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호랭이, 검은 호랭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렇게 울면서 얘기하는 걸 바라지는 않았는데. 눈물을 뚝 그친 것 같으면서도 어째 울먹거리는 소리가 그대로니, 아회는 눈물 그치게 하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골몰했다.
"……따스하게 벽난로도 타오르는 곳이오."
드러난 모습은 딱 양갓집 규수 느낌이다. 자색 눈동자에 연두색 머리칼은 고사하고 눈가가 짓물린 걸 보니 울음을 대체 언제부터 그치지 못한 것인지 가늠조차 안 된다. 저런 존재가 북부에 있다면 난리가 나겠지. 분쟁을 키우느니 차라리 학당에 데려가서, 연관있는 가문을 찾아 돌려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판단하던 아회는 불길함에 눈을 슥 흘겼다.
"……."
이런 것에도 우는 게 맞나……? 그나마 기특한 점은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건데, 아회는 그 노력 무색하지 않게끔 시선을 피하듯 굴렸다.
"학생에게 도움을 달라 하였으니, 필부가 학생이지 않겠소. 그러니 다시금 따라오면 될 터요. 자, 이제 뚝. 잘 그치면 꼬리에 태워서 업어줄 수도 있는데 그 기회 놓칠 게요?"
팔로 꾹 안았을 적 기묘한 느낌 들었다. 무언가 형태 있으나 말캉한 것 안은 듯한? 문득 려의 옷 안이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참기로 한다. 괜히 헛짓거리 했다가 어디서 어떻게 치일지 모르니.
"에잉. 재미없긴."
살아남는게 용한 곳이다- 그 말에 짤막히 중얼거리고 입 다물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혀 깨물기 싫으니까. 눈 감은 탓에 주변 어찌 바뀌는지 알 길 없었지만. 바람 스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대강 알 것도 같다. 그러다 뚝 멈춰지고. 들리는 말에 감싼 팔 서로 붙잡아 더 굳게 만들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건 제법 싫어하는데 말이지...!
몸이 허공에 뜨고 떨어진다는 체감 드니 절대 눈 뜰 수 없었다.
사실 떨어지는 건 안 좋은 기억 있었다. 어릴 적. 다 같이 마차에 나들이 나갔는데. 바깥 구경하던 저를 아이들이 실수로 치는 바람에 그대로 바깥에 내동댕이 쳐졌다. 다행히 마차가 빠르지 않았고 뒤따르던 마차에서 아버지가 도술을 써 바닥에 곤두박질 치지는 않았으나. 한 순간이나마 몸이 허공에 뜬 순간 만큼은 가끔 생각날 정도로 생생히 기억에 남았다. 아직도 그 때를 가끔 꿈으로 꿀 만큼.
범이라기엔 지나치게 푹신하고 도톰하니 영물이라 해도 믿을 꼬리. 검은 바탕에 찹쌀떡 하나 콕 박힌 듯이 흰 털이 돋아난 귀 뒷부분.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졌지만 유일하게 괜찮은 면모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잘 생각하였소. 자, 이리 업히시오."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등에 업힌다면 복슬복슬한 꼬리로 밑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그 끝자락으로는 몸 한 번 감아주었을 터다. 붙은 뒤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지럽히고, 바다 보다는 조금 더 비릿한 냄새도 난다. 아회는 꼬리를 들썩여 가볍게 둥기둥기, 달래주듯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기나긴 추락. 아니. 낙하 끝. 계속 붕 떠 있던 듯한 발이 어딘가 닿는 것 같다 느꼈다.
바닥인가?
동시에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빠르게 흘러가느라 식은 차가움이 아닌 이 공간 자체에 머무르는 듯한 차가움- 일까. 길었던 낙하로 인해 감각이 온전하지 않은 듯 하여 눈도 뜨지 않고 있으니. 려의 말 들린다. 도착했으니 눈 뜨라고. 저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잠깐 했지만 놓지만 않으면 되겠지 싶었다. 하여 붙잡은 팔은 풀지 않은 채 눈만 떠 주변 조심히 살펴보려 했다.
조심히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마르고 낡은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신선 사는 곳이니 섬과 달라도 다른게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은. 이런 느낌으로 다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아무도 없어보여 어리둥절 하니. 려가 천선들은 낯을 많이 가린단다. 그러니까 제가 와서 다 숨었다 뭐 그런 건가.
"허어. 신선이나 되서 낯가림이라니. 별나구만."
따라왔다고 신기해하며 귀찮게 안 하니 다행이긴 하다. 그대로 바구니 잘 챙기고서 려의 뒤를 쫓았다. 마른 땅 밟을 적마다 기분 묘했지만. 또 놓칠라 잰걸음으로 따라가니 한 집 열고 들어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사양할까. 냉큼 싸리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안 먹는다 빼는 것도 우스우니. 헌데 예서 돌아갈 적 문제 있는 건 아니오? 여기는 저 위랑 시간이 다르다던가."
