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신령이 모여들자 너울 속에 가려진 한쪽 눈동자가 점차 긴장하듯 작아진다. 속이 좋지 않다. 금방이라도 감정을 토해내며 무너질 것 같다. 도와주냐고? 선물을 보내냐고? 시선이 천천히 잠든 목화를 향했다.
도와주다 깰 것이지. 그럼에도 네 도울 것이냐? 무른 녀석이로구나. 북부의 사람이 어찌 북부 바깥 놈들을 흉내내려 들어. 네가 그렇게 군다고 해서 네 주변이 바뀔 것 같아? 네 소중한 모든 존재를 심지가 굳게 서는 것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제거하는 사람이 바뀌겠느냐? 네 뒤틀린 심성이 그 지루함을 견딜 것 같으냐? 아니면.
"……그간, 감사했다는, 별사탕을, 드리러 왔습니다."
네가 감히 대적할 수 있다 보느냐? 네가 해야 하는 일을 내팽개칠 수 있을 인물이느냐? 아니다. 너는 죄를 안고 속죄해야 하지 않느냐. 어머니의 유언을 지켜야지. 심장이 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쿵쿵거리던 심장 소리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들리지 않는다.
"……학당이 많이 위험하여, 목화의 신변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부디 부탁합니다."
별사탕이 담긴 다른 바구니를 내려두고, 목화가 잠든 바구니도 내려둔다. 별사탕 바구니에는 많은 양의 별사탕이, 목화가 있는 바구니에는 그간 목화가 마음에 들어하던 작은 인형, 목화 몫의 별사탕, 그리고 직접 만든 솜이불과 베개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내려두기가 무섭게 표정을 숨기고자 도망치듯 자리를 뜨려 들었겠지. 피가 식어간다. 머리가 멍하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일 수도 있다. 아회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뒤로 내딛고, 삑삑거리는 울음소리가 여럿 들리며 그 소리가 커질수록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감각은 거세졌다. 자신은 귀인이 아니다. 위험한 존재다, 자신은, 나는, 그러니까─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는다. 그는 몸을 빙글 돌렸다. 걸음은 그대로 달음박질로 변모했다.
딸랑!
요란하게 차임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아회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 도망치려 들었다. 그리고 광인이 되어 거리를 달렸다.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귀를 틀어막고 달리자 몸을 가렸던 너울의 비단이 거칠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달리는 통에 바람을 이기지 못한 너울이 뒤집어져 벗겨지고, 옷깃과 함께 가을 바람에 펄럭이던 머리카락의 붓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박차는 걸음에 튕겨져 날아간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쑥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회는 골목을 향해 달렸다. 어떻게든 인적이 드물던 그 장소로, 학당과 가장 가깝던 그곳으로. 듣고 싶지 않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돌아가서, 뭘 해야 하지? 탈출구가 어딨지? 끝없는 굴레의 쳇바퀴에서 내릴 방법이 있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미친 사람으로 봐도 좋고, 자신을 쓸모 있는 패로 봐도 좋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줘."
차라리 내가 온전한 잿더미였더라면. 이딴 미적지근한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잔열조차 식었더라면. 내가 조금 더 악독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뭐든 바쳤을 텐데. 아회는 우뚝 서더니 얼굴을 덮어 가렸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가에서 뜨거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학당으로 돌아온 후엔 일단 의뢰 하나 마쳤으니 좀 쉴까 싶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가진 것도 많아 내려놓을 겸 방에 가기로 한다. 긴 다리 쭉쭉 뻗어 냉큼 기숙사로 돌아가선 딴 길 새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 문 벌컥 열어 젖히며 들어가며 그리 말했더란다.
"나 왔다- 요놈 털뭉탱이는 자고 있나 어쩌나- 으이?"
들어가자마자 퍼프스캔의 둥지 들여다보는게 요즘 습관이었다. 기다리는 존재 있다는 것이 어찌나 위안 되던지. 둥지 슥 보고 두루마기 벗어 의자인가 책상인가 홱 던져놓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푹신한 이불과 침대가 오늘따라 유난히 각별하구나-
도망쳤다. 도망치고 말았다. 심장이 뛰고 있나? 뛰지 않는 건가? 모른다. 어떤 것도 모르겠다. 우는 건가? 웃나? 모른다, 모른다……. 아회의 꼴이 엉망이었다. 너울은 바닥에 떨어뜨린지 오래요, 머리카락은 뛰느라 산발이 됐고,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로 범벅 졌다. 아회는 덜덜 떨며 머리카락을 꽉 잡던 손을 아래로 쭉 내렸다. 두피를 당기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이 우유부단함이 지긋지긋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감정이 서로 휘몰아치며 몸을 맞댄다. 서로 맞댈 때마다 생기는 파편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돌이킬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나아가길 바라고 있는 감정이, 그리고 차라리 뒤를 돌라는 감정이 끝없이 싸우기 시작하다 결국 박살이 나버리는 것 같다. 아회는 훌쩍일 틈도 없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갈 곳이 있나? 갈 곳이…….
"돌아갈 곳도 없는 주제에."
다시 돌아가서 무엇하게. 목화라도 기다리게? 영이를 기다리게? 아니면 몸뚱이를 공물로 바치게? 무덤가에 이부자리를 깔고 눕게? 내가 대체 무얼 할 수 있다고. 내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