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결과로 너무 아파하지 않자 결심하긴 했어도, 채 가시지 않은 감정의 여파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사미다레는 울적한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아쉬운 것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모호한 기분에 잠겨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애지중지하는 고양이의 사진이…….
그러다,
"흐약……!"
갑작스레 들려온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바짝 선 귀 서서히 돌아오며, 사미다레는 들려온 목소리를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아, 트레이너님……이랑, 언그레이 씨? 사미다레는 들어오라는 말 대신 천천히 일어나 직접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앗, 네. 그, ……아까도 봤지만. 다시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둘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왜인지 부담스럽단 기분이 들어서, 맞지 않는 어색한 인사나 해 버렸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지만, 음,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진짜로? 다리가 다 나아도 가끔 필요해지면(?) 부탁을 해볼까. 아니면 다른 트레이너를 안고 달려보는 것도 좋겠다. 중량 차이(...)도 있고 하니까. 그래, 저번의 그 노숙하던 트레이너도 괜찮던데.
"응? 아— 그건..."
갑자기 돌직구를 던져버리는군. 애써서 치워놨던 것들이 이때다 하고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걸 느끼면서, 애써 웃어보지만 음... 아무래도, 얼굴 근육은 어색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뭐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3마신이니까. 코나 목 차이보단 납득하기 쉽달까..." "......"
잠시 말을 끊었다. 꿈틀대던 것을 억누르는데 실패해버린 것 같아서, 뭔가 치밀어올라서... 말을 이으면 안 될 것 같아.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문다. 주먹을 꽉 쥔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쉰다. 그러기를 대여섯번 정도. 조금은 긴 침묵이 대기실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또 다른 말을 꺼내 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이 침묵을, 어쩌면 당신의 말을 잘라내고 다시 말을 꺼냈다.
"——마냥 기쁘진 않지. 뭔지 모르겠어서, 복잡하고. 울 것 같아." "그래도 여기에선 절대로, 절대로 울지 않을 거야."
머리 한 구석에서 뭐 이런 걸로 그렇게 결연하게 구냐는, 냉정한 듯한 비아냥이 퍼지지만 애써 무시했다. 무거운 입술이 다시금 떨어진다. 비록 목소리는 떨리더라도 당당하게, 고한다.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그런 짓따윈, 절대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여기선 절대로, 내보이지 않을 거야." "1착은 아니더라도 나는 승자야. 그리고 승자인 이상 꼴사납게 굴 순 없어. 그게 승자의... 이 자리에서의 내 의무야."
/거창하게 쓰긴 했는데 반2등이 하나 틀렸다고 우는거 보면 다른 애들 킹받을테니까 하지 않겠다는?겁니다 딱히 별 거 아닌데 비장한 음악 듣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린ㅋㅋㅋㅋㅋㅋㅋㅋ
싱숭생숭한 태도는 어림도 없다는 듯 문을 열자마자 덮칠 듯 안아오는 언그레이의 행동에 잠시 눈이 동그래진다. 사미다레는 잠시 당혹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몸을 숙이고 자신 역시 언그레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열이 식어 싸늘하던 몸이, 품 안에 들어온 체온으로 인해 데워진다. 조금은 헛헛하던 마음이 그제서야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다.
"언그레이 씨도요. ……지난번에,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정말 잘 해내셨네요."
지난번 트레이닝에서 보였던 불안정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엿한 1착을 따냈지 않은가. 사미다레는 언그레이를 조금 더 힘 주어 꼬옥 끌어안다가 슬쩍 고개 들어 코우를 바라보았다. 코우에게도 오라는 듯 살살 손 흔든다.
>>185 이 노래일 가능성이... 있어요. 물론 농담이죠. 캡틴이 거기까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다고 하네요!
에헤헤... 명심해 두셔야 할 건, 저나 캡틴에게 물어보셔도 원숭이 손 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점이에요. 왜냐하면 『시핑 금지』 폴리시와 심해의 음습한 기운으로 인해, 주접노트가 네크로노미콘 비슷한 걸로 변해서... 이미 원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괴이한 마도서가 되었기 때문이죠.
노스트라다무스메 「물론이지! 흐하하하하하...!」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메 쨩과 함께 낭독해 볼 거예요. 준비 됐나요?
