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기실 동일한 종류의 감정에서 발원했다고들 하는, 그에게 있어선 가장 모호하고도 요원한 감정의 총합이다. 신이 집착하는 인간과 신에게 애증 가진 존재. 무언가 연관이 있을까? 그는 치미의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평소처럼 캐묻지는 못했다. 익숙지 않은 시야에 적응하는 동시 상대의 세밀한 반응을 관찰할 여력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
유현은 익숙해지면 일을 시키겠단 이야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인지, 대답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최대한 미숙한 체를 할까 하며 벌써부터 꾀부릴 속셈부터 떠올리는 중이었다. 물론 그 생각 정말 행동으로 옮길지는 지금 보는 광경부터 처리하고 난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시야가 또 다시 전환된다. 이번에 보인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익숙한 장소의 풍경이었다. 학당에 다니며 몇 번은 올랐던 그 산.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이었으나 한쪽에 무언갈 뭉쳐놓은 듯 붙어 있는 것들이 보인다. 요괴들이 저들끼리 모여 있었다. 요괴에 관해 박식하지 않은 그라도 무엇인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어쩔까, 짧게 고민 스친다. 잠시간 옹기종기 모인 그것들의 모습 응시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방금 전 보았던 남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라 했었지. 좋을대로 끼워맞춘 비약일지도 모르나 그 남자와 학당에 벌어지는 여러 사태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든다. 그는 몸으로 고생하는 것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주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맞닥뜨린 상황에 휘말릴 때의 일이다. 아주 모호한 실마리라도 얻은 이상 그도 그 재미란 것 기다리고 싶어졌다.
다시 눈을 뜨자 평범한, 그러니까 당장 앞에 있는 것만 보이는 '비교적' 보통에 가까운 시야가 그를 반겼다. 유현은 조용히 치미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흩어지고 말았다. 세상 살며 이렇게까지 불합리한 적이 있었나?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 아니, 좀 깊게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괜찮은 축인가……? 눈 잃고, 신수에게 강제 계약을 강요 당하며, 신에게 노골적인 악의를 받고, 제 형님과 생사결을 벌여야 하는 운명에 놓였으니 이 정도야 괜찮은 것 같다. 그렇지만 기분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한 것은 역린의 흉흉한 기운 때문이었다. 아무리 모든 것에 초연한 아회라고 해도 술 마시다 꼬리 드러냈단 이유로 죽고 싶지 않다는 욕구 정도는 있다. 꼬리 툭 떠굴 적 앓는 소리가 들리자 아회는 절대 아니라는 듯 역린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뇌가 반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 똑같이 감싸쥐긴 했지만 서로 다른 고통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은 술기운이 무엇인지 제대로 체감하고 있고, 저쪽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고. 얼굴 가리고 있자니 어깨에 손이 닿는다. 아회는 눈만 슥 들었다가, 황당하다는 듯 미간을 구기며 입을 작게 벌렸다.
"얘가 진짜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그 말을 꼭 했어야만 했냐는 듯 세상 황당한 표정 짓다가도 한숨 푹 쉬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이 방까지 뛰어와서 무아회 나오라며 죽이려 들기라도 하겠나……? 제발 아니길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이 학당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겠지, 끔찍하다. 당신의 조언에 아회의 눈이 결국 질끈 감긴다.
"……그래, 조언 고맙구나."
아주 고마워 미칠 지경이다. 술기운이 반쯤 날아간 기분이 들어 한숨 한 번 더 푹 쉬고. 손가락을 들어 까딱였다. 귀와 꼬리가 푸른 불꽃과 함께 훅 사라지더니, 아회는 술병 물끄러미 바라보듯 고개 돌리다 잠시 고민했다. 그래, 첫 술이 마지막이 될 리가 있겠나, 앞으로도 술을 자주 찾을지도 모르고, 이참에 받는 것은 좋겠다마는─
"……마지막 술은 아니지?"
