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모험가님. 스크롤에 대해서 알려드릴게요! 스크롤은 강력한 마법이 봉인된 신비한 양피지에요. 일단 봉인을 풀기만 하면 다섯살 짜리 어린아이도 천둥을 부르고 불바다를 만들거나 모든 것을 물로 쓸어버릴 수도 있죠. 위험한만큼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답니다. 애초에 만들기가 쉬운 것이 아니어서 비싼데다 구하기도 힘들지만, 강력한 마법사가 만든 스크롤은 더더욱 비싸고 더더욱 구하기도 힘들어요. "
- 길드의 접수원 레네 카비에르, 스크롤에 대한 설명
* 상황극판의 모든 규칙을 따릅니다. 규칙을 잘 지켜 즐거운 상판 라이프를! * 다크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데플'이 존재하니 모든 행동에 신중을 기울여주세요! * 고블린 슬레이어와 다키스트 던전을 모티브로 합니다.
>>18 일상은 아직 제 어제 피로가 덜 풀려서.. 사실 지금도 조금 병든닭처럼 꾸벅꾸벅 졸고있어요 힝
>>19 메인 스토리의 진행 같은 경우는 주말 6시~8시사이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 퀘스트를 위한 단체 진행이나 개인 진행 같은 경우에는 시간 맞춰서 하게 될텐데 평일의 경우에는 아마 10시 이후가 될 것 같아요! 하위 퀘스트만 받으면서 생활하기도 물론 완전 가능합니다! 하위퀘스트는 당연히 덜 위험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덜 위험할 뿐이라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사람의 눈을 피한답시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내일은 또 아침부터 일찍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지금부터 잠자리에 들어서야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몸이 되고부터 낮보다 밤과 더 친해져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거처까지 가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드는데, 도착해서 잠을 자려고 하면 벌써 날이 새고 있을 거야. 결국 이도저도 아닌 마을의 테두리에서 걸음이 멈추고 만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단골 선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겠는데, 이제 이 덩치로는 가게 문조차 지나기가 버거우니 원. 마음이 텁텁해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정말 불편하다. 겨우 하루 사는 것도 이렇게 불편하다니. 오늘까지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밤. 문득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엿같군"
그래서 무기도 버려버리고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밤을 지새울 운명이다.
맥도널 딴에선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꼴일테다. 천상의 목소리인가? 흔히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곧잘 오가는 대화이지만 이곳에 성직자 따위는 없다. 게다가 천상의 목소리치고는 너무나 건조한 어투가 아닌가. 이어서 부스럭 소리를 내며 별안간 낙엽 몇개가 먼저 살랑이며 떨어지더니, 그걸 전조로 하여 나뭇가지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사람의 그림자, 인영이었다.
"…그것보다 '엿'같다는 건 뭐지? 처음 듣는 말이다."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려 착지한 인영의 주인. 얼마 전 고향에서 상경하여 모험가를 하고 있는 네세리는 맥도널을 앞에 두고 중얼거린다. 말이 좋아 모험가이지, 지금 상황으로만 미루어보면 영락없는 암살자, 혹은 그에 준하는 청부업자의 꼴이다. 손에 들린 쌍단도, 비춰지지 않는 얼굴. 검붉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그림자 사이로 맹수의 눈알만 내놓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오해 다분한 상황이지만 풀 여지가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작은 체구와, 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은 삼각형 한 쌍. 무엇보다 길드 내에서도 인간 외의 다른 종족은 그다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맥도널이 눈썰미가 조금 있다면 그걸 캐치했을지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떨어질 심장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놀랐다. 고개를 꺾어 인기척이 난 방향을 찾자, 낯선 이는 금방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수상한 사람이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이목구비를 감추는 모습이 그보다 더 수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데다 무기까지 들었으니,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암살자인가? 나를 노리고 암살자를 보냈나? 대체 누가? 저 생뚱맞은 질문은 또 뭐야?
