮은듯 싶었다. 하지만 자면서 몸이 지나치게 긴장했던 탓일까 오른팔이 상당히 저려왔기에 그는 화를 바라보고선 오른팔을 걷어붙인채 내밀었다.
" 팔이 상당히 저려와서 업무를 보기 힘드니 팔을 좀 주물러주면 좋겠구나. "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가 이렇게 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심신이 지친 상태라는 것이었다. 예민함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진 심신일때는 그의 어릴적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랬기에 저택의 집사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남아있는 것이었다. 삼남은 원하지 않았던 고통이었으니까.
" 말하는 것을 보니 양갓집의 규수였나보구나. "
연의 물음에 답한 화의 단어 선택에 그는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물론 제국의 핵심 귀족 중의 한명인 목정 가의 시녀들은 힘없는 귀족들의 딸들이 들어와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중앙 정계에 줄을 서고 싶어했고, 혹여 눈에라도 띄어 첩실이라도 된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녀들은 본가에만 있었고 그 수도 많지 않았기에 절반 이상은 평민 출신의 시녀들이 많았다. 그리고 연이 머물고있는 저택의 시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평민 출신의 시녀들만 있었기에 화의 대답은 그의 입장에선 흥미로운 것이었다.
" 하지만 폭풍우 다음의 화창함은 나에겐 맞지 않는 표현이지. 그저 폭풍의 눈에 들어와있을뿐이다. 내 인생은 화창한적이 없었으니. "
굳이 꼽자면 어린 시절이 화창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에겐 이미 흐릿해지는 기억일뿐이었다. 떠올렸을때 간신히 희미한 미소만 지을 수 있는 그런 기억.
유화의 속내를 간파라도 한듯 목정 가 삼남은 덤덤히 대꾸했다. 부드럽다기엔 맥없는 음성이 어쩐지 체념적으로 느껴졌다. 동요한 티를 감추기어려워 고개나 더욱 숙였다. 가슴이 뭉근히 저려왔다. 잡념을 탓하지 않겠다는 것은, 속마음까지는 제약하진 않겠다는 배려일까 네깟것들의 마음이 어떻든 뭘 할수있겠냐는 오만일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여유일까 아니면, 시종이 제게 호의를 가질리없다는 자포자기일까. 일순 뻗친 공상을 맞잡은 손을 비틀어 몰아냈다. 어느쪽이든 알게 뭐란 말인가? 설령 저 자가 시종과 가까워지길 바란들 그게 대수랴? 선대의 만행에 무감각하니 저주도 자업자득, 하루가 멀다하고 호통에 신경질이니 시종들의 반감도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그저 이순간이 심상하게 지나가기만 바랄따름이다. 여느때처럼 서류더미 말고는 무엇하나 거들떠도 보지않게 되면 옷바구니를 챙겨서 물러나올 심산이었다.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졌다면 운좋은 일이었겠으나, 목정 가의 삼남은 몸이 영 편치않은지 다음지시를 내렸다. 양손에 밴 땀을 소매안쪽에 얼른 닦고 손난로가 거치적거리지않도록 옷바구니로 옮겨놓았다. 그러고 그의 어깻죽지를 주무르기 시작한순간 저도 모르게 머뭇거려졌다. 기묘한 감각. 부모님이 나이드신뒤 안마를 하면서 느낀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어릴적엔 두손을 다 펼쳐도 거머쥐기어렵던 쥐도새도 모르게 가늘고 약해진 팔뚝에 울컥했던. 아무리 머리가 하얗게 다 샜다해도 아직 청년이거니와 왜소한체격도 아니건만 팔은 어쩌면 이리 여리여리한지? 손끝도 손아귀도 야물게해야 근육이 풀어진다는걸 아는데도 선뜻 힘이 안 들어갔다. 원수에게 그렇게라도 고통을 가하면 통쾌하지않은가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도 그러했다.
"편치않으시오면 일러주시옵소서."
목정 가 삼남의 오른팔을 어깻죽지부터 손목까지 되풀이해 안마하는데 집중하고자했으나 그의 반응에는 이를 앙다물지 않을수 없었다. 양갓집. 맞는말이다. 희가 제국의 볼모로 전락할뻔하고 자신이 공녀로 바쳐진것도 한갓 서출(庶出)로부터 이어져내려온 우리 일가조차 아라의 반제국세력을 규합할 위험분자로 간주될만큼 유 가(柳 家)의 명망이 드높았던 탓이니.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통에 억지로 멈추었다가 다시 그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순간 억세져버린 악력이 화근을 만들지않았길 바라면서.
간신히 다잡은 마음이 착잡해진것은 목정 가 삼남의 비유 때문이었다. 화창한적 없었다는건 혹 저주때문일까? 생전 햇빛 한번 쬐지못하고 수시로 사람의 피를 마셔야한다면 누구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긴 버거울게다. 허나 어쩌겠는가? 설령 그 저주가 피의 저주라한들 가문이 절딴나기까지의 원념(怨念)이 그 주범을 향하는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선조들의 피맺힌 한에 내가 개입할 자격은 없다. 유 가의 도술비방서 내용이야 기억하고있다만 내게 도술능력은 전무하다. 기적적으로 도술능력이 생길지라도 해주(解呪)의 조건중 하나는 저주받은 이와의 혼인. 안될일이다. 오히려 그런 비방의 존재가 알려지면 큰일이다. 저주를 풀랍시고 우리 가족을 인질삼아 협박할게 뻔하니. 어지러운 속을 누르고 되는대로 지껄였다.
"길고긴 장마도 끝이 있사옵고 폭풍우도 언젠가는 그치는것이 자연의 이치이옵니다. 사람의 삶도 비슷하지않겠사옵니까."
폭풍우를 피할수없다면 끝나기를 기다리는수밖에. 그건 일종의 기원이었다. 목정 가의 시녀로 전락한이상 일평생 좋은날을 바랄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견디다보면 끝이 있으리라고, 하다못해 생이 다해서라도 끝은 나리라고, 이 저택에서 소리소문없이 명을 다하더라도 가족이 무탈하다면 그것이 곧 희망일거라고,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자신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보며 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난 뒤엔 항상 후회하곤 했지만 화에겐 그것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다른 시종들과 다른 점이라곤 아라에서 온 공녀라는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지는 그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런 감정은 지금뿐이고 내일이 되면 또 사소한 것에도 짜증내는 괴팍한 목정 가의 삼남이 되어있겠지만 말이다.
화가 안마를 시작하고 연은 그저 말없이 팔을 내어주고 있을뿐이었다. 무를 숭상하는 집안이니 기본적인 근골은 좀 있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야위었다는 인상을 피하기는 어려워보였다. 두 형들은 어릴적부터 무술을 수련하여 탄탄한 몸을 갖고 있었으나 그는 무술을 배울 나이쯤에 저주를 몸에 심게 되었다. 그러니 미치지 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가 저주를 받아내기 전에 있던 사람은 금세 미쳐서 방에 감금되어 평생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 당숙께선 죽어서 이 굴레를 벗어나셨지. "
결국 폭풍우가 그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허나 쉽사리 죽지도 못하는 몸. 그저 점점 마모되어 가는 정신이 자신이 죽을때까지만 버티길 바라는 수 밖엔 없었다. 피의 갈증이 불러일으키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금세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달에 한번 있는 사형수들의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팔이 어느정도 풀렸다고 느껴지자 그는 오른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됐다는듯 손을 두어번 흔들었다.
" 너도 마찬가지겠구나. "
그래, 그가 화에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바로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죽어야지만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신과 죽어야지만 제국에 바쳐진 공녀라는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는 그녀. 서로 겪는 것은 분명 달랐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법은 똑같았기에 그랬던게 아닐까 싶었다. 애매한 동질감이라는게 이렇게 무섭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버린 연은 남아있던 찬물을 마시고나선 말했다.
" 이제 나가봐도 좋다. 곧 다른 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니 집사를 보면 내 방으로 곧장 오라고 알려주거라.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으니 본격적인 활동 시간이다. 아마 본가에 갔던 시종들이 이것저것 많이 가져왔을테니 나름대로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할 것이었다. 그 자리에 화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자그마한 배려이기도 했다. 한쪽에 정리되어있던 문서를 하나 꺼내든 그는 말없이 서류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82 아마 황위의 자리는 불가능하겠지만 황후의 자리엔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럼 아라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더 좋아질테고 ... 연이는 입장상 목정 가의 삼남이니까 형들보단 파워가 약할지언정 다른 귀족들보단 충분히 강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화에게 좀 더 관심을 쏟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쪽의 소식도 받으면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려고 하겠지!
간담이 서늘했다. 폭풍우가 멈추리라는걸 힘든시기가 언젠가 끝나리라는걸 나와 똑같이 죽음과 연관지을줄이야. 악담이라고 노발대발 역정을 퍼붓고도 남을 거리이건만 목정 가 삼남은 괴이쩍으리만치 차분했다. 심지어 유화의 손길이 명백히 억세어지고 어색해진 것도 개의치않는다는듯 귀족스럽게 고상한 태도로 팔을 거두었을뿐이다. 무슨 저의인지? 작고했다는 당숙이 부럽기라도 한가? 그럴리없다. 그래선 안된다. 제 조상의 만행은 아무렇지않고 가문의 위세를 못부리는것에만 혈안인 철면피가? 단순한 변덕이 고맙게도 날 상대하기조차 귀찮아하는 쪽으로 발현된거겠지.
그러길 빌고빌던 찰나 기가 콱 막혔다. 온몸이 얼어붙는데 속은 불살라지는듯했다. 마찬가지라니? 시야가 또렷한데도 어쩐지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저자가 지금 내게 공감한건가? 유 가의 멸문 따위 안중에도 없는 저자가? 노집사의 한탄이 하나둘 떠올랐다. 원래부터 저러지는 않으셨노라. 앞서 저주의 표적이 되셨던 어른께서 돌아가신뒤 저주를 뒤집어쓰신 탓이노라. 그런데도 당신이 잘못되면 저주를 옮겨받을 일가붙이를 더 안타까워하실정도로 실은 따스한분이노라. 헛소리! 유화는 손을 거두며 포개듯 바르쥐었다. 당장이라도 속량시킬수 있는 입장이면서 죽어야만 벗어날수 있겠다고 선심쓰듯 한마디하는게 무슨 공감인가? 오히려 지독한 조롱이리라.
그렇게 치를 떨어야 마땅하나 반문부터 떠오르고말았다. 그러면 나는? 해주법(解呪法)을 알고있으면서도 수수방관하기는 저자와 마찬가지 아닌가? 목정 가의 업보라고 제국과 목정 가로 인해 물건이나 다름없는 공녀로 전락한 마당에 그게 대수냐고 넘기고팠으나 억눌러도 억눌러도 의문이 새어나왔다. 저주는 어째서 목정 가 전원이 아니라 한 명에게만 돌고도는가? 가문의 계승권자에게 이어진다면 가주에게 대물림한 저주로 알겠다만 방계인 당숙 다음이 삼남? 게다가 목정 가 삼남이 잘못되면 목정 가의 다른이에게 저주가 넘어간다? 뭔가 이상하다. 마치 도마뱀의 꼬리자르기처럼... 그러다 목정 가 삼남에게서 웃음이 스치는걸 본 순간 경악스러운 전율에 휩싸였다. 그가 고통과 회한에 짓눌린 인간으로 보여서. 그가 나머지 일가를 위해 감당한다는 저주와 내가 우리가족을 위해 살아내야만하는 공녀로서의 삶과 겹쳐보여서.
이러면 안되는데. 저자는 원수이고 적인데. 지금은 잠잠해도 아무때고 또 행패를 부릴텐데. 정신을 바짝 차리려도 엉망진창이라 나가란 말도 순간 못 알아듣고 버벅거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도 옷바구니만 수습해 허둥지둥 나오는게 고작이었다. 문 여닫는 기척만은 어찌어찌 죽인듯도 하나 그의 방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연이가 정원산책은 종종 한다면 정원이 평소에도 말끔히 정돈되어있겠구나~ 난 연이가 방밖으로 나가는걸 기피해서 정원도 황량해졌을줄만 알았지뭐야?(민망) 으아~ 꽃단장도 해준다니 유화는 당황할지 어쩔지몰라도 나는 들뜬다아아아~ 연이나 유화나 설정상 미인들이라 고울거야 고울거야(김칫국)
앗! 처형된 직후에 먹는게 아니었구나~ 그럼 혈액을 다 제공한 사형수는 어떻게됐을까?(착석) 살아남았다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대신 지속적으로 혈액을 제공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풀어주면 사형수가 처벌을 모면하는건 둘째치고 연이에 대해 떠벌리고다닐 위험이 있어서 곤란했을거같고.. .(곰곰)
하늘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잿빛 땅거미가 어둑하게 깔렸다. 달도 기와지붕위에 큼지막하게 걸터앉았다. 여기 올 무렵엔 분명 손톱끝같은 초승달이었을텐데 그새 동글동글 차오른 달. 저 달이 하늘로 치솟지않고 게으름피우고 싶어하는듯한건 내 심정이 그래서일까. 홀로 볕을 쬐고파 잠을 줄인다고 줄여도 아침이슬보다 빠르게 스러져버리는 낮시간을 아까워하며 유화는 요 며칠 그래왔던대로 목정 가 삼남이 마실 차와 입을 옷가지를 챙기러 움직였다.
이리된 연유는 모르겠다. 목정 가 삼남이 흡사 무슨 둔갑이라도 한것마냥 사람처럼 굴었던, 알고보니 이 저택의 사용인 다수가 목정가의 본가에 다녀왔다는 그날이후 목정가 삼남이 기침할시간에 맞추어 시중을 드는건 유화의 당연한 역할처럼 되어버렸다. 사용인을 총괄하는 노집사가 두말않는건 그러라는 암묵의 지시인지? 혼란스럽지만 군소리가 나오지않는건 그럴주제가 못되어서인지 어느새 이저택에 적응해서인지?
그렇게 심란하고 미묘해도 주방에 들어서면 감탄부터 나온다. 목정 가는 목정 가라는건지 집기부터 식재료까지 하나같이 최고급이고 뜨끈한물과 얼음도 언제든 준비되어있다. 이번에도 따뜻한 물에 꿀 한숟갈을 섞은다음 샛노랗게 말린 감국을 몇송이 담갔다. 감국 특유의 은은하고 싱그러운 향과 뜨끈한 김이 어우러져 훈훈하다. 의욕없이 손질했는지 꽃잎이 온전한 송이가 드물긴하지만 감국 자체는 누가봐도 최상품이다. 이토록 부유한 저택이라 사용인들의 처우도 의식주수준만 따지면 본가에서보다 호사스럽다. 배곯을 일도 숯불이 꺼질까 조마조마할 일도 없다. 사용인 하나하나가 숯을 채운 손난로를 들고다닐수 있을 정도니 할수만 있다면 내가 쓰는걸 가족들에게도 보내고플 지경이다.
그러나 감탄은 이내 한탄으로 돌아온다. 제국의 번영이 그러하듯 목정 가의 부(富) 역시 우리 유 가를 비롯한 수많은 목숨을 거름삼아 거둔 열매니까. 그걸 알면서도 볕에 바짝 말린 옷가지를 옷방에서 꺼내자마자 손난로로 데우고있으니 실로 우스운 노릇이지않은가? 내 나라와 내 선조들을 해하고 나 역시 시녀로 전락시킨 원흉에게. 그러다 또 오락가락한다.
너도 마찬가지겠구나.
그때만은 그가 인간같았다. 나와 다를바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어느쪽이 진짜모습일까? 수많은 가문을 멸족시킨 내력마저 어제 먹은 음식과 다름없게 취급하는 인면수심? 일가붙이를 위해 스스로를 저주의 제물로 바치고 감내하는 희생양? 우스워졌다. 사람이 한가지 마음만 갖는것도 아니고. 이건 흡사 폭풍우치는 날씨와 맑게 갠 날씨 중 어느쪽이 진짜 날씨인지 따지는격이다. 제 가족에겐 끔찍한 자가 아랫것을 비롯한 타인에게는 다른의미로 끔찍해지지 말란법 있는가? 그걸 속속들이 안들 무슨 소용인가? 그래봤자 그자는 목정 가 삼남이고 언제든 날 가지고놀수있는 자이거늘. 그래도 다들 무사만 하다면... 그 일념을 곱씹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눈앞이 부얘진 탓일까? 부모님도 희도 얼굴이 흐릿하다. 목소리도 가물가물하다. 또렷한거라곤 꿀물을 받친 쟁반과 옷바구니의 감촉뿐이다. 습관이란건 며칠 안되어도 지독한것인지 그러고도 목정 가 삼남의 처소에는 이르렀다.
한심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을 꾹 감고 숨을 골랐다. 지금은 밤이다. 목정 가 삼남 말고도 보는눈이 많은 시각. 가족 생각한답시고 요란떨어봤자 협박당할 빌미나 제공할따름. 나는 물건이다. 이를 악물고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어젯밤에 연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가 질때쯤에 기상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낮동안 도착한 문서들을 하나씩 꼼꼼히 읽고선 가부를 결정해준뒤에 가볍게 목욕을 하고서 잠에 들었다. 남들과 다르게 밤에 활동하는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끔 있는 일이라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곤 했다. 이렇게 산지도 꽤 되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 내일은 가볍게 외출이라도 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
해가 다시 뜰 시간이 되어 잠에 들 준비를 하는 연의 옆에서 노집사가 한 얘기였다. 연이 대문을 나서지 않은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바깥 공기라도 쐴 겸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다른 시종이 얘기했다면 자신의 몸이 어떤지 알고 그런 말을 하냐면서 노발대발 했겠지만 하필 그 말을 꺼낸 것이 노집사였다. 아무리 막무가내로 나가는 연이라고 하더라도 노집사에겐 함부로 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러지 않는건 아니라서 화와 처음 만났을때는 집사고 뭐고 그런거 없이 막 해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 노야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
다른 사람들 앞에선 집사라고 부르지만 둘이 있을때는 이렇게 집사를 높여 불러주곤 했다. 어쨌든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본가에서 일하던 사람이고 지금은 별채에 와있지만 본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간만에 나가는 외출이지만 밤 시간이라 딱히 구경할 것은 없어서 잠깐 산보라도 하고 올까, 생각하며 그는 잠에 들었다.
중간에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드는 것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새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주란 이런 몹쓸 증상을 동반하고 있었다. 잠을 쉽사리 들 수 없게 한다던지 이유 없이 몸을 아프게 한다던지. 이는 피를 먹으면 한동안은 해결이 되었지만 그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피만 섭취하고 있었으니 만성적인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앉은 그는 금방 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답했다.
" 들어오거라. "
유 화, 아라 지역에서 공물과 함께 바쳐진 공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요청으로 황궁에 가기 전에 받아오게된 이 공녀는 분명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양갓집의 규수임에 분명했다. 다른 시종들과는 다르게 고귀한 기품 같은 것이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 와서는 다를바 없는 시녀이니 별로 신경쓰지 않으려했지만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신경 쓰이고 있었다. 처음엔 어머니와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조금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 오늘은 외출을 할 것이니 준비하거라. "
화가 가져온 차를 한모금 마신 그는 화에게 말했다. 평소 외출할땐 노집사와 함께 가곤 했지만 오늘은 자신을 모시는 시녀가 있으니 같이 나갈까했다. 그런데 화에게 외출할때 입을 옷이 있을리 없었기에 그는 종을 울려서 다른 시종을 불러냈다. 저번 악몽을 꾸고나서 마련한 작은 종은 다른 사용인들을 부르는데 사용되었다. 그의 부름에 금세 다른 사용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방으로 들어왔고 연은 들어온 자를 흘끗 바라보며 얘기했다.
" 외출할터이니 화에게 외출복을 입혀주고 가볍게 꾸며주어라. "
밤이라 할지라도 목정 가 삼남의 외출이었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도 어느정도 수준은 갖춰야하는게 맞다 생각했기에 한 말이었다.
별다를것 없는 하루이리라 예상했다. 목정 가 삼남에게 차와 옷을 전하는대로 물러나와 문앞에서 대기하다 이따금 가벼운 다과를 들이거나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노집사를 비롯한 사용인이 찾아오거나 전갈을 보내면 알리고 새벽녘이 다가오면 목욕물을 데우는 반복적인 일상. 요 일주일간은 목정 가 삼남이 변덕을 부리지도 광기를 드러내지도 않아 평이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였다. 하여 방심해선 안된다고 스스로를 잡도리하면서도 오늘도 으레 그렇겠거니 풀어졌었나 보다.
하지만 차와 옷을 두고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니 목정 가 삼남이 외출준비를 하란다. 옷시중을 하란 소린가? 상황이 얼른 파악되지않아 오도카니 있는데 그가 종을 흔들었다. 얼빠져있었다고 경이라도 치려는지? 긴장을 놓았다는 후회와 어째야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뒤섞였을때 다른 시녀가 지극히 공순한자세로 오도록 아무 대처를 못했다.
그런데 목정 가 삼남의 반응은 상상밖이었다. 시녀도 당황했는지 고개숙인채 굳었다가 내처 꾸벅이고는 유화를 잡아끌었다. 지체했다간 피차 좋을거없다고 닦달하는듯한 완력이었다. 그렇게 끌려나오기 무섭게 시녀에 의해 별채로 이끌렸다. 뒤이어 시녀는 유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치수를 바로 파악한것처럼 옥색 창옷[氅衣]은 물론 노란꽃으로 장식된 연둣빛 옷섶이 돋보이는 담황빛 감견(坎肩, 조끼), 대나무 무늬가 수놓인 붉은 연봉의(莲蓬衣, 망토)를 차례대로 유화의 발치에 던졌다. 저고리와 바지위에 껴입으면 된다면서. 그제야 상황파악이 될것같았다.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의 도련님께서 출타하시는걸 뫼시려면 행색이 말쑥해야한다는 의미로군. 군소리않고 차려입자 이번엔 의자에 강제로 앉히다시피하더니 주먹만 한 꽃장식을 머리에 달면서 비녀를 꽂고는 귀에 귀걸이도 걸었다. 거기에 더해 눈을 감으라더니 화장까지 아주 거침없다. 혼이 쏙 빠진것만 같은데 눈을 감은 탓인지 목정 가 삼남에게 불린 이름이 귓전에 맴돈다.
화(花)
무미건조하기는 여느때와 마찬가지였는데도 어쩌면 이리도 골을 울리는지. 그가 어머니의 함자 운운했던 탓일까? 목정 가 안주인의 이름은 모르겠고 알고싶지도 않다만 목정 가 삼남이 이름으로만 부르는건 안심되기도한다. 성과 이름을 합친 버들꽃이라는 의미의 호칭은 부모님과 이웃들에게 불렸던것이기에. 목정 가 안주인의 이름은 아마 화보다는 유화와 더 비슷한 모양이니 목정 가 삼남이 어머니의 함자를 입에 담을정도로 막나가는 자는 아님에 감사해야할까? 그리 느끼면서도 외자 이름은 어쩐지 묘한 울림을..
그때 별안간 등을 떠밀려 엎어질뻔했다. 여태 꾸며주던 시녀가 냉큼가라고 재촉이다. 윗전의 노여움을 사는게 어지간히도 무섭나보다. 주춤주춤 일어나 목정 가 삼남의 처소로 돌아가는데 집안이 너무나도 고요하다. 유화가 온뒤로 늘상 처소에만 박혀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출타한다면 분명코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일진대 어이해 채비하는 움직임이 없는지? 마차에 행차를 알리는 하인에 또 그의 성미를 생각하면 시중들 시녀도 나만으론 부족할텐데. 무엇보다 호위무사는 불렀을까? 저택에서야 누구도 허튼짓을 못하게끔 경비가 삼엄할터이나 밖은 그럴리 만무하다. 제국의 내부정세는 모르나 제국에 착취당하는 여러나라에서 무력시위로 목정 가의 자제를 노린대도 이상할것 없다. 당장 나부터가 저자를 죽이고 달아나... 비웃음이 구역질처럼 비집고올라왔다. 그런식으로 탈주해봤자 범인이 나인게 들통나면 제국에서 우리가족을 내버려둘리 만무하지않은가. 나와 전혀 무관한 이가 습격한대도 내게 죄를 뒤집어씌워 보복하지나않으면 다행이지. 어느덧 지붕을 뛰어넘은 둥근달이 어서 서편으로 떨어지길 바라며 유화는 목정 가 삼남의 방문을 두드렸다.
"채비하였사옵니다."
그러고 그쳐도 됐으련만 군소리를 덧붙이고 말았다.
"더 대동할 인원이 없사옵니까? 신변을 위하옵자면 호위는 필요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아무래도 께름칙했다. 저자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생긴다는게. 그랬다간 내가 뒤집어써서 우리가족이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게. 그래, 이건 저 자를 염려하는게 아니다. 목정 가의 일원이 어찌되든 알바아니다. 단지 내 가족을 위해서, 그뿐이다.
화를 꾸미라는 소리를 듣자 연의 앞에 서있던 두 시녀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른 시녀가 화를 끌고 나가다싶이했다. 우물쭈물거리다간 자신의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그런 것이겠지. 그런 반응에 잠시 씁쓸한 웃음을 지은 그는 다시금 종을 울려서 다른 시녀들을 불렀다. 이미 자신이 외출한다는 사실을 집사에게 들었을터라 그녀들은 양손에 한가득 옷가지와 소쿠리를 들고왔다. 아무리 저주로 비루해진 몸일지라도 그는 이 저택의 주인. 그러니 외출할때는 고급스러운 소재의 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내고선 초췌해진 얼굴을 약간의 화장으로 가리는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엄청난 불호령이 떨어지겠지만..
" 이만하면 됐다. "
평소 실내에서 입던 바지 저고리와는 다른 것으로 갈아입은 그는 시녀들이 들고있던 학창의를 몸에 걸쳤다. 흰색의 바지 저고리와는 다른 검은색의 학창의는 흔히 보기 힘든 색이었다. 그 위에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갖옷을 걸친 그는 몸이 무거워지는게 싫은지라 추위에 대비해 이것저것 더 입히려던 시녀들을 제지했다. 그 사이에 머리는 말끔이 빗어져 꽁지로 묶였고 수척하던 얼굴은 가까이서 보지만 않는다면 말끔해져 있었다. 시녀들을 보낸 그는 금방 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방 밖으로 나갔다.
" 꾸며놓으니까 썩 보기 좋구나. "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시선을 아주 잠깐 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간만에 입은 외출복이 익숙치 않은지 이리저리 돌아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던 그는 화의 말에 답했다.
" 여긴 제국의 수도이자 이 나라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도시 중에 하나다. 거기다 노릴거면 형님들을 노리지 구태여 날 노리진 않을 것이다. "
그러니까 호위는 딱히 필요 없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제국의 적이 많다고는 하나 수도까지 올 정도로 간이 큰 적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리고 수도에 잠입한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다른 지역들보다 위병이 수배는 더 많이 배치 되어있는 곳이라 기회를 노리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어쩌다 기회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 기회를 자기 같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에게 쓰진 않을테니 결국 호위는 필요 없다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 될지도 몰랐다.
" 가보자꾸나. "
그는 저택의 대문으로 향했다. 평소에 실내에서 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의 발걸음 답지 않게 그 보폭이 꽤나 큰 편이었다. 시원시원하게 내딛는 그의 다리는 지금만 봐서는 시내를 순찰하는 위병들의 발걸음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덕분에 대문과 그의 방 사이의 거리가 멈에도 불구하고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언질을 받은 것인지 문지기들의 신호와 함께 대문이 열렸고, 그는 화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 어디 가고싶은 곳이 있느냐? "
원하는 곳이 있다면 자기가 안내해주겠단 뜻일테다. 그야 화는 저택 바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테니 말이다.
- 그러나 유화가 거듭 새기는 결심은 실상 모순되는 감정과 자기기만으로 점철된 것. 목정가 삼남이 고통을 내비칠때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밀려든다는 진실을 막으려는 부질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
어쨌거나 대문이 열린 시점에 유화는 또다시 놀랄수밖에 없었다. 목정 가 삼남의 외출인데 탈것이라곤 없다. 애초에 탈것을 탈 생각도 없었다는듯 태연스럽게 나선다. 더구나 당연히 중요한 용무가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행선지를 정한것도 아닌듯하다. 순간순간 날카롭게 스치는 시린 밤공기가 황당함을 더하나 토를 달아 무엇하랴? 유화는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손목으로 옮기고는 방한용품 바구니에서 손난로를 꺼내 목정 가 삼남에게 내밀었다.
"밤공기가 차옵니다."
하문한 말에 답할 궁리도 아니할수가 없었다. 아니 가고싶은 곳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향집부터 떠올랐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죽어서도 가기힘들 꿈. 홀로있을때 고향방향을 바라보는걸로 족해야만 하리라.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목정 가 삼남의 몸에 무리가 가지않고 그가 수틀려서 사나워지더라도 속히 돌아올수있는 정도로만 나가는게 속편할거다. 그렇다면....
제국의 수도에 관한 소문은 아라 전역에 퍼져있었다. 불을 붙이지않아도 몇달은 너끈히 주위를 밝힌다는 등불, 사람을 싣고 저절로 움직인다는 쇳덩어리, 먼데 떨어져있는 사람에게도 목소리를 바로바로 전한다는 상자 등등 제국의 수도는 귀신이 조화를 부린 물건이 도처에 깔려있다고. 그러한 술수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제국이 오늘날의 입지를 차지한건지 내눈으로 직접 봐두는것도 무의미하지만은 않을성 싶었다.
날이 쌀쌀한 요즘엔 몸이 좋지 않은 삼남을 위해서 저택은 항상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집안에서 계속 머무는데다 나간다고 해봤자 저택의 후원이나 안뜰 정도를 도는 정도였기에 그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파고드는 한기에 생각보다 더욱 추운 날씨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녀들이 계속해서 옷을 입히려는 것을 무겁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했던 연은 그냥 입히게 놔둘껄, 하는 후회를 하면서 화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침 화가 자신에게 손난로를 내밀었고 냉큼 받아들었다. 자칫하면 몇날며칠은 앓아누울수도 있었고 이는 괜히 일이 밀려서 나중에 더 큰 고통을 초래하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었다.
" 신문물이라 ... 늦은 시간이라 보여줄만한건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를 정복했던 제국은 전쟁이 끝나고 군사 기술을 모두 일상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영토를 쉽게 통치하고 기술력을 제공하여 정복한 지역의 민심을 잡기 위함이었다. 허나 모든 기술을 제공해주진 않았기에 제국의 본토였던 곳과 정복한 영토의 기술력 차이는 꽤나 심하게 나는 편이었다. 아라에서 온 화가 궁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는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마침 오늘 등불탑이 시험 가동을 하는 날이니 그걸 보러 가면 될 것 같구나. "
제국은 이제 막 전기를 발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을 끓여서 생기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국의 과학자들은 터빈에서 나온 전기로 거리를 비추고 있던 기존의 가로등들을 교체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일정 시간이 되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불을 붙여주어야했고 비라도 오는 날엔 전부 꺼져버려 길거리가 너무 어두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불편한 점도 분명 없어질터이니 제국의 과학 역량은 모두 전기에 쏟아부어지고 있었다.
" 내 여동생이 말하기론 내 키의 2배는 될법한 탑에 등이 잔뜩 켜져있다고 하더구나. 불도 안붙이고 말이다. "
그의 여동생은 이미 시집을 간 상태였지만 종종 그의 저택에 놀러와서 시간을 보내고 가곤 했다. 위의 두 형이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것처럼 그와 그의 여동생도 두살 터울인지라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저주를 받아들이고나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진 나머지 여동생에게 심한 말을 퍼부은 적도 있어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네가 살던 지역은 어떤게 유명하느냐? 태어나서 수도 바깥으로 나가본적이 단 한번도 없어 그런 부분은 잘 알지 못하니 말이다. "
적어도 제국의 영토는 증기 기관차가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비교적 수월했지만 몸이 약한데다 낮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연은 그런 혜택을 전부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문서에서 보이는 것들로만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뿐.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손님이 오면 이런 얘기는 꼭 듣는 편이었다.
으윽 밤낮이 바뀌어버렸따 .. 내일은 꼭 낮에 안자야겠어! 유화가 냉랭한건 정말 괜찮아! 아직 목정 가문에 대한 분노가 남아있을 시기니까 말이야. 고향에 가고 싶기도 할테고. 데이트 코스는 나중에 연이가 제대로 데려가 준대~~ 이번엔 집사가 나가라고해서 마지못해 나온거에 가까우니까 말이야! 후후 그땐 잔뜩 보여주러 다녀야지.
어두운탓에 잘못봤는지도 모르나 손난로를 받아드는 목정 가 삼남의 손끝이 푸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털옷을 걸쳤다고는 해도 바깥날씨가 그의 거처와는 딴판으로 쌀쌀하고 찬바람은 날카롭게까지 느껴지니 추위를 아니 타기는 어려우리라.
"잠시 기다려주시옵소서."
양손의 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우선 털토시를 꺼내들었다. 그런다음 손난로를 털토시 한가운데에 밀어넣고는 그의 손을 털토시 양쪽구멍에 하나씩 넣었다. 난로가 천천히 식도록하는 동시에 온기가 오롯이 그의 손에 전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리하면 손이 덜 시리실 것이옵니다."
그렇다해도 온몸에 부딪는 바람까지 막기는 역부족이다. 유화는 제 연봉의를 벗어 목정 가 삼남에게 두르고는 매듭지었다. 체격차이가 차이인지라 그에게는 작다만 토시만으로는 가려지지않는 부분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망토자락이 막아주길 바라며. 등골과 팔을 따라 오스스 소름이 돋는것 같았으나 목정 가 삼남이 탈나게 두느니 좀 춥고마는게 속편하다. 단둘이 나온 길인데 이 자에게 문제라도 생겼다간 후환이 두렵거니와 일이 어떻게돌아가든 이 자는 살아야하니까.
"갑갑하시더라도 참아주시옵소서."
망토자락을 한껏 당겨 여미고는 바구니를 도로 챙기자마자 어리벙벙해졌다. 그가 가는대로 따라가면서도 상황파악이 안됐다. 행선지를 아니정하고 나온것도 놀라운데 이토록 순순한 반응이라니? 이 자가 진정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않고 심기에 거슬리면 앞뒤 안가리고 악부터 쓰던 목정 가 삼남이 맞나? 이 정도면 예측할수 없기가 날씨보다도 더한것아닌가? 날씨도 동짓달에 삼복더위가 찾아오지는 않는법인데.
경악스러우면서도 등불탑이라는 것에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토록 큰탑에 잔뜩 단 등이 불을 안붙여도 켜진다니? 불씨없이도 한밤중에 빛나는것이라곤 달빛이나 별빛말고는 상상이 안되는데. 달과 은하수를 몰아넣기라도 한것같은 탑이든 진짜로 등불같은 불빛으로 촘촘한 탑이든 실재하리라고 믿기란 쉽지않다. 도깨비가 조화라도 부렸다면 또 모를까. 그도 직접 본건 아니라고 소문이란 전해지면서 과장되거나 와전되기도 하는법이니 실제로는 전혀 다른 물건일수도 있지않을까? 하지만 정말로 그가 말한대로의 탑이라면 제국의 강성함은 천지조화도 마음대로 할 정도라는것 아닐지? 호기심과 의심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가운데 해소되지않은 문제도 마음에 걸렸다. 벌써부터 추워하는 그가 그 탑까지 다녀와도 무탈할것인가?
"납시온다면 따르겠사옵니다만 존체를 먼저 돌보아주시옵소서."
목정 가 삼남의 몸뚱아리를 존체라 일컫는 스스로가 한심해 순간 추위도 잊히는듯했다. 그러나 감수해야한다, 저 자가 오래오래 살도록 진심전력을 다하자면.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지는않는지 입김에 주목하여 가늠하던 찰나 고향의 신문물에 관해 그가 물어왔다. 되짚어보니 대다수는 풍문으로만 들은것들이라 이렇다저렇다 말하기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문물은 확실히 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이 전혀 끌지않아도 수십수백명을 태우고 먼길을 오간다는 신이한 쇳덩어리나 사람이 하는 말을 전혀 엉뚱한곳까지 전할수있는 소리상자에 관해 들은적이 있사옵니다만... 제게 가장 신이했던 물건은 머리만 문질러도 불이 피어오르는 요술막대기였사옵니다."
그 자그마한 나무가 세상 어떤 부싯돌보다도 쉽고 빠르게 불을 피우는걸 직접 봤을때 어찌나 놀랐는지. 실수로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더라도 그것만 있으면 끄떡없으니 탐나기 그지없었으나 그만큼 귀한물건이라 한번 구경한것도 운좋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목정 가에서 그 귀한 막대기를 아무렇지않게 쓰고 사용인들의 손난로에도 숯을 채우는걸 처음봤을때는 그야말로 기겁을 했었다. 저렇게 흥청망청 써도 끄떡없을만큼 제국이 혹은 목정 가가 강성하다면.. 암담한 일이다.
연은 화가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분명 다른 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어딜 자신의 몸에 손을 대냐며 경을 쳤겠지만 화가 하는 행동에는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았다. 털토시에 손이 끼워지고 느껴지는 온기가 시렸던 손끝을 조금씩 뎁혀주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신의 이러한 태도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째 이 여자 앞에만 서면 이렇게 자신이 유해지는가.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서 일일이 성질을 내기 귀찮아서 그런 것이라 결론을 지어버린 그는 어느새 자신에게 둘러져있는 연봉의를 보고선 손난로를 내려놓고 연봉의를 풀며 말했다.
" 내가 이렇게 두르고 있어봤자 네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나한테도 옮는건 시간 문제다. "
등불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갈만하긴 했지만 이런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비록 손난로를 들고 있다곤 하나 그것은 손과 그 주변에 한정될뿐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니 한기가 몸 곳곳에 파고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렇기에 그는 풀어낸 연봉의를 화에게 직접 둘러주고서는 손난로를 다시 집어들고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이런 몸뚱아리에 존체라니. 어울리지도 않는 말은 별로 듣고싶지 않구나. "
저주의 부작용으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은 항상 그를 좀먹고 있었다. 뭐라도 하려고 하면 아파오고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하게 하는 이 몸은 그에겐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못해 산다는 것이 지금의 그를 표현하기에 딱 걸맞은 수식어가 아닐까. 손난로가 있으니 처음 대문을 나섰을때보단 훨씬 추위를 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질문에 화가 조금 엉뚱한 것을 답하자 그는 살짝 웃어보였지만 딱히 지적은 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얘기해주었다.
" 이곳에 올땐 배와 마차를 이용했다고 했었지. 아라쪽으론 아직 철길이 깔리지 않아서 그랬던 모양이로군. 기관차라고 하는 것이 네가 말한대로 수십 수백명을 태우고 질주하지. 마차는 비교도 못할 속도로 말이다. "
그가 기거하고 있는 저택은 역과도 거리가 멀었고 주변에 철길도 없는 지역이었다. 기관차의 소음은 상당한 편이라 높으신 분들이 사는 지역 주변에는 철길이던 역이던 절대 깔리지 않았기에 평소엔 기관차가 달리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밤엔 기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야 하겠지만 그것이 기관차를 모른다면 그것이 기적의 소리라는 것도 알지 못할테니 말이다.
" 또한 네가 말한 상자는 저택에도 있다. 집사의 방에만 있어서 보지 못했겠지만. "
자신은 본가의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누지 않으니 그런 것들은 집사가 사용하는 방에 설치 되어있었다. 연은 저택의 이름뿐인 주인일뿐 실질적으로 저택을 관리하고 본가와 조율하는 것은 집사가 다 하고 있었기에 처음 그것이 설치될때 집사의 방에 설치했던 것이다.
" 다만 내가 질문한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답이구나. 나는 너가 살던 곳이 어떤 것으로 유명한지 물었는데. "
그래도 딱히 심기를 건드린건 아닌지 말투는 꽤나 온후했다.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선 드문 일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언제 날뛸지 모르는 목정가 삼남의 성미를 생각하면 멋대로 손댄건 무모한 짓이었다. 어처구니없게 트집을 잡아가며 뻗댈지도 모른다 각오도 했었다. 그러나 유화의 무모함은 영문모를 결과로 돌아왔다. 손난로를 내려놓고 연봉의의 매듭을 푼것까지야 앞뒤없는 어깃장이려니 할수있으나 그뒤가 문제였다. 지금 이게 무슨상황인지 파악이 안됐다.
'?'
찬바람의 기세가 약해졌음을 의식하고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덕분에 메마르게 닿는 소리의 의미도 늦게나마 더듬어냈으나 그결과는 있는그대로 받아들여지지않는 것이었다. 말투는 무심해도 그내용과 그의 행동에 담긴것은 걱정, 더 나아가서는 배려라고밖에는 결론지을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목정 가의 인간이 저가 추운데도 아랫것이 고뿔걸릴 것부터 염려하고있다? 성치도 않은 몸이면서? 아니다. 이건 있을수없는 일이다. 숱한 목숨을 앗아간 선조들에게 아무 거리낌도 갖지아니하는 자가 가족도 일가친척도 아닌 아랫것을 더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손난로와 토시를 다시 착용하는 목정 가 삼남을 도로 연봉의로 싸맸다.
"소인이 고뿔에 걸려봤자 다른 소임을 맡으면 그만이오나 도..련님께오서 편찮으시오면 윗전을 잘못모신 소인은 물론이옵고 모두가 힘들어지옵니다. 부디 상량해 주시옵소서."
오기로 지껄인 소리였고 굴욕적인느낌 때문에 피하고팠던 도련님이란 존칭이 입에 턱 걸리기도했으나 뱉을수록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옷가지로 감싸주는것 따위 돌발행동에 불과하다. 그래봤자 아랫것은 더욱 경을 칠 따름아닌가. 배려라 착각한건 내가 이만한 추위조차 못배기게 나약해서일뿐이다. 백번 양보해 배려라 치더라도 애초에 내가 아랫것으로 전락한게 저더러 '도련님'이라는 존칭을 써야만하는 처지가 된게 어째서인가? 배려랍시고 베푸는건 병주고 약주는 우롱으로 보는편이 옳으리라.
하마터면 혼란스러워질뻔한 사고를 가다듬었으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자조적인 대꾸. 아랫것이기에 고를수밖에 없었던 높임표현이 해묵고 치유할길없는 상처를 자극해버린 모양이었다. 목정 가 삼남이 저주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걸 지켜보기로 다짐한만큼 시원해야 마땅하건만 어찌 이리도 답답한지? 그도 모자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결국 뭔가에 떠밀리기라도 한것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하옵니다."
다른소릴 할수가 없었다. 건강이 나쁠수록 더 보중해야한다고도, 건강과는 별개로 일가를 책임져야할 입장이라고도. 언젠간 나아지시리라는 입에 발린 말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저주에 좀먹힐대로 좀먹힌 그는 희망을 바랄 기력조차 없어보였으므로. 또한 허투루라도 나아지고말고를 운운했다간 해주법을 곱씹게 될것만 같았으므로.
그나마 화제가 신문물로 바뀐것은 다행이었다. 더욱이 들을수록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도 저절로 움직이는 쇳덩어리가 진짜로 존재하다니? 그것도 마차와 비교도 안되게 빠르다고? 쇳덩어리를 달리게해주는 철길이란것에 어떤 도술이라도 걸려있는걸까? 말소리를 멀리 전하는 상자도 목정가의 저택에 있다고? 그상자를 쓰면 내 말도 고향에 전해질까?
