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자캐는_아침형_인간_vs_저녁형_인간 아침형 인간입니다! 의?외라고 해야할지 움직이는 일 싫어하고 밥도 깨작깨작 먹지만 수면시간만은 잘 지키고 있어서 다행히 <망한 생활습관 3관왕>은 피했네요👀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아침형 인간이라고 해서 딱히 아침에 기운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요~?
기상 직후 유현: 😑(비실비실...)(부스스....)
231 자캐가_자신_있게_다룰_수_있는_도구 어... 평범하고 나약한 학생이라서 거창한 건 없고... 붓? 펜? 부적? 근데 도술도 잘 쓰는 편이 아니네요(착잡해짐)
336 자캐는_가족들과_어느_정도_교류하는가 부모: 유전자 제공자, 타인, 명목상 보호자. 가끔 귀찮게 간섭함. 형제: (없음)
나중에 무슨 말을 듣거나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말해야했다. 무아회의- 그러니까 범 되었을 적 꼬리 털결은 가히 천상의 비단 같았노라고. 물론 제 반려의 꼬리털도 좋았지만 늑대의 것과 범의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렇고말고. 게다가 아회의 꼬리는 여느 범과 달리 털 풍성하고 길고 폭신하여 그 감촉이 남달랐-
"크흠. 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 뿐인 것을."
온화 혼자 머릿속에서 폭주하는 말 튀어나가기 전에 자르고 얼른 다른 말로 덮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여기서 더 말로 꺼냈다간 후일이 감당 안 될 듯 했다. 그러니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고. 제 조언에 질색하는 아회 보며 낄낄 웃었다. 말이야 고맙다지만 저 속 어떨지 충분히 가늠되기 때문이다. 저도 다를 것 없기도 하니. 그래도 제 생각 읽은 듯한 말 했을 때는 큰 웃음 터뜨려 버렸지만은.
"흐. 하하! 아하하! 아니되게해야지! 오라비랑 술자리가 고작 한 번이라니 아쉬워서 눈 못 감어!"
두 팔로 제 몸 감싸며 깔깔 웃는데 아까보단 살만 해서 그럴까. 아회 일어날 적 술병 들고 같이 일어나 챙겨주다가 한 쪽 눈 찡긋- 했다. 답례 안 주면 내 받아내러 갈 거요. 하고 말하듯이.
"아이고- 그리 뒤로 걷는데 제대로 갈 수는 있것소? 가다 길 잃는 건 아닌가 몰러."
배웅 나오지 말라는데 걷는 모양새 어째 불안하다. 그리고 바깥에서 소란 어쩌니 하는 것도 조금 걸릴까. 역시 억지로라도 배웅 해줄까 하다가 그냥 문 밖에서 안 보일 때까지 내다보기로 하였다. 계단 잘 짚어가는 것만 봐도 안심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 하며 비틀대는 아회 바라보던 중 당연하지만 뜻밖의 말에 눈 둥글게 커졌다. 곧 휘익 접어 곱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요. 오라버니야. 부디 다음엔 오라비가 즐기는 것으로 자리 가집세. 무엇이든 좋으니."
다음. 꼭 다음이 있길 바라며 아회에게 술병 들려주고 나가는 것 지켜본다. 방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문틀에 기대어 가는 뒷모습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계단 혹은 모퉁이를 돌아 그 긴 옷자락도 하얀 터럭도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온화도 방 안으로 들어가 문 닫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요, 운명을 매듭짓는 수단이다.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과가 생겨나니 율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어떠한 관계가 생기고, 그에 따른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니, 상대에게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것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통쾌함이든.
귀기 무 씨가 있는 북부의 지역은 유달리 삭막했다. 요괴가 들끓었고, 척박했으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일까, 무 씨 집안에서 이름이 가지게 되는 의미는 더욱 컸다.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서로의 유대감은 더 깊어지게 되나 인간은 죽기 마련이다. 삶은 덧없고, 미련을 가지게 하며, 끝내 결심을 흐트러지게 했다. 하여 귀기 무 씨에서는 호위대에 입단한 자들의 이름을 없앴다. 그것이 제 가문의 사람이거나,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이거나, 저 멀리에서 북부를 위해 온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일지언정. 호위대에 입단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죽이는 의식을 치르면 그 이후로 존재는 사라졌다. 애칭도, 별칭도 짓지 않고 오로지 호위라 불리는 존재로 양성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금기였으니, 이들이 이름을 되찾는 순간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어린 날의 아회가 있었다.