생각이 폭주하는 가운데 몇 가지 단서를 찾고 인식을 고친다. 평범한 인종이 아니다. 퓨레벤트였다. 저 꼬리. 저 눈빛. 흔하지 않아 잊을 수도 없는 저 종족만의 특징이었다. 암살자는 아닐 거야. 대체 어느 암살자가 표적이 방심하고 있는데 구태여 말을 걸어 경계를 사겠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길드에 퓨레벤트 하나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게 저것일지도 모른다.
후드 위로 가려진 삼각형 하나가 가볍게 팔랑이며 움직였다. 맥도널의 말에 반응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우호적인 신호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짧은 긴장감이 흘렀지만, 이내 먼저 입을 연 것은 맥도널의 앞에 있는 검붉은 후드쪽이었다.
"네가 나의 오늘 사냥감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운의 짐승」은 이유따위 없이 동족 사냥은 하지 않는다."
무기를 쥔 손을 얼굴에 가져가 망토의 후드를 걷어낸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 숨기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달빛 아래에서 드러난다.
"아운의 전사, 네세리다."
후드 안에 있는 것은 푸른 털을 가진 퓨레벤트의 소녀. 기세는 무정하나 겉 모습에서는 아직 때지 못한 앳 됨이 묻어났다. 그러나 앳 됨 속에서는, 이제 막 시작했을뿐인 모험가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강인함이 감춰져 있었던가. 과연 전사라고 이름을 댈 만하다.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는 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게 퓨레벤트라면 머리에 부푼 저 모양은 십중팔구 귀겠군.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렇게 덮어 가릴 때는 응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 오늘 나를 사냥하러 온 게 아니라고, 저것은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냉큼 믿을 만큼 저것에 대한 믿음이 굳지 않다. 저것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의 신경은 두 손에 쥐어진 단검에 향하고 있었다.
... 그런데 동족이라니, 무슨 착각을 하는 게지.
"... 드레이크, 맥도널, 퓨레벤트가 아니다"
우선 착각을 고쳐주자. 생김새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산 모양인데, 그래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가. 자그마한 것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타향살이를 하다 동족을 만나면 반가울 만도 하지. 하지만 나는 그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 곧게 바라보는 눈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턱이 딱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칼끝이 내게 향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질문의 의도 또한 알 수 없다. 왜 사람을 피해 이렇게 혼자 지내고 있냐고. 어린 녀석이 나를 놀리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심기가 불편해지며 울음통이 떨린다.
"... 누울, 침대가 없다"
습관적으로 턱 밑을 긁는데 힘조절을 못해서 손톱에 핏망울이 맺혔다. 아깝게 흐르는 피를 혀로 핥고 저것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다면 사냥감을 제압하는 강함이야말로 최대의 미덕이겠지. 강함은 감추고 숨길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과시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건가. 야성이 강한 퓨리벤트라면 할 만한 생각이다.
"아운의 전사, 사람은 흑마법을 싫어한다"
그리고 흑마법에 연관된 것은 대체로 불길하다 여겨지는 법이다.
흑마법에 노출되어 괴물로 변해버린 나 같은 놈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아무리 퓨리벤트라도 흑마법의 무서움은 알 텐데, 굳이 내가 직접 말해줘야만 하는 걸까.
맥도널의 울음통이 낮게 울리자 단검을 겨누듯 하던 팔이 도로 내려간다. 분명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분 나쁜 짐승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네세리에겐 그쪽이 인간의 말보다야 훨씬 마음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침대가 없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이상하다고, 네세리는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있는 눈 앞의 모험가, 드레이크 맥도널은 강철 등급의 모험가라고 알고있는데. 격이 다른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자신과 같은 주철도 아니다. 누울 수 있는 침대라면 살 여유 정돈 있을터인데.
"...흑마법."
네세리는 맥도널의 말을 짧게 되뇌인다. 금방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알드리아 영토에 뻗쳐있는 흑마법의 역사는 깊다. 그렇기에 퓨리벤트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자신의 고향도 피할 수 없었던 곧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문제'를 처리 하는 방식은 자신도 익히 알고있었다. 그때, 네세리가 문득 착용한 베스트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꺼내보이려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 종이들은 쓸모 없는 물건이었군."