아니품으니만 못한 헛되고헛된 희망을 흩어버리려 애쓰는데 뒤이어 나온말이 겸연쩍었다. 고향에서 이름난 신문물을 물은게 아니었구나. 엉뚱하게 이해한게 어이없는 나머지 한순간 부드러운 감정마저 일었으나 그도 잠시. 고향을 생각할수록 그립고 쓰린 마음이 들끓었다. 그자체로도 문제였지만 어찌 답해야할지도 고민이었다. 자칫 가족얘기를 입에 담았다간 무슨 뒤탈이 생길지 두려웠기에.
"...흔하디흔한 산골마을이옵니다. 더러는 약초를 캐고 더러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더러는 행상(行商)을 상대로 이런저런 거래를 하는. 그나마 차를 우리기좋은 꽃이나 약초가 흔하옵니다만 그쯤이야 여느산에나 널리고널린 것이옵니다."
이만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뺀거라곤 미골이라는 마을이름과 증조부께서 유랑민으로 전락한 십여명을 규합한끝에 일군 마을이라 유 가(柳 家) 마을로 알려졌다는것뿐. 그런 이력이 희를 볼모삼으려는 움직임에 일조한셈이라 마음만 먹으면 내 가족을 얼마든지 해칠수있는 자에게는 가능한한 감추고싶었다. 진즉에 유 가임을 꽁꽁 숨기고살았더라면. 이제와선 부질없는 공상이 속을 할퀴어댄다.
기껏 연봉의를 다시 둘러주었더니 손난로를 집어드는 사이에 다시금 그의 목에 연봉의가 둘러졌다. 아무래도 화의 입장에서는 그가 자신과 함께 나갔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돌아온다면 다른 시종들이 경을 칠테니 그는 별 수 없이 연봉의를 잠자코 둘러맸다. 자신이 아플때마다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잘 알고 있으니 시종들이 그런 반응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파고드는 한기가 더욱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선 내일의 몸 상태는 꽤 괜찮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 됐다. 딱히 송구하라고 한 말은 아니니. "
이 역시 그녀의 입장에선 연에게 극존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 딱히 트집은 잡지 않고 넘어갔다. 사실 그가 예민해지는 부분은 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많았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별 상관없다는듯이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전 집사의 손자가 저택으로 놀러왔다가 연을 마주치고선 괴물이라며 소스라치게 놀라고선 도망가버린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연은 집사에게 아이가 한 일이니 괘념치말라는 말을 남기고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던적도 있으니 말이다.
" 그래, 그렇단 말이지. "
화의 말에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긴듯 턱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가 집중을 할때면 곧잘 나오는 이 행동은 턱에서 손이 떨어지면 그때서야 생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선 턱을 만지고 있는 손이 금방 시려울테니 그의 생각 또한 금방 끝났다. 하지만 그가 생각에 잠겨 걷는동안 등불탑에 거의 도착했는지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한낮처럼 빛이 나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들 사이에 가려져 제대로된 모양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화의 손을 잡아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 등불탑이라는 것은 오래 켜두긴 힘드니까 말이지. 금방 가지 않으면 꺼질수도 있다. "
말 그대로 시험 가동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두긴 하지만 안전을 이유로 그것보다 더 빨리 꺼질 수도 있는지라 최대한 빨리 가서 보는게 중요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연 또한 등불탑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걸음을 빨리하는 것도 있었다. 등불탑에 가까이 갈수록 많아지는 인파 사이를 지나서 그들은 이윽고 등불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처음 보는 것이라, 그 위용이 대단하긴 하구나. "
뼈대는 철골로 되어있는데다 가운데가 숭숭 비어있어 낮에 보면 분명 흉물처럼 보이겠지만 야밤에 등불을 모조리 켜둔 이 탑의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었다. 수도에선 일부러 이것을 보려고 밤을 설치는 이도 있다했는데 그 이야기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알려주듯 주변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연봉의는 그래서 얌전히 가지고 있기로 했다! 후후 답레는 항상 꼼꼼히 읽어야지~ 유화주가 열심히 써준 답레니까 말이야. 연이가 화의 손을 확 잡아버렸는데 혹시 불편하면 말해줘! 그 부분은 수정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3 항상 아깽이라고 불러주니까 정말 연이가 아깽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목정 가 삼남의 반응은 이래저래 의외였다. 하찮은 아랫것을 이토록이나 생각해줬건만 고마운줄도 모르고 감히 어디서 훈계냐며 윽박질러도 이상할것 없다 여겼고 아픈곳을 자극당한이상 어느가문의 뉘시냐 물었던 첫날처럼 막무가내로 난리칠만도 하다고 각오했었다. 그러나 그는 연봉의를 도로 매듭짓고 여미기까지 마냥 순순했고 유화의 애매모호한 사과도 대수롭지않게 넘겼다. 송구하단 소릴 들으려던게 아니라는 건 저주받은 자신에 대한 새삼스러운 체념일지? 혼란스러웠다. 추위에 머리가 굳기라도했는지 뾰족한 답이 안나왔다. 그런끝에 마을얘기도 무던히넘기고는 제턱을 쓸며 앞장서가는 목정가 삼남을 뒤따르면서는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이자는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선의를 지니고있다. 매사 체념적이고 패악질도 부리지만 타인의 입장도 헤아려보고자 시도할의향은 확실히 지니고있다. ... 저주만 아니었다면 썩 바람직한 인품의 소유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목정 가의 일원에 대해 이런결론을 내리다니, 현실의 치욕을 버티게해준 원동력이 무너지는듯했다. 그의 저주를 풀수있을지도 모르는 입장이기에 더더욱.
무력감. 향할곳없는 원망. 밤보다 더 어두운 감정에 잠겨가던중 저멀리서 해가 뜨기시작한게 보였다. 아직 한밤중인줄 알았는데! 목정가 삼남은 햇빛을 받으면 안되지않나?! 놀라서 앞질러막으려다 그만 굳고말았다.
'?!'
해가 뜨는걸 아는지모르는지 그는 태연하기만하다. 이럴때가 아니라고 말릴새도 없이 그의 걸음이 해에 더 가까워지기라도 하려는것처럼 빨라졌다. 그런채 이어지는말에야 유화는 가까스로 상황을 파악했다. 저너머의 빛이 해가 아니라 등불탑이라는 모양이다. 그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나아갈수록 사람들이 몰려드는게 역력했다.
한숨돌린셈이나 긴장감은 엉뚱한데로 커져갔다. 그에게 잡힌 손. 이런 어색한상황이라니? 철들면서부터는 희랑 함께 다닐때말고는 누구 손을 잡은적이 없으니 더 어색했다. 희의 손은 암만해도 내손아귀에 쏙 들어왔는데 그의 손은 .. 정반대다. 내손을 다 감싸고도 오히려 품이 남는것같다. 이와중에 따스한 기분이 드는건 대관절 어떻게 된건지? 추위에 너무 오래 노출돼서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나? 그렇다기엔 지금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찬공기도 덜 들고 체온들도 전해져오는데.
얼빠진채 휘적휘적 따라갈수록 해같은것은 점점 가까워왔다. 아니 해와는 다르다. 해는 제빛을 은은한 주홍빛으로 퍼트리거나 너무 눈부셔 쳐다보기힘든 광채를 내는데 저 빛줄기는 해처럼 환할지언정 눈이 부시지는않다. 어쨌거나 그 진면목이 보이는 위치에 이르러서는 눈을 뗄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와는 다르다해도 이정도면 땅위에 해를 여럿 꽂았다해도 과언이 아닐것같다. 보면서도 못믿을 탑이고 세상 어떤 도술로도 구현못할것같은 탑이라 제국이 더욱 두려워졌다. 저런걸 만들수있다면 세상에 못할짓이 없을테니 내 조국의 미래는 어찌될까?
그때 평소의 무미건조한 태도는 간데없는 탄성이 들려왔다. 핏물처럼만 보이던 목정 가 삼남의 붉은눈동자에 빛의 탑이 환하고 따스한빛을 퍼트리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닥친 부드럽고 안온한 기분에 유화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고맙사옵니다."
수도에 살면서도 이탑을 보는게 처음일만큼 외출을 삼가온 자가 이 추위에 나왔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신문물을 보고싶다고 했기때문에. 아무리 내 처지가 싫고 제국의 강성함이 암담해도 그점에는 감사하는게 도리이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싶었다.
그렇게 안일해졌다가 아차싶었다. 외출이라곤 않던 자가 한참을 걸었으니 갈증이든 허기든 생겼을법하다. 유화는 남은손으로 차가 담긴 물병을 꺼냈다. 차가 식지않았는지 물병엔 아직 온기가 어려있었다.
"갈하실터인데 목이라도 축이시옵소서. 시장하시오면 앉아서 요기할만한 곳을 찾아보겠사옵니다."
날씨와 그의 몸을 고려하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편이 상책일듯하나 혹여라도 시장기가 심하면 돌아가는내내 참느니 챙겨온 계화떡부터 들게하는것도 방법이리라.
다행히도 연은 탑의 가동이 끝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불탑의 주변은 마치 한낮이라도 된 것 마냥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서 가까이에선 정면으로 바라보기도 힘들것 같았다. 거기에 밝기만 한게 아니라 나름 예술이라도 추구했는지 등의 배치가 어느정도 의도적인 것 같았기에 멀리서 볼수록 더욱 아름다웠다. 허나 처음 보는 것엔 호기심이 동하는지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은 조금씩 탑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물론 뜨거워서 위험하다는 위병의 말에 그 전진도 멈추었지만 말이다.
연도 처음 보는 등불탑의 불빛은 낮의 그 따스한 햇빛만큼은 되지 못하지만 비스무리하게나마 그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듯 했다. 한낮의 햇빛을 만끽해보지 못한 것이 어찌나 오래 되었는지 이런 빛조차 그는 감격스러운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뻗었다. 허나 결국 햇빛의 따사로움엔 미치지 못했기에 아쉬움만 가득히 남게 된다.
" 감사 인사는 됐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
옆에서 화의 감사 인사가 들려오자 그는 흘끗 쳐다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여기에 데리고 올 수 있는 일이었다. 집사에게 말을 해서 데려가게 할 수도 있을테고 시종들과 미리 날을 맞추어서 같이 구경 왔을수도 있는 일이니 굳이 자신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단지 지금 같이 외출을 했고 화가 보고 싶다고 했으니 마침 자신이 데려간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연 다른 시종들이 이런 말을 했을때 연이 들어주었을까, 에 대한 대답은 분명 미지수였다.
" 여기까지 나왔는데 평소에도 먹는 그런 음식은 됐다. "
등불탑의 시험 가동은 사람들에게도 행사로 통했는지 주변에 노점상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 중에선 화로를 두고 길거리 음식을 파는 사람들도 보였고 마침 그것들에 눈이 가있던 연은 화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하고선 고민이 되는지 턱을 만지작거리다 허리춤에 매여있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화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 저기 앉아있을테니 네가 먹고싶은걸로 사오거라. "
멀지 않은 곳에 긴 탁상이 군데군데 놓여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서 쉬고 있었기에 얘기한 것이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 나와있는건 그에게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기왕 나왔으니 즐길건 즐기자는 주의였다. 일이 많은 요즘엔 밖에 나올 기회도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옛날엔 이렇게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사먹는다는건 불가능했다던데 시간의 흐름이란 정말 무섭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봐놓았던 탁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심한노릇이었다. 스스로를 나무라지않으려야 않을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한들 목정가. 나라를 망국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내 가문도 멸문시키다시피한 집안이고 저주를 홀로 뒤집어쓰고 그로인해 망가졌다한들 선조의 악행에 대해서는 일말의 뉘우침조차 없는 족속이다. 그집안의 시녀로 전락한주제에 조금 말이 통하는것도 같다고 좋게 여겨버리면 어쩌자는건지?
하지만 스스로를 다스리고 다스려도 목정 가 삼남이 인파속에서 햇빛의 탑으로 다가가는 모습이며 탑에서 나오는 빛을 잡기라도 할것처럼 손을 뻗는 모습에 도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햇살이, 따사로운온기가, 빛과 온기로 인해 채워지는 생기가 그러운걸까? 붉은눈에 어린 환한빛만큼이나 온화하고 어딘지 희망적인 구석마저 있던 표정이 빛은 여전한데도 씁쓸하게 굳어가는게 신경쓰였다. 가문의 위세가 아무리 드높을지라도 인간이고 육신과 정신의 고통도 아는 자. 햇빛 한번 못쬐고 늘상 암막속에 갇혀살면서 어찌 태양이 그립지않으랴? 누구라도 저 처지라면 도술보다 더 허황한 빛이라도 잡고픈게 인지상정이리라. 그래서 보기 시린것뿐.
동요하는 제마음이 싫어 외면하려니 대수롭지않다는투의 대꾸가 돌아왔다. 묘했다. 안도가 되는듯도 하고 훈훈해지는듯도 하다. 훈훈이라니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나 그래도 뭐랄까? 어려운일이 아니란 말이 그정도는 타인에게 해줄수있다는 의미로 들렸달까? 고맙다는 반응이 익숙지않아 목정 가 삼남이 쑥스러워하는것처럼도 보인다. 그렇더라도 어쨌거나 유화로서는 평생 못할 진귀한 구경을 한것은 사실이다. 실은 가족들에게도 휘황찬란한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 부모님은 아마 아무말없이 덤덤한척하시면서도 눈을 떼지못하실거고 희라면 아마 놀란소리를 연발하며 저것 좀 보라며 여기저기 가리키겠지. 난 희가 무얼보고 그리 감탄하나 그 손가락을 눈으로 열심히 좇으면서도 못따라가고. 웃음이 눈물로 번질것같아 코를 훌쩍이고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제게는 진귀한구경이니 감사드리지 않을수가 없었사옵니다."
꼭 이런 구경거리가 아닐지라도 윗전의 사소한호의가 아랫사람에겐 크게와닿는 적지않다. 모르긴해도 목정 가 삼남은 사용인들과 그다지 교류가 없었음직한데 앞으로는 아랫사람에게 지금같은 호의를 보일만큼의 심적여유는 생겼으면 싶어졌다. 지금 저 자가 평온해보이고 좋아보여서가 아니라 그리되면 저택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들고 사용인들의 처지도 좀은 나아질테니.
애써 생각을 정리할때 목정가 삼남이 차를 마다하고는 돈을 내주었다. 평소 먹던걸 밖에서까지 먹긴싫다며. 그가 가리키는자리를 보니 곳곳에 탁상이며 의자가 있고 사람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앉았다. 가운데쯤에 모닥불도 있긴하다만 그인근은 이미 앉을자리가 없다. 난감하고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가 목정가랍시고 위세를 부리면 먼저앉은 사람이래봤자 버틸재간이 없을터라 난감한데 모닥불과 먼 자리는 비어있어봤자 춥기는 매한가지라 그가 배겨나질 못할테니 불안했다.
그런데 놀라운일이 벌어졌다. 목정 가 삼남이 누구에게 제신분을 밝히거나 하지않고 묵묵히 빈자리로 향한 것이었다. 목정 가라는 유세를 못부려 안달인줄만 알았는데 신분과 무관하게 도리를 지키기도 하는걸까? 아무튼 경멸스러운 원수가문의 위명덕에 편한자리를 차지하지않은건 다행스러우나 그의 몸상태에 소홀해질순없었다. 유화는 그가 앉으려는 자리에 바구니를 올려둔다음 물병이며 찻잔이며 계화떡이며 젓가락이며를 모조리 차려놓고 남아있던 손난로도 마저꺼냈다.
그렇게 노점상으로 향하긴했으나 뭘 골라야좋을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군침도는 냄새는 진동하는데 사람들이 워낙 몰려있어 뭘 파는지 확인하기도 일이다. 일단 뜨끈한걸 찾자. 계화떡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차도 꽤나 식었을거고 이날씨엔 뜨끈한걸 먹어야 탈이 안날거다. 그러고 돌아보는데도 엉뚱하게도 땅콩엿이 눈에 띄어버리는건 어째서인지? 희가 달고 고소하다고 웃던것이며 어머니께서 이가 아파 다 못먹겠다며 쪼개주셨던것이며 그 뭉클하던맛이 떠올라 눈물이 북받쳤다.
애써 외면하다 뒤에서 누가 툭 치고지나가는 기척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얼른 골라야지. 감정을 추스르고 살피려니 신기한게 보였다. 무슨 틀에 허여멀거한 액체랑 팥을 넣더니 그 틀을 한참이고 닫아놓는게 아닌가. 그뒤에 틀을 열자 햇빛의 탑 모양을 꼭닮은 떡같기도 하고 과자같기도 한 음식이 나왔다. 그모양에 혹한게 유화만이 아닌지 줄은 한참이었다. 어쩐다? 목정 가 삼남이 괜찮을지 불안해 내다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기까지 나와서' 먹기에는 저만한것도 드물것같다. 결국 줄을 서서는 제 차례가 언제오나 하염없이 앞을 내다봤다 바로서길 반복했다. 그런끝에 받아든 봉투는 내용물이 찹쌀떡보다도 말랑하면서도 따끈따끈했다. 온기가 조금이나마 덜 빠져나가게끔 봉투를 품에 안은뒤 다른 노점에서 따끈한우유도 한병 사서는 그에게로 돌아갔다.
"탑모양으로 만든게 있기에 사보았사옵니다. 떡인지 과자인지는 잘 모르겠사옵니다마는..."
접시에서 계화떡을 최대한 구석으로 밀어내고 남은자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탑모양의 음식을 하나 얹었다. 목정 가 삼남이 차를 이미 마시던중이 아니라면 빈잔에 우유도 따를것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도 진귀한 구경일테고 연에게도 마찬가지인 구경일 것이다. 한밤인데도 한낮처럼 빛날 수 있는 물건이라니 한시바삐 개발이 되어 널리 퍼진다면 제국의 거리는 한밤에도 휘황찬란하게 빛나게 되어 아름다우면서도 더욱 안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시선을 돌렸다. 사실 너무 밝아서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자니 눈이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감사인사는 됐다는 말에도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표하는 화를 바라본 연은 화에게 돈을 쥐어주고선 봐두었던 자리로 향하였다. 모닥불이 멀어 걱정이 되었는지 화가 가져온 것들을 모두 차려놓는 것을 보고 연은 어서 가라며 손을 훠이훠이 저은 뒤에 등받이에 등을 대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엔 달이 밝게 떠있었고 수많은 별도 같이 빛나고 있었는데 유독 등불탑 근처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등불탑의 빛이 워낙 밝다보니 별빛이 가려지는 것일까. 이대로 등불이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면 별도 잘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몰랐다. 밤을 살아가는 연에게 달과 별이란 태양 대신 미약하게나마 빛을 뿌려주는 것들이었는데 더이상 잘 보이지 않게 된다면 분명 아쉬우리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결국 받아들여야하는 일이 될 것이니 그는 조금이라도 더 별빛을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유독 밝게 빛나는 별들을 이으면 무언가 형상을 띄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별자리라고 하여 계절마다 달라지고 밤의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위치를 바꾸었기에 지금 시간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연은 귀족이니 회중시계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보단 밤하늘의 별로 시간을 알아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취미생활이라면 취미생활이리라. 허나 저택 안도 아니고 훤히 트인 광장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기가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듯 했다. 손난로를 넣어두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기온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인듯 싶었다.
' 내일은 필시 앓아눕겠군. '
사실 진즉에 돌아갔어야했다. 아마 저택에선 돌아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소식이 없음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을터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들을 찾기 위해서 시종들을 보낼 것이었다. 어딜 간다고 언질을 주지도 않았으니 찾는데 꽤나 애를 먹을테고 말이다. 그리고 평소 같았으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춥다는 이유로 들어갔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좀 더 바깥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화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것이었다.
" 꽤나 늦었구나. "
그리고 화가 돌아온 것은 그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전부 보고나서 처음 것을 다시 보기 시작할때쯤이었다. 손난로도 많이 식어서 안고있는 주변이나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기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맞는듯 했다. 그는 화가 사온 것들을 바라보았는데, 따뜻한 우유와 떡인지 무엇인지 모를 무언가였다. 모양은 탑의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등불탑을 노리고 만든 것임에 분명했다. 일단 말없이 따뜻한 우유를 받아들어 몇모금 마신 그는 온기가 몸 안을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고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느긋하게 먹고싶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가면서 먹어야겠다. "
너무 늦으면 분명 집사가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저택을 향해 가기 전에 두르고 있던 연봉의를 풀어서 다시 화의 목에 둘러주었다. 아까보다 더 추워졌으니 그대로 가기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선 접시에서 화가 사온 음식을 하나 입에 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뜨거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추운 날씨라 그런지 적당히 뜨거웠고 달달하기까지 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가끔 생각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접시에서 하나를 집어 화에게 건네어주며 말했다.
" 너도 먹어보거라. 그리고 연봉의는 네가 하고 가거라. 갖옷에 연봉의까지 하려니 답답하구나. "
아까처럼 연봉의를 다시 돌려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먼저 선수를 친 그는 천천히 저택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서 등불탑의 시연도 끝나려는지 탑을 둘러싸고 있던 등불이 하나 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달리 할말이 없었다. 탑을 본뜬 먹거리, 이름이 등불탑빵이랬던가? 빵이라는건 어떤음식인지 잘모르겠다. 과자라기엔 바삭하거나 딱딱하지않고 떡이라기엔 쫄깃하거나 탱탱하지않으니. 아무튼 그 먹거리를 사고말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기다리면서도 아주 감질이 났는데 영문모르고 마냥 앉아있으면서는 오죽이나 지루했겠는가. 움직이면서도 오싹하게 추운와중이니 목정 가 삼남이 역정을 내도 하등 이상할것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유를 잔에 채우고 등불탑빵을 하나 더 접시에 얹어도 그는 인상 한번 찌푸리지않고 그저 우유만 마셨다. 반가워해야할지 불안해해야할지 헷갈렸다. 평소같으면 저 자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만한 실수를 연거푸 저지르고있는것 같은데 어찌 이리도 잠잠하담?
당사자한테 물을수없을 질문이라 속으로만 곱씹다가 그가 일어서며 하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상민(常民)이나 우리집안처럼 영락한가문 사람들은 일상에 쫓기다 더러 먹으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만 목정가는 좋든싫든 이 제국에서 어엿한 대갓댁일진대. 그런가문의 장성한 자제가 나다니면서 음식을 먹기도하나? 의외로 행동거지에 소탈한면이 있.. .
'?!'
놀람이 채 가시기도전에 또다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연봉의를 왜 또? 유화야 여태 인파의 틈바구니에 있었던덕에 밤공기를 정통으로 맞지는않았다만 그는 아닌데. 추워도 저가 더 춥고 탈이 나도 저가 더 나겠으며 그랬다간 경을 친다고도 얘기했는데. 하지만 돌려주고자 매듭을 풀던중 또다른 이변에 굳고말았다. 목정가 삼남이 등불탑빵을 한입 먹자마자 남은 하나를 유화에게 내어준것이다. 저에게는 윗전의 심부름으로 아랫사람이 사온 음식인데 나눠먹는다? 이 무슨상황인가? 더구나 연봉의가 답답하다니?? 이건 흡사 ... 희나 부모님께 무언가를 양보하지 않을수없는 상황에 행여라도 걱정을 끼치지않도록 이런저런 핑계를 댔던게 떠올랐다. 물론 목정 가 삼남이 나를 가족으로 볼 이유는 전혀없으니 비슷한구석이라곤 없다. 허나 부모님이 아닌 사람에게서 이런식으로 양보받은적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필이면 하고많은 사람중에 목정가 삼남이?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넋놓은사이 그는 앞서나갔으니 낭패다! 유화는 등불탑빵을 욱여넣고는 늘어놨던 짐을 부랴부랴 챙겼다. 상황이 이러니 무슨맛인지도 모르겠고 빠뜨린거없이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탁상에 잠시 뒀던 돈주머니를 본 순간 비로소 머리가 돌아갔다.
"저, 저! 거스름돈이옵니다!!"
바구니를 팔에 건채로 앞질러가서는 두손에 받들어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시녀인이상 원래도 그를 똑바로쳐다보는게 불경(不敬)인 처지이다만 그걸 떠나서도 지금은 도저히 바로보질못하겠다. 그판국에 등불탑빵의 맛이 늦게나마 입에 선연해지는건 어째서일까? 따뜻하고 달달하고 폭신했다. 무엇보다 사람으로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그 상대가 목정 가 삼남이라는게 허무맹랑하고 그에 감지덕지하는게 미친거같지만 지금으로선 부정하려야 부정할수가 없다. 결국 유화는 돈주머니를 내민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비록 지금은 저택에 자의적으로 유폐된듯한 삶을 살고 있는 연이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도 목정 가의 일원, 거기에 가주의 삼남이라는 위치에 있었다. 변해버린 그의 외모는 시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화제였지만 목정 가문에 그런 사람이 꼭 한명씩 있었다는건 이젠 다들 알고 있는지라 그렇게 개의치는 않는듯 했다. 실제로 그가 등불탑을 보러 모습을 드러냈을때도 몇몇 사람들이 수군대기는 했지만 다들 그러려니 했던것처럼 말이다.
제국 시민들에게 제국 제일의 가문을 묻는다면 백이면 백 황가를 답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가는 가문을 묻는다면 의견은 분분하겠으나 목정(木楨), 양천(凉川), 천야(千野) 가문을 얘기할 것이다. 제국을 건국할때 각각 무기, 수로, 식량을 담당했던 세 가문은 이젠 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연에게 청탁을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대부분 낮에 찾아오기에 연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밤에 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연이 거절하는 일이 많아서 그가 청탁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름이라도 기억하게 하고 싶은 것인지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그에게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주고 가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것엔 일절 관심이 없는지라 항상 창고에 먼지가 수북하도록 쌓아두기만 했고 종종 시종들에게 청소하라는 명목으로 너무 비싼 것이 아니라면 조금씩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 네가 갖고 있다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쓰도록 해라. "
거스름돈 뿐만이 아니라 가져온 돈이 남아있었기에 꽤 많은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였지만 연은 화를 흘끗 바라보고선 덤덤히 얘기하고선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다른 시종들은 비록 그의 가문에 소속되어있으나 정기적으로 돈을 받아가고 있었지만 화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집사에게 귀띔으로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녀의 신분으로 제국에 온 그녀에게 대놓고 무언가를 주는 것은 조금 껄끄러웠기에 이렇게라도 챙겨주려는 것이었다.
" 너는 궁금하겠지. 내가 왜 이렇게 너에게 잘 해주는지. "
사실 그에게는 다른 시종들과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 아니, 지금까지의 시종들은 제국의 시민들이고 그 중에서는 하급 귀족들의 자녀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화는 오히려 다른 시종들보다 더욱 밑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이렇게 신경 써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택에선 다른 시종들과 별 차이 없는 대우를 해주고 있었지만 이렇게 할 수 있을때 조금씩 챙겨주려고 하고 있었다.
" 그건 ... "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길 건너편에서 위병들이 우르르 뛰어와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당연하게도 대비가 되어있지 않던 연의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비틀거렸고 근처 벽을 짚어 간신히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고성을 내지를 준비가 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위병들은 이미 멀찍이 뛰어가고 있었기에 목 끝까지 올라온 그의 고성은 목표를 잃은채 입 안에서 맴돌다가 한숨과 함께 쑥 내려가버렸다.
" 가자. "
아무래도 기분이 갑자기 안좋아진게 분명했다. 냉기가 풀풀 풍기는게 평소 신경질적인 그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듯 했다. 아무래도 그가 하려던 말을 다시 물어보면 분명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이지 요상한 상황이었다. 그가 아무렇지않다는듯 지나쳐가도 어떻다할 반응을 할수가 없었다. 이 돈을 다 준다고? 적은 금액이 아닌데? 유화가 혼란해있거나 말거나 밤바람은 매섭게도 불어댄다. 낭패다. 옷을 껴입어도 모자랄판에 연봉의를 날 줘버렸으니. 궁여지책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종종거렸다. 그렇게라도 가로막으면 목정가 삼남이 조금은 바람을 덜맞을까하여. 짐을 든채로 촐싹거리니 몸은 그럭저럭 더워지는데 귀와 코와 손은 아릿하게 시리다.
그런데 그가 불쑥 엉뚱한말이자 어떤의미로는 유화의 속내를 들여다본것같은 말을 던졌다. 궁금한정도가 아니라 불가사의하다. 시녀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공녀한테 친절을 베풀어봤자 윗전인 목정가자제가 득볼건 없지않은가. 피의 저주에 대해 알아냈다면 또 모르나 그럴리는 만무하다. 만에하나 알아냈다면 이럴시간에 저주를 풀라고 겁박하고도 남았겠지. 그런데도 핑계까지 대가며 연봉의를 넘겨주고 음식을 나눠먹기도하고 돈도 줬다. 대관절 연유가 무엇이란말인가?
들어나보자는 심정으로 그를 올려다본순간 느닷없이 병사들이 몰려왔다.
"!!"
순식간이었다. 목정 가 삼남이 밀쳐져 휘청인것도 유화가 바구니를 팽개치고 그를 붙든것도. 주위가 식별될만큼 정신이 돌아왔을땐 그를 끌어안다시피 한채 벽에 기댄뒤였다. 상황을 모르고서 보면 목정 가 삼남이 유화를 벽으로 밀어붙인것같은 모양새일것이다. 유화는 질겁하며 옆걸음질을 했다.
"송구하옵니다!"
거리를 벌리고서야 허리를 굽힐수 있었다. 그는 언짢은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사람이 오는지가는지 보지도않고 내빼버린 병사들때문일지 목정 가 삼남의 행차를 알려 병사들의 돌격을 막기는커녕 제대로 부축하지도못한 유화때문일지는 알수없었다. 그리고 어느쪽이든 나동그라진 바구니는 내용물이 엉망진창일게 확실했다. 그가 노기(怒氣)를 폭발시키지않고 짜증스러운 한숨만으로 넘어가는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터무니없게나마 안심되는 구석이 더 있었다. 목정가 삼남이 앙심을 품고 제 권력을 남용하여 병사들에게 보복하지말란법이 없었는데 이만하게 넘어갔으니. 기세등등한 목정가답지않게 어떤면에선 아랫사람의 과실에 관대하기도 한걸까?
그래도 밤공기보다 더 냉랭한 기색이긴 한지라 유화는 잠자코 내던졌던 바구니나 챙겨들고는 앞서처럼 바람이나 가로막으며 종종거렸다. 그때 문득 시야로 총총한 별과 달이 들어왔다. 햇빛의 탑이 빛을 발할때는 별이 뜬줄도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밤을 밝혀주는건 달과 별이다. 특히나 별은 기분탓인지도 모르나 추운날일수록 빛이 더 형형하다. 그 반짝임이 떨리는것처럼 보이기도해서 어릴적엔 별이 추워하는줄만 알았는데. 언젠가 희는 별이 주위를 따스하게 해주기위해 더 빛나는거라고 주장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나눴던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저도 모르게 말이 새어나왔다.
"등불탑에선 몰랐는데 별이 총총하옵니다. 저리 반짝이는건 추위에 떨어서이올까요? 주위를 따스히하기 위함이올까요?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으올까요?"
주책없이 명랑한어조에 가슴이 뜨끔했다. 목정가 삼남에게 이런 말투라니? 원수집안인걸 떠나서도 윗전으로 대하지않으면 안되는 상대이건만.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상황이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이 화를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을때 골목에서 위병들이 삽시간에 튀어나와 달려나갔고 그에 휘말린 연이 휘청이며 넘어지려한 순간 화가 그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물론 그 관성으로 인해 연과 화는 같이 휘청이다 벽에 기대서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마치 그 모습은 연이 화를 벽으로 밀어붙인 모양이었다. 늦은 밤이라 주변에 행인이 없어서 망정이지 누군가 보았다면 망측하다며 눈을 살짝 가리고서 종종걸음으로 그들을 피해갔을지도 몰랐다.
" 아, "
그리고 연은 갑자기 가까워져버린 화의 얼굴을 보고선 당황한듯 잠깐 허둥대다 금방 벽에서 멀어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허나 당황도 잠시 곧 이런 상황을 만든 위병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은 무언가 급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금세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치안이 좋다곤해도 범죄가 아예 일어나진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분명 연이 그들과 부딪힐뻔한걸 봤을텐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가는 작태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아주 충분했다.
" 괜찮느냐. "
목정 가의 삼남으로 태어나서 정치를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의 눈치를 볼 일도 그렇게 많지도 않았던 그는 당연하게도 얼굴 표정에 그의 기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잔뜩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고성을 질러대며 잡아오라고 소리를 칠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는 화에게 괜찮은지 묻고서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선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위병들의 근무 시간은 정해져있으니 집사에게 말해둔다면 그 시간에 누가 근무를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어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런걸 알게 무엇이냐. "
아까였다면 화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줄 연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기분이 안좋아진 그에게 고운 대답을 듣기엔 어려워보였다. 그나마 화에게 성질을 내지 않는 것이 다행일까. 거기에 아랫것답지 않은 말투였기에 분명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는 그냥 넘어가기로한 모양이었다.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저택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저 멀리 저택의 시종들이 호롱불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연의 귀가가 늦는 것에 대해서 집사가 보낸 모양이었다.
" 내가 무언가 주었단 말은 하지 말거라. "
아까 먹었던 것이나 돈에 관한 얘기인듯 했다. 아무래도 화가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본가에 즉각적으로 보고가 들어갈테고 그럼 귀찮은 일이 매우 많아질테니 말이다. 시종들은 빠른 걸음으로 연에게 다가와서 상태를 물었고 그는 상처가 난 손을 보여주며 시종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선 그대로 그 사이로 섞여들었다.
당황스러웠을터이다. 불쾌했을터이다. 길가다 난데없이 떠밀린것도 시녀가 달라붙어버린것도. 허둥지둥않고 잘 붙들었더라면 혹은 흔한 대갓집행차처럼 물렀거라 소리라도 치고다녔더라면 이꼴은 안됐을텐데. 허리 숙인채로 때늦은후회를 거듭하는데 믿기지않는 물음이 떨어졌다. 괜찮냐니? 이판국에 아랫사람의 상태부터 확인하는건가? 병사들이고 유화고 무엄하다며 있는대로 짜증을 부리는게 아니라?
"네? 아, 예... . 도..련님은.. ?"
혼란을 애써 누르며 살펴보니 목정 가 삼남의 손에 생채기가 났다. 그렇잖아도 추위로 얼어 벌건손에 핏물까지 비쳐 보기에도 아리다. 허겁지겁 그손을 붙들고 상처를 살폈다. 이물질이 섞여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한번 말끔히 씻어낼수있으면 좋으련만 물은 없고, 찻물이라도 쓰고프나 바구니가 엎어진꼴로 보아 그것도 무리이지싶다. 아쉬운대로 손수건으로나마 상처를 훔쳤다. 최대한 통증이 덜하라고 조심하긴했으나 다친데가 건들리니 자극이 안갈수는 없으리라. 돌아가는 동안 찬바람이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곤란한데. 손수건을 한번 턴뒤 비교적 말끔한부분으로 상처를 싸맸다.
"...소인의 불찰이옵니다. 돌아가시는대로 제대로 조치받으시옵소서."
그러고나서 땅에 널브러진 바구니의 덮개를 슬쩍 열었더니 당연히 차며 먹거리는 물론 여분손난로의 숯까지 다 엎어졌다. 불이라도 붙으면 더 낭패라 숯은 죄다 버린뒤 즈려밟아 불씨를 껐다. 그정도 난리통을 부렸으면 이제라도 얌전히 구는편이 나았으련만 밤하늘에 총총한 별이 불러일으킨 추억은 쓸데없는 소리를 새어나오게 했다. 아니나다를까 퉁명스러운 대꾸. 당연하다. 오히려 윗전을 다치게한 판국에 무슨 헛소리냐고 윽박지르지 않는게 괴이하다면 괴이하다.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데 익숙한 목정가 도련님 아니겠는가. 현실이 의식되자 좀은 정신이 드는것도 같다.
하여 입다물고 불어닥치는 바람이나 막아보려고 이리저리 옮겨가며 나아갔다. 그렇게 저택에 가까워가노라니 멀찍이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온게 보였다. 호롱불에 목정(木楨)이라는 글자가 장식된걸로 보아 저택의 시종들 같다. 아마도 주인을 마중나온거겠지. 이 추운날 한참을 돌아다닌것도 모자라 목정가 삼남에게 상처까지 입혔으니 곱게는 넘어가기는 힘들듯하다. 한숨이 나오려는걸 꾹 삼켰다. 매질? 감금해 굶기기? 내쫓기? 셋중에선 내쫓는게 제일 낫겠다. 아니 내쫓는건 아라의 가족들에게까지 해코지하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선물이다. 쓸모가 없어서이든 말든 자유가 되는것아닌가.
겁먹지말자고 마음을 거듭 다잡을때 뜻밖에도 함구령(緘口令)이 떨어졌다. 순간 어리둥절했으나 의미자체는 이해할만했다. 편애받는것처럼 비치면 구설수도 생기고 이래저래 곤란해진다는 거겠지. 다만 불가해한것은 목정 가 삼남이 그런부분을 의식했다는 점이다. 이런사안이 불거질때 난감해지는건 아랫사람이지 윗사람이 아닌데도. 아랫것이기에 겪지않을수없는 알력을 다 염려해줄만큼 세심하고 사려깊은 성품이었나? 이 자가 걸핏하면 저택전체가 싸늘해지도록 신경질을 부려대던 목정 가 삼남이 맞나? 의심스러우면서도 뒤숭숭하던 마음은 한결 누그러들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질않아 고개만 끄덕였지만.
그렇게 형언할수없는 기분에 휩싸인채 유화는 시종들에게 에워싸여 돌아가는 목정가 삼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와우~~ 연이가 그정도로 마음을 열게되면 어떤모습을 보일지 벌써 기대된다!!(헤벌쭉) 인간관계는 한쪽만 잘한다고 나아지는게 아니다보니 유화가 아직은 뻣뻣한편인게 괜찮은지도 궁금하네:d(착석)
저런~ 무려 귀족살인 사건이야?!(덜덜) 가볍게 놀러나가느라 수행원을 안데려갔을까 아니면 수행원까지 여럿 죽었을까 후자면 진짜 대형사건인데..o.O?! 강도살인일지 독립을 도모하는 속국사람들의 무장테러일지 모르겠네! 어느쪽이건 사람 오는지가는지도 모르고 출동할만은 하다(버엉) 그래도 추궁은 하는구나~ 사정 모르는거 아니고 연이도 알고보면 말랑한 귀족님이니 질책만 하는 정도겠지?
지금이랑 별 차이 없을 것 같긴한데 ... ㅋㅋㅋ 유화도 지금은 뻣뻣하지만 나중엔 말랑말랑해질거라 기대하고 있어! 근데 느낌이 나~중엔 연이가 잡혀살것 같기도 하네 ... (먼산)
수행원이 한명뿐이라 손쓸틈도 없이 죽이고 도망간거래~ 범인은 언제 잡힐지 모르고 ... 제국은 지금 한창 황금기라서 독립은 요원한 일이지 :3 나~중에 망국의 길에 들어서면 그때는 하나 같이 독립할지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거에 화가 나는거니까 질책만 하고 사과 받으면 뒤끝없이 넘어갈꺼야
겉의 태도는 별로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성질을 안낸다던가 은근 가까이 다가간다던가 하는 차이는 분명 생길꺼야! 후후 유화가 말랑해진 모습은 어떨지 너무 기대되는걸!!! 연이는 지금까지 자기한테 브레이크 걸어주던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분명 유화의 브레이크가 정말 잘 먹힐것! 거기에 좋아하던 사람도 없으니 화에게 다른 감정을 품는다면 분명 더 약해질거라구~
범인은 생각보다 금방 잡힐테니 이유는 어떻게든 밝혀지지 않을까? 사실 제국의 확장은 현재 시점에선 꽤 이전의 이야기라서 지금 시민들한텐 뭔가 억울한 일이기도 하겠지? 연이한텐 그렇게 혼나진 않겠지~ 그냥 경고만 주고 말테니까.
역시 연이 앓아눕는구나.. . 에긍 역시 너무 무리했어(눈물) 낮시간에 푹잤어야하는데 연이가 워낙 숙면을 못취해서 더 심해진건 아닌가 모르겠네...(먼눈) 아니면 아예 낮시간에 잠도 못잘만큼 앓는걸까?(오싹) 아무튼 유화랑 나갔다가 그렇게된거니 뒷감당도 유화가 해야 맞을거같아~☆ 노집사님이나 다른 사용인들한테 유화가 제법 혼났을거 같기도 하다:3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 제국의 수도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굉장히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미 주요 도시엔 철도가 깔려있기에 다른 도시에서 수도로 오거나 반대로 향하는 등의 사람들이 겹쳐 수도의 주거 인원보다 배는 많은 인원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이것이 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한 제국의 수도라는 것을 면밀히 보여주는듯 했다. 하지만 그런 활기찬 분위기와는 반대로 인기척이 거의 없이 조용한 곳이 하나 있었는데 수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목정 가문의 별채였다. 소수의 경비병만이 저택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저택은 마치 거주하고 있는 인원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 쿨럭쿨럭 '
그렇게 고요한 저택의 가장 안쪽, 햇빛도 하나 들지않는 곳에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창문은 존재하였지만 일부러 막아둔듯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서 내부를 밝히고 있었는데, 그곳에선 하얀 머리의 사내가 연신 기침을 해대며 누워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이자 목정 가문의 삼남, 목정 연은 힘겹게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하기위해 시선을 돌렸다. 평소라면 신시(申時)에나 눈을 떠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렸을 그는 자신이 미시(未時)에 눈을 떴다는 것을 깨달았다. 햇빛이 지기 전까진 활동에 큰 제약을 받는 그가 이런 시간에 일어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 ... 이럴것 같더라니만. "
온 몸에 열감이 가득한데다 계속되는 기침으로 목도 다 쉬어버려 말도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연은 오한 때문에 조금씩 떨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고선 방에 달려있는 줄을 당겼다. 이 줄은 그들의 시종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있는 종을 울릴때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주로 그가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 시간에 그 종이 울리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다 시종들도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인지라 제대로 들을 사람이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 거기 아무도 없느냐 ... "
분명 누군가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소리쳐 불러보려고 했으나 이미 쉬어버린 목에서 제대로된 말소리가 나올리 만무했다. 그의 외침은 잔뜩 쉬어버려 모기의 날갯짓처럼 작아진채 입 밖으로 나왔고 당연하게도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평소처럼 해가 질때까지 기다려야하나 싶었다.
