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회는... 영 사감님 덕분에 귀기 무 씨를 멸문시키는 게 아니라 계승하기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대요~ 아무래도 적룡의 독기도 있지만 쌓아온 게 많으니까요, 응. 그게 가장 큰 미련 중 하나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멘탈이 여기서 한 번 더 흔들리면 온건한 계승은 아닐 거라 생각이 드는데(사실 지금도 온건한 계승은 아닌데요... 무야옹 쟤가 지금 칼을 가는데요.. ) 이것도 맛있고(대체)
아마 온화랑도 조만간에 대화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형제의 머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이 절대 온화가 선의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부차적인 목표(하 사감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아마 하 사감이 나갈 수 있게끔 돕지 않을까 생각하구...
어쩌면 이자식 하 사감 자리를 위임할 방법이 생기면 자기가 하겠노라 할지도...🤦♀️ 아무튼!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긴 했답니다. 아회 기준으로요. 가문을 잇는다니... 남 입장에선 드디어 미쳤나 싶어도 본인 기준으로는 지금 가장 최선의 선택인 무언가...
적어도 지금 멘탈 상황처럼 다 포기할래... 그냥 목 내어줄래... 절하고 그대로 모가지 뎅강 당할래... 혼사로 팔려갈래...가 아니니까...🤦♀️ 저는 분명 비설에 써두기도 했고요... 아회가 절대 정상은 아니라고...😏
거듭되는 친절이 익숙하지 않다. 차가운 북부에 익숙해진 나머지 형식적인 온정인 것을 알면서도 뜨겁다고 느껴, 살이 따끔거리는 것 같다. 미적지근한 온도인데, 그저 학생이니까 걱정하는 것인데, 졸업하면 마주할 리가 없는데 그깟 학생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 대해주는 걸까. 속절없이 무너지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으, 윽."
그리고 듣게 되었을 때는 다시금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손등으로 훔쳐도 그치지 않는다. 복주머니를 받았을 때는 세상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소중하게 쥔다. 어떻게 쓰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니 나중에 여쭤보는 것이 좋겠디. 훌쩍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눈물만 뚝뚝 떨어지는 꼴이 영락없는 그 나이의 학생이었다. 치기어린 생각으로는 우는 자신이 추하다고 느껴지나, 한편으로는 후련했고, 자신이 참 잔인하노라 생각했다.
"……."
그래, 당연하지. 가문의 멸문지화가 아닌 계승을 선택하는 자신이 어찌 잔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흐름이 아니다. 선택이다. 선택할 수 없던 괴로운 삶에서, 온전히 내가 해내는 선택. 이 정도면 발전이 아닐까. 스스로 그리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훔친다. 이어지는 친절. 아회는 이 친절을 일단 신뢰하기로 했다.
"그게……."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비빈다. 또르르 눈물 흐르던 눈을 크게 깜빡이며 옆을 본다. 당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참 봐야 하거니와 봐도 제대로 얼굴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하나라도 기억해보고자 함이다. 이내 아회는 어색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찾아가겠노란 대답이자, 당신의 제안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문득 그런 생각 들었다. 아니. 그 때의 기분 들었다. 제 운명 뒤집히던 그 날. 목숨의 위협 앞에 두고 들었던 긴장과 공포와 의미불명의 희열-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다르다. 저 너머에서 피냄새 흘리는 궁기는 제 언니와 같지 않다. 저 목소리도 필시 진심이 아닐 것이다. 진심이더라도 언제 손바닥 뒤집듯 바뀔 지 모른다. 궁기로 인해 일어난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빌어먹을 그 모든 사태의 원흉이 뭐라고? 경계하지 말라고?
"거 참. 지나가던 개도 듣고 귀 털어버릴 말일세."
한순간 어이없어서 긴장도 공포심도 느슨해졌다. 덕분에 몸 꽁꽁 싸맨 듯 하던 것 풀렸다. 어이가 없어도 바닥까지 싹 털릴 정도로 없다. 그 기세 탓일까. 숨었던 자리에서 성큼 나가 다시 궁기 앞에 모습 드러내었다. 이후 무슨 일을 당하던 할 말은 해야겠으니.
