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제대로 겨냥하고 제대로 뻗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송 보리가 제 주먹을 피했고- 그 순간을 노린 듯 옆구리에 차가운 것이 푹 찔렸다. 얇고 길고 차가운 것- 그러고보니 직전. 아회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돌아보니 지팡이 대신 검을 든 아회가 제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오라비야... 내 꼬리 좀 그리 만졌기로서니... 이러는 건-"
커헉! 말 차마 잇기 전에 목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새빨간 덩어리가 바닥으로 철퍽 쏟아졌다. 어찌해야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송 보리의 발길질이 제 다리 걷어찼다.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당황한 지금 중심 잃고 비틀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 비틀거림으로 옆구리에 꽂혔던 검 뽑히며 환부에서 피 솟구치고 입으로는 재차 핏덩이 토해냈다. 쿨럭! 넘쳐흐른 피가 턱부터 그 아래 서서히 적셔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래서 안 하던 짓. 하는게... 아닌데."
한 손으로 옆구리 틀어쥐지만 지혈 한 것도 아니니 피가 멈출 리가 있나. 부적을 쓰고 싶으나 그럴 정신이 없다. 점차 다리에도 뜨끈한 것 줄줄 흐름 느끼며 역린 쥐었다. 검집 째로 쥐고 송 보리 향해 휘둘렀다. 조금 전은 철저히 계산한 움직임이었다면. 지금은 정신끈 붙들고 거의 악에 받친 듯한 몸짓이었다.
아, 목적지는 산의 호수라는 뜻인가. 말이 좋아 돕는다 말하는 것이지 죄다 익사 시켜버리겠다는 뜻이다. 저 좋을대로 말하는 방식으로 보아, 남자는 예상 이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인 듯싶다. 일반적인 인간도 어찌 대해야 할지 어려울 때 있는데 저 자에겐 대체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다소 난감하다 느끼면서도 쉬이 접하지 못할 저 괴이한 인간상에 흥미가 동한다. 그는 어느덧 한 발짝씩, 남자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왜 모두 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생각하는 건가요?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을 텐데."
그리고 어느 순간 확 달려들어 남자의 입 틀어막으려 했다. 대놓고 경계하거나 공격하려 들면 막는 듯하니 평범하게 대화하려는 척을 해 본 것이다. 흥미도 흥미지만 당장 입 다물게 해야 대화를 하든 심문을 하든 수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쟁점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 방심한 탓인가? 그는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 실로 아름답다 느끼고 만다. 온전한 정신 아득하게 멀어지기 직전, 짧게 혀를 찰 정도의 시간만은 있었다.
검을 휘두르기가 무섭게 머리가 맑아졌으나 이미 늦었다. 파고드는 감각과 이어지는 발길질에 피가 튄다. 반 푼도 안 되는 눈으로도 모든 것이 담겼다. 찰나의 시간을 뒤로 고개를 돌리는 것도 순간이었다. 일전에 겪었던 것이 있었다. 개여시에게 당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아니, 그것을 훨씬 웃도는 감정이 속내를 깊게 침투해 뒤흔들기 시작했다. 맑아진 머리는 온전히 소리를 듣게 하니.
"너구나."
과거 학당에서 수업을 들으러 갈 적, 목화가 아프다 했을 적. 들려왔던 그 노래가. 조그마한 생명을 해치려 들게 만들던 그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피냄새는 짙어지고 감정은 그럴수록 고요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암약하더니, 이젠 난데없이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던 존재. 가뜩이나 신수들이 사감을 흉내 내며 제멋대로 활개치는 것도 거슬리는데 이젠 바깥에서 온 것이 명백해보이는 것이. 칼 쥐었던 손목을 잘게 털었다. 부적이 손에 쥐여지더니 온화 옆구리 퍽 쳐내려 들었다.