당신과 비슷한 생각 하더니만, 아회는 끌끌 웃었다. 웃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소극적인 감정표현이지만, 이 정도면 어디랴. 당신의 어깨 가볍게 툭툭 두드려주려 하며 아회는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슬 도망…… 아니, 자리를 파할 시간인 것 같기도 하니. "고맙게 받으마. 대신 답례 정도는 줘도 괜찮겠지?" 그리 얘기하고는, 지팡이 짚으며 천천히 일어서려다 잠깐 뒤로 두 걸음 걸었다.
아…… 그렇지, 나 술 마셨지…….
"……혼자 갈 수 있으니 배웅은 말고. 만일 바깥에서 소란 일어도 문 열지 말고. 알겠지? 그림자 통해 어떻게든 도망쳐보마."
하 사감님 뛰어올지도 모른단 소리다. 아회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돌아가자마자 영이를 불러서 문부터 걸어 잠그자 해야겠다. 아니, 가문에 서신을 써달라 할까? 신수의 노여움 받았노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유폐되나? 그럴 것 같은데. 복잡한 속 뒤로 몸은 비틀비틀 잘도 움직였다. 그리고 멈칫.
77 자캐는_아침형_인간_vs_저녁형_인간 아침형 인간입니다! 의?외라고 해야할지 움직이는 일 싫어하고 밥도 깨작깨작 먹지만 수면시간만은 잘 지키고 있어서 다행히 <망한 생활습관 3관왕>은 피했네요👀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아침형 인간이라고 해서 딱히 아침에 기운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요~?
기상 직후 유현: 😑(비실비실...)(부스스....)
231 자캐가_자신_있게_다룰_수_있는_도구 어... 평범하고 나약한 학생이라서 거창한 건 없고... 붓? 펜? 부적? 근데 도술도 잘 쓰는 편이 아니네요(착잡해짐)
336 자캐는_가족들과_어느_정도_교류하는가 부모: 유전자 제공자, 타인, 명목상 보호자. 가끔 귀찮게 간섭함. 형제: (없음)
나중에 무슨 말을 듣거나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말해야했다. 무아회의- 그러니까 범 되었을 적 꼬리 털결은 가히 천상의 비단 같았노라고. 물론 제 반려의 꼬리털도 좋았지만 늑대의 것과 범의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렇고말고. 게다가 아회의 꼬리는 여느 범과 달리 털 풍성하고 길고 폭신하여 그 감촉이 남달랐-
"크흠. 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 뿐인 것을."
온화 혼자 머릿속에서 폭주하는 말 튀어나가기 전에 자르고 얼른 다른 말로 덮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여기서 더 말로 꺼냈다간 후일이 감당 안 될 듯 했다. 그러니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고. 제 조언에 질색하는 아회 보며 낄낄 웃었다. 말이야 고맙다지만 저 속 어떨지 충분히 가늠되기 때문이다. 저도 다를 것 없기도 하니. 그래도 제 생각 읽은 듯한 말 했을 때는 큰 웃음 터뜨려 버렸지만은.
"흐. 하하! 아하하! 아니되게해야지! 오라비랑 술자리가 고작 한 번이라니 아쉬워서 눈 못 감어!"
두 팔로 제 몸 감싸며 깔깔 웃는데 아까보단 살만 해서 그럴까. 아회 일어날 적 술병 들고 같이 일어나 챙겨주다가 한 쪽 눈 찡긋- 했다. 답례 안 주면 내 받아내러 갈 거요. 하고 말하듯이.
"아이고- 그리 뒤로 걷는데 제대로 갈 수는 있것소? 가다 길 잃는 건 아닌가 몰러."
배웅 나오지 말라는데 걷는 모양새 어째 불안하다. 그리고 바깥에서 소란 어쩌니 하는 것도 조금 걸릴까. 역시 억지로라도 배웅 해줄까 하다가 그냥 문 밖에서 안 보일 때까지 내다보기로 하였다. 계단 잘 짚어가는 것만 봐도 안심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 하며 비틀대는 아회 바라보던 중 당연하지만 뜻밖의 말에 눈 둥글게 커졌다. 곧 휘익 접어 곱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요. 오라버니야. 부디 다음엔 오라비가 즐기는 것으로 자리 가집세. 무엇이든 좋으니."
