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냐 물어보면 맞아 나 바보야! 라고 대답하기 좀 애매하다고, 물론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나 히다이의 말을 들어보면 바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긴 한데, 나 그 정도야?!
"쳐들어가?"
개인적인 시간이나, 퍼스널 스페이스, AT필드?? 같은 말이 들려서 다이고는 물음표를 연발하다가, 무언가 답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히다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까, 레이니는 회피형이라는 거고, 회피형에게 피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그런 이야기인가.
"결국은 내가 먼저 얼른 말을 해야 한다는 거네, 하아... 잘못하고 있었던 거구나 이거."
그래도 조금 진전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갈 길이 멀구나, 나.
"...생각해 보니까 굳이 내 조언 필요 있었어?"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히다이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잘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고는 머리를 긁적이던 걸 멈추고 히다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밤 선착장의 그늘진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잔뜩 쫄아버리는 심약한 우마무스메. 오후 4시 무렵의 빈 교실의 적막에 지레 쫄아붙어 무서운 상상을 마구 해 버리는 쫄보 여고생. 그것이 바로 사미다레다. 그러니만큼 납량특집이나 담력시험 같은 문화엔 연이 없어야 옳을 텐데, 내로라하는 쫄보무스메가 왜 난데없이 한밤중 숲 속에서 혼자 훌쩍거리면서 헤매고 있는가? 이 이야기의 전말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자기주장이 약해 조르면 해 달라는대로 해주는 사미다레는 짓궂은 JK무스메들에게는 너무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담력시험이나 공포특집 같은 말은 쏙 빼놓고 갈 곳이 있다면서 끌려나왔다 보니 숲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러던 도중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작은 산짐승 탓에 다들 놀란 바람에 뿔뿔이 흩어져버려서…… 어느새 이렇게…….
춥지는 않은데 놀라서 뛰어다니느라 배고프고 앞도 잘 안 보여서 방향도 모르겠다. 그리고, 숲의 고요한 적막이 다른 무엇보다도 두렵다. 당장이라도 저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ー크오오오
"꺄앗!!!!!!!!"
우마무스메의 온 각력을 담은 펄쩍 뛰기!
또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한 무서운 상상이 더 심화되기 전, 그것을 끊어내듯 한 차례 요란스러운 소리가 적막을 깨부순다. 무, 무, 무무무무무무뭄뭇, 무스,ㄴ, 무슨 소리야 그거!!! 소리가 들린 곳은 바로 근처인 듯했다. 조금 더 나아가자 무언가 시커면 구멍 같은 것이 한편에 보였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니 동굴……인 것 같은데. 시커면 암굴 너머에서는 바람 소리만 쌩쌩 들리고 있다. 조금 전의 괴성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려운 한편으로도 소리가 들렸기에 오히려 안심되는 기분이 같이 든다. 왜냐하면…… 귀신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아마도? 어쩌면 너무 놀라 동물적인 비명을 지른 사람일 수도 있고……. 혼자 어두운 숲속을 돌아다니기엔 이제 지쳐서 그 혹시나의 기대에 모든 것을 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맹수라면 도망치거나 때려잡을 수 있으니 덜 무섭다. 우, 우마무스메니까. 여차하면 도망치면 될 거다. 아마도……. 설, 설마 우마무스메보다 빠른 동물이 있으려고!
"저…… 저기, 누구, 있나요……?"
사미다레는 그렇게, 폐가에 들어가며 주거 여부를 묻는 미국인 같은 대사를 하며 동굴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부외자의 입장으로써, 한두 번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는 바쁘고 집중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는 트레이너들에게 도와달라며 짐을 더 얹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담당 제의는 없었냐는 당신의 물음에 마미레는 고개를 끄덕인다. 트레이너라 하여도 당신과, 히다이와, 팀 프러시안의 미즈호만 만났던 것인데. 미즈호와는 시험 이후로는 접점이 없었고, 히다이는....... 그냥 같은 땡땡이 멤버였으며, 당신과는 오늘이 처음이다. 적극적으로 트레이너를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 여태껏 혼자 달려왔을까. 대단하다는 말에 마미레는 어깨를 으쓱인다. 굽혀 모아 잡고 있던 무릎을 펴고선 길게 다리를 뻗는다. 두 팔을 모아 머리 뒤에 대고선 누워버린다.
때는 여름 합숙의 분위기도 슬슬 무르익어갈 무렵. 코우는 학원에서 주최한 담력시험 현장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숲에 난 담력시험 코스를 따라 대충 공포 분위기가 풍기는 장치와 소품을 세팅해놓고, 아이들을 인솔하는 일종의 스태프 역할인 셈. 이번에도 한 무리의 아이들을 코스로 보낸 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으슥한 동굴로 들어가는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런 동굴이 숲에 있었던가... 아무튼 코우는 그 장신의 인영을 향해 다가간다. 낙오된 학생이 이 광활한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인솔을 하고 난 다음에 주변을 둘러보던 중에 만나게 된 코우와 사미다레. 거기 누가 있냐는 사미다레의 물음이 나오기 무색하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저 깊숙한 곳 끝에서 뭔가 보랏빛이 반짝이며, 다음과 같은 깊은 우렁찬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려 하였다…..
ー 크오오오오오오…..
동굴 안에 울려퍼지는 그 소리는 동굴 특유의 울리는 느낌으로 들려와서, 상당히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듯 싶다. 이따금씩 무언가 날갯짓하듯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내부에 무언가 있는 것은 맞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듯 싶었다. 아무튼간에 확실한 건, 저 안에 무언가 있는 건 맞아 보인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하지만 역시 그런 방식의 사랑은 나중에 가정법원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마음을 터놓는 것을 추천하고 싶었다. 물론 아직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니까... 괜찮은건가? 뭔가 머리 속에서는 이미 쌍팔년도 복대를 찬 시라기 다이고가 파친코에 간다며 비자금을 가지고 가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기도.
"만에 하나의 일이야. 그런 것과 싸우는 건 나도 처음이거든. ...나는 최강이다만, 이번에 한해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 한계일지도." "그러니 지금은 아니야. 추입하는 것 처럼 때를 기다려. 한 번, 단 한번이면 충분할거다."
레이니 너는 수플렉스 한 번에 정신이 돌아왔으니까. ...시라기 다이고의 몸을 부수지 않으면서 영혼을 돌려놓는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겠지. 레이니 왈츠가 건내는 빠따를 받아들었다. ...그래, 내가 의지를 받아주지.
쉬운 일이 아니니, 어디까지 혼자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미레는 미소 짓는 당신을 따라 부러 미소 짓는다. 마음씨도 참 착하지. "응" 하며 마미레는 고개를 끄덕인다. 도움을 구할 일이 생겨도, 미안하니 차마 말을 못 걸 것 같지만. 언젠가 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엔. 자리에서 일어나는 당신을 보고서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다시 당신을 본다. 마지막까지 친절한 모습에 그만 작게 웃음소리를 낸다. 떠나려는 당신에게 손을 살짝 들어 흔들어 보이고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