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 • 섬세한 비단실처럼 하늘하늘 윤기나는 머리칼은 숱이 풍성하면서도 치렁치렁한 곱슬머리를 이루었다. 피부는 백옥같다는 수식어로 표현해도 손색이 없도록 깨끗하지만 혈색이 거의 없어 창백하다는 단점은 분을 발라 가리고 있다. 쌍꺼풀 때문에 유독 커보이는 눈은 눈구석과 눈꼬리의 높이가 엇비슷해 부드러운 눈매인데 짙고 긴 속눈썹이 이목구비를 한층 또렷해보이게 해준다. 한편 잘록하게 들어간 코허리에 이어 코끝이 살짝 앞으로 솟구친 버선코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콧방울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선이 짙되 가는 눈썹과 늘 미소짓는것처럼 위쪽으로 올라간 입꼬리로 인해 유순한 인상이다.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채는 얼핏 새카매보이지만 햇빛 아래에선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더구나 선이 곱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손까지 손가락이 가늘고 길쭉한 섬섬옥수여서 군중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미인이다. • 165cm, 55kg • 이미지 출처 : Picrew’s “十二単めーかー“!! https://picrew.me/share?cd=HoVV8JBtKZ
⊙ 성격 • 현실이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그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현실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자신이 할수있는 최선을 모색하여 행하는것이 낫다고 보기때문이다. • 약한 사람이나 난처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상당히 물러진다. 자기가 조금 더 수고를 감수함으로써 상대가 곤란하지도 거북하지도않다면 기꺼이 그러고자한다. 결과적으로 평상시에는 조심스럽고 유순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 타인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것처럼 보이는것치고는 옳고그름에 대한 주관이 의외로 뚜렷하다. 사람이 매번 옳은일을 하지는못하더라도 그른일을 자진해서 행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이 있다. 진정으로 옳은일을 하려면 어떤 사고를 지니고 무슨 언행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거나 반성하기도한다.
⊙ 가족관계 • 아버지 유심(柳深), 어머니 이윤(李潤), 8살배기 남동생 유희(柳熙)가 있다. 한때는 가솔들도 있었으나 집안형편이 좋지않아 모두 내보냈다.
⊙ 과거사 • 외동딸로 10년간 자랐으나 부모님이 어떻게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가지고자한끝에 늦둥이를 얻었다. 이후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잦았던터라 남동생에게 각별했다. • 한편 유(柳)씨가문은 대대로 아라(阿羅)에 충성해온 명문가이자 도사 집안이다. 그영향인지 적손 대부분이 제국의 침략을 저지하기위해 재산은 물론 가솔과 스스로의 목숨까지 내던졌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라는 제국의 괴뢰국으로 전락했고 유씨가문이 사실상 멸문되다시피 했으나 유화의 선조는 서손이라 명맥을 이어왔다. • 그렇긴해도 유씨가문의 일원이 반제국세력의 구심점이 될수있다는 제국의 우려는 여전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남동생 유희를 볼모로 데려가겠다고 제국에서 요구해왔다. • 어린남동생이 타국으로 끌려가지않을 방도는 가족중 누군가가 대신가는것뿐이었다. 결국 유화는 제국에서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아라에 주기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공녀로 자원했다.
⊙ 관심분야 • 동생이 잔병치레를 할때 부모님과 함께 동동거리곤했기에 민간의학이나 약을 대신할수있는 풀에 관심을 가져왔다. 풀뿐만아니라 꽃을 심고돌보는 일에도 흥미가 있다. • 유씨가문의 도술비방서 중 일부를 부모님이 소장하고있어 즐겨읽곤했다. 그러나 도술에 능숙해지지는 못한것으로 보아 재능은 없는듯하고 재미로 읽고 기억하는 정도이다.
⊙ 호 • 어린아이, 들꽃, 독서, 청소후 깔끔해진 공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 예의바른 사람, 노을
⊙ 불호 • 추위, 아침, 불공평함, 정리정돈이 안 된 공간, 섣부른 아는 척, 강압적인 사람
⊙ 기타 • 잔병치레 하나없을만큼 신체가 튼튼하지는 못하다. 특히 빈혈과 저혈압은 고질적인 문제여서 아침일찍 기상하는것은 힘들어한다.
딱하다 연이.... (그렁) 그래도 가족을 위해 혼자 감내하려고하는구나 타인을 위해 자기가 고통을 감수하다니 말그대로 자기희생이다 어떤의미로는 예수처럼 대신속죄하는셈이다(울망) 햇빛이 피부에 닿지만않으면 괜찮은거구나~ 근데 창문으로 본다쳐도 햇빛 떨어지는각도가 어긋나면 다칠테니 낮의 풍경을 직접 보여주기는 어려울거 같고(곰곰) 꽃병에 꽃을 꽂아주거나 햇볕에 잘말려서 햇볕냄새가 나는 이불을 준비한다거나 잘그린 풍경화를 구해오는거 정도면 대안이 될까나~?(갸웃)
강제히키코모리잖아!! 완전 혼자 고립된삶이네.. 참 머리카락과 눈색도 저주때문에 그렇게 된거지? 그럼 해주가 되면 바뀔까? 아니면 햇빛 전혀 못보고 칩거한 결과라 해주이후에도 그대로일까?
