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찔렸다. 보아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어떤 것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 아니던가, 죽을 수도 없었는지 허리만 옅게 스치고 말았다. 형님께서는 자신의 결정이 보고 싶다며 당신을 불렀다고 하였으니, 홀렸음에도 몽롱한 눈길은 당신을 향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죽여도 내가 죽여야 한다고 진작 마음 속에 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깊은 속내가 있지 않았나. 자신도 인정하지 못하며 일깨우지 못하던, 진정한 결정이 무엇인지 그 속내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
본다 한들 의미없다. 어차피 결정을 내린들 지켜보지도 않을 존재임을 깨달았다. 여기에서 직접 와서 보라고 얘기할 의지도 없다. 애초에 설산 위의 영물이 아니던가, 자신과 같은 하늘을 바라본들 그 높이가 다르니, 자신이 결정 내리고 그 모습 보여준다 해도 흘긋 내려다볼 뿐일 테다. 그리고 감정은 한때요 감흥없이 새로운 것 찾으려 들겠지. 가라앉은 눈빛을 숨기듯 눈이 감겼다.
본디 이만큼 왔다면 본능적인 반항심이 들 법도 하지만 넋을 뺏긴 탓인지 그런 생각도 들지 못했다. 본능마저 무너졌으니 비척비척 걷다, 고개 돌렸다. 결정이 보고싶다 하였으니 보여주겠다는 듯 당신, 인어의 앞 지켜내듯 막아선다. 평온하나 표정은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다시금 검 들고 올렸다. 그리고 또다시, 성공할 때까지 제 속내 깊게 찌르려 들었겠지.
기세 좋게 역린 내리쳤지만 과하게 피흘린 탓인지 끝내 한 번 더 먹이는 것 실패했다. 빗나가기 무섭게 시야 흔들리며 몸 비틀거렸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탈진감이 발밑에서부터 차오른다. 지금은. 지금은 안 되는데. 저것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과 달리 몸은 버텨주질 못 했고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의 등에 툭 기대졌다.
익숙한 감각. 익숙한 하얀 두루마기. 여태 코빼기도 안 비치다 다 죽어갈 쯤에야 나오나. 기쁨보다 원망이 앞선다. 시야 바깥으로 스스로 칼 찌른 아회 보았을 때엔 분함이 치솟는다.
전에 없이 타오르는 심정에 목의 문양 점점 선명해져갔다. 검은 띠 둘러진 채로 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 아니. 서서히 옆으로 번져가는 것이.
"읏..."
하 사감의 뒤에서도 느껴진 돌풍에 잠시 모든 생각이 끊겼다. 감정도 심정도 일제히 멈췄다가 주위 잠잠해지고 인어 사라진 것 깨달았을 때 울분 섞인 비명으로 터졌다.
"아아악... 아아아악...!!!"
학당을. 아회를. 유현이를. 저를! 이렇게나 헤집어놓고 그리 사라지면 다인가! 다음엔 반드시 기필코 그 목 끊어버릴 것이다. 다시 마주칠 적엔 그 목에 역린 박고 이로 물어 숨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비린내 나는 짐승새X!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놈들 전부!
제 손으로 얼굴 가리고 온 몸으로 쥐어짜듯 비명 지르다 뚝 끊긴다. 의식의 실 끊긴 몸뚱이가 지면 위를 굴렀다. 벌어진 환부에서 붉은 피 줄줄 흘리며. 어느새 목덜미 깨끗해진 채로.
인간에겐 이런 문화가 있단 식으로 거짓 대꾸라도 해 볼까 했는데 이젠 그조차도 귀찮아졌다. 그는 마지못해 고개 끄덕이며 하겠단 의사 표했다. 우선 백룡 기숙사부터라면, 나쁘지 않다. 신기하단 듯한 시선 치미에게 노골적으로 꽂힌다. 이 작자에게도 의외의 배의가 있기는 했다는 건가? 그리 큰 배려는 아니었지만 여하간.
훈련은 정말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까도 생각했듯 이미 대가를 내어줘 버린 이상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두어야 하니 싫어도 방법 없지.
"기왕이면 시작한 이상 끝은 제대로 보아야겠네요. 조금만 더 어울려 주시죠."
어깨에 힘 쭉 빼면서 피로한 티 내면서도 유현은 이렇게 말했을 테다. 어울려준다면, 화유현은 아마 이 뒤로 한참은 데굴데굴 구르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갑자기 푸는 tmi! 유현이 말투는 기본적으로 해요체에 문장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하십시오체를 간혹 섞어 쓰는 정도예요. 하지만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어투가 있는데, 특별히 멀게 느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말할 때는 말투가 조금 더 공손해지는 편이랍니다. 정확히는 하십시오체의 빈도가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말투는 더 공손해지는 데 반해 겉치레로나마 있던 예의는 덜해지고요.
이번 일상에서 치미를 상대로 말할 때.... 대체로 더 공손한 말투를 쓰고 태도도 꽤 불손했었죠....... 치미씨가 마음에 안 든대요....😗(하지만 저는 그런 치미씨를 좋아합니다 진짜임!!!)
온화가 아회가 술을 마실 적, 하 사감은 스스로의 싸움 중이었습니다. 연신, 무릎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달달달 떨던 그는 나가려는 것처럼 연신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춘 사감과 같이 바둑 두던 영 사감은 한숨을 깊게 내쉴 정도였기에 치미가 기어가듯이 하 사감에게 다가갔습니다.
' 아우야, 뭐가 그렇게.... 신경쓰여? '
거의 기어가듯 하 사감에게 다가가서 매달린 치미가 하 사감의 상태를 알았는지 히죽 웃었습니다.
' 본능이랑 싸우는 중이네? ' ' 설마 또... '
영 사감이 지팡이를 들자, 치미는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하 사감에게서 떨어졌습니다.
' 저 눈,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쪽인데... 누가 술 마시나봐? '
그 말에 모든 사감들의 시선이 하 사감에게로 꽂혔습니다. 하 사감은 그 시선을 애써 피하며 동 사감을 무릎에 재운 현진 도사에게 다가갔습니다.
' 오, 인간 죽이려고? ' ' 누이, 이번 수업에 적룡 남학생, 무 아회라고 걔 가면 그 학생 좀ㅡ ' ' *릭투셈프라 '
*간지럼을 태우는 주문
영 사감의 지팡이 끝에서 나간 주문이 하 사감에게 제대로 명중했고 그는 바닥에 웅크린 채, 간지럼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영 사감이 차가운 표정으로 하 사감을 내려다봅니다.
' 그 학생도 제겐 소중해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 ' 야... 힉..!! 너...!! '
몸을 뒤틀며 어떻게든 버티려 하는 하 사감을 가만히 보던 그가 시선을 돌렸습니다.
' 학생에게 개인 억하심정 넣은 수업 사주를 왜 합니까. ' ' 내 역린으로 그럼 저 모습들 다 보고만 있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