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딴에는 안 놀래킨다고 했는데 많이 놀랐나보다. 곧 이어지는 사미다레의 살벌한 뒷발차기. 빗나가서 다행이지 맞았으면 최소 전치 16주는 되었을지도...
"괜찮긴 한데, 사미다레 양은..."
여기서 뭐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괴상한 울음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졌다. ...안에 뭐가 있나? 아까 확인한 담력시험 일정엔 이런 연출은 없었던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사미다레의 기습 포옹에 당해버리고 말았다. 이건... 마사바에게 암바를 걸렸을 때보다 더욱 강한 충격... 즉 마사바 여러명이 달라붙어서 온 몸에 암바를 걸고 있는 느낌(?)
"이, 일단 좀 놔줄래...?"
이대로 있다간 진짜 숨막혀 죽겠다 싶어서, 사미다레의 팔을 툭툭 치면서 헬프를 친다. 그보다 동굴 안에 있을 생명체의 정체가 더 걱정이다. 저 울음소리의 정체가 산짐승이라거나 하면 진짜로 위험하니까.
"오컬트라.." "그들이라 말하는 건.." 이름에는 힘이 있거든요. 직접적으로 말하고.. 인식하면 그들도 우리를 알아차리니까요.. 동시에 그들의 이름을 아는 것이 퇴마의 조건 중 하나기도 하군요.. 라고 생각하는 피리카는 털썩 하고 떨어진 것과 눈을 마주칩니다. 눈동자가 흔들림조차 하나 없이 슥 움직입니다.
"눈을 마주치면 못 본 척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죠?" 히다이에게 일단 등불을 건네주려 한 다음. 그 건주줬던 손으로 떼어내려 시도합니다.
"히다이 트레이너씨. 들리시나요?" "못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지요..." 만일 떼어낸다면 어딘가 멀리에서 끼야아아악하고 사람의 뒷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비명이 들릴지도?
제기랄, 이녀석 그 어떤 씹덕용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약간 마음의 거리를 느낀다. 그래도 츠나센에서 제일 친한 녀석이란 건 변하지 않지만.
"...필요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일장연설을 하게 됐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솔직히 운동하는 놈들은 다 둔하니까 이해는 가지만 다이고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역시 나는 운동을 일찍 관둔 덕을 본 걸까 싶기도 하고.
"뭐... 근데 너랑 나랑은 다르잖냐. 너는 연애관계고, 나는 담당이고. 이쪽이 좀 더 거, 음, 뭐시냐... 모르겠는데, 나한텐 담당쪽이 더 어려운 문제라."
사실 그렇다. 가령 성장한 메이사(성장버전이다. 좀 중요하다...)가 연애를 하고 속이야기를 안 한다 치자. 그렇다면 나는 남친이라는 지위를 핑계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요구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나도 여친에게야 뭔 이야기를 못하겠냐? 솔직히 이만치 깊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다. 애정이 있어서 간편해지는 관계라는 건 분명 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인간관계고 해결법이 크게 다르진 않을테니, 나도 도움받은 셈이지. 너한테 말하면서 생각이 정리된 것도 있거든. 나야말로 고맙지."
하지만 지금은 담당, 그것도 임시 담당의 관계. 마치 무투대회에서 서로의 간합을 재듯 굴어야 하는 게 어렵다. 나야 늘 말하다시피 머리가 안 좋고 둔하기까지 해서.
"나도 너한테 큰 소리를 쳐버렸으니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됐고 말이야."
나는 먼저 일어났다. 여기서 언제까지고 시간을 끌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나 말고, 다이고가.
공포로 잔뜩 곤두선 청각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을 귀로 느낀 시점에는 이미 늦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날아든 그것은…… 엥. 그냥 박쥐다.
그러나 이 우마무스메는 그냥 박쥐에도 굴할 수준의 쫄보였으니. 사미다레는 이제 코우에게 달라붙다 못해 아예 새끼 코알라처럼 다리까지 딱 붙이고 매달리려 했다. 껴?안은 몸으로부터 덜덜 떠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사미다레도 나름대로는 참고 있는 중이었다. 뭘 참았느냐면, 착란에 빠져서 사방팔방에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말이다.
"읏, ㄴ, 네엣."