조금 거칠게 베스트로부터 손을 꺼내자 끌려나온 황색 빛깔의 종이가 손에서 허공에서 유영하며 낙하한다. 그 앞에서 갑자기 네세리는 두 손목을 서로 교차시키더니 앞으로 몸을 내밀자 다음 순간에는 이미 그녀의 등 뒤에 조각난 종잇조각들이 나풀거리며 날고 있었다. 네세리 손 안에 들려 잘그락 소리를 내는 한 쌍의 단검만이 그녀가 방금 일련의 난도질을 행했다는 것만을 암시하고 있었다. 종이는 조각이 되어 대부분 공중으로 흩어졌지만 일부는 맥도널의 앞으로 날아간다. 그것들은 이 근방의 도시괴담을 적은 이야깃거리. 제보를 원하는 전단지. 숨어사는 악어 인간의 특종지. 전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틀림없이 마을 인간들이 나의 동족을 박해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곳을 찾았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건 그저 하나의 인간이었나."
당신은 확실하게 박해를 받았고 그 눈총을 피하여 이런곳까지 일부러 숨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퓨리벤트의 소녀는 당신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르며 서있는 것이었다.
양피지를 꺼내더니 그걸 또 수고스럽게 내가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얼마나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지 짐승의 눈으로도 똑바로, 검의 궤적을 쫓을 수 없었다. 소름 끼치는 솜씨에 바람이 떠는 것을 느끼고 마른눈을 깜빡이자, 양피지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 낙화하는 꽃잎처럼 주변에 흩날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었길래. 일부러 가져와서 저렇게 찢어버리는 거지.
내 발치에 떨어지는 파편이 있어 내용을 유추해 보니, 어째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 설마, 내 이야기"
끔찍하다. 충격이다. 나는 구경거리가 아닌데, 이것들이 무슨 장사를 하려고 이런 걸 사모으는 거야.
맙소사.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여기 이 퓨레벤트는 이런 소문을 듣고 동족이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처사를 받고 있지는 않나 확인하러 나온 것이다. 퓨레벤트의 동족 의식이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또 한 번 턱을 딱 소리가 나게 부딪힌다.
"실망시켰군"
하지만 실망으로 끝나 다행일 수도 있지.
동족이 나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도저히 그냥 넘어갈 거 같지 않으니까.
내게 볼 일이 그것뿐이라면 저것도 이제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마음의 걱정을 덜자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 있던 꼬리가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대로 보내면 될 텐데, 문득 저것의 말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생각과는 다르게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만다.
네세리가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 고개를 기울이자 다시금 귀가 팔랑인다. 벌써 세 번째 일이었다. 세 번째의 의문이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맥도널의 말은 네세리에게 있어선 그다지도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알기 어려운 말이다, 드레이크. 너는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말했다. 나와 같은 동족이 아니라고."
그리하여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단지 그것뿐인 이유로, 다른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흑마법으로 리저드맨 마냥 변해버린 몸이다. 인간의 흔적은 사람 말을 하는 것외에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이 '인간'이라고 말한다면 '인간'. 퓨레벤트인 소녀에겐 그 사실말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너는 역시 우리의 동족인가? 그래서 거리의 놈들에게 박해받고 있는 것인가?"
기꺼이 투쟁의 의사를 드러내듯 종이를 찢어발기고나서 잠시 넣어두었던 단도를 꺼낸다. 달빛에 반사되어 어슴푸레한 빛으로 반사되는 날이 더욱 스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신경한 네세리의 말에 날카롭게 으르렁거리며 맥도널이 조목조목 말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네세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드레이크 맥도널.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군. 내 앞에 있는 것이 '괴물'이라고?"
