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중요하느냐 묻는다면 휴식이고, 어지간하면 끊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는 지금껏 담배와 함께했고, 그만큼 담배에 대해서는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담배 없는 삶이라니!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관대하던 그도 결국 당신에게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 다소 거친 방법이지만 감히 누가 말을 얹겠는가? 이 연구실 내부에서는 그가 왕인데.
"그래, 상. 담배도 저렇게 버렸잖니, 말 잘 듣는 교수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지."
궤변임은 안다.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주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당신이기 때문에 더 바랄 수밖에 없다. 눈물을 닦아주듯 손가락이 다시금 움직인다. 엄지로 눈가를 훔치는 것이 익숙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하기 짝이 없던 것이, 지금은 이리도 능숙하니 적응하는 동안 당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돌보고 어루만졌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초콜릿과 사탕, 당신은 사탕을 먼저 말했지만 그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초콜릿이었다. 어쩌면 좋을까.
"사탕과 초콜릿이라."
두 개의 작은 포장지가 입술에 고이 물렸을 때, 그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평소에도 인내심이라곤 일절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목으로 고개를 파묻을 적 들리는 앓는 소리에 생각은 툭 끊겼다. 어쩌자고 이런 토끼와 여우가 공존하는 존재에게 온정을 주었을까, 아주 잘 한 일이다.
"초콜릿."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귓가에 내려앉는 울림 좋은 목소리와 함께 팔을 느릿하게 뻗는다. 이리 와서 품 안에 깊이 파고들어도 좋다는 듯. 선고하듯 발음 하나하나가 선명하다. "좋아하는 거 알잖아." 중의적인 의미다. 당신도, 초콜릿도. 어느 하나 빠짐 없이 귀신처럼 붙을 자신이 있다. 이내 길쭉한 손가락이 옥빛 머리칼을 헤집듯 틈새를 파고든다.
"아가, 너도 좋아하지?"
그는 느릿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답을 들어도 지금은 모두 상으로 받아들일 테니. 어떡하겠는가? 당신이 눈이 부신 탓이다.
어떤 말에도 고분고분 들어주는 점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당신은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라는 하나의 문장이 어울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해 그럼 내놓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등의 처참한 사회성을 가졌던 그도 당신의 순진무구함에 부모의 심정을 절실히 이해하곤 했다.
물론 지금은 좀 다른 이야기다. 남에게도 이러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있지만 한때 초랭이인지 뭔지 하는 것에게 휘둘리지 않았던가. 팔에 입을 맞출 적엔 인내심을 시험했다. 벌써 다섯은 넘은 것 같다. 아니, 종알거리는 입술에 여섯 번. 원래 이렇게 참을성이 없었나? ……학창시절 거슬리는 녀석들에게 가차없이 점수를 깎던 것을 생각하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내가 알려줬지."
입에 물린 초콜릿을 넘겨줄 적, 그는 손을 움직여 당신의 뺨을 양손으로 가벼이 부여 잡았다. 초콜릿만 얌전히 받아갈까 했지만 당신이 이리 무방비하게 다가왔으니 골려주고자 함이다. 초콜릿만 물면 되는 것을 굳이 입까지 맞춘 탓이다. 자신이 가르쳐준 것이 초콜릿과 오레오라면 당신이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 아니던가. 어른에게 배워 같은 어른이 됐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상을 받아야 할 테니……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야겠군."
희미한 미소가 어여쁜 탓에 괜히 혀 끝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기어이 물어보는 것에 인내심이 크게 휘청인 건 당신은 알기나 할까. 그는 이어지는 얘기에 눈을 감았다. 할미가 보러 오라고 했다라. 그가 처음으로 무릎 꿇었던 상대가 아닌가? 보러 가는 것이야 좋다마는.
"지금 바로?"
충동질 하여놓고 비겁하지. 그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무릎을 툭툭 쳤다. 이리 올라와 안기라는 듯.