유화를 비롯한 공녀(貢女) 열다섯은 아라(阿羅)의 수도로부터 배로 닷새, 마차로 사흘을 이동했다. 공녀인 만큼 하나같이 옷매무새며 화장이 어지간한 새색시보다도 고왔으나, 어떤 공녀는 제 속을 감추려는 듯 침묵했고 어떤 공녀는 상심한 나머지 넋이 나가거나 눈물을 흘렸으며 어떤 공녀는 이렇게 된 이상 출세하겠노라 절치부심했다. 자길 버린 조국에 복수하겠노라 치를 떠는 공녀도 있었다. 유화는 침묵하진 않았으나 굳이 가르자면 속을 감춘 쪽이었다. 넋이 나간 공녀에겐 배급받은 음식을 전달하고, 눈물 쏟는 공녀는 토닥였으며, 절치부심하는 공녀에겐 뜻을 이루길 바란다고 맞장구쳤다. 그러지 않고는 제 생각에 빠져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달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처지가 되리라곤 상상도 할수 없었다. 영락한 조국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 어린 시절은 먹을것 입을것이 제법 풍족했고 걱정이라곤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뿐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부모님은 전재산을 쏟아부어서라도 아들을 얻고자 했고, 그런 끝에 희(熙)가 태어났다. 그 이름자대로 집안을 빛나게 해 주는 아이였다. 가세가 기울어 가솔을 모두 내보낼 수밖에 없었는데도 부모님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으니까. 그대로 시일이 흐르면 희가 건강하게 자라고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혼례를 치르리라고,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고, 막연하게나마 그런 소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제국의 마수는 이 지경으로 기울어진 가문조차 놓질 않았고, 희가 제국의 볼모로 전락하지 않게끔 공녀가 되겠노라 자청했다. 공녀, 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내 가문을 멸문시키다시피 한 제국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존재. 옳은 선택이라 생각지는 않았으나 다른 방도는 없었다. 희는 고작 8살, 타국살이로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였기에.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무슨 답이 나오든 암담할 것 같아 아무 생각도 안 하고자 여기저기 정신을 팔았다.
그런 끝에 이른, 제국의 수도는 한밤중에 봐도 성벽부터 웅장하고 삼엄했다. 3장(丈)은 넘고도 남을 높다란 성벽이 수평선처럼 끝 모르게 이어져 있는 가운데 성문은 옹성(擁城)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성문을 지나자 크고 작은 기와집이 즐비해 있었다. 이곳이 이토록 번화한 건 내 나라는 물론 여러 나라가 핍박당하고 있어서겠지. 결국 떠올라 버린 잡념을 흩어 버리고자 양볼을 스스로 후려쳤을 때, 마차가 멈추더니 병사들이 유화더러 내리라고 지시했다. 어째서 나만? 공녀는 제국의 황궁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의아했으나 거스를 수는 없는 처지였다. 유화가 내리고 마차들이 내성을 향해 곧게 뻗은 대로로 달려가자 앞서 지시한 병사들이 이번에는 그 자리에 있는 말에 오를 것을 요구했다. 순순히 따랐더니 병사들이 말을 끌고 움직였다. 서늘하다 못해 오싹한 밤바람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스쳐 갔다.
차라리 잘된건지도. 유화는 달이 가려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황궁에 가면 궁녀가 되고, 그러면 죽을 때까지 제국을 위해 일하지 않을수 없을테니. 하지만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비관적인 기대와 낙관적인 절망이 뒤엉키는 가운데 말이 멈춘 곳은, 산을 등진 저택이었다. 그러나 저택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건 십수 개의 기와지붕뿐, 웬만한 장정의 키를 훌쩍 넘길 법한 담장에 가려 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저택안이 끝모를 심연처럼 느껴졌다.
/이을만한 내용이려나?(흐린눈) 연이네저택에 대해 내맘대로 서술해버린 부분이 있어서 살짝걸리네;; 생각한거랑 다른부분 있으면 알려줘~(붕붕)
본디 밤이란 많은 것들이 활동을 멈추고 다음 날을 위해 휴식에 들어가는 시간대이다.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수많은 건물들의 담 너머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수도의 변두리, 모두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엔 쥐죽은듯이 고요했던 한 저택은 해가 지기 시작하자 재빠르게 불이 켜지며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흔한 문패 하나 없는 저택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한 집이 다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황가 다음으로 위세가 있는 가문이라 하면 사람들은 3개의 가문을 꼽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목정 가문의 저택이었다. 본가는 수도 한가운데에 엄청난 크기의 건물을 지어둔채 가문의 위세를 자랑하듯 위풍당당하게 서있었지만 거기서 멀찍이 떨어진 이 저택은 본가의 그 기세와는 다르게 분위기마저 상당히 가라앉아있었다.