손에 들린 단도의 날을 손톱 끝으로 훑었다. 마치 그 날 끝에 재와 이슬로 변해버린 것들을 이 자에서 상기 시키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는 네세리의 눈은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더더욱 길어져 작은 몸에 담긴 맹수의 혼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많은 괴물을 봤다. 우리의 고향, 아운의 땅에는 너같이 흑마법에 변해버린 괴물들이 많이 있다. 그것들은 전부 내 손에 죽었다. 전부 나의 동족이었다. 그리고 마을 녀석들이 지금도 죽이고 있지. 어제의 전우가 말도 통하지 않아. 놈들은 우리의 피와 살을 탐하고. 마침내 보금자리를 위협한다. 그것이 내가 아는 '괴물'이다."
까드득. 조용히 꾹 다문 입이 균열을 일으키며 틈을 보이자, 그 안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것이 그녀의 여정이 결국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전사 네세리는 이번엔 당신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던지는 것은 하나의 물음이었다.
들어도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보니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다. 허언은 아니겠구나. 나이에 비해 비범한 칼솜씨라 생각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나. 그러나 그렇다면 더욱더 나를 못 믿어야지. 저것의 눈에서 체념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무슨 가능성을 보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잘못됐을 때, 부탁할 수 있겠군"
이 내가 사람이라고, 우기고 싶다면 우겨라. 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나온 과거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미래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에 반드시 결과가 따라주는 세계가 아니란 것도 안다.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괴물이다.
"네 말이 맞다고, 너 혼자 믿어라,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풀밭에 무겁게 가라앉은 검을 붙잡고 역수로 쥐어 허리의 집에 되돌린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흑마법에 데어놓고도 이 나를 인간이라 부르다니. 어리석은 낙천가라면 모험가로서의 수명도 짧을 것이다. 내가 겪어온 모험가들은 비관적일수록 오래 살았다. 저것도 그럴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 방벽 유지 보수의 의뢰 등급: 주철 이상 진행: 단독 레스 내용: 지난 밤 몬스터들의 야습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 외곽 집의 울타리 유지 보수의 의뢰입니다. 망가지고 헤진 울타리를 나무로 보수해주세요. 주의사항: 밤이 오면 또 다시 몬스터들의 야습이 예상됩니다. 꼭 밤이 오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해주세요.
* 약초 채집 - i 등급: 주철 이상 진행: 단독 레스 내용: 신전에서 사용 할 약초를 캐와주세요. 약초는 외곽의 숲에서 캘 수 있습니다. 총 필요한 것은 노란색 방울꽃과 빨간색 방울꽃입니다. 가능한한 많으면 좋지만 최소 10개 이상씩 필요합니다. 주의사항: 보라색 방울꽃은 건드리기만해도 마비되는 독초입니다. 주의하세요.
* 시궁쥐 처리 - i 등급: 구리 이상 진행: 단독 레스 내용: 도심 지하에 시궁쥐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직접 들어가서 개체수를 줄여야합니다. 20마리 이상의 시궁쥐를 처치해주세요. 주의사항: 보통의 시궁쥐가 아닌 변이된 시궁쥐입니다. 좁고 어두운 곳이니 반드시 앞을 빛을 밝혀줄 도구를 챙겨주세요. 습한 곳이니 횃불을 가져가신다면 둘 이상을 추천합니다.
여기로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접수판의 의뢰서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 그 중 하나를 뜯어서 데스크로 가져온다. 레네는 '의뢰인가요~' 하고 말하며 의뢰서를 받아들었다. 등급은 구리 이상.. 하고 중얼거리며 장부를 뒤적이며 한번 더 네세리의 지금 모험가 등급을 확인한 후에 또 옆의 장부에 누가 의뢰를 받아갔는지와 출발 시간 등을 기록했다. 시궁쥐 처리라는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임무다. 일전에 세 명으로 구성된 주철 모험가 등급의 파티가 호기롭게 이것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의 시궁쥐를 처리하겠다며 떠났다가 어떻게 됐던가.
" 네에- 횃불이네요. 직접 만들어서 가져가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고 아니면 잡화점에서 몇 개 구할 수 있을거에요. 잡화점 위치는 알고있죠? "
레네는 손 끝으로 길드의 내부에 있는 조금 큰 지도를 가리켰다. 위치를 모른다면 보고서 찾아가라는 의미였고 동시에 지하로 들어가는 길이 어디 쯤에 위치해있는지도 한 번 더 확인해보라는 의미였다. 장부에 이러저러한 기록을 한 번더 하고 나서야 레네는 의뢰서에 '네세리'라는 이름을 적어 한 쪽에 정리해두었다.
