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은 진심이다. 자신의 다리로 다닐 때보다 상당한 안정감과 속도... 다리 부상은 예상치 못한 불운이었지만 그 결과 이런 일도 겪어보고, 마냥 나쁜 일은 없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 어쩐지 부탁해야 할 쪽이 바뀐 것 같지만 일단은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
"......"
생각했던 대로,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3착, 4착, 5착... 그 뒤로 달려 들어온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분할 것이다, 자신의 달리기를 전부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하고.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침묵을 먼저 잘라낸 것은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울고 싶다는 말. 그래도 여기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말까지.
"울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조금은,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 그러나 딱히 농담으로 건넨 말은 아니다,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그 앞에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닿지 못했다고 해서 흘리는 눈물을 누가 나무라겠어.
1착의 경치를 본 아이에게는, 어쩌면 허락되지 않는 게 바로 후회와 아쉬움의 눈물인데. 2착이라는 이유로 울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라는 게 있을까?
"그래도 참 다행이야, 메이사. 너는 욕심이 있구나."
평소 보여주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분하다는 감정을 분명히 느끼는 모습에 솔직히 기뻤다. 승부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직접 본 거라곤 자신과의 반쯤 농담에 가까운 레이스에서 패배했을 때 보여줬던 모습 정도. 본래라면 질 리 없는 상대에게 져서 그걸 만회하고 싶다는 욕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네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나라면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분해서 펑펑 우는 걸 보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매 순간마다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까지 달렸던 걸까. 노력은 언제나 보답하리란 법 없지만, 적어도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열어주니까. 언그레이가 이번에 1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승인 중 하나를 깨달으니 오히려 홀가분해진 것도 같다. 사미다레는 언그레이의 머리에 제 볼 비비며 가볍게 웃었다. 이미 한껏 에너지를 발산한 다음이라 그런지, 혹은 아마도 자신을 위로해주러 왔을 이 둘의 마음씨에 감동한 덕인지. 어쩐지 하는 행동이 평소보다 거리낌이 없다.
"힘들다면, 잠깐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대신에 다음번에 따라잡혀도 저는 모, 몰라요……."
그런 말 장난스럽게 했다가 안았던 팔 놓고 이렇게 말한다.
"저, 에너지를 많이 썼으니까…… 초콜릿, 드시겠어요? 끝나고 먹으려고…… 그, 조금 챙겼는데."
주섬주섬 짐을 뒤져 작은 에너지바 둘을 꺼낸다. 하나는 언그레이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코우에게 주려고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마음은 모두 풀린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코우의 선물을 받아든 사미다레는 인형을 보았다가, 다시 코우를 보았다가, 또 인형을 보았다가……. 그리고 훌쩍인다. 감동이 너무 과해서다. 사미다레는 눈물 그렁그렁 단 채로 코우를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코우를 와락 끌어안으려 했다. 붙잡힌다면 아마 인간이 견디기에는 꽤나 우악스러운 서러브레드 허그가 되지 않을까…….
사람이 고심끝에 내린 결정을, 그렇게 쉽게 부정하다닛! 울컥하는 마음이 조금, 하지만 울어도 된다는 말에 흔들리는 마음은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울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해 달려서 1착을 한 아이를 슬프게 할지도 몰라. 나보다도 착순이 낮은 아이가 흘릴 눈물까지 내가 뺏어버리는게 될지도 몰라.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냥 이대로 있게 해줘.
"—그으래도 안-울거거든요! 그보다 뭐야, 분해서 펑펑 우는 걸 봐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니. 으에~ 우마그린한테 그런 취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수상한 취향❤️ 어른인데 아이가 우는 걸 보고 기분좋다니 완전 위험해❤️ 레이니도 알고 있어? 그 이상한 취향??"
그러니까, 우는 대신 말꼬리를 잡아서 억지로 놀리듯이 말하는 걸로 또 다시 감춰버린다. 아랴~ 평소보다도 조금 심해졌을지도. 아니 별로 억지는 아닌가? 남이 분해하는걸 보고 다행이라고 하다니 취미 이상하잖아.
".....그리고 뭐.. 아- 진짜. 이것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런 거, 잘 얘기 안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어쩐지 말이지. 음, 그냥... 울음 대신 토해내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래.
"어차피 집에서 실컷 울거니까, 경기장에선 별로 울고싶지 않아..." "무엇보다! 이 다음에 위닝 라이브 있잖아. 3착까지는 일단 메인에 들어가니까!! 울고난 다음에 위닝라이브를 할 수는 없는걸. 진짜~ 섬세하지 못하다니까~ 우마그린."
