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 살았다니. 그것 만큼 저와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는 것 같다. 운이 좋다라. 어쩌면 근래 써야 할 운 다 여기에 써서 당분간 또 운 지지리 없는 나날일 지도 모르겠다. 혼자 한 생각에 피식 웃곤 영약 챙겨넣었다.
"참 별난 신선일세. 준다니 감사하게 가져가겠소만."
조그만 약 떨어질새라 품에 자라 넣고. 그들과 창제신에 대해 물으니 의외의 답 들을 수 있었다. 그 신을 보필하며 깨달음을 얻는다? 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신에게서 무엇을 얻나 싶다. 뒤집혔다느니 재앙이니 불리는데. 얻을게 있긴 한가. 그것도 물으려다 참았다. 제 의견 둘째 치고 모시는 이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닐 테니. 그리 생각하며 제 앞으로 성큼 걸어온 려 빤히 보았다.
"이미 얻은 것으로 충분한 듯 한데. 점까지 봐주어? 거 배포가 후하시구만. 여느 신수들이랑은 다르게."
낄낄. 제가 더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도 무얼 봐달라 할지 잠시 고민한다. 앞날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막상 기회 생기면 고민 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여러 사람과 엮인 지금은 오죽할까.
제 미래냐. 다른 누군가의 미래냐. 그것도 아니면-
잠깐의 고민 끝에 그리 대답했다.
"허면 가까운 시일에 무엇 있을지 혹은 무슨 일 생길지 봐주시게나. 요즘 학당이 뒤숭숭하여 영 불안한지라."
염치를 안다는 려의 말에 숨기지 않고 킥킥 웃었다. 또한 생각한다. 근본이 인간이라 그렇다는 것은 신선이 되든 무엇이 되든 인간과 신수의 차이는 명백하다는 의미일 테다. 흥미롭다. 동시에 쓴웃음도 난다. ...뭐. 현실이 다 그렇지만은.
가까운 시일 봐달라 하니 려는 뭔 생뚱맞은 소리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그냥 가만히 있자 려가 눈을 뜨고 저를 보는데. 아이고. 눈 시커먼 것 봐라. 다 시껌허니 눈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그 눈 마주하고 멀뚱히 있으니 한참 지나 눈 감고 본 것 말을 해주는데.
"이잉. 달갑지 않은 소리구만. 나는 검은 것보다 흰 것이 좋은디."
썩 반길 소리는 아니라 작게 투덜댔다. 검은 호랑이도 싫고 힘든 것도 싫다. 하지만 아마 피할 방법은 없겠지. 그냥 생각 만큼 힘들지나 말아달라 속으로 중얼거리곤 려 보았다.
"가긴 가야지. 헌데 그냥 가긴 아쉬우니 한 바퀴 구경이나 시켜주소. 흔치 않을 것 아뇨. 인간의 몸으로 여까지 오는 건."
무엇보다 제 생에 이런 경험 몇 번이나 할까 싶으니. 가기 전에 구경이나 시켜달라 하곤 품에서 담배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고.
둘 다 잘 놀아주었다, 라. 괜한 것을 물었다. 그리운 듯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 아회는 입을 다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불만스러운 표정 나타나기 전에 용뉴가 울어버렸으니, 차라리 달래는 것에 치중하자 싶어 아이를 둥둥 달래줄 적엔 능숙하단 얘기에 눈썹이 다시금 올라갔다.
"……그렇, 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군요."
다독이던 손길이 느려진다. 동생은 없다. 그렇다고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존재도 없다. 돌보던 것도 늘 어색하고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능숙하다 할 수 있을까. 아회는 착한 호랑이라는 말을 들으며 내려주다, 잠시 멈췄다. 사감이 용뉴를 데려가기 전 손을 뻗어 어색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하고 허리를 펴며 몸을 돌렸다.
남은 의뢰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빵이든, 지긋지긋한 천선이든, 제사장이든. 아회는 선물가게로 향하기 전, 방에 들어섰다. 조그맣게 솜 뭉쳐둔 것처럼 생긴 신수가 잘 자고 있는지, 아니면 깨어있는지. 잠들어 있다면 깨어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볍게 간지럽히듯 손가락으로 긁어주었을 테다. 깨어있어도 마찬가지다.
검은 호랑이는 가까이 하지 말라. 굳이 말 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지만 세상 사는 것이 어찌 제 마음대로 되던가. 가능한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로 고개 끄덕이곤 려의 뒤 따라나갔다.
"그냥 보는게지. 댁 말 대로 올 일 없는 곳이니."
황량한 곳이란 건 내려왔을 적 대강 보아서 알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적- 이라고 할지. 기척이랄지. 아무튼 그런게 전혀 없는 듯 했다. 어디 불 때는 소리는 들리니 거 누가 있나 싶지만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걷다 앞서가는 려에게 물었다.
"신선 되면 거창한 곳에 살려나 싶더니. 뭐 이리 휑한 곳에 사나. 영약 말고는 필요한게 없나 보오?"