" 도련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
본래라면 이미 은퇴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잇대의 집사가 어느 방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 그 어떤 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꽁꽁 숨어있어 일반적으로는 창고로나 쓰일법한 방에선 이윽고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된듯 가라앉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즉에 깨어있었으니 물러가도 좋습니다. " " 도련님, 오늘은 저번에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시녀가 오는 날입니다. " " 알고 있습니다.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
문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은채 조금 신경질적인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한 남성에 집사는 조심스럽게 물러나 대문으로 향했다. 목정가의 3남을 위해 지어진 이 저택은 거주하는 인원에 비해 크기가 지나치게 큰데다 이 저택의 주인이 기거하는 방은 대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라 그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대문에 거의 도착했을즈음 집사를 발견한 경비병은 문지기에게 신호를 전달해 낮 시간 동안 굳게 닫혀있던 대문을 열었다.
" 아라에서 도착한 공녀입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
말을 끌고온 병사와 얘기를 나눈 집사는 말에 타고 있던 여성이 말에서 내릴 수 있게 옆에 서있던 경비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성이 말에서 내리고 병사가 돌아가자 대문은 다시금 굳게 닫혔고 집사는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말했다.
" 당신은 주인님께서 황제 폐하께 특별히 요청하여 이곳에 온 것입니다. 황궁에 끌려가서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야 여기서의 삶이 더 나을테니 주인님의 자비에 감사하도록 하세요. "
온 길을 다시 걸어가며 얘기한 집사는 다시금 걸음을 빨리하며 아까의 그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경비병 하나를 옆에 둔채 틈틈히 뒤를 돌아보며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며 걷던 그는 조금 시간이 지나 어느 방문 앞에 섰고,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 나지막히 얘기했다.
방 안에선 잠시 말이 없었다가 이내 큰 한숨과 함께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같이 왔던 경비병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집사는 조심스럽게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흐트러진 옷과 함께 탁한 붉은 빛의 눈동자가 그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보고 있었다. 목정 가의 3남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목정 연이었다.
" 집사님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채 얘기한 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는 방금 방을 나간 집사의 머리보다도 더 새하얗게 바랜 상태였다. 머리를 정리하면서 그의 눈동자는 여성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 아버님의 말이라니 거역할 수도 없고. 넌 이름이 뭐지? "
이름을 물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젯밤에 보던 문서가 담긴 두루마리를 탁상에 펼친 그는 조용히 시선을 문서로 향했다.
// 유화를 방으로 옮겨오긴 했는데 혹시 강제성이 느껴졌다면 미안해!! 방으로 와야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아서 ... 저택 모습은 괜찮아! 이런건 내가 또 써먹으면 되는 부분이니까 :3
아냐아냐!! 잇기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매끄럽게 전개해줘서 오히려좋아~(손뼉) 첫일상은 집사가 연이를 어떻게모셔야할지 브리핑하는 내용일줄 알았다가 연이가 등장하니 들뜨는데(히죽) 남들 다 자는 밤에 활동하는 미스테리하고 스산한 분위기도 물씬나서 재밌다(팝콘) 최대한 빨리 이어볼게~☆
기묘한 저택이다. 어둑한 가운데에서도 고향의 큰어르신만큼이나 연배가 있어보이는 노집사에게 인도받으며 유화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저택은 규모로 보나 기와 같은 자재가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나 부와 권세가 상당한 집안의 저택임에 틀림없는데도 대문엔 문패조차 달리지 않았다. 또한 여느 저택이라면 특별한 행사가 없는한 밝은날을 위한 달콤한 휴식시간일 이 한밤중에 불이 하나둘씩 밝아오며 자질구레한 생활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면서도 활기차기보다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랄까? 아니, 음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라고 해도 틀리지않을것 같다.
위화감 탓일까 긴장감 탓일까 아직 야외인데도 공기가 갑갑하게 느껴지는데, 노집사는 유화가 황궁 대신 이곳으로 오게된 연유를 무미건조하게 알려주었다. 자비라는 표현에 하마터면 쓴웃음이 샐뻔했다. 공녀 제도 자체가 점령지를 약탈하는 방식이건만 황궁이 아니라 사가(私家)에 넣었다고 자비라? 얼마나 알량한 합리화인가? 하지만 지금으로선 삼켜야만 할 반발심이기에 유화는 애써 딴생각을 했다. 절치부심하던 공녀 중에 누군가 정말로 출세해서 후궁(後宮) 아니 황후자리까지 꿰차면 그땐 나머지 공녀들의 삶이, 내 나라의 사정이 나아질까? 허무맹랑한 공상임을 절감하면서도 그 생각을 곱씹으며, 나이답지 않게 잰걸음으로 앞서가며 이따금 돌아보는 노집사를 따랐다.
