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게 데리고 있다는 말을 보면,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잃어버리진 않겠지만. 농담을 건네며 스캔을 완료한 레이니는, 우선 새우튀김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튀긴지 조금은 지났지만, 아직 온기와 바삭함을 간직하고 있기에, 씹자마자 튀김 특유의 파삭, 하는 소리가 났다. 어디 하나 덜 익거나 탄 부분 없이 절묘하게 튀겨진 튀김이다...
“맛있다...”
사실, 도시락을 보고 많이 걱정했었는데, 요리 배운다고 했지. 정성스럽게 연습했을까. 저도 모르게, 입가가 누그러진다.
그건 그렇고, 침실은 침실이다. JK의 호기심은 무한해서, 닫아놓은 방문이 있다면 신경쓰이기 마련이다. 그 곳이 집 주인의 프라이빗한 곳이라는걸 눈치채고도 말이다. 튀김을 튀기는 동안, 자리를 비울수는 없다. 레이니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침실 문 앞으로 향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려고 시도해본다...
그런 잔 실수들을, 돌아보면서 좋게 추억할수만 있다면. 부끄럽다고 생각을 할 수 있더라도, 그렇다고 시도한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 밤색머리 우마무스메는 서툴지만 당신을 따라가고, 때로는 이끌어가면서. 그런 작은 추억을 쌓아갈 수만 있다면. 내 투박한 진심을 받아준 당신과 미래를 향해 발을 옮길수 있다면.
"... 정말, 고마우이. 진짜 준비도 안됬다 생각혔는디..."
"레스도, 공부도... 뭐든간에, 도와주꾸마."
당신이 고개를 숙여 입술을 밤색머리의 이마에 살짝 닿고 떨어지자, 볼이 확 빨개진다.
"... 이런거는, 쪼매 익숙케 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릴거 같지마는..."
첫 데이트부터, 당신다운 어프로치였다.
그리고, 그것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는 자신은, 정말 자신답지 않았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일지. 폭신폭신한 것이, 남이 할때는 걱정이 앞섰지만... 어찌되었든 좋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이 세상에, 자신 둘만 존재한다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
"... 그라므는 떨어져 다닐거라 생각했나..."
"... 그려, 까이꺼... 해보제이. 축제하는 곳 안에서 노는거는...처음 이겄구마는."
밤색머리의 우마무스메는, 너무 빨리 철이 들어야 했다. 꿈의 한계를 실감하고,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너무나도 빛나는 곳이여서. 이 작은 우마무스메에게 몇번이고 희망을 준다. 혹시나, 혹여나.
그리고... 그렇기에, 밤색머리 우마무스메는 달린다. 책임도 있고, 소망도 있지만... 무엇보다, 즐겁기에.
잃어버리면 나쁜 어른 스티커라는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새우튀김을 튀기는 다이고. 한 입 먹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는 자글거리는 기름을 보고 있자니 조금 심심하다. 한번에 다 튀기지 말고 그때그때 튀기는 걸로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튀김을 접시에 올린다. 🍤🍤🍤🍤... 레이니가 침실을 침범하는 것을 알지는 못한 채로... 문을 열면 보이는 침실은 평범하다, 더블 사이즈 침대에는 무채색의 이불이 베개를 포함헤 덮여 있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암막 커튼인 듯 불을 켜지 않으면 온통 깜깜하게 보일 지경이다. 불을 켜 본다면 보통 크기의 옷장 하나, 포스터 같은 게 여럿 말려서 담긴 상자 하나. 인형은 침대 옆에 있는, 수첩과 펜이 놓인 작은 선반 위에 다소곳이 올려져 있다. 아마도 한참 방 안을 구경하고 있을 레이니의 모습을 생각하지도 못할 다이고는 접시가 거의 채워지자 목소리를 냈다.
여자들의 비밀이라, 이건 쉽게 들을 수 없겠군.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던 걸즈 토크라는 거라면 단념해야 할지도.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하기 전에 새우튀김이 가득 올라간 접시를 들고 돌아서 거실로 나온 다이고는, 테이블에 레이니가 보이지 않자 접시를 내려놓았다.
"흐음, 이 작은 집에서 어딜 갔담."
현관문으로 나간 건 아니고, 창문 밖 마당은 좁으니 나갔다면 다 보인다. 화장실은 열려 있고. 침실도 열려 있... 왜 열려 있지
"설마..."
불도 켜져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다이고는 침실 쪽으로 걸어가 레이니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수첩은 메모 용도인지 통일되지 않은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장을 볼 재료 목록 같은 간단한 것부터 레이스 이론 같이 복잡한 것들까지. 두고두고 볼 내용은 아닌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표시된 부분을 확인하지 않는 한, 수첩은 그냥 단순히 메모장일 뿐이다. "새우튀김 다 됐어, 얼른 먹어."
포스트잇이 붙은 부분을 확인했든, 확인하지 않았든 다이고는 침실 문 앞에서 레이니를 불렀다.
레이스 이론이라니, 트레이닝 같은거, 신경쓰지 않길래 몰랐는데, 꽤 성실하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 페이지로 건너뛴다. 보통, 수첩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이런 식으로 표시를 해 두니까. 그리고 읽어내리는 순간... 기대와 호기심으로 양 쪽으로 산만하게 흔들리던 꼬리가, 들려오는 소리에,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레이니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다이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낼까, 무서워서.
“...미안, 다이고.”
스스로의 잘못을 알기에, 보고 있던 수첩을 재빠르게 선반 위로 도로 올려놓았다. 레이니는 다이고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문쪽으로, 이동한다.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 부분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화과자 주문 내역, 정확히 이야기하면 주문할 예정이었을 것들의 목록이었다. 어쨰서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느냐, 레이니와 함께 먹은 팥 초코가 목록에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니에게 주기 위한 주문임을 알 수 있는 메모와 함께. 메이사에게 준 초코 찹쌀떡도 목록에 있었지만 그 메모까지 레이니가 확인했을지는 모른다, 어쨌건 그 뒤의 내용들을 미처 확인하기 전에 다이고의 목소리가 침실에 들렸으니까.
"수첩 가지고 나올래? 인형도 같이."
미안하다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레이니가 재빠르게 내려놓은 수첩과 인형이 놓인 선반을 가리키며 다이고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표정은... 뭔가 강렬한 감정이 읽히지는 않는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벼운 느낌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화를 내는 표정은 아니다. 그게, 그 점이, 더 무섭다. 다이고의 표정을 확인한 레이니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다 가까스로 “응.” 이라는 가벼운 대답만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형상을 한 인형을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형의 머리카락에 볼을 비비다가, 남은 손으로 수첩도 집어들고선 침실을 나온다. 불 끄고, 문도 닫고. 그리고 침실 문을 등지고, 시선을 어느 한 곳에 두지 못한채로, 잠시 가만히 있었다.
“...미안.”
결국, 할 말은 그것 말곤 없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레이니는 의자에 앉는다. 수첩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지만, 인형은, 여전히 품에 안긴 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