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 막을 자가 없습니다! 레이니 왈츠! 이미 종단 속도에 달한 빗방울처럼, 멈춰서지 않고 골을 향해 달립니다! 중계 ─ 그 집념은 가랑비를 뚫고 음파처럼 퍼진다! 레이니 왈츠, 비바체(vivace)로 한 편의 춤곡을 끝내고...!! 중계 ─ 1착으로 골 지점을 통과합니다! 레이니 왈츠!!
중계 ─ 레이니 왈츠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달리기였습니다! 해설 ─ 불량해서 전반적으로 빨라지고 변수가 생긴 마장의 페이스를 전혀 어렵지 않게 소화하는군요. 해설 ─ 중앙 출신의 연륜이랄지, 연습의 성과일지... 혹은 그저 천부적으로 비에 강할 뿐일까요? 역시나 달랐습니다.
중계 ─ 뒤따라 들어오는 모두의 아가씨, 치카노 하나코. 2착입니다. 중계 ─ 그리고 골 직전에서, 나카요시 칩이 케쟈니스트를 젖히며 3착으로 들어옵니다.
…몇 년도 전일까. 오비히로 초등학교에서 열린 유소년 레이스. 처음으로 지고, 땅이 꺼져라 울던 소녀에게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너는 역시 바보구나.”
“……아니야!!!”
“바보가 맞아. 한 번 진 걸로 그렇게 울잖아.”
“그야… 엄청나게 졌는걸…”
“어쩔 수 없지. 내가 가르쳐 줄게. 알겠니? 레이스라는 건…”
곁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역시 시내에서 조금 멀어진 탓일까. 벤치에 앉아서 보는 바다는 하늘의 색을 반사해서 여럿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도 소리도 없었지만,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옛날 생각만은 선명해지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뭐 어때,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을 터. 그러면 조금 부끄러운 기억들도 떠올려서 곱씹어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차례차례 올라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있어서일까. 소리는 요란 했지만 바로 앞에서 보는 수준의 현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
날씨가 더워서인지 어릴때의 기억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높은 하늘, 내리쬐는 뙤약볕을 맞으며 눈물로 젖은 상장을 들고 서있던 시절. 카메라를 잡은 선생님들의 웃으라고 말하던 목소리.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울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부끄러운 과거다. 세 명 중에서 나 혼자 울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다행인 점은 그 이후로는 전혀 울지 않았다는 거겠지. 처음에는 정말로 진 것이 분해서 울었다. 중간부터는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울었던 것인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생각이 난다. 시상식에 나온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작았던 녀석. 자기는 여기서 지면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남을 바보취급하고 말이야. 이겼는데도 당장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말하던 그 녀석이 기억나버렸다.
몇 해 전에 달리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 녀석이. 몇 해 전에 나에게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하던 그 녀석이. 그때와 같은 얼굴로 멈추라고 말하던 탓에, 정말로 멈춰버릴 뻔 했던 일들이.
분명 그 때 멈췄다면 당신은 나를 안고 울어주었겠지. 분명 그 때 멈췄다면 당신은 나와 함께 웃어주었겠지. 그 때 멈추어 버렸다면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분한 기분도 느끼지 않았겠지.
…정말로 그때 멈추어 버렸다면. 이런 경치도 보지 못한 채로 숨만을 쉬며 죽어갔겠지.
여전히 불꽃은 아름답다. 그것은 이 손으로 잡지 못하는 것이라 반쯤 비워진 페트병에 불꽃을 담아보았다. 알아, 그 사람들도, 지금의 트레이너도. 좋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마 뒤틀려 버린 것은 나 혼자 뿐이고 의외로 세상은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를 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쌓아온 인생관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내일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부숴지면 붙이고, 다시 깨지고 부숴진 가루를 모아 비슷한 형상만을 갖춘 것이 지금의 나. 이미 이런 생각도 몇 번이고 지나온 길이다. 생각해보면 그냥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는 건가.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겠지. 다행히 가장 소중했던 것만큼은 영원히 부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나의 마음은 꺾이지 않을 수 있다.
넘을 수 없는 벽은 여전히 많기만 하다. 오기로 오르기 시작했던 벽이 너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안다. 레이스에 진심이 되었으니까. 나의 진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도망치듯이 시작했던 레이스가 이제는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무섭다. 너에게, 나를 걱정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고, 그렇게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기고 싶어진다. 마치 그 시절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입에 담았던 최강이라는 말의 무게를 깨닫는다. 그게 무서워. 닿지 못하는 그들의 등이. 나 이외의 녀석들이 1착이 되는 것이. 강한 녀석들과 웃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가끔은 당신을 생각한다. 레이스가 없었다면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레이스가 없었다면 나와 당신은 만나지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레이스가 없어도 나는 분명 살아갈 수 있었을거야.
하지만 전부 의미 없는 가정이다. 어떤 생각을 해도 우마무스메로 태어나버린 것이 모든 것을 부정해버려. 운명을 적으로 삼는 주제에 운명에 순응하며 달린다. 이상한 녀석이야 진짜.
‘마음이 꺾이지 않았으면 지지 않은거야.’
“내려갈까.”
양 뺨을 가볍게 친다. 조금 얼얼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 그 이후로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다리는 움직인다. 그거면 된거야. 계속 달릴 수 있겠지. 하지만 G1에서 이기지 못하면 역사에 강자로서 이름을 남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상태로 그런 일을 이루는건… 분명 어려운 길이겠지. 아니,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확률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다리를 슬쩍 만져보았다. 여전히 잘 움직인다. 고작해야 한 번 뛰고도 이런 꼴이면 역시 연비가 나쁜 몸이다. 하지만……. 분명 따라잡을 수 있다. 나의 진심은 분명 기적에도 닿는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예전처럼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울려대는 고동이 있기에. 겨우 1승을 거뒀을 뿐이니, 그저 앞으로도 계속 싸워 나갈 따름이다. 소녀는 상장으로 눈물을 닦았다.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걸린 1분 48초.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소녀는 아이에게 말했다.
“고마워.”
아이는 장난기 섞인 미소로 웃는다. 마치 너라면 할 줄 알았다는 것 처럼.
“답례로 뭐든지 하나만 소원을 들어줄게.”
“정말로?”
“…나는 거짓말 안해.”
“그러면…”
같이 일본 더비에 가자.
…소녀는 웃는다. 조금 낮게 깔리는 카메라의 셔터음 사이로 아이들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