그런끝에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자 집사가 단정히 시립했다. 이정도 안쪽이면 안주인의 거처이겠다고 아마도 시중 들어야하는 상대가 부인인가보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노집사에게선 뜻밖의 호칭이 나왔다. 도련님이면 미장가의 소년? 이 저택의 주인이 무려 황제께 공녀를 청한게 아들 시중들 사람이 없어서였나? 안쪽에서 노골적으로 성가시다는듯한 대꾸가 돌아왔기에 허탈함이 배가되었다. 관례도 치뤘음직한 청년 같은 목소리, 성년이 지나고도 과보호받고있는 아들인가? 정작 보호받는 당사자는 달갑잖아하고? 어쨌거나 앞으로의 윗전과 첫대면인 모양이라 이동중에 알게모르게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들어오라는 윗전의 명이 떨어지자 노집사가 기척일랑 없어야 한다는 듯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유화는 노집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심호흡을 한 다음 눈을 내리깔고 살그머니 발을 내딛었다. 그러고있자니 윗전이 노집사에게 돌아가라 지시하고는 얕은, 그렇지만 또렷한 한숨을 내쉬며 이름을 물어왔다. 메마르고 피곤한듯한 목소리에 유화는 슬며시 눈을 들어 상대를 살폈다가 멈칫했다. 분명 '도련님'이라 불렸던 미장가의 청년이 호호백발이다. 나이가 많다기엔 얼굴은 생기없이 푸석하긴 해도 주름은 전혀 없다. 착시인가 눈을 깜박였다가 피처럼 붉은 눈망울에 시선이 갔다. 색목인(色目人)? 이국 출신 귀족이었나? 그렇다면 머리칼이 새하얀것도 납득이 된다만 색목인이라기엔 말씨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토록 위화감투성인 모습에 누구도 아랑곳않겠다는듯 문서만 보고있는데도 기이하게도 아름답다는 감탄부터 들었다. 수려하면서도 애련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달까. 저쪽이 질문을 던졌음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넋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따위 원치않는 형식적인 물음일지언정 듣고도 흘려넘길수는 없었다.
"유 화라고 하옵니다. 이제부터 공자(公子)를 뫼시겠사옵니다."
아직은 여기가 어느 가문의 저택인지, 이 공자가 누군지도 모르나, 지금 중요한 건 통성명이 아니라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것일듯하다. 그래야 부모님도 희도 무탈히 지낼테니. 그렇게 수선스러운 속을 정리하자 공자의 책상위에 잔뜩 쌓인 문서가 새롭게 보였다. 집무로 바쁜 모양인데 남들 다 잘 시간에 일하려면 특히나 고단하겠다.
"괜찮으시오면 차라도 올리올까요?"
공자가 허락한다면 바로 일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주방이 어딘지 다기가 어디있는지 공자가 어떤차를 선호하는지 같은건 사용인들에게 물어야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가 눈을 뜬 것은 집사가 자신에게 기침할 시간을 알리러 오기도 한참 전이었다. 사람은 원래 낮에 활동하고 밤에 휴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겠지만 그는 오히려 낮엔 잠을 자고 해가 전부 지고나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밤에 일해야하기에 낮에 쉬기도 하니 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가 싶었다. 허나 귀족 가문의 자제, 그것도 삼남이라곤 하지만 가주의 아들인 그가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겐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아무튼 눈을 떴다는 것은 나름대로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라는 것이겠지만 그는 그저 눈을 감고서 집사가 자신을 깨우러 올때까지 미동도 없이 누워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집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고 탁상에 올라가 있던 물을 한잔 마신 뒤에 일을 할 채비를 마친 것이었다.
" 유 화라 ... 어머니의 이름과 비슷하군. "
어머니의 성함이 유 화란이었으니 그녀의 이름이 외자인 것을 생각한다면 거의 똑같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시선은 문서에 가있었지만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꽤나 많아보이던 양의 문서를 금세 다 읽었는지 서명을 하고선 다음 서류를 꺼내들었다.
" 여기 온지 한 시진도 채 지나지않았는데 차를 타온다라. 뭐가 어디있는지는 알고 있고? "
피식하고 웃어보인다. 허나 사람 좋은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것은 그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어보였다. 본디 대화를 할 때는 서로를 마주보고 하는 것이 맞겠으나 이 목정 연이라는 남자에겐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문서에 가있는채로 손가락을 탁상에 두드리며 잠깐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그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정면의 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 공자 같은 낯간지러운 말은 듣기 싫다. "
알아서 다른 말로 부르라는 뜻일테다. 행동부터 말투 하나하나 신경질로 가득차있는 그의 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본가에서 내려온 시종들이 하나 같이 학을 떼며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이 허다하겠는가. 그나마 지금은 평소보단 조금은 더 나은 편이었지만 처음 본 사이에서 그런게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 자세한건 집사에게 들으면 된다. 거처라던가, 할 일이라던가. "
그런걸 일일이 설명해줄 위인이 아니긴 했다. 나가보라고 하려던 찰나에 그는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여전히 표정 하나 없이 그녀에게 물었다.
" 아라에서 왔다고 했으니, 특별히 하나는 물어볼 수 있게 해주겠다. 물론 대답 여하는 질문에 따라 다르지만. "
예전에 그를 모셨던 시종들이 듣는다면 놀랄 노자를 그리며 눈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물음이었기에 애초에 반응을 기대치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답이 돌아왔고 그 내용은 더더욱 뜻밖이었다. 자당(慈堂)의 함자(銜字)와 비슷하다니? 그러면 부르기가 은근히 거북스러울 듯하다. 모셔야 할 이이고 시녀인이상 불릴 일이 새털같이 많을텐데 곤란하겠구나.