햇빛의 탑과 달리 자연스러운 따스함과 빛을 내리쬐는 진짜 태양이 쨍쨍한 낮, 유화는 전날밤 목정 가 삼남에게서 받은 돈주머니와 바지저고리를 챙겨서는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시장으로 향했다. 제 물건을 사봤자 다른 사용인들이 못보던 물건인데 어떻게 구했냐고 의심하면 난감했고, 도주할때를 대비해 두고픈 마음도 없지는않았으나 그랬다간 가족에게 화가 미치면 끝장이라 어림없었으며, 오롯이 집에 보낼수있으면 적지않게 도움이 되련마는 그럴수도 없으니, 목정가 삼남의 옷가지나 살 요량이었다. 그의 돈이니 그에게 쓰는게 알맞아 보였거니와 옷방에 수두룩빽빽한게 옷이니 한벌쯤 는다고 티나지야 않을성싶어서. 제국의 수도니 시장이 여럿 있을줄은 알았지만 놀라웠던건 그 시장이 모두 매일매일 장사를 한다는것이었다. 산아래 큰마을에서도 5일에 한번만 장이 열려서 날을 잘 기억하고있어야 했던 고향과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목정 가 삼남의 바지저고리는 뭐가 달라도 다른것일지? 거기 쓴것과 똑같은 피륙값만 해도 있는돈을 몽땅 털어야할 판이었으니 침선가(針線家)에게 옷을 지어달라 청하기는 무리였다. 하릴없이 피륙이나 끊어 돌아왔으나 이걸로 옷을 지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한시가 아까운 낮시간을 쪼개는수밖에 없으니 돌아오는길이 터덜터덜 무겁기 한량없었다. 잠이라도 얼른 자고싶었다.
하여 그의 옷가지를 옷방에 돌려놓으려 서두르는데 목정 가 삼남의 방에서 무슨기척이 난듯했다. 해도 아직 쨍쨍한데 잘못 들었나? 하지만 지나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해 창을 확인했다. 행여라도 햇빛이 새어들어가기라도 했나 싶어서였다. 창은 암막으로 밀봉한것마냥 새까맸으나 수상쩍은 기척은 한층 또렷해졌다. 기침이 섞이고 쉬어터졌지만 분명 아랫사람을 부르는 소리다. 유화는 다급히 문을 열고들어갔다.
"찾아계시었사옵니까?"
허리숙여 인사하자마자 깜짝놀랐다. 호롱불로 어둑한 가운데에도 목정가 삼남의 파리한얼굴과 하얀머리칼은 진땀투성이였고 핏물이 흰자위까지 번지기라도 한것처럼 충혈된눈은 그렁그렁했다. 와들와들 떨리는몸도 주체가 안되는것 같은데 기침까지 숨이 넘어갈듯이 하니 실로 참혹한 몰골이었다. 일단 바로눕히기라도 해야겠다고 그를 부축하려는데 몸이 말그대로 불덩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추워하는건 옷이 땀에 절은탓일까. 이 정도면 탈수도 염려된다. 급한김에 들고있던 피륙을 그의 저고리 안에 밀어넣었다. 밖에서 거진식어 온기가 미미한 손난로도 같이.
"불편하시더라도 참아주시옵소서. 물부터 가져오겠사옵니다."
그러고 뛰쳐나가서는 의원을 불러달라고 도련님이 편찮으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움직였다. 단잠을 깨우는건 딱한노릇이나 지금 적절히 조치하지못했다간 사달이 날게 뻔했으므로. 그러면서 부랴부랴 더운물이 가득담긴 주전자와 마른수건을 챙기고 양동이에 미지근한 물을 채워서는 그의 방으로 달음질하자마자 더운물부터 잔에 가득따라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따끈한물이 기침으로 상한 목도 조금은 가라앉혀주길 바라며.
"일단 드시옵소서. 탈수가 오면 큰일이옵니다."
목정가 삼남이 물을 충분히 마신다면 유화는 그가 열이 내리고 오한을 덜느낄만한 방도를 총동원하리라. 우선은 젖은옷 대신 처음 방에 들어오고서 엉겁결에 팽개쳤던 바지저고리로 갈아입도록 돕는한편 맨몸의 땀은 마른수건으로 닦을것이다. 다음으로는 축축한 베개와 이부자리를 치우고 털담요와 손난로를 가져와서는 그를 바로눕히고서 덮어줄것이다. 그뒤에는 양동이의 미지근한 물로 수건을 적셔서는 담요밖으로 노출된 그의 얼굴을 닦길 반복할것이다.
다행히도 깨어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분명 연의 몰골은 평소와 너무 다르게 잔뜩 흐트러진채였겠지만 그것을 신경 쓸 정도의 몸상태는 절대 아니었기에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러 온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라에서 온 공녀이자 그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일하고 있는 화였다. 특별히 아버지가 힘을 써서 자신의 담당으로 넣어준 공녀의 얼굴을 본 그는 손을 살짝 뻗으며 말했다.
" 용케도 들었구나 ... "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말할 기운조차 없어서 어떻게든 기력을 쥐어짜내어 간신히 입 밖으로 목소리만 흘려낸 연은 결국 누워있던 침상에 쓰러지듯 다시 누웠다. 그의 모습을 본 화가 의원을 부르라고 소리치며 이것저것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몽롱해진 정신으로 그는 화가 해주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몇몇은 의원을 부르러 달려나갔고 몇몇은 화를 도와서 연의 몸을 일으켜 몸을 닦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는 자신의 얼굴을 따뜻한 물로 닦아주는 화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의원이 와서 그의 상태를 진찰하고 있을때였다. 목정 가문에 소속되어 가문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원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되었고 믿음직한 노년의 의원이 저택에 와서 연의 증상을 확인하고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어제 외출이 무리했던 것이 아니냐며 증상이 심하니 약을 꾸준히 먹이라는 말과 함께 의원은 떠났다. 말할 힘도 없어서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연은 주변이 조용해지자 옅게 눈을 뜨며 말했다.
"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
남에게 약한 모습은 보이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지킬 여력이 없었다. 수면을 방해하는 저주는 그것에 맞춰서 그의 몸상태를 약화 시키는데 한몫하고 있었고 조금만 무리해도 크게 탈이 나는 몸을 가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내색을 안하기 위해서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고 화를 내었던 것인데 그것마저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옅게 지으며 말했다.
" 이 또한 업보겠지. 동시에 내가 짊어지기로한 책임이겠지만. "
이렇게 아픈 것이 한두번이 아니긴 했지만 이럴때마다 익숙해지긴 힘들었다. 아픈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쩌면 말이 안되는 일이 아닐까. 그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자 상체를 몇번 들썩이더니 바닥을 짚고선 간신히 침상에 앉을 수 있었다. 현기증이 올라왔지만 잠깐 앉아있으면 없어질테니 그는 서류 뭉치를 가르키며 말했다.
"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 ... 저것들을 좀 가져오거라. "
분명 무리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텐데 일을 밀리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듯했다.
우와~ 이걸 이렇게 받아줬구나!(야광봉) 다른 시녀찬스 만세다! 쉽지않았을텐데 내가 미처 생각못했던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채워줘서 고마워~☆(꾸벅) 하나 궁금한게 답레에서 자다깨고 초과근무한 시녀들이 유화한테 곱지않은 반응 보였다고해도 될까?(갸웃) 안그래도 낮밤바뀐 생활에 까탈스러운 상전 모시느라 피곤한데 휴식시간도 빼앗기고 그렇게 앓아누운것도 유화랑 나가서고 더욱이 유화가 시녀들보다도 급이 낮은 공녀라 곱게보기 어려울수 있을거 같아서(먼눈)
그랬구나! 연이 어머니와 닮았다면 연이한테 어필할수있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거네:3~ 이렇게 유화는 날먹에 성공하고.. .(아님)
무슨 정신이었는지. 다른시녀들이 와주지않았다면 상황수습을 못했을것이다. 열이 더 오르지않도록 몸을 식힐 조치를 해야하지만 푹 젖은 몸과 옷을 내버려뒀다간 오한이 더 심해질터였으므로. 완전히 기진해 늘어져버린 저보다도 체격이 큰 목정 가 삼남을 혼자 어찌할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반작용도 따를수밖에 없었으니 그렇잖아도 고단한몸을 제대로 쉬이지도못한 시녀들의 눈치는 경황없는 와중에도 곱지를않았다. 특히나 지난밤 바깥바람을 지나치게 쐰 탓이라고 의원이 진단했을때는 방안이 고요했는데도 욕이 들린것만 같았다. 제국의 자유민이 아니라 속국에서 물건처럼 바쳐진 공녀라 안그래도 얕보던차일진데 이 사달까지 냈으니. 아니나 다를까 의원이 약처방을 지시한뒤 자리를 뜨자 시녀들은 너나할것없이 유화에게 눈을 흘기고는 나갔다. 그순간 분명히 느껴진건 목정가 삼남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우리가 아니라 너라는 그러니 역정을 듣든 불벼락을 맞든 니가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한숨이 나왔으나 어쩌겠는가. 저가 햇빛의 탑을 보자고 하는바람에 이지경이 된것이 맞지않은가. 그나마 닿자마자 섬뜩해지던 고열과 사시나무 떨리듯하던 오한은 가라앉아가니 천만다행이다. 의원이 처방도 해주었으니 이제 고비는 넘어갔겠지. 그런데도 왜이리 가슴이 아린지? 파리한 낯빛이며 고통에 겨운듯 찌푸려진 미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닫힌 눈, 그리고 핏기라곤 없는 입술까지, 어디로보나 너무도 무방비해서일까? 당장 이자리에서 목을 조르거나 베개로 숨을 막아버려도 저항 한번 못할것 같아서?
바라보기도 조마조마해 목정 가 삼남의 얼굴을 가리듯 물수건으로 닦는데 그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흠칫 손을 떼고보니 바로 감길듯 가느다란 실눈이지만 눈을 떴다. 뒤이어 소리보다 숨결에 가깝게 들리는 한탄. 그내용으로 보아 혼자인줄 착각한듯했다. 아랫사람이 있다 여겼다면 체통때문에라도 제행동이 추태란 소릴 구태여 입밖에 내진않았을테니. 혼잣말이 아니었음을 알게되면 싫어할까봐 자리에 없는척 숨죽이려니 충격적인 한탄이 이어졌다. 업보? 저자가 그런걸 의식하는 자였던가? 제선조가 멸문시킨 가문은 한둘이 아니란 소리도 낯빛하나 안바꾸고 하더니? 게다가 책임지기로 했다는건 또 무슨소리인가? 목정가 중 한사람에게만 돌고돈다는 저주를 저 스스로 떠안기라도 했단 의미인지? 어지러웠다. 혼자인줄 알고 하는소리면 저게 그 누구도 의식하지않은 본심이란 의미아닌가. 실은 목정 가의 만행을 인정하고 그 대가도 치르고자 하고있는건지? 모르겠다. 모를일이다. 물수건을 쥔 손이 미적지근한 물로 흥건하다.
그때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뻔했다. 목정 가 삼남이 몸을 움직인 탓이다. 제대로 가누어지지않아 흐느적거리는걸 빤히 보면서도 어쩐지 말릴엄두도 부축할엄두도 안 났다. 그가 기어이 일어나앉아서는 지시를 내리는데도 상황파악을 얼른 못하고 버벅거렸다. 내가 있는걸 알고있었나? 업보 운운하던 소린 나 들으란거고? 순간 유 가의 해주법에 대해 듣기라도 했나 의심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처럼 회유라기도 애매한 언급들은 번거로움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없다시피하다.
제 생각에 빠져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있다가 탁상의 서류뭉치를 돌아본끝에야 경악했다. 저몸으로 지금 어쩌겠다는건지?! 아뜩하고도 답답하여 그자리에 꿇어앉았다.
"미루지않고 일을 처결하는것도 중할것이오나 그보다는 실수없이 일을 처결하는것이 더욱 중할것이옵니다. 아직 미령하시어 집무를 시작하시기는 무리가 있사오니 오늘은 한숨 돌리시는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쓸데없는 참견임은 안다. 호되게 앓는 원인을 제공했으니 시녀주제에 웬잔말이냐고 분풀이를 할지도 모른다. 허나 유화는 꿇은무릎위로 두손을 포갠채 고집스레 목정 가 삼남을 바라보았다. 한식경전만 해도 당장 숨이 넘어갈것처럼 위태롭던 사람이 일부터 잡는데도 내버려둘수는 없었기에. 하여 혼잣말일지 아닐지 모를 소리에 대한 대꾸까지 보태어 늘어놓았다.
"아플때 약해지는것은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이오니 그것을 가리켜 추하다하는것은 온당치못하다 사료되옵니다. 하오니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려우시더라도 일을 미루는게 께름칙하시더라도 눈앞의 일보다 존ㅊ.. 도련님의 안위를 돌보심이 더 중하다 생각해주시옵소서."
존체라는 말이 어울리지않는다던 자조적인 말이 떠올라 얼른 수정하면서 다시금 묘해졌다.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는게 중하단 소리가 저주에 침식될대로 침식된 이 사람에게 과연 어떤의미로 여겨질지? 의문이 또렷해질수록 착잡함도 짙어져갔고 목정가를 경멸해야할지 그를 안쓰러워해야할지 버거워졌다.
제국은 본디 북부에서 태동하여 세력권을 남쪽으로 넓힌 국가였기 때문에 국토의 많은 부분이 상당한 추위를 자랑했다. 한번 천도를 해서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왔음에도 여전히 이곳의 겨울은 매서웠고 겨울이 지나서도 밤에는 단단히 채비를 해야할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길게 바깥에 있었으니 아플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주변이 조용하여 혼자만 있는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옆에 화가 앉아있었다. 그렇지, 자신을 모시는 시녀이니 옆에 있어야만 할테다. 정신이 몽롱하여 자신이 어떤 말을 중얼거렸는지도 알지 못한채 그는 서류뭉치를 가르켰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에 연은 피식 웃고서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오늘 쉬게 되면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쉴 수 밖에 없다. 오늘 쉰다고 이 몸상태가 하루만에 낫지 않을테고. "
목정 가문은 그 위세만큼이나 방계 가문도 꽤나 있는 편이었고 제국의 무기들을 관리하고 있는 입장인만큼 수많은 공장이 그들의 소유였다. 물론 세세한 것들은 관리자들 선에서 결정되었지만 결국 본가의 승인이 필요한 것들도 충분히 많았고 그것들은 전부 연이 담당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제국의 총사령관이라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큰 형은 아버지의 부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같은 입장이었다. 작은 형은 제국 내의 가문 소유 공장들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연에게 내정 관련된 것들이 몰리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아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들을 미루는 것이 힘든 입장이었다.
" 어차피 내가 죽으면 너한텐 좋은 일이 아니냐. "
자신이 죽으면 가문은 자연스럽게 혼란에 휩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저주라는 것은 소유자가 죽으면 가문의 다른 이에게 갑작스럽게 옮겨가니 말이다. 그러면 또 저주를 옮길 누군가를 가문 내에서 색출해야하는데 큰 형과 작은 형의 아들들은 너무 어리므로 적임자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공녀에 대한 감시의 시선은 소홀해질테고 도망가는 것이 가능해질지도 몰랐다. 물론 일이 수습되고 나서 다시금 찾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 무가의 삼남으로 태어나서 잔병치레나 하고 있으니 이것을 추하다하지 않으면 달리 어찌 표현하겠느냐. "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붓을 손에 든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서류를 집어들어 책상에 두고 조금씩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감과 오한으로 인해 집중이 될리가 없었고 자꾸 흐릿해지는 시야 때문에 눈만 계속해서 비비고 있었다. 거기에 붓을 든 손도 조금씩 떨리고 있어 제대로 써내려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업무를 보려는 그의 모습은 남이 본다면 안쓰러울 지경일테다. 허나 서류 하나를 간신히 처리한 그는 다시금 붓을 내려놓고선 한숨을 작게 내쉬고선 말했다.
" 이래서야 제대로 되질 않을테니 좀만 쉬었다 해야겠다 .. "
결국 자리에 다시 누운 그는 반쯤 뜬 눈으로 잠깐 화를 바라보았다가 눈을 감았다. 잠에 든줄 알았으나 조금씩 뒤척이는 것을 보면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는 것 같았다.
오늘 쉰다고 낫지않는다. 생기라곤 없이 당장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음성에 유화는 목정 가 삼남을 올려다보았다. 바닥에 꿇은채 침상에 앉은 그를 올려다보려니 새삼스럽지만 더없이 자연스럽게 제 처지가 또렷해졌다. 이 높이차가 도리어 우스울만큼 자신은 바닥의 바닥으로 떨어진 신분이며 목정 가 삼남의 소유물과 마찬가지라는 현실이. 그러면서도 그 격차가 역전적이라는 점도 실감이 났다. 오늘 쉬어봤자라는 까닭은 저주때문. 반면에 자신은 해주법을 알고서 구경하는 입장이므로. 지금 이 뭐라 말할수없는데도 절실하고 안타까운 기분은 그래서 드는것이리라.
"집무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있을것이오나 스스로를 돌보시는것은 시기를 놓쳤다간 불가능해지옵니다. 바라옵건대 열이 내릴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주시옵소서."
고통에 겨운 사람을 차마 못보겠는 측은지심인지, 저주와 함께 오래도록 살아야할 목정 가의 인간이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찾게해줘선 안된다는 반발심인지는 모르겠다. 어느쪽이든 지금의 그는 쉬지않으면 안될 상태인것만은 명백하다. 그런 사리판단을 무참하게 만드는 한마디.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감각에 제 처지고 제게 허용된 처신이고 잊은채 분기(憤氣)에 찬 시선을 목정가 삼남에게로 올려붙였다.
저가 죽으면 나한텐 좋다니 그런 모욕이 어디있는가? 우리 유 가는 인명의 소중함을 안다. 사람을 무수히 해치고서 떵떵거리는 목정 가와는 다르다! 추한건 잔병치레가 아니라 숱한목숨을 해하는 잔학함이요 아랫사람을 박대하는 혹독함 아니겠는가! 그런 억하심정이 목끝까지 치밀었으나 억지로 삼키고 또 삼켰다. 나만 죽는다면 몇번이고 퍼붓겠으나 저 자가 첫날의 경고대로 내 가족을 해하려들면 끝장이기에. 이래서 저자의 눈에 띄고 기억되어선 안되는거였는데.
유화가 속이 터질지경이거나 말거나 목정가 삼남은 기어이 거동을 시작했다. 서류를 가져다주지 않으니 직접 책상머리에 앉으려는 모양이었다. 도로 엎어질듯 휘청이는 걸음. 부축하고자 일어선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가빠진 숨을 거듭 삼키고서야 열에 취해버리고도 고집스러운 그를 부축할수 있었다. 진땀이 밴 몸은 여전히 불덩이였고 오들오들 떨리고도 있었으며 얼핏 느껴지는 발딱이는 맥박조차 금세라도 멎을듯 위태위태하게 느껴졌다. 이몸으로 무슨일을 하겠다는건지?! 강제로라도 안정을 취하게할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충동마저 일었다. 지금의 목정 가 삼남이라면 뒷덜미를 가격만 해도 혼절할듯해서.
그러나 망상은 망상일뿐. 유화는 만류하는 말조차 보태지못한채 목정 가 삼남이 자리에 앉는것이나 거들었다. 그렇긴해도 방에 난로를 여럿 틀어놓은게 무색하게 추워하는 몸으로 일이 될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눈을 뜨고있기도 힘겨운듯 수시로 눈을 비볐고 붓을 쥘 기력도 없는지 손조차 바들거렸다. 책상의 서류를 몽땅 치워버릴까 절로 망설여졌으나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저지경으로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는 못하는것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느껴져서.
안절부절못하고있느니 약이 다 달여졌는지나 보고와야겠다. 기척을 죽여 나가려는찰나 목정 가 삼남이 마침내 붓을 내려놓았다. 다행히도 무리임을 깨달았나보다. 한결 기꺼운 기분으로 그를 부축해 침상에 눕히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의원은 잘먹고 잘쉬면서 약을 복용해야 나아질거랬는데 이건 그 반대아닌가. 그나마 지금은 잠들었을까? 하여 유심히 살피니 그는 눈만 감았을뿐 누운자리가 불편하다는듯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 어찌해야 할지? 낮에 못잔 탓인지 머리가 통 안돌아간다. 식사를 않고 탕약을 먹었다간 속이 상하고말테니 미음이라도 먹여야하고 땀이 식을수록 오한이 심해질테니 옷도 갈아입혀야겠고 또.. 궁리할수록 뒤죽박죽이라 다 집어치우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이불을 그의 턱밑까지 끌어올린뒤 찬기운이 들 틈이 없도록 구석구석 꾹꾹 눌렀다.
"식사와 탕약을 가져오겠사옵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주방으로 나가보니 약탕기에서는 달여진 약 특유의 진하고 쌉싸릅한 향이 났고 미음도 보글보글 끓고있었다. 여전히 따가운시선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지않을수 없었다. 탕약을 짜고 미음을 체에 거르는 마무리작업도 직접 하기로 했다. 그렇게 탕약과 미음을 준비하다 문득 과일바구니가 정확히는 거기있는 배가 눈에 들어왔다. 배를 먹으면 기침이 조금 잦아들수있음을 알아서였고 배의 단맛으로 그의 기력을 북돋을수있을까 싶어서였다. 탕약이 쓰니 배의 단맛으로 무마할수도 있을거같고. 부랴부랴 배껍질을 깎고 강판에 간뒤 그즙을 체에 걸러 건더기없는 배즙을 한잔 만들었다. 그러고나서 미음과 탕약의 온도를 확인해보니 적당히 식어있었다. 하여 준비한것을 모두 가지고 목정 가 삼남의 처소로 돌아가서는 그의 머리맡에 자리잡았다.
"입맛이 없으시더라도 조금은 드시옵소서. 그래야 약기운을 견뎌내실수 있사옵니다."
목정 가 삼남이 스스로 먹고자한다면 일어나앉도록 부축해서는 상을 내어줄것이고 일어날기력이 없다면 상체를 보다 높이 누인다음 미음을 한술씩 입에 흘려넣고자 할것이며 식사를 마다한다면 다시한번 권할것이다. 만약 그가 저도모르게 잠들어버린뒤라면 양동이에 새로 미지근한 물을 떠와서는 그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기를 반복할것이다.
인명은 이해득실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연은 그 말을 듣고서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몇몇 정의로운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법,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해득실이 인명보다 더 위에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지금 자기 자신만 해도 가문 전체의 득을 위해서 혼자서 실을 떠안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분기탱천하여 자신에게 말하는 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채 얘기했다.
" 그렇다면 내가 유언을 남겨주지. 내가 죽거든 너를 다시 고향으로 되돌려보내주라고 말이다. "
그래도 네가 내 죽음을 원하지 않게 될까? 마치 그렇게 얘기하듯이 그는 담담하면서도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평소의 그런 것보단 좀 더 옅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의중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허나 화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곧장 업무를 보기 위해 서류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라 간신히 하나를 다 본 그는 들었던 붓을 내려놓고서 다시금 침상에 몸을 뉘었다. 잠이라도 더 자기 위함일까 싶었지만 애초에 쉽사리 잠에 들수 있는 몸이 아니니 연신 뒤척이기만한다.
" 식사는 별로 생각이 없구나. "
그렇게 누워있으니 화가 식사와 탕약을 가져오는 소리가 들렸고 연은 화가 들어오자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선 미음을 손으로 살짝 밀어두고선 달여둔 탕약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온갖 약재가 섞여서 쓴맛이 강할텐데도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입가에 흘러내린 탕약을 손수건으로 닦아낸 그는 밀어둔 식사를 보고선 조금이라도 먹으라는 화의 말에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다시금 미음을 가지고와 조금씩 입으로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허나 정말 입맛이 없는지 몇술 뜨지도 않고 그릇을 내려놓은 연은 배즙을 반쯤 마시고선 침상에 몸을 다시 뉘였다.
" 그 탑은 나도 보고싶었던 것이니 딱히 네 탓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
간밤의 외출이 길었던 것을 얘기하는듯 했다. 밤의 추위는 강했고 다른 이들이면 모를까 연에게 그 추위는 꽤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광장까지 가서 등불탑을 보고 왔으니 탈이 나는 것은 당연했으나 보고싶다고 말한 화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듯 했다. 자신이 얘기한 것을 지킨 것뿐인데다 몸을 관리하지 못한 것도 그의 탓이니 다른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시종들의 곱지 않은 눈빛도 봤으니 말이다. 다만 자신이 그것을 직접 주의를 줄 수는 없으니 적어도 본인에겐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 몸이 이러니 조심을 해야함에도 간혹 욕심을 부리고 싶어질때가 있으니 말이다. "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그는 다시금 격한 기침을 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심하게 이어지던 기침은 간신히 진정되었고 숨을 몰아쉬던 연은 누워서는 숨쉬기가 불편한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선 침상의 바로 옆에 있던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약효가 서서히 도는 것인지 몸의 떨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 붓을 다시 잡은 그는 문서로 손을 뻗으려다 그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문서와 붓을 둘 다 내려놓고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욕이 없다는 목정 가 삼남을 뒤로 한채 주방에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동안에는 이래저래 심란했다. 한낮부터의 난리로 고생한 사용인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그보다 더 께름칙한것은 농인지 조롱인지 혼미한정신에 나온 헛소린지 모를 발언이었다. 자기가 죽고나면 돌려보내주겠다니? 돌아갈수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애간장을 녹이는 희망이다. 허나 그때 그의 눈은 충혈된 흰자위와 시뻘건 눈동자는 지친기색이 역력한데도 호승심이 들어찬듯했다. 과연 저의가 무엇일지? 내가 자기의 죽음을 바라게끔 만들고프기라도 한가? 그래서 그자가 얻을게 뭐란말인가?
어쨌거나 상을 차려서 돌아가자 목정 가 삼남은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부축하여 앉히고는 베개를 등받이처럼 뒤에 받친다음 상을 내어주자 그는 다 귀찮다는듯 탕약만 들이켰다. 입가로 샌 방울도 끼어들지 말라는듯 제 손수건으로 훔쳐낸다. 심하게 앓다보면 입맛이 떨어질만은 하나 약만으로는 회복이 더딜터인데. 다시한번 권해보려는찰나 목정 가 삼남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더니 미음을 몇술 들고는 배즙도 절반쯤 마셨다. 안도감에 웃음이 올라왔다. 이만하면 됐다. 좀 더 먹어두는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입맛이 없을땐 식사가 오히려 힘겨울수도 있으니.
"잘 하셨사옵니다."
상을 물리고서 갈아입힐 옷가지와 식은땀을 닦을 마른수건을 다시 준비해야겠다. 머리로는 동선을 계획하고 몸으로는 이불을 그의 턱밑까지 끌어올리던중 그만 울컥해버렸다. 방한책이 허술한걸 생각못하고 지체했다는 후회. 찬바람을 몸으로 막아보겠답시고 동동거렸으나 소용없었다는 무력감. 애꿎은 사용인들을 고생시키고말았다는 미안함. 목정 가 인간을 잘못돌봤다간 죄를 받는 신세에 대한 자괴감. 그런저런 감정이 자책할 필요없다는 위로로 북받쳐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만한 외출을 '욕심'이라 일컫는 목정 가 삼남의 처지가, 맥없이 헛헛한 웃음소리가 측은.. .
그때 목정가 삼남이 숨도 못 쉬고 쿨럭거리기 시작했다. 행여 기도가 가래로 막힐세라 그를 옆으로 눕히고는 등을 두드렸다 쓸어내렸다를 반복했다. 그치기는 할지 의원을 도로 불러야할지 조마조마해질 지경에 이르고서야 기침이 잦아들어갔다. 그러고도 들숨과 날숨이 턱턱 걸리며 그르렁거리는 숨결은 듣기에도 위중하고 일으켜달라는 지시는 그 숨소리보다도 미약했다. 고열과 식은땀으로 엉망진창인 몸을 부축해 일으키노라니 심란하다. 아랫사람이 제 죽음을 학수고대하길 바라는듯하다가도 아랫사람을 향한 동정이 담긴 위로를 하고, 죽어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기만 바라는듯하다가도 악착같이 일하고자한다. 이 사람이 바라는게 뭘까. 기진해 벽에 기댄 그를 이불로 감싸다 혼란이 두서없이 말로 나와버렸다.
격한 기침을 이어가던 연은 이러다가 죽겠다고 생각이 들때쯤 기침이 잦아들자 아직 죽을때는 아닌가 싶어 헛웃음을 자아냈다. 허나 오래도록 이어진 기침 때문인지 목이 아파와서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이어져 터져나오는 잔기침을 옷소매로 입을 막아 잦아들기를 다시금 기다렸다. 물론 그 와중에 화의 질문을 듣기는 들었으나 대답해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기침이 멈춘 후에도 몇번이고 가래를 뱉어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연은 이윽고 침을 한번 삼키고선 입을 열었다.
" 단순한 변덕이라 생각해라. "
저택의 주인은 그렇게 성정이 예민하다더라, 라는게 이 수도 전체에 널리 퍼져있으니 갑작스레 변덕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다들 그러려니 할 것이었다. 물론 그 변덕이 아주 잠시만에 손바닥 뒤집히듯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면 다들 인상을 찌푸리긴 하겠지만. 어쨌든 연은 화의 질문에 그렇게 짧은 답변을 내놓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코는 막히진 않아서 숨을 쉬는 것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까.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기침 때문에 호흡이 틀어지는지 그가 내쉬는 숨은 여전히 거칠었다.
" 사람은 살아가는데 목적이 필요한 법이지. "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누구던간에 아주 자그마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법이니 말이다. 당장 내일 먹을 음식이 없어 걱정하는 사람도 결국 내일의 음식을 먹기 위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정말 목적이 하나도 없다면 인간은 죽는다. 하물며 연에게도 가문의 저주를 홀로 견디며 다른 가문원들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라에서 공녀 신분으로 건너온 그녀에게도 목적이 존재할까. 가족을 위한다기엔 살아가면서 영원히 보지 못할 가족일텐데 말이다.
" 원망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을 주는 목적이지. 역설적이게도. "
물론 그런 것을 모두 의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는 예민했고 그 성질을 다른 사람에게 잔뜩 풀어내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화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런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원망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원망의 화살은 지나치게 날카롭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겨누는 것은 정말 위험했으니까. 어쨌든 그는 그랬다. 그렇기에 화에게 변덕스러운 태도를 계속 견지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대답이 되었을거라 생각한 연은 다시금 침상에 눕고서는 말했다.
" 잠시 잠을 자야겠구나 ... "
탕약에 포함되어있던 수면 성분이 슬슬 도는듯 했다. 아플땐 차라리 잠드는 것이 나으니까. 물론 약을 써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연이니 아마 두어시진 내에는 분명 다시 일어날테지만 말이다.
>>215 희망이 보인다해도 확실하지 않으면 붙잡지 않을꺼야! 희망을 가졌다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때 그 비참함을 느끼고 싶어하진 않으니까 말이야 ... 이미 힘든데 그렇게까지 더 힘들고 싶어하지도 않고! 나름 비관적인 성격은 거기서 비롯 되었을꺼야!
>>216 연이는 상당히 엄중하게 보호 받는 입장이라 그런 음식이 들어오기 꽤 힘들지만 공을 들인다면 어떻게든 가능할테니까 :3 ... 유화가 그렇게 중독 되어서 쓰러지면 자기네 의원 또 불러서 어떻게든 돌보려고 하지 않을까?! 연이에게 독을 쓴다면 상당히 강력할테니 말이야.
한번 걷잡을수없이 터진 기침이 잦아드는가싶더니 되살아났다. 강물이 아무리 흘러도 그치지않는것처럼. 힘에 부친듯한 헐떡임이며 쿨럭거림이 듣기에도 괴로웠다. 정말로 의원을 도로 불러야지않을지? 헌데 의원이라고 당장 멎게할 수가 있는지? 하릴없이 이불위를 쓸어내렸다 두드렸다하려니 다행히도 기침은 가라앉기시작했다. 목이 터지지는않았는지? 숨을 못쉬는건 아닌가 살피다 목정 가 삼남이 소매로 입을 가리며 목청을 고르는것에 제실책을 깨달았다. 타구(唾具)와 마실물부터 챙길것을.
허둥지둥 타구와 데운물을 가져다놓는데 그가 숨을 삼키기무섭게 대꾸를 했다. 제대로 숨쉴틈도 없었을터인데도 어찌 다 듣고있었는지?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성정이라 이건가? 아무리그래도 내가 저의 죽음을 기대하길 유도하더니 대뜸 위로라는 호의를 베푼건 대관절 어디서 기저한변화인지 통모르겠다. 여느사람이라면 이유가뭐든 호의를 보이고픈 이로부터 미움받기를 원치는않을터인데.
그러나 그직후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눈앞이 번쩍하고 골이 띵했다. 잔기침에 섞여나온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모를소리. 저를 원망하기위해서라도 살라? 하마터면 헛웃음을 흘릴뻔했다. 어처구니없을만큼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동시에 허탈감으로 압도하는 말이었다. 미골의 유화는 공녀가 되면서 이미죽었건만 숨붙이고있을 이유라곤 스스로 끝내서 밉보였다간 가족까지 해코지를 당할까봐뿐이건만 공녀로 두고서는 계속살란다. 그 어불성설이 기막히면서도 가슴은 무지근하고 저려왔다. 제몸 아프고괴로운거나 가시길바라도 모자랄 환자가 공녀하나 살고죽는걸 신경써 무엇한단말인가. 그래서 변덕이라는건가? 아니면 ... 혹여 자기일은 욕심이라며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있는가? 이 터무니없는 자를 내가 어찌 받아들여야하는가?
어지럽다. 맥이 격하게뛴다. 몸은 도로 드러눕는 목정 가 삼남을 거들고 이불로 감쌌으되 머리는 마냥 흐리멍텅했다. 가쁜숨소리도 제기척인지 그의 기척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의 이마를 짚고서 열이 다 내리지않은것을 확인한순간 엉켰던실타래의 매듭을 막 푼것처럼 머릿속이 정리되기시작했다. 이사람이 죽기를 기원하며 버티진않으리라. 인명은 이해득실보다 귀하다고 배워놓고 실천하지않는다면 목정 가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의 죽음말고는 무엇에도 의미를 두지못하며 목숨을 부지한들 그게 덜 참혹한길일까? 무엇보다 죽기를 바랄만큼 증오하기엔 이사람이 너무나 약하다. 한번의 밤나들이조차 욕심이라 자조하고 제 마음씀씀이는 파괴적인방식으로말고는 드러내지도 못할만큼. 이사람이라고 이리 살고싶었겠는가? 내가 닥친상황에 대처하기 급급했듯 그도 어느정도는 그랬으리라. 허니.. . 유화는 물수건을 적신뒤 목정가 삼남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사실 연은 어째서 자신이 이 공녀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름의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확실하다고 얘기할 수 없을만큼 그도 자신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물론 다른 시종들에게도 자그마한 배려 정도는 얼마든지 해주고 있었지만 화에게는 그 태도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저 멀리서 온 사람이라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렇기에 그는 화가 하는 말을 듣고서도 대꾸도 하지 않은채 그저 눈을 감고 누울 뿐이었다.
" 한 시진 이후에 깨워다오. "
추운 날씨인만큼 해가 빨리 떨어지니 한 시진 이후엔 캄캄한 밤이 되어있을거라 생각했다. 밤이 이 정도로 기니 동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원래 몸이 아프면 계속 졸린 법인데 약의 효과까지 겹치니 평소의 그와 다르게 얼마간은 어느정도 깊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얘기했던 한 시진은 커녕 반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깬 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플때도 잠을 제대로 못자는건 너무하지 않은가.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을까하여 살짝 뒤척이던 연은 문득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 ... 간도 크구나. "
눈을 뜨고 화가 있던 쪽을 바라본 연은 피식 웃어보이고선 작게 속삭였다. 꾸벅꾸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졸고 있는 것일테다. 허나 아무도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졸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적은 없었으니 그는 자신에게 하는 말도 그렇고 화는 분명 다른 시종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허나 자신이 낮부터 깨어있었기에 다른 시종들은 물론이고 화까지도 한창 잘 시간에 자신의 수발을 들었으니 피곤할 것이라 생각해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 낮부터 내 옆에 있었으니 돌아가서 쉬어도 좋다. "
아마 다른 시종들은 돌아가면서 쉬고 있을텐데 화만 자신의 옆에서 계속 수발을 드는 것이 조금 불편한듯 했다. 다른 시종들도 충분히 자신을 모실 수 있고 옆에 너무 오래있다보면 옮을 수도 있으니 조심을 하는 것도 있었다. 또한 잠깐 졸고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눈을 감은채 뒤척이며 등을 돌려 누웠다.
" 집사에게 말하면 다른 시종을 불러줄 것이다. "
혹여 말하기 불편하다면 집사에게 말하면 알아서 해결해줄테니 부담 가질 필요도 없을듯 했다.
열이 내렸나 확인하고자 목정 가 삼남의 이마를 짚은순간 기겁하고말았다. 잠든줄만 알았던 그가 눈을 말똥히 뜨고있었다. 게다가 간도 크다며 웃고있으니 낭패중의 낭패다. 화들짝 꿇어앉아 고개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소인의 불찰이옵니다!"
정신이 덜 들었는지 자연스레 무릎꿇고 소인이라 칭하는게 착잡하다는 잡념이 앞서버렸다. 못할땐 못하는대로 익숙해져야만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게되고 할땐 하는대로 비굴하다고 자괴하게된다. 아무리그래도 환자를 앞에두고 자버린 주제에 딴데 정신팔면 어쩌자는건지? 얼마나 자버린 걸까? 암막때문에 늘상 어둑한방이라 가늠을 못하고있다가 뒤늦게 시계라는걸 곁눈질했다. 짧은바늘이 시간을 나타낸다고 했던듯한데 얼마 안움직였다. 저대로면 아마 반시진도 안지난 듯하다. 한시진뒤에 깨워달랬던게 무색하다. 탕약을 마시고도 이정도로 잠을 못이루다니. 그의 이마를 짚었던 손에 남은 열기가 께름칙하다. 열때문일까 아니면 저주때문일까?
곰곰생각하다 찔끔했다. 욕하든 신경질을 부리든 반응이 나와야하는데 여태잠잠하다. 그사실을 깨닫기무섭게 목정 가 삼남이 쉬어도좋다고 허락했다, 다른시종을 부를 방도까지 일러주면서. 그러나 선뜻 따를수가없었다. 낮부터 고생한건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나는 이 사달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책임이 있다. 야밤의 산책에서 신문물 운운했던것도 문제지만 그에게는 산책조차 욕심으로 치부되도록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피의 저주라면 더더욱 그렇다. 좀전에 지껄인 소리들이 후회스러워졌다. 뭐가 아픈사람의 소망을 이룰방도를 찾아보면서 버틴다인가? 그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외면할거면서. 허나 선대어르신들께서 한이 맺히고맺힌끝에 거신 저주라면 내멋대로 개입해선 안된다. 이 무슨 어중띤태도인가? 이사람에게 타인을 배려하려는마음이 있음을 몰랐다면, 이 사람도 운명에 휘둘리고있는 약한사람임을 몰랐다면, 그랬더라면 이토록 위선으로 허우적대지는않았을까? 그런 모순을 통감하면서도 잠자코있지는 못했다.
"면전에서 졸아버렸으니 미덥지못할줄은 아오나 ... 아직 열이 높으시옵니다. 열이 내리실때까지는 예 있게 해주시옵소서. 다른시종들도 낮부터 일하기는 마찬가지이오니 소인이 특별히 더한것은 없사옵니다. 하옵고 땀을 적잖이 흘리셨사온데 젖은옷을 입고계시오면 푹 잠드시기 힘드실것이옵니다. 새옷을 준비해올리올까요? 아니면 목욕을 하시도록 더운물을 준비해올리올까요?"
이렇게 뜻을 거스르면 괘씸해하거나 아픈게 더 심해질까. 그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짚고넘어가지 않을수가없었다. 불면의 근본적인원인이 저주일지라도 잠자리를 편안하게 만들만한건 뭐든하고픈게 솔직한심정이었다.
애초에 한 시진 있다가 깨워달라고 했던건 본인이니 그 사이에 긴장이 풀려서 깜빡 잠들었다고한들 화에게 잘못은 없으니 말이다. 연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손을 작게 휘휘 흔들고선 쉬어도 좋다는 말과 함께 등을 보이고 누웠다. 이렇게 자세를 바꾸다보면 잠깐 편한 자세를 찾아서 잠깐이라도 잠에 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깜빡 졸 정도로 피곤해보였기에 쉬라는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화는 열이 떨어질때까지 옆에 있겠다고 했다. 나름의 배려였지만 본인이 필요 없다고하니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목욕물을 준비해달라고 이르거라. "
땀을 계속 닦아내곤 있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거기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으면 이 오한도 조금이나마 사라질거라 생각이 들어 연은 목욕물을 준비하란 지시를 내리고선 누워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목욕 시중을 드는 시종들은 따로 있고 지금은 목욕을 하는 시간이 아니니 목욕물이 데워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소매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낸 그는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며 말했다.
" 누워있으니 머리가 더 아픈것 같구나. "
아마 온 몸이 아프니 머리까지도 아픈듯 했다. 어깨가 뻐근한지 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고 조금씩 돌리면서도 다른 한 손으론 어깨를 주무르는 팔을 작게 두드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힘이 없으니 오래 하지는 못하였고 눕지도 못해 인상만 찌푸린채 침상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효 덕분인지 아까보단 상태가 괜찮았기에 이렇게 앉아있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행일까? 목정 가 삼남은 유화가 졸아버린것에 그다지 개의치않는 모양이었다. 속내가 어떨지는몰라도 그점때문에 다른사용인을 데려오라하진 않았으니 그렇게 간주해도 무방할듯하다. 어정쩡한 위선으로 점철된 자신의 근본적인문제가 풀리는건 아니지만 일단은 그걸로 족했다.
하여 바깥의시종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해달라 전하고 돌아와보니 목정 가 삼남은 도로 일어나앉아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있었다. 누워있으니 머리가 아프다면서. 그러더니 어깨를 주물러가며 팔을 두드리는것이 두통뿐만아니라 근육통도 상당한 모양이다. 몸살증상일까 저주의 여파일까. 거기까지는 알수없으나 그 모습을 보자 감기에 유효한 지압법이 떠올랐다. 정수리의 백회혈(百会穴)을 지압하면 두통을, 쇄골사이의 천돌혈(天突穴)을 지압하면 기침을, 뒷덜미한복판의 대추혈(大椎穴)을 지압하면 미열을 가라앉힐수 있다고했는데. 시종들이 목욕물을 데워주는동안 지압이라도 해봐야겠다. 의원의 처방만큼 효과를보지는 못하더라도 안하는것보단 낫길바라며. 유화는 목정 가 삼남에게로 다가섰다.
"잠시 지압을 해도 괜찮겠사옵니까?"
목정가 삼남이 받아들인다면 유화는 그의 머리를 감싸는한편 좌우엄지로는 백회혈을 지그시 누를것이다. 이어 그의 뒤통수부터 뒷덜미까지 손으로 쓸어내리듯이 내려가서는 대추혈을 지압하다가, 그의 쇄골을 따라 자기 양손을 움직여서는 천돌혈을 마사지하기를 거듭 되풀이할것이다. 또한 근육통도 내버려둘수없으니 목과 어깨사이의 뭉친 근육부터 어깨, 위팔, 아래팔도 번갈아 주무를것이다. 더러 제팔이 아프고 힘에 부쳐도 목정 가 삼남의 신열(身熱)이며 진땀에 절은몸이 워낙 즉각적으로 느껴지니 차마 멈출엄두를 못내고 계속하리라. 받아들이지않는다면 목정 가 삼남이 추위를 덜느낄수있도록 화로를 가까이로 옮기거나 그의 어깨에 이불을 걸치는한편 땀을 닦을 마른수건이나 목을 축일 더운물을 건넬것이고 그가 다보지못한 서류는 책상위로 옮겨 정돈해둘것이다.
