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기. 궁기라. 선인을 잡아먹고 악인에겐 짐승을 잡아주어 상을 내린다는 흉수. 스스로 그리 칭한 것인지 누가 붙여준 것인지 모르지만 참 잘 붙였다. 아마 그 검은 호랑이 가면이겠지. 궁기 또한 날개 달린 호랑이라 일컬어지니까. 아마 학당의 일도 그 놈이 뒷배일 것이다. 참 여러가지로 민폐다. 어째서 그렇게 살고 어째서 이런 일들 벌이는 것일까. 언젠가 다시 마주치면 물어볼까.
그런 생각 하는 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천 풀어지는 소리에 관심 스르르 흘러가 벌어진 옷가지 안쪽으로 향했다. 붉은 철릭의 안. 하얀 소복 아래. 오래된 흉터와 새로운 상처가 그의 옆구리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아직도 핏기 보이는 그 상처 자세히 보려고 상체 기울이고 고개 숙였다. 보기 안쓰러운 듯 눈썹 내리누르고 눈 가늘게 떴으나 시선엔 묘한 흥미가 가늘게 반짝였다. 아직도 가끔 욱신거린다는 말에 손끝으로 조심히 흉터 부분을 쓸어보려 했다.
"이런 일이 있으니 인간이 마뜩찮을 만 하지. 그런데 영 사감님만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신수들도 똑같애-"
킬킬대는 소리에 신수도 거기서 거기라며 종알대다가 괜히 다른 말은 못 들은 척 상처 있는 옆구리로 시선 돌렸다. 붉은 피가 번들거리는 상처- 빤히 보다 향로 얘기에 힐끔 방 한가운데 보았다. 아직도 흘러나오는 푸른 연기에 발 두어번 휘젓자 휘휘 흩어졌다 다시 몰려온다. 저것 있으면 다 나을 것이라길래 제 옆구리 한 번 쓸어보고. 다시 그의 흉터 만져보려 했을 것이다. 가만가만 손 움직이려다 '오라비'라는 단어에 흠칫 했지만.
"음- 오라비 말이지요? 말은 전해 둘게요. 그래도 무슨 수업을 들을 지는 그 오라비 마음이니까."
그리고 학당에 제 오라비는 지금 수일 밖에 없으니까. 아회는 따지자면 선배잖아? 그렇지? 그럴 거야. 응. 그런 셈 치자. 그러니까 이제.
별 일 없을 거라며 상쾌한 웃음 짓는 하 사감 보고 온화 또한 싱긋 웃었다. 웃으며 상체 일으키곤 손으로 가볍게 그의 어깨 잡고 살짝 힘주어 민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움직여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그를 바라보곤. 다시 미소 짓는데 불길함보다는 음흉하달지. 역린 들고 야밤에 야산 뛰어다닐 적 지었을 미소가 그러하지 않았을지. 슬며시 상체 기울이며 손끝으로 그의 가슴팍 간지럽히듯 훑으며 평소라면 부끄러워 했을 행동 서슴지 않나 싶더니. 고개 숙여 피 스며나오는 상처에 입맞춤 하려 했다.
막지 않는다면 입술에 핏빛 물들이며 혀 끝으로 상처 훑고 고개 들었을 테고. 막는다면 아쉬운 듯 입맛 다시며 왜 안 되냐는 눈으로 고개 갸웃 기울였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멍하지만 의식 또렷한 눈이 이질적이었겠지.
아회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간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눈높이를 맞추듯 다리를 살짝 숙였습니다.
' 이리,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마요. 마음이 아파지잖아. 내 소원을 정말 들어주려고요? '
사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지, 속으로 저울질을 해보던 그가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 우리 아우의 가장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혹시 모르죠?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 지금까지 너에게 도움이 안 되진 않았다고 생각하거든. ' ' 내가 그걸 듣고 뭘 할지 힌트를 줄수도 있고? 일종의 거래예요. 나도 양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 너에게 무엇이든 못해줄까. '
친근한 목소리로 궁기가 말했습니다.
[>자유]
>>105 온화
' 인간에게 원래 호의적이지 않은 거다. 그 놈은 우리에게 없는 게 있거든. 저 향로에 든 게 그 중 하나이지. '
夏사감은 푸른 연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아주 느리게 그의 상처가 아물어갑니다.