일정 경지에 이르면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해탈한다느니. 그런 얘기 본 적도 있는 것 같아 이 천선들도 그런가 했다. 헌데 신선은 천선 뿐인가?
자캐가_명치를_존나_세게_맞으면 : 어... ㅋㅋㅋ... 존나 아프겠지요? 어떻게 이런 해시가 나오는 지는 모르겠지만요, 응. 일단 존나 세게 맞으면 존나 아파한답니다... 아마도 맞기가 무섭게 몸을 웅크리면서 숨도 못 쉬고 컥컥대다가 상황을 파악하려 들 거예요~ 지금 나 쳤어...? 왜...? 그렇게 생각하고는 적룡 스위치에 아회가 지금껏 눌렀던 성질머리까지 같이 터져서 개싸움을 벌이겠지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존재, 하물며 제사장 집안이라면 최악의 경우에는 호랑이로 변해서, 팔 하나 뜯을 때까지 공격할지도 몰라요...🤦♀️
자캐의_싸움_방식은_매너플레이_더티플레이 : 지극히!
더티플레이랍니다. 머리채도 잡고 흙도 뿌리고 얼굴에 피 섞인 침도 뱉어주고~ 그러면서 손가락 까딱거리면서 왜 안 덤비나? 하겠지요~
다시는 덤비지 않을 만큼 두려움과 불쾌함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지 체면이 중요하겠나요~ :D 주된 싸움관이 '내 생각만 해도 네 코뼈가 부러지던 장면이 떠오르길 바란다!' 라네요~
자캐의_과거_연애썰 : 이거 if로 예전에 끝장나는 썰 풀었던 적 있는 것 같은데 현실엔 없어요
순수한 존재. 지나치게 순수해서 데려온 이후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아회는 입을 다물고 부드러운 털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젠 손가락 하나로도 벅찰 만큼 덩치가 부푼 사랑스러운 존재. 별사탕을 원하며 기대하는 모습에, 문득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도 어차피 네 어미와 똑같은 놈이다. 아닌 척, 고결한 척, 모든 순수함을 다 떠안은 척 그리 살다가 언젠가는 정결한 것을 네 손으로 더럽히겠지. 네 어미가 내 남편 채간 것처럼. 부정하지 않는다. 아회는 자신이 이런 존재를 품으면 언젠가 잃는다는 것과, 자신의 손으로 해쳐야 한다는 것을 안다.
"별사탕은 당연히 드릴 터이지만, 잘 들어주십시오."
하여 지금껏 이 존재를 부정하려 했다. 정을 주어서는 안 됐다. 소중하게 여겨선 안 됐다. 언제든 놓아줄 준비를 해야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자신은 언젠가 죄 떠안고 불탈 터이니, 그 주변에 무엇도 남으면 안 됐다.
"시생이 졸업하면…… 혹은 그 이전에, 학당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꼭 가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보내야만 한다.
"저번에 용께서 진노하셨던 것도, 기이한 것들이 문을 두드려 침대에 숨겨드린 것도……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이 생길 터입니다. 그리하여…… 예. 목화를, 선물가게로 다시 데려다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목화님께선 바라지 않겠지만, 제게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목화님이 행여 다칠까봐, 아니면 목숨을 잃을까봐…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제게 소중한 존재니까, 이런 위험한 곳이 아니라, 같은 땅신령이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있길 바랄 뿐입니다."
아회는 눈을 떴다. 반 푼의 눈으로 존재를 가만히 담는다.
"……그렇지만 영원한 이별은 없을 터입니다. 졸업하고도, 안전히 살아남으면…… 그때 찾아뵐 터이니." 내가 그 집안을 뒤엎기 전이 마지막 만남이겠다마는. 아회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자그마한 당신이, 제가 소중한데 그래도 보내느냐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회는 입술의 속살을 티나지 않게 자근자근 짓씹었다. 당신은 그만큼 순수한 존재였다. 이곳이 위험한지를 모를 정도로 순수하다. 시위하듯 울 적엔, 아회는 천천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 순진무구함이 다른 방향이었더라면. 다시 만날 수 있노라 믿어줄 정도로 순박했더라면. 아니면 차라리, 악독했더라면. 신수를 버렸노라 외치며 인간을 저주했더라면. 당신이 인간을 싫어했더라면, 자신을 아예 잊었더라면…… 여러 감정이 순식간에 뒤섞이더니 아회는 눈을 감아버렸다.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덮어 가렸다.
"목화."
늘 잔잔하던 목소리는 음울하다. 낮고, 음울하며, 잿더미가 아닌 파헤쳐진 무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참담했다. 순수한 당신을 내치는 것이 못내 괴로우나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자신을 찔렀다. 이런 것에는 무뎌졌다 생각했는데, 그리고 무뎌져야만 하는데. 다른 타인을 대하듯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어야만 하는데.
"일이 아닌, 제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나는 정을 주었지. 감당할 수 없으면서 왜 정을 주었지. 왜 나는 늘 물러터졌지.
"제가 당신을 공격할까봐.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절대적인 존재가 제 운명을 결론지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