어쨌거나 목욕물이 준비되었노라고 사용인이 고하러오면 목정 가 삼남이 나가는것까지 마저 도울것이다. 그리고 방이 비는 즉시 젖은이불을 치우고 새이불을 침상에 가져다놓되 이불을 데우기위해 아래에 손난로를 깔아둘것이다. 거기까지 하고나면 그가 목욕을 마치고 나온뒤를 염려하리라. 탕 안팎의 온도차이때문에 자칫했다간 오히려 오한이 심해질지도 모르니. 하여 유화는 그가 최대한 빨리 옷을 입을수있게끔 옷가지를 챙겨서는 욕탕바로앞에서 기다리고자할것이다. 옷가지사이에 손난로를 두어 옷을 데우면서말이다. 한편으로는 목욕을 마친직후 으레 느낄법한 갈증을 고려할것이다. 목정가 삼남이 하도 고열에 시달려 탈수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더욱그럴것이다. 그러면 유화는 옷가지를 바구니에 챙겨넣고 뜨끈한 꿀물과 건더기를 걸러낸 배즙은 쟁반에 담아서는 욕탕으로 향하리라. 그는 오늘 제대로 먹질못했으니 단음료로라도 빈속을 채우고 기력을 회복하길바라면서
아프지 않을때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산재해있는 몸이니 아플때는 그것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아프면 자연스럽게 몸이 예민해지고 그렇다보니 평소에 아픈 것과 지금 아픈 것은 또 다르게 느껴져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주무르고 두드리고 있으니 화의 말이 들려왔다. 다른 때였다면 자신의 몸을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했겠지만 땀을 닦아낸다거나 할때 이미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졌으니 이제 와서 그런 승질을 부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부탁하마. "
그래도 내심 누군가 안마를 해주길 바라고 있던터라 그는 몸에 힘을 풀고 화에게 반쯤 몸을 맡겼다. 머리와 목, 어깨쪽을 같이 풀어주는 그녀의 손길에 아픈 와중에도 만족스러운지 약간의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런 표정인지는 모르는듯 했다. 헌데 누르는 압력이 꽤나 강한 것이 분명 손이 아플텐데 팔까지 주물러주는 것을 보자 그는 됐다고 말하려 했지만 화가 해주는 안마의 편안함 때문인지 손을 들던 것을 멈칫하고선 다시 내려놓았다.
" 다녀오마. "
그렇게 안마를 받고나니 때마침 시종 하나가 문앞에 와 목욕물이 준비되었다고 일렀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은 그는 화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일어나서 마중나온 시종에게 다가가 시종에게 의지하여 천천히 방을 나갔다. 평소엔 그렇게 멀지 않은 길이건만 오늘만큼은 걷는 속도가 느려서인지 그 복도마저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넓은 탕에 발끝부터 천천히 몸을 담구자 추웠던 몸이 금방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탕에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 반시진 정도 들어가있던 연은 천천히 나와서 몸을 닦아내고선 새 옷을 입었다. 탕에 들어가있을땐 좋았지만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온도차에 그는 다시 한번 크게 오한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욕탕 앞에 서있는 화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따뜻한 꿀물을 보자 망설임 없이 꿀물이 담긴 잔을 들고서는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
연이 그런 말을 하자 그의 이동을 도와주고 있던 시종이 놀란듯이 그와 화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평소에 이런 말을 해주는 위인이 아닌 것을 알기에 더더욱 놀라운 일이겠지. 하지만 그런 시종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연은 욕탕에 갈때처럼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누운 그는 아까보다 더 따뜻한듯한 이부자리를 느끼고선 화에게 자신과 가까운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아지겠지. 다녀오겠다면서 시종의 부축을 받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맥도 못추고 까무러쳤던때에 비하면야 의식도 똑똑해졌고 의원의 조치대로 따르고도있으니. 그때까지는 힘내자고 졸린몸을 추스르며 방을 정리하고 새이불을 데우려니 손난로가 작아서 여러개를 동원해야하는게 못내아쉽다. 죽부인처럼 안고잘만한 크기의 난로가 있었다면좋았을걸. 그만한 법랑에 숯을 꽉 채워넣으면 표면이 너무뜨거워져서 안만든거려나? 아니면 그만한 법랑을 만들어서 숯을 가득채울만큼 넉넉한경우는 드물어서 못만든거려나? 만약 후자라면 여기 목정 가에서는 만들수있을법도 한데.
그런저런 싱거운생각과 함께 방정리를 마무리하고 이것저것 준비하여 욕탕앞에서 대기하려니 오래지않아 그가 나왔다. 욕탕의 훈기로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 무색하게도 떨고있는지라 순간 흠칫했으나 그나마 꿀물을 제손으로 들이키기에 한시름놓았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꿀물을 좋아하는구나. 찬음료보다는 따끈한음료를 선호하는것도 같고. 그런생각이 스칠때 불쑥 미안해하는듯도하고 고마워하는듯도 한 어쩐지 수줍게까지느껴지는 한마디가 파고들었다. 그를 부축하던 시종도 놀란눈치다. 일순 멍해졌다가 황급히 챙겨왔던 짐을 한쪽구석에 놓았다. 그러고는 그를 부축하는 시종을 거들며 답했다.
"간병인의 고충이 크다한들 환자의 고통에 비하겠사옵니까. 더욱이 소인은 먼저오신분들을 거들었을뿐이옵니다."
어느정도는 진심, 어느정도는 처세였다. 아파서 제대로 먹지도쉬지도 못하면 오죽이나 괴롭겠는가? 더구나 나으리라는 기약조차 없는 고통이니 매순간순간 피가 마르는 기분이리라. 살아봤자 원수가문의 시녀요 죽었다간 가족이 무슨꼴을 당할지모르는 내 신세는 뭐 그리 대단하냐만 나는 그래도 내한몸은 스스로 가눌수있지 않은가. 그런 안타까움 못지않게 피의 저주에 대한 께름칙함도 짙었다. 나로서는 관여해선 안되는 영역이고 관여할 능력도 내겐 없다. 해주법(解呪法)을 알고있단걸 들켰다간 내가족이 볼모잡힐까 두렵기도하다. 그렇다해도 고통받는이를 모른척하는건 가책이 들지않을수없다, 당사자에게 치하를 들으니 더더욱. 하여 공순한시녀 행세라도해서 복잡한심경을 감추고싶었다.
바람대로 감추어졌을지는 알수없으나 목정 가 삼남의 처소로 돌아와서는 그가 누울때 걸리적거리지않게끔 이불속에 넣어뒀던 손난로부터 정리했다. 죽부인만큼 큰 난로가 없는건 여전히 아쉽지만 도로 침상에 들어간 그는 목욕하기전에 비하면 오한을 덜느끼는듯보였다. 열은 어느정도일지? 이마를 짚어 확인하려는데 그가 쉬거나 교대해도 괜찮단다. 정말로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아픔이 조금만 가셔도 이처럼 타인에게 마음쓰려는 사람인가. 딱하고 미안해 짐짓외면하고서 그의 이마만 짚었다. 아직 열감이 남아있다. 유화는 물수건을 적셔 그의 이마에 올려놓은뒤 이불에 빈틈이 생기지않도록 폭폭 눌렀다.
"앞서 아뢰었듯 열이 내리시는걸 확인하면 물러가겠사옵니다. 마저 주무시옵소서. 그러신 연후에 새벽녘에 탕약을 더 드시오면 좀 더 나아지실것이옵니다."
그렇게 말을 맺고서는 바로 자장가를 불러버렸다. 어릴적 어머니께 들으며 잠들었고 자라서는 희에게 부르면서 재웠던 가사와 곡조를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속삭이듯이.
/봄밤의 한 자락은 천금과도 같을지니/ /꽃 향기 그윽하고 달 그림자 짙어라/ /누각의 밝은 가락 아련히도 잦아드니/ /그네 멈춘 후원은 밤 고요히 깊어라/
저런! 몸은 좀 괜찮아?8ㅁ8 아픈데 출근까지 했으면 더힘들겠는데(눈물) 안그래도 주중현생은 빡센데 겨울치곤 따뜻하던날씨가 갑자기 훅추워져서 무리가 갔나봐X( 답레이어주면 나야 고맙지만 컨디션이 안올라오면 다른거생각말고 몸 나아지는것만 생각해(토닥) 건강이 최우선이야~!!
먼저 오신 분들을 거들었다니, 자신이 일어나고서부터 계속 옆에 있던건 분명 유화이지 다른 이가 아니었기에 연은 의문을 표하려 했다. 허나 뒤늦게 다른 시종도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헛기침만 한번 하고서는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탕에서 나와 한기가 도지던 몸은 따뜻한 꿀물을 마시자 그 한기가 조금 가셔서 살만해진 느낌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연은 도로 침상에 누웠다. 목욕을 하는 사이에 침구들을 전부 바꾸었는지 감촉이 상당히 좋은듯 했다. 화의 손이 이마에 올라왔지만 연은 별로 연연하지 않은채 눈을 감고선 어떻게든 잠에 들 려고 하고 있었다.
" 나는 그런걸 들을 정도로 어린아이가 아니다만. "
순간 들려온 화의 자장가에 그는 눈을 살짝 뜨고서 화를 바라보고선 말했다. 자장가라, 그도 어릴적엔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들곤 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게 무척이나 온화하여 엄하신 아버지에게 혼나고 나면 남매들을 웃는 얼굴로 다독여주시던 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연에게 저주가 옮겨가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였고 결국 연이 저주에 잠식되어 고통에 시달리게되자 매일 같이 와서 돌봐주었다. 하지만 몸이 약했기에 그것이 무리가 되어 지금은 본가 바깥으로 함부로 나오지도 못하는 처지였고 그래서 연 또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 허나 나쁘지 않구나. 너의 고향에서 전해내려오는 것이냐? "
처음 들어보는 음율이었기에 화의 고향에서, 혹은 화의 어머니의 고향에서 전해내려오는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어째서인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을 그는 화에게 물었다. 자장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 나빠하는듯한 말과는 달리 분위기는 아까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것이 신선하였기에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을 어찌 알 도리가 없었으나 평소보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은 확실한듯 했다.
"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열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괜한 고집 부리지말고 지금 가서 쉬거라. "
자신은 병자이고 옆에 있으면 분명 옮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건강한 상태라면 굳이 옮길 걱정을 하진 않았겠지만 지금의 화는 그가 보기엔 잠을 제대로 못잤기에 자칫하면 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릴때나 들었고 어린동생에게나 불렀던 자장가를 목정 가 삼남에게 부른건 어째서였을지? 아마도 그 노래를 부르고들을때의 분위기를 기억해서이리라. 하루일과를 모두마쳐서 잠들기만하면 되는 고요한시간. 그러면서도 어린마음에 혼자가 되는거같아 불안하고 안타까운 시간. 그때의 자장가는 혼자가 아니라고 잠들고나서도 곁에서 지켜주리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듣다보면 안심하고 잠들수있었고 그걸 이해할만큼 자란뒤에는 희에게 부르곤했다. 지금 그앞에서 부른것도 과히 다르진않았다. 아픈사람이 마음놓고 푹 잘수있었으면했다. 설마 노래부르다 졸진않을테니 졸음을 쫓기위함이기도했지만
그러나 목정 가 삼남에게는 오히려 역효과였나보다. 감았던눈을 살며시뜨고 올려다보는시선에 얼굴이 화끈달아올랐다.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그시선을 피해 고개숙였다.
"송구하옵니다!"
그의 말마따나 아픈사람이라도 어린아이는 아닐진대. 언짢아할만도 한 상황이라 달리 할말이 없었다. 차라리 가만있었더라면 그가 고요함속에서 잠들었을까? 낭패감에 제발치만 내려다보다 뒤따른 말에 멍해졌다. 곧이어 당혹감이나 민망함과는 딴판으로 부드러운감정이 밀려들었다. 언제부터였더라? 자장가를 부르자 어린애 재우는거같다며 희가 새초롬한 반응을 보였던게? 기특함반 허전함반으로 미안하다 사과했더니 듣기싫다는건 아니라며 무릎맡에 다가붙는게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지금 목정 가 삼남의 반응이 딱 그짝이라 저도모르게 웃어버릴뻔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고향의 노래냐는 물음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신이 함구하든 안하든 목정 가 삼남이 내고향쯤은 얼마든지 알아낼수있는 자임을 안다만 그래도 숨기고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거기있는 가족을 끌고올수도 죽일수도 있는 권력자이므로. 지금이야 별뜻없이 묻는것일테고 아픈와중에도 호의적인태도이다만 첫날만해도 가족을 들먹이질않았던가. 사람마음이란 언제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법이다. 하여 고향이나 가족얘기는 최대한 피하는방향으로 말을 골랐다.
"누가언제 만든 가락인지는 모르옵니다만 노랫말은 옛 문인이 지은 시라 들었사옵니다."
표정이 굳어보이진않을지? 꺼림칙해하는 티가 나지는말아야 할텐데. 정말로 어정쩡하다. 운명을 감당하느라 허덕이는 약한존재이기는 마찬가지임을 알아도 실은 타인을 염려하고 위하려는 온기어린사람이라 느껴도 경계심이 가시진않는다. 호의는 아무때고 거두어질수있으나 이사람이 목정가의 사람임은 변치않으니까. 더욱이 피의 저주와 그 해주법을 생각하면 ... . 암담하다. 이제와 이사람을 원망하고 증오하는건 무리다. 그러나 서로의입지와 상관없이 신뢰하는것또한 불가능하다.
현실이 그런이상 피하는게 상책이련만 마침 목정가 삼남도 다시 권하건만 잠들지못하고 열도 잘 떨어지지않으리라는 체념적인태도에 오기가 솟고말았다.
"차도를 보이시는걸 확인하면 바로 물러가겠사옵니다. 소인이 쉬길바라시오면 속히 쾌차하시옵소서."
순전히 억지였으나 지껄이다보니 그가 나을때까지 밤이고낮이고 버티는게 희망처럼 느껴지기도했다. 원수가문의 일원을 미워하기도 위하기도 불가능한삶. 그렇다고 자진했다간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칠 위험이있다. 하지만 죽으리라곤 상상도 안되게 멀쩡히 일에 전념하다 스러지는 모양새면 가족까지 봉변을당하는일은 없지않을까. 내감정을 이기지못해서든 들켜서 겁박을 당해서든 해주법을 누설해버릴일도 없고. 심지도 신체도 약해빠진 주제에 끝까지 버틸지가 관건이지만 어쩌면 그게 스스로 선택할수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괴로운지 후련한지 모를 결론을 안은채 유화는 목정 가 삼남의 이마에놓았던 물수건을 헹궈서는 다시얹었고 목청도 가다듬었다.
그새 또 변덕이 도져서 조금 수정해서 답레 다시올렸어!(긁적) 아깽이의 츤츤스러운 귀여움에 반응하는 서술이없는게 다시보니 많이 아쉬워서말야X9 그래도 답레내용이 바뀌는게 더 잇기편할거같으면 편히 말해줘~(붕붕) 주말된지 얼마나됐다고 벌써 연휴가 끝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눈물) 아무튼 해피홀리데이야!! 맛난거 먹고 푹쉬어XD
딱히 탓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송구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자신의 반응이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다는 깨닫고선 약간 멋쩍은 기분이 들긴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자장가를 들었으나 잠이 쉽사리 오지 않기는 했지만 부드러운 선율이 아픈 몸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장가에 집중하게 되니 다른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보면 될까. 하지만 애가 아니라고 해놓고 다시 불러달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니 한번으로 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연은 답했다.
" 이곳에도 어린 아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자장가가 하나 있지. "
수도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줄때 가장 먼저 알려주며 불러주는 것이기도 했다. 허나 연은 그것을 들은지도 오래 되었기에 대충의 음만 알고 있을뿐 가사까지 잘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자장가를 듣지 않을 나이가 될때부터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니 말이다. 그러다가도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억 난다는 것은 어쩌면 신비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집사라면 알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노년의 집사에게 그것을 불러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 그게 쉽게 되었으면 이리 말하지는 않았겠지. "
아마도 내일까진 이렇게 꼼짝없이 누워있어야할 것이니 말이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는 있었지만 병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사리 피해지지는 않는 법. 기온이 바뀌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오한이 들어 아프기 시작하고 더운 여름엔 더위를 먹어서 아프고 추운 겨울엔 추위에 시달려 1년에 4번은 꼭 아픈 시기가 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삶을 길게 지속하고 있으니 화의 말이 덧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더 말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여기 있고싶다는데 말리는게 더 이상한 일 같으니 말이다.
" 그리 하고싶다면. "
그러다 화가 계속 부르겠다고 하자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한번쯤은 더 듣고싶었는데 불러준다니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자존심은 지켜야겠는지 불러도 좋고 안불러도 상관 없다는 스탠스를 취해본다. 이마의 물수건이 바뀌고 조금 식어서 차갑던 수건이 다시금 따뜻해져 이마에 올라온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성스럽게 간호를 받아본게 꽤 오래된 일인듯 싶었다. 집안의 시종들은 자신과 접촉하는 것을 꽤나 꺼려했으니 말이다.
" 네가 살던 곳이 약초가 유명하다고 했었지. "
분명 지난 밤에 연이 화에게 살던 곳에선 무엇이 유명하냐 물어본 대화의 일부였다. 약초로 그나마 유명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그는 잠시 고민하는듯 뜸을 들였다가 화에게 시선을 옮기며 천천히 얘기했다.
" 네가 서신을 보내거라. 약초를 구매하고 싶다고 말이다. "
공녀 출신으로 제국에 오게 되면 본디 살던 곳과의 연락은 철저하게 금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제국이 점령한 땅에서는 저항군이 있었기에 공녀들이 그들과 내통하여 수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녀들 대부분이 유력 가문의 후첩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중요한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서 화가 직접 서신을 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서신이라면 어떤 검열도 피해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제국도 사람사는 세상이라는건지? 누가 그러라지않아도 아이들을 재울때면 으레부르는 노래가 있는모양이다. 목정 가 같은 세도가에도 전해지는모양이고. 그도 어릴적엔 그노래를 들었겠다. 희처럼 때로는 하품하고 눈비벼가며 더 놀고싶다 보채면서도 잘시간을 알리는 자장가에 어느새 누워버린적도 있지않았을까? 이곳의 자장가는 어떨지 좀은 호기심도 일었으나 구태여 그에게 묻진않았다.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시절이면 저주를 뒤집어쓰기전 남부러울것없던 시절일터. 그시기를 상기시키는게 자칫 현재의 괴로움을 들쑤시게 될까봐서였다. 누구나 알만큼 두루퍼진 노래라면 언젠간 들어볼일도 있겠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하여 침묵을 지키려니 그는 여전히 체념적이다.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반응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니 누구보다 차도가 있기를 바랐을것이나 불치의저주로 번번이 좌절되었을테니. 희망이 깨질때마다 괴로워지느니 차라리 기대를 갖지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대도 인지상정. 해주하지도 못할거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게 오히려 주제넘은짓이리라. 하지만 그럴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덜 고통스러울수있는 수단을 동원해야지않을까. 당장 여기도 그가 햇빛에 화상을 입지않도록 암막을 쳐놓지않았는가. 그거야말로 쉽든말든 그에게 고통을 줄이기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방증일거다. 저주와 달리 감기는 개인차가 있을지언정 낫기는낫는 병이기도하고
일주일. 그동안은 어떻게든 견뎌내자. 좀전처럼 정신놓고 졸지말고 침식(寢食)에 연연하거나 몸을 아끼지도말자. 그가 나아지는것말곤 아무것도없는 사람처럼 미친듯이 버티다보면 어떤식으로든 끝이 날테니. 밤새도록이라도 그의 머리맡을 지킬작정으로 뻑뻑한눈을 꿈벅이던중 눈이 번쩍뜨였다. 무덤덤한가운데 어딘지 새침한말투. 앞서의 자장가가 싫진않았던걸까? 그렇긴해도 티내긴쑥스러웠고? 짐짓 점잔빼는 모습이 정감있게 느껴졌다. 잔뜩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선뜻 다가오지는못하고 경계태세로 지켜보는 고양이같달까?
그에 힘입어 같은노래를 되풀이했다. 별일이 없었다면 그가 잠들도록 계속했을것이다. 원래도 아이가 쿨쿨잘때까지 부르고 또부르는게 자장가이니. 그런데 그가 불쑥 고향얘기를 꺼냈다. 노랫소리가 나오다말고 목에서 꽉 막혔다. 여느산에나 널린것이라 얼버무렸건만 기억하고 있을줄이야. 뭐라 답해야좋을지 궁리해도 띵하고 멍하기만하다. 그도 모자라 더 놀라운말이 이어졌다. 우리마을에서 약초를? 시장만 나가도 갖가지약초를 파는 점포가 숱할텐데. 그것도 연통은 나더러 넣으라니? 공녀에게 그런연락은 금지된것 아니었나? 대관절 무슨생각인지?
이만하면 만류할근거로는 충분하겠지. 더 얘기해봤자 사족이고 긁어부스럼일거다. 허니 입을 다물어야하는데 못내 께름칙했다. 아라가 사람까지 공식적인공물로 바치는 속국이긴하나 제국치하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이들도 적지않다. 그런데도 굳이 나더러 고향과 연통하라는 연유는 무엇인가? 만일 그가 만류를 듣지않아 연통을 넣게되면? 마음같아선 연통이고뭐고 우리가족에게 기별부터 하고싶다. 목정 가나 제국에서 절대 찾지못할곳으로 피해달라고. 허나 그게 도리어 화근이되면? 가만있었다면 몰랐을 우리가족의 거처를 내스스로 알리는격이 되어버리면? 혼란한심정이 구역질처럼 올라왔다.
"더욱이 소인은 아라출신이옵니다. 연통을 넣는척 수도나 이 댁의 사정을 누설하리라는 염려는 아니되시옵니까?"
공녀가 되면 본국과의 연락을 일절 금하는것도 그런사태를 막기위함일진대 이사람은 어째서 이런얘기를 꺼냈는지? 나를 신뢰해서라면 무얼근거로 믿어버리는지? 줄곧 이곳에서 일해왔던 사용인에게도 신경이 곤두서있는 사람이 나를? 실로 대책없는 순진함아닌가. 아무리그래도 그정도로 어리숙할까? 그정도는 아니라면 일종의 함정수사일까? 우리가족은 물론 나아가 아라에 남은 반제국 인사를 잡아내려는?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생각에 눈앞이 아뜩해졌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자 양무릎을 움키며 웅크렸다.
길어야 일주일. 차도가 좋다면 그러하겠지만 그가 일주일 안에 감기를 다 나아본 경험은 손에 꼽았다. 대부분은 2주 정도를 꼬박 앓아야 완치되었고 거기서 일주일은 더 요양해야 몸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래도 나쁜 의도로 말하는 것은 아니니 대답하려다 말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화의 자장가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연이 꺼낸 말에 돌아온 화의 반응은 좀 의외의 것이라 그도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댇답했다.
" 근방의 약초는 다 써보았으나 효험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마침 네 고향이 약초로 좀 유명하다하니 그곳의 것이라면 다를게 있을까 싶어서 말이지. "
그가 이렇게 앓은 것만 십수년이 되어가니 제국의 내로라하는 약재는 모두 써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엔 차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약초들도 있었으나 다음에 아플때 또 써보면 저번에 보여주었던 효험은 다 어디가고 그에겐 어느 효능도 보여주질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가 처방 받는 것들도 몸을 편안하게 해줄뿐 본질적으로 무언가 낫게 해주는 약은 아니었다. 그러다 마침 화가 지난 밤에 얘기했던 약초가 생각나서 제안을 한것 뿐이었다.
" 이제 수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자가 수도의 사정을 얘기하려면 얼마나 얘기할 수 있으며, 본가에도 가보지 않은 네가 이 가문의 사정 또한 많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
물론 화가 그런 얘기는 보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만약의 경우에도 최악의 상황까진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보낼 수 있는 내용이라곤 자신에 대한 것이 전부이며 자신에게 변이 생긴다한들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인데 누군가 대신 죽여준다면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이 될테니 말이다.
" 그리고 제국은 강하다. 건국 이래로 수도는 적의 침입을 허용한 적이 없으니 허튼 짓은 못하겠지. "
유래없는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탄압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술을 공유해주는등 유화 정책을 같이 펼치고 있었다. 특히나 현대의 황제는 온건파에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강경파들은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제국의 유력 가문 중 하나인 목정 가문의 삼남이 피살이라도 당한다면 정책의 방향성은 순식간에 반전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 무언가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게 연의 생각이었다.
" 네가 그날에 우리 가문에 오지 않고 황궁으로 갔다면 연통은 커녕 바깥 외출도 철저히 금지 당했겠지. 허나 지금은 네가 우리 가문의 시종이고 본가도 아닌 내 소속이니 그런 불문율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
순전히 자신의 호의니 받아들이던 아니던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 그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듯 다시 눈을 감았다. 화가 보내고 싶다면 자신의 인장을 찍어서 보낼 것이오 그러기 싫다면 그것 또한 그녀의 뜻이니 딱히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약초쯤이야 집사에게 말하면 일주일 안으로 들여올 수 있는 것이고.
긁어부스럼이었다. 가만있었다면 안 샀을지도 모르는 의심을 자초했으니. 뻔히알고도 충동을 이기지못하다니 어째서? 해주법을 알고도 침묵한다는점에서 그에게 가장 큰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나를 믿어버린게 딱해서? 그게 실은 내 머리꼭대기에서 노는거면 어쩌게? 골이 지끈거렸다. 이 사람이 의심이많다면 거꾸로 꿍꿍이를 품고서는 못할질문이라 넘겨줄지? 반대로 그조차도 의심을 피하려는 수작이라고 더 의심할지?
침묵이 숨통을 죄는듯한 가운데 몸이나마 가누고자 애쓰는데 앞서와 별다를바없는 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픈몸이 좀처럼 차도가 없다보니 이국의 산간벽지에 난다는 약초에까지 혹했던모양이다. 반쯤 굽어졌던 등이 바로펴졌다. 이건 아직은 완전히 체념해버린게 아니라는, 즉 희망을 찾아내려는 의욕이있다는 의미일까? 제국각지의 약초로도 가라앉지않은 고통이 미골의 흔해빠진 약초로 호전되리라고는 기대하기어렵거니와 고통의근원이 피의 저주라면 더없이 기만적임을 통감하면서도 그 희망을위해서라도 승낙하고픈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내 께름칙한답이 이어졌다. 물론 틀린말은 없어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으나 수도의 사정이나 목정가의 사정은 그렇다쳐도 그에 대해서는? 흉기는커녕 햇빛만닿아도 까딱했다간 사망할지도모른다는 점을, 그경우 목정가의 다른일원이 비슷한지경에 처하는 저주가있음을 누설하는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게 제국에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기위해 목숨쯤은 초개같이 내던지는 독립투사들에겐 무의미한정보도 아닐것이다. 그런데도 자기일을 누설하고말고는 개의치않는듯한 태도라니 .. . 그러고보니 어제도 이 사람은 호위를 마다한채 저택을나섰다, 누군가 자길 죽여주기를 기다리기라도하는것처럼. 언제 삶을 포기해도 이상하지않은 상태인걸까. 쇳덩이라도 걸린듯 속이 갑갑해졌다. 자포자기하여 허허로운것보단 차라리 있는대로 성질부리고 사소한일에도 악착같이구는편이 보기나을것같다. 그런인간이라면 최소한 당장이라도 스러질까 불안하진않을테니.
그래서일까? 제국의 보안을 믿고 배짱부리는 티가 반가운것도 같다. 그가 죽기를 자초하고있는것만은 아닌거같아서. 그러나 실로 괴상한기분이다. 제국이 강성할수록 내조국이 독립할기약은 없어지건만.
그새 변절자가 된듯한 스스로에게 환멸이 치밀찰나 정신이 번쩍났다. 자기휘하이니 공녀에게 가해지는제약은 무시하겠다? 설마 고향에 연통을보내는것도 제재하지않겠다는 의미일까?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지친듯 눈감는 모습에 턱 걸렸다. 저 의중을 정확히는 알수없으나 아니 설령 함정수사라 할지라도 이런기회를 지레겁먹어 날리긴 너무나도애통하다. 서신은 그가 지시한대로만 쓰되 어떻게든 가족에게 숨으라고 알릴방도를 생각해내야 ... ! 머리가 웅웅울리고 속이 메슥거렸으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확실한건 희망이었다. 하여 유화는 순순히 고개를숙였다.
으윽 연휴도 끝나버렸네 ... 유화주는 연휴 잘 보냈을까?! 나는 하루종일 뒹굴거렸어~~ 안감에 쓴다는건 아직은 숨겨서 보낸다는 느낌이 강하네! 나 같아도 그렇게 할 것 같지만 ... 유화가 가져오는 약초는 제국과 같은 종류라도 약효가 다를수도 있으니 어느정도는 효험이 있지 않을까?!
헉 그럼 유화네 가족들은 잠적해버리는건가! 유화한테 말을 전할 길도 없어질텐데 그럼 어디로 가서 살게 되는지도 모르게 되잖아 8-8) 그래도 유화는 자나깨나 가족들 걱정뿐이구나 ... 연이한테 약효가 잘들면 주기적으로 서신을 보낼테니 유화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윈윈이지!
다음 일상은 가볍게 데이트 어떨까~? 몸이 아직 다 낫지는 않았으니 외출은 어렵고 후원을 같이 돌아다니는거지! 차도 같이 마시고 :3
확실히 첫만남에 한 얘기가 강렬하긴 하겠네 ...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아! 연이가 잘못했다!! (등짝) 홧김에 한 얘기에 가깝지만서도 ... 음음 확실히 그 부분은 연이나 유화나 비슷한것 같아. 나중엔 분명 서로를 의지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연이가 공녀랑 알콩달콩하면 가문에선 가만 안있을 것 같지만 ... 후후 그건 나중에 다갓한테 맡겨볼까!!
그 정도는 될거라고 생각해! 조금 골골대겠지만 그래도 눈이 오면 거닐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니까 말이야. 유화만 따라오라 그러고 천천히 돌아다니지 않을까? 선레는 써주면 나야 고맙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린다. 어느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 갇히는 꿈은 생각보다 그가 자주 꾸는 꿈이었다. 아니, 자주 라고 말하기엔 빈도는 낮으니 꾸준히라고 말하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주변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머리를 길게 길러 풀어헤친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 그것의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는 피에 젖어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진득히 고여있었다. 아 또 그 꿈인가, 익숙해질법도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꿈.
" 네가 죽을때까지 따라다닐테니까. "
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그것이 말을 걸어왔다. 뒤돌아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의 얼굴이 자신과 똑닮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지금까지 다른 이들에게 그래왔을테고 앞으로도 그러할테니. 하지만 이 꿈을 꿀때마다 그는 그것이 뒤를 돌아보기 전에 깨어나고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성공해본적이 없는 그것.
" 그래서 언제 마시는거지? "
그것이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젖어버린 머리처럼 피칠갑을 하고 있는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진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도저히 자신의 목소리라고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것,
" 피를! 피를! " 눈을 뜬다. 아니, 눈을 뜨기 전에 잠깐 고민했다. 아직까지도 꿈의 안이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것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와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허나 방 안의 호롱불이 타닥이는 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은은한 불빛이 방을 비추어주고 있었고 그것에 맞추어 어렴풋이 주변의 것들이 보였다. 다행히도 꿈은 아닌가. 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곳은 기침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허나 그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도 누군가 오기 전까지 시종들을 부르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휴식도 짧아진다는 뜻이니. 그렇기에 그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제 읽다남은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감기의 여파가 남아있었지만 저번처럼 죽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 그래, 일어나있다. "
책을 조금 읽고 있으니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라에서 온 공녀 출신인 화, 라는 여성은 다른 공녀들과 다르게 특이하게도 자신의 저택에서 자신을 보살피고 있었다. 아버지의 배려라는 뜻이 있었지만 자신의 지랄맞은 성격을 다들 버티지 못하니 도망갈 수 없게 공녀 출신을 끌어들인 것이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녀가 자신의 시종으로 온 뒤로는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심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녀에게 동질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출신, 고향, 성장과정 모든 것이 다른 그녀에게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연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 해가 졌을테니 창문을 열어주거라. "
그가 기침하는 시각은 절기마다 달랐고 보통 동지에 가장 빠르고 하지에 가장 느렸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 사고를 대비하여 해가 지고나서 반시진 정도 뒤에 연을 깨우는 것이 저택의 규칙이었다. 그러므로 화가 찾아왔다는 것은 이미 해가 충분히 졌다는 것이겠지.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으니 창문을 여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일텐데 그는 창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말은 듣지 않겠다는듯한 표정과 함께.
돌아온답엔 가래소리가 그르렁섞였다. 그래도 거칠디거친 날숨이아니라 또렷한음성이니 그가 한결 나아진것만은 틀림없었다. 다행이다. 열이 내린걸 확인은했어도 자리를비우면서 내심 불안했는데. 이제 어지간하면 악화될일은 없지않을지? 그러나 기대감은 문을 열기무섭게 찌그러졌다. 그가 책상머리에서 책을 읽고있었다. 어제도 저러더니! 아직 더 쉬어야하는데!!
"자꾸 그리 무리하시오면 감기가 더디게 나을것이옵니다.. ."
그에게서 책을 떼어놓고픈 마음에 꿀물과 죽과 탕약을 얹은 쟁반을 들이밀었다. 서류를 보는중이 아닌걸 다행삼아야 하나 싶다가도 답답하다. 서류를 보지않고있는건 당장 쫓기는일은 없다는 의미일텐데 왜 무리하지못해 안달인지?
남은동안 식탐은 이렇게 눌러야하나? 속으로 조소할찰나 뜻밖의지시가 떨어졌다. 이날씨에 창을열라니? 아직 감기도 안나았으면서. 아주 몸져눕고싶은거냐고 만류하려했으나 그를 돌아본순간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창문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세상 고집스럽게느껴지면서도 서글퍼보였다. 햇빛의 탑으로 손을 뻗던때처럼 간절히바라도 손에 쥘수없는 무언가에 애태우는것도 같았다. 숨넘어가게 쿨럭거리며 괴로워하던 그가 자조처럼흘렸던 한탄이떠올랐다.
몸이 이러니 조심을 해야함에도 간혹 욕심을 부리고 싶어질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때 다짐했었다. 아픈사람에게 자그마한소망이 남아있다면 그걸 이룰방도를 찾겠노라고. 그에게 가장 간절할소망을 외면할작정이니 기만적인 헛짓거리에 불과하나 그래도.. .
"잠시만 기다려주시옵소서."
그리 말하고는 대답은 듣지않고 옷방으로 향했다. 행여라도 그가 기다리지않고 제손으로 창을 열어버리면 눈보라에 직격당할테니 최대한 서둘러야했다. 일전에 외출했을때 외출복에 갖옷, 털토시까지는 챙겼으나 생각해보면 그걸론 부족했다. 귀와 머리를 시리지않게 감쌀 털모자도, 목에 바람이 들지않게 두를 목도리도 챙겼어야했다. 그것들을 더러는 옷바구니에 담고 팔에는 한팔에 끼고서 유화는 그의방으로 돌아갔다.
만약 유화가 옷을 준비하는사이 연이 혼자 창문을 열어버렸다면 유화는 돌아오자마자 기겁하며 창문부터 닫았을것이고 그러지않았다면 옷가지를 연에게 들이밀었을것이다. 그리고 어느쪽이든 창문을 여는대신 유화가 요구하는사항은 똑같을것이다.
아플때는 앉아있을 힘도 없어서 계속 누워있기만 했지만 이젠 기운도 조금 있으니 최대한 누워있는건 피하고 싶었다. 그가 비록 체질 때문에라도 밖으론 잘 못나가긴 했지만 근본적으론 무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했고. 그렇기에 책을 읽고 있던 것인데 화가 들어와서 잔소리를 하니 시선을 살짝 옮겨 바라보고선 말했다. 영양 섭취도 꾸준히 하고 있고 휴식도 엄청나게 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더 해야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느냐? "
책을 읽고 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겠으나 그가 화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연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손을 뻗어서 화를 잡아주려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간병하느라 무리를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신의 감기가 옮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기는 나을때쯤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 옮아가니 딱 지금 시기를 조심해야하기도 했고 말이다.
' 기다리라니? '
창문만 열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뭘 기다리라는거지? 연은 작은 의문과 함께 화를 바라보려 했으나 이미 그녀는 방을 나가고 있었다. 창문을 열라 그랬더니 아예 나가버리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알 수가 없어 어안이 벙벙했던 연은 그저 화가 밖으로 향한 문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화가 들고 온 것들을 보자 그는 화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채 작은 웃음을 터뜨리고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누가 보면 내 부인이라도 되는줄 알겠구나. "
그래도 창문을 열었을때 추위가 이만저만이 아닐테니 그녀가 옷들을 가져온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해 연은 옷가지를 꺼내들었다. 근데 방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할뿐인데 이렇게 입어버리면 이건 완전 외출할때의 복장이 아닌가. 분명 저번 등불탑을 보러갈때 연은 이것과 비슷하게 입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화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체질 때문에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고 있을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져온 옷들을 전부 갖춰입고서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한 그는 눈이 오는 것을 보고선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눈이 오니 후원이라도 둘러봐야겠구나. "
감기에 걸려서 아직까지도 기침을 콜록이는데 무슨 외출인가 싶겠지만 후원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한듯 싶었다. 화가 같이 안가면 혼자서라도 나가겠다는 의지도 얼핏 보이는터라 말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얼핏보기엔 지시를 나몰라라하고 물러난모양새였으나 앉아있어도 괜찮지않냐는 말은 못내 뇌리를 맴돌았다. 우리집전체의 절반은 됨직한 널찍한방이고 사용인들이 주기적으로 환기도한다지만, 아무리그래도 며칠이고 옴짝달싹못하고 자리보전만 했으니 갑갑할만도하다. 낮에는 창밖을 바라보는것조차 못하기도하고. 더욱이 아픈것보다 갑갑한게 아쉽다면 그만큼 나아졌다는 의미이리라. 보다 거창하게해석하면 단순히 생존해있는것보다 살아있음을 실감할수있길 바라기에 갑갑함도 드는것아닐지?
머리를 어지럽히는건 그뿐만이아니었다. 잠시 주춤할찰나 흡사 부축해주려는것 같던 모습. 말투며 표정도 내게만 초점이 맞춰진듯했다. 고향에서도 그정도로 걱정들은적은 별로없었는데, 공녀신세라 내편이라곤 없는게 당연한 이곳에서, 그것도 내 윗전으로 정해진 이가 염려해줄줄이야. 웃기는일이다. 이래서야 무슨 간병인과 마음씨좋은 환자 같지않은가? 허나 되어서도 안되고 될수도없는 관계다. 피의저주를 함구하고있으면서 간병인은 무슨? 더욱이 그런분위기에 취하는건 가문과 조국에 대한 변절이다. 무엇보다, 공녀로 살지않고자하는걸 들키면 그가 어떻게 돌변할지모른다. 유화는 앞서깨문자리에서 스며나오는 피를 빨아냈다. 내게 남은길은 가족이 위험해지지않게끔 생을 끝맺는것뿐임을 그렇게라도 되새겨야했다. 그러나 비릿한걸 거듭삼켜도 묘한울렁거림은 가라앉질않았다. 결국 어지럽도록 머리를 흔들고는 애써 방한용털옷가지를 챙기는데에 전념했다. 외출복에 갖옷에 털토시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챙기니 짐이 한가득이다.
그게 어이없었을까? 방으로 돌아가자 그가 픽 웃어버린다. 이곳의 사용인들은 한결같이 불벼락이 내릴 징조라며 그가 환한표정을 떠름해했는데, 지금의 웃음은 방심하지않을수없게 부드럽 ... 다고 느끼자마자 아연해졌다. 부인이라니 이 무슨.. .? 시녀로서는 주제넘다는 불쾌감보다 오히려 친근감같은게 느껴지는 농담조임에도 혼란스러웠다. 원래도 건강이나쁜데다 지금은 감기도 앓는중이라 노집사도, 의원도, 다른 시종들도 그를 위해서건 일하기편하길 바라서건 하나같이 걱정할텐데, 걱정을 표현한 사람이 그렇게도 없었던걸까? 한편으론 뜨끔하기도했다. 피의저주를 해주하는 첫단계가 혼인이었으므로. 그걸 알았다면 이리 가볍게 꺼낼리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간담이 서늘했다.
그래도 그가 순순히 옷을 갖춰입어 한숨돌린것도 잠시. 그는 제손으로 창문을 열고말았다. 찬바람을 맞자마자 콜록거리면서도 이제야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이래서야 화로를 피우는보람이 없겠다. 창문을 닫아도될지 물으려는 순간 얼이 나가버렸다. 그가 아예 후원까지 나가겠단다. 아직 다 낫지도않았는데 도로 앓아누우면 어쩌려고? 그러나 날리고쌓이며 밤을 하얗게밝히고있는 눈이 마음에들었을까? 그는 눈오는날 폴짝거리며 뛰쳐나가는 희만큼이나 들뜬 얼굴이었다. 한숨이나왔다. 저리기꺼워하니 차마 만류도못하겠다. 막막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신발보다 따뜻한 털장화와 우산을 부랴부랴 대령하는게 고작이었다.
"눈을 맞지는 말아주시옵소서. 몸이 젖으면 감기가 도로 심해지기십상이옵니다."
그러고 후원을 살펴보니 시녀 한사람이 쌓인눈을 이제막 쓸려는모양이었다. 눈이 얼기라도했다간 한발짝내딛기도 어려워질게뻔하니 가급적 불편을 줄이기위함이리라. 유화는 그 시녀에게 도련님이 후원에 드셨노라 알리면서 이쪽은 내가 쓸테니 다른일 보시라고 권했다. 그러자 시녀는 미덥지못하다는 티를 감추지않고 유화를 흘기다 저번처럼 사고치지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빗자루를 넘겨주었다. 그 빗자루로 그가 나아가려는 방향의 눈부터 쓸기시작했다.
"쌓인눈을 밟고나면 그자리가 미끄러워져 위험하오니 다니시는길은 치우겠사옵니다."
소복이쌓인 눈을 보면 밟고싶어지기도 한다는건 안다. 눈을 밟으면서 더없이 깨끗해보이는 미지의세계에 첫발을 내딛는듯한 기분을 느껴봤으니. 그러니 눈을 치우는건 흥을 깨는짓이래도 할말없으나.... 흥내려다 호되게 앓는것보다는 이편이 낫지않을까? 아직 눈이 그치지않은탓에 쓸어도 도로쌓여가는건 도리가없다만
저택의 후원은 소복히 쌓인 눈 덕분에 모든 것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후원에 쌓인 눈들은 대부분 소복하게 쌓여있는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눈이 올때는 쌓인 것을 쓸어내어도 다시금 쌓이기 마련이니 다음 날이나 되어서야 눈을 쓸어내곤 했지만 연이 외출한다는 기별이 전해졌는지 다른 시종이 눈을 치우기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눈은 보는 맛이 있어서 쓸어내는 것이 아까웠지만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미끄러울테고 연이 그것에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입장에선 큰 참사일테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연은 유화가 털장화를 준비해주자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신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대로 우산을 들고서 문 밖으로 나왔다.