"편치않으시오면 '버들'이라 불러주시옵소서."
버들 유[柳] 자를 뜻으로 읽은것에 지나지않으니 본명과 과히 다를것없다. 다르다해도 어차피 시녀 신세, 이름이야 아무렴 어떠랴? 본명을 굳이 밝히고 다니지 않는한 누구도 개의치 않으리라. 문제는 공자의 반응. 그가 무어라 대답할지 알수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문서를 보는데만 관심이 있는듯 무표정하던 얼굴에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바뀐 표정은 어딘가 비틀린듯한 웃음이었고 뒤따르는 말에도 냉소적인 가락이 어려있었다. 자유로이 지내던 사가(私家)에서라면 헛기침으로라도 머쓱함을 무마했겠으나 여기에서 자신은 그저 아랫것. 한껏 다소곳이 모아쥐었던 손에 힘이나 주었다.
"다른 분들께 여쭈온다면 할수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주눅들지 말자. 차를 우리는 방법 정도는 알고있으니 재료와 다기가 어디있는지만 알면 충분히 가능할테니까. 거듭 스스로를 다잡는데 냉랭하기에 더더욱 핏물을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순간 당혹한 티가 날까 고개를 수그렸다. 지체있는 가문의 미장가인 자제를 공자라고 아니부르면 뭐라 부르란 말인가? 노집사처럼 도련님이라고? 떨떠름했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에는 어딘지 굴욕적인 느낌이 있었다. 마치 이 가문에 뼈를 묻는 몸종이어야만 한다고 스스로도 받아들이는것만 같은....? 따지고들면 유(柳)씨 가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서출(庶出)이긴 하나 그래도 양민(良民)이었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도 있는 신분이었다, 내 나라만 온전했다면! 그랬기에 어느정도 대등한 입장에서 쓸수있는 존칭인 공자라고 불렀던건데. 저쪽이 그 속내를 읽고서 하인임을 주지시키기라도 하려는걸까. 거기까지는 알수없는 노릇이나 이 시점에 할수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시정하겠사옵니다."
자세한건 집사에게 들으라니 나머지는 그뒤에 생각해야지. 저렇게 지시를 하는건 더 볼일은 없다는 의미같다. 하여 뒷걸음질로 물러나려는데 그가 선심쓰듯, 그러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덧붙였다. 질문을 허락하는것조차 특별한 선처인 모양이다. 쉽지않은 윗전이겠구나. 유화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한음절 한음절 힘주어 꺼냈다.
"하문하셨으니 여쭙자면... 어느 가문의 뉘시옵니까?"
이 역시 집사에게 물으면 알수있을 내용이나 굳이 질문으로 내뱉었다. 그것은 하찮은 도발이었다. 당신을 뫼셔야만 한다니 따르겠다만 내가 누구를 뫼시는지는 알아야겠다는. 그 도발에 상대가 어찌 응대할지는 알수없었다.
버들, 버들이라. 연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피식 웃어보였다. 아까의 웃음과는 또 다른 의미. 그 웃음에 섞인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곧바로 이어진 그의 말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 공녀의 신분으로 끌려온 주제에 당당하구나. 성씨에 버들 유柳 자를 사용하니 버들이라 불러달라? "
무표정하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 허나 연의 얼굴에 화색이 감돈다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선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눈 앞의 화만 빼고선 저택의 사용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하, 하는 작은 웃음을 계속해서 내뱉던 그는 언제 웃었냐는듯이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말했다.
" 너를 어떻게 부르던 내 마음이다. 어차피 어머니는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으시니. "
햇수로 따지자면 3년은 될터였다. 그가 20세가 되는 날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더 이상 그의 저택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의 작은 형과 여동생이 간간히 찾아와 안부를 물을뿐. 그의 신경증을 더이상 받아주지 힘들다고 생각한 것일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얘기할때 잠깐, 아주 잠깐 쓸쓸하단 느낌이 그의 얼굴에 감돌았을뿐. 이젠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는지 화를 보내려던 연은 어떤 이유에선지 그녀에게 하나의 질문을 허락했다.
" 어디 가문의 누구냐고? "
탁하던 눈빛이 그녀의 말을 듣고서 그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반문하는 그의 말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지만 표정에는 아까처럼 미소가 지어지다가 더더욱 짙은 웃음이 되어선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학, 하며 숨까지 넘어갈듯 크게 웃어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설화 속에 나오는 귀신과도 비슷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은 금세 거센 기침으로 바뀌었고 콜록대며 쓰러질듯이 기침을 한 그는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선 입가를 닦아냈다.
" 집사!!!! 집사는 어디있습니까!!!! "
기침을 멈춘 그의 눈빛은 더욱더 심연에 가라앉은듯 탁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탁상까지 쾅하고 내려치며 집사를 찾자 아까 그 노집사가 금세 문을 열고 들어와 화의 옆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그나마 그의 앞에서 바싹 엎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노집사가 가주를 몇십년이나 모셨기 때문일 것이었다.