의식은 목적 잃은 난선처럼 그저 부유하는 것만 같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서 있나 의문이 들다가도, 어디선가 흘러오는 비릿한 향에 고개 느릿이 돌아간다. 아, 저편에 피가 낭자하다. 참을 수 없이 그리운 맥동이, 끝없이 끼얹어서라도 느끼고픈 온기가. 정신 나간 이 답지 않은 차분한 걸음 그리로 향한다. 쓰러진 자 앞에 이르러 그는 온화에게 손을 뻗었다. 온건한 손길이 아니었다. 피 멎고 쏟아내길 반복하는 그 자리를 손으로 헤집으려 들었을 테다.
저번 천부에서 마주쳤을 적엔 품에 안아도 도망도 안 치더니 오늘은 미꾸라지 마냥 잘도 피하는구나! 마음 같아선 소리 내어 외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입 열고 배에 힘 주는 순간 위아래로 피 뿜을 것이다. 아이고 답답해! 분해! 이럴 때 역정 나는 것 보니 저도 어쩔 수 없는 적룡인가보다. 옆구리 화끈거려도 일단 뭐든 조져야겠으니.
"꼬리값치고 너무 비싼. 아흐! 아이고 거 살살 좀 하소!"
저 찌른 후 정신 돌아온 아회가 옆구리에 부적 붙여줄 적 그리 호들갑 떨었으나 마냥 호들갑 만도 아니었다. 실제로 꽤나 아팠고. 그래도 부적 붙일 때마다 들썩이면서도 피하지는 않아 곧 옆구리 출혈 멈춘다. 그래봐야 이미 피투성이지만은. 적어도 지혈은 되었으니 조금 운신 괜찮을-
"잌!"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땅에 이번엔 몸 주체 못 하고 자빠졌다. 털석 엉덩방아 찧는 정도였지만 이미 너덜한 제 몸에 가해지는 충격으로는 엄청났다. 정수리까지 치솟는 고통에 숨도 못 쉬고 자빠져있다가. 드득. 흙바닥 긁는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일어설 적엔 뿌드득 소리 났다. 이를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턱에 힘줄 서 있었다.
"물비린내 나는 X끼... 비늘 바르듯 살점 바르고 인두로 살살 지져버릴까...!"
무슨 짐승에게서나 날 법한 목 긁는 소리와 함께 온화 기어코 그것 뽑았다. 검집 벗겨지며 역린의 서슬퍼런 날이 드러난 것이다. 여태 헛손질 했듯 또 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 온화 눈은 실핏줄 슬슬 터지며 벌갰다. 되든 안 되든 일단 갈겨보겠다는 의미다. 그 결심 떨어지자마자 어디서 나온 힘인지 세차게 달려 역린으로 인어 꿰뚫으려 했다. 그 목 한 중간을.
개여시. 그 순간부터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끝도 없이 자신이 늘 이 세상의 일부이자 언제이든 죽을 수 있는, 아무런 재능이 없는 범인임을 인지하게 됐다. 그 사실만큼은 괜찮았다. 견딜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넘어갈 수 있고, 두 번은 재고하게 되며, 세 번은 의심하게 되고.
끝내 오늘, 그 참아오던 잿더미를 누군가 발로 걷어찼으니 바로 당신이다.
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본인이 강제로 끌고가면서 들어가길 바란다 논한다는 것인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입을 벌려 노래를 부르더니 학당 사람들을 맘대로 홀리는 것이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아니다. 땅이 아프다고 하였던 목화의 말을 다시금 상기하니 잘 알 것 같았다. 저것이 나를 방해하고, 넘어뜨릴 것이며, 불태울 것이다. 고작 저딴 것 때문에 내가. 부적을 붙이며 시선이 마주쳤을 때, 아회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누가 누구의 친구라고?"
숨기고 있던 오만함에 불이 붙는다. 검에 묻은 피 휙 털어내지도 않고, 간도 보지 않으며 그대로 칼 앞으로 쭉 뻗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면 목이나 입을 찢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그렇게 되면 비명 또한 노래가 될 수 있다. 지금 해야할 것은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는 것이지 아니한가. 하여 다리를 노렸다. 다리를 거세게 베어 무릎 꿇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