정, 정신차리자. 자칫 잘못했다간 트레이너님이 사고사하실지도 몰라. 괴물이나 유령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코우의 말에 사미다레는 퍼뜩 팔을 풀어주었다. 잔뜩 힘주어 뻣뻣하게 굳어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한다.
"그, 그럴게요. 그런데 저건 대체……."
말을 하면서도 재빨리 몸을 숙여, 코우의 등과 다리 뒤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리려 했다. 한가하게 양해를 구할 시간 따위 없었다.
"저어, 만약에 저게, 우마무스메보다 빠르다면……. 트레이너님은 도망치세요……. 뒤, 뒷일은, 남은 싸움은 제가."
내 떨리는 손은 히로카미쌤이 건넨 등불을 의외로 잘 받아들었다. 아무리 떨려도 동앗줄은 꽉 잡을 수 있는 것이 나의 생존본능이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늘고 흰 손가락이 어깨를 털어내는 것을 질끈 눈감고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들리시나요?
라는 말에 온갖 죽상을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뭔갈 못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처음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늘 영적으로 닫혀있는 타입이라는 말은 곧잘 들었지. 솔직히 가위같은 것도 평생 눌려본 적이 없고, 어디 홀린 듯이 심령스팟으로 찾아간 일도 없다.
근데 어쩐지 요즘은 진짜 기기괴괴한 현상을 몰아서 체험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정말 울고 싶다... 나뭇잎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떠보면, 어쩐지 시야가 좀 더 밝아진 기분이다. 아니 아니 뭐랄까, 아까처럼...
몰라. 단순하게 생각해서 흐렸던 하늘이 약간 개어 월광이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이제 괜찮으니까... 속전속결로 갈까요."
"...이걸 다 끝내고 나면 저 평생 귀신의집따위 안 갈 거니까..."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나 지금 엄청난 치킨이니까. 다이고 공룡치킨 옆에 히다이 순살치킨 있을 것 같다고. 나는 히로카미 쌤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와들와들 뒤따라가고...
포이그잼플의 눈알이 흘러내린 기괴한 분장에 히로카미쌤 귓가에다 비명도 지르고, 미스레드 코멧의 목이 늘어나는 귀신 분장에 히로카미쌤에게 꺄아아악 소리지르며 와드득 껴안기도 하고, 누가 쓰다 말은 피범벅 제단 장치에 흐아아아아악 좌회전좌회전제발좌회전끔찍해애애앳 하며 히로카미쌤을 들어올리고 냅다 달리기도 하며...
...결국 완주했다.
끝나자, 땀과 눈물 밤이슬 그리고 기분나쁜 검은슬라임과 거기 붙은 낙엽으로 범벅인 채였다.
아이고 깜짝이야. 박쥐의 예고없는 갑툭튀에 펄쩍 튀어오르며 비명을 지를 뻔했는데, 간신히 참아낸다. 박쥐를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이 어두운 동굴이라면 아주 귀여운 제노사이드 커터가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놀랄 것이다. 아 암튼 그렇다고~ 무서운거 아니라고~ 아무튼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데,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사미다레에게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다리까지 바짝 붙여오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몸을 휘청거린다. 무거워!!! 그래도 금방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쉴 틈도 없이 사미다레에게 번쩍 들리고야 말았다.
"...뭐?" "아니, 그래도 같이 살아야지..."
희생을 자처하는 사미다레를 말리듯이, 그렇게 말한다. 아무리 우마무스메라 하더라도 곰이나 멧돼지랑 싸워서 이기는 건... ......되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 때문일까,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게 익숙한 입장에선 담당 쪽이 좀 더 대하기는 쉬운 것 같았기에, 히다이의 말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으나... 자신이 레이니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려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어쩌다 보니 좀 더, 깊고 가까운 관계가 되어간다, 히다이가 들이받지 않았다면 아마 이럴 리 없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다이고에게 이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히다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레이니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이 되었으니까.
"숙제인가, 알겠어."
도시락이 없다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됐다, 형이 해주는 도시락 맛있는데! 매일 먹진 않지만 그래도 영양 균형이 잘 잡힌 도시락을 가끔 먹는 건 꽤 즐거워서.
"형도 힘내,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잘 끝나면 한 끼 같이 먹는 걸로 하자."
이미 일어선 히다이를 따라 일어서며 미소를 지은 다이고는 팔을 내민다, 이건 악수와 비슷하지만 다른 그런 인사다. 그런 거 있잖은가, 팔을 교차시키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