" 이제 슬슬 나아가고 있으니 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
그래도 모처럼 눈이 왔으니 나가서 맞아주는 것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몸이 다 나았을때 오는 눈을 맞으러 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주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의 수명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단명했고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들만큼 살아가기도 했다. 그러니 그도 언제 쇠약해져 죽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가급적이면 하고 싶은 일을 그때그때 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독선적이란 이미지가 점점 더 쌓여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쓸어도 다시 쌓이는 것인데 무리할 필요는 없다. "
물론 쌓인 눈을 밟았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일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당장 저택의 시종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모시고 있는 유화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리가 없으니 쓸어내리는 것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털장화를 신고서 후원에 첫발을 내딛자 아직 조금 쌓여있던 눈들이 그의 발 아래에 살짝 뭉치며 좋은 촉감을 선사해주는듯 했다. 충분한 두께는 아니라서 뽀드득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이런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외출이 될듯 했다. 가져온 우산을 펴서 왼손에 쥔채 천천히 걷기 시작한 연은 말없이 이따금 주변만 둘러보면서 눈이 쌓인 후원의 풍경을 즐기는듯 했다.
" 아라는 남쪽에 있다고 했었지. "
잠깐을 말없이 걷던 그는 주변에 있을 화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채 나지막히 물었다. 그녀가 자신이 그녀의 고향을 언급할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채 눈을 보다보니 생각이 나서 물어보는 것에 가까웠다. 길을 걷다말고 허리를 굽혀서 눈을 한움큼 잡아서 손 안에 작게 뭉친 연은 뭉쳐진 눈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주변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놓고서는 이어서 말을 걸었다.
" 제국은 북에 있어 눈이 자주 오곤하지. 더운 날보다 추운 날이 훨씬 오래 가는 곳이니까 말이야. 그곳도 여기처럼 눈이 오는가? 겨울엔 여기보다 더 따뜻한가? "
아라는 멀리 있어 집 밖으로 나가더라도 멀리 가지 못하는 그에겐 꽤나 흥미로운 장소인듯 싶었다. 화가 아라의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제국의 수도에만 있어 다른 지방의 사람들을 잘 보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 눈구경은하시되 후원을 거닐지는마시라 권하는편이 나으리라여기면서도 말뿐. 유화는 서둘러 눈이나쓸었다. 한창 내리는중이라 쓸어봤자 도로쌓였으나 역으로 그랬기에 그사람보다 앞질러 눈을 치우고자 집중할수밖에 없었다. 그가 발을 내딛기전에 치워내야한다는 일념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바라지도않았다. 그러다보니 문득 뭘해야겠다 의식하지않고도 몸이 저절로움직였다. 어쩐지 충만해지고 평온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감각을 깨닫기무섭게 눈이 자연스럽게쓸리지않고 손에 힘이들어갔다. 손아귀는 물론 팔과 등까지 불쑥 뻐근해졌다.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뒤로한채 후원을 천천히 거닐던 그는 치우지 않은 부분의 눈을 살짝 밟기도 하고 우산 바깥으로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을 손바닥에 쥐어보기도 하는등 눈 오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앞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화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연은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아라에서 넘겨진 공녀 신분으로 자신의 가문에 시종 신분으로 들어오게 된 그녀는 본디 고향에선 귀족 가문의 여식이었을 것이었다. 제국에선 어지간히 큰 죄를 짓지 않으면 신분 격하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녀의 처지가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 이 정도론 괜찮다. 괜한 호들갑이구나. "
자신이 눈을 쥐는 것을 보고선 소스라치게 놀라 다가오는 것을 보고선 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한들 손으로 눈 잠깐 만지는 것 가지고 어떻게 될리가 없으니 말이다. 손수건으로 손에 남아있던 물기를 훔쳐낸 화에게 아라에도 눈이 내리는지 묻자 그녀는 내팽겨쳤던 빗자루를 다시 쥐며 말해주었다. 봄이 길고 겨울이 짧다고 했으니 혹독한 제국의 추위는 화에겐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걱정이라, 자신이 하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 깨달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지어버렸다. 사실 자신의 입장에선 화 또한 다른 시종들과 다를바 없는 신분일텐데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상 팔려왔다는 신분이라는 것이 측은해서? 그렇다기엔 자신은 지금까지 그런 것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아니면 미모가 출중해서? 허나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생들을 보아도 그는 딱히 마음이 동하거나 그런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어째서일까.
"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 "
고향 얘기를 하다보니 감정이 북받쳐올랐는지 화가 눈물을 흘렸다. 사실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게 오히려 대단할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타향살이만으로도 힘들텐데 그녀의 신분은 사실상 패국에서 승전국으로 보내는 공물과 같으니 말이다. 연은 아직도 화와의 첫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레 겁을 먹을 법도 한데 자신을 당당하게 바라보던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다. 그랬던 그녀도 결국엔 나약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지. 허나 그것에 대해서 그는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까지의 그녀가 잘 견뎌왔다는 뜻일테니까 말이다.
" 뒤로 돌아보거라. "
연은 황급히 뒤돌아버린 화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하려했다. 그녀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몸을 돌린다면 자신의 옷소매로 그저 말없이 눈가를 몇번 훔쳐주고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금 후원을 거닐었다. 물론 딱히 강제성을 띄지 않는지라 화가 조금 싫어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어깨만 한번 으쓱하고 말아버릴테다. 그러다 화의 말에 동백꽃에 눈이 갔다. 이렇게 눈이 와도 동백꽃은 지지 않고 아름다운 발간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록 화려하게 피지는 않지만 새하얀 눈밭 사이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모습은 마치 그녀의 모습과도 닮았다고 연은 생각했다.
" 그래서 제국의 국화이기도 하지. 겨울이 길게 지속되는 북부에서 저렇게 자태를 뽐낼 수 있으니. "
가로수로도 흔히 심어져있기도 했다. 사실 제국의 사람들이라면 길에 다니다보면 발에 치일 정도로 볼 수 있는게 동백꽃이니 별 감흥은 없을테지만 화의 말을 듣고 바라본 동백꽃은 새삼 달라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빠서 좀 늦었다!! 미안해 8ㅁ8) 바쁘니까 글도 잘 안써져서 쓰는데도 한참 걸렸지 뭐야 ... (쮸글) 화가 눈물을 흘리길래 연이가 닦아주는 상황을 구상해봤는데 너무 부담스러우면 꼭 말해주기야! 답레를 다르게 가져올테니까! 첨부해준 이미지를 보고 답레에도 반영했다! 이미지를 보여줘서 구상하는데 좀 편했던 것 같아~ 고마워!
말이좋아 손바닥을닦는다지, 차가운손을 갖다댄셈인데, 추위에 찬게 닿아버려 오싹하진않았을지? 그래도 그가 차갑다고 타박하지는않았다. 그저 어처구니없다는듯, 딱하다는듯 고개를저으며 괜찮은데 호들갑이라고 한마디했을뿐. 하지만 땅에떨어진 눈을 쥐는것도 모자라 우산을타고 떨어지는 눈도 받으니 보기에는 조마조마하다. 고뿔도 아직 다 안떨어졌는데
"탈은 방심할수록 나기쉬운법이옵니다. 더욱이 아직 편찮으시지않사옵니까."
그렇긴해도 묘하다. 맨몸으로눈을맞거나 눈위에 드러눕지는않아도, 겉모습만보면 오히려 차분하고 관조적으로 운치를 즐기는듯해도, 눈만 왔다하면 신나서방방거리던 희와 어쩐지 닮아보인다. 눈에 정신이팔려 누가 알려줘도 제몸이 추운줄은 모를거 같아서일까?
그렇게 방심해버리는만큼 옆에서 더 잘챙기고 조심해야지만 사달이 안날텐데. 그러기는커녕 눈물이나 보이고앉았으니. 한심스러우면서도 주체가안된다. 그때 놀라지않아도된다는 말이 들려왔다. 들켰구나! 하긴 그렇게나 법석을 떨어버렸으니 모를리가
"..송.. . 송구하옵니다!"
코를훔치고 훌쩍임을 억지로죽이고서 어찌어찌 대꾸했으나 차마 돌아볼엄두는 안났다. 하던대로 눈이나 마저쓸면 좀은 자연스러워보일까? 하여 빗자루를 놀리는데 눈이 아직은 안얼었는데도 곱게 안쓸리고 턱턱 걸리는느낌이다. 짜증섞어 힘을 줄 찰나 그가 돌아보라며 유화의어깨를 짚었다.
"어디 불편하시옵....?"
뒤돌아본순간 벌어진일을 뭐라 표현해야할까. 갖옷에 감싸인손이 눈앞에 뻗어오는가싶더니 서늘하지만포근한털이 눈가에 부드럽게와닿았다. 그런감각이 또렷하면서도 꿈인듯 멍했다. 어찌된일일까. 정신을 제대로 가다듬기도전에 그는 아무렇지도않게 걸어나갔다. 눈을 치워둬야. ..!
허둥지둥 그를 앞질러쓸고서야 비로소 좀전의 상황이 정리되기시작했다. 눈물을 닦아주려던손길.. . 무심한척 지나쳤어도 그의미는 명백하다. 이사람은 여리고약하면서도 타인과 정을 나누길바라는 사람이다. 그게 아프다. 몰랐다면 원수집안의 일원이라 적대하고 날도 세울수 있었겠으나 알고서야 어찌그럴까? 어쩌면, 나와 마찬가지로, 영영 단절된시절을 그리며 가슴이 무너지고있을지도 모르는, 그러면서도 살아있음을 잠시잠깐이라도 실감하길바라며 안간힘을 다하고있는 사람임을 알고서야 어찌? 쓴웃음이 새어버릴것같아 입속의 상처부근을 잘근거렸다. 여전히 비릿한내가 퍼진다.
그러고 눈을쓰는데에 집중하려는데 그의 주의를돌려보고자 주워섬겼던 소리에 대답이돌아왔다. 제국의 국화. ... 추위에도 눈보라에도 강인한 동백꽃처럼 자국의위세도 스러지지않으리라는 선언일까. 동백꽃이 감탄스럽고 부러워질것같던 마음에 제국의 기세등등함으로 인한 분함이 섞여든다. 하지만 안다. 꽃은 꽃일뿐이고 이런 억하심정은 현실을 어쩌지못하는 무력함의 이면임을. 이번생이 뒤탈없이끝나고 또 다음생을맞는다면 풍파에흔들릴 일없게 저 동백꽃중 하나나 되었으면. 그리생각하니 꽃이 떨어져갈쯤에 한송이쯤 가져가고픈 충동도 인다.
그건그렇고 춥다. 그칠줄모르는 눈송이을 몰고 부딪쳐오는 한기에 오싹하고 몸이 움츠러든다. 이정도면 그 또한 아무렇지않을수만은 없을텐데 그가 눈구경을 그만둘기미는 안보인다. 어째야할까? 잠시궁리하다 일단 연못가의 정자까지 서둘러 눈을 쓸어냈다.
"날이 춥사온데 잠시 정자에서 구경하시는건 어떠시옵니까? 그러시는동안 다과를 준비하겠사옵니다."
눈바람을 맞으며 걷는것보다는 정자에서 눈을 보는게 조금은 낫지않을까. 그러면서 아쉬운대로 병풍이라도 둘러쳐 바람을 막고 화로를 갖다놓고 뜨끈한다과를 내놓으면 그가 어느정도는 몸을 녹일수있으리라 기대했다.
지금 이 모습을 연의 큰형님이 보았다면 필시 고성이 날아왔을 것이다. 가문의 위세를 그 누구보다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자칫하면 안좋은 소문이 날지도 모르는 이런 행동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소문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후원에서 있었던 일을 금세 누군가에게 몰래 털어놓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연은 저택에서의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부분에서 구설수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성격 더러운 도련님이라고만 사람들이 알고 있을 뿐이었고 그런 수준의 귀족들은 수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 적어도 여기선 약해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
허나 연은 지금까지의 행동원칙을 깨고서 화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해서는 안되는 일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잠깐의 망설임 끝에 자신이 결정내린 행동이었다. 그러고보면 화가 이 저택에 오고나서 그에게도 바뀐 것이 많았다. 예전보다 신경질이 좀 적어졌다던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조금은 늦어졌다던가 하는 것들이었는데 지금까진 그저 몸 상태가 평소보다 좀 좋은 시기라 그런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이었다.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 동백꽃처럼 내리는 눈 사이에서도 스러지지 않는 것이 좋으니. "
목정 가의 삼남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연은 저택에서 최약자의 위치에 있어야할 정도였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은 그나마 무가의 핏줄을 받아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고 오랜 세월 저주에 시달려 피폐해진 정신력은 이미 상당히 마모되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 미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나마 가문에서 저주의 영향력을 약화 시키는 법을 발견하여 더 오래 버틸 수 있을뿐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 신경질을 더욱 부렸던 것도 있었다.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자신이 약해지면 자신을 노려 가문에 위협을 끼칠 세력은 더더욱 많아질테니. 그런 자신의 처지가 어쩌면 아라에서 공녀 신분으로 넘어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화와 겹쳐보았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만 간신히 들을만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여준 것이었다.
" 바람이 세지는구나. "
나올때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듯 했으나 지금은 눈이 대각으로 내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있으나 아직도 자신은 환자, 그러니 정자에 앉아 바람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는 자신이 바람을 피할 동안 이 바람을 전부 맞아야했고 그것을 보면서 편하게 정자에서 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녀가 온 곳은 겨울도 짧은 온화한 지역이라 했으니 버티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 이만 들어가자. 이 정도면 구경도 실컷 한 것 같구나. "
눈도 만져보았으니 이젠 들어가서 쉬는게 좋을듯 했다. 괜히 감기가 더 악화되면 자기도 고통스럽거니와 저택의 시종들도 하루종일 긴장을 하고 있어야하니 말이다. 연은 몸을 돌려서 후원의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화는 눈을 쓸려고 연의 앞에 있었으니 그가 몸을 돌린다면 그의 뒷쪽으로 오게 될 것이었고 연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내리는 눈은 쓸어봤자다. 교통이 중요한 곳이나 쓸어대는 것이지 이곳은 눈이 그친 뒤에 해도 된다. "
실제로 연이 후원으로 나가기 전엔 후원의 눈을 쓸어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하니 연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말을 이었다.
" 내 옆에서 같이 쓰고 가자꾸나. "
지금까지 눈을 맞았다면 분명 춥다고 느낄 것이니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후원을 보고 있는 시종들이 어찌 생각할진 알 수 없었지만.
눈을 웬만큼쓸면서 아연해졌던정신을 수습하고부터는 보는눈이 있었을지가 신경쓰였다. 저택의 사용인중에서도 제일밑바닥인 주제에 가주앞에서 눈물바람이었으니. 눈에띄었다면 나중에 대놓고 한소릴듣는것도 오히려다행일거다. 이리 처신이 엉망진창인건 침식을줄여서인지
정신차리자고 제볼을 툭툭치는데 바람소리처럼 가볍게스쳐가는, 허나 바람소리와는 확연히 다른속삭임이 들려왔다. 약한사람으로 보였다간 얕잡혀서 힘들어진다는, 그러니 동백꽃처럼 북풍한설에도 강인하게 살아내라는. 저말은 그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인지? 혹은, 정말이지 밑도끝도없는 망상이다만, 자신이 그리할테니 함께해보자는 제안인지? 터무니없는 발상에 그만 실소가 샐뻔한걸 가까스로 감추고 대답했다.
"유념하겠사옵니다."
한편으로는 생각이많아졌다. 목숨을 부지하는이상 그를 기망하거나 가문과 조국을 저버리거나이기에. 이렇게 만나지않았더라면, 만났긴해도 내가 유 가의 사람이 아니거나 그가 목정 가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하다못해 내가 피의저주에 관한 비술서를 몰랐더라면, 어차피 공녀로 전락해버린 신세 남은생은 병자간병이나 하겠노라고 받아들일수도 있었을텐데
잡념에 빗자루질이 느려진다. 화들짝 손을움직이려도 바람이 부딪쳐오는탓인지 온몸이오싹오싹시리다. 겨우겨우 정자까지 쓸어내고보니 연못도 눈이 쌓일락말락인게 표면이 얼었나보다. 이대로면 정자에 병풍을 둘러친대도 바람막이가 될지 모르겠다. 이런날 밖에서 졸아버리면 그대로 만사끝이겠지? 그런데도 나는. .. 어느새 곱은손에 입김을 불고앉았다. 이깟추위하나 못배겨내고있는것이다.
그래서 티가 나버렸을까? 지난번 외출로 호되게 앓은탓에 조심하고픈걸까? 그가 이리저리흩날리는 눈보라를주시하더니 바람이 세진다며 들어가잔다. 제 못남에 한숨이나오면서도 돌아서는 그를 뒤따르려니 한결 마음이놓인다. 그는 이런칼바람을 가능한한 안맞아야 그나마 몸이 덜축날테니.
그러는사이에도 눈은 쌓여만간다. 좀전에 쓸었던자리도 그새 솜털같은흰색채가 얕게덮였다. 그가 쓸어봤자라고 하는것도 당연지사였다. 앞질러쓸지 않았다면 산책하기불편했을텐데도 저리말하는건, 그 나름의 배려이고 염려일듯하다. 하여 고개를 숙여보였다.
바로그때, 유화는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의심하지않을수가 없었다. 공녀더러 한 우산을 쓰자고한건가? 이 저택의주인이자 제국에서 윗사람이 몇없을 공자가? 못자고 못먹어서 들리는 헛소리가 아니고서야! 그러나 그는 보란듯 자기옆을 가리키고있다. 사방을훑는 눈바람의 소리와 감촉도 그대로다.
그걸 의식하고서야 머리가 차근차근 돌아갔다. 얕보이지말라 했는데. 공녀와 나란히걷는게 남들눈에 띄면 그의체신이 깎이진않을지? 하지만 따르지않는다면 그 역시 체면상 곤란할거다. 보는눈이 어디있을지 모르는 야외에서라면 더더욱. 그래서 어리벙벙해있다가 빗자루를 한손에옮겨쥐고 빈손을내밀었다.
"하오시면 우산을 소인이 들겠사옵니다."
상전에게 우산을 씌워주는식이면 조금은 모양새가 나을듯해서였다. 실내에 들기까지 그에게 눈이 일절 닿지않게 하는데에 온신경을 기울이면 어떻게든되겠지.
자신이 나간다고 얘기만 하지 않았다면 시종들이 눈을 쓸 일도 없었을테니 유화가 손을 시려워하는 것을 본 연은 그냥 가만히 실내에 있었어야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버렸다. 하지만 몸이 안좋다고해서 집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내리는 눈을 본 이상 가만히 있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 눈을 쓸던 것이 화가 아니라 다른 시종이었더라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연은 그것에 대해선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화의 말에 그저 작게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그러는게 좋겠구나. "
자신이 옆에서 걸을 것을 권하자 놀라는 분위기가 느껴지고 곧 화가 자신이 우산을 들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빗자루를 들게 될테니 손이 시렵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 이상의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전혀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잠자코 자신이 들고 있던 우산을 화에게 건네준 연은 걸음을 좀 빨리하여 저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쓸면서 지나왔던 길은 다시 눈이 쌓여서 미끄러웠기에 자연스럽게 말없이 후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 고생했다. "
덕분에 금방 도착한 저택의 문 앞에선 다른 시종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연은 자연스럽게 팔을 들었고 그 시종은 빠르게 젖은 옷들을 벗겨내고선 실내에서 입는 옷을 입혀주었다. 말없이 진행되는 동작에선 군더더기 하나 없어 그녀가 이 저택에서 오랜 시간 일했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허리를 조여주는 끈까지 매듭이 지어지자 그는 한걸음 앞으로 나가 뒤로 돌며 수고했단 말을 건네주었다. 이것이 화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옷을 담당한 시종에게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둘 다에게 한 말일지도 모른다. 연이 후원을 나오자 후원을 비추던 가로등들이 하나 둘씩 꺼져 컴컴한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 일어나자마자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구나. "
그의 하루 일과는 이제야 시작인지라 아직 밥도 먹지 않은채 후원을 돌아다니다 온 것이었다. 밖에 있을땐 추워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안에 들어와서 몸이 따뜻해지니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 식사는 전부 준비가 되어있을테니 내어오기만 하면 될 일이라 그는 옷을 들고있던 시종에게 식사를 준비하라 말하고선 화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 너는 따라오거라. "
그렇게 말하고선 뒤로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향한 연은 벌써부터 머릿속에 서류 생각이 가득해졌다. 눈을 보는 것은 좋았으나 결국 그도 일을 해야하니 계속해서 여운에 잠겨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방 앞에 도착한 그는 자리에 들어가 앉아 어제 보다만 서류들을 집으려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손의 방향을 달리하여 무언가를 꺼내 화의 앞에 두었다.
" 손 시려울테니 이걸 갖고 있거라. "
방에 있던 손난로는 시종들이 계속해서 바꿔주었기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가 자리를 비우고 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손을 녹이기엔 충분히 따뜻했고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쐰 그녀의 손을 염려한 것이었다.
기분탓일까. 우산을들겠노라 자청하자 그의표정이 일순흐트러진것 같았다. 선뜻내키지않는듯한데 언짢다기보다는 난감해보인달지? 모를일이다. 좋든싫든 목정가는 이나라에서 손꼽히는대갓댁. 그만한댁의도련님이면 아랫것에게 우산들리는거야 밥을 수저로드는것만큼이나 당연지사일텐데. 설마 나온사이 상태가 나빠지기라도했을까? 시간이 멈춘듯 오만가지생각이 흘러나올때 그가 희미한미소와함께 승낙했다. 추위탓에 내가 예민했나보다. 그대로 우산부터 받아들려다 제몸에쌓인 눈때문에 멈칫했다. 나란히걷다보면 그가 이 눈에 닿아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여 빗자루를 옆구리에끼고 어깨며머리를 대강털어내고서야 우산을잡았다.
그런데 그의걸음이 나올때보다 빠르다. 그새 왔던길이 하얗게가려질듯말듯 눈에덮인터라 조마조마했다. 고작 수십보거리가 한참은 멀어보인다. 그가 자칫 실족이라도했다간 큰일인데, 그럴때 잘부축할수 있을지? 그의 어깨나등이 눈에 닿지않도록 우산의 위치나 각도를 조절하는한편 빗자루를 든팔은 여차하면 받칠수라도 있게끔 그의 등뒤로뻗어서 옆걸음을걸었다. 희가 감기걸린채로 눈을맞겠다고 다니는걸 따라다녔으면 딱 지금같았을까? 그런싱거운생각이 스쳤으나 그를 따라가기바빠 이내 털어버렸다.
그런끝에 도착하고나니 안도의한숨이 나오는동시에 팔이 후들거렸다. 살을에는 바람에 얼었던몸이 실내의 훈훈한공기를 맞아 더 그런지도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말이, 여기까지오는 잠깐사이에 바짝 긴장했음을 알고있다는것처럼 들려 묘했다. 그러나 감상에빠질 여유는없었다. 어느틈에왔는지 시종이 그가 실내에들자마자 젖은외출복부터 벗겼기때문이다. 그가 후원으로나가기 무섭게 실내복부터 준비했던건지? 이골이났다는듯 잽싼동작에 일순멍했다가 허둥지둥 마른수건으로 그의손발을 닦았다. 수건으로도 온기가 미미하게나마 전해져오니 다행이다. 체온이 많이 떨어지진않았나보다. 그래도 혹시몰라 입구안쪽에 놓인 화로를 그의발치로 옮겨놓은뒤, 바닥의 외출복은 시녀가 새옷을담아왔던 옷바구니에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마지막옷가지를 담았을때 다시금 수고했다는말이 들려왔다. 어지간히드문일인지 그때껏 무표정하던 시종의얼굴이 벙벙하게 풀어졌다. 금세 머리숙여 표정을 가리긴했지만.
뒤따라 고개숙이려니 그가 출출하단다. 그러고보니 그가 기침하기전에 준비했던 꿀물과 죽과 탕약은 진즉에 다 식었겠다. 새로 차리거나 시종들이 이미 새식사를 차렸다면 내어와야지. 하여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는데 뜻밖에도 그는 옷바구니를챙긴 시종에게 식사를 가져오라 지시하더니 유화더러는 따라오라 명했다. 멈칫 눈을 들자 그는 이미 처소로향했고 시종이 뭐하냐는듯 고갯짓으로 그뒤를 가리켰다. 오늘은 뭔가 영 얼떨떨하다.
그렇게 그의처소에 들어오니 확 노곤해졌다. 깜박 감았던눈을 부릅뜨며 유화는 머리를 재게 흔들었다. 속입술도 잘근거려 입 안쪽의상처를 자극하고서야 좀은 정신이들었다. 아픈티나 피곤한티가 나선 곤란하다. 멀쩡해보여야 끝나더라도 뒤탈이없다. 그러니. .. 어쩐지 흐린시야로 그새 책상머리에앉은 그의뒷모습이 들어온다. 저사람도 참 어지간하다. 찬바람을 잔뜩쐬어놓고 또 서류부터붙들다니. 책상옆에 가지런히개어진 담요를들어 그의 무릎과 어깨를 감싸려는데, 그가 제앞의 손난로를 유화쪽으로 밀어놓았다. 뒤이어 그가 까닭을밝히자 눈이홧홧해졌다. 그게 신경쓰였던가, 그래서 돌아올때 서두른거고? 입을뗐다간 울음이나올거같아 이악물고 그에게 담요부터둘렀다. 이사람을 어쩌면좋을까. 전혀 생각지못한 지점에서 세심하게 정을보이니. 유화는 빈손을 맞잡은채 머뭇거리다가 쭈뼛쭈뼛 손난로로 양손을 뻗었다. 그렇게 움킨손난로를 품으로 끌어당기며 고개숙였다.
후아 벌써 1월이 끝나가네! 좋은 밤이야~~ 이어줄까 했는데 많이 짧을 것 같아서 그냥 막레로 받을께! 아마도 연이는 유화한테 가서 쉬라고 하고선 계속 서류를 붙잡고 있지 않을까 싶어. 추운데 고생했으니까 말이야! 헉 유화 아프면 안되는데 8ㅁ8) 독살미수사태 그거 재밌을것 같은데 ... 범인이 사실 제국을 적대하는 세력이 아니라 제국측의 누군가라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야! 흥미가 돈다면 살짝 설정을 풀어줄 수 있을지도? :D 그럼 유화가 앓아누워 있을때 연이가 계속 신경써주는걸로 마음이 좀 더 열리려나~~
헉 모야모야 동접이네! (엄지척) 권총에 협박 당해 마지못해 푸는 설정을 말해보자면 ... 목정 가문도 어쨌든 제국 3대 가문 중의 하나니까 휘하에 세력이 무지막지하단 말이지. 당연히 그 중에선 충성심을 너무 과하게 가진 이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연이가 공녀랑 가까이 지내는걸 보고선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독살을 시도해! 연이네 가문의 자세한 사정은 극비라서 대중들은 그냥 종종 특이하게 생긴 사람들이 태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헉 자해모드 때려치는거 너무 좋은데 ... 유화 소듕해 8ㅁ8) 이것저것 꾸며주면 더 예쁠 것 같고~
헉 현생에 치이다니 안돼!! 현생은 정말 극혐이야 ... 8ㅁ8) 이를테면 이런거지. 정계에는 연줄이라는게 있으니까 목정 가문의 라인을 타고 있는 한 가문에서 벌인 짓이라고 해야할까? 잘보이려고 한 짓은 아니고 '위대하고 훌륭한 가문에 저런 이단아가 있다니 말도 안된다!' 라는 생각으로 일을 저지른거지. 왜 연이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있는지 전후 사정은 아무것도 모른채 말이야. 아마 목표는 둘 중 아무나 걸려라! 식이었을 수도 있고 :3
선레는 어떤 상황이 좋을까! 감기는 다 나았을 것 같고 날씨도 따뜻해지니까 바깥 나들이를 한번 더 다녀올까~? 아니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볼까? 연이가 화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던지 ... 화가 알려줄 수 있는게 있을까?!
하 맞아 나는 유화주와 유화를 만나기 위해 고독한 현생을 즐기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야!! 물론 현생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내 싸대기를 치고 도망갔지만 :3 유화주가 생각한게 맞아! 사생팬이라니 ㅋㅋㅋㅋㅋㅋ 찰떡인 비유라고 생각해. 무슨 표정을 지을 것도 없이 가문이 바로 멸문지화 당할테니까 ... (같이 먼산)
헉 독살미수사건 바로 가는거였어?! 난 그것도 좋아! 나중에 돌릴줄 알았거든 :3 미니 등불탑이라 ...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거려나. 옷 지어주는건 정말 좋아보인다! 나중엔 그것만 입고 다니는거 아닌가 몰라! 요리 같은건 흥미가 있지만 당장 시대상으로 봤을때 연이가 부엌에 들어가는건 말이 안될것 같고 ... 명상 같은건 배워두면 두고두고 쓸지도!
다됐다! 바느질을끝내고 안도의한숨을 내쉴찰나 손끝이 따끔했다. 손을무니 입 안쪽의 상처가 새삼욱신한가운데 비릿한액체가 퍼진다. 바늘끝엔 핏방울이 맺혔다. 옷을 다 짓자마자 졸아버리다니? 유화는 아직 흐리멍덩한 눈을 문지르며 막 지은옷부터 확인했다. 그사람이 평소입는옷과 비슷한지야 당연히 확인해야할 거리다만 좀전의실수로 피가 묻지않았는지도 살펴야했다. 다행히 핏자국은 안보이고 옷의 길이나 품도 원래입던옷과 비슷해보인다. 바느질한부분을 한땀한땀 더듬어봐도 딱히차이는 없는듯하다. 정작 입으면 생각지도못한 부분에서 불편할가능성도 배제할수는없겠으나.. . 비교하기위해 가져온 그의옷과 새옷을 나란히 개고서 바라보았다. 색도 똑같이 쌀뜨물색이니 눈대중으로는 분간이 안된다. 이만하면 가져다놓아도 티 안나게 그의 옷가지에 섞이지싶다.
옷방에 가져다놓고자 옷가지들을 그러모은순간 어찔하며 눈앞이캄캄해졌다. 정신이 돌아왔을땐 옷을 끌어안은채 엎어져있었다. 띵한머리를 부여잡고 비척비척 일어서려니 벌써 숨이차다. 덜자고 덜먹은지 얼마나됐는지는 기억나지않으나 이제는 한계인듯하다. 그런데도 여즉 숨이붙어있는건 산목숨이 워낙질긴탓일까 침식을 완전히끊지는 못했던 나약함탓일까? 어느쪽이든 몸뚱이가 움직이는한은 멀쩡히 일하는것처럼 보여야만한다. 명이짧았을뿐 자진한건 아니어야 가족들까지 화를 입는일은 면할테니.
그래도 서신은 전할수있었어서 다행이었다. 거기 생각이미치자 웃음도 살풋나온다. 행여라도 들켰다간 끝장이라 향낭을 망가뜨려야만 찾을수있게끔 감추긴했으나.. . 그래도 확인하시면 확인만 하신다면 제국의 농간에 놀아나지않을 방도를 어떻게든 찾으시겠지. 이희망도 그가 용인해준덕에 생긴거니 그에게 고마워해야할지, 가족들이 변을당할까 두려워진건 그가 우리가족을 해코지하고도 남을힘을 지녔기때문이니 한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다 끝난뒤에는 평온하길 가족들도 그도 나도 그러길바랄따름이다. 어찌 당도했는지모르게 옷방에 들어 옷가지들을 수납장에 넣으면서도 그 한가지만 빌었다.
그러고서는 습관처럼 부엌으로향했다. 시종들이 분주히움직이고있는게 벌써 그의 식사시간이 다된모양이었다. 훈기에 졸음이밀려오는동시에 음식냄새가 속이 텅빈감각을 쓰리도록 일깨웠다. 입 안쪽을 짓씹길 되풀이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그의식사를 나르기도전에 아귀같은 몰골을 보이고말았을거다. 지금도 그의식사를 검식(檢食)할걸 생각하니 군침부터 돌아버린다. 정신차리자고 마른세수를하고 뺨도 때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화들짝보니 상차림이 끝나있다. 이제는 죽이 아니라 밥과 국과 육류와 생선과 야채요리 따위가 정갈하게차려진 한상이다. 그걸 들고일어서려는데 또다시 머리가 핑돌았다.
―와장창!!
낭패다!! 기껏 차려놓은음식을 엎어버렸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호령이 내리지는않는다. 그새 곯아떨어져 소리도 못듣는다기엔 놀란소리들은 제법 똑똑히들렸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어리바리한사이 등이 떠밀리다시피 내쫓겼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넋놓고있다가 다른시종이 그의처소로 상을 옮기는걸 보고서야 허둥지둥 뒤따랐다. 그러자 상을나르던 시종이 가다말고 눈을흘긴다. 그꼴로 어딜따라오냐는 핀잔을 듣고서야 유화는 제몰골이 엉망진창인걸 깨달았다. 갖가지음식이 뒤섞인 냄새는 덤이다. 정말 낭패다.. . 이상태로 그의처소에 들면 무슨소릴 들을지? 그러나 스스로가 불가해하게도 물러갈마음은 들지않았다. 어째서인지 콕집을수는없었지만 이상황이 어색하게느껴졌다. 검식으로라도 허기를 채우고픈욕구에 눈이 뒤집힌탓인지도 모르나 이대로 물러나선 안될것같았다. 하여 꾸지람은 도련님께듣겠다고 둘러대고는 그의방문을 두드렸다.
". .. 도련님, 기침하셨사옵니까? 진지를 준비했사옵니다."
뻔뻔해지기로 작정한김에 아예 문도 열어버렸다. 또 상을 든 시종이 경악하는것도 아랑곳않고 그의 방 탁자에 음식을 옮겨놓는걸 거들기도했다. 그러나 그를 쳐다보지는 못했다. 차마 곁눈질도 할수없었다. 꼴이 말이 아닌게 그자체로 창피했거니와 그가 불쾌해할지 우스워할지 모르겠어서였다. 다만 한가지만은 강경하게 내세웠다.
제국을 지탱하는 3대 가문 중의 하나인 목정 가문은 당연히 따르는 가문도 많고 적도 많았다. 다른 가문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은 물론이거니와 현지에서 암약하고 있는 레지스탕스들도 적들 중의 하나였다. 허나 제국의 국력은 아직까지도 쇠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독립을 원하는 세력들은 정말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결국 가문이 신경 쓰게 될 적은 다른 가문들의 협잡질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가문이 그러하듯이 다른 가문에서도 평범한 인물인척 시종의 신분으로 그들의 사람을 파견해두는 일이 많았다. 그들은 본가는 물론이거니와 연이 머무르는 저택에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연의 저택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자신들의 가문으로 전해준지 오래였다. 연의 저택에 아라의 공녀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까지 말이다.
" ... 이 정도인듯 합니다. "
늦은 밤, 그의 방에선 늙은 집사와 연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집사는 본가에서 가주를 모시다가 자신의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선 연을 따라 이 저택으로 와있었다. 그도 어릴적부터 봐온 집사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굳이 무언가 지시한다기보단 일임한 형태에 가까웠으니 이런 모습은 쉽사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의외군. 다른 이들은 그렇다쳐도 ... "
집사가 가져온 명단을 바라보던 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얼핏 봐도 명단에 적힌 사람들의 수는 많아보였는데 어떤 기준으로 정리되어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이를 지시한 연은 그들이 왜 이 명단에 이름이 적혀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 중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기에 생각보다 혼란스러운듯 했다.
" 돌아가봐도 좋습니다. 이번에도 큰 신세를 졌습니다. " " 아닙니다, 도련님. 제 소임을 다할뿐입니다. "
정중히 인사를 건넨 집사는 방을 나섰다. 집사가 나가고 연은 한동안 명단을 바라보다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 공간에 그 명단을 숨기고선 걸어잠궜다. 이 정도까지 하는 것을 보면 꽤나 중요한 자료인듯 싶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방에 식사가 들어왔다. 들린 것은 기침하셨냐는 물음이었는데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이 열리고선 화가 들어왔다. 명단을 미리 숨겨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들킬뻔했다. 그렇기에 연은 좋지 못한 시선으로 들어온 화를 바라보았다.
" 이젠 문도 불쑥 열어버리는구나. "
자세히보니 꼴도 말이 아니었다. 대체 이렇게 될때까지 다른 이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처음 봤을때랑 비교하는 것이 실례일 정도로 그의 눈엔 화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다른 공녀들도 이렇게까진 하지 않는 것 같던데. 고향을 강제로 떠나온 슬픔이 이 정도란 말인가. 자연스럽게 그의 기분도 착잡해졌다.
" 맘대로 하거라. "
검식이라니 황제 폐하도 아니고 자신이 받을만한 대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지 말라고해도 어떻게든 할 것 같았기에 그냥 선선히 허락만 해주는 것이었다.
좋은 점심!! 안바쁠줄 알았는데 연휴는 생각보다 바빴고 ... 8-8) 난 세뱃돈을 받는 입장도 아니라서 출혈이!! (사망) 유화는 어떤 모습이어도 예쁠테니까~~ 가릴 수 없는 미모랄까? 후후 유화주야 말로 연이를 좋게 봐주니까 내가 항상 고맙지!! 이번 일상으로 많이 바뀌면 좋겠다 :3
제국이 한창 팽창하고 있을때엔 당연하게도 고위층에게 암살을 시도하는 적들도 상당히 많았다. 검을 들고 침입하는 무리부터 은밀하게 가문에 섞여들어 공작을 하는 이들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그것이 심할때엔 제국 수뇌부의 절반이 죽어버렸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당시 황제의 카리스마로 어떻게든 넘겼지만 만약 다른 이였다면 제국은 붕괴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대부분의 귀족들은 기본적인 독인 비소를 구분하기 위해서 은수저를 마련하게 되었고 독살의 위험이 현저하게 옅어진 지금도 그것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시집 갈때 혼수로 고급 은수저는 필수라고 하니.
" 이젠 됐으니 가봐도 된다. "
상을 들고온 시종들의 눈빛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연은 손을 휘적이며 나가보라 손짓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시종들은 혹여 불똥이라도 튈까 서둘러 나가려고 했지만 그 중 한명은 무언가 눈치를 보는듯 시선을 힐끗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연과 눈이 마주치자 다른 시종들과 마찬가지로 후다닥 나가버렸고 그는 화에게 다가가 수저를 받아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가까이 갔을때는 이미 화의 입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독? "
제국이 한창 확장을 하던 것도 이젠 옛날 일이 되었고 그때보다 기술은 한참은 더 발전해있었다. 전쟁이란 본디 기술의 발전을 불러오는 법이니까. 자연스럽게 비소 같이 검출이 쉬운 독보단 무색무취의 검출하기도 힘든 독들을 합성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 연의 식사에 골고루 들어가 있는듯 했다. 그는 먹지말라고 외치며 쓰러진 화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 의원! 의원을 불러와라! "
그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지 가장 먼저 노집사가 빠르게 방으로 들어왔고 연이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을 끝낸 그는 곧바로 저택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저택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뒤에 의원을 부르기 위해 뛰쳐나갔다. 연은 화의 입가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내면서 말했다.
" 살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러는 것이냐. "
눈 오는 날 후원을 산책하면서 넌지시 일렀던 말이었다. 연은 화가 살아가길 바랬고 그 장소는 자신의 저택이 아니어도 좋았다. 공녀의 신분인 이상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바랬기에 지금의 상황이 더욱 착잡하게 느껴질뿐이었다. 그는 화를 끌어안은채 자신의 침상에 뉘이고선 물을 최대한 가져오라 말한 뒤에 시종들이 가져온 물을 화에게 계속해서 먹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먹은 것은 극독인듯 싶었다. 극미량의 독으로도 사람을 무조건 죽일 수 있는 그런 독. 허나 그런 독은 쉽사리 그의 저택에 들여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가에서 떨어져산다고한들 연이 머무르는 저택은 본가와 비슷한 경비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니 출입하는 사람들이나 물건 하나하나에 철저한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나는 괜찮으니 말은 하지 말거라. "
연이 생각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것은 일단 조금 뒤에 다시 생각해보고 지금은 그녀가 어떻게든 살 수 있게하는 것이 중요했다. 연 가문의 의원은 전국에서 내노라하면 서러운 실력이자 은퇴한 어의였기에 오기만 한다면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계속해서 악화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물이라도 먹여서 독을 토해내게 하고 있었다.
" 정말,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
그러나 그녀가 한 말에 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선 말했다. 가족이라니, 지금까지 계속해서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필시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은 첫날 그가 내뱉은 말 때문일 것이기에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그는 차라리 화가 가족들과 가끔이라도 연락을 주고 받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고 있었다. 아무리 목정 가의 힘이 있다고 해도 그것까지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저번처럼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주는게 고작이었다.
" 내가 굳이 네 고향의 약초를 사오라 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
그녀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언동에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의원이 도착했고 집사와 함께 방에 들어온 의원은 급하게 자신이 가져온 가방을 풀어헤치고선 화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경험 많은 의원이다 보니 어떤 독인지 알아낸듯 화의 입에 억지로 무언가를 넣으며 어떻게든 먹게하려는듯 했다.
" 다행히도 식사에 들어있던 것이 독의 작용을 크게 약화시킨듯 합니다. "
의원은 어느새 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얘기를 해주고선 다시금 처치에 집중했다. 만약 독이 든 다른 음식을 먹었더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겠으나 화가 먹은 것은 어떤 재료의 성분과 독이 서로 반응하여 효과가 약해진터라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듯 했다.
만약 유화가 냉철히 사고할수있는 상태였다면, 사람이 항상 진심대로 말하는것만은 아니고 설령 당시에 진심으로 말했을지라도 언제든 마음을 바꿔먹을수도있다는점을 상기하여, 제가족의 일을 연이 생각할여지가 없도록 차라리 침묵했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육신의고통과 혼미한정신과 유일한염원에 압도되어 앞뒤 가리지못하는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였다. 하여 말하지말라는 당부를 거스르고 물마시기도 마다하며 그간감추려던 속내를 드러냈다. 여즉 숨붙이고있는것도 어쩌면 제가족에게 관여하지않겠다는 한마디를 바란 결과일지도
그랬기에 미골의 약초를 구매하기로한 연유가 무엇이겠냐는 반문은 회광반조(回光返照)로 이어졌다. 함정수사일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의심했던것이 실은 타국에 끌려온 공녀를 순수하게배려해준것뿐이라는 사실이 와닿은것이다. 그건 다시말해 연에게 유화의가족을 해코지할의사일랑 추호도없었고 앞으로 없으리라는 의미이리라. 거기까지 알아챘기에 초점흐려진 핏물고인 눈이 힘없이 감겼다. 이젠 여한이 없었다. 아니 여한을 품을만큼 제힘으로 할수있는게 없었다. 가족이 위협당할 일은 없으리란걸 알게된것만으로도 행복.. ..
그러다 돌연 섬뜩해졌다. 이사람이 지금의 날 부러워해버리면 어떡하나? 죽어서라도 저주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사람이다. 때로는 누가 죽여주길 바라는 것같기도 했다. 그런 그가 눈앞에서 시신을 보면 .. 그렇게 죽음을 직면하면 .. . 다 포기하고 싶어지지는 않을지 .. ..