>>170 다이고 포 이그잼플 「『다이고처럼 건장한 인남캐 트레이너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걸 생각하니 참을 수 없다』래요.」 노스트라다무스메 「시라기 트레이너한테 '지켜지고 싶다'가 아니라 '지켜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이미 끝이야.」 노스트라다무스메 「이미 수많은 어두운 눈길이 그를 노리기 시작했을 거라는 의미지...! 흐흐흐...」
>>174 유키무라 노스트라다무스메 「스킨십(🤨) 포옹(😯) 주먹다짐(😆) 칼찌(😝쿠오오오옷🔥🔥🔥🔥🔥)」 노스트라다무스메 「이게 무슨 뜻이지? 저기, 암흑의 사도. 이거 알아?」 포 이그잼플 「응, 그치만 노스트라 쨩은 모르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
>>178 메이사 포 이그잼플 「『고마워 메이사, 내게 공기이자 물이고 빛과 소금인 삶의 가장 필요한 존재를 채워 주어서.』 음...?」 포 이그잼플 「『많이 무겁고 진한 사랑, 게다가 2P와의 자공자수까지, 정말 고마워.』 역시 캡틴은...」 노스트라다무스메 「흐흐흐흐... 자기 자신과 결혼하는 건 어느 신화에나 있지...!」
>>179 미즈호 노스트라다무스메 「이 페이지, 비어 있군. 근데 이 고소한 냄새는 뭐지? 킁킁...」 포 이그잼플 「이미 지켜보고만 있어도 애정력과 꽁냥꽁냥이 충분히 쏟아져나온대요.」 노스트라다무스메 「아, 깨 냄새였나.」
>>184 마사바 포 이그잼플 「그, 그, 럴, 리, 가, 없, 잖, 아, 요────💦💨」 노스트라다무스메 「암흑의 사도가 고장났으니 내가 대신 읽겠네. 『마사바 같은 존재를 이 바닥에서는 총공이라 부른다.』」 노스트라다무스메 「『이런 상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사바가 깨무는 건 소꿉친구뿐만이 아니라고. 어쩌면 츠나센의 모두를...』」
포 이그잼플 「앗, 아, 아, 아...」 노스트라다무스메 「... 암흑의 사도는 타토 트레이너를 제외한 사람에게는 대단히 숙맥이라서 말이야.」 노스트라다무스메 「연애 농담을 조금만 건네도 이렇게 되어 버려. 흐흐흐... 그럼 모두 이만, 종말이 올 때 보자고...」
사미다레가 손을 흔들면, 코우도 그녀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한 손으로 각각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한다. 듀얼코어 쓰담(?)
"둘 다 정말 잘 해줬어."
특히, 언그레이는 선천적인 결함을 잠깐이나마 극복하고, 강력한 우마무스메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1착을 따내었으니. 곧, 코우는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중간 크기의 상자를 두 개 꺼낸다. 각각 봉제인형이 하나씩 포장되어 있는 상자였다. 교내 굿즈 동아리인 키즈나 워크스에 위탁하여 제작한 것. 하나는 언그레이 데이즈의 사복 차림 인형, 나머지 하나는 사미다레 스와브의 사복 차림 인형이다.
반쯤은 진심이다. 자신의 다리로 다닐 때보다 상당한 안정감과 속도... 다리 부상은 예상치 못한 불운이었지만 그 결과 이런 일도 겪어보고, 마냥 나쁜 일은 없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 어쩐지 부탁해야 할 쪽이 바뀐 것 같지만 일단은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
"......"
생각했던 대로,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3착, 4착, 5착... 그 뒤로 달려 들어온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분할 것이다, 자신의 달리기를 전부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하고.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침묵을 먼저 잘라낸 것은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울고 싶다는 말. 그래도 여기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말까지.
"울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조금은,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 그러나 딱히 농담으로 건넨 말은 아니다,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그 앞에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닿지 못했다고 해서 흘리는 눈물을 누가 나무라겠어.
1착의 경치를 본 아이에게는, 어쩌면 허락되지 않는 게 바로 후회와 아쉬움의 눈물인데. 2착이라는 이유로 울어서는 안 된다는 의무라는 게 있을까?
"그래도 참 다행이야, 메이사. 너는 욕심이 있구나."
평소 보여주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분하다는 감정을 분명히 느끼는 모습에 솔직히 기뻤다. 승부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직접 본 거라곤 자신과의 반쯤 농담에 가까운 레이스에서 패배했을 때 보여줬던 모습 정도. 본래라면 질 리 없는 상대에게 져서 그걸 만회하고 싶다는 욕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네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나라면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분해서 펑펑 우는 걸 보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매 순간마다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까지 달렸던 걸까. 노력은 언제나 보답하리란 법 없지만, 적어도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열어주니까. 언그레이가 이번에 1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승인 중 하나를 깨달으니 오히려 홀가분해진 것도 같다. 사미다레는 언그레이의 머리에 제 볼 비비며 가볍게 웃었다. 이미 한껏 에너지를 발산한 다음이라 그런지, 혹은 아마도 자신을 위로해주러 왔을 이 둘의 마음씨에 감동한 덕인지. 어쩐지 하는 행동이 평소보다 거리낌이 없다.
