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수영장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 딱 10분 전이었다. 묘하게 덥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두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다. 별 건 아니었고, 그냥 여기로 오는 길에 보인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맛있어보여서 두 개를 산 것이었다.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도림에게 줄 생각이었다.
두 아이스크림은 모두 새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일단 도착하기 전에 녹지 않도록,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아이스크림이 조금도 녹지 않고 냉기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수영장. 역시나 사람이 꽤 많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며 도림을 찾으려는 순간, 그늘에서 눈이 죽어있는 도림의 모습이 들어왔다.
"...안녕. 그런데 괜찮아?"
이유는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지쳐있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가을은 살짝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도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살며시 내밀었다.
달려들듯 아이스크림을 드는 그녀의 모습에 가을은 빠르게 아이스크림을 전해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저렇게 달려들듯 잡는 것을 보니 상당히 더웠던 것이 아닐까라고 가을은 이어 생각했다. 하긴, 절대로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수영을 하거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물로 뛰어들기 충분한 온도인만큼 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야 뭐,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녹으면 안되잖아. 그래서 능력을 쓴 것 뿐이야."
별 거 아니라는 듯, 그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며 제 몫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먹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 특유의 찬맛이 돌자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주변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있기 때문에 딱히 더위를 크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별로 맛이 없게 느껴지거나,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만큼 그는 저도 모르게 아이스크림을 괜히 한 입 데 베어먹었고 천천히 녹인 후에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당연히 다 먹고 들어가야지.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수영할 순 없으니 말이야."
무슨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이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수영장이 있는 곳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일단 확인을 해볼겸, 가을은 도림에게 이어 질문했다.
"안에 사람 많이 들어갔어? 수영을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많으면 수영 연습은 힘들 수도 있으니 말이야."
적당히 있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물 반, 사람 반 수준이 되면 아무래도 수영을 오래 가르쳐주긴 힘들 수도 있기에 그는 확인차, 일단 그녀에게 그렇게 질문했다.
/갱신이야!! 으아..벌써 일요일 밤이네! ㅋㅋㅋㅋㅋㅋ 도림아....ㅋㅋㅋㅋ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싶었구나...
엘사라는 말이 나오자 가을의 눈빛이 도끼눈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그렇게 불리기 좋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유쾌하지는 않았는지 그는 이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문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머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바로 쫓겨나지 않을까. 우리. 아무튼 자유 수영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별 문제는 없겠네."
일단 어느 정도 공간은 존재한다는 것이니, 그 공간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살며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 도림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을은 살며시 고개를 돌려 도림을 바라보면서 빤히 바라봤다. 이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만으로 돈 벌기는 힘들어. 애초에 아이스크림을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그저 차갑게만 만드는 것이 고작이니 말이야. 뭐... 냉동식품 운반이라던가 그런 것은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가을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주변을 서늘하게 만든 후에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다 먹으면 얘기해. 바로 들어갈테니까. 아... 그리고..."
이어 그는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고 지나간 듯, 조금은 무심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괜히 급하게 먹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시간에 쫓길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가을은 천천히 먹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편 제 말에 그녀가 눈을 빛내면서 대답하자 가을은 도림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면서 살며시 되물었다.
"나랑 가게라도 하나 차리려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봐야겠다는 듯, 확실하게 답을 더 하진 않으며 그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 도림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표를 끊은 후에, 표를 제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확실히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넘쳐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수영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탈의실까지 걸어갔다.
"알았어. 그럼 조금 있다가 봐."
도림을 여성 탈의실로 보내고 가을은 남성 탈의실로 향했다. 입고 있는 옷을 벗은 후에, 남색 반바지 모양의 수영복을 입고, 물안경까지 머리에 낀 가을은 이내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샤워가 필수인만큼, 그는 꼼꼼하게 제 몸을 씻었다. 이어 계단을 올라 풀장 안으로 진입한 그는 도림이 있는지 그 모습을 천천히 찾아봤다.