' 내 수업을 듣는 게 가장 나을 것이다. 이 학당엔 아직 내 누이와 형님이 남아있고 그 둘은 우리와 다르게 인간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난 여의주로 어느 정도 네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말해라. '
夏사감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하. '
상처에 닿는 느낌에 夏사감이 몸을 움찔 한 번 떨었습니다. 그는 그는 구겨진 표정으로 한 쪽 입술만 비틀어 웃었습니다.
어련할까. 그래도 호의적이었던 신수도 한둘 있었던 걸 보면 변수라고 할 만한 건 있어보이지만. 순간 그 놈이라 해서 또 궁기를 언급하나 했는데 맥락상 영 사감님 같았다. 사감인 신수에겐 없고 영 사감님에겐 있는 것. 뭘까. 본래 인간이라서? 모르겠다. 나중에 마주치면 물어볼까? 그럴까.
상처 내보였을 때부터 줄곧 보고 있었으니 미미하게 아물어 가는 것도 보았다. 어서 나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멍하니 그런 생각 한 것 그는 모르겠지. 그저 그의 말에 눈동자 옆으로 데굴 굴렸다가 다시 보고 고개 끄덕였을 뿐이니.
"일이라고 할 만한 건 아직 아무 것도 없는 걸요. 전할 말은 제대로 전해둘게요."
학당 안은 신수 누구나 금지인 줄 알았더니. 역시 그 둘은 예외였다. 하긴. 그 남자 쪽은 시종일관 이빨 드러냈었다. 이러면 아회에게도 수업에 대한 귀뜸 전해야겠다고 머릿속 한 켠에 고이 적어둔다. 잊지 말자.
"후훗."
제 행동 막지 않아 기어코 새어나오는 피 취하게 할 적. 그가 몸을 떨자 저도 작게 웃음 흘렸다. 그리고 고개 들며 혀로 입술에 스며든 피도 핥았다. 신수의 피는 무슨 맛이었던가. 모든 음식 거부해도 피맛 만은 선명하게 느꼈다. 마치 제가 먹을 것은 그것 뿐인양.
"힘 같은 거 없어도 특별하죠. 나한텐. 반려의 피인데."
당연하단 듯 말한 온화 그가 옷 추스르는 것 보고 그것도 아쉬운 듯 아랫입술 살짝 깨물었다. 요전 일 때문에 가문에 신세지기 싫지만 연통 하나 보내둘까. 언제로 할까- 따위 생각하다 곧 갈 듯한 그의 말에 눈 깜빡였다.
"나아진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나아졌으니까 갈 거면 덜 나은 걸로 할래요. 응? 나 또 혼자 두려구?"
히잉. 벌써 혼자 남겨진 양 시무룩해져선 옆으로 물러나 등 보이고 웅크린다. 그래도 이제는 제법 나아진게 맞으니. 그가 정 가야한다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원수에게 머리를 조아리다니! 지금껏 아득바득 살아오며 계획한 인생에서 이런 계산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일이었다. 저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떠올리면 속내가 뒤집어지고, 당장 그때를 상기한 머리를 깨부수고 싶을 정도인데 어떻게 머리를 조아린단 말인가? 그러나 아회는 지쳤다. 그리고 새로운 수를 두었다. 도박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만큼은 모든 상황을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던 행운에 걸어보고자 한다. 어찌 되었든 이기는 것은 자신이고, 당신의 반응은 부가적인 행운에 불과할 터이니.
"……어찌 미천한 사생아가 진정한 핏줄을 이기려 하겠습니까. 그 아래에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큼 아파본 적도 없을 것이다. 아플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믿지 않는다, 그리고 흘려 넘긴다. 마치 어린 날, 사용인에게도 자신을 낮추던 때로 돌아간 듯 어떠한 쓴소리도, 감정도 담지 않고 머리만 조아리며 침묵하기 바빴다.
"……면서."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벽난로 타는 소리에 묻힐 만큼 희미한 목소리다. 같이 죽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최후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저 말이 우스웠던 탓이다. 당신은 결국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 십 분만 생각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 텐데. 나를 한 번이라도.
"저를 한 번이라도, 형제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저런 태도는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회는 웃음 지었다.
"저는…… 없습니다. 단 하루도 형제라 생각해본 적도, 형제라고 느낀 적도 없습니다. 늘 그러기만을 간원했을 뿐이고, 그렇기에 더욱 필사적이었지요. 당신이 언젠가는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까, 동생이라 해주지 않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형님께서 언제든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더욱 매달렸지요. 그러나 당신은 떠났습니다. 이 두 눈을 앗아가고, 그 차디찬 곳에 저를 두고."
