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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는 곧 새까만 밤하늘 사이로 사라진다. 불어온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린다. 스산한 소리가 지금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사실이 동행인의 존재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기다리란 말에 앞선 행동과 달리 비교적 차분해진 이경의 손짓을 바라본다. 사실 이미 실패한 전적 있어 큰 기대감 없었으나... 막상 손안에 쥐어진 꽃잎을 보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말로는 그깟 꽃잎 없어도 이루어지리라 했지만, 내심 실망감이 없진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놀라움도 기쁨도 컸다.
"와아. 진짜 잡았어...! 대단하다! 응. 이루어질 것 같..."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말이 중단된다. 다물지도 못한 입술 사이로 옅은 숨만 새어 나오는 상태로 흘러가는 몇 초. 그 사이 이레의 시선이 이경의 손바닥 위에 안착한 꽃잎에서 점차 올라간다. 그 웃음 마주한 그녀는 여러 번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 내, 내 소원이 이뤄지면 안 되잖아...! 이건, 이건 네가 잡은 거니까... 그러니까 네 소원이 이루어져야지."
어차피 비슷한 소원이니까 함께 들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면 잡은 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변인이 행복해지는 것. 그 또한 그녀가 바라는 작은 소망들 중 하나였으니 별 다를 것도 없다.
"그치만, 음... 나, 나중에 이루어지고도 효력이 남은 것 같으면 그때는... 그때는 조금만 나눠줘."
작은 욕심부리며 머쓱한 듯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예 포기하기엔 소원을 이루어주는 꽃잎이란 존재는 너무도 달콤했다. 다시 바라본 정면엔 여전히 벚꽃나무가 가득하다. 새삼 멀리까지 왔었다고 생각하던 찰나 먼 곳에서부터 소음이 들려온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타입의 사람끼리 있기도 참 힘들지 않을까. 일단 수용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앞서 체념하고 순응할 뿐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조합이란. 어쩌면 흔한 양상이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각이니까.
그러나 수면에서 아무리 거센 파도가 몰아친들 깊디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약했다. 잔잔한 물살에 휩쓸리기에는 이미 너무나 깊이 잠겨있었다.
"선배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결국 납득의 영역이죠."
역할 수행에 관해서는 결국 납득하기 그리고 이해하기 나름이라고, 리라의 말에 아랑곳않는 대답을 내놓았다. 남이 보기에 올바르고 적확한 행동을 취했더라도 내가 납득하지 못 한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어버리는게 현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줄곧 쓸모를 찾아, 소모되기를 원해 발버둥치는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포푸리도,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전혀 기쁘거나 하지 않았다.
"미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만듦새였는데, 그리 고평가를 해주시니 다행이네요."
그 말대로 포푸리는 예쁨과 거리가 먼 물건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베이지색 캔버스 주머니에 레시피대로 혼합한 조향의 내용물이 들어가 있을 뿐인 물건이었다. 오로지 내용물의 효능 만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물건을 예쁘다느니 해도, 제작사로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니까 포푸리 얘기는 길어지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찔러지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이미 심해 바닥에 깔린 나를 구태여 그렇게 찔러야만 했을까.
아마도 리라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었다. 내 말투가, 종종 타인의 돌발적인 언행을 불러온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일전에 세은이로 인해 재차 깨달았던 것을 그새 잊었을 줄이야.
당혹스럽다...기보다 정말로 명치를 찔린 듯한 감각에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도 리라는 계속 말을 하고 있었고, 끝말이 의문형이었기 때문에, 그 쯤엔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음악이라면, 의무적으로 접해야 할 구간이 있기에 일상적으로 가까이 하는 편이에요."
참, 무슨 이런 대답이 있나, 하고 스스로 생각했다. 좋아한다기엔 일적인 느낌이 강하고 싫어한다기엔 그런 기색도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권해볼까 싶게 만드는 빈틈이 보일 만한. 그러나 빈틈을 파고들기 전에 내 말이 그 앞을 막았다.
"그 날 부실에 포푸리를 둔 건 커리큘럼의 일환으로써 두었을 뿐이에요."
정말 완벽한 변명이었다. 커리큘럼의 일환이라니. 포푸리 키트를 준 건 연구원이 맞았지만 커리큘럼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 많은 양을 조합해버렸기에, 처리하기 위해 가져다 놓았던 것 뿐이었다. 그 뿐, 단지 그 뿐이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니, 그런 건 고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재차 쐐기를 박으며 앞 만을 바라보았다. 리스크를 감수한 것도 아닌 행동에 리턴을 바랄 이유, 정당성은 없었다.
아하, 지금 아예 공범이 되어 이 완벽범죄를 돕겠단 뜻이구나. 희야는 이런 상황에서 지어야 할 미소가 무엇인지 안다. 어딘가 발칙한 생각을 하듯이 은근한 미소 사이로 눈썹 하나를 까딱이는 것이 그야말로 '우리 지금부터 공범이야'를 시사하고 있었다.
"그쵸? 이렇게 수상하고 무시무시한 곳이 3학구에 있다니…… 저지먼트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크로플도 크로플이지만 블루베리 퓨레를 얹은 치즈케이크도 아주 수상하다고 들었다. 특히 밑이 비스킷으로 만든 바닥이라면 두 배로 수상할 수밖에 없지! 활기차고 당당한 걸음으로 희야는 골목을 스쳤다.
"응, 꼭 알려줄게요. 저지먼트가 가서 평화로워진다면 뭐든 알려줄 수 있어요."
톡톡 대답하다가 고민했다. "여로도 꼭 알려줘야 해요!" 그야 맛있, 아니, 수상한 곳으로 가서 안전성이 입증되면 혜성이에게 맛있는 곳을 찾았다며 사자후를 내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음, 좋다. 그리 생각하며 골목을 빠져나갈 적, 희야는 고개를 돌렸다.
"아참, 인간은 추위에 약하다고 하죠? 조금 추울 수도 있으니까요. 옷깃 여미고 있어요."
냉기는 때때로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싸늘한 한기가 내려 앉더니 스치는 골목마다 찬공기가 스몄다. 이걸로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이 있는지를 가늠하려 했뎐 탓이다. 조금이라도 수분을 흐름이 다른 곳의 윤곽을 가늠하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불확실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었으니. 없다면 적당히 빠져나가려 한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