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우니까 낯선 사람에겐 알려주지 않을 거야-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지만 들려서는 안 될 단어가 귓전을 때리자 아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 그것도 까만 호랑이…….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한 존재를 떠올렸고, 자랑스럽게 꼬깃꼬깃한 종이를 건네줄 때는 제발 아니기를 기도했다.
"하아……."
참았던 한숨이 나오고야 만다.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을 부벼도 호위의 집안 중 하나임은 변하지 않는다. 깨닫기가 무섭게 피로와 무기력함에 찌든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쓸모와 가치를 재어보고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겠지. 정말 그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이 의뢰인에게 굳이 호의를 보이며 이런 곳을 추천할 가능성은 없다. 그랬으면 4도사니 궁기니 악명을 떨칠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 이 의뢰인으로 하여금 무언가 쓸모가 있든지 하겠지. 가령 이 아씨가 지체높은 집안의 사람인데, 의탁을 핑계로 가출을 종용하는 교활한 술수를 부려 오해의 골을 깊게 만들어 가문을 무너뜨리든지…….
"아니, 아니오. 그러니까……."
아회는 결국 미간을 짚고 씹어 뱉듯 욕짓거리를 뇌까렸다. 무사빈 이 개*발*끼가……. 스읍. 한 번 깊게 심호흡하고 아회는 눈을 감았다.
"……신변을 위탁하기엔 여긴 너무 춥지 않소?"
아마 자신이 이 의뢰 수락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믿자. 이게 그 새끼의 간교한 머리굴림의 일환이 아니길 바란다…….
"지켜줄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북부가 괜히 북부라 불리겠소, 아름다운 것에 정신을 팔리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따뜻하고 부탁 들어줄 사람 많은 곳은 어떠하오."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욕을 수십 수백 하더니만 검붉은 부적이 불타더니 두툼한 꼬리와 귀가 튀어 나오려 했다.
"도와주는 학생이 많은…… 학…당이라든지. 뚝, 속은 것이 아니오. 더 좋은 곳을 찾는 게지. 그렇지? 까만 호랑이 말을 들었으면 하얀 호랑이 말도 들어봐야 한다 생각되지 않소? 보시오, 꼬리도 이렇게 더 도톰하니 까만 호랑이 보다 신뢰가 가지……? 응? 뚝 그칩시다. 뚝."
당신의 중얼거림을 들은 려가 픽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는 물담배를 한 쪽으로 물렀습니다. 당신이 양 팔로 허리를 감싸자, 쑥 들어갔다가 다시 무언가가 차오르듯 튀어나옵니다. 천선 려가 한 쪽 미간을 찡그렸습니다. 얼굴 주변의 공기가 매우 시원하고 웽웽 바람 소리마저 들립니다.
' 이제 절대 놓지 마. 떨어질 거니까. '
달리던 신선이 우뚝 멈춰섰고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꽤 오래 떨어질 것 같습니다.
나쁜 호랭이, 검은 호랭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렇게 울면서 얘기하는 걸 바라지는 않았는데. 눈물을 뚝 그친 것 같으면서도 어째 울먹거리는 소리가 그대로니, 아회는 눈물 그치게 하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골몰했다.
"……따스하게 벽난로도 타오르는 곳이오."
드러난 모습은 딱 양갓집 규수 느낌이다. 자색 눈동자에 연두색 머리칼은 고사하고 눈가가 짓물린 걸 보니 울음을 대체 언제부터 그치지 못한 것인지 가늠조차 안 된다. 저런 존재가 북부에 있다면 난리가 나겠지. 분쟁을 키우느니 차라리 학당에 데려가서, 연관있는 가문을 찾아 돌려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판단하던 아회는 불길함에 눈을 슥 흘겼다.
"……."
이런 것에도 우는 게 맞나……? 그나마 기특한 점은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건데, 아회는 그 노력 무색하지 않게끔 시선을 피하듯 굴렸다.
"학생에게 도움을 달라 하였으니, 필부가 학생이지 않겠소. 그러니 다시금 따라오면 될 터요. 자, 이제 뚝. 잘 그치면 꼬리에 태워서 업어줄 수도 있는데 그 기회 놓칠 게요?"
팔로 꾹 안았을 적 기묘한 느낌 들었다. 무언가 형태 있으나 말캉한 것 안은 듯한? 문득 려의 옷 안이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참기로 한다. 괜히 헛짓거리 했다가 어디서 어떻게 치일지 모르니.
"에잉. 재미없긴."
살아남는게 용한 곳이다- 그 말에 짤막히 중얼거리고 입 다물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혀 깨물기 싫으니까. 눈 감은 탓에 주변 어찌 바뀌는지 알 길 없었지만. 바람 스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대강 알 것도 같다. 그러다 뚝 멈춰지고. 들리는 말에 감싼 팔 서로 붙잡아 더 굳게 만들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건 제법 싫어하는데 말이지...!
몸이 허공에 뜨고 떨어진다는 체감 드니 절대 눈 뜰 수 없었다.
사실 떨어지는 건 안 좋은 기억 있었다. 어릴 적. 다 같이 마차에 나들이 나갔는데. 바깥 구경하던 저를 아이들이 실수로 치는 바람에 그대로 바깥에 내동댕이 쳐졌다. 다행히 마차가 빠르지 않았고 뒤따르던 마차에서 아버지가 도술을 써 바닥에 곤두박질 치지는 않았으나. 한 순간이나마 몸이 허공에 뜬 순간 만큼은 가끔 생각날 정도로 생생히 기억에 남았다. 아직도 그 때를 가끔 꿈으로 꿀 만큼.
범이라기엔 지나치게 푹신하고 도톰하니 영물이라 해도 믿을 꼬리. 검은 바탕에 찹쌀떡 하나 콕 박힌 듯이 흰 털이 돋아난 귀 뒷부분.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졌지만 유일하게 괜찮은 면모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잘 생각하였소. 자, 이리 업히시오."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등에 업힌다면 복슬복슬한 꼬리로 밑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그 끝자락으로는 몸 한 번 감아주었을 터다. 붙은 뒤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고, 바다 보다는 조금 더 비릿한 냄새도 난다. 아회는 꼬리를 들썩여 가볍게 둥기둥기, 달래주듯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기나긴 추락. 아니. 낙하 끝. 계속 붕 떠 있던 듯한 발이 어딘가 닿는 것 같다 느꼈다.
바닥인가?
동시에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빠르게 흘러가느라 식은 차가움이 아닌 이 공간 자체에 머무르는 듯한 차가움- 일까. 길었던 낙하로 인해 감각이 온전하지 않은 듯 하여 눈도 뜨지 않고 있으니. 려의 말 들린다. 도착했으니 눈 뜨라고. 저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잠깐 했지만 놓지만 않으면 되겠지 싶었다. 하여 붙잡은 팔은 풀지 않은 채 눈만 떠 주변 조심히 살펴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