그러나 바라는 목표 있습니다. 웃음 지은 것과 달리 목소리는 점차 떨려오더니, 이내 침묵했다. 당신은 도움을 줄 수 없다. 내 바라는 것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니었다.
"부디 제 손에 죽어주십시오. 그게 제가 바라는 목표입니다."
되도 않는 소리임을 알지만 뱉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끔찍하여 표정도 일그러진다.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비참한 표정을 뒤로 애써 태연해보려 노력하지만 할 수 없었다.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려와 입을 벌려 소리를 내는 것에 여러 시행착오가 생겨간다.
"제가, 제가 그 뒤를 바로 따라갈 테니까, 외롭지 않게 길동무를 해드릴 테니까……."
떨리는 호흡과 함께 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자신의 심장을 죄어온다. 숨을 쉬기가 버거워 바닥을 짚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나는 버팀목이 생겼다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그 버팀목이 없어진 걸까. 다른 사람의 손에 최후를 맞게 두느니 차라리 자신이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정녕 옳은 것일까, 실로 그 마음에 사심 없었다 할 수 있는가? 추악하고도 역한 나머지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결국 조아린 몸을 더 웅크려 표정을 숨기려 들었다. 단어와 문장은 목졸린 신음과도 같이 그 속이 단단히 메여 목구멍을 강제로 비집고 나오듯, 사납게 긁히고 끝나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숨결이 섞여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비참하게 죽기 위해 이 삶을 버텨왔으니, 그 대가로 당신 만큼은 길동무로 삼고 싶습니다. 그러니 고통 받아주세요, 괴로워 해주세요, 저를 저주하고 끝없이 깎아내려주세요……. 그렇게 당신이 비참하게 제 이름을 부르짖는 순간, 그 처절한 마지막을 보지도 못하고 시체만이 웃고 있다면, 그 썩어가는 육신이 오로지 저만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독히도 추악한 자신의 속내를 모조리 드러낸다. 품고 있던 것을 뱉어내고 나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떨리던 입꼬리가 애써 미소를 짓고 투명한 공막에는 뜨거운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소리없이 숙인 고개 너머로 굵게 한 두 방울 떨어지던 것은 점차 주체할 수 없게 되어 후드득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리던 손이 이내 기어가듯 웅크린 몸을 향했다. 자신처럼 추악한 존재는 감히 당신을 만질 수 없다는 듯, 갈 길을 잃은 손이 눈물을 틀어막으려는 듯 자신의 얼굴을 덮어 가렸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아회는 끝내 품어오던 것을 고백했다.
"죽고 싶어. 그러니 나, 나와 같이 죽어줘. 함께 지옥으로 가자……. 이번엔 제, 제발, 날 혼자 두지 마……."
짙은 증오, 그리고 애정을. 아, 내 품은 모든 것이 이 모진 겨울이 다 끝나도 피어나지 않을, 이미 죽은 꽃이었음에도, 이 뒤집힌 세상에서는 죽은 꽃 또한 가장 끔찍한 감정을 양분 삼아 다시금 피어나기 마련이구나……. 숙인 고개를 뒤로 몸은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물은 그칠 기미 없으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처럼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경을 칠까 두려웠던 나날이 몸에 박혔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 나간다고 해도 미운 소리 없이 보내줄 생각이었다. 아무리 저를 챙겨준들 그는 아직 사감이다. 그 부분까지 제가 침범해 방해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 그가 재차 옆에 다가와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인간은 치사하고 치사한 생물이다.
"무리하는 건 아닌데. 낭군님 걱정하시니 쉬는 것도 좀 보여드려야겠네요-"
옆에 온 그를 보며 슬핏 웃곤 그의 팔 잡아 제 쪽으로 당긴다. 그리고 먼저 폭 누워 옆자리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도 누우라고. 휴식이 필요한 건 그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으니. 누울 때까지 눈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그가 눕거나 달리 반응 보여주어서야 작게 하품했을 것이다. 정신은 이제야 맑아진 듯 한데. 몸은 아니었는지. 머리 대자마자 잠기운 몰려오는 것 무섭기도 했다.
"깰 때까지 있어준댔죠? 약속이에요..."
자 약속- 이라며 그의 손 하나 잡아 새끼손가락 거나 싶더니. 그러지 않고 깍지 끼워 꼭 잡으려 한다. 그 손 당겨 제 뺨에 대며 작아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다 괜찮아. 괜찮아지게 할 거에요. 나도. 당신도..."
점점 어물어물해지는 목소리였으니 달리 말 걸지 않는다면 그대로 잠들었겠지. 말 그대로 까무룩-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