이름을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으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이름을 불리지 못하고 유령이라 불리던 자신과 가문을 잃고 이름마저 잃어버린 존재가 서로 마주한 날이 있었다. 그 존재에게서 들끓는 증명의 욕구를 보았을 때, 아회는 깊은 갈망에 휩싸였다. 동질감을 느끼며 존재를 증명하고, 증명받고 싶었다. 그렇게 아회는 있어서는 안 될 금기를 저질렀다. 한때 맹 모 씨였을 자이나 이름을 죽인 호위에게, 감히 새 이름을 붙였다.
무영(無影).
자신의 곁에 늘 있어주리라 믿어, 그림자가 겹쳐 없어 보이는 존재나 다름이 없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에서 잊힌 존재이던 자신이 겹쳐 보여, 그리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 믿어 그런 이름을 주었다. 그렇게 인과율이 생겼다. 매듭이 지어졌으며, 피할 수 없는 과오가 생겼고, 선조의 지혜를 우습게 여긴 벌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이 두렵지 않았으나 이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앞으로도.
자신과 함께 죽을 운명을 걸을 자였으나, 이젠 그 존재라도 살았으면 했다. 이 지독한 운명에서 놓아주며 자유로이 삶을 갈망하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호위대주에 오른 너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 위상을 드높이겠지. 지독한 죄책감이 가슴을 옭아맸다. 네게 죽으라는 명과 함께 이름까지 주어놓고, 정작 나는 네게 삶을 명하는구나. 내가 네게 죽을 운명을 주었음에도!
아회는 천천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은 불안을 떠안고 다시금 기어 와 어깨를 붙잡아 속삭였다. 웃음기 어린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쟁쟁히 울리는 것 같았다.
얘, 결국 정을 준 너의 탓이다. 알량한 온정 베푼 너의 업보다. 너는 결국 이름 가진 것에 대한 죽음이 닥쳐왔을 때,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너는 상실감을 얻고, 공포와 슬픔을 다시금 품을 것이다. 너는 버틸 수 있느냐? 네가 직접 이름을 준 존재로 하여금 너는 무너지겠구나, 결국 해저도 갈 수 없게 되겠구나……. 그러니 어찌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느냐, 네 처지를 알았어야지. 그리고 목소리는 다시금 깨달음을 주었다. 아회는 손에 파묻었던 고개를 천천히 올렸다. 오로지 앞만 쳐다보는 시선이 공허하다.
귀기 무 씨는 과거부터 도술보다 예禮와 무務를 숭상하며 그 재능 출중하였으니, 타고난 힘과 기교는 이들을 패왕으로 이끌 자질을 충분케 하였으나 그 선조는 타 존재를 찍어누르고 억압하지 아니하며 풍류를 벗 삼던 고고한 성정 지녔으매, 그 힘으로 하여금 제사장을 호법하는 삶을 선택하였으니 그 충성심은 번견과 같고 긍지는 용과 같았다. 그러나 선조는 제사장이 옳지 못한 길으로 가더라도 맹종하여 그 뜻 따라 반기를 들게 되었으니, 이들은 신을 해하려는 시도로 북부에 유폐된 이후에도 주인 되는 자의 충심을 따랐을 뿐, 죄를 지었으나 후회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뜻을 확고히 했다. 천인공노할 발언이나 귀기 무 씨는 무인務人의 긍지 드높으며 호법 자체에 큰 의미를 둠에 자긍심 가진 고매한 집안이니, 이 맹목적이고 뒤틀린 충심을 갸륵히 여긴 제사장들은 비록 북부 출신이라 한들 다시금 손 뻗어 가문의 명맥 잇게 하는 자비를 보였다.