" 이 자가 내가 어디의 누구냐고 물어보더이다. 그런 간단한 것도 교육하지 않고 뭐했습니까? " "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 " 분명 내 알아서 하라고 했을텐데요. 아버지가 내가 이젠 목정 가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 " 주인님께선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련님을 ... " " 듣기 싫습니다. 내 이 일은 똑똑히 기억해두겠습니다. "
집사를 불러 크게 소리치며 일갈하던 연은 그 시선을 화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 위해 탁상을 손으로 짚고 몸을 앞으로 쭉 빼고선 시선을 최대한 가까이 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 제국의 삼주三柱 가문 중의 하나, 목정木楨 가문의 삼남인 목정 연木楨 妍 이다. "
그리고선 금세 자리로 돌아와 문서를 보기 시작했다. 방금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아까처럼 무기력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다시금 방을 감싸고 있었다. 집사는 아무 말없이 허리를 굽히고 있다가 화와 눈을 마주쳤다. 눈짓으로 나오라는 뜻을 전한 집사는 조용히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앞서와 딴판으로 부드러웠으나 그 내용은 폐부를 후비듯 날카로웠다. 공녀로 끌려온 주제. 그 말은 이제까지의 여정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불안과 설움보다 훨씬 더 유화의 처지를, 이제 자신은 양갓집 규수도 무엇도 아니라 침략국을 향한 진상품이나 다름없는 신세임을 각인시켰다. 무력감에 아뜩해지는듯했지만 부질없는 저항을 멈추지는 못했다.
"하오시면 소인을 어찌 부르실지 정해주시옵소서. 그 호칭을 이름으로 삼겠사옵니다."
유화는 죽었다. 넉넉하진않아도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면 족했던, 그 자유로운 처자는 공녀가 된 순간 죽은거다. 여기 있는건 망해버린채 침략국의 앞잡이노릇이나 하는 나라에서 허겁지겁 바친 물건. 거기에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물론 알고는 있다, 그가 수락하든 거부하든 내가 할수있는건 없음을. 어머니와의 왕래가 끊겼다는 그가, 그로 인해 자당의 함자를 입에 담는걸 내심 꺼릴만큼의 효심마저 잃었다면, 이 저항은 실로 무의미한 짓이리라.
그러나 문제는 유화가 미처 생각지못했던 부분에서 터졌다. 누구인지 묻기 무섭게 그가 유화의 물음을 예사롭게 되풀이하더니 미친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얼떨떨해할 틈도 없이 그 웃음은 자지러지는 기침으로 변질되었다. 다급한김에 그의 등이라도 두드려 진정시키고자 다가갔으나 차마 손을 대지는 못했다. 어째서였을까? 그 찰나의 사고를 유화가 언어화할수 있었다면 이리 밝혔을것이다. 자신의 개입을 이 종잡을수없는 상대가 원치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노라고.
유화가 어쩔줄모르고있는 동안 그는 노발대발하여 집사를 불렀다. 집사가 허리를 숙이자마자 따라숙여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라의 규수 유화는 죽었으되 유화로서의 습관이 남아 몸이 거부한 탓이다. 그저 눈만 내리깐채 그가 앞뒤없이 퍼붓는 분노의 의미를 해석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목정 가(木楨 家)? 우리 유 가(柳 家)의 적손들을 멸족시키다시피 한 그 가문이라고? 온몸이 내것이 아닌것처럼 마구 떨려왔다. 내 발로 서있긴 한지 모르겠다. 공녀로서 치장하느라 품이 넓고 치렁치렁한 옷차림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쓰러져선 안된다는 일념만으로 버티는데 그가 한껏 거리를 좁히고는 쐐기를 박았다. 목정 가문의 삼남 연(妍). 그러니까 목정 가의 가주가 제 아들을 위해 원래는 황제에게 헌납되었어야 할 공녀 중 하나를 이리로 보냈다? 그게 하필이면 나다? 다리가 완전히 풀려 주저앉고말았다. 집사가 나오라고 눈치를 주는듯도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질않았다.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하필이면 목정 가라니! 이럴바엔 황궁의 궁녀가 되는게 차라리 나았다!! 이런데도 아비가 목정 가의 일원으로 여기지않는다는 불만이라니 그 무슨 피해의식인가? 자괴감과 분노와 혼란따위가 뒤범벅이 되었다가 이내 무력하게 사그라들었다. 이 자리에서 함부로 지껄이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화를 입고만다는 자제심을 발휘한게 아니다. 딴에는 최선이리라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했던 선택이 도리어 덫이 되고만 사실이 기막혀 무기력해진 것이다.
"가주께오서 목정 가의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더라면 언감생심 황제께 공녀를 보내달라 청했겠사옵니까? 그것도 목정 가에서 멸족시킨 유 가 출신 공녀라니, 대-단한 가문에 대-단한 자제이시옵니다..."