그 목소리에 녹아있던 것은 미묘한 장난끼였다. 사실 그녀를 겨냥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약간의 짓궂음도 녹아있었다. 어쨌든 탈의실 안으로 들어선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을은 도림을 찾았고, 이내 곧 찾을 수 있었다. 풀장으로 다가가서 자신은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가을은 빤히 바라봤다.
"...괜찮은 거 맞아?"
생각보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을 하며 가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물장구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녀에게 역으로 물었다.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물장구를 치는 것이 가능해? 뭐, 일단 천천히 들어와. 네가 편한대로."
너무 무서우면 얘기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가을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풀장의 물에 집어넣었다. 시원하게 들어오는 물기운에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가볍게 잠수를 했다가 다시 얼굴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어떻게 보면 능력과 연관이 있어서일까. 그는 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 시원한 감촉. 너무나 익숙한 느낌.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기에 그는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마 도림이 없었다면 혼자서 벌써부터 수영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는 절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번 물 속에 제 몸을 온전히 다 담그며, 잠시 잠수를 했다가 다시 빠르게 빠져나왔다. 혼자가 아닌 이상, 너무 혼자서 즐길 순 없는 법이었다.
이어 물 속으로 들어오는 도림을, 정확히는 아직 벽을 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가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그는 뭐부터 하면 되냐는 물음에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가리켰다.
"일단 그 손부터 떨어뜨리는 것이 먼저 아닐까?"
뭘 가르쳐주고 싶어도 벽을 잡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그녀가 정말로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물이 무서우면 애초에 수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으며, 하지 않는 것이 좋을테니까. 그렇기에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일단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무섭다고 한다면 지금 이야기해."
/안녕! 도림주! 감기...약이라니... 감기..걸린거야? (흐릿) 하루 빨리 낫길 바랄게!
아무리 생각해도 물을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가을은 도끼눈으로 도림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만 해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줄을 잡아서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는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일단 많은 것을 바라진 않을게. 그 줄을 놓고 저기서 저기까지 한번 걸어봐. 수영하지 말고...그냥 단순하게 걸어가봐. 멈추지 않고. 쭉."
무섭지 않다고 말을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물을 무서워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객관적으로 그녀의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약 50m 정도의 거리를 제시했다. 그야말로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였다. 하지만 혼자 보낼 생각은 없다는 듯, 그는 천천히 자신 역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옆에서 같이 갈테니까 빠진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수영을 할거면 일단 뭘 잡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이 기본 조건이야."
그게 안되면 일단 이야기를 할수조차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답레를 남겨놓을게! 이렇게 답레를 남기지만 내 개인사정상 오늘은 이후에 접속하기 힘들 것 같네! 주말 잘 보내! 도림주!
혼자 따로따로 왔으면 또 모를까. 같이 왔는데 어떻게 눈앞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데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능력은 차갑지만 성격마저 그렇게 차갑지 않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가을은 도림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상태를 그는 살폈다. 일단 걸어가면서 무서워하거나 물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진 않았으니 결국 미끄러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녀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끝까지 걸어가며 자신감 있게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다만...
"수영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물에 빠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없어야하는데... 그건 괜찮겠어?"
결국 물에 빠지지 않으면 수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며시 풀장 난간을 두 손으로 잡은 후에 아주 가볍게 제 몸을 띄웠다.
정말로 가볍고 기초라면 기초인 것인데 괜찮다가 아니라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가을은 조금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기초 중의 기초부터 가르쳐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기에 그는 도림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난간을 꽉 잡고 몸을 뜨게 하는 것을 바라보며 가을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만약 그것조차도 힘들다고 한다면... 조금 더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높게 떠오르진 못하고 낮게 떠오르는 그런 느낌에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도림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몸에 힘을 빼. 몸에 힘을 주면 가라앉으니까. 완전히 몸을 물에 뜨게 한다고 생각해. 수영의 가장 기초는 물에 뜨는 것에서 시작되거든. 그리고 사람은 기본적으로 물에 뜨게 되어있어."
몸에 힘을 주고 허우적거리지만 않으면 어지간하면 뜬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도림에게 격려하듯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