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가볍게, 또레나가 보여줬던 주법을 신경쓰면서 달린다. 앞꿈치가 아닌 발바닥 전체로 보폭을 넓게 쓴다라... 익숙하지 않다. 몇 번이고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걸 의식하며 막다보니 자연스럽게 초반의 속도가 불안정해진다. 중반 코너에서부터는 결국 원래의 주법으로, 우마무스메의 자연스러운 달리기 방식으로 돌아간다. 아아, 맞아. 가속도 잊으면 안 되지.
종반 코너에서 강하게 땅을 박찬다. 더트를 움겨쥐듯이 파고들어, 강하게 차낸다. 다소 양호한 마장에 뿌옇게 모래가 퍼진다. 그렇게 최종직선까지 유지하면서—
위기 감지에 예민한 우마무스메의 습성 상 미즈호 트레이너가 손을 뻗을 때는 약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으나, 이윽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에헤헤"하고 웃는다. 상대가 누구든 쓰다듬어지는 건 기분이 좋으니까. 머리카락이야 원래부터 심각한 곱슬머리여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꼬리는 미동도 하지 않지만, 두 귀는 손길을 피하려는 건지 받으려는 건지 알기 어려운 방향으로 엉뚱하게 휙휙 흔들리고 있다...
엣, 이거 레이스에 집중 못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심리전 같은 거? 우마그린 보기보다 인텔리 쪽이니까(?) 가능성있다. ...그럼 신경 안 쓸거야. 하지만 신경 안 쓴다고 하면 할 수록 신경쓰이는법이라. 으으으. 모르겠다. 이긴 다음에 뭐냐고 물어보면 되겠지 뭐.
우마그린이 설정한 타이머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스타트. 아, 기세로 일단 뛰쳐나오긴 했지만 속도는 다소 느리다. 초장거리니까 저번처럼 초반부터 속도를 높였다간 마지막에 진다. 이게 뛰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느린 속도로, 우마그린의 달리기에 맞춰 후방에서 따라간다. 음, 역시 뒤에서 오는 압박감은 싫어서. 내가 제일 뒤에 서겠다!
>>720 출발에서 빠른 속도를 보여준 것과 달리, 초반 속도는 똑같은 주법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속력이 그닥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반 코너에 진입할 무렵에는 빠른 속도로 실속없이 꺾는 것을 보여주었고, 종반 코너 부분에서는 잠시 속력을 줄였으나 라스트 직선 부분에서는 깔끔하게 빠른 진입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진입할 때마다 그에 맞게 주법을 변칙적으로 바꾸는 것 역시 때로는 필요합니다. 격을 보여주는 데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ーー충분하답니다. 메이사 양. " "[ 추입 ] 답게 후반에서 속력을 제대로 잘 높이신, 만족스러운 성과였어요. "
조금 나아졌냐는 메이사의 물음에, 미즈호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 하였습니다.
"오늘 훈련은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이 쯤에서 끝내도록 할까요? " "내일부터는 여기서 조금씩 더 훈련량이 늘어날 것이랍니다, 단단히 스태미너 정식을 챙기고 오시도록 하세요. "
웃음소리만 낼 뿐 답은 없다. 어차피 곧 레이스 시작이고. 심리전이란 건 이런 거다! 실제 경기에서 써먹기는 어렵겠지만.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튀어나간다, 튀어나온 속도만큼은 메이사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아주 잠시 각력의 차이로 메이사가 앞섰다. 아주 잠시라고 했던 이유는, 메이사 쪽에서 금방 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각질에 맞는 전략이다. 다이고는 뒤따라오는 메이사에게서 잠시 신경을 거두고, 조금 속도를 높였다. 그렇다고 해도 메이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추월하고도 남을 속도겠지만. 후반까지 체력을 안배하는 게 관건이긴 하지만, 초반에 거리를 벌리는 것도 전략 중 하나다. 히토미미와 우마무스메 사이에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엄살부리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엄살 부리는 건 아니었다. 그냥 느낌만. 추입다운 달리기. ...라고 하기엔 후방에 또레나가 있었으니까. 주법 신경쓰랴 후방에서 누가 따라온다는 그 느낌에 시달리랴... 결국 중간에 실속해서 뒤로 갔다가 종반에서 치고 나가긴 했지만. 음 뭐, 아무튼 추입은 추입인가?