새어나오는 실소를 어쩌지도 못한채 지껄였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알게된 정보 중 따질수있는 게 그뿐이어서였다. 그에게 신분을 왜 밝혔느냐고 따지겠는가? 목정 가는 어찌 그리 위세도 당당하냐고 따지겠는가? 할수있는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연은 화의 말에 살짝 찡그린 표정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못알아듣는게 꽤나 짜증이 난듯 했지만 금방 표정을 풀었다. 오늘은 평소에 비해 짜증이 덜하니 잠이라도 잘 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녀들은 이렇게 하라고 사전에 교육이라도 받고 오는건가 싶었지만 그는 딱히 화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니 더더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가 않구나. "
연은 지금 눈 앞의 여자가 자신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생각했다. 아라에서 동강으로 팔려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곳에서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는게 아닐까하는 추측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도 공녀를 보는 것은 처음이니 그저 단순한 고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미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은 아무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단념하도록. "
공녀라는 것은 속국에서 조공을 바칠때 같이 들어오는 것. 그러니까 물건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었다. 들어온 조공을 다시 돌려주는 일이 없듯 공녀도 마찬가지였지만 물건들은 흘러흘러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선 오히려 사정이 더 나을 수도 있을듯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화의 물음에 한바탕 난리를 친 연은 언제 그랬냐는듯 아무렇지 않게 서류에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화의 말이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 ... 호오. "
그녀의 말에 연은 다시금 시선을 화에게 향했다. 기겁하듯이 놀라 달려오려던 집사를 손짓으로 제지하고선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화를 바라보던 연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선 화에게 다가갔다. 무가의 핏줄을 이어서인지 화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이는 연은 그대로 그녀의 앞에 서서 얘기했다.
" 네가 말하는 그 가문이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구나. 우리 가문이 멸족시킨 가문이 한두개가 아니니까. "
제국에서 가장 높은 무가를 따지면 역시 목정 가문이었고 그들은 실제로 많은 전쟁에서 선봉에 서서 지휘를 했었다. 제국이 확장할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때의 가주는 완전 전쟁광이었던지라 지나가는 지역은 모조리 약탈하고 초토화하는 행위를 저질렀었다. 향후 점령지의 안정을 도모해야하는 황제가 한번 서신을 보낸 이후에야 그 행동은 가까스로 멈추었지만 이미 피해를 받은 지역은 수도 없었다.
" 이 빌어먹을 저주를 내린 것도 그 수많은 가문들 중에 하나겠지. "
그리고 잔인한 행위의 댓가는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일종의 저주 형태가 되었다. 중요한건 그들의 가문이 행한 일이 너무 많아서 어느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해주할 방법은 찾지 못한채 저주를 어떻게든 비껴나가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의 결과가 화의 눈 앞에 서있었다.
" 그러니까 네가 어디 가문 출신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아. "
연은 손을 뻗어 화의 턱을 잡아 자신의 시선을 마주보게 했다. 가까이서 봤을때는 더 선명해보이는 그의 눈이 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 눈빛에 보이는 것은 적어도 분노는 아니었다.
" 지금의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건가? 지금 당장 병사를 풀면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해. "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화만 간신히 들릴만큼의 크기였다.
" 그러면 여기로 끌고오는 것도 쉬워지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선 턱을 잡았던 손을 내려놓은 연은 다시금 자리로 돌아갔다. 이젠 정말 나가라는 뜻 같았다.
집사를 들볶고 가주를 향한 분노를 폭발시켰던 목정 가의 삼남은 그 누구도 안중에 없다는듯 제할일에나 몰두했다. 그러다 유화가 넋나가 지껄이는 소리에 흥미로운건지 가소로운건지 모를 반응을 보이며 유화에게로 다가섰다. 이어 죄책감은커녕 께름칙함조차 없는, 마치 어제의 식사라도 말하듯 예사로운투로 제 가문의 만행을 입에 담았다. 모골이 송연했다. 자기네 가문이 온갖 사람을 죽여댔단 소리를 어쩌면 저리 태연히 말하는지? 마치 우리 유 가의 멸족 따위 자기네에겐 아무것도 아님을 각인시키지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듯이.
야차(夜叉)같은 집안! 새삼 치를 떠는중 일순 정신이 또렷해졌다. 저주? 사가에서 읽었던 가문의 도술비방서 내용이 떠올랐다. 적손(嫡孫)으로서 물려받은게 아니라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이라 들었고 그마저도 극히 일부만 남은것이었지만 거기에 피의 저주라는 주술도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유 가의 혈족이 원념(怨念)과 피를 제물로 바쳐 거는 저주. 그 저주를 받은자는 대대로 피를 갈구하며 밝은세상을 보지못한다던가? 해주법(解呪法)도 유 가가 아니면 시전할수없다고 쓰여있었다. 그 저주를 받았다면 목정 가에 합당한 대가라 볼만하나... 누가 걸었는지 어떤 저주인지 뉘 알랴? 목정 가 삼남의 말대로 목정 가가 해한 사람은 산을 이루고 강을 메우도록 많을텐데.