" 좋은 선택이에요. 밤눈이 밝아서 횃불이 필요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시궁쥐라는건 결국 들짐승이라 불을 무서워 하거든요. 급한 상황에 잘만 사용한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거에요. 지하수로니까 물이 많아요. 가능하면 비상용으로 하나 정도 더 챙겨가시는게 좋아요. "
지하수로는 복잡하다. 습기가 차있고 오수가 잔뜩 흐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궁쥐가 있다. 작디 작은 시궁쥐가 마력을 만나게 되어 변이를 일으키면 갓난아이보다 조금 더 큰 크기까지 커져버린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호전성도 짙은 데다가 온갖 균이 득실거리는 이빨에 물리게 되면 심할 경우엔 감염으로 죽거나 상처 부위를 잘라내야한다.
" 출발 날짜는 오늘, 2시간 뒤에요. 지하수로로 가는 길 잘 기억하세요. 3일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구조대를 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길 잃지않게 조심하세요. "
돌아오지 않는 모험가를 위해 구조대를 보낸다. 물론 그 구조대도 모험가다. 의뢰를 받은 모험가를, 의뢰를 받은 모험가가 구하러 간다. 바꿔 말하자면 의뢰를 받은 모험가가 없다면 구조대도 보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퀘스트 진행] 접수원의 말에 후드 위로 솟은 삼각형이 쫑긋인다. 네세리는 어느새인가 의뢰지 사이로 접수원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 말대로다. 짐승은 불을 두려워 해.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은게 좋아. 짐승 사냥의 기본이다."
단도는 항상 예리하게 손질해두고 있지만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갈 필요는 없었다. 특별한 환경과 특별한 대상인만큼, 가장 효과가 좋은 수단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네세리는 그렇게 판단한 것일테다.
"이해했다. 그럼 다녀오겠어."
살갑게 배웅의 말을 건네는 접수원에게 그런 무뚝뚝한 말만을 던지고서는 뒤를 돌아 길드 밖으로 나섰다. 무사히 돌아올지 어떨지는 모른다. 누가 알수 있을까.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모험가가 가져야 할 자세였다. 네세리는 조금 전 레네가 짚어준 지도를 기억하면서, 잡화점에 찾아보기로 했다.
[퀘스트 진행] 약초 찾기는 익숙하다. 영산에 아무리 은총이 가득하여, 온갖 약과 열매가 피어난다 해도 길거리에 있는 걸 아무거나 집어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수에 따라 써서 되는 건 안 되는 건, 좋은 것 나쁜 것 다 따로 있고 사람에게 써도 좋은 건 안 될 것,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간 대가리를 깨야할 것 참 구분이 많았다. 심지어 영산은 넓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도시 따위.
"대지도 못하지-"
횃대를 닮은 장봉 끝에 매달린 환에게 그치? 하고 묻자 녀석이 가볍게 울었다. 봉으로 가볍게 바닥을 치니 환이 날아올랐다. 그르릉 거리는 반의 푹신한 머리를 마구 헤집고서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노란 방울꽃과 빨간 방울꽃! 가능한 많으면 좋겠어! 아 보라색은 건들지 마!"
환은 알겠다는 듯 날개짓을 서둘러 사라졌다. 아니, 그것은 환 만이 아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자유로운 깃털, 땅을 걷고 기는 이들. 그들 중 내키는 아이들은 내 부탁을 들어주려 하였다. 뛰어나가려는 듯 앞발로 땅을 긁는 반을 진정시키며 위험할 지 모르니 곁에 있어달라 말했다. 게다가 반은 덩치가 크니까, 잘못하면 보라색 방울꽃을 밟을 지도 몰랐다. 치료는 가능하겠으나 효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니 일단은 주의해둬야지.