거기 생각이 미치기무섭게 미친듯이 구역질이 치밀었다. 한참 헛구역질을 한끝에 마침내 토해낸것은 연두색액체에 뒤섞인 검붉은핏덩이. 유화가 반나마 흘리다시피해도 연이 포기하지않고 물을 마시게한 효과가 비로소 나타난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유화는 까무룩 탈진하였다. 가래끓는소리와도 흡사한 숨넘어가는 헐떡임도 잦아들어갔다. 이대론 안되는데. .. 그가 죽음을 희망 삼게하면 안되는데.. ...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을것만같은 입을 필사적으로 달싹였다.
그때 입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지독히도 쓴맛에 의식이 확 돌아오는듯했다. 너무나도 써서 기력이 조금이라도 남았더라면 또다시 토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밀어넣는 완강한 힘이 무기력에 묻히다시피한 직감을 자극했다. 삼켜야한다. 그리하여 오물거리고 삼킨게 유화가 마지막으로 느낄수있었던 감각이었다.
연의 저택은 평소와 다르게 시끌벅적했다. 곳곳에서 시종들의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다수의 사람들이 부산히 뛰어다니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수도의 구석에 위치해서 망정이지 조금의 이웃이라도 있었다면 시끄럽다며 항의가 들어왔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목정 가를 지키는 최정예 병사들이 순식간에 파견되어 저택 내부를 정리하는 동안 연은 여전히 화를 바라보며 초조한 모습으로 방을 돌아다녔다.
" 도련님, 계속 그러하시면 의원이 집중하기 힘듭니다. "
본가에 연락을 취하여 어느정도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 생각한 집사는 어느새 연의 옆에서 그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연은 그런 집사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듯 의원의 뒤에서 방을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검붉은 핏덩이가 화의 입에서 뿜어져나온 것을 본 연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의원과 화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채 의원은 능숙하게 그녀의 입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강제로 먹이고 있었다.
" 연구소에서 개발중에 있던 해독제를 급히 가져왔습니다만 ... 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 어찌될진 잘 모르겠습니다. "
강대한 국력을 자랑하고 있는 제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 점령한 국가의 저항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다 외적으로도 척을 지고 있는 국가가 많은지라 이런 독살에 대해선 심혈을 기울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흡사 창과 방패의 싸움과도 같은 모양새였지만 연구력 자체는 제국이 한참 앞서는 모양이라 웬만한 독에 대해선 해독제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허나 단순히 시종이 독을 먹었다는 이유로 한창 개발중인 해독제를 빼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연은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따.
" 해독제가 효능이 있기를 바래야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그래도 무언갈 토해냈다는 것은 독이 전부 흡수 되기 전에 체외로 배출했다는 뜻이기에 예후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연은 자신의 방에 누워있던 화의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내준 뒤에 그녀의 처치를 의원에게 맡기고선 방 밖으로 향했다. 최근엔 보기 힘들었던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가 향한 곳은 시종들이 머무는 방이었고, 그곳에선 모든 시종들이 병사들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모여있었다. 연은 그 중에 한명을 노려보고선 옆의 병사에게 손짓했고 곧 지목 당한 시종은 그대로 끌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이 있고 나흘 정도가 지났다.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라 할 정도로 세가 강한 목정 가문에서 이 사건의 배후를 찾아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화가 잠들어있던 중엔 수도의 어느 곳에서는 피바람이 불 정도로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는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연은 화가 자신의 방에서 누워있는 동안 잠도 거의 안잔채로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해독제가 효과가 있었는지 몸 상태는 어느정도 안정 되어가는듯 했다.
" 이젠 염려하실 필요 없을듯 합니다. "
의원은 화의 맥을 짚어보고선 말했다. 이젠 몸이 회복세에 들어섰고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깨어나리란 예상도 덧붙였다. 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화가 깨어날때까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연휴엔 친척들이 잔뜩 와있어서 바빴다 ... 이제서야 답레를 가져왔다~~ 유화주는 연휴 잘 보냈을까! 화가 잠들어있던 나흘 동안 있었던 일은 나중에 독백으로 풀어볼까해~ 답레로 쓰기엔 너무 길기도 하고 ... 연이가 왜 목정 가문의 삼남인지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일것 같기도 해서! 그 가문의 피는 어디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테니! 후후 ... 화가 깨어나면 심정의 변화가 조금은 있을까나~
죽어도될 이유는 많았다. 앞날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공녀가 되기로한 순간 이미 돌이킬수 없게되었고, 이제는 어떻게살아도 조국과 조상님들을 저버린 불충불효한 죄인이자 그사람을 기만하여 신의를 저버린 인간이었다. 그에게 호감을지닌채 시중을들수록 작게는 원수가문인 목정가의 일원을 위해 크게는 조국을 핍박하는 제국을 위해 일하는것이고, 조상들의 피맺힌한에 멋대로 개입하지않고 함구할수록 외롭고약한 그 사람을 기만하는것이므로. 이대로 끝나봤자 그 죄와 모순이 덜어질리는 만무하나 더 불어나지않을수는 있다. 그리된대도 내 가족을 해치지는않으리라고 그가 일러도 주었고, 공녀하나 죽는거야 사소한일이니 산간벽지인 미골에 전해져 가족들이 비통해하는 불상사도 없으리라. 그 고단한사람이 죽음을 탈출구로 여겨버리는것만은 걱정이나.. . 다 죽게된 일개공녀가 무얼 할수있으랴 ... 워낙 다감한성품이라 돌발상황에 놀란것뿐이길 그래서 금세잊고 살아가길 비는게 고작이었다.
그랬기에 몸이 사라지고 만것처럼 통증이 없어도, 의식만 떠도는듯하다 난데없이 짙디짙은안개가 드리운 새까만강이 나타나도, 그앞에 음산한분위기의 나룻배와 사공이 있어도 놀랍지않았다. 저 강이 삼도천(三途川)이고 저 배로 저승에 이르리라는 예감이 막연히 스쳤을따름이다. 밑도끝도 없는 망상이건만 위화감은 들지않았고 한발한발 나아갈수록 예감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무슨미련이 남았던걸까. 고작 두어발짝 남았을무렵 무심코 고개가 돌아갔다. 놀랍게도 돌아본 그자리에는 그사람이 자기도 배를 탈 차례라는듯 서있었다. 경악하여 그를 뒤돌리고서 힘껏밀쳤다.
- 여기가 어디라고 오셨사옵니까?! 저승 문턱이옵니다! 도련님이 오실 데가 아니옵니다!
(.dice 1 2. = 2 1. 연한테 들릴 정도로 소리가 똑똑히 나왔다 2. 꿈결의 중얼거림이라 또렷이는 안나왔다)
소리가 제대로 나오는지 그가 듣긴하는지 모르겠다만 상관없었다. 그저 그는 이승에 남았으면했다. 피의저주는 어쩌지못할지라도, 호의를 진심으로 돌려줄줄아는 사람을 만나고 삶의보람도 느끼며, 괴롭고 버거워도 좋았던나날도 많노라 위안하며 지내길 바랐다. 난 틀려버렸지만 이사람은 그럴수있길.. .. 바랐다. 하여 그의등을 떠밀고 떠미는데 돌연 그가 돌아섰다. 어느틈에 유화의 팔도 낚아챘다.
"?!"
눈이 번쩍뜨였다. 뻑뻑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쌈박이자 희뿌옇던시야가 점차또렷해졌다. 천장만 보인다만 고향집은 당연히아니고 깰때마다 새삼막막해지던 시녀처소도 아니었다. 죽지 ..않은건지? 그걸 의식하기무섭게 목구멍부터 위장까지를 달구고 헤집는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감싸인 감각은 포근하고아늑했다. 몸뚱이가 누운자리에 스며든것만 같을만큼. 어찌된영문인지? 눈을 돌리자 낯익은 얼굴윤곽과 새하얀단발이 보였다.
"!!"
몸을 일으키려한 순간 아뜩해졌다. 신음조차 삼키질못했다. 골이 띵하고 어지러운게 좀은 가라앉고서야 주위를 다시 살필수있었다. 그사람너머로 서류더미가 그득한 책상이며 창문을 가린 암막커튼이 보였다. 꿈이 아니라면 그사람의 처소다. 허면 이자리는. .. 그사람의 침상?!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더듬기시작했다. 검식했던 음식에 독이 있었고 그에게 가족의일을 애걸했다. 그가 강녕하길 빌었던것도 같다. 그러고 어찌되었기에 사람이 이토록 초췌한가? 독을 먹진 않았던듯한데 ... 설마? 내가 예 뻗은통에 쉬지도못했다?! 얼마나?!? 아연한나머지 눈을 감고말았다.
드디어 불금!! 평일엔 회사 집 반복인데다 넘 바빠서 여유가 없었네 ... 자꾸 답레 텀이 늘어져서 미안해 8ㅁ8) 유화주는 일주일 잘 보냈을까? 나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 너무 많았달까 ... 흐흐 그래서 내일은 늘어지게 자볼 예정이야! 답레도 오늘 새벽이나 내일 낮 중으로 써둘께! 너무 기다리게하는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미안해 ... 기다리게 하는 것치곤 퀄리티가 높은 것 같지도 않지만 (,_,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누구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이 말은 여러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겠지만 제국의 세 가문 중의 하나인 목정 가문에게도 분명 해당사항이 있는 것이었다. 황가 바로 다음 가는 위세를 자랑하는 그들에겐 강력한 권력과 수많은 재물이 주어졌지만 그만큼이나 위험한 일도 생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빈번한 암살 시도와 다른 가문들에게 견제 당하고 도리어 견제하는 그런 것들이 그들이 손에 쥔 것에 대한 반동이나 다름 없었다.
" 적어도 나 때문엔 ... "
제국이 점점 안정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시기에도 그는 수많은 것들을 지켜보았다. 측근들이 독으로 죽어가고 음모로 인해 투옥 당하고 유배를 가고 심한 경우엔 사형까지 당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에서야 그런 일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화의 사례도 있듯이 아예 없어지긴 요원해보였다. 특히나 그가 저주를 잇기 위해서 다른 지방으로 향하던 때엔 일련의 무리에게 습격 당해 호위단이 대부분 죽고 그와 몇몇의 병사들만 살아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 적어도 나 때문엔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다니 그것은 어불성설이요, 견강부회였다. 비록 그런 일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형님들과 여동생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그들의 것에 비해선 상상 이상이었다. 결국 저주를 받으면서도 그는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죽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겠다고. 그렇기에 미칠듯이 고통스러운 저주의 순간에서도 그는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 애써 말할 필요는 없다. 이레는 더 쉬어야한다고 의원이 그랬으니. "
그는 누워있는 화의 앞머리를 살짝 쓸어주며 말하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으니 자신도 밀린 업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가 누워있는 곳이 자신의 처소였기에 필요한 것들은 다른 방으로 다 옮겨둔 상태였다. 마침 밤이라 움직이는데에도 지장이 없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말과 함께 그는 방 밖을 나서려했다.
주말에 써온다고 해놓고 월요일이 다 끝나갈때 써온 나를 매우 쳐줘 ... (머리쾅쾅) 피곤하면 글이 잘 안써지는데다 주말엔 또 친척분들이 오셔서 한바탕 난리였거든 ... 친구 집으로 막 도망가고 그랬다니까 (풀썩) 그래서 답레도 좀 짧은 것 같은데 다음껀 좀 더 디테일하게 이어볼께!! 일단 이 정도 반응만 생각해두고 있었거든 ...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화도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눈물줄줄)
평일엔 최대한 놀다 자려고 늦게 자니까 괜찮아!! >:3 항상 유화주가 배려해줘서 즐겁게 놀 수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3 앗 오피셜이라니! 유화는 소중하니까 당연히 살아야해! (엄지척) 후후 그 사심 나도 동일하지 ... 답변은 당연하게도 yes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눈가는 젖어들었고 울음을 삼키려할수록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화끈 아려왔다. 그 독이 더 강했더라면 좋았을걸. 그래서 고통을 느낄새없이 끝났더라면 이사람은 고생을 않았을텐데. 사람목숨이란게 허망하게 스러지는 경우도 숱하건만 내목숨은 어쩜 이다지도 질긴지? 내가, 공녀따위가 이 사람이 이토록 진빼가며 살릴 가치가 있나?
코를 훌쩍인순간 허파가 뜨거워 찌푸리는데, 폐부 깊숙이서 올라온듯한 서글프면서도 비장하게 물기어린 대답이 띄엄띄엄 내려왔다. 막힌 숨을 골라가며 눈을 떠보니 아직 흐린시야에도 그는 수척하고 창백한 이상으로 피폐하고 처참한 몰골이었다. 대관절 무슨일들을 겪었는지?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갓댁 자제면서, 스스로를 이리탓할정도로 사별을 겪어왔단건지? 어쩌다?
안타깝고 가슴이 저미는 한편 여태 지녔던 대단히 큰착각도 깨달아졌다. 그가 누군가의 사망을 목도하면 부러워하다못해 생을 포기하고픈 유혹에 휩싸일줄만 알았는데, 이 사람은 숱하게 목도하고도 유혹을 견뎌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죽음이 아물지못할만큼 깊디깊은 상처로 더해지고 더해졌구나. 내가 독을 먹은순간 그 해묵은 상처가 한꺼번에 밀려든거였구나 ... 그들이 모두 되살아나 제각기 자기삶을 누리지못하는한 돌이킬수없는 상처겠으나.. .. 어느새 유화는 덩그러니놓인 그의 텅빈손으로 제손을 옮기고있었다. 그가 피하지않았다면 그의손을 감싸쥐었을것이고 그가 피했다면 멈추어 주먹을 쥐었을것이다.
뱉고보니 우습다. 이사람이 이제껏 못쉬었고 지금도 못쉬는건 내가 침상을 버젓이 차지해버린탓일테니. 내가 비켜나야 이 사람이 쉬겠구나. 하여 팔다리에 힘을 주고자했다. 내몸같지않은데 뻐근하고 막태어난 송아지다리처럼 후들거렸지만 서서히 뜻한대로 움직여지는것 같다. 조금만 더.. . 몸이 일어나지면., 침상에서 내려와 시녀처소로 가야... .
좋은 주말이야 유화주!! 답레 수정된 것도 잘 봤다구!!! 하 ... 마음 같아선 연이가 안아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게 아쉽다!! 답레를 빨리 이어주고 싶은데 내가 화요일까지 해외여행을 온 상태라서 답레가 좀 늦어질 것 같아 8ㅁ8) 기다리게 해서 미안 ... 대신 다녀와서 후딱 쓸테니까! 나도 슝슝 쓰고싶으니까!
앗 아앗:□ 동접인걸 모르고 이제야봤네 아까워라~~(울망) 가족여행이면 편하지만은 않겠지만 음식이 맛있는건 좋다:) 여행의 백미는 먹거리와 볼거리 아니겠어?(히죽히죽) 연화들 여행 좋다X9 알콩달콩한 사이가 되어서 방방곡곡 다니며 서로 챙겨주는거 상상만 해도 몽글몽글해~~(초롱) 암튼 즐거운시간 보내 연주~☆★
삼도천을 보았다는 말에도 연은 그저 고개만 끄덕여줄뿐이었다. 실제로 유화는 나흘동안 위독한 순간이 있었기에 그때라고 생각하면 믿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곳에서 자신을 보았다니 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저 강제로 끌려와 모시게된 윗사람일테니 원망의 대상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몰골이 엉망이었던 것도,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따로 조치를 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그래, 살겠다고 생각했으면 살아야지 ... "
초면에 그녀에게 보인 태도는 방어적인 부분에서 기인하던 것도 있었다. 가문의 내정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는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의 존재는 너무나도 명확히 보였을 것이고 처음엔 유화 또한 그 범주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청해서 데려온 공녀라곤 하지만 어쨌든 한때 적국이었던 곳에서 온 사람이니까. 허나 그런 범주는 빠르게 흐려지고 연은 화에게 어느정도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미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넘겨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화도 의식이 돌아왔으니 그동안 뒷전으로 내팽개쳐놨던 일들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 너는 ... "
허나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화의 손길에 일어나려던 연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서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집무실로 만든 방과 이곳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으니 말이다. 햇빛이 강렬한 한낮에도 복도에 암막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 움직였던 그였다. 하지만 유화 자신의 상태가 이렇게 안좋은데도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 네가 빨리 나아야 나도 푹 쉴 수 있을 것이다. "
그래도 정신을 차렸으니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화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 같아보여 연은 화들짝 놀라며 화의 어깨를 살짝 짚어 누르려했다. 답답해서 앉아있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나흘을 누워있던 사람인데다 아직 몸의 상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정상적인 거동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연은 화가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하고선 말했다.
" 다 나을때까진 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안된다. 애당초 그런 상태로 어딜 가려는 것이냐? "
예전부터 느꼈지만 이런 부분에선 무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기에 연은 짐짓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화에게 말하고선 옆에 앉아 화의 손을 살며시 잡으려하며 말했다.
으앙 너무 늦었지!! 미안해!! (머리박) 여행 다녀와서 밀린 일들도 처리하고 하다보니 너무 바빴지 뭐야 ... 거기에 오랜만에 쓰려니 손에 잘 안잡히는 느낌이라 주말 내내 고민하면서 썼다 ... 오래 걸린 것치곤 퀄리티가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예쁘게 봐주면 좋겠어! >< 일주일 잘 보냈을까? 유화주도 바쁜 느낌이라서 항상 걱정된단 말이지 ... 혐생은 고달파 (,_,
생각해보니 유화는 저택에 와서 화장을 조금이라도 했을까? 예전에 연이랑 외출했을때 말곤 안했을 것 같기도 하고. 연이랑 화가 좀 더 가까워져서 예쁜 옷을 잔뜩 입게 되었으면 좋겠는걸~~
답레는 천천히 줘도 좋으니까 항상 현생이 먼저야!! 이번엔 내가 너무 늦어버리기도 했고 ... (,_,
유화의 화장이라니 연이가 곱씹어보게 될 정도로 예뻐지는거 아닌가 몰라~~ 안했을때도 예쁘겠지만 화장은 더 돋보이게 해줄테니까 :3 헉 유화가 직접 지어준 옷이려나 ... 연이는 대놓고 선물 해주기 힘들어서 고민 좀 하겠네 (긁적) 어떻게 할지 지금부터 열심히 고민해보게쒀!
어쩌면 이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도 얼굴에 놀란 빛이 스쳐도 애처롭고 위태롭게만 보이는지? 못 쉰 티가 역력한 게 보여서인지 실은 마음이 여리고 순한 사람임을 깨달아서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저주에 심신을 갉아먹히고 있을 게 뻔해서인지 셋 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지금보다는 나아졌으면, 삶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에게는 유일무의할 희망을, 처음부터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할 정도로, 내가 독하고 기만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이 언젠가 밝혀질지라도, 그게 살아갈 의욕을 앗아가는 마지막 한방울이 되진 않도록
몽롱한 정신에서 새어나가는 말이었으나 아주 정신을 놓은 결과물은 아니었다. 무릇 윗전이 잘못되면 아랫것들에게는 더 큰 화가 미치는 법. 그러니 이 정도는 아랫것이라면 으레 입에 올릴 만한 말이리라. 그렇지 않아 어색하다 해도 이 사람은 더는 무리해선 안 되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그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는 것이었다. 하여 되는 대로 붙들었건만 그는 도리어 유화가 나아야 쉴 수 있겠단다.
유화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야 주객전도다. 어떻게든 그가 쉬게 해야 했다. 시녀 처소로 가면., 거기까진 못하더라도 이 방을 나서면 . .. 아니, 암만 못해도 이 침상만 비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비스듬히 돌린 몸을 팔로 막 지탱할 찰나, 그가 제지하고 들었다. 가뜩이나 힘이 안 들어가던 팔이 더 후들거렸다.
"... 도련님께서.. , 몸을 누이셔야 할.. . 자리가 아니옵니까.. ..."
나름 우겨 봤으나 노기 섞인 음성에 기운이 쭉 빠졌다. 어깨에 닿은 사뭇 조심스러운 손길에 온기가 도는 건 그나마 상태가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방증일지? 아직 나쁘지 않을 때 몸조리를 해야 할 텐데. 그래서 뻗대 봤으나 손에 감기는 포근함에 사지가 풀리고 말았다. 그걸 의식했을 땐 도로 침상에 늘어진 뒤였다. 그대로 정신까지 놓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강녕해야 자신도 산다는 말에 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죽는 사람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을 지나고서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빈말일지라도 그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갔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하는 유화의 어깨를 살며시 눌러서 누워있게한 연은 화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내가 머무는 방은 신경쓰지 말거라.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유화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가 처소를 옮기고싶다고하면 한 시진도 안되어서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의 방이 꾸며질 것이다. 거기에 암살 시도가 한번 들어온 이상 계속해서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도 위험한 일이기에 계속해서 방이 옮겨지고 있었다. 원래 쓰던 방에 유화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옮기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었기에 경비만 더 철저하게 세우고 있었다.
" 정 걱정되면 얼른 나아서 네가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
여전히 자신에 대한 걱정만 하는 유화에게 너그러운 목소리로 한마디한 그는 범인을 찾았냐는 말에 방금의 그 부드러운 태도는 없어지고 잠깐동안 경직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환자 앞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지 헛기침을 두어번하고선 답했다.
" 잡아서 경부(警部)에 넘겼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이젠 정말 가야할 시간이었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몸조리 잘하라는 말과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자신이 머물던 방이 아닌 저택의 지하실로 향하며 어느새 따라붙은 병사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며 지하실의 어둠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좋은 점심!! 어젠 새벽이라 쓰고 잠들었지 뭐야~ 막레라서 좀 짧은 느낌이 있네 :3 유화가 말끔히 나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부에 넘겼다곤했지만 사실 지하실에 아직도 가둬놨다는 후문이 ... (긁적) 유화가 의식이 없던 나흘 간의 일은 독백으로 짬짬히 찌고 있으니까 기다려줘! >:3
와아 주말이 끝나간다 ... (슬픔) 유화주 좋은 주말 보냈을까?! 후후 비장의 대사가 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해주법을 유화가 알고 있었다는걸 안다면 어떤 반응일까 ... 궁금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을 알려면 결국 두 사람은 알콩달콩해져야하기 때문에 ... (엄지척) 무리가 안되게 천천히 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헉 본가에 소환되는 에피소드라 재밌을 것 같은걸!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연이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해서 ... 괜찮을까!
목정 가의 삼남이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은 최대한 입단속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전반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실 목정가 정도의 귀족 가문에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긴했지만 가문의 경호 수준이 생각보다 미흡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부의 적이 벌인 일이긴 했지만 애초에 최근 동향이 수상하다는 것을 다른 가문에서도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으니 목정 가문에서 몰랐다는 사실은 옹호 받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니 가문의 직계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문에선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 아버지께서 부르신단 말입니까? "
그리고 암살의 대상자였던 연은 한밤중에 자신의 방에 앉아서 서신을 가져온 집사를 바라보고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주를 받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저택으로 쫓겨나듯 옮겨온 그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애초에 생활 패턴 자체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 그가 찾아가봤자 가족들은 대부분 잘 시간이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어머니나 형제들은 가끔 그를 보러 왔었지만 아버지는 정말 큰 일이 아니라면 그를 부르는 일이 없었다. 물론 연도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오랫동안 보지 않았으니 불편하다고 생각되어 그런 표정일뿐.
" ... 화는 왜 데려오라는 것인지 아십니까. " " 저는 그저 아들에게 서신을 전달 받았을뿐입니다. 제가 본가에서 받아온 것도 아닌지라 주인님의 의중은 ... "
단순히 그의 아버지가 부르는 것이라면 가문에 일이 있다고 여길 것이고 그렇다면 적혀있는 날짜 전날에 본가로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아버지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 한들 본가로 불러들이는 것은 자신이 마땅히 참여해야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서신엔 유화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반드시 같이 오라는 말까지 쓰여있었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물론 본가에서도 전부 보고 받고 있겠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하던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서신은 좀 더 이질적이었다.
"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길 빌어야겠습니다. "
그 사건 이후로 몸을 회복한 그녀를 연은 부쩍 가깝게 대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연을 보필하기 위해 데려온 공녀였지만 그는 다른 이들보다 곱절로 화를 찾곤 했다. 사실 독살을 막아준 은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택의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이상한 일인 것도 사실이었다. 평소엔 노집사 이외에는 그가 저렇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 저택엔 없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연의 행보는 본가에 그대로 보고 되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 가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 화를 불러주시겠습니까? "
연은 집사에게 화를 호출한 뒤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온후한 아버지지만 목정 가의 가주가 되었다는 것은 그 온후함 뒤에 숨겨진 다른 면모가 분명 있다는 것이고 연은 그런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의 지시로 살뜰히 보살펴졌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기에 식사와 수면도 꼬박꼬박 하면서 유화의 건강은 이 저택에 처음 왔을 때보다도 나아져 있었다. 다시 그를 시중 들기 시작한 이후의, 얼핏 사무적이지만 소소하게 감도는 부드러운 기류도 마음 놓이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이 저택 사용인들은 말해 왔으나 이따금 비치는 엷은 미소는, 무표정에 가까울지언정 그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임을 드러내 주었다. 처음 봤을 때만해도 곱디곱고 수려한 눈에 박힌 핏물 같던 붉은 눈동자는 이제는 어느 집에서나 꺼뜨리지 않도록 지켜 내야 하는 불씨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드는, 그 사람을 속이고 있으면서도, 그가 완전히 건강해질 수는 없고 그게 저주 때문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껴 버리는, 살아남아 다행이라는 포근함. 당연히 일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식사 준비를 전담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정 걱정되면 얼른 나아서 네가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식재료, 물, 양념장 따위를 하나하나 검식해 가며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기존에 그 일을 담당하던 사용인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불안했던 탓이다. 중독됐을 당시의 고통이 아직 생생하거니와 다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그가 또 무리하지 않을지 두려웠으나, 은수저로 검출되지 않는 독도 있다는 걸 똑똑히 확인한 이상 다른 수가 없었으니. 그런 감정과 책임감에 눈이 가려져 간과해 버리고 만 부분이 있었다.
-" 잘나셨어, 정말. 지 혼자 도련님 모시나? "
-" 우린 언제 독 탈지 모른다 이거지? "
-" 야, 야, 듣겠다! 쟤가 도련님께 이르면 우리만 경 쳐! "
기존에 식사 준비를 맡았던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점. 들으라는 듯한 쑥덕거림이 끊이질 않는 건, 유화가 그 점을 간과해 버린 결과다. 소리를 한껏 낮춘 건, 이쪽에서 따지면 뒷말한 적 없다고 발뺌하기 위함이겠지. 자업자득이라고는 하나 참아넘길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유화는 나물을 무치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사용인들은 시치미를 뗐다. "뭐? 뜬금없이 뭔 생각?"
"소인이 도련님께 고하면 여러분들을 경치게 할 수 있으리고 생각하시냐 여쭈었습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 근처에서 그런 말씀 나누시는 건 화를 자초하는 짓 아닙니까? 제가 도련님께 여러분을 험담하길 바라십니까?"
-" ...... "
"아니라면 그만둬 주십시오. 제가 이제까지 주제넘게 나선 점은... 잘못했습니다. 도련님의 진지 준비를 어찌 할지 가르침을 주시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러고서 사용인들의 눈을 하나하나 쏘아보는데, 부엌 문간에서 노집사의 부름이 들렸다. 유화와 나머지 사용인들이 일제히 노집사를 향해 고개 숙이자, 노집사는 인사는 됐다며 유화에게 도련님께서 급히 찾으신다고 전했다. 이 집안의 일을 뭐든 꿰고 있는 것 같은 여느 때의 태도와는 달리 심상찮은 기색이었다. 뭔가 일이 터졌구나. 유화는 급히 그의 처소로 향해서는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서신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최근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안부를 묻는 말로 시작한 서신은 내용 자체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다. 내부적으로 논의할 것이 있으니 쓰여있는 날짜에 본가로 오라는 내용과 함께 아라에서 데려온 공녀까지 같이 오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앞의 내용이야 이따금 있던 일이었으니 상관 없었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굳이 공녀를 함께 데려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동안 화에 대해서 신경 하나 안쓰던 가문에서 갑자기 그녀를 콕 찝어서 얘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부분이었다.
" 마땅한 정보가 없으니 대처가 힘들군 ... "
본가에서도 저택의 정보를 잘 알고 있듯이 저택에서도 본가쪽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인원들이 있었다. 마치 스파이 같아 보이지만 어차피 같은 가문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에게서도 적당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불러서 논의할 정도의 일이라면 적어도 본가 내부에서는 어떻게든 그 소문이 돌았을텐데 이번엔 정말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 어서오거라. "
최근에 외적으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쭉 나열해보았지만 자신을 부를 일이 없다는 사실만 추가될 뿐이었다. 결국 논의는 허울뿐이고 실제 목적은 화를 데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명령이 있었나? 그랬다면 자신도 동시에 알았을 것이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생각 속에서 그를 꺼내준 것은 문이 열리며 들려온 목소리였다. 최근 연이 가까이 지내고 있는 저택의 시종이자 아라에서 넘어온 공녀, 서신에 적힌 이름의 주인을 바라본 연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 내일 밤 중으로 본가로 떠나야하니 채비하거라. "
서신에 적힌 날짜는 이틀 뒤였지만 낮엔 움직이지 못하는 연이었으니 전날 밤에 움직여서 본가에 미리 가있다가 낮에 가족들을 만나는 형식이었다. 그가 참여하는 회의는 특별히 햇빛이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제작된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화의 얼굴을 보고 그에게서 나타났던 반가움은 금세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목정 가의 가주는 겉으로 보여주는 온후함 뒤에 누구보다 냉정함을 갖고 있는 냉혈한이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고 설령 그것에 자식들이 필요할지라도 가차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가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가문의 이익을 따지게 된다면 그런 것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 ... 입고갈 옷은 따로 집사가 마련해줄 것이다. 그러니 옷가지는 챙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
화가 입고 있는 옷이 저택의 시녀복이라는 것을 알아챈 연은 집사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시하고선 화에겐 나가도 좋다는 손짓을 보냈다. 대체 어떤 의도로 자신과 화를 부르는 것일까. 분명 일거리가 눈 앞에 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느라 밤을 지새울듯 싶었다.
으악 주말 끝났다!! (사망) 후후 유화가 좀 더 당돌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이전엔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텐데 이젠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 픽크루도 진짜 이쁘다~~ 나중엔 AU 같은걸로 현대 배경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걸 보니 해보고 싶어졌어~~ 하 유화가 너무 예쁘니까 우리 연이가 상대적으로 티가 안나는구나 ... 분발해라 목정연!
노집사에게서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나 보다. 아주 잠깐 은은한 웃음기가 스치기 무섭게 그가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그보다 수심에 찬 얼굴에 가까워졌으니. 몸 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일지?
그런데 용건은 간단했다. 내일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가도록 채비하라. 가주家主의 셋째 아들이 종가에 가는 건 하등 특이할 것 없는 일일 게다. 유화도 동행하는 게 뜻밖이라면 뜻밖이지만 시중 들 시녀 몇이 딸려 가는 것 역시 대수로울 것 없다. 하지만 그는 옷가지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 주면서도, 나가도 좋다고 손짓하고서도, 계속 고심하는 눈치다. 일거리도 붙잡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일까?
선뜻 발을 못 떼다가 그가 아직 식전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고민거리가 무엇이든 영양 섭취를 하고서 생각하는 게 수월하지 않을지?
"진짓상을 준비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물러나 도로 주방으로 향하니, 좀 전에 험담을 했던 사용인들이 여전히 흰 눈으로 본다. 저들로서는 당연지사. 유화는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사용인들은 자기들끼리 소리 죽여 수군거린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감정이 있을 테니 대번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줄 리는 만무하다. 독살 미수 사건이 유화에게 명줄 끊길 뻔한 사달이 아니라, 그의 눈에 들 수 있었던 행운이라고 여기고들 있다면, 검식을 넘기는 것도 썩 마뜩지는 않으리라. 그래도 이건 양보 못 하겠다. 양보했다간 어디에서 일하든 마음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자기네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들이 믿고 있다면, 이대로 밀어 붙여도 나쁠 건 없을 거다. 저들도 뻗댈 구실은 마땅찮을 테니
-" 맘대로 해. 언젠 안 그랬어? "
아니꼬운 티를 감추지 못한 답. 그래도 됐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수습한 뒤 식사를 준비해 돌아가 보니, 그는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다. 유화는 아직 김이 가시지 않은 음식들을 탁자에 차려 놓은 뒤, 나직이 그를 불렀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시옵니까?"
그가 대답해 줄지, 침묵할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그가 편한 대로 한다면 족하리라. 다만.. ..
"조금이라도 드시옵소서. 끼니를 거르시오면 머리가 더 어지러우실 것이옵니다. 검식은 마쳤사옵니다."
그는 화의 말에 식사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중이었기에 웬만해선 식사 시간을 헷갈리거나 하는 일은 잘 없는 일인데 오늘따라 그랬다는 것은 고작 서신 하나가 그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연은 본가에서 떨어져나오며 좀 더 멀리서 그의 가문을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단순히 적자에 첫째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가주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단순하게 가문을 다스리기엔 그의 가문은 너무나도 커졌고 그 자리가 갖는 책임감과 주는 압박감은 남다른 것이었다.
" 딱히 대단한건 아니다만 ... "
그 사건이 있고 나서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철저한 검문을 거치게 되었다. 그것은 식사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가 먹을 음식들은 사전에 검식을 해야했고 그 담당은 오롯이 화의 몫인듯 했다. 연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선 집사에게 항의도 해보았으나 다른 일에 대해선 최대한 연의 의견을 존중하던 집사도 이번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편애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고달플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연은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함부로 내색하거나 그러진 않고 있었다.
" 본가에서 날 부르는 일이야 흔치는 않아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네 이름까지 거론되었다는 것이 꽤 신경 쓰이는구나. "
굳이 화의 이름을 서신에서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말을 허투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물어도 똑같은 답을 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인데 화를 자신의 저택에 보내놓고 한번도 신경을 쓰지 않다가 이제 와서 신경을 쓰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 뭐, 계속해서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 문제니. "
연은 옅은 미소와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식사를 했어야하는 시간을 넘겼으니 시장기가 돌고 있었고 그렇기에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본가로 향할 날이 되었다. 본가와 저택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긴 했지만 최근 그의 주변의 경계가 삼엄한 것처럼 호위들도 빠르게 구성되고 있었다. 결국 평소와 달리 저택은 한낮부터 분주한 분위기였고 그에 따라 저택의 주인인 연도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눈을 뜨게 되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실내복이나 외출복 말고 정말 제대로 차려입은 그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를 매일 같이 보는 시종들 또한 잠깐 넋이 나갈 정도였으니 그 분위기가 대단했다.
" 너도 여기 타거라. "
그는 가마에 타기 전에 화쪽을 바라보고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놀란 눈치였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요즘 얌전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주인이 어떤 성격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도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약속 시간이야 내일 오후였지만 당장 가서 집 안 사람들을 만나야할 수도 있는데 본가까지 걸어온 상태의 화를 보여주기엔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별히 집사에게 당부를 하여 화를 좀 더 치장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잠이 안 왔다. 창을 등지고 돌아누워도 마찬가지다. 유화는 한숨을 내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가는 건 여느 시종이 따르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길 정도면, 그를 독살하려는 시도를 미수에 그치게 해 줬노라 덕담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다. 과연 무슨 용건일지? 자기네 가문이 우리 유(柳) 가를 멸문의 위기로 몰고 간 걸 알아서 찝찝해졌다? 아니, 목정 가에서 멸문시킨 가문이 한둘이 아니라 그부터가 밝혔거늘, 가주가 우리 가문의 사정을 의식할 리는 없다. 혹은 유 가의 비술에 대해 알게 됐다? 만에 하나 그런 사정이라면 어찌해야 할지? 고신拷訊이라도 당했다간 배겨 낼 재간이 없을 터인데. 그렇다고 지금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심란함만 더해진다. 결국 유화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마루로 나가 아침 노을을 보고야 말았다.
유화가 잠을 다소 설친 것과는 별개로,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향할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한낮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고, 날렵해 보이는 호위들이 총검을 착용한 채 줄지어 있었다. 다소 격식을 갖춘 외출인 만큼 유화도 평소보다 훨씬 치장해야 했다. 국화 무늬를 수놓은 분홍색 창옷[氅衣] 위에 노란 옷섶을 보랏빛 꽃으로 장식한 연분홍빛 감견(坎肩, 조끼)을 덧입은 뒤, 다른 시녀의 도움으로 정수리에 얹은 가발에다 주먹만 한 장미꽃 장식을 둘 달았다. 그리고 창옷과 같은 색의 구슬이 늘어진 귀걸이를 걸고, 화장 역시 창옷과 비슷한 색감으로 마무리한 다음 하얀 깃털 무늬가 장식된 연봉의를 걸쳤다.
채비를 마치고 마차가 준비된 곳으로 나갔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느 때라면 완전히 어둑해진 뒤에야 활동하는 그가 이미 마차에 오른 뒤라 우선 놀라고, 그 차림새에 또 다시 놀랐다. 평상복과도, 햇빛의 탑을 보러 갔을 때의 외출복과도 다른 분위기로 격식 있게 꾸민 모습이 수려하면서도 기품 있다 못해, 바라볼수록 일종의 황홀경을 주는 듯했다. 너무 넋 놓은 거 아닌가? 두근거림을 가라앉혀 보려는 듯 유화는 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나 나름의 노력은 그의 한마디로 무색해졌다.
"소인도 말이옵니까?"
저도 모르게 곁눈질을 하니 사용인들도 놀란 눈치다. 당연하다. 주인이 시녀와 한 가마에 타겠노라 한 것이니. 사람들 눈도 있고, 종가로 가는 길인데 괜찮을지 저어되었지만, 지체하는 게 오히려 그나 사용인들에게 폐가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더 있었다. 가마에 오르고 보니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어쩌면 좋을지? 유화는 있는 힘껏 몸을 움츠렸다. 눈 둘 곳이 마땅찮아 눈도 꾹 감았다.
화가 조심스럽게 가마에 오르자 행렬이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마차를 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이만한 행렬을 이끌고 수도에서 마차를 끌고 간다는 것은 안그래도 복잡한 수도의 통행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거기에 본가와의 거리는 생각보다 걸어갈만한 거리였으니 마차보단 가마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가마를 들고 가는 이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지만. 거기에 가마는 당연하게도 마차보다 작았고 자연스럽게 화와 연은 조금 붙어있을 수 밖엔 없었다.
" 불편해도 좀만 참거라. "
아무리 본가가 가깝다고하더라도 제국의 수도는 크기가 방대했기에 한 시진은 족히 걸어야하는 거리였다. 그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있어야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 될 것이라 미리 당부하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가마는 생각보다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는데 연은 흔들림을 보정해주는 기구가 따로 설치되어있는 가마라는 것을 집사에게서 미리 들은 상태였지만 예전에 타고 다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승차감에 신기한듯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 걱정하지 말거라. 본가에서도 별 일은 없을 것이니. 대신 그곳에선 항상 나와 같이 있어야한다. "
혹여 누군가 들을까 옆에 앉은 화에게 작게 속삭인 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니 눈이 피로했던 탓이다. 그렇게 있으니 어느새 가마는 목정 가의 본가 앞에 멈추어섰다. 가마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뜬 그는 도착했다며 가마의 문을 여는 가마꾼의 말에 천천히 가마에서 내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본가는 연이 머무는 저택이 왜 별채 정도로 취급되는지를 여실히 알려줄 정도였다.
" 신분을 밝혀라! " " 목정 가의 삼남이신 목정 연님의 행차이다! 문을 열어라!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때쯤 출발했으니 행렬이 막 도착했을땐 이미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달이 그 자리를 채우려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니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경비병들이 예의주시하며 지키고 있었으니 이러한 검문은 당연한 절차였다. 사람이 십수명은 한번에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대문 옆의 쪽문을 열고 경비병들이 나와 신분 확인을 하니 어떻게 해도 열 수가 없을 것 같던 거대한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도착했다는 사실이 재빠르게 전달 되었는지 그가 대문을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사내 하나와 수많은 시종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서있었다.
"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 멀리서 오는 것도 아닌데 항상 너무 거창합니다. "
그를 맞이한 것은 본가의 집사, 동시에 연의 저택에 있는 집사의 아들인 사람이었다. 연이 저택을 떠나올때 아버지에게 집사의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연에겐 삼촌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을 따라온 시종들과 본가에서 그를 맞이하려 나온 시종들이 합쳐져 어느새 거대한 행렬이 되어있었고 그 맨 앞에서 연은 집사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화는 자신의 뒤에서 바로 따라오라고 귀띔을 해주고선 말이다. 이미 밤이 되어버렸고 아버지와의 약속은 내일 오후였으니 일단 본가에 있는 그의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사실상 독립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본가에 위치한 그의 방도 다른 방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 네가 쓸 곳은 저 곳이다. "
본디 연을 시중 들어야하는 시종 하나가 남아있어야 했지만 이번엔 화도 따라온터라 그는 다른 이들은 모두 물러나라고 한 뒤에 화에게 자신의 방에 딸린 다른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사용할 방은 저택에서 사용하는 방보다 한참은 더 넓었고 마치 집처럼 딸려있는 방도 몇개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중 하나를 화에게 쓰라고 한 것이었는데, 그 방마저 규모만 작을뿐 깔끔하게 청소 되어있는데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연은 침대에 걸터앉아 답답했던 겉옷을 벗어버리고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좋아하는 곳도 아닌데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언젠가부터 그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마에 탄 유화가 불편할 걸 걱정해 줄 줄이야. 하지만 말은 채 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렸다. 그의 바로 옆에 타서, 어둑한 가운데에도 희디 흰 비단실처럼 매끄러워 보이는 머리칼이, 화장에 가려져 퀭함보다 유려한 눈매과 고운 빛만 돋보이는 눈이, 윤곽이 조각처럼 매끄러우면서도 낯빛 역시 조각처럼 창백한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워서, 경탄과 애련함에 동요해 버렸다는 소릴 어떻게 당사자 면전에서 하겠는가. 그저 제 얼굴이 보기 민망하게 홧홧하리라 짐작하며 고개 숙일 따름이었다.
그때 숨결 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마차 안인데도 행여 누가 들을까 의식했을까. 분명 안심시켜 주려는 말이건만 짠했다. 정말로 별일 없으리라 생각한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므로. 줄곧 불안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같이 다녀야 한다 신신당부하는 것이고. 아무 소리 않은 척 눈 감는 그가 고단해 보였다. 그렇잖아도 푹 자지 못 하는 사람이 일찍 거동했으니 실제로도 고단할 것이고. 하여 유화는 제가 입은 연봉의를 벗어 그에게 둘렀다. 목이며 등쪽에 찬 공기가 들지 않게끔 틈을 메꾸면서. 얕지만 규칙적인 숨소리가 이어질수록, 좁은 공간이 유발하는 긴장감도 풀려 가는 듯했다.