그러나 귀기 무 씨는 무인의 긍지만이 높은 것이 아니었으니, 한때 책사策士 또한 대를 이었으며 그 존재는 귀기 무 씨를 패왕이라 불리던 것에 일조해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선조가 반기를 일으켜 북부에 유폐된 이후에는 더 이상 패왕이 될 수 없기에 이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며, 역사의 뒤안길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듣자 하니 궁기의 등장 이후 명맥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만큼 무너져가던 가문에 홀연히 나타난 존재 있으니, 이는 수 세기 만에 다시금 나타난 책사였다. 과감한 결단과 더불어 정세를 쉬이 읽으니 그 눈치가 보통이 아니어 여러 제사장 가문과의 맹약 얻어내고 신뢰를 회복해 무 씨 집안을 다시금 북부의 고고한 무인 가문이노라 그 위상을 다시금 드높이기 시작하였다더라.
그러나 그 존재의 외견은 고사하고 이름도, 나이도, 소속도 알 수 없으니 마치 은거하는 기인 같으며 가주가 신임하여 그 정체를 앞장서 숨겨주니, 가주 무 준서의 호呼인 맹호猛虎를 바탕으로 그 뒤에 숨어 보호받는 존재라 하여 그 명칭 암호闇護라 불리었다. 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단서, 암호라 불리는 귀기 무 씨의 책사는 맹호의 신임을 크게 얻어 푸른 혼불 그려낸 검은 부채를 하사받았다 하니, 그 부채 든 자가 암호일 터였다.
"─엽 씨 가문의 여식은 능력과, 야망이 있는 자이나 성미가 급하고 직설적이며, 욕심이 있다. 그러니 유일한 직계인 자신이 아닌 방계를 널리 본다는 가주의 말과 경쟁구도에 있는 방계의 아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
그리고 무영은, 무릎을 꿇은 채 그 푸른 혼불 그려진 검은 부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핑계일 뿐, 엽 씨 가문의 가주는 딸을 끔찍이 아껴 아이가 이른 나이에 자신과 같은 정쟁에 뛰쳐들지 않길 바라 하루라도 더 후계자 책봉을 늦추는 것이나, 가주 또한 솔직하지 못하며 신중함을 몇 번이고 거듭하다 결국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성정을 지녔다. 이처럼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없으니 자식이 상황을 이해할 리도 없거니와 아무리 냉철한 엽 씨 가문의 가주라 할지언정 그 방계들이 후계구도를 입에 올린 이상 후일 책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터인데, 딸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 끝을 홀로 짊어지려 하니 실로 우유부단한 자다."
아회는 부채를 느긋하게 팔랑였다. 부채를 흔들 때마다 혼불이 일렁이는 듯했다. 암호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그래, 어릴 적의 호였을 뿐이다. 한자 또한 지금과는 달랐다.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단 뜻이겠지.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호는 어느덧 귀기 무 씨의 숨겨진 책사의 이름이 되었고, 자신이 기회를 쥘 수 있게 도왔으니.
"여식은 지금 약이 바짝 오른 상태이지. 방계에서는 득달같이 제 아이 봐주십시오 하고 있으며, 갑작스럽게 관념을 깨고 후계구도를 넓히는 어미의 독단적인 행동에 입지가 좁아졌지 않으냐. 마음만 같다면 방계를 제거할 궁리를 하고 있겠으나 그 아이에게는 명분이 없지. 그러니 가주님께서 노골적으로 방계를 밀어준다는 명분과 제사장의 도리를 일깨우면, 이는 도화선이 되어 알아서 타오를 터다. 그리고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너는 주어진 것을 가지고 가라."
아회는 눈을 잃은 직후에도 방황할 수 없었다. 유일한 후계자는 악명 드높은 범죄자가 되었고, 가문은 쇠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탓할 것이 있으면 모두 단합한다 하였던가? 사람들은 귀신같이 가장 약하고 만만한 아회를 탓했다. 사생아만 없었더라면 가문이 이렇게 될 일은 없었다며 눈을 부라렸으니, 배척과 위협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날이 갈수록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급급한 상황에서 아회는 필사적으로 살아남고자 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조리 해내 그 쓸모를 증명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들었다. 숨겨오던 발톱까지 드러내었으니 가주의 눈에 드는 것은 당연했다.
