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일 수도 있다. 아회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뒤로 내딛고, 삑삑거리는 울음소리가 여럿 들리며 그 소리가 커질수록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감각은 거세졌다. 자신은 귀인이 아니다. 위험한 존재다, 자신은, 나는, 그러니까─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는다. 그는 몸을 빙글 돌렸다. 걸음은 그대로 달음박질로 변모했다.
딸랑!
요란하게 차임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아회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 도망치려 들었다. 그리고 광인이 되어 거리를 달렸다.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귀를 틀어막고 달리자 몸을 가렸던 너울의 비단이 거칠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달리는 통에 바람을 이기지 못한 너울이 뒤집어져 벗겨지고, 옷깃과 함께 가을 바람에 펄럭이던 머리카락의 붓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박차는 걸음에 튕겨져 날아간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쑥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회는 골목을 향해 달렸다. 어떻게든 인적이 드물던 그 장소로, 학당과 가장 가깝던 그곳으로. 듣고 싶지 않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돌아가서, 뭘 해야 하지? 탈출구가 어딨지? 끝없는 굴레의 쳇바퀴에서 내릴 방법이 있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미친 사람으로 봐도 좋고, 자신을 쓸모 있는 패로 봐도 좋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줘."
차라리 내가 온전한 잿더미였더라면. 이딴 미적지근한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잔열조차 식었더라면. 내가 조금 더 악독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뭐든 바쳤을 텐데. 아회는 우뚝 서더니 얼굴을 덮어 가렸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가에서 뜨거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학당으로 돌아온 후엔 일단 의뢰 하나 마쳤으니 좀 쉴까 싶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가진 것도 많아 내려놓을 겸 방에 가기로 한다. 긴 다리 쭉쭉 뻗어 냉큼 기숙사로 돌아가선 딴 길 새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 문 벌컥 열어 젖히며 들어가며 그리 말했더란다.
"나 왔다- 요놈 털뭉탱이는 자고 있나 어쩌나- 으이?"
들어가자마자 퍼프스캔의 둥지 들여다보는게 요즘 습관이었다. 기다리는 존재 있다는 것이 어찌나 위안 되던지. 둥지 슥 보고 두루마기 벗어 의자인가 책상인가 홱 던져놓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푹신한 이불과 침대가 오늘따라 유난히 각별하구나-
도망쳤다. 도망치고 말았다. 심장이 뛰고 있나? 뛰지 않는 건가? 모른다. 어떤 것도 모르겠다. 우는 건가? 웃나? 모른다, 모른다……. 아회의 꼴이 엉망이었다. 너울은 바닥에 떨어뜨린지 오래요, 머리카락은 뛰느라 산발이 됐고,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로 범벅 졌다. 아회는 덜덜 떨며 머리카락을 꽉 잡던 손을 아래로 쭉 내렸다. 두피를 당기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이 우유부단함이 지긋지긋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이 서로 휘몰아치며 몸을 맞댄다. 서로 맞댈 때마다 생기는 파편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돌이킬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나아가길 바라고 있는 감정이, 그리고 차라리 뒤를 돌라는 감정이 끝없이 싸우기 시작하다 결국 박살이 나버리는 것 같다. 아회는 훌쩍일 틈도 없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갈 곳이 있나? 갈 곳이…….
"돌아갈 곳도 없는 주제에."
다시 돌아가서 무엇하게. 목화라도 기다리게? 영이를 기다리게? 아니면 몸뚱이를 공물로 바치게? 무덤가에 이부자리를 깔고 눕게? 내가 대체 무얼 할 수 있다고. 내가 대체.
갈 곳조차 없다. 어디에도 발 들일 곳이 없었다. 열심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막상 자신은 한 뼘도 못 되는 길이의 얇은 실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 끊어질 것이고, 결국엔 추락하여 아래에 돋아난 가시와 깨진 유리 조각에 찔려버릴 텐데. 그 사실을 깨닫자 비참함이 몸을 덮었으나 울지도 못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증오심을 표출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 대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이대로 자멸하길 바라는 걸까. 그대로 형님 앞에서 쓰러지는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쓸쓸하게 홀로 부서지길 바라는 걸까……. 해저 깊숙한 곳에서 그렇세 죽어가라는 것인가.
"……."
인기척이 느껴진다.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달리 갈 곳도 없다. 아회는 발치에 보이는 뭉개진 무언가를 보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 존재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하필이면 학당의 사람이다. 아회는 입술을 벌리다 꽉 깨물었다. 무언가 얘기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뭔가 뱉으려고 해도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내버려 두십시오……. 소중한 자를 두고 왔습니다, 결정할 준비를 하러 갑니다, 아무래도 제 삶이 제 것이 이닌 것 같습니다, 왜 나를 혼자 두질 않는 거야.
"으윽."
말을 하지도 못하고 목 너머로 북받쳐 오르는 소리가 흘렀다. 참아야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추태를 보일 수 없는데! 간절한 소망과는 다르게 흑, 하고 다시금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되어버린다. 아회는 그대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어떻게든 눈물을 삼켜보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목 졸린 신음같은 울음소리는 서러워졌고, 숨을 삼킬 때마다 몸이 크게 들썩였다.
잔잔하게 한숨 자듯 쉬면 좋았겠지만- 아직 한창 돌아다닐 시간이니 바깥 시끌시끌하여 제 바람 이루지 못 했다. 그렇지 않아도 딱히 잘 생각은 없었으니.
조금 더 이불 속에서 뒹굴다 부스스 일어난다. 기지개 한 번 개운하게 켜 주고 벗어던진 옷 차례로 다시 주워입었다. 마지막으로 두루마기 걸칠 적. 소매에서 박하 가지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반쪽짜리 영약도 손수건에 고이 감싸 그 옆에 놓고. 휙 돌아 나가려다 퍼프스캔의 둥지에 손 뻗었다.
"이- 놈시키! 내가 왔다 가는데도 잠만 자! 으이?"
낄낄. 웃으면서 자고 있는 퍼프스캔을 사정없이 쓰다듬었다. 괜히 잠 깨워놓고 또 다녀오겠다며 놀리는 성미 참 얄밉기도 하다.
"잘 놀고 있어라. 여기저기 쑤시진 말고-"
이번에도 퍼프스캔- 보드리 방에 남겨두고 홀로 나섰다. 다른 의뢰 뭐가 있었던가. 다시금 게시판 앞으로 슬렁슬렁. 설렁설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