그런 끝에 마차는 멈추었고, 유화는 그에게서 연봉의를 거둔 뒤 뒤따라 내렸다. 그렇게 목도한 목정 가의 본가는 경악스러울 만큼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아니, 누가 대궐이라 소개했대도 유화로서는 위화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하남(河南)의 왕궁보다 훨씬 웅장한 저택이었으니. 지평선에 가까운 아득한 데에나 산이 까맣게 보일 뿐. 주변은 어딜 둘러봐도 하나하나가 웬만한 민가보다 더 큰 집채 아니면 제국의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 초록빛이 만발한 뜰이었다. 그의 저택에서 봤던 붉은 동백도 도처에 널렸고, 간간이 붉은 동백과 모양이 꼭 닮은 하얀 꽃도 보였다. 제국과 아라의 국력 차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만 최고 가문이라도 그래도 귀족 중 하나일진대, 이 정도로 위세가 어마어마할 줄은. 이 모든 게 우리 가문과 조국을 핍박한 대가일지니 분해야 마땅하건만 도리어 기가 꺾였다. 그 통에 지극히 공순한 태도로 그를 맞이하는 본가의 사용인들을 보면서도 남들 따라 고개를 숙였을 뿐 얼은 나가 있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건, 바로 뒤따라 오라는 그의 귀띔 덕분이었다. 이 복작거리는 와중에도 유화에게 신경을 쏟는 것도 놓치지 않은 것은 대관절 무엇을 염려하는 탓인지. 유화 역시 바짝 긴장한 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곁방도 여럿 딸린, 이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할 법한 그의 방에 이르렀을 땐, 한 일이 없는데도 기운이 쭉 빠졌다. 이곳에서도 다른 사용인을 내보낼지언정 화는 곁방에 머물라 지시한 것은,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우려한 탓일지. 그가 벗은 겉옷을 정돈해 놓으려니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저택에서도 심신이 편안한 날이 흔치는 않았다만 이곳은 더욱 불편한 눈치다. 피로를 푸는 데 좋다는 지압이라도 하면 좀이나마 긴장을 풀지? 아니, 그보다.. .. 유화는 그 방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가 식사할 시간이 다 됐다.
"진지를 못 드셨잖사옵니까. 준비해 달라 전하겠사옵니다."
그의 저택에서라면 고하고서 바로 주방으로 갔을 것이나, 이번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오는 곳인 데다 워낙 으리으리해 주방을 찾기까지 한참일 것도 문제였으나, 본가의 사용인들이 어련히 알아서 준비할까 하는 방심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 건, 몇 번이고 제 곁에 붙어 있으랬던 그의 신신당부였다. 하여 유화는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갱~☆신~★X9 주말은 언제나 순삭이네(눈물) 요즘 계속 바쁜거 같은데 주말엔 좀 쉬었어?:) 별건 아니고 본가 가는길의 유화옷차림으로 생각해둔 짤 하나 올리고 가~:3c >>386 올리면서 같이 올린다는걸 그만 깜박했지 뭐야(데헷) 글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이미지로 상상이 잘되면 좋겠다;> 암튼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붕붕)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라 전하겠다는 화의 말에 연은 손을 내저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본가의 시종들은 연이 태어나기 전부터 일하던 사람들도 있을만큼 노련한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연의 평소 생활 습관에 대한 것도 저택에서 전부 다 알아왔을테고 지금쯤이면 식사는 진즉에 준비되어 방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하여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도 좋다는 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저택의 식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진수성찬이 연의 앞에 빠르게 차려지기 시작했다.
"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 " 알겠습니다. "
몇명이나 이 상을 차리기 위해 왔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가져온 음식들을 모두 내어놓고서 사라진 하녀들 뒤로 집사가 문을 나가기 전에 나지막히 얘기했고 연은 그를 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분명 혼자서 먹기엔 과하게 많은 양이었지만 다른 국가의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다는 목정 가문의 위세를 상징하는듯한 상차림이었다. 근데 어째서인지 준비된 식기는 한 명의 것이 아닌 두 명의 것이었고 방금 지은듯 김이 모락모락나고 있는 쌀밥 또한 두 개가 놓여있었다.
" 네 몫의 식사도 준비해달라고 했다. "
그렇다고 겸상까지 하는 것은 분명 용납받기 힘든 일이었지만 유화는 어쨌든간에 연의 시종이었고 그녀와 어떤 것을 하던 연의 마음이었으니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족 정도는 되어야할듯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뻔한 것이었고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연이 예상하지 못할리도 없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선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 검식 같은 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있던 곳보다 몇배, 아니 몇십배는 경계가 삼엄한 곳이다. 그리고 음식을 먹어보는 사람들도 따로 있으니 말이다. "
안전으로 따지면 연이 머무는 저택보다야 본가쪽이 훨씬 형편이 좋았다. 그렇기에 그가 독살 당할 뻔했을때 본가에서도 여러 논의가 오갔었지만 당사자인 연이 극구 거절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내버렸었다. 그만큼 그가 이곳에 머물기 싫어하는 이유는 있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단지 변해버린 모습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을뿐이다. 화가 식사를 하는지 중간중간 바라보며 천천히 식사를 마친 연은 수저를 내려놓고서 흐음, 하는 작은 한숨과 함께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었다.
얍얍 갱신!! 월요일을 알리는 갱신이 되어버렸자나 ... (눈물) 나는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쁘다 ... 그래도 답레는 어떻게든 짬짬이 잇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야! >< 하 연이 옆에서 유화를 떨어트려 놓는다니 안된다 안돼 ... 곧 밝혀질 내용이긴 하지만 유화가 서신에 따로 이름이 적힐 정도였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야! 연이도 그래서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고 ... 나쁜 짓을 당하진 않겠지만 작은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달까 :3
올려준 옷은 잘 봤어!! 후후 유화랑 상당히 잘 어울리는 옷이네. 저기서 좀 더 고급진 옷을 입혀주고 싶지만 좀만 더 기다려야겠네. 혹시 일상 이어가다가 모르는거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기야!! 목정 가의 대한 설정은 내가 다 갖고 있는거니까 말이야 :3 ...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손을 들어 말렸다. 본가의 사용인들이 준비해 줄 거라는 의미일지? 그럼 그때까지 지압이라도 하고 있어 볼까. 하여 그의 의사를 물으려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더니 식사를 준비했노라 고해 왔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자마자 날렵하면서도 깔끔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손쉬운 일이라는 듯이 척척-누구라도 저쯤은 할 수 있어 보이도록 척척 해내는 건 정말로 숙련된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의 식사를 차려 놓았다. 그처럼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동작도 놀라웠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건 산해진미를 수십 첩은 차렸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수라상 이상 아닌가. 그도 모자라 밥이 한 그릇 더 있다. 식기도 하나씩 더... 어째서인지? 말문이 막혀 눈만 깜박이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이 떨어졌다.
"소인의 식사도 말이옵니까?"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다. 검식용이 아니라 정녕 겸상을 하겠단 말인가? 목정 가의 직계가, 아라 출신 공녀와? 앉으라는 듯 그가 자기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키는데도 선뜻 몸이 안 움직여졌다. 지금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얼떨하게 서 있는데, 그가 태연스레 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흠칫 손을 뻗었으나, 검식도 필요 없단다. 검식하는 사람들이 아예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기운이 쭉 빠져 손을 거둔 채 주춤거리다 가까스로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의중이 무엇일지? 제국에서 손 꼽히는 가문에서 나고 자란 이다. 아무리 분가를 했기로서니 사용인을 격의 없게 대하는 태도가 무슨 뒷말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러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유화는 아직도 김이 가시지 않은 하얀 쌀밥을 내려다보다 숨을 골랐다.
그의 저택에서도 이런 처신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본가까지 와서는 보란듯이 한다. 이런 처신이 그에게 이로울 리 만무한데도. 그런즉, 그 자신을 위한 처신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 그때, 불현듯 그가 목정 가의 종가宗家로 오기 전까지 줄곧 유화의 일을 걱정해 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혹 소인을 감싸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가주의 아들이 이토록 각별히 대하는 사용인이니 섣불리 건드리거나 접근하지 말라고, 종가宗家의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는 심산 아닌지? 그리 추측하면서도 아리송했다. 사용인들한테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의 가족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므로.
의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상 이상의 대저택이자, 그가 원하는 바에 맞춰 시중들 수 있는 사용인들, 이미 검식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을 만큼 철두철미한 보안. 이런 종가에 머물지 않고 그가 따로 나와 살게 된 것은 어째서인지? 저주 때문에 밤에만 생활할 수 있는 몸임을 감안해도 이상하다. 이만한 규모의 대저택이면 별채에서 따로 지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을 테니.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다 보니, 그가 식사를 마치도록 유화는 수저를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가 또다시 상념에 잠길 즈음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그렇게 가다듬어진 의문은 하나. 그의 안전을 고려하면 여기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은가?
"본가로 돌아오시면 이전 같은 불상사가 없을 것이온데, 분가해 지내시는 연유가 있으시온지요?"
으아아아:□ 주말에도 출근했다니 그거 끔찍하잖아X6 고생많았어 연주!! (부둥부둥) 그렇게까지 현생에 갈리는데도 잊지않고 찾아줘서 고마워.. .8ㅁ8(그렁그렁) 유화를 콕 찝어서 데려오라고 한 이유가 무지무지 궁금했는데 곧 밝혀진다니 그때까지 잘 참아보게써:9(불끈) 일단은 연이의 의중만 궁금해서 그거위주로 물었고 얼마쯤은 연이의 의중을 넘겨짚기도 했는데 제대로 본거일지 궁금하다~:3c 목정가에 관한 정보를 다루게되면 모르는거 바로바로 물어볼게X> 고마워~~ 주말에도 일하고 또 월요일이라 고단하겠지만 한주 잘 보내길 바래!!(붕붕)
기껏 유화의 몫까지 식사를 준비해주었건만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은 당황한듯한 기색과 함께 연에게 물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쳐줘도 화는 연의 직속 시녀와 다름이 없었다. 신분이동이 꽤나 자유롭다곤해도 제국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니 주인 되는 자가 시녀와 겸상을 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이 걱정할 일이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도 제국에 오기 전엔 나름 아라의 귀족 가문의 영애였을테니 이러한 작태를 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수저를 내려놓은 연은 화를 바라보고선 말했다.
" 그러한 뒷말도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
한낱 시녀가 명을 거절할 수 없을테니 결국 그 화살은 명을 내린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의 입장이 목정 가의 삼남이니 앞에서 대놓고 비난할 사람은 몇명 없겠지만 가문의 입지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누군가에겐 불호령을 들을 수도 있을 정도의 일이기도 했다. 연은 다시금 수저를 쥐려다 이어진 화의 질문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 내일 만남에는 가족 전체가 다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분명 너도 같이 가게 되겠지. "
아버지의 서신에서 화의 이름이 적혀있던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의미였다. 그들의 입장에선 화가 연 대신 독을 먹고 죽을뻔한 것은 당연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연의 저택에서 지금까지 검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방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울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고 당연하게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화를 부른 이유는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이 아니고 독살 미수 사건 그 이후의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 물론 주로 얘기하는 것은 아버지와 큰 형님 정도겠지만 ... 결코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
그녀가 아라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있었던 간에 이미 제국에 공녀 신분으로 온 이상 좋은 취급을 받긴 어려웠다. 물론 가끔 좋은 사람을 만나서 나름 괜찮은 삶을 사는 공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곤 했다. 그러한 취급이어야할 공녀가 감히 명문가의 후계와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은 연의 가족들 입장에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 그렇기에 미리 선수를 쳐두는 것이다. 너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고. "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연은 다시금 식사를 시작했다. 애초에 소식을 하는지라 그의 식사는 금방 끝났고 수저를 내려놓고서 입을 닦아낸 그는 내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들려온 화의 목소리에 끊어져버렸고 그는 화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 숨이 막힌다. "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듯 했지만 더 이상 말하기 싫은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향했다. 그는 말하기 싫은게 있으면 자리를 피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더 묻는다면 필시 화를 낼 것이기에 아예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탁상에 앉고나서 종이에 무언가를 쓰려다 이내 유화쪽을 다시금 바라보면서 말했다.
" 식사는 내가 부탁한 것이니 꼭 먹었으면 좋겠구나. "
그렇게 말한 연은 쓰던 것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의 날림체로.
으윽 주말의 끝이라니 말도 안된다 ... 유화주는 주말 잘 보냈을까?! 다행히도 이번주는 수요일에 쉬는 날이 있단 말이지! 후후 ... 푹 쉬는 날이 되면 좋겠다. 나도 그 날은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쉴 생각이니까~~ 핑퐁도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연이의 가족들이 화를 불러온 이유가 밝혀졌다! 물론 아버지의 생각을 연이가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이럴 것이다~ 하는 것이지만 나름 연이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후후 ... 아마 잠도 제대로 못잘것 같은데 화랑 같이 밤을 새는 에피소드도 재밌을 것 같네!!!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도 궁금하고~~
뒷말을 저어하는 유화와 달리 그는 태연했다.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 말은 무심한 듯 유심했다. 체면이 깎이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유화가 신경 쓰일 일은 없게 하겠다는, 선언처럼도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까닭이 있는지? 이 사람이 사별의 아픔을 되새기지는 않게 하고자 살기로 했으나, 난 일개 공녀고 그는 상전이거늘.
그 의문은 한숨에 이은 설명에 풀려 나갔다. 종가宗家의 일원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 유화도 가게 된다는 것. 유화를 데려오라 기별하였고 가족 전체가 모이는 자리에 참석까지 시킨다면, 용건 중에 유화의 일도 있을 것이 자명했다. 시녀, 그것도 공녀 신분의 시녀가 독살을 막았노라 치하하기엔 너무나 거창한 자리. 그런즉 그 자리는 유화를 추궁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컸다. 모르긴 해도, 저가 사경을 헤맬 때 가주의 아들인 그가 몇 날 며칠을 보살펴 줬던 일이 알려진 게 아닐지?
역시나, 그의 예상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좋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유화는 무릎에 얹은 두 손을 모아 쥐었다. 그가 가혹한 운명에 짓눌렸고 실은 타인을 위하고 염려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 그만 보고자 할지라도, 그는 역시, 목정 가의 일원이다. 좋든 싫든 목정 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종가에 이르니 그걸 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를 감싸고자 하는 건,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이리라.
"누를 끼쳐 송구하옵니다. 하옵고 고맙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식사를 들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더 들어도 좋을 텐데, 그럼 조금은 기운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만 가득이었다. 이제껏 나지막하고 작게, 원래도 활기찬 음성은 아니다만 그의 저택에 있을 때보다도 힘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가 식사를 마치고도 분위기는 무거웠다. 뭐로든 시름을 덜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다 넌덜머리 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듯한 한마디가 정적을 깨뜨렸다. 이어 그는 더 거론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유화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정확히 어떤 심정인지, 어째서 그렇게 느끼는지 헤아릴 도리는 없으나, 그가 이곳을 갑갑해한다는 것만은 확실했기에. 공연한 것을 물었다. 안들 어떻고 모른들 어떻다고.
무언가를 쓰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착잡해하다 흠칫했다. 돌아볼 줄은 몰랐는데,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느새 온화한 빛을 띤 수척하지만 수려한 얼굴로, 맥없으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식사를 권했다. 그 순간 묘하게도 상상,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를 것의 나래가 펼쳐졌다. 어쩌면 그는, 이런 진수성찬이 아닐지라도, 편히 대할 수 있는 이와 식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그런 시간이 고팠을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런 거라면.. .. 가슴이 찡했다. 묻지 말고 그냥 먹을 것을.
". ..하오시면., 감사히 들겠사옵니다."
그때까지도 밥과 국과 익힌 반찬들은 식지 않았다. 더욱이 하나같이 산해진미였으니, 가족들 생각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희는, 이런 음식 구경도 못 해 봤을 텐데. 나만 호사를 누리는구나. 목이 메는지 잘 안 넘어갔지만, 물을 마셔 가며 넘겼다. 살기 위해 끼니는 거르지 않기로 했거니와 그가 먹길 바란다 했으니.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깜짝 놀랐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사용인들이 들어와 뒷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먹자마자 들어왔다는 건, 내가 먹는 동안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단 걸까? 그의 분부 때문에? 한마디 말도 없이 신속히 치우고 물러가는 사용인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철저히 훈련되어 있구나.
한편 그는 어떨까? 유화는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그에게로 다가섰다. 그가 갑갑해하는 곳임을 자각해서일까. 그의 저택에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어색하다. 그래도 심호흡을 하고 말을 건네 본다.
뒤늦게나마 유화가 수저를 드는 것을 보고서 연은 시선을 돌려 자신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휘적이며 써둔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와 유화가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당장 내일의 일이다. 자신을 제외한 형제들은 모두 혼인을 한 상태이고 여동생도 정혼자가 있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이 차이가 좀 있는 큰 형도 그에겐 여전히 어려운 상대였다. 언제나 듬직한 존재였던만큼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유화가 식사를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어졌고 간간히 들리는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은 유화가 수저를 내려놓자마자 들어온 시종들의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인해 깨졌는데 그마저도 순식간의 일인지라 시종들이 방을 빠져나가자 방금과 같은 정적이 다시금 흐르려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화의 목소리에 의해 멈춰섰다.
" 으음 ... "
제국 자체가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긴했지만 제국에 와서 가장 오래 지낸 곳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연이 살고있는 저택이었다. 그리고 제국에 와서 저택을 나와서 바깥에 이렇게 오래 있어본 것도 처음일테니 어쩌면 그 못지않게 그녀 또한 이곳이 불편할지도 모른다는게 연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기에 화의 말을 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있던 붓을 내려놓고서 잠시 고민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 그럼 옆에 앉겠느냐? "
의자를 가져와서 옆에 앉으라고하며 그는 박수를 두어번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 시종이 빠르게 그의 앞에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며 섰다. 연은 그 시종에게 무언갈 가져다달라고 한 뒤에 나가보라 손짓했고 남자는 들어올때와 같은 속도로 빠르게 방을 나가버렸다. 뭘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다른 옅은 미소를 지은 그는 화가 옆에 앉자 유화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이렇게 있으면 마음이 좀 더 편하구나. 마치 내 저택에 있는 느낌이라. "
이곳에선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으니 행동 거지를 더 조심해야하는데다 그의 집처럼 햇빛이 철저하게 막혀있는 구조가 아니라 돌아다니기도 위험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런식으로나마 작게 풀어내려고 유화를 자신의 옆에 앉힌 것이었다. 그는 그러다 유화의 머리를 보고선 머리카락을 만져도 되냐고 아까와 비슷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후 >>400은 나의 것이다! 벌써 400레스라니 빠르다 빨라! 노동절에 쉬지 못한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 나는 푹 쉴 수 있어서 이렇게 늦게까지 깨어있지! 사실 잠을 깊게 못자는 것도 있지만 ... 유화주는 내일 일 끝나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맞아 가주께서 친히 불러다가 심문 비스무리한걸 하는거지! 우리끼리의 이야기에선 보이지 않지만 최근 공녀 출신 후궁이 귀족 사회 전반에 큰 이슈가 되고 있거든. 제국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후궁이 생겨버리면 자칫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황제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서 아무도 나서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후후 마자 우리 완전 잘했어~~ (엄지척)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8ㅁ8) 유화주도 나도 현생이 혐생이네 ... 나도 주말이 완전 휴일이 아니라는게 너무 슬픈 일이야 ... 응응 맞아 그때 말해줬던 그 후궁이야! 너무 메인이 되지 않게 조금씩 스쳐지나가듯이 언급해주려고 하고 있어 :3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해도 되는 건 어디까지인가. 그의 등 뒤에 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때마다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어색함.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해주解呪임을 알기에. 당장 주어지는 일이 바쁘면 이런 잡념도 안 드련만. 지금은 너무도 고요하고 적막하여, 그의 저택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단둘이라는 느낌이라 머리를 비우기 힘들다. 더욱이 내일 받을 추궁에 대한 부담도 있음에랴. 피의 저주가 거론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되 해주법을 알고 있는 이상 부담이 안 생기지는 않았다. 분부할 일이 없냐고 물은 것도 다분히는 머릿속이 어지러운 탓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는 쓰던 것을 멈추고 이쪽으로 미소지었다. 보일 듯 말 듯이지만 확실한, 이제는 알아볼 수 있게 된 미소. 그리고 옆에 앉겠냐는 권유. 조금은 마음이 나아진 걸까. 유화는 대답 대신 그의 옆으로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 사이 그가 박수를 쳐 사용인을 부르더니 -고요한 방을 울리기엔 충분했으나 문 밖까지 들릴 만한 소리였는지 모르겠는데 용케도 듣고 들어왔다. 밖에 있으면서 이 안의 사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아닐까. 그만큼 시중을 철저히 들고자 함인지, 이쪽을 염탐하기 위함인지까지는 가늠을 못 하겠다.- 지시를 내렸다.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한 것 같은데, 가져다 달라는 게 무엇인지는 유화가 알아듣지 못했다.
어쨌거나 유화가 그의 옆으로 다가앉자 그는 유화의 귓전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다른 데로 새지 않게 하겠다는 듯 잔바람처럼 바로 불어넣는 속삭임. 거기엔 본가를 버거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해 손이나 무릎께에 모을 때, 또 다른 잔바람이 귀에 훅 꽂혔다. 멍해지는 동시에 두근거렸다. 귓가에 닿은 숨결보다 고동이 더 크게 울리는 듯했다. 지위로만 따지면 공녀는 물건이나 다를 바 없으니 제 마음대로 해도 거칠 것 없건만, 굳이 묻는 까닭은 나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봐서일지? 단순히 사별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걸 알면 날 어떻게 볼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유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미燕尾를 풀었다. 곱슬거리는 긴 머리칼이 까만 폭포수를 드리우듯 흘러내렸다. 이런 반응이 엉뚱한 해석을 불러올 수 있음은 안다. 시침侍寢을 들겠노라 청하는 걸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감행한 것은 어째서인가?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각오했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저 한 가지. 공녀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겠다면 나 역시 공녀의 차림새는 그만두겠다는, 그런 막연한 감각만 있었다.
현생의 틈바구니에서 어찌어찌 힘내봤다(불끈) 갑분머리풀기라 어떨지 모르겠네:3c 근데 저 반응 말고는 떠오르는게 없었어(옆눈) 가주의 심문은 어떤식일지 궁금해져~☆ 연이와 가주 사이의 분위기가 냉랭할지 팽팽할지도 기대된다X9 그나저나 그 후궁씨는 이제 아들만 낳으면 탄탄대로일까?<:▷ 아니면 아들을 낳아도 산 넘어 산일까?<:9 사이드스토리도 흥미진진해 히히(팝콜) 그래도 무리는 하지말고 연주 컨디션 챙겨가며 이어주기야~~★☆(붕붕)
목정 가의 종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하급 귀족들에겐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실낱 같은 기회를 잡은 것이고 평민들에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이는 비단 목정 가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다른 3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의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귀한 기회를 잡은만큼 어떻게든 가문 사람들의 눈에 띄어보려고 노력했고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엄격한 규칙 속에서도 꿋꿋이 일하고 있었다.
" 그들의 입장에선 극한의 노력이겠지만 그것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지 ... "
저주를 받고나서 점점 예민해지는 통에 그런 과도한 관심까지 받으려니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그 이전에 저주를 몸에 담고 있었던 당숙께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옮겨갔는지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본가에 올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이 거대한 저택의 내부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 생각보다 더 머리가 길었구나. "
유화가 머리를 풀어내리자 연은 놀랐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떴지만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 곱슬거리는 느낌이 있는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은 연의 하얀색 머리와 대비를 이루어서인지 더욱 까맣게 보였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수도 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연은 손을 뻗어서 천천히 화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얘기했다.
" 형님들은 첫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고 나와 여동생은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지. "
한동안 돌았던 전염병으로 가주는 첫째 부인과 사별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번째 부인을 맞이했지만 한동안 자식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태어난 것이 연이었고 곧이어 태어난 것이 그의 여동생이었다. 그렇기에 형님들과는 나이 터울이 많이 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여동생과 더욱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여동생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는 일이 잦았고 나중엔 불안한 일이 있을때마다 습관처럼 만지곤 했었다.
" 여동생의 머리를 이렇게 만지곤 했었지. 지금은 둘 다 장성한 어른이 되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은 정말 소중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그가 지금의 유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손놀림이었지만 정작 그것을 연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 들어오라하자 아까 그 시종이 무언가를 그들이 앉아있는 탁상에 놓아주고선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연이 고급스럽게 포장 되어있어 딱보아도 가격이 꽤나 나갈 것 같은 상자를 열자 안에선 짙은 갈색빛을 띄는 네모난 것이 몇개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저 멀리 서역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들 말로는 초코릿? 이라고 하던 것 같은데. 구하기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나도 몇번 먹어보지 못한 것인데 ... 마침 상인들이 돌아왔다기에 미리 기별을 넣어 구한 것이다. "
으윽 연휴의 끝이라니 나는 너무 슬퍼 ... (광광) 유화주는 연휴 잘 보냈을까? 나는 심한 일교차를 견디지 못하고 감기에 걸려버렸어 .. (골골) 그래도 주말 푹 쉬니까 괜찮긴했는데 오늘 출근이라도 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연이가 준비한 것은 초콜릿! 작중 시점이 근대로 막 넘어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제국의 영토가 상당히 넓은만큼 아예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분명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연이가 어릴적부터 구할 수 있던건데 상인들이 오고 가는 거리가 상당히 길어서 가져오는 양도 적고 모든게 다 황제의 진상품으로 올라가는거라 연이도 몇개 못구한다는 뒷설정이 있어 :3 유화가 먹고 맘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그가 흘린 말은 본가가 '숨이 막히는' 곳인 까닭인 듯했다. 그러나 유화는 그 설명을 즉각 이해하진 못했다. 아랫사람이 정성을 다해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는데 나쁠 게 무엇인지? 희가 태어나기까지 가세가 기울어서 사용인 없이 지낸 나날이 더 긴 유화로서는 난해한 것이었다.
그러다 완벽한 섬김을 지향할수록 윗전을 시시각각 주시할 수밖에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고서야, 그가 이해될 것도 같아졌다. 출세의 수단으로 여겨져서건, 자칫했다간 불호령이 떨어져서건 어디로 가도 매순간 사용인의 눈이 있다. 어쩌면 감시 아닌 감시를 받는 기분일지도. 그나마 그의 저택이라면 물러가라 명하기도 하겠으나, 이곳에선 그런 명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언젠가 이름 모를 옛 서적에서 주군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면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소원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봤는데, 그에게도 그 말이 들어맞는 듯하다. 나는 과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럴 필요라곤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풀어헤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조금 떨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손을 뻗어 왔을 땐 저도 모르게 흠칫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정말로 유화의 머리칼에만 닿았다. 그것도 닿고 있다는 감각이 착각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등골이 찌르르 저리다 풀어지는 듯했다. 긴장감으로 참았던 숨을 소리 죽여 내쉬었다. 긴 머리를 쓸어내리는 것이 그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주는 것일지? 거기까진 알 수 없으나 고비를 넘긴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듣게 된 그의 가족 관계. 형들은 이복異腹이라는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서먹한 사이인 듯하다. 아들이 있는데도 사별 후에 재혼한 것은 명문가의 가주로서 다른 가문과의 결속을 다져야 했기 때문일지? 거기까지는 모를 일이나, 아무튼 그는 동복同腹인 누이와 어지간히 각별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누이의 머리칼을 만졌던 시절을 그리워하듯 이러고 있을 리 없으니. 누이동생의 대역인 셈인가. 희熙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예쁘다며 머리칼을 쓰다듬던 게 떠올라 묘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소인도 동생에겐 그리하곤 했사옵니다. 열살 터울이라 그 아이는 아직 어리옵니다만."
그랬기에 이 낯설고 추운 땅으로는 도저히 보낼 수 없어 공녀가 되길 자청했노라는 지난 사연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죽지 않고 살기로 한 이상, 지난날을 곱씹어 무엇하랴? 그저 가벼운 가족 얘기에 장단 맞추는, 마찬가지로 가벼운 가족 얘기면 족하리라.
그러던 중 문을 두드리는 기척에 고개가 돌아갔다. 좀 전에 그의 지시를 받은 사용인이었다. 풀어헤친 머리가 새삼 면구스러웠다. 이 모습 역시 가주의 귀에 들어가겠구나. 이 또한 그가 앞서 이른 선수 치기일지?
어쨌거나 사용인은 한눈에도 정성 들인 진상품이라는 티가 나는, 손바닥만 한 상자를 탁상에 올려 놓고 뒷걸음질로 물러갔다. 기분 탓인지 상자에서 뭔가 낯설고도 달콤한 향이 나는 것도 같았다. 상자에서 나는 향일까? 유화의 눈이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커지는 사이 그는 상자를 열었다. 나무 줄기와 색이 흡사한데 네모반듯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달콤한 향은 상자가 아니라 그 조각에서 나는 것이었다. 서역에서 구해 온 초코릿이라는 음식이란다. 이국, 그것도 머나먼 서역의 산물이면 그의 말마따나 진귀한 먹거리겠다. 그런데...
".. .?"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힘들게 구한 걸, 본인도 몇 번 먹어 보지 못했다는 걸, 공녀에게 권하다니? 혹시 검식을 바라고? 아니다. 여기 들어온 음식들은 이미 검식을 마쳤다 했다. 그럼 이 역시 그가 말한 선수 치기인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은가? 이걸 받아먹는 게 과연 온당한 처신인가? 상식적으론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무엄한 아랫것이라고 당장 치도곤을 당한대도 하소연할 길 없으리라. 허나 자신이 그의 지시를 거스를 수 있는 입장인가 하면 그 또한 아니다. 이런 경우엔 어찌해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감히 받들 수 없는 명이라 무릎 꿇고 조아리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 유화는 조금 전 그와의 겸상을 회피했다가 후회했던 것을 곱씹었다. 그러자 이게 머나먼 서역의 음식이 아니라 머루나 산딸기처럼 산에 나는 과일이었다 해도, 그는 나누고 싶어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저 가진 걸 나누어먹는 시간이 고픈 거라고. 각별했던 누이의 나날들이 그리워진 거라고. 결국 유화는 초코릿이라는 것을 두 손으로 감싸듯 받아들며 미소를 띠었다.
"황감하옵니다."
그러고 입을 가리며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실로 신기한 식감이었다. 입에 넣자마자 눈처럼 사르르 녹는데, 씁쓸한 듯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 안을 진하게 감돈다. 먹었는데도 먹은 거 같지가 같은데, 맛만은 강렬하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었구나. 유화는 순식간에 비어 버린 제 손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신기루 같은 음식이라 목정 가에서도 쉽게 구하지는 못할 만큼 귀한 걸까?
그러고보면 유화는 자신의 동생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자주 하는 것 같았다. 연의 누이가 그에게 갖는 의미처럼 화에게도 동생은 각별하다고 느끼는 것일테다. 공녀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화는 추운 북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따뜻하고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연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도를 만든 것은 자신도 아니고, 결국 화가 여기에 왔기 때문에 자신이 그녀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구나. "
그래도 너무 달다고 느껴져서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그의 아버지나 큰형님 같은 사람들. 물론 그 음식을 처음 먹어본 사람의 대부분은 좋아했기에 가져오라고 시킨 것이었지만 혹시라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일까 조금 노심초사했던 그였다. 공녀 출신에 자신의 전속 시녀일뿐인 화에게 이렇게나 마음 쓸 필요가 없음에도 연은 그녀를 의식하고 있었다. 뭔가 반대가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연은 화의 반응에 안심했다는듯 웃으면서 말했다.
"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과일로 만들었다고 하니 제국에선 평생 못먹어볼 음식인 것이지. "
듣기로는 아예 겨울이 없이 사시사철 덥고 비가 왕창 내리는 시기와 거의 오지 않는 시기가 구분 되어있다고 들었다. 제국의 그 어떤 땅도 그런 기후를 가진 곳이 없으니 제국 전체보다 더 남쪽에 위치해있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곳까지 상인이 가는구나 싶었고 그들의 말을 들으니 한번에 많은 양을 갖고 오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단 전체가 그곳까지 가서 가져올 수 있는 초콜릿은 20상자 정도였는데 상자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20상자 뿐이라는 것은 그 말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 너무 오래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살짝 아프구나. "
연은 앉아있던 탁상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어지는 고민은 마차에서도 같았고 도착해서 방에 들어와있을때도 같았으니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음은 확실했다. 그것이 두통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그의 타고난 체질인터라 개선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그만둘 타이밍을 알려주는 것이니 썩 나쁘다고 하기도 그랬다.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그는 화를 바라보고선 웃으면서 말했다.
" 이젠 가서 쉬어도 좋다. 아니면 여기에 있어도 좋고. "
연의 침대는 워낙에 넓어서 그가 혼자 앉아있음에도 주변에 몇명은 더 누워도 될 정도였다. 그러니 화가 가서 옆에 앉는다고해도 그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었지만, 출발할때도 꽤나 분주했고 여기 와서는 바라보는 시선이 한참은 더 많아 피곤할 것이라 생각해 이만 쉴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었다.
만족한 듯 따스한 눈길이 와닿았다. 곤한 기색이 엿보이지만 부드러운 미소도. 누이를 떠올리고 있을까. 장성했다는 누이는 아직 이 저택에 머물고 있을까? 그랬다면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왔을 법도 한데,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가문으로 출가한 뒤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면으로는 우스운 일이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가 댁 도련님이나 속국에서 끌려온 공녀나 가족과 단절되기는 마찬가지라니. 그게 착잡해 그의 누이라면 어떤 질문을 했을지 상상해 본다.
"도련님께선 아니 드시옵니까?"
자신이 이런 식으로 군다고 누이와 함께인 기분이 들지는 모르겠다만. 좀은 헛헛한 기분이 들 뻔했을 때, 그가 초코릿의 재료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과일이라고 알려 주었다.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면, 아라에서 재배할 수는 없사옵니까?"
목정 가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만큼 귀하디 귀한 음식의 원료라니, 그걸 재배할 수 있다면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는데. 제국에서 수탈을 계속한다면 뭘 재배하든 소용없겠지만.
그러나 괜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이내 머리가 아프다며 침상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무리도 아니다. 그렇잖아도 쇠약한 사람이 줄곧 고민에 잠겨 있었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기침해서 본인이 갑갑해하는 예 이르렀으니, 심신이 지쳤을 만도 하다. 물러가도 좋다며 웃는 모습이 어쩌면 저리 사라져 버릴 듯 위태위태한지. 그게 안타까워 유화는 물러가는 대신 그가 앉은 자리로 다가섰다.
"허락해 주시오면 지압을 해 보겠사옵니다."
그가 허락했다면 유화는 침상에 올라서는 손끝으로 원을 그리듯 그의 관자놀이를 누르다 그의 정수리를 엄지로 지그시 누르기를 되풀이했을 것이고, 사양했다면 실내의 불을 꺼도 좋을지 물은 다음 그의 머리맡을 지켰으리라.
끄아앙 어제도 출근을 했단 말이지 ... (쓰러짐) 유화와 유화주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 (엄지척) 아마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면 내가 여러 사람 대사를 써야해서 좀 헷갈릴수도 있을 것 같긴하네 ... 그래도 열심히 해보께!! 현생이 중요하지만 너무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사실 연도 초콜릿을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저주를 계승하기도 전의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처음 먹어본 그 맛이 강렬하여 잊지 않았기에 마침 구할 수 있을때 화에게도 먹을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상자에 담겨있던 초콜릿은 딱 2개였기에 하나는 화를 먼저 주고나서 남은 하나는 자신의 입에 넣었다. 예전에 먹은 것과 살짝 다른 맛이었지만 그 달콤한 맛만큼은 여전했다. 평소엔 보기 힘든 만족스런 미소를 자신도 모르게 지어버린 연은 금세 녹아버린 초콜릿에 살짝 아쉬워하며 말했다.
" 아라보다 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니까 힘들것 같구나. "
여기서 멀리 떨어진 서역에서의 열매이니만큼 정보가 별로 없어서 이렇다 할 얘기는 해줄 것이 없었다. 당장 이웃나라도 못가보는 그가 서역에 대해서 알려면 얼마나 알겠는가. 물론 알려고하면 정보를 구할 곳이야 많으니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흥미가 생기는 주제는 또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집사가 예전에 말해둔 것을 기억해둔 것뿐이었다.
그리고선 그는 자신의 침상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 깨어있었던데다 깨어있는 내내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기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누워있으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질까싶어 침상에 걸터앉은 연은 자신과 비슷하게 깨어있는 화에게 쉬어도 좋다고 얘기한 뒤에 침상에 누우려했다. 허나 화의 목소리가 들려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 괜찮다면 무릎을 좀 빌리고싶은데. "
물론 불편하지 않게 잠깐이면 괜찮을것 같았다. 그리고 화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있으니 조금씩 잠이 오는 것 같아 그는 옅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주 잠깐 잠에 들 수 있었다. 자신이 잠에 들면 방에 가서 쉬라는 분부도 잊지 않은채 말이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밝았지만 연이 머물고 있는 방엔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햇빛을 쬐게 되면 심한 화상을 입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저택에 있는 연의 방과 다른 점은 상당히 밝은 등이 천장에서 빛이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 일어났는지 다른 시종들의 도움으로 격식을 갖춘 차림으로 변한 연은 주변에 서있던 시종들에게 말했다.
" 화도 어느정도 꾸며주거라. 하급 귀족의 여식 정도로. "
시종의 신분이라곤 하나 가주의 앞에 나서는 것이니 보다 신경 써야할듯 싶어 내린 명령이었다. 본가에 오래 있기 싫었던 연은 본래 오후였던 약속 시간도 오전으로 당겨놓은 상태였다. 화의 준비가 끝나는대로 가족들이 모여있는 응접실로 향해 자신들을 부른 아버지의 저의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하녀장의 말에 그는 천천히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다. 물론 응접실로 향하는 길에 있는 모든 문들은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열렸기에 그렇게 신기할 일은 아닌듯했다. 단지 연이 머무는 저택에선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곳의 시종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연의 방에서 응접실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문 몇개를 지나자 금세 응접실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의 문이 열리자 먼저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중앙에 앉아있는 굳은 인상의 중년 남성. 그가 현재 목정 가를 이끄는 가주, 목정 강(木楨 强)이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 없어보이는 몸은 그가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중년의 여성은 연의 어머니인 유 화란(流 花蘭)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분위기 자체가 놀랍도록 유 화와 닮아있었다. 이제 막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기에 외모는 조금 빛이 바랜듯 했지만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상당한 미모를 자랑할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그의 큰형인 목정 윤(木楨 胤)이었다. 가주보다 더욱 큰 체격을 자랑하는 그는 옷을 입고 있음에도 근육질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부진 몸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아버지보다 더더욱 굳은 얼굴로 막 응접실에 들어온 연과 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의 건너편에는 반대로 조금 늘씬한 몸을 가진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의 이름은 목정 안(木楨 安)으로 가주의 자리를 이을 큰 형과는 다르게 목정 가문의 모든 생산품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그도 총괄의 위치에 있기 이전엔 무인이었기에 옷으로 가려진 몸은 분명 군살 하나 없이 근육이 보이는 몸일 것이 분명했다.
그의 여동생은 다른 가문에 시집을 가있는 상태라서 이곳엔 오지 않았기에 연의 아버지와 어머니,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연과 화라는 6명의 인원이 이제부터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작은 형인 안은 연을 불쌍하게 여겨 어릴적부터 잘 챙겨주는 편이었고 지금도 굳은 표정의 두 사람과는 다르게 옅은 미소를 지은채로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연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는데, 다른 두 사람의 표정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른듯 했다.
" 목정 가의 삼남, 목정 연이 아버님을 뵙니다. "
연은 들어가자마자 허리를 깊이 숙이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선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자신을 이곳까지 부른 이유가 무엇일지 아직까지도 생각하는지 그의 눈동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큰 형을 빠르게 왕복하고 있었다. 연이 자리에 앉자 그의 아버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구나. " " 저는 밤에 깨어있으니까 아무래도 자주 뵈러오긴 힘이 듭니다. " " 그렇겠지. 그러라고 널 그렇게 만들었으니. "
자신의 자식에게 그런 몹쓸 저주를 계승하게 만들어놓고선 그의 아버지는 표정 하나 바뀌는 것 없이 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연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듯 했으나 옆에 있던 그의 어머니의 표정은 살짝 더 굳어가고 있었다.
푸하! 쓰다보니 좀 길어졌다... 원래 아래쪽으로 내용을 좀 더 쓸까했는데 너무 길어질까봐 일단 잘랐어! 유화랑은 대화가 안이어질것 같긴하니까 개인적인 생각을 쓰게 되려나 ... 응접실 들어올땐 유화도 인사를 해야하니까 그 부분에서 대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 다음부턴 조금씩 대화가 될 것 같으니까 ... 흑흑 미안해 너무 과몰입했나봐!! 그래도 맘에 들었으면 좋겠당 ... (쭈글)
갱신이야. ..(너덜너덜) 주말인데 내 자유는 어디갔을까.. .X□ 답레 찌고싶은데~~~~ 짬짬이 가족모임 레스 읽으면서 액정이나 핥고있어...8ㅁ8) 글고 궁금한게 가주나 형님이 그 자리에서 유화가 앉는 것도 있을까?(갸웃) 아님 유화는 연이 뒤에 시립해 있거나 하는 게 신분상 어울릴까?:3c
액정을 핥는다니 ㅋㅋㅋㅋ 주말인데 자유가 어디로 가버린거야!! 8ㅁ8) 그리고 유화 앉는 것도 생각해둔게 있지! 유화가 스스로 앉으면 불호령이 떨어질거고 그걸 연이가 방어하거나 혹은 유화가 앉지 않으면 연이가 자리에 앉으라고하고 거기서 또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그럴로 또 갈등을 일으키고! 시나리오 생각해둔게 있었어~~
초코릿은 실로 주술 같은 음식이었다.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희미한 미소가 고작이던 그가 그걸 먹자 그늘진 데 없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으니, 행복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다. 아라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그럼 그가 웃을 일이 늘어났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드시거나 희가 먹을 기회를 얻었을 수도 있고.
그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은 평온한 것이었다. 지압을 해도 되겠냐 청하자 그가 무릎베개를 하고자 해서 더더욱. 너무 높거나 낮진 않도록, 무릎뼈에 배기지 않도록 주의하며 지압을 하는 동안 그는 몽롱해진 듯 선잠이 들었다 깨길 반복하더니, 이윽고 조금은 편안한 얼굴로 잠들었다. 워낙 푹 자지 못하는 사람이라 오래지는 않았으나, 고통도 시름도 잊은 듯 무방비한 표정과 고른 숨결은 폭풍 전야 같은 시간의 빛깔을 바꾸어 주기엔 충분했다. 아마 이 시간이 유화에겐 목정가 종가宗家에서 벌어질 일을 견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햇빛을 철저히 차단한 게 무색하게 천장에 대낮의 해 같은 불이 켜져 있으니, 시간이 짐작도 안 가는 가운데 멍했다. 종가의 사람들은 그와는 달리 낮밤이 바뀌지 않았을 테니 낮이리라고 짐작할 뿐. 어쩌면 낮에 쉬고 밤에 일하는 생활에 그새 익숙해져 더 정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건강한 자신도 이럴 정도니 몸이 약한 그는 더 힘들 텐데, 그는 시종들이 의관을 차려 입히고 단장하는 내내 피곤한 내색이라곤 없었다. 어쩌면 태연스럽고 심상하게 보여야만 한다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는지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알아서 소세하고 적당한 차림새를 갖추려 했으나, 뜻밖에도 그가 유화를 하급 귀족 가문의 사람처럼 꾸미라는 명을 사용인들에게 전했다. 이 역시 그가 말한 '선수 치기'일까.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 예나 표할 수밖에 없었다.