상념을 더듬어가는 찰나 턱이 쳐들렸다. 핏빛 눈동자가 유화를 쏘아보고있었다. 소용없다 느끼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쏘아보았다. 피비린내마저 날듯한 눈이 목정 가의 잔혹함에 걸맞게 느껴지면서도 기묘한 감각이 엄습했다. 그눈엔 생기도 감정도 번득이지않았다. 그저 공허(空虛), 무엇을 보고있는지 알수없게 텅빈 눈이었다. 만사 다 부질없다는 체념이 어렸는지조차 모르겠다. 섬뜩했다. 이 자는 대관절 어떤 인간인가? 저 눈이 사람의 것이긴 한가?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대로는 내 나라를 침략한 앞잡이이자 우리 가문의 원수를 위해 일생을 바쳐야한다. 아랫것의 바람일랑 일절 들어주기싫다는듯 이름에조차 어깃장을 놓는 자에게. 돌아갈 방도가 없음은 알고있지만.... 정말 없나? 살아서는 갈수없더라도 죽어서는? 죽고자한다면 방도가 없진않다. 제국에도 지천에 널렸을 약초는 사용하기에 따라 독이니. 목정 가에 종사하느니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과 절망이 얼키고설킨 그 바람은 이내 산산이 부서졌다. 가족을 끌고올수도 있다? 겁에 질린 꼴만은 보이고싶지 않았으나 그럴수가 없었다. 이 자는 그러고도 남을 자다! 이번처럼 심기를 거스르면, 혹은 죽어서라도 눈에 띄어버리면, 부모님과 희가 위험해진다!! 어떡하지? 아뜩한 정신을 필사적으로 가다듬었다. 하지만 암만 애써도 수가 안보인다. 저쪽이 그럴마음을 먹는순간 끝장아닌가. 그나마 할수있는 일이라곤 이 윗전에게 주목당하지 않는것뿐. 있으나없으나 알바아닌 하인으로 죽은듯이 있는게 최선이다, 우리 가족은커녕 나도 잊어버리도록.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었을땐 목정 가의 삼남이 이미 턱을 놓은뒤였다. 그 이상 상대할 의사는 없다는 의미같았다. 유화는 숨을 고르고는 비치적비치적 일어섰다. 팔다리가 바들거리고 힘에 부쳤으나 가까스로 움직여는졌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면서는 기척을 죽였는지 못 죽였는지? 어느쪽이건 상대의 심기에 거슬리지않았기만을 바랄뿐이다.
노집사 어르신이 아마 거처랑 주의사항 같은건 다 알려주실거야! 아마 유화가 방에서 나오고 노집사가 데려가면서 이것저것 알려주지 않았을까? 취향 같은건 일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고 ... 연이는 딱히 관심이 없는거지 싫어하는건 아니니까 금방 돌릴 수 있을꺼야! 그나저나 연이의 첫인상이 유화주 맘에 들었으려나? :3
저주에 대한 내용은 얘기 안하겠지만 피를 마셔야한다거나 햇빛을 쬐면 안된다는 사실에서 유화가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연이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거지 막 열등감 덩어리라던가 그런건 아니야. 짜증내는 것도 그때 잠깐이고. 자기 몸이 시원찮으니까 그만큼 예민 게이지가 차있는거고 ... 유화가 눈에 안띄고 싶어하면 연이가 부르면 되는거지! 그래도 시녀니까 말이야 :3
헉 그런 이미지구나. 유화주가 상상하던 미녀와 야수와 비슷할까? 돌리면서 그게 좀 걱정이었거든
그정도면 충분히 유추가능하겠다! 목정가문에서 마땅히 치러야할 대가라고 애써 외면하겠지만 해주법을 알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신경이 쓰이겠지! 그저주가 어떤건지 구체적으로 목도할수록 더욱더~(팝콘) 나로서는 연이가 피를 갈구해서 발작할때 연이가 흡혈당하는 타깃이 되었으면하는 크리피한 소망이 있어(음침) 암튼 해주법을 안다는 점 때문에 부채감이 생겨서 눈에 띄지않아야한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연이를 챙기고싶어할지도 모르겠어!(곰곰) 일부러 햇볕 쨍쨍한 낮에 연이의 옷가지나 이부자리를 말려서 준비해놓는다거나, 살짝 꿀을 탄 국화차를 탄다거나 자극적인맛없이 삼삼한 나물반찬이라도 요리한다거나, 연이가 기침을 덜하도록 연이가 주로 머무는 장소에 과일껍질을 말리면서 간간이 물을 뿌리는식으로 말야~(설렘) 뭐가 됐든 연이의 몸상태를 호전시킬수있는 수단을 유화가 잘 써먹길 바라! 그 영향으로 연이가 자기 시녀니까 임의로 부른다고 해도 너무 좋고~~(김칫국)
나 혼자 상상하던 이미지랑 딱 맞지는않지만 오히려 좋아~♥ 내 생각대로만 되는거면 혼자 놀아도 되는거잖아? 상상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니까 생동감있고 즐거워!(히죽히죽) 돈워리 비해피~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