방울꽃이 든 자루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다가갔다. 머리에서는 환이 까악거리고 옆에서는 반이 나른하게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내 어깨 위에는 다람쥐가 하나 앉아있지. 방울꽃 하나 가져오더니 돌아갈 생각 없이 내 어깨위에 올라타서는 당당하게 있는 녀석이다. 이 땅의 친구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이네.
"꽃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도와주는 아이들도 많아서 잔뜩 가져왔어."
20송이도 가뿐히 넘는 방울꽃 무리를 보여주며 웃어보였다. 어깨 위의 다람쥐가 몸을 쫙 펴는 게 느껴졌다.
칼을 한 번 휘두르고 날이 떨어질 때마다 냉정한 불호령이 떨어진다. 벌써 수십분째 계속되고 있는 광경이었다. 교관은 네세리였다. 그녀는 마침 적당한 길이로 잘려나간 나무 기둥위에 앉아 루카스가 일 합 휘두를때마다 피드백을 주고 있었다. 다만, 그 손에 들린 것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빵을 야금야금 뜯어 먹고있어 그다지 진중함이 없어보이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운의 전사가 가진 맹수의 눈으로 초보 모험가의 움직임을 쫓는 것은 이 빵을 한 번에 삼키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물론, 사람과의 교류 요령이 없다시피 한 네세리가 자진해서 이런 것을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디저트를 사는 조건을 걸어 동작을 봐주기로 한 것이었다. 마을 내에는 기초적인 훈련을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전에서의 생존까지 보장해주는 경우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모험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상황도 그런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베기로는 마물은 커녕 들짐승의 숨통조차 한 번에 끊지 못한다. 계속 말했을텐데."
그러나, 하필 네세리는 엄한 교관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날때부터 들판을 내달리며 야생을 상대로 전사의 생활을 계속해 온 퓨리벤트가, 모험가가 되기 위해 갓 칼을 쥔 인간의 생활 습관이나 사정따위를 알 리가 없던 것이었다. 그런 인간을 자신이 어떻게 봐줄 수 있을까. 네세리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그럼, 자신이 보기에 충분히 성이 찰 때까지 계속해서 동작을 반복시키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네세리는 이번에도 5분 전과 똑같은 말을 루카스에게 반복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몸은 튼튼하고 그에 걸맞는 방어력은 갖추고 있지만, 공격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점을 숨기며 '그래 맞아. 나는 공격을 못해' 라는 약점을 품고 살아가며 방패로만 살아갈 것 이냐? 라는 질문에는 '아니 그럴 순 없죠' 라고 정석적으로 답변할 수 밖에 없다.
즉 나에겐 공격력이 필요하다. 이점에 대하여 친절하고 아름다운 길드 마스코트에게 질문하니, 그렇다면 조언을 구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단련해보는건 어떠냐는 정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말이다 땡전 한 푼 없는 신출내기 모험가를 값싼 가격으로 코칭해줄 모험가를 어디서 구할까? 신출내기 모험가의 코치를 해주는 숙련된 모험가는 틀림없이 자원봉사자 혹은 길드 차원의 의뢰를 받고 시간을 때우기로 한 퇴물 모험가 정도 일것 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냥 뒤지라는 법은 없는지,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디저트라는 아주아주 싼 값에 동작을 봐주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준 모험가는 푸른색! 이라는 것을 형상화 한 느낌의 퓨리벤트 였다. 퓨리벤트가 대수인가? 지금 이 신출내기 모험가를 도와줄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흑마법사의 주술로 기괴하게 뒤틀려버린 괴물이라고 하여도(실제로 만나본 결과 이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닌듯 하다) 연신 감사를 보이며 코칭에 임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쯤 되어서는 그래도 나아졌다고 좋게 말해줄 법도 한데 이 퓨레벤트는 조금도 봐주는 법이 없다. 여전히 자신의 기준에 차지 않으니까 안 된다. 그 정도로는 목숨을 맡길 수 없으니까 안 된다. 한 방이 나지 않으니까 안 된다. 그러니 결론은 '안 된다'라는 것이다. 네세리는 마치, 원하는 동작이 나올때까지 계속 그렇게 정하고 있을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무슨 바람이라도 분 것인지 빵을 손에서 내려놓고서는 가볍게 나무 기둥에서 뛰어 내려와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를 올려보며 망토 속에서 손을 꺼내어 내미는 것이었다.
