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치미는 이곳만은 들여다보지 못해 거래를 통해 제게 원하는 것을 보도록 했었지. 찾는 것이라면, 그것 때문에 이곳에 온 걸까? 더 물을 분위기가 아닌 듯하니 우선은 물러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정말, 진정으로, 체력을 좀 길러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모르겠고 몸이 지친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는 치미가 원하는 광경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방 안에서도 들었던 수상한 노래가 여기에서 시작한 것이었나? 보편적 인간의 심미에는 감미롭게 들리는 목소리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이끌림이 느껴진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저 역시도 정신 잃을지 모르니 그는 지켜보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지켜보는 일일 뿐이지 앞서서 무언가를 해결하는 쪽이 아니다. 유현은 모습 드러나지 않도록 몸을 숨긴 채 남자와 학생들의 무리를 지켜본다.
베개 밑으로 숨는 모습에 아회는 안도하면서도 착잡한 심정을 감추려 애썼다. 털뭉치 끝이 삐죽 나온 것을 보니 이러다 들킬 듯싶어 지팡이를 쥐려는 듯 손 뻗곤 이불을 몰래 움직여 덮어 가려주려 시도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지만 알고 있다. 이 정적에 안도하면 안 된다. 문이 강제로 열리자마자 머리는 상황을 파악했다.
"하."
잡으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이곳에서 맞서 싸우면 자신이 현저히 불리하며, 그렇다고 저 앞을 정면돌파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을 마치기가 무섭게 도망치려는 듯 몸을 빙글 돌렸다. 어떤 나라의 복식일지 모르나 허리를 동여매는 방식의 흰 옷깃이 소매와 함께 너풀거리고, 갈아둔 먹이 발치에 채여 휘청였음에도 지팡이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성큼성큼 벽난로를 향해 검은 족적이 남는다. 그 끝에서 무언가를 뿌리자 불은 옥빛 찬연히 빛나고, 아회는 망설임 없이 입을 벌리며 불길 속으로 투신했다.
"적룡 기숙사 밖으로."
노랫소리가 투신할 적에도 정신을 혼란케 하였으니, 차라리 도망치는 것이 나았다. 이대로라면 많은 것이 죽고 다칠 것이라 본능이 부르짖었기에.
당신은 이번에도 노래에 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또한, 머리 전체를 천으로 덮고 검은색 일색인 옷을 입은 남성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립니다. 사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만ㅡ 그다지 좋은 상황 같진 않습니다. 남자를 멀리서 관찰하듯 몸을 숨긴 유현이 보입니다.
남자는 당신을 발견하지 못한 듯 노래를 연신 흥얼거립니다. 듣다보면, 몽롱해질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한 걸음씩 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부적을 바닥에 전부 떨어뜨리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홀린 게 분명해보이는 송 보리와 무 아회가 보입니다.
[>남자를 역린의 먹이로 주려한다] [>유현에게 다가간다] [>남자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561 유현
당신은 가만히 몸을 숨겼습니다. 남자는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고 학생들은 천천히 산 위로 올라갑니다. 노래는 계속해서 몽롱해질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당신과 시야가 공유된 존재가 화난 건지, 눈 쪽에서 찌르는 듯한 격통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 .... '
홀린 게 분명해보이는 송 보리가 천천히 남자에게로 걸어갑니다.
[>자유]
>>566 아회
당신이 이불로 덮어주자, 목화의 털이 일제히 삐죽!! 섰다가 다시 사르르 가라앉았습니다. 적룡 기숙사 밖으로 도망칩니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간질입니다.
당장 이리로 와. 산에는 아주 맛있는 먹을 것도 많단다.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네가 다 잡아줄 수 있어. 그리고 우리 모두 있을 곳으로 가자.
