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대로 메이사는 추월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른다. 속도를 따라서 올리기보단 적당하게 내고 있기 때문에 약간씩은 거리가 벌어지곤 있지만, 이 정도의 거리라면 잠깐 가속만 해도 충분히 메울 수 있겠지. 슬슬 거리감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좋아, 그럼 정석으로 가볼까."
마라톤에서는 항상 일정한 속도를 내는 게 보통이다, 항상 여력을 남기고 뛰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폭발시킨다. 그렇기 위해서는 당연히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다만 이 레이스는 그 정도의 거리는 아니기 때문에, 마라톤처럼 뛸 필요가 없다. 중거리의 3배 가량, 그렇다면 종반 없는 중거리 2번, 마무리 중거리 1번을 뛰듯 달린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첫 코스의 중반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힘껏 속도를 낸다.
첫 코스의 중반. 갑자기 가속하기 시작한 우마그린을 보고 당황했다. 앗, 여기서??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저 속도에 맞춰서 아까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달릴 것이냐, 아니면 저 승부에 올라타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언제든 앞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달릴 것이냐.
예전이었다면 전자를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후자를 고르는게 좋겠어. 상대방을 관찰하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 달리기를 해야한다. 사실 중거리나 장거리 정도만 돼도 그냥 전자를 골랐겠지만 아무래도 말이지. 이번에는 전처럼 지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보통 장거리에서 중간에 가속하는 건 금기시된다, 최대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후 감속할 때에도 체력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라톤에서는 타이밍을 잘못 잡는 순간 그대로 끝, 완주는 할 수 있겠지만 의미 있는 기록을 내기는 힘들겠지. 그렇지만 이 거리에서는 몸에 긴장을 계속해서 줄 필요가 있었다, 잠시 동안 가속했다가 보통 속도로 감속, 또 다시 가속했다가 감속, 지속적으로 심폐에 자극을 주면..
"다음 가속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지."
좀 더 지치는 건 맞지만... 일정한 사이클만 형성이 된다면 몸은 적응하기 시작한다. 따라붙는 선택은 하지 않은 건가? 뒤에서 들려야 할 달리기 소리가 작거나 거의 들리지 않게 되자, 그제야 조금 속도를 줄인다. 이대로 이번 1코스는 넘어가자.
첫 코스의 종반을 넘어 2코스 초반, 감속하여 호흡을 가다듬던 다이고는 다시 가속했다. 슬슬 가라앉으려는 심폐기능을 독촉하고, 약간 줄어들었을 간격을 다시 넓히기도 할 겸 힘차게 발을 내딛으면, 바람 소리가 귀를 때려 주변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별다른 소음이 원체 없기도 했지만.
"두 번째..."
그렇게 가속하면 2코스 중반이 다가온다, 중반에 돌입하기 전, 다이고는 다시 한 번 감속했다. 앞으로 4번, 4번 더 반복하면 된다, 그 다음에 마무리하자. 그나저나 바람 참 시원하다, 달리는 건 기분 좋구나- 싶었다.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잠깐 침묵하는 포 이그잼플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과 고민이 스쳐지나갔음이 분명하다.
'그, 그렇지만 어쩌다가 만나게 됐냐느니 식은 언제 올릴 거냐느니,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냐느니 그런 거 물어볼 수 없잖아? 자칫 심기를 건드렸다간 트레이너님이 박살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미 우마무스메랑 같이 달릴 수 있고, 주먹으로 우마무스메를 제압하고, 바벨을 덤벨처럼 드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다 나 있는데!'
늘 장난스럽게 좋아하는 걸 드러낸다고는 해도, 포 이그잼플이 타토 에루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트레이너가 자신이 GⅠ에서 이기는 걸 보기도 전에 산 채로 네기토로가 되는 건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온갖 무시무시한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타토 트레이너를 주먹의 마찰열으로 구워 버린다거나, 머리뚜껑을 따서 술을 데워 먹는 미래가...
'안 돼! 설령 트레이너님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야!'
여기까지 1초.
"네에? 다들 중앙에서 오신 실력 있는 트레이너님이라고 이야기하는걸요. 그, 그렇지... 어떤 식으로 하면 조금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까요? 중앙에서만 쓰이는 비법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해요."
>>773 최근, 마리야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팀을 꾸려서 원더를 영입시킨만큼 해야할 일이 늘어났으며, 앞으로의 레이스를 대비하기 위해서 플랜을 짜둬야만 했다. 우마무스메의 몸은 강인해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섬세한 편이며 조금이라도 밸런스가 무너지면 컨디션이 망가질 수 있는 신체다. 쉬운 예시로 체중 관리에 실패하여서 레이스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로 뛰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퍼펙트 원더의 신체는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본래 키에 상관없이 뼈의 굵기나 내구도는 장신이라고 한들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하체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편인데 원더에겐 그러한 문제점은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트레이너로선 그러한 육체의 축복이 감사할 따름이였다.
그렇게 담당에 관한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고있더니,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의 우마무스메가 보였다.
'저 학생은...레이니 왈츠?'
알고있다마다. 미승리전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마신차로 승리를 거둔 주인공이지않은가. 아무래도 저번 레이스에 관한 인기투표 대자보를 붙이고 있던 모양이다. 여기선 방해하지않도록 조용히 지나가는게...
'...음. 어쩌면...'
평소에는 마주칠 일이 없는 우마무스메. 조금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 팀에 들어가있거나 트레이너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정도의 실력이였다는 건가. 그렇기에 마리야에게는 조금의 호기심이 동하였다. 필요한 용건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지않던 마리야에겐, 지금 명분이 생겨버렸다.
"며칠 전에 했던 레이스. 훌륭했었어."
마리야는 또각또각하는 구두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어떻게 이어야할지 굉장히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