그녀도 이미 메이사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차한 변명이나, 사족은 필요없다. 잘못은 명백히 자신에게 있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할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미다레가 에너지바를 내밀면 잠자코 사양하려 한다. 에너지를 많이 쓴 건 그녀들이지, 자신이 아니니까. 그러다 사미다레가 훌쩍이면, 잠깐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보이다가, 끝내 안아오는 행동에 순순히 붙잡힌다.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우마무스메이기까지 한 아이의 포옹을 히토미미의 몸으로 견디려니 조금 버겁긴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뒤이어 언그레이까지 포옹에 가세하면, 조금 웃긴 꼴이 되어버리지만, 코우는 그저 양 팔을 뻗어 그녀들을 토닥여줄 뿐이다.
"그런 취향이 아니고! 그 아이도 눈물 흘릴 만큼 열심히 했구나 싶으니까 말이지~ 눈물의 가치라는 게 있잖아."
너무 어렵나... 예전에 대회에 나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승의 문턱에서 쓰러진 사람이 눈물을 훔치는 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날 이기고 올라갔으면서, 이미 준우승이라는 훌륭한 실적을 거뒀으면서 꼴사납게 울기나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금방 그 눈물이 이해가 갔다. 수많은 상대, 쉽지 않은 싸움을 하면서 올라간 끝에 미끄러지다니, 분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결국 그 사람도 도중에 떨어져 버린 나와 같이 승부에 욕심을 가지고 분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농담으로라도 레이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진짜 큰일나..."
적당히 넘기려고 했지만 레이니 얘기가 나오자 조금 등골이 서늘해져서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 본다. 평소보다 조금 구체적이고 강한 반응이라서 살짝 놀란 것도 있고.
"그렇다면 됐어, 분해도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해." "아 맞지 참! 위닝 라이브 뛰어야 되는구나!"
큿소... 이런 간단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위닝 라이브를 망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미간을 짚으며 고갤 젓던 다이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언그레이씨는 처음부터 원래의 각질을 살린 것이 아닌 작전을 세운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죠. 상황을 알고 그에 맞게 묘수를 노리는 것. 뭐 그것 뿐만이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지금의 이야기를 논하자면 답은 뭐 간단하지 않은가.
"스테이어 특유의 체력보존. 그것으로 최후반에 치고올라오는 것을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었다가 가장큰 관건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시야에서는 그렇게 보였으니까요."
반면에 처음부터 체력을 소모하는 한이 있어도 먼저 거리를 극단적으로 벌려둔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나는 마군사이를 비집는다거나 선두를 제쳐두고 마킹해서 선두가 지치는 순간을 노리는 것과 같은 묘수는 부리지 않는다. 앞서 나가는 것에 치중을 두었으니 당연히 후반에 체력을 보존하고 기회를 노렸다면 그것을 이기는 것이 힘들지 않았겠는가.
>>259 "ーー요컨대 스트라토 씨는 좀 더 체력보강 훈련이 필요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군요. 제가 본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답변이에요. "
[ 선두 ] 를 유지하는 데에는 그에 버금가는 체력이 필요하다. 중앙에서 그녀가 가르쳤을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체력이었다. 단거리는 단거리인만큼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태미너. 그렇다면 또다른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할까. 이번에는 매우 직설적인 질문이다.
"스트라토 씨께서는, [ 팀 블레이징 ] 이 당신과 반대되는 라이벌로써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자신의 라이벌이기도 한 그들 팀이 오늘 보인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니시카타 미즈호는 그걸 묻고 있었다.
"에~ 믿을 수 없는데~ 수상한 취향의 아저씨가 하는 말은~" "레이니한테 말할지 아닐지는 우마그린이 하는 걸 보고 생각 좀 해볼게~?"
킥킥 웃으면서 장난치는 사이에, 기분은 좀 나아진 것 같다. ...어쩌면 대기실에 있기를 택했던게 잘못이었을까? 조용한 곳은 침착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생각에 파묻히게 만들기도 하니까. 조금은 소란스러운 곳에 있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뭐, 그랬다면 이렇게 우마그린하고 얘기하진 못했겠지. 그럼 역시, 대기실로 와서 다행이었단걸로.
".....아, 아니...?"
춤은 연습해뒀냐는 말에, 좀 나아졌던 기분이 싸하게 얼어붙어버렸다. 아, 아뇨? 전 춤을 못춥니다... 기럭지도 짧고요, 딱히 관심도 없었고요... 위닝라이브 트레이닝은 잘 안하는 쪽이었거든요...
"...큰일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해두는건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좌절했다. 아아아악.. 과거의 나는 진짜 바보야... 아니 하지만? 대상경주에서 2착을 하는 미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고요???? 어찌보면 안했던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