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히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마르고 낡은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신선 사는 곳이니 섬과 달라도 다른게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은. 이런 느낌으로 다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아무도 없어보여 어리둥절 하니. 려가 천선들은 낯을 많이 가린단다. 그러니까 제가 와서 다 숨었다 뭐 그런 건가.
"허어. 신선이나 되서 낯가림이라니. 별나구만."
따라왔다고 신기해하며 귀찮게 안 하니 다행이긴 하다. 그대로 바구니 잘 챙기고서 려의 뒤를 쫓았다. 마른 땅 밟을 적마다 기분 묘했지만. 또 놓칠라 잰걸음으로 따라가니 한 집 열고 들어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사양할까. 냉큼 싸리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안 먹는다 빼는 것도 우스우니. 헌데 예서 돌아갈 적 문제 있는 건 아니오? 여기는 저 위랑 시간이 다르다던가."
우는 건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소리 내어 울어 이목만 끌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 걷는 걸음은 조심스럽다. 이 와중에 꼬리를 만지는 듯하니 부디 이걸로 울음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아회는 꼬리 끝을 가볍게 살랑였다.
"……울지 마시오. 다친 것을 내 몰랐으니, 돌아가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을 뿐이외다."
엉엉 우는 용뉴 달래며 가다 보니 어느덧 학당이었으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울던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이 자신을 알아본 것이다. 아회는 돋아난 귀를 쫙 눕히며 지체했던 걸음을 재촉했다.
"……."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난 결백해! 도망쳐야지. 일단 이런 소문이 계속 된다면 곤란하니 가문을 칮아 데려가는 게……. 아니, 일단 다쳤다니까 상처 치료가 먼저고. 이런 존재를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자신이 할 법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하겠는가, 엎질러진 물이다. 아무래도 방에 데려가면 목화를 깨우며 난리가 날 것 같고.
"신수 정도 되는 이가 고작 인간 하나에 홀려선- 거 누이형제들이 놀리진 않소? 에그 미련탱이야 하고."
낄낄. 놀림이 분명한 말투 숨기려 하지 않고 말하니. 당신 표정 어떠했을까. 어이없어했나. 적반하장이라 했나. 먼저 홀리려든게 누군데. 라는 말 들었을 것도 같다. 무슨 말 들었든 웃음 지우지 않고 되려 뻔뻔히도 대꾸했겠지.
"그러길래 누가 그리 다 받아주라 했소? 못 잡아먹어 안달일 적은 언제고. 그리 건방 떠는데도 다 받아주니 내 마음이 동하지."
동하지 않았다면 그저 하룻밤 상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저 한 때. 기이한 밤놀음 상대에 그쳤을 것이다. 그래. 밤놀이란 그런 것 아닌가. 후일에 연연하지 않고. 인연에 얽메이지 않고. 긴긴밤 눈 감지 못한 이들끼리 잠시 온기를 나눌 뿐이다. 얼결에 그 심장 쥐었으니. 조금 더 긴 하룻밤 상대로 흘려버려야 했을 것을. 실날 같은 마음 흔들려 감히 곁 파고들었지. 당신 또한 받아주었기에 그 순간 만큼은 훗날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정해진 생 외면했다. 아. 실로 아둔한 것은 누구였나.
"이 미련한 신수를 두고 어찌 가야 하나."
생각에 짚이는 말 아무 것이나 읊조리며 실실 웃음 같이 흘렸다. 당신에게 미련하다 하여도 실로 그러한 것 누구인지 어찌 모르랴. 필히 이 학당에서 나갈 수 있게 해주겠노라 하였음에도. 언제든 떨어질 낭떠러지 등 뒤에 두었다. 당신에게 상실의 아픔은 한 때 조차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버렸으니. 어쩌면 그것 만이 유일한 위안이라.
"성 내지 말고 무릎이나 내어주시게. 거 앉아 낮잠이나 한숨 잘라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 하며 당신 무릎을 의자 삼고 품은 침대 삼아 기대 눈 감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같은 생각 하고 같은 결론 내릴지 알 수 없으나. 다만 지금은 잘 자라 등이나 두드려 주었으면. 이 한 때 잠으로나마 만끽하게.
밖에도 인적 없드니 집 안은 더하다. 촛불이 있어 더 썰렁하게 느껴지는 안을 보고 있자니 려가 숨었다고 중얼댄다. 그 숨는다는게 단순히 어디 방에 들어가 있다거나 이런 건 아닌 듯 한데. 거 참. 본디 이런 인간들이 천선 되는 건가? 아님 신선 되어 살다보니 이리 되는 건가.
"별난 양반들일세."
그러게나 말이다.
앉으라길래 적당한 곳에 앉아 멀뚱멀뚱 주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려가 함 하나 들고 왔다. 딱 봐도 약 들어있게 생겼다 싶더니 진짜 환약들 데굴데굴하다. 반만 쪼개 먹으라는 말에 일단 하나 집어들었다.
막상 눈앞에 두니까 또 고민되네. 이걸 먹어 말어? 먹어서 명줄 늘어나면 먹겠는데. 이 천선 아까 뭐랬더라. 재수 없으면 죽는댔나. 어허. 이것 참. 안 먹고 챙기자니 나중 일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허 참. 내가 왜 여까지 따라와서 이런 고민이나 하는지 모르겠구만. 거 죽을 성 싶으면 잘 살려보소."
긴 듯 짧은 고민 끝에 환약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반토막 입에 툭 던져넣고. 씹을까 하다가 그냥 타액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리고 남은 반토막 보며 이건 어쩌나- 하듯 보았다. 괜찮으면 무 오라비 갖다줄까. 같은 생각 하며.
어디 보자.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을까. 꼬리로 열심히 용뉴를 달래주고, 발걸음은 바쁘게 돌아가는 머리처럼 재빨리 움직인다. 춘 사감? 괜찮을까? 같이 울어버릴까 두렵다. 하 사감? 마주치면 저번에 도망친 이후로 얼굴 맞대기가 좀 그렇다……. 추 사감? 사실 백룡 기숙사는 잘 모른다……. 동 사감도 사랑이니 뭐니 하는 것을 설파하니 보통의 인간이라면 괜찮긴 하겠다마는, 괜찮을까? 영 사감님은 어떻지? 아회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영 사감님은……."
죄송하다. 용에게 시달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신세진 것이 많은데 거기다 우는 아이까지 생기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는 엿이나 한 번 먹어보라는 것이지만, 아회는 동 사감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눈 받아가라 하는 녀석이면 이 존재를 잡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하물며 동 사감님은…… 그래, 그나마 아이를 잘 돌본다고 생각되는 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