남자는 학생들을 이끌고 위로, 위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다. 그리로 가서 뭘 하려는 거지? 생각해 보니 요괴들도 없다고 했었지. 설마 끌고 가서 요괴 먹이로 주기라도 하려고? 눈에 익은 얼굴 하나가 그 안에 섞여 있지만 그다지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계속 보고만 있으려 했는데, 은근하게 계속되던 통증이 일순 극심해진다. 그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뭘 어쩌라는 건지. 이렇게 굴 거면 보내기 전에 지시 사항 명확하게 정리해 주기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곳을 보라는 뜻인지, 저 광경이 못마땅한 건지, 그도 아니고 저로선 짐작가지 않는 이유라도 있는 건지. 유현은 통증 제법 잘 참아내는 편이었으나 그것이 언제까지고 이 감각 버틸 수 있단 뜻은 아니었다. 그는 한숨처럼 긴 숨 조용히 내쉬고는, 숨어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팔짱 끼고 태연스레 가락 사이에 끼어들었다.
"뭘 하시는 중이죠?"
치미 그 자가 무엇은 원하는지 모르니 무엇이라도 해 봐야겠다. 마침 저쪽도 눈치챈 것 같으니, 어차피 숨는 것은 더 의미도 없을 테고.
기숙사 밖으로 도망쳐도 소리는 귀를 맴돈다. 귀를 틀어막으며 일단 되는대로 달렸다. 어디로 가야만 이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지? 혼란한 상황만큼 머리도 혼란히 갈피를 잡아가기 위해 돌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차 귓가부터 시작해 속내까지 짜르르 울리기 시작하고, 본능은 지금 당장이라도 비녀를 빼 귓구멍이라도 찔러버리라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넘어갈까보냐, 그럴 일은 없을 터다, 차라리 비녀를 지금……. 손이 머리를 더듬으려 귀에서 떨어졌을 적, 몸이 우뚝 멈춘다.
손을 떼었구나.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아 그대로 자신을 깊은 어딘가로 끌고 갔다. 잠시 우뚝 멈췄던 몸은 비틀거리며 어딘가를 향하고, 다소곳한 발걸음 뒤로 드러난 모습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였던 것인지 귓가 바로 밑 목이 거센 무언가에 할퀴어져 붉은 핏방울 맺혀있었다.
"……."
본디 귀기 무 씨는 호법을 중시하여……. 지팡이 쥔 손길 너머로 온후한 미소 밉가에 맴돈다. 남성이 명하면 바로 공격하겠다는 듯.
온화의 외침에 보리가 자신에게 손 대지 못하도록 탁, 소리가 나도록 쳐냈습니다. 남자를 지키듯 그 앞에 섰습니다. 아회 역시 자신의 앞에 선 것을 본 남성은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가려진 천을 위로 올린 그가 멍한 표정으로 당신들을 응시합니다. 입가엔 문신이 새겨진 남자가 당신들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 모두, 가야할, 곳으로.... 보내,주고... 있어.... '
남자는 유현에게 느릿느릿 대답했습니다.
' 막으면, 너희... 때문에..... 더, 많이... 들어, 갈지도.... 몰라... '
보아하니 온화 역시 어찌저찌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그리로 시선 잠시 향했다. 송보리와 암호에게 다가서는 듯하니 그쪽은 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유현은 다시금 정체 모를 남자에게 눈길 돌렸다. 그리고 이내 눈 조금 키우며 의문한다.
"당신……."
꿈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니, 그저 본 정도가 아니다. 유현은 잠시나마 꿈에서 저 남자가 된 적이 있었다. 뒤늦게 지난 꿈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저 자는 그때도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는 듯했는데…….
"산 위에는 뭐가 있죠? 학생들이 왜 거기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 주시면 좋겠군요. 가야할 곳이라는 게 요괴 아가리 속이리라 저는 추측하는데, 제 짐작이 맞을지도 궁금하네요."
남자가 친절히 다 대답해줄 거라 기대는 않았지만 그는 이런저런 질문 한 번쯤은 던져 보았다. 그렇게 대치하던 도중 익숙한 울림이 발 밑으로 퍼졌다. ……이 감각을 익숙하다 여긴다니, 치미 그 작자한테 제대로 배운 것은 맞나 보다. 부적 하나가 힘을 잃더니, 땅 밑으로 거센 진동 내달리며 보리에게로 향하려 한다. 일단 땅 아래 처박히면 적어도 시간은 끌릴 듯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