"네세리가 잠깐 받아가겠다."
다른 의도가 아니고 그 검을 달라는 것인가. 그에게서 훈련용 한 손 검을 건네어 받았다면, 물건을 파악하듯 두어번정도 뒤집어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전 경고도 없이 냅다 허공을 수직으로 갈라버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검의 궤적이 지나간 이후에도 미약한 바람이 불정도로 길드에 산재한 어중이 떠중이 모험가들과는 기백부터가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의 군더더기 없는 참격. 원하는 만큼 베고, 원하는 때에 멈춘다. 단지 그것이 너무나도 정확하고 빨랐다. 방금의 베기는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하는 거다. 다시 해봐라."
한 번의 휘두름이 끝나고나서 네세리는 루카스에게 도로 검을 돌려주고서는 별 말도 없이 자신은 다시 뒤로 물러난다. 그런데 어쩐지 루카스를 바라보는 눈이 방금과는 조금 다르다. 그냥 보기에는 조용히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에는 빵도 먹지 않고, 모든 신경을 루카스의 검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방금 자신이 한 번 더 보여줬으니 이번에는 그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마지 않는 것처럼. '기대'라고 해야할까. 그런 눈을 하고있던 것이다. 동작에 대한 일련의 설명이나 첨언도 없이, 말이다.
방향이 틀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 일까? 검을 보고 이리저리 뒤집어본다, 혹시 검이 잘못됐나? 힘의 방향의 이야기라면 자신도 이해하고 있다, 상대방의 힘의 방향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방패를 다룬다.
반향, 회전, 쳐내기 등 스스로가 방패를 다루는것엔 어느정도 자질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것과 비슷하게 검을 다루면 되는것 아닐까? 그게 잘 안되는것은 간단하다. 검이 불량품이다.
"이거 검이 불량품이네요"
그러나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퓨리벤트씨가 검을 잡고 받아가더니 자신같은 초보자가 뭐라 말하기도 힘든 완벽한 검로를 보여주었다. 어중이 떠중이에서 어중이를 담당하고 있는 스스로는 지금 방패로 머리를 깨고 다시 일어나도 흉내낼 수 있을까 말까 한 동작이었다.
"취소"
일단 보여주었으니 해보긴 하겠지만, 과연 자신이 그 기대에 충족되는 동작을 보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심호흡을 하고 검을 휘두른다. 어설프게 흉내내지만 그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것은 어쩔 수 없다. 거기다 동작조차 움직임이 크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멈추는것도 보통 힘든게 아니기에 몇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루카스가 검을 몇 번 휘두르자 네세리의 시선이 점점 칼 끝이 아닌 루카스에게로 향한다. 평소와 같은 큰 눈이 아니라, 그냥 보기에도 실처럼 얇아진 눈이었다. 그 이상으로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마치 방금 그게 정말 최선이었냐고 묻는 것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책망, 의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겠지만 순수하게 믿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더욱 컸으리라.
"인간 루카스. 나는 바쁜 몸이다. 쉬고 싶다면 나는 자리를 비키겠다만 괜찮은가?"
그런 그가 쉬고 싶다고 말하자, 네세리는 조금의 양보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 계속 연이어진 실패에 보상조차도 없고 돌아오는 말은 '다시 하라'뿐이다. 루카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용사 정도의 인간이 아니라면 오늘 미숙했던 것을 하루아침에 연마하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네세리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족들은 사냥감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하는 것에는 도가 튼 종족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본성이었기 때문에 루카스를 이해할 여지가 전혀 없던 것이었다.
"빵은 아직 남아있다. 계속 하겠다면 방패를 들어라. 오늘의 해가 지기 전에 베기를 배우는 건 무리같으니 이번엔 방어 기술을 보도록하지."
그런 그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세리는 이 순간에서도 루카스에게 일어서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