"오케- 오늘 저녁부터 단단히 챙겨야겠는데. 수고했어 또레나~"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그렇게 말한다. 내일부터는 여기서 더 늘어나는건가~ 아침에 스트레칭을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속도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우마그린. 하지만 추월하는데 문제는 없는 속도다. 아니, 오히려 추월하면 그때부터가 문제겠지. 앞의 상대를 앞서가고 싶다. 하지만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압박감은 싫어. 이 상반된 생각을 잘 어르고 달래며 레이스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장거리도 아니고 그 어떤 레이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초장거리. 중거리를 3번이나 뛰는거나 마찬가지인 이 거리에서는...
"...아직은 아니야, 그렇지?"
체력의 안배, 그리고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여유가 필요하겠지. 그래, 마음껏 도망쳐~ 최종직선에서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 뒤쳐지지 않게, 우마그린이 속도를 올린 것에 맞춰 이쪽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끔 살짝 속도를 올린다.
“오, 아나. 요즘 아들은 다 똑똑하구만~ 나는 니 때 그런 거 하나도 몰랐는데. 그래. 수상가옥이라는 게 말이지. 물 위에다가 골조를 세워가 집을 올리는 거거든. 근데 그게 결국 다~ 물 아래, 거 축축한 모래 위에다 세웠다이가? 사상누각이래는 거지.
지금 너처럼.“
뛰는 폼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지. 우마무스메치고 과하게 인간다웠으나, 여기는 모래라는 특수한 환경. 인간처럼 관절의 부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훌륭하다.
”쓰읍… 니 담당 쓴새임은 있고? 있제? 그라믄 정밀검진같은 것도 해봤나? 학교에서 해주는 기본 검사 말고 니가 담당 데려가 진짜로 병원에서 하는… 전신을 체크하는 거 말이다.“
…내가 못 해봤던 걸 남에게 투영하려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서 괜히 머리칼을 헝클인다. 그렇다고 부족한 언변이 마법처럼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오랜 습이 단번에 바뀔 리도 없고.
“뭐야, 그, 내는 말이다… 이, 왼쪽 다리랑 오른쪽 다리랑 길이가 쪼매 다르거든? 근데 검사하기 전까진 그걸 몰랐어. 진짜 작은 차이였으니까. 근데, 몸은 그 불균형을 백날이고 천날이고 있는 힘껏 메우려고 하니까, 일단 무릎이 작살이 났거든.”
그래도 말하게 되어버린다. 한 번 물꼬를 트니 뱉기는 쉬웠다.
“무릎이 아프니까, 하하, 부하를 줄이려고 자꾸 다른 데를 혹사하게 된다이가? 골반이 틀어지고, 발목이 무하를 다시 받고, 그래서… 근데 내는 정밀검사같은 거 아무도 안 알려줘가, 돈도 없어가, 그때 진짜 집이 쫌 어려웠거든? 그래가 몬했는데 말이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춘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죽어도 싫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사상누각 같은 애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선생님은 언그레이 데이즈가 조금 더… 담당을 믿어봤으면 좋겠어.“
토하고 싶어…
“담당이라면 너랑, 얼마 안 되는 인원만 봐주는, 거의 너만을 위한 선생님이다 아니야? 그 사람이 너 검진 하나 못 해주겠드나. 이런 저런 지원금도 알아봐주겠제. 요즘은 옛날이랑 다르게 뭐… 잘 돼있거든.”
“못 주겠다 카믄 내한테 말해라. 내가 일대일로 막 싸워서라도 받아와주께. 아니, 줄게 내가. 그니까… 좀 믿어보자, 검진만 하는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하는 그 기록같은 거도 더 공유하고, 상담도 하고… 응? 우리 그런 거 쫌 한다고 힘들지 않거든, 힘들다고 내칠 사람들도 아니야.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