"힘들다면, 잠깐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대신에 다음번에 따라잡혀도 저는 모, 몰라요……."
그런 말 장난스럽게 했다가 안았던 팔 놓고 이렇게 말한다.
"저, 에너지를 많이 썼으니까…… 초콜릿, 드시겠어요? 끝나고 먹으려고…… 그, 조금 챙겼는데."
주섬주섬 짐을 뒤져 작은 에너지바 둘을 꺼낸다. 하나는 언그레이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코우에게 주려고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마음은 모두 풀린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코우의 선물을 받아든 사미다레는 인형을 보았다가, 다시 코우를 보았다가, 또 인형을 보았다가……. 그리고 훌쩍인다. 감동이 너무 과해서다. 사미다레는 눈물 그렁그렁 단 채로 코우를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코우를 와락 끌어안으려 했다. 붙잡힌다면 아마 인간이 견디기에는 꽤나 우악스러운 서러브레드 허그가 되지 않을까…….
사람이 고심끝에 내린 결정을, 그렇게 쉽게 부정하다닛! 울컥하는 마음이 조금, 하지만 울어도 된다는 말에 흔들리는 마음은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울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해 달려서 1착을 한 아이를 슬프게 할지도 몰라. 나보다도 착순이 낮은 아이가 흘릴 눈물까지 내가 뺏어버리는게 될지도 몰라.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면, 그냥 이대로 있게 해줘.
"—그으래도 안-울거거든요! 그보다 뭐야, 분해서 펑펑 우는 걸 봐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니. 으에~ 우마그린한테 그런 취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수상한 취향❤️ 어른인데 아이가 우는 걸 보고 기분좋다니 완전 위험해❤️ 레이니도 알고 있어? 그 이상한 취향??"
그러니까, 우는 대신 말꼬리를 잡아서 억지로 놀리듯이 말하는 걸로 또 다시 감춰버린다. 아랴~ 평소보다도 조금 심해졌을지도. 아니 별로 억지는 아닌가? 남이 분해하는걸 보고 다행이라고 하다니 취미 이상하잖아.
".....그리고 뭐.. 아- 진짜. 이것까진 말 안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런 거, 잘 얘기 안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어쩐지 말이지. 음, 그냥... 울음 대신 토해내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래.
"어차피 집에서 실컷 울거니까, 경기장에선 별로 울고싶지 않아..." "무엇보다! 이 다음에 위닝 라이브 있잖아. 3착까지는 일단 메인에 들어가니까!! 울고난 다음에 위닝라이브를 할 수는 없는걸. 진짜~ 섬세하지 못하다니까~ 우마그린."
그녀도 이미 메이사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차한 변명이나, 사족은 필요없다. 잘못은 명백히 자신에게 있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할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미다레가 에너지바를 내밀면 잠자코 사양하려 한다. 에너지를 많이 쓴 건 그녀들이지, 자신이 아니니까. 그러다 사미다레가 훌쩍이면, 잠깐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보이다가, 끝내 안아오는 행동에 순순히 붙잡힌다.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우마무스메이기까지 한 아이의 포옹을 히토미미의 몸으로 견디려니 조금 버겁긴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뒤이어 언그레이까지 포옹에 가세하면, 조금 웃긴 꼴이 되어버리지만, 코우는 그저 양 팔을 뻗어 그녀들을 토닥여줄 뿐이다.
"그런 취향이 아니고! 그 아이도 눈물 흘릴 만큼 열심히 했구나 싶으니까 말이지~ 눈물의 가치라는 게 있잖아."
너무 어렵나... 예전에 대회에 나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승의 문턱에서 쓰러진 사람이 눈물을 훔치는 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날 이기고 올라갔으면서, 이미 준우승이라는 훌륭한 실적을 거뒀으면서 꼴사납게 울기나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금방 그 눈물이 이해가 갔다. 수많은 상대, 쉽지 않은 싸움을 하면서 올라간 끝에 미끄러지다니, 분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결국 그 사람도 도중에 떨어져 버린 나와 같이 승부에 욕심을 가지고 분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농담으로라도 레이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진짜 큰일나..."
적당히 넘기려고 했지만 레이니 얘기가 나오자 조금 등골이 서늘해져서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 본다. 평소보다 조금 구체적이고 강한 반응이라서 살짝 놀란 것도 있고.
"그렇다면 됐어, 분해도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해." "아 맞지 참! 위닝 라이브 뛰어야 되는구나!"
큿소... 이런 간단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위닝 라이브를 망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미간을 짚으며 고갤 젓던 다이고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