다음. 꼭 다음이 있길 바라며 아회에게 술병 들려주고 나가는 것 지켜본다. 방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문틀에 기대어 가는 뒷모습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계단 혹은 모퉁이를 돌아 그 긴 옷자락도 하얀 터럭도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온화도 방 안으로 들어가 문 닫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요, 운명을 매듭짓는 수단이다.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과가 생겨나니 율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어떠한 관계가 생기고, 그에 따른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니, 상대에게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것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통쾌함이든.
귀기 무 씨가 있는 북부의 지역은 유달리 삭막했다. 요괴가 들끓었고, 척박했으며,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일까, 무 씨 집안에서 이름이 가지게 되는 의미는 더욱 컸다.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서로의 유대감은 더 깊어지게 되나 인간은 죽기 마련이다. 삶은 덧없고, 미련을 가지게 하며, 끝내 결심을 흐트러지게 했다. 하여 귀기 무 씨에서는 호위대에 입단한 자들의 이름을 없앴다. 그것이 제 가문의 사람이거나,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이거나, 저 멀리에서 북부를 위해 온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일지언정. 호위대에 입단하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죽이는 의식을 치르면 그 이후로 존재는 사라졌다. 애칭도, 별칭도 짓지 않고 오로지 호위라 불리는 존재로 양성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금기였으니, 이들이 이름을 되찾는 순간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어린 날의 아회가 있었다.
이름을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으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이름을 불리지 못하고 유령이라 불리던 자신과 가문을 잃고 이름마저 잃어버린 존재가 서로 마주한 날이 있었다. 그 존재에게서 들끓는 증명의 욕구를 보았을 때, 아회는 깊은 갈망에 휩싸였다. 동질감을 느끼며 존재를 증명하고, 증명받고 싶었다. 그렇게 아회는 있어서는 안 될 금기를 저질렀다. 한때 맹 모 씨였을 자이나 이름을 죽인 호위에게, 감히 새 이름을 붙였다.
무영(無影).
자신의 곁에 늘 있어주리라 믿어, 그림자가 겹쳐 없어 보이는 존재나 다름이 없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에서 잊힌 존재이던 자신이 겹쳐 보여, 그리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 믿어 그런 이름을 주었다. 그렇게 인과율이 생겼다. 매듭이 지어졌으며, 피할 수 없는 과오가 생겼고, 선조의 지혜를 우습게 여긴 벌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이 두렵지 않았으나 이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앞으로도.
자신과 함께 죽을 운명을 걸을 자였으나, 이젠 그 존재라도 살았으면 했다. 이 지독한 운명에서 놓아주며 자유로이 삶을 갈망하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호위대주에 오른 너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 위상을 드높이겠지. 지독한 죄책감이 가슴을 옭아맸다. 네게 죽으라는 명과 함께 이름까지 주어놓고, 정작 나는 네게 삶을 명하는구나. 내가 네게 죽을 운명을 주었음에도!
아회는 천천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은 불안을 떠안고 다시금 기어 와 어깨를 붙잡아 속삭였다. 웃음기 어린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쟁쟁히 울리는 것 같았다.
얘, 결국 정을 준 너의 탓이다. 알량한 온정 베푼 너의 업보다. 너는 결국 이름 가진 것에 대한 죽음이 닥쳐왔을 때,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너는 상실감을 얻고, 공포와 슬픔을 다시금 품을 것이다. 너는 버틸 수 있느냐? 네가 직접 이름을 준 존재로 하여금 너는 무너지겠구나, 결국 해저도 갈 수 없게 되겠구나……. 그러니 어찌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느냐, 네 처지를 알았어야지. 그리고 목소리는 다시금 깨달음을 주었다. 아회는 손에 파묻었던 고개를 천천히 올렸다. 오로지 앞만 쳐다보는 시선이 공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