우는 건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소리 내어 울어 이목만 끌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 걷는 걸음은 조심스럽다. 이 와중에 꼬리를 만지는 듯하니 부디 이걸로 울음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아회는 꼬리 끝을 가볍게 살랑였다.
"……울지 마시오. 다친 것을 내 몰랐으니, 돌아가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을 뿐이외다."
엉엉 우는 용뉴 달래며 가다 보니 어느덧 학당이었으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울던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이 자신을 알아본 것이다. 아회는 돋아난 귀를 쫙 눕히며 지체했던 걸음을 재촉했다.
"……."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난 결백해! 도망쳐야지. 일단 이런 소문이 계속 된다면 곤란하니 가문을 칮아 데려가는 게……. 아니, 일단 다쳤다니까 상처 치료가 먼저고. 이런 존재를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자신이 할 법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하겠는가, 엎질러진 물이다. 아무래도 방에 데려가면 목화를 깨우며 난리가 날 것 같고.
"신수 정도 되는 이가 고작 인간 하나에 홀려선- 거 누이형제들이 놀리진 않소? 에그 미련탱이야 하고."
낄낄. 놀림이 분명한 말투 숨기려 하지 않고 말하니. 당신 표정 어떠했을까. 어이없어했나. 적반하장이라 했나. 먼저 홀리려든게 누군데. 라는 말 들었을 것도 같다. 무슨 말 들었든 웃음 지우지 않고 되려 뻔뻔히도 대꾸했겠지.
"그러길래 누가 그리 다 받아주라 했소? 못 잡아먹어 안달일 적은 언제고. 그리 건방 떠는데도 다 받아주니 내 마음이 동하지."
동하지 않았다면 그저 하룻밤 상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저 한 때. 기이한 밤놀음 상대에 그쳤을 것이다. 그래. 밤놀이란 그런 것 아닌가. 후일에 연연하지 않고. 인연에 얽메이지 않고. 긴긴밤 눈 감지 못한 이들끼리 잠시 온기를 나눌 뿐이다. 얼결에 그 심장 쥐었으니. 조금 더 긴 하룻밤 상대로 흘려버려야 했을 것을. 실날 같은 마음 흔들려 감히 곁 파고들었지. 당신 또한 받아주었기에 그 순간 만큼은 훗날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정해진 생 외면했다. 아. 실로 아둔한 것은 누구였나.
"이 미련한 신수를 두고 어찌 가야 하나."
생각에 짚이는 말 아무 것이나 읊조리며 실실 웃음 같이 흘렸다. 당신에게 미련하다 하여도 실로 그러한 것 누구인지 어찌 모르랴. 필히 이 학당에서 나갈 수 있게 해주겠노라 하였음에도. 언제든 떨어질 낭떠러지 등 뒤에 두었다. 당신에게 상실의 아픔은 한 때 조차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버렸으니. 어쩌면 그것 만이 유일한 위안이라.
"성 내지 말고 무릎이나 내어주시게. 거 앉아 낮잠이나 한숨 잘라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 하며 당신 무릎을 의자 삼고 품은 침대 삼아 기대 눈 감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같은 생각 하고 같은 결론 내릴지 알 수 없으나. 다만 지금은 잘 자라 등이나 두드려 주었으면. 이 한 때 잠으로나마 만끽하게.
밖에도 인적 없드니 집 안은 더하다. 촛불이 있어 더 썰렁하게 느껴지는 안을 보고 있자니 려가 숨었다고 중얼댄다. 그 숨는다는게 단순히 어디 방에 들어가 있다거나 이런 건 아닌 듯 한데. 거 참. 본디 이런 인간들이 천선 되는 건가? 아님 신선 되어 살다보니 이리 되는 건가.
"별난 양반들일세."
그러게나 말이다.
앉으라길래 적당한 곳에 앉아 멀뚱멀뚱 주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려가 함 하나 들고 왔다. 딱 봐도 약 들어있게 생겼다 싶더니 진짜 환약들 데굴데굴하다. 반만 쪼개 먹으라는 말에 일단 하나 집어들었다.
막상 눈앞에 두니까 또 고민되네. 이걸 먹어 말어? 먹어서 명줄 늘어나면 먹겠는데. 이 천선 아까 뭐랬더라. 재수 없으면 죽는댔나. 어허. 이것 참. 안 먹고 챙기자니 나중 일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허 참. 내가 왜 여까지 따라와서 이런 고민이나 하는지 모르겠구만. 거 죽을 성 싶으면 잘 살려보소."
긴 듯 짧은 고민 끝에 환약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반토막 입에 툭 던져넣고. 씹을까 하다가 그냥 타액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리고 남은 반토막 보며 이건 어쩌나- 하듯 보았다. 괜찮으면 무 오라비 갖다줄까. 같은 생각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