"……주군, 아무리 주군이라 한들 가주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무 준서라는 자는."
그리고 가주를 마주했을 때, 아회는 자신의 강점을 깨달았다.
"가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 오로지 가문만을 위해 헌신했고, 인간보다 무인이라는 자긍심을 더욱 사랑하는 자야. 과연 집안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느냐?"
그 어떤 감정도 섞을 수 없는 시선. 뒷방에 틀어박혀 소리나 듣고 살던 자신은 누구보다 가문의 상황을 잘 알았다. 하물며 그 사이에 섞일 수 없었으니 제3자나 다름없는 시선으로 가문을 평가할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이든 자신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타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강점을 파고들어 가주 앞에서 뜻을 밀어붙이자 길이 열렸다. 가문의 중대사에 대해 시험하였을 적, 자신이 내놓은 결단을 높이 산 가주의 신임을 얻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회는 점차 가주의 권한을 등에 업을 수 있게 되었고, 학당에 입학할 적엔 귀기 무 씨의 책사 자리에 앉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여타 제사장 가문에서도 들고일어날 사안입니다. 멸문지화라뇨!"
무영은 그런 아회의 뒷사정과 결단력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번 사안은 북부의 가문도 아닌 무려 곡옥의 가문이 엮여있으니 중대사이지 않을 수가 없어 감히 불충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꿇은 채 단호히 입을 벌리는 무영을 바라보던 아회는 부채를 팔랑이던 것을 멈췄다.
"영아." "예, 주군. 하문하소서!" "팔 년 전, 맹 씨 가문이 서로를 산제물로 바치겠노라며 도륙하고 그 이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 "!"
무영의 몸이 움찔 떨렸다. 맹 씨 가문은 한때 무 씨 집안의 호위를 받던 촉망받던 제사장 집안이었으나, 그 안에서 분열이 생기고 제각기 산 제물을 바치겠노라 서로를 도륙하다 자멸한 가문이자, 무영의 본가였기 때문이었다. 아회는 그 참사 속의 유일한 생존자인 무영을 이해하나, 지금은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부채를 접었다.
"그들이 입을 열었느냐?"
무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문이 불타고 수많은 피가 튀었을 때 도운 자가 있긴 했으나 이는 모두 이해타산에서 계산된 행위요, 제대로 된 선의라고 할 자는 없었으니. 외면받았던 과거를 떠올리듯 무영의 표정이 구겨지며 입이 딱 다물리자, 아회는 혀를 끌끌 찼다.
"오늘 선택받지 못하면 내일 산 제물이 되어 죽는 자들이다. 서로에게 협력한다 한들 그것은 선의가 아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큰 이득을 쥐여주는 은恩이 될 수도 있는 법, 혼란은 신의 뜻이요 유흥이자 안배이니 이는 당연한 이치요 섭리이라. 신을 받드는 그들이 어찌 신의 뜻을 거절하랴?" "……." "뒤집어진 세상에서 정명한 이치를 논한다면 이는 그 이치를 논할 수 있을 만치 강자이거나, 신의 뜻을 거절하는 광인에 불과하다."
북부의 자가 신의 뜻을 이야기하니 모순이 따로 없으나, 신앙은 자고로 훌륭한 명분이지 아니한가. 신 앞에서 누가 자비를 논할 수 있으며 반문할 수 있을까, 하물며 제사장 가문이라면……. 아회는 느릿하게 생각을 떨쳐내며 몸을 움직였다. 툭, 부채를 접어 입술 밑 오목한 곳에 대며 눈을 가늘게 뜨자, 무영은 아회가 말한 것또한 명령이며, 그 처지를 깨달았고 맹종하겠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기에."
아회는 제 앞에 엎드려 절하는 존재를 감흥없이 내려다 보았다. 감히 이 아둔한 머리를 굴리건대, 패왕이 될 수 없다면 패군이 되는 수밖에 없으니, 남은 책사들은 북부에 유폐될 적 그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가문의 영달과 고결함을 위해 모조리 그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이미 더럽혀진 가문이니 패왕도, 패군도 될 수 없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