상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 잘 하였지 아니한가? 친히 기호식품을 끊기까지 하고, 수업도 일찍 끝낸 착한 교수. 올바른 어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물론 그의 기준이다.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그의 성정이 다시금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입술을 가벼이 뗄 적엔 녹아 묻어버린 것을 혀 끝으로 가볍게 훑었다.
"누가 주었는데, 잘 받았지."
당신에게만 받을 상이다. 앞으로도 변치 않을 상.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상을 다시 주지 못하겠지! 다른 존재가 나타난들 그는 뜻을 꺾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매력적인 조건이 있다 한들 당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그냥 오라고 했다, 라. 당신을 품에 안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헤집듯 능숙하게 쓸어주던 그는 눈을 흘겨 문을 쳐다봤다.
"그렇군, 안 가면 슬퍼하니 가야 하겠다마는…… 아가, 네가 나를 보고 싶었다 하였으니 조금은 늦어도 괜찮지 않겠더니."
머리를 헤집던 손길이 천천히 목을 향하고, 목덜미를 더듬던 손길은 금세 등으로 향해 척추 선을 따라 손가락을 굴리다 이내 손바닥을 온전히 덮어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느른히 미소 지었다. 이성의 끈이 몇 번이고 끊어졌다 다시 이어 붙는지 모르겠다. 벌써 몇 번이고 생각했는지 셈하지 못할 정도지만,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미치겠군. 누가 이렇게 구는지 원. 그는 당신을 내려다 보며 홍채의 주름을 읽듯 빤히 눈을 마주했다.
"가야지. 집에서라면 조금 더 편히 쉴 수 있겠지."
가볍게 뺨에 입 맞추려 하고는 그가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려 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 오늘은 큰일나겠어." 장난스레 뱉은 뒤 그는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곧은 척추의 선 중앙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 아마…… 내일 수업은 휴강이 될 가능성이 크겠다. 누가 그를 막겠는가? 그가 누구인가, 언더테이커 가문의 가주이자, 역대 최연소 교수이며, 끔찍하리만치 두려운 현궁의 사신 아닌가.
당신은 그가 말할 적이면 지나치게 순진하게 넘어온다. 그렇지? 속삭일 적엔 응. 하고 대답을 하거나, 부정을 해도 얼마 지나지 못해 따라오곤 했다. 그 사실이 그의 밑에서 꿈틀거리는 오만함을 충족시켰고, 때로는 온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몸짓 하나, 대답 하나, 그리고 눈짓 하나가 무기질한 눈에 맺힌다. 분명 여기에서 유달리 크게 움찔거렸지. 좋은 참고 자료다. 가볍게 입을 맞출 적 생각은 느릿하게 감기는 눈과 함께 고이 접힌다.
"이제는 못 당하겠어……."
그리고 느른하게 미소 지었다. 넘어가줄까? 그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신의 꿍꿍이에 넘어가지 않는다니, 아마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가 가주직을 겸할 적 시체를 보며 비위가 상한다거나, 시체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넘어가야지. 너도 알겠지만 나는 이해타산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너는 내게 무조건적인 이해이자 귀중한 뮤즈지 않니, 아가."
당신이 가까이 오면 허리에 팔을 둘러 당겨 안으려 했다. 보고 싶었냐고? 세상에! 이런 노골적이고 사랑스러운 단어가 있을 줄이야. 애정을 확인하고자 하는 문장에 그는 품 속에 고개를 느릿하게 파묻고자 했다.
"수업 따위 내가 알 게 무엇이겠나. 그리 생각했단다. 내팽개치고 그대로 찾으러 가야 하나 여럿 고민했지."
보고 싶었어. 한 글자씩 명료하게 발음하며 그는 고개를 슬쩍 올렸다. 이젠 그도 힘이 제법 붙었다. 마법의 힘과 함께라면 당장 당신을 안고 집까지 가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몇 번이고 보고 싶었다며 증명해줄 수 있는데. 너무 간 생각일까, 눈을 만족스럽게 휘는 것이 일단 당신이 곁에 있으니 기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