"황감하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그를 따르려니, 닫혀 있던 문들은 그가 가까워지기 무섭게 열렸다. 처음엔 저절로 열리는 문으로 착각해 깜짝 놀랐으나, 슬쩍 곁눈질해 보니 사용인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의 기척이 가까워 오면 여는 눈치였다. 얼마나 문 너머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이런 대처를 다 할까. 완벽한 섬김의 대상이 되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던 그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가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와 유화는, 목정 가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에 이르렀다. 정면을 보면 시종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세라 내내 눈을 내리깐 채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석에 앉아 있는 건장한 체격에 엄격하게 굳은 얼굴의 중년 남성은 단연 눈에 띄었다. 만난 지 오래지 않았을 무렵의 그와 닮은 인상인 듯도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무감정해 보였다. 표정만 봐서는 동상이라고 해도 반쯤은 믿길 것 같다. 반면에 그 옆에 앉은 여성은, 차분한 표정이면서도 남성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연륜이 느껴지는 동시에 품위 있고 고운 외모였지만, 무감정보다는 우수에 젖어 있는 인상이었다. 한편, 그의 이복 형들로 추정되는 남성들은 얼굴까지는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내리깐 시야로도 둘 다 건장하고 균형 잡힌 체격이라는 점은 확연히 느껴졌다. 그 4명이 모인 자리의 공기는 숨소리 하나 새는 것도 꺼려지게 무거웠다. 책 잡힐 언행은 일절 안 해야 한다는 본능이 곤두섰다. 하여 상전을 뵌 하인의 예대로 양손을 허리춤에 모아 쥐고 무릎을 굽히며 쪼그려 앉았다.
" 가주와 부인과 도련님들을 뵙사옵니다. "
가주가 일어서도 좋노라 허락하기 전까지는 유화는 그 자세를 유지했을 것이다. 허락이 떨어져도 감사하다는 답부터 하고 일어서서는 그가 자리 잡고 앉은 근처에 시립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에게도 결코 달가울 수 없는 공간임은 역력히 느껴졌다. 상대가 아들인데도 다분히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인사도 놀랍지만, 대놓고 널 그렇게 만들었노라 말하면서도 태연스럽기만 하니 경악스럽다. 저게 가문의 나머지 일원을 위해 희생시킨 아들에게 보일 태도인가? 그는 무엇을 위해 피의 저주를 짊어진 거지? 피의 저주가 유柳가의 주술이라는 점과 해주법을 감추고 있는 주제에도 비감이 솟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응!! 문제없어 좋아좋아(꾸닥꾸닥) 지금 상황에 유화가 입대면 오히려 그림이 이상해지는걸~:3c 분위기 맛보기엔 충분해X9 유화는 유화대로 분위기 잘 보고있고 나도 팝(콘에)콜(라) 뇸뇸하면서 어제 액정 즐겁게 핥았다구~~☆★(붕붕) 게다가 네카 이미지 완전 귀엽다구!!! 특히 연이 표정이~~~ 유화를 예뻐해서 어쩔줄 모르는거 같으면서도 순둥하니 말 잘듣는 동생미 뿜뿜하는게X) 완전 사랑스러운걸~♥(콧김뿜뿜) 이렇게 힘내줬으니 유화가 입었을 법한 옷차림이라도 짤로 올려볼게!!!(콧노래)
제국이 생기기 전부터 영지에 여러 광산과 숲을 가지고 있던 목정 가문은 황가에 충성을 맹세한 뒤 그의 군대에 각종 무기를 공급하고 우수한 무관들을 양성하여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 목정 가문 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강을 영지 한가운데에 끼고 있는 양천 가문과 현재 제국의 남쪽에 위치하여 광활한 평야를 이용해 식량을 담당했던 천야 가문은 제국이 건국 되고나서 개국공신으로 인정 받아 황가 다음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 제국을 받치는 3개의 기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각의 분야에서 대부분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 가문은 제국의 활발했던 정복 전쟁이 끝나고선 자신들 간의 물 밑 암투로 그 노선을 바꾸었다. 대부분의 제국 시민들은 그들의 사이가 원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 가문의 내정이라면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고 있으니 그것 때문에 절 부르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무미건조한 가주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연 또한 무표정하게 가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피의 저주라는 것이 개인이 감당하기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터인데도 잔인하리만치 관심이 없는듯한 아버지의 모습에도 연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가주의 모습은 연이 밤새서 고민을 한 이유를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는듯 했다. 저주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막내 아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지는 사람이 어째서 그를 본가로 호출했는가, 그것은 단순히 안부나 묻자고 그러는것은 아닌듯 했다.
" 안본 사이에 상당히 건방져졌구나. " " 지금은 제가 자고 있을 시간입니다 형님. 형님도 자야할 시간에 깨어있다면 비슷하지 않으실런지요. "
가주의 오른쪽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가주보다 좀 더 젊어보이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연의 큰 형인 윤이었다. 연이 방으로 들어올때부터 무언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고 아버지에게 하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처음부터 지적으로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연도 그런 반응이 익숙한지 아버지를 대할때처럼 무표정을 유지한채 시선만 돌려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 본가에 머무는 사용인들중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본다면 미묘하면서도 강렬한 신경전에 식은 땀을 흘리면서 못본척 지나갔을 것이다.
" 내 옆에 앉거라. "
연은 가족들에게 향하던 시선을 화에게 돌려서 말했다. 화가 인사를 하였음에도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기에 보다못한 그의 어머니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그 이후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듯이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았기에 일부러 그녀를 자신의 옆에 앉게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정면에서 불호령이 날아왔다.
" 어딜 아랫것이 건방지게 주인과 나란히 앉으려드느냐!! "
가주는 무가를 이끄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큰소리를 내질렀다. 바로 옆에 있는 그의 어머니의 귀가 걱정될 정도로 큰소리였으나 부인은 아무 일도 아닌것처럼 얌전하게 앉아있을뿐이었다. 부인이 익숙한 것처럼 앉아있듯이 그의 아들들인 윤, 안, 연 3형제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앉아있을뿐이었다. 단지 그 불호령의 당사자인 연은 아버지의 외침에 어이가 없다는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이 자는 제 시종입니다. 아버지도 형님들도 주인이 아니지요. 그러하니 제가 그리하라고하면 따라야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 말하며 연은 화의 손을 끌어당겼다. 스스럼없이 손을 잡는 모습에 모두의 눈이 튀어나올듯이 커졌고 가주와 큰형은 마치 못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잔뜩 화난 표정을 지은채 연을 노려보았다. 화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옆에 앉히려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다시금 시선을 가족들에게 향했다. 일부러 이런 행동까지 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나올 얘기에 대해서 미리 선전포고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가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 네가 아라에서 온 공녀와 정을 나눈다는 얘기가 돌더구나. "
분명 방금의 행동이 자신을 도발하는 것임을 잘 알고있음에도 가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말했다. 애초에 정계에 몸 담다보면 이 정도의 말은 도발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연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가주의 말에 이어서 그의 큰형이 잠시 화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눈쌀을 찌푸리며 연을 바라보고선 말했다.
" 우리는 지체높은 목정 가문의 일원이다. 그것도 방계가 아니라 직계. 너의 그런 행동이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느냐? "
큰형의 지적은 가문의 관점에선 지극히 옳았다. 3가문이 암투를 벌이며 서로의 약점을 알아내고 그것을 이용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이런 연의 행동은 그 균형에 영향을 주는 행동이었다. 피의 저주라는 것이 이미 가문의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사실이 다른 가문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목정 가문은 다른 가문들에게 조금씩 밀려날 것이 뻔했다. 허나 지극히 옳은 말이라는 것은 예측하기 쉽다는 말이기도 했다.
" 저 대신 독을 먹고 죽다 살아난 사람입니다. 이 자가 없었더라면 제 나약한 몸은 해독제가 오는 것을 버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
저주로 인해서 잠도 제대로 못자는데다 온 몸이 약해져있는 연이 화 대신 그 독을 먹었다간 그 자리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거란 사실은 자명했다. 그랬기에 화의 행동은 가문 전체로 봤을때는 치하 받아야 마땅한 일이었음에도 이런 자리까지 오게 했다는 사실에 연은 속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 오히려 제 저택으로 독이 반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이곳의 사람들 아닙니까? 저는 그녀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
연은 나지막히 말하며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붉게 빛나는듯 했다. 마치 화와 처음 만났을때의 그 눈빛. 그가 말투와 다르게 상당히 화가 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을 마친 연은 한숨을 작게 내쉬고선 화쪽을 바라보았다. 무섭게 노려보는듯한 눈빛은 어디가고 평소 화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돌아온 그는 그녀만 들릴 수 있게 작게 속삭였다.
" 걱정하지말거라. 내가 지켜줄터이니. "
그리고서 다시금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결연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담판 짓고 갈 각오가 가득하게도 말이다.
후아 이번 것도 너무 길어졌다 ... 쓰면서도 계속 걱정이 되는게 너무 연이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거 아닌가 싶네 ... 너무 화가 주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네. 연이도 화도 둘 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말이야 ... 혹시 불편하면 꼭 말해줘! 이번 에피소드는 내가 나중에 독백으로 묶어서 올리는 방식으로 가도 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화가 입고 있는 옷 되게 이쁘다! 연이가 말만 안했지 되게 흡족하게 바라봤을 것 같아. 분명 고향에선 화도 귀한 자식이었을테니 이런걸 입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야. 최근에 소설을 좀 보고 있는데 여행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더라고! 연이가 몸만 정상이었어도 여행을 다녔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연이의 요양이라는 목적으로 좀 멀리 가볼까 하는데 어때?! 괜찮을까?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상전을 보고 예를 갖추어 인사하면 으레 일어서도 좋다는 허락 정도는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는 그런 의례적인 격식도, 아니, 유화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조차 무시되는 것 같았다. 부인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나머지는 그와 신경전을 벌이기 바빴다. 공자들이야 이복형이니 그럴 수도 있다 쳐도, 가주란 자는 가문의 모두를 위하느라 희생양이 되어 버린 친자식에게 어찌 저런 태도인지? 우리 가족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리 가족은 살림이 기울어 어려웠을지언정 서로의 존재를 희망 삼으며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힘든 일은 덜어 주고자 했는데. 서로가 굳이 시간 내어 마주할 사이냐는 듯 냉담한 그가 이해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돌연 그가 유화에게 눈길을 두더니, 스스럼없이 옆에 앉을 것을 권했다. 당혹해할 찰나 그야말로 벽력같은 대갈일성이 내실을 뒤흔들었다. 저들이 일어서도 좋다는 대꾸조차 않은 것은 사실이나, 법도를 따지고 들면 가주의 불호령에 틀린 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유화는 제 시종이라고 차게 대꾸했고, 손수 유화의 손을 잡아끌기까지 했다. 그 손길에서 느껴졌다. 창칼이나 주먹을 맞대지 않았을 뿐, 그는 지금 전투 태세다.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이대로 그가 이끄는 대로 앉아도 좋을 것인가? 그의 의도는 그러할 것이나, 시종이 상전과 나란히 앉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다. 그가 법도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두는 것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다고 법도에 따라 이대로 꿇어 있으면? 그걸로 그의 면을 세울 수 있는가? 역으로 상전의 명을 보란듯이 거스르며 제 뜻을 관철하려 든다는 혐의가 생기진 않는가? 그렇게 복잡하여 그에게
"황감하옵니다."
하고 일어서면서도 앉는 대신 그의 옆에 시립하며 멈추었다. 표정 변화가 드러나면 큰일이라 고개 숙이고 눈을 내리깐 채 평정을 가장했다.
그러자 그가 전날 미리 언질해 주었던, 가주의 진짜 용건이 내실을 울렸다. 유화는 속입술을 잘근 물었다. 이래서 그가 여기에서는 그 소문을 기정사실화하고자 한 것이겠지. 해코지해도 되는 그저 아랫것이 아니라고 못박을 심산으로. 그의 변호를 들을수록 가슴이 아렸다. 이 정도로 험악해질 걸 각오하고서 벌인 일 아닌가. 그토록 결연한 마음으로 몇날 며칠을 고민했을 그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자신을 신뢰한다고 단호히 말하는 그를, 지켜 주겠노라 속삭이는 그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가장 본질적인 고통을, 원인과 벗어날 방법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다. 그런 나를 위하느라 그가 가족들과 척지는 건 두고 보지 못하겠다. 겉보기엔 남보다 못한 가족 같을지라도, 남은 생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존재들 아닌가.
하여 유화는 희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꿇어 머리를 조아렸다.
"아랫것이 말씀 도중 끼어드는 것은 죽을 죄이나 감히 아뢰겠사옵니다. 도련님께선 아랫것까지 너그러이 살펴주셨기에 소인 역시 아랫것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 다른 일은 없사옵니다. 부디 깊이 상량하시어 침소봉대에 흔들리지 말아 주시옵고, 주인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소인이 받들어야 할 분부가 있다면 내려 주시옵소서!"
가주와 공자들의 태도로 보아 이 발언이 기껍게 받아들여지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이 자리에서 자진하라는 명이 떨어질지도. 그럴지라도.. . 각오는 되었다. 손이 떨리는 듯해 바닥을 힘주어 짚었다. 이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므로
아유 아냐아냐!!(절레절레) 전에도 말했던거같지만 제국에서, 연이네 저택에서, 목정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연이 이야기가 많이 비춰지는게 당연한걸:3c 그러거나 말거나 유화는 상황에 맞춰 반응할수있으니까 걱정ㄴㄴ야(부둥부둥) 당장 지금도 유화가 멋대로 나서버렸잖아:> 오히려 연이가 애쓰는걸 훼방놔버린건 아닌지 걱정이야(먼눈) 글고 의상이 맘에 들었다니 기분좋당X) 저 드라마 착장이 디자인은 안 화려해도 은은하게 이쁘더라고~ (히죽) 요양하기 위해 기후가 온화한 지역으로 가는거 좋다좋다!!:▷ 옛날에 요양하면 온천이었던거 같으니 기왕 가는거 온천여행 어때?(설레발) 이동이며 활동은 한밤중에만 가능하겠지만.. .:( 암튼 월요일 새벽부터 장문으로 이어주느라 고생많았어!!X9 답레내용 그대로 가는게 곤란하면 편하게 말해줘~☆★(붕붕)
그가 저주를 받기 전, 그러니까 어릴적엔 분위기가 이렇지만은 않았다. 비록 형들과 나이차이가 꽤 나고 있었지만 연이 형들을 꽤나 잘 따랐고 어머니의 유한 성격을 물려받아 밝은 성격이었던 그는 여동생을 아끼며 큰 형을 위해 가문을 지탱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허나 당숙의 건강이 나날이 안좋아지고 있었기에 결국 누군가는 그 짐을 짊어져야한다는 사실을 그가 좀 더 자랐을때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깨달아버렸다. 형님들은 가문을 이끌어야하고 여동생은 그 저주를 견디기엔 갸날프고 소중하니 결국 그것을 감내해야하는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가문의 이해관계과 맞아떨어져 그가 저주를 짊어지게 된 것이었다.
" 애초에 네가 사는 저택이다. 우리가 병사를 파견해준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은 네가 아니냐. " " 목적부터가 절 경호하기 위해 파견하시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
아니, 반쯤은 그 목적이 맞을터였다. 하지만 나머지 반이 연을 감시하려는 목적이었기에 그가 거절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저주를 받아내는 핵심인 그가 본가에서 나와있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오히려 본가 깊숙한 곳에 꽁꽁 숨긴채로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더욱 맞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연은 저택의 그 숨막히는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저주를 받아내기 전에도 어렴풋이 느끼던 것을 저주를 받고서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저택을 나왔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였고 그것을 종식시켜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가족들 앞에서 눈물로 호소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본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통제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 어찌됐던 저택은 제 관할이고 제가 곁에 둘 이는 신경 쓰실 일이 아닙.. "
연은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어젯밤에 도착한 것도 약속시간이 오전이었기 때문이었을뿐. 만약 밤에 만나자는 약속이었다면 그는 그냥 해질녘즈음 출발하여 본가에 갔을 것이었다. 지금 이 자리도 그에게는 거북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여기까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은 이미 자신들의 의견은 정해두고 통보만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을 정해 그냥 끊어내고 대화를 마칠 생각이었다. 허나 그 생각은 옆에서 들려온 화의 목소리에 산산히 깨져버렸다. 분부가 있으면 내려달라는 말. 그 말을 듣고서 자신의 가족들이 어떤 말을 할지는 너무나도 뻔했기에 그는 재빠르게 먼저 말을 꺼내려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먼저 나온 가주의 말에 단단히 막혀버렸다.
" 재밌구나. 그럼 자진해라. "
가주는 품 속에서 단검을 화의 앞에 던졌다. 단검치곤 큰 크기였지만 목정 가의 가주라는 신분에 있는 사람이 들고 다닐만한 종류의 무장은 아니었다. 애초에 장식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무채색인 것을 보면 군납품 중에 하나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자리의 목적은 가주가 던진 단검 하나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날카롭게 벼린 것이다. 검집에서 뽑으면 독까지 발릴 수 있는 최신품이지. 아무 곳이나 찔러도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
결국 저주에 걸렸더라도 목정 가문의 정통성을 잇는 직계였기에 조금의 오점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가주의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통제하에 두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게 한다. 그것에 능했기에 가주가 되었고 피의 저주라는 큰 약점을 가지고도 가문간의 삼파전에서 절대 밀리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가 연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미모의 여식들을 몇번이고 보냈음에도 내쳤던게 연이었다. 그러하니 이번에도 그저 변덕에 불과하다고, 금방 식어버릴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답레가 너무 늦어버렸다!! 평일에 너무 바빴는데 어제도 출근한다고 시간이 없었다 ... (운다) 너무 많이 기다린게 아닐까싶네 ... 그래도 이번엔 갈등이 좀 고조되게 해봤어! 자진하라는 말을 하긴 했는데 어떻게든 연이가 막을테니까 반응은 자유롭게 주면 될 것 같아! ><
온천 좋다!! 밤에만 이동하는 것도 꽤나 고된 일이겠지만 ... 막상 도착하면 되게 잘 놀 것 같으니까! 유화도 온천에서 즐기면 좋을 것 같고~ 같이 목욕을 ... 하게 될련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온천 말고도 주변의 유명한 요리 같은 것도 먹으러 다니면 되게 재밌을 것 같네! 이번엔 좀 무거운 분위기니까 다음 일상은 밝게밝게 그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일어나라는 말이었어도 그보다 더 예사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은 명. 바닥에 단단한 것이 부딪는 소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닥에 머리를 박아 보이는 게 없어도,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만했기에. 하물며 목정 가의 가주가 던진 물건에 대해 친절히도 설명까지 덧붙였음에랴.
파르르 떨리는 손을 옥쥐었다. 이 자리에서 죽으라. 제 아들, 아니, 가문의 일원에 대한 뒷말이 나돌게 하느니 사용인을 죽이겠다. 편리한 발상이다. 허나 어리석은 발상이기도 하다. 그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감행하면 그의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해 봤을지? 그가 사별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는 점을 알고는 있는지?
이를 악물다 깨달았다. 이 상황에 이른 건, 가주가 그의 눈앞에서 일을 벌여서 좋을 게 없다는 점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는 내내 그를 따라다녀서일지도. 그렇다면, 그가 저에게서 떨어지지 말라 신신당부한 까닭 역시 쥐도 새도 모르게 불려가 죽을까 저어해서겠다. 최선을 다한 탓에 최악의 결과를 맞은 셈이다.
씁쓸해져 몸을 일으켰다. 칙칙한 색상에 장식 하나 없는 단검이 바로 앞에 팽개쳐져 있었다. 순간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조소가 올라왔다. 이 칼을 뽑아서 가주를 찌르려 들거나, 가주에게 던져 버린다면, 저 자들이 훨씬 수월해지리라. 그와의 사이가 악화되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겠지. 그가 남은 생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족들을 지키고자 했음을 생각하면, 또 되든 안 되든 우리 가문의 원한을 갚으려는 시도조차 해 보고자 한다면, 그 편이 옳겠으나ㅡ
떨리는 손으로 칼을 쥐었다.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그런 명분을 내어 줬다간 필경 내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이니.
한편으론.. .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는 것이, 어쩌면 목정 가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피의 저주의 해주법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하는 눈치이니, 그만큼 해주법이 유출될 위험도 줄지 않겠는가. 하여 칼을 뽑았다. 가능한 한 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싶었다.
"대외적으로는 도련님 대신 독을 먹은 후유증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처리해 주시옵소서. 도련님께 추문이 일까 자진시킨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것이옵니다."
충분히 덤덤한 목소리였는지? 거기까진 모르겠다. 그가 어쩌고 있을지도 보지 않고자 칼날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도 날 아니 보길, 그의 아픔을 덜어 줄 방도를 택하진 않을 것이니. 그렇게 칼을 제 가슴에 겨누고는, 이 악물고 찌르려 했다. 숨 막히도록 몸을 찢는 격통과 아뜩해지는 정신은 착각일지 현실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피곤하면 쉬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말라구~~ 근데 너무 일상만 이어가면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잡담도 좀 할까 싶어! 내가 예전에 다리를 심하게 다친적이 있어서 그게 계속 말썽인거야 ... 그니까 유화주는 꼭 건강해야해!!!
처음에 저주를 받을땐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거지! 형님들은 가문을 이끌어가야하고 여동생에게 저주를 넘겨주기엔 싫었으니까 결국 자기가 해야한다고. 그렇게 저주를 받았는데 어린 나이엔 감당하기 힘들고 본가에선 과보호와 감시를 하고 있으니 더더욱 지쳐갔던거지. 그래서 자신을 별장으로 쓰던 저택으로 보내달라! 했던거고 거기서 가족들과도 엄청 싸웠다가 어머니와 작은형의 도움으로 겨우 독립하게 된거야 :3 그래서 가족들을 소중히 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쳐있는 상태고 ... 본가에 오라는 말을 들었을때의 반응도 그때의 연장선!
헉 깜깜해진 주변에서 들리는건 물이 흐르는 소리 뿐인데 갑자기 불꽃놀이가 시작되면서 둘 다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이 나가는걸까 :3 너무 좋아~~ 거기서 슬쩍 손이라도 잡으면~~~ 이거거든~~
으에에에:P 나도 절찬리에 갈리고있어 어엉(대성통곡) 어젠 잘 쉬었나 모르겠다 잡담도 좋지 일상 이을때 깜박하고 못넣은 부분을 나중에 채울수도 있고!!X9 난 일상이든 잡담이든 편할때 이으면 된다파니까 내키는대로 해줘(붕붕) 근데 얼마나 심하게 다쳤으면 후유증이 그렇게 오래가8ㅁ8) 조심조심 다녀야겠다.. .
요약하면 '인생은 실전이야 연아'일까?(먼눈) 각오했지만 각오보다 더 빡셌구나. ..:( 작은형은 그렇다쳐도 어머니는 얼마나 맴찢이었을까(울망) 유화와 목정가가 화해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연이는 가족들이랑 화해하면 좋겠다!!:3c
꺄꺄XD 달달한 분위기에 그림 완전 이쁘겠다!!! 불꽃에 넋 나가있다가 손 잡혀서 정신차리면서부터는 불꽃이 눈에 안들어오고 두근거리다가 결국 마주잡는식~~☆★(설레발) 클리셰라도 좋아X3 나 여기 묻힐래~~~(굴파기)
묵직한 것이 바닥에 떨어져 쓸려가는 소리. 그와 동시에 가문의 가주 자리에 앉아있는 그의 아버지가 어떤 말을 했는지 연은 똑똑히 들어버렸다. 그저 자신이 더욱 아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진하라는 것인가? 연은 지금 저들의 행동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저주를 받은지 십수년이 지난 마당에 이제야 좀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상대를 찾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화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은 확신이 될 수는 없었다. 그야 화와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차이를 남이 이용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가족일지라도.
"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거라! "
연은 화의 말에 그녀의 손에 있던 칼을 힘껏 낚아채면서 말했다. 말투는 화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 방향성이 어디인지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를리 없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저주로 쇠약해진 몸임에도 그의 움직임엔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다만 너무 급하게 움직인 모양인지 일어나면서 발을 삐끗한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화에게서 뺏어든 단검을 손에 쥔 연은 중앙에 서서 가족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 아버지는 항상 그런식이었습니다. "
목정 가문을 이끌어가야한다는 부담감, 사명감 같은 것은 잘 몰랐다. 그야 그는 어쨌든 두번째 부인의 소생이고 삼남일녀 중에 삼남이었다. 거기에 지금의 가주는 쓸데없는 분란을 막기 위해서 이미 큰아들을 후계로 점찍어두고 다른 자식들에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가주의 자리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고 큰형님들 곁에서 잘 보좌해야겠다는 생각만 들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큰 형은 차기 가주 자리에 어울릴만큼 카리스마 있고 무력도 강한 사람이었다.
" 가문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정녕 옳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 " 네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목정 가문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 이런 빌어먹을 저주까지 포함해서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
연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자 그의 아버지는 대꾸 없이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의 아버지는 이런식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면서 제압하려고 했었다. 타고난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가주의 자리에서 갈고 닦은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았을때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연 또한 그렇게 바라보던 눈빛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거나 아버지의 요구를 수락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 분노를 오롯이 뱉어내고 있었다.
" 고작 공녀일뿐이다. 저것보다 더 차고 넘치는 사람은 많다. "
저주에 시달리고 있을뿐 연은 목정 가의 삼남이었다. 그러니 혼담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주는 가문의 치부와도 같은 것, 건강상의 이유로 모든 혼담을 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정 가를 모시는 입장인 가문들은 엄청나게 많았고 그 중에선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미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하니 그들 중에 하나를 연의 옆에 붙이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허나 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더욱 분노하며 말했다.
"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을 데려와도 절대 불가능합니다. " " 그만해라! 이미 다 큰줄 알았더니 아직도 어린애처럼 징징대는구나. " " 아직도 어린 아이의 징징거림으로 보이시나 봅니다. "
연은 아버지의 말에 헛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앞에 있던 탁상에 손을 올려두고선 들고 있던 단검으로 올려놓은 손을 찍어내렸다. 어찌나 강한 힘이었는지 손을 관통하고 탁상에 어느 정도 박혀들어간 단검을 보며 연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 독이 묻어있다 하셨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전 죽겠네요. 절 살리려고 하셔도 안됩니다. 저는 어떻게든 죽을테니까요. 그럼 다음 저주는 누가 받으실꺼죠? 큰형님? 작은형님? 아니면 월아? 그것도 아니라면 형님들의 자식들? "
화를 해코지하려 했으니 당신들도 한번 비슷한 느낌을 받아보란 의도였다. 자신이 죽으면 저주는 필시 다른 이들에게 옮겨갈테고 그렇다면 저주를 묶어둘 사람이 또 하나 필요할테니까. 저주는 필시 직계만이 이어받을 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묻어있는 독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으나 군용품에 발려있는 독이라면 그렇게 강한 독은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깊숙히 박힌 단검 때문에 독이 전신에 퍼지는 시간은 정말 빠를터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지 그의 작은 형은 재빠르게 어딘가에 지시를 내리고선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 연아, 어머니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님도 형님도 그만하시지요. "
지금까지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그의 작은 형은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중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저주를 받아야하는 것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일까 아니면 연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말에 경직되어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풀리는 느낌이었다. 본래의 성격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어릴적부터 연을 잘 챙겨주었다니 본인의 성격에 좀 더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의 작은 형, 목정 안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번에는 아무래도 연이를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우리가 쥐고 있는 카드부터가 너무 적습니다 아버님. " " 너는 가문의 명예가 실추 되어도 상관 없다는 얘기냐? " " 저주 자체가 가문의 약점이나 다를바 없고 그것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연이입니다. 오롯이 저주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가문에 헌신하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 정도는 허락해주셔도 무방하지 않으실런지요? " " 그것은 휘도 하던 일이다. 그런 것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기엔 부족 ... " " 연이는 당숙이 아닙니다. 거기에 당숙께서 후회에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가셨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
거기서 대화가 멈췄다. 그의 아버지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작은 아들과 막내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금의 상황이 자신의 맘에 전혀 들지 않는 것이겠지.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안의 말 또한 틀린 것은 없었기에 갈등하고 있는 것이었다.
헉 이번에도 엄청 길어졌다! 슬슬 상황이 끝나갈 것 같아~~ 아마 유화주 답레를 받고나서 그 다음 것으로 지금 이 논쟁은 끝나지 않을까? 손등을 칼로 관통시키는건 쓰면서 너무한가 싶었지만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했고 ... 그래도 왼손이니까 일상 생활엔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아무래도 연이가 가족들이랑 화해하기엔 너무 힘들지 않을까 ... 화에게 자진하라는 말까지 한데다 정이라곤 거의 주질 않았으니까. 그래도 나~중에 화랑 더 가까워지고 화가 좀 더 권하거나 그러면 화해하는 척 정도는 할지도 모르지! 절대 당신들이 좋아서 그러는게 아니라 화가 하라고 해서 하는거니까요, 같은 느낌?
원래 손 마주잡았다가 바로 입맞춤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뱃놀이 할때쯤엔 그런 관계까진 안갔을테니까 손만 잡아도 너무 두근포카할 것 같아!! 하 정말 유화 최고다 ... 내 지친 삶을 견인하는건 역시 유화랑 유화주라니까 ... 안그랬으면 너무 힘들었을꺼야
이리 끝날 줄 알았다면 공녀로 바쳐지기 전에 자진할걸. 그를 모른 채 죽었더라면, 그를 평생 갉아먹는 저주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그가 사별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몰랐더라면, 지금보단 후련하게 끝났을 텐데. 터무니없는 후회이다. 공녀로 바쳐지기 전에 자진했다면 꼼짝없이 희가 볼모로 잡혔을 것이고 부모님께도 화가 미쳤을 테니. 이렇게 흘러올 수밖에 없었던 게지. 그래도 그 질척한 흐름도 이제는 끝임을 위안 삼으며 고통이 짧기나 기원했다.
그 순간, 손아귀가 허전해졌다. 벌어져 버린 손이 욱신하고 저렸다. 노여움 가득한 고함. 어느새 칼은 그에게 들려 있었다. 얼이 나간 사이 그가 목정가의 가주이자 본인의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피의 저주를 홀로 떠안으며 쌓여 왔던 울분을 터뜨리면서. 이 상황에 날 감싸고자 가족과 맞서면 어찌하는가. 내가 자진하려던 까닭엔 당신에게 해주법을 알리지 않겠다는 흑심도 있건만. 가슴이 아리고 답답한데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분노를 쏟아붓는 동안, 목정가의 가주는 차갑고 위압적인 시선으로 이쪽을 쏘아볼 뿐이었다. 격정과 침묵이 지나가고서야 목정가의 가주는 무미건조하게 내뱉었다.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정확한 말이었다. 그리 긴 인연도 아니었으니. 그러나 그의 노여움은 더욱 불타올랐다. 이럴 가치가 있는 일인가? 죽는 데 꼭 흉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장 바닥에 머리를 짓찧어서라도.. ..
그때 소름끼치는 기척이 났다. 다음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련님!!!!"
독 묻은 칼로 제 손을 찌르다니. 이 무슨 짓인가! 그도 모자라 그는 저가 죽으면 저주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가족들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정말로 목숨을 버리려는지? 황급히 일어서 그를 만류했다.
"고정하시옵소서. 이러시면 아니되시옵니다."
섬뜩하게 박히다시피 한 칼. 관통당한 상처 둘레로 핏물이 발갛게 비친다. 이대로 뽑으면 출혈이 심할 것이다. 독도 문제다. 유화는 다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의원을 불러 주시옵소서! 속히 조치하셔야 하옵니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돼 버렸는지. 숨이 막히고 몸이 벌벌 떨렸다. 어서 조치하지 않으면.. .!!
그런 유화에게 다행인 일은, 연의 작은형이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리고 상황을 중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리라. 연이 진정 죽기를 각오했고 그가 사망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피의 저주가 돌아가는 한, 목정가의 가주가 연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연의 작은형도 그런 상황임을 파악했기에 구색 맞추기로나마 '가주의 허락'을 이끌어 내 상황을 풀어 가려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연의 작은형이 협상을 시도하는 사이에도 시시각각 독은 퍼져 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유화의 속도 바짝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작은형 정도말고는 정이 없구나8ㅁ8) 냉랭한거 같아도 사실은 일가친척에게 애정이든 애증이든 있어서 저주를 떠안은줄 알았지 뭐야?(훌찌럭) 정이 있지만 티를 못내는거면 모를까 아예 질색하는 사이면 유화도 화해하라고 권하지못할거야X6 그런사이를 억지로 좁히라는것도 상대를 괴롭히는거일수 있으니까 말야(절레절레)
현생에 시달리다 너무 늦게 이어버렸다.. .(떨썩)(통곡) 많이 기다렸지? 미안X□ 이제 슬슬 상황이 수습될까?(초롱) 근데 연이가 손을 심하게다쳐서 괜찮을지 모르겠다>:( 관통상이라니 상상만 해도 내가 다 아파. ..(바들바들) 돌아갈땐 평화롭자~~X(
원래는 자신이 큰형은 가주고 작은 형은 큰 형을 보필해야하니까 저주는 내가 맡아야지! 하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의 대우에도 짜증나고 그래서 점점 멀어지게 된거지. 그나마 잘 챙겨주는 작은 형이나 친하게 지냈던 여동생이 있으니까 가문을 버릴수가 없는거고 ... 거기에 또 자기 조카들은 엄청 아끼거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나도 늦으면 일주일씩 걸려서 답레 가져오는데 뭐! 현생이 중요한거지 이건 느긋하게 해도 되는거니까~ 이제 슬슬 수습할 예정이야! 너무 딥다크하게 들어갔더니 나도 같이 멘탈이 갈리는 느낌이기도 하고 해서 ... 생각보다 몰입이 잘되더라고. 돌아갈땐 손이 좀 아프겠지만~~ 그나마 왼손이라 일할땐 지장 없다는게 다행이려나. 밥 먹기엔 좀 힘들테니 유화가 먹여주는건가! (기대)
사명감만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일 같다...8ㅁ8) 햇빛보면 살타지 흡혈욕구 생기지 잠못자지...(울망)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삶이잖아X( 근데 가족들이 챙겨주지도 않으면 서럽겠다!!(버럭) 조카바보 연이 귀엽다:D 조카들이랑 어울려노는것도 기대되는데(활짝) 연이네 아버진 일부러 연이한테 정을 안줬던걸까?>:3 저주를 받을 예정인 자식한테 정 쏟으면 마음이 아파서?(긁적)
맞아맞아!!:6 시리어스다크도 나름 맛있지만 그런점땜에 오래하긴 기빨려(피오오오) 밥 먹여주는거 좋다!!XD 풋풋하고 귀엽고 따수운 분위기일거 같애(설레발) 그거말고도 양손 다 써야할 일은 유화가 도울수있으면 좋겠다~☆★ ;)
시야가 흐릿하다. 깊숙하게 박혔기 때문일까 단검에 발려있던 독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숨을 쉬는 것도 강하게 의식해야지만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일까. 연은 언제나 이 빌어먹을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을 꿈꾸고 있었기에 고통 속에서도 작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흐려져가는 시야 속에서 보이는 것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유화의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달라고 외치는 목소리. 분명 연은 화에게 지켜주겠노라 말했다. 분명 이 자리에서 그녀를 지키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 다음은? 그가 죽고나서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는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혹하게 질 것이 분명했다. 지켜주겠노라 했는데 결국 자신만이 해방되고 그녀를 지킬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 ... ㅇㅏㄴ.. 돼 ... "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어떻게든 그녀를 향해 뻗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됐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언제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엄청난 후회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혀놓는다. 뒤늦게 단검을 뽑아내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는 몸이 단단하게 박힌 것을 뽑아낼 수 있을리 만무했다.
" 해독제 가져왔습니다! "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여러 인원이 순식간에 들어와 연의 몸을 감쌌다. 해독제는 가루 같은 형태와 액상 형태 2가지가 있었는데 가루 형태는 단검이 박혀있는 손에 뿌리고 액상 형태는 힘이 다 빠진 연의 목 안으로 강제로 넘겼다. 그리고선 단검을 조심스럽게 뽑아내는데 손에서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 뒤에 단검이 박힌 부분만 잘라내어 손에 단검이 박힌채로 들것에 실었다.
" 최대한 서둘러야한다. "
안은 들어온 부하들에게 그리 일러두고선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를 계속했다.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연의 편에 서주기로 한 것 같았다. 그의 큰 형은 연이 단검을 손에 박아내린 시점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감은채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연이 들것에 실려나가고 연의 어미니인 화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런 행동에 대화를 나누던 가주와 안도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 당신이 ... 우리 연이 옆에 있어주세요. "
작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얘기한 그녀는 엎드려있던 화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선 연이 실려나간 문쪽으로 손수 바래다주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맞잡은 손엔 무수히 많은 감정이 실려있는듯 했다. 그렇게 문 앞까지 화를 데려다준 화란은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단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기 시작했다.
드디어 상황 끝! 아마 다음이나 다다음으로 막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연이는 수술을 받게 될테고 ... 아마 왼손은 후유증이 남을지도 몰라! 이번에 죽음에 대한 후회를 처음으로 느껴본 연이니까 태도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고~~ 연이 아버지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서 ... 두번째 결혼도 완전 정치적인 이유니까 말이야. 아마 연이부턴 딱히 정이 없을꺼야.
목욕 시중은 들어주는 사람들 있으니까 아마 화는 안할것 같고 글을 읽고 쓸줄 아니까 서류 작업을 도와준다던가 하는 것도 가능하겠네! 앞으로는 옷도 시종 옷이 아니라 다른거 입으라고 할지도 모르고 ... 그랬을때 유화 반응이 궁금하긴하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러는 동안에도 그의 몸에 독이 퍼지고 있을 터라 촌각이 급하건만 누가 드나드는 기척은 안 난다. 그가 지나가려고만 해도 알아서 문을 열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던 사용인들은 어쩌고 이토록 지체되는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신음에 가깝게 흐릿한 말소리에 고개가 들렸다. 그새 푸르스름해진 낯빛으로 그가 팔을 뻗으려 애쓰고 있었다.
"도련님!!"
반사적으로 일어서 그 머리나마 품에 받치고자 했다. 그러나 이대론 치료는커녕 고통이 덜어지지도 않는다. 대체 의원은 왜 이리도 더딜까!
그때 해독제를 가져왔다는 보고와 함께 여러 명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방해가 될세라 화급히 물러섰다. 사람들에 가려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는지까지 제대로 보진 못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가 들것에 실렸다. 그의 손이 단검과 함께 박혀 버린 탁자의 일부분이 함께 실렸고, 상처 부위엔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독이 퍼지는 걸 해독제로 늦추고 단검을 뽑는 건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의원에서 하려는 것 같다. 부디 늦지 않길.
기원은 하나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저 바라보던 중 그의 작은형이 부하들을 재촉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허락 없이 일어서 버린 격. 다시 꿇어 엎드렸으나 체념이 번졌다. 바로 전에 자진을 명했던 자들에게 빌미를 제대로 제공해 버렸으니, 살아남기는 어려울 성싶다.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죽음은 면할 수 없다 해도 그의 경과는 확인할 수 있었으면.
그런데 죽으라는 명 대신 치맛자락이 가볍게 스치는 듯한 기척이 다가왔다. 뒤이어 여태 들리지 않았던, 부인의 조심스럽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심지어 경어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사이 부인이 유화를 일으키려는 듯 손을 잡으며 위로 당겼다. 그리고 유화가 일어나자 그가 실려간 문으로 이끌었다. 더는 말하지 않고 앞만 보는 모습에서 기품과 결연함이 느껴졌다. 지극히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였으나, 애끊는 감정과 눈물을 애써 삭이고 있는 것도 같다. 그의 경과를 확인할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고프면서도 심란했다. 그토록 애달픈 아들이면, 본인이 가고도 싶을 텐데, 나를 대신 보내려는구나. 나를 그의 곁에 있을 만한 사람으로 보는구나. 내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없는 신뢰 아닌지. 그랬기에 문을 나서기 전, 부인에게 무릎 굽혀 예를 올리면서는
"송구하옵니다."
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그를 옮기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그가 옮겨진 곳으로 가기 위해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유화가 죽을고비에서 연이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거처럼 연이도 유화 생각하며 살려는 의지를 품었구나!!(초롱) 이렇게 조각이 맞춰지네XD 연주 굉장해!!(야광봉) 후유증 가라앉을때까지 유화가 서류작업이든 식사든 잘 챙겨야겠다!!<:3 근데 암만 정략결혼이라도 자식인데 정이 없다니 목정가 가주 너무 비정하다!!!(버럭) 연이가 다른옷 입으랄때의 반응은 그때 풀어볼게~~:9
처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들것은 빠르게 의원들이 대기중인 장소로 옮겨졌고 해독제는 애초에 그들이 개발한 독이었으니 작용도 빨라서 창백했던 낯빛은 원래의 색깔로 돌아오고 있었다. 연은 그때까지도 의식이 있었지만 몸을 꼼짝할 수가 없어서 그저 멍하니 누워있기만 할 수 있었다. 아니, 고통이 몰려와서 그것을 참아내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의원들은 연에게 무언가를 먹이고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연은 자신의 의식이 조금씩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에 들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선 잠시 뒤에 자신의 왼손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 윽 ... 으윽 ... "
정신이 화들짝 들어 움직일 수 있을 법도 한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고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손을 무언가가 둘둘 감싸는 것만 다시금 느껴졌다. 그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생각하다가 자신이 박아넣은 단검이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왼손은 평생 제대로 쓰지 못하는걸까.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이윽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본가에 왔을때 사용하는 그 방에 누워있었다. 살짝 두통이 몰려와 머리를 만지기 위해 손을 들었을때 손부터 팔까지 붕대에 동동매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침대 옆에는 처치에 필요한 많은 의료기기들이 놓여있었는데 여기서도 계속해서 치료를 하고 있었던것 같았다. 이렇게 깨어났다는 것은 몸이 조금은 회복했다는 것일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으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해독은 꽤 빠르게 되었지만 그동안 몸이 영향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몸이 약해져버린 것이다.
" 영 꼴이 말이 아니구나. "
작게 기침을 하며 중얼거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를 찾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되고나서 화는 어떻게 됐을까. 문득 의식을 잃기 전에 화의 모습을 본 것만 같기도 했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했으니 가문에선 화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잘못 됐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눈 앞에 보이지 않으니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 화야, 거기 있느냐? "
자신의 방 옆에 딸려있는 작은 방에서 그녀를 머물도록 했었다. 그리고 이곳에선 자신의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으니 있다면 거기에 있을거란 생각에 작은 목소리로 불러본 것이다.
주말이 끝나버렸다 ... 난 어제 하루종일 출근해서 주말이 하루 같아 (운다) 유화주는 잘 보냈을까? 하 진짜 너무 바빠서 혐생이라니까 ... 일어났을때 유화가 바로 옆에 있을것 같긴했는데 딱 옆에 없는 사이에 일어나면 좀 극적일 것 같아서 그렇게 해봤어! 일어나자마자 유화를 찾는 유화 바라기 연이 ...
그렇게 서로가 소중함을 느끼면서 관계가 한단계 더 발전하는거라고 생각해! 화가 도와주면 연이랑 붙어있는 시간도 엄청 길어지겠네. 일거수일투족을 다 도와줘야하니까. 그럼 또 그런데서 감정 교류가 생기는거고! >:3 좋아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