"누구 마음대로 내 가치가 있니 없니를 논하시나. 허? 아주 대단한 인물 납셨어. 내 대가리 위에 서 있는 양 아주 거만하게도 씨부리시던데. 허 참. 내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 하겠구만."
다시 마주한 궁기가 어떤 꼴 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눈에 들지 않았다. 그 모습 살피기보다 당장 목까지 차오른 말 먼저 해야 속이 시원할 듯 했다.
"뭘 하고 싶은 건지 몰라도 하려면 주변에 폐나 끼치지 말던가. 여기저기 다 쑤시지 않으면 못 할 일인가? 댁이 재주 없어 안 되는 일이라 생각은 안 해봤나? 분수 모르고 나돌아재끼는 애ㅅ끼랑 다를게 뭐야. 나이 얼근히 처먹었으면 정도라는 걸 알라고."
일단 급한 말들 우루루 쏟아내고. 당당히 서서 제 팔짱 끼고 궁기 빤히 보았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보던가. 하듯이.
매만지면 되는구나. 아회는 고개를 다시금 끄덕였다. 할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생각할 것이 많다. 눈물을 다시금 그쳐가듯 손등으로 고인 것을 닦아낸다. 복주머니를 쥐고, 품에는 초콜릿과 젤리가 안겨져 있으니 제법 학생다운 모양새지만 영 익숙하지 않다.
"들어, 가, 십시오."
자리를 떠났을 때, 아회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운명에 휩쓸려 죽을 것을 생각하여 목화를 돌려보냈다. 사과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회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좋아졌다고 남이 좋아지는 일은 없다. 학당에는 수도 없이 위험이 생길 터다.
"……정신 차리자."
짝!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치는 소리 들린다. 자신은 졸업 이후가 되었든 당장이 되었든 새로이 할 일이 생겼다. 살아남고자 하였으니 그 자리 공고히 해야만 한다. 악인의 길을 벗어날 수는 없을 터이나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그러하였음을 알면 누구 하나 정도는 이해할 일이다. 그러니, 그러니 약조를 하고 오자. 순수한 존재를 더럽히고 싶지 않거니와 내 욕심 크기에.
홧김에 이 말 저 말 내뱉어놓고 뒤늦게 아차- 싶었다. 상대는 궁기인데 어찌 그리 경솔하게 말 내뱉었을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동안 쌓인 것도 많았기에 일부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니 더 쫄지 않고 어떻게든 나선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는데.
"하?"
이 인간. 아니 인간 맞나. 아무튼 이 사내 하는 말 갈수록 가관이다.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제 안의 여의주도 들켰다. 이미 하나 빼앗겼다던 동 사감의 여의주 생각나며 저도 모르게 소름 오싹 끼쳤다. 그는 궁기다. 신선도 신수도 아닌 저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 빼앗아가는 것 쉬울 것이다. 다시금 마른침 삼키며 눈 깜빡임도 잊은 채 응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가오길래 저도 똑같이 뒷걸음질 쳤다. 사이의 거리 어떻게든 유지하려 하며 입 열었다.
"해 입힐 생각 없단 말을 어찌 믿어야 할까. 지금까지 한 짓은 죄다 아침밥에 말아먹었소? 후배 앞에 선 선배? 웃기시네. 나는 댁 같은 거 선배로 둔 기억 없소. 헛소리는 1절만 하시게."
한 손 허리에 올려 역린 쥐었다. 허나 뽑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등 뒤로 돌려 궁기에게서 감추듯 하려 했다.
"거 눈이 참 밝나보오. 뵈지 말아야 할 것도 뵈는 것 보니. 그리고 내가 댁을 왜 찔러. 그건 내 역할이 아니지 않나? 시험 삼는다고 해도 그런 짓 내가 할까보냐. 난 내 하얀 오라비한테 미움 받기 싫소."
낄낄. 명백한 비웃음 흘리고. 두 눈 똑바로 떠 궁기 보았다.
"이제야 겨우 누이 대접 받으며 이쁨 받을까 말까- 인데. 내 복에 내가 초치는 짓은 안 해야지. 아니 그렇소?"
한쪽 입꼬리 비틀어 올려 웃었다. 궁기가 제 말을 알아들을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울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