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 퍼펙트・원더는 레이니에게 진심 도전장 초코를 줬어. (뭔가 익숙한 짤방의 톤으로 읽힌다면, 그것도 기분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 도전은 받을 수 없다. 앞으로, 레이스에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그 아이의 도전에 답하자. 따위의 생각은, 다가오는 구둣소리에 금새 멈추고 만다.
"...우선,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름 모를 트레이너. 저번, 미스 니시카타가 개최한 비공식 레이스를 구경했을때, 옆자리를 빌렸었다. 미승리전을 보았나. 그렇다면, 그 때의 비공식 레이스와, 미승리전에 참여한 우마무스메 중에 그녀의 담당 또한, 있는 것일까. 가벼운 추론.
말없이 머리를 헝클인다. 아, 골때린다. 그냥 도망치고 싶어… 남에게 모멸감을 주는 말로 짓누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전해듣는것만으로도 훌륭해 보이는 트레이너가 어르고 달래서도 저 모양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그냥 도망치고, 자판기 앞에서 맥주까고 줄담배나 피다 들어가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아! 맥주에 담배 개피고싶어!’
이런 건 내 전공이 아니다…
”…트랙에 서면은,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다 들지 않냐. 나는 그렇던데. 저번보다 기록 떨어지면 어쩌지. 부모님은 와 계실까. 아 비인기 종목 서러워서 살겠나. 나도 까짓거 승부복 입고 춤이라도 출까 뭐 그런…하하, 별 실없는 생각까지 다 들더라고.“
영원히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끝점을 향해 달려갈 때, 바람은 얼굴을 스쳐지나지만 생각은 그 안에 그대로 담겨, 걸음 한 발짝 통증 한 번마다 출렁거리는 것이다.
”달릴 땐 달리고만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돌이켜 보면 온각 잡생각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어. 1등하고 싶다는 마음을 뭐가 자꾸 가로막더라. 막막하고, 퍼포먼스 떨어지고. 무릎은 X발 계속 아픈데…”
옆에 있는 모래를 팍 걷어찬다.
“너는 아닐 거 같아? 그러면 그냥, 그대로 계속 가봐. 강요하지는 않으마, 넌 내 담당도 아니고… 그냥 기억만 해둬.“
”더트에선 더트의 생각만 하도록 다 떠넘기는 것도 선택지라고. 넌 그게 있는 거야, 언그레이 데이즈 양.“
부럽다. 그 말까진 내놓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를 질투하다니 너무 추한 거 같아서.
>>800 다행스럽게도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있는 소문(?) 은 듣지 못한 채, 니시카타 미즈호는 포 이그잼플의 말에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답변을 이어갈 수 있었다…..
“중앙에서 쓰이는 저만의 특별한 비법이요? 흠,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직접 뛰는 방법을 두 눈으로 본 뒤에, 그에 맞는 주법을 직접 시범해서 보여드린답니다. 그리고는 담당분의 각질에 따라 주법을 하나하나 직접 봐드리면서 훈련하는 방식이지요. 한 바퀴씩 뛸 때마다 수제 당근 주스와 함께 편히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뛰게 해드리는 것도 나름 도움이 되더군요. “
과연 이 이야기가 어느 식으로 소문이 나게 될지, 니시카타 미즈호는 전혀 모르고 있는 채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무조건 스트라이드로, 정석으로 갈 필요 없이, 자신의 각질에 맞는 주법과 거리에 따라 그때그때 주법을 달리 해도 괜찮아요. 코너 부분이나 직선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주법을 바꿔서 속력을 높이거나 체력을 잠시 비축해 둔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 1착 ] 을 하고 싶다면 무조건 정석에 따르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것이 제가 가르치는 안정적으로 빠르게 뛰어 1착에 가까워지는 방법이에요. 포 이그잼플 양. “
다소 이야기가 길어졌으나 이것이 실제 팀 프러시안의 담당들을 가르치는 니시카타 미즈호의 나름의 방식이었다. 이 이야기가 과연 포 이그잼플에게는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까?
약간의 감속 후 가속. 지금까지의 가속과는 궤가 다르다. 우마그린도 추입이었나(?) 하지만... 무르구나. 갓 나온 순두부보다도 무르다고 우마그린.
같은 추입이라면, 히토미미가 우마무스메를 이길 수 있을리가 없잖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평소 쓰지 않을 다소 거친 말투로 나온 말이 우마그린에게 들렸을진 모르겠다. 거리가 가까워져도, 이 발소리에 묻히지 않았을까? 뭐 들리든 말든 상관없다. 완벽한 혼잣말이니까. 다만, 3코스의 초반부터 스퍼트를 내는 건 사실상 중거리를 도주로 뛰는 거나 마찬가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과 다르게 일단은 우마그린에게 선두를 내어준다. 노리는 것은 중반부터 시작되는 롱 스퍼트.
3코스 중반에 접어든다. 지금이다. 보폭은 더 크게. 더트를 움켜쥐듯 파고들어 강하게 박찬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속도에 맞춘 이름만 달리기인 보행이었다는 듯이, 이제는 내 페이스로 강하게 가속한다. 따라붙는다. 따라붙어.. 앞지른다! 최종 직선을 향해 힘껏 내달린다.
포 이그잼플은 오래 전 트레이너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비뚤어지자.」 바보같이 정직한 달리기로는 누구도 해칠 수 없다. 순전히 달리는 게 좋아서 달리던 시절에는 패배의 아픔을 몰랐지만, 이기고 싶다면 패배의 아픔을 알아야 하고, 남에게 패배의 아픔을 안길 줄 알아야 한다... 포 이그잼플이 '이기고 싶게 만든' 사람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 전까지는 정석만 고집하던 포 이그잼플이, 실격에 해당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사행으로 다른 주자를 가로막아 빠져나가는 주법을 선보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역시 대단하네요! 중앙의 트레이너는!"
포 이그잼플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순수하게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문제를 짚어내는 감식안에 놀라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포 이그잼플의 주법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말이다. 다른 우마무스메들을 분석하는 것도 트레이너의 일이라지만.
"에헤헤... 앞으로도 미즈호 트레이너님의 제자들은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요. 그래도 조언해 주신 대로 잘 해볼게요!"
주먹을 불끈 쥐고는, 활기가 도는 얼굴로 인사했다. 대자보에도 이름이 들어가지 못한 서운함은 조금이나마 덜어낸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무리 체력안배를 했다고 해도 최종 직선에서 낼 수 있는 속도는 최대속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냈던 가속 이상의 움직임. 이대로 골인 지점까지 가기만 하면...!
"흐읍...!"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힌다는 걸 알겠다, 어느새 발소리가 귓전을 때리는다 싶더니, 아주 찰나의 순간. 조금 무리한 건지 호흡이 흐트러지며 속도를 유지하지 못했고, 반대로 폭발하는 듯한 스퍼트를 낸 메이사는 꽤 큰 차이로 결승점을 먼저 넘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약간 줄어든 속도로 결승선을 지나, 몸을 숙인 채 기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