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모험가님. 스크롤에 대해서 알려드릴게요! 스크롤은 강력한 마법이 봉인된 신비한 양피지에요. 일단 봉인을 풀기만 하면 다섯살 짜리 어린아이도 천둥을 부르고 불바다를 만들거나 모든 것을 물로 쓸어버릴 수도 있죠. 위험한만큼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답니다. 애초에 만들기가 쉬운 것이 아니어서 비싼데다 구하기도 힘들지만, 강력한 마법사가 만든 스크롤은 더더욱 비싸고 더더욱 구하기도 힘들어요. "
- 길드의 접수원 레네 카비에르, 스크롤에 대한 설명
* 상황극판의 모든 규칙을 따릅니다. 규칙을 잘 지켜 즐거운 상판 라이프를! * 다크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데플'이 존재하니 모든 행동에 신중을 기울여주세요! * 고블린 슬레이어와 다키스트 던전을 모티브로 합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다. 사람의 눈을 피한답시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내일은 또 아침부터 일찍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지금부터 잠자리에 들어서야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몸이 되고부터 낮보다 밤과 더 친해져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거처까지 가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드는데, 도착해서 잠을 자려고 하면 벌써 날이 새고 있을 거야. 결국 이도저도 아닌 마을의 테두리에서 걸음이 멈추고 만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단골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겠는데, 이제 이 덩치로는 가게 문조차 지나기가 버거우니 원. 마음이 텁텁해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정말 불편하다. 겨우 하루 사는 것도 이렇게 불편하다니. 오늘까지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밤. 문득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엿같군"
그래서 무기도 버려버리고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밤을 지새울 운명이다.
맥도널 딴에선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꼴일테다. 천상의 목소리인가? 흔히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곧잘 오가는 대화이지만 이곳에 성직자 따위는 없다. 게다가 천상의 목소리치고는 너무나 건조한 어투가 아닌가. 이어서 부스럭 소리를 내며 별안간 낙엽 몇개가 먼저 살랑이며 떨어지더니, 그걸 전조로 하여 나뭇가지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사람의 그림자, 인영이었다.
"…그것보다 '엿'같다는 건 뭐지? 처음 듣는 말이다."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려 착지한 인영의 주인. 얼마 전 고향에서 상경하여 모험가를 하고 있는 네세리는 맥도널을 앞에 두고 중얼거린다. 말이 좋아 모험가이지, 지금 상황으로만 미루어보면 영락없는 암살자, 혹은 그에 준하는 청부업자의 꼴이다. 손에 들린 쌍단도, 비춰지지 않는 얼굴. 검붉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그림자 사이로 맹수의 눈알만 내놓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오해 다분한 상황이지만 풀 여지가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작은 체구와, 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은 삼각형 한 쌍. 무엇보다 길드 내에서도 인간 외의 다른 종족은 그다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맥도널이 눈썰미가 조금 있다면 그걸 캐치했을지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떨어질 심장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놀랐다. 고개를 꺾어 인기척이 난 방향을 찾자, 낯선 이는 금방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수상한 사람이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이목구비를 감추는 모습이 그보다 더 수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데다 무기까지 들었으니,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암살자인가? 나를 노리고 암살자를 보냈나? 대체 누가? 저 생뚱맞은 질문은 또 뭐야?
생각이 폭주하는 가운데 몇 가지 단서를 찾고 인식을 고친다. 평범한 인종이 아니다. 퓨레벤트였다. 저 꼬리. 저 눈빛. 흔하지 않아 잊을 수도 없는 저 종족만의 특징이었다. 암살자는 아닐 거야. 대체 어느 암살자가 표적이 방심하고 있는데 구태여 말을 걸어 경계를 사겠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길드에 퓨레벤트 하나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게 저것일지도 모른다.
후드 위로 가려진 삼각형 하나가 가볍게 팔랑이며 움직였다. 맥도널의 말에 반응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우호적인 신호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짧은 긴장감이 흘렀지만, 이내 먼저 입을 연 것은 맥도널의 앞에 있는 검붉은 후드쪽이었다.
"네가 나의 오늘 사냥감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운의 짐승」은 이유따위 없이 동족 사냥은 하지 않는다."
무기를 쥔 손을 얼굴에 가져가 망토의 후드를 걷어낸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 숨기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달빛 아래에서 드러난다.
"아운의 전사, 네세리다."
후드 안에 있는 것은 푸른 털을 가진 퓨레벤트의 소녀. 기세는 무정하나 겉 모습에서는 아직 때지 못한 앳 됨이 묻어났다. 그러나 앳 됨 속에서는, 이제 막 시작했을뿐인 모험가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강인함이 감춰져 있었던가. 과연 전사라고 이름을 댈 만하다.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는 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