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비슷한 감정, 맞았잖아. 그렇게 말하며 히죽 웃으려다가 멈췄다. 아- 그 뒤에 이어진 말. 유우가가 너에게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만 아니었어도.
"헤에, 그래?" "그렇구나. 그럼 이걸 들어도 화는 안 내겠네? 나 사실 나냐랑 꽤 가까운 사이거든." "나냐네 동생들, 우리 가게에 자주 밥 먹으러와서. 우리 마마랑 파파도 나냐네 동생들 엄청 예뻐하셔. 가족 단위로 친해진 느낌이랄까? 나도 동생이 생긴 것 같고 좋더라." "둘이서 같이 노래방도 갔었어. 나냐, 노래 잘 하더라. 춤도 잘 추고. 위닝라이브에서 봤겠지만 말이야." "트랙에서 만나서 서로 작전에 대해 말하거나, 대상경주 전에 모의레이스도 해봤고. 아- 맞아. 사카나 삼관을 두고, 서로 1착 2착을 다투는 라이벌이기도 하지. 이와시캔에선 나냐가 이겼지만, 사바캔에선 내가 이겼지. 치열한 레이스였다고?"
너의 도발같은 말에 넘어가, 나도 꿈틀대는 감정을 더는 누르지 않기로 했다. 억누르지 않기로, 해버린 것이다. 뭔지도 정확히 모를 이 감정이, 이성이라는 이름의 빈약한 목줄을 뜯어버리고 거칠게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말하면 안 된다고, 등골이 섬찟한 느낌마저 드는 이 말까지 꺼내버리고.
"—아, 너는 모르겠구나. 대상경주에서, 같은 트랙에서 뛰며 겨루는 이 기분."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서로를 노리고 질주하는 기분이라던가... 뭐, 그렇네."
"대상경주도 출주 안 하는 너는, 절대 모를 기분이겠지." "이렇게 해도, 차갑게 대하진 않을거지? 너넨 사귀고 있으니까. 이런 말 정도로 흔들리지도 않을거잖아?"
네가 그랬잖아. 그런걸로 이렇게, 차갑게 대하진 않을거라고. 고작 가족끼리 친해지고, 노래방을 가고, 레이스를 같이 뛸 뿐인 친구이자 라이벌인 사이 가지고 그러지 않겠다고 한 거나 마찬가지 아냐?
유려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시야 끝에서, 모래사장에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옷자락 끝이 흔들리는 것을 본다. 살짝 시선을 돌리면 언제 다가왔을지 모를 당신을 보고서 마미레는 눈을 살짝 가늘게 떠낸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보다, 바다에서도 이렇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있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물끄레 보던 마미레는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당신에게 살짝 싱긋 웃어 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도 훈련이라면. 열심히 하고 있어."
농담을 하듯 말한다. 특훈이라며 열심히 훈련에만 집중하려고 했던 것도 하루를 못 갔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열대의 바다에서 신나게 놀기만 하고 있었으니, 이번에서도 얻어 갈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네가 무슨 감정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독이 든 홍차를 꿀꺽거리며 삼키는 기분. 느릿하게, 입 안이 화상으로 번져가듯, 식도를 녹이며 천천히 내려가 위에 다다르고, 가쁘게 숨을 들이키지만,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안에 잠긴것 같은 기분. 나는 이 기분을 알고있다. 추악한 감정.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질투. 열등감. 자기혐오로 범벅된 독. 벗어난 줄 알았는데. 나도, 조건전에서 탈출했잖아. 그녀가 내게 고백을 해주었고. 보여줬어. 날 믿어주던 사람들에게 증명해냈다고. 달콤한 입맞춤, 서로 끼워주던 반지. 어린 시절의 나. 끌어안던 체온. 그래,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네게 이토록 아팠겠구나. 나는 또 다시 너를, 내 안에 깊게 박혀있던 가시를 꺼내어 찔러버린거구나.
정말, 부럽네. 네 말이 끝나며, 네가 비틀어올린 입꼬리가 채 닿기도 전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밀어내듯 저 옆으로 던져버리곤. 채 테이블이, 옆 테이블에 부딪혀, 우지끈 하고 무너지기도 전에. 공중으로 뜬 야키소바. 엎어지는 사이다. 너의 라무네. 깨어지는 컵.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린건, 물질적이지 않은. 네 얼굴을 향해 오른 다리를 뻗었다. 발바닥이 무겁게, 네 코를 짓눌러 우지끈, 하고 부숴버리려, 사납게 달려들었고.
농담인데, 정말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미레 당혹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다 이어지는 네 말에 잠깐 입매가 평평히 가라앉는다. 그러고 보면 당신도 한 팀의 트레이너지. 그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마말까. 마미레는 물끄레 널 바라보며 잠시 고민한다.
"당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아무리 인연이라지만 말야. 나보단 담당인 아이들을 더 챙겨야 하는 건 아닌지. 바쁘지 않은 건지 뭔지. 마미레의 나른한 눈매가 가늘게 접힌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붙은 모래를 털어낸다.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선 마미레는 고개를 끄덕인다.
>>0 보는 눈을 기르겠다는 건가 싶다. 어째 당신이 담당하는 아이들은 완벽하니, 더 짚어줄 것이 없는지. 그래 뭐 나쁠 건 없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자신은 모르는 나쁜 버릇을 알며 고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코노와타라는 말에 마미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다, 멈칫하며 물끄레 널 본다. 고개를 끄덕이고선 마저 스트레칭을 끝내고선 선다.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어보고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