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은 그 풍채요 위용이 대단하며 자태 신비로우니 인간들은 외경 담아 산군이나 산신령이라는 칭호를 내렸다더라. 하물며 제 아무리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사생아인데다 자신을 눈 보이지 않기까지 하는 무가치한 존재로 봐도 범으로 변했을 때나 꼬리 드러날 적에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만큼 대단한 존재가 지금 당신의 앞에서는 큰 고양이가 되어버렸으니, 아회는 자신을 향한 무자비한 애정에 공포심을 느꼈다. 웃음소리에 꼬리 끝이 바르르 떨리고, 시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 그, 그게. 화야, 정말로, 자, 잠깐-"
웃음 짙어질 적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술기운이 날아갈 듯 날아가지 않을 듯, 순간의 상황을 온몸과 정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던 도중 능수능란한 손길에 잔 황급히 내려두며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감각이 예민한 탓이 아니었다. 이것은 본능의 문제요 유달리 아회는 무 씨 집안의 가계 도술 이어받은 사람 중 본능에 치중한 쪽에 가까운 편인 탓이다. 꼬리도 살살 쓸고 귀 뒤를 살살 긁어주고, 털의 결을 쓸어주기까지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참으려 노력했으나 어디 본능을 참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이것만큼은 죽어도─
가르릉, 가르릉, 골골골…….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입을 틀어막아도 목에서 울리는 골골송을 어떻게 참아내랴. 아회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내지 존엄성이 바스스 흩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틀어막은 손을 서서히 올려 얼굴을 덮어 가렸다. 와중에도 착실하게 목에서부터 가르랑거리는 소리 울린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잃어버렸겠다, 꼬리 못 집어넣게 하며 옆에 두겠다는 제 형님보다 무시무시한 발언이 이어지더니 이내 손길이 뚝 멈춰버렸다. 가릉가릉 소리도 덕분에 멈췄다마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멈춘 것이지?
"……응?"
손을 슬쩍 치우니 수치심에 달아오른 뺨과 어안이 벙벙한 눈빛이 당신을 향한다. 어색한 웃음과 슬그머니 떨어지는 모습도 그렇고, 옷깃 정리해줄 적엔 반박자 늦게 따라오는 뇌 덕분에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참을 눈만 깜빡였다. 이게, 지금이라도 존엄성을 챙겨줘서 다행이긴 한데……. 고양이란 본디 한 번 쓰다듬으면 앞발로 톡 밀어낼 때까지 쓰다듬어줘야 하는 법. 하물며 술까지 걸친 몸으로는 "화야, 혹시…… 어디 마음에 안 들었어?"하고 물어보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뱉어버리며 꼬리 다시금 입으로 합 물다가,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 아회의 시선이 도르륵 어딘가를 향했다. 당신이 멈추기 직전 보았던, 역린 있는 곳으로.
"……아."
아. 그렇구나… 나 아까 뭔 말 했더라. 아, 그렇지. 진짜 죽었네. 아회는 싸해진 상황 속에서 꼬리를 문 입을 작게 벌렸다. 꼬리가 툭, 도 아닌 폭…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정적만이 내려앉는다. 손이 아까 황급히 내려둔 술잔을 찾아 소반을 더듬거리더니 이내 술을 쭉 들이켠다. 무슨 맛이 나는지도 모르겠고 살려만 달라.
억지로라도 눈 주겠다며 거래를 종용한 이유는 그것 때문인가 보다. 다른 곳을 보아야겠다 마음먹자 갖가지 광경이 상에 맺히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런 눈으로도 학당만은 보지 못한다고. 불규칙하며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그만 볼까 하던 때에, 어느 곳에서 시선이 멈춘다. 푸른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 ……한 번도 만난 적 없건만 어딘지 낯익은 자다. 그는 저 남자를 어디에서 만났던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아, 그래. 지난번 별사탕 소동의 환상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때도 무엇인지 모를 모략 꾸미는 투로 혼잣말을 하더라. 이번에도 비슷한 광경인 것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저 자는 이런 종류의 암약이 특기인 모양이다. 궁금증이 일어 남자의 모습 쭉 응시하던 중이었다. 유현은 어느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결국은 이 역시 '시선'이니 마주치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니겠나. 상대는 조용히 하라 했을 뿐 보지 말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느릿하게 눈 깜빡이다 시선 그대로 두었다. 상대에게 더 보여줄 것 있다면 하라는 듯.
***
"네, 어련히 하죠. 그런데 원거리를 들여다보는 중에 이 눈의 시선을 느끼는 일, 흔한 경우인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역린의 시선이 거기 없었더라면 조금 더 엄청난 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인 아회조차 질겁할 정도의 애정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그저 귀와 꼬리 만으로 만족했을까? 술김에 혼란한 것도 있겠다 전신 변해보라 채근하고 채근하여 기어코 제 방에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 들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아회 목에서 냥속들 특유의 울림소리가 났을 적에는 말이다.
꼬리가 부푸는 것만 해도 엄청난데 덜 변한 채로 목 울리는 소리까지 낸다? 이걸 어떻게 참느냐고!
라는 생각이 머릿속 지배하여 귀와 꼬리 내놓은 채로 옆에 두겠다는 둥 어마무시한 소리 내뱉을 적 마치 경고하듯 느껴진 역린의 시선 덕에 일은 더 나아가지 않고 그쳤다. 오싹하게 식어서 멈춘 것도 있지만 반쯤은 제 자신을 억눌러 참은 것이라. 옷깃 정리해 주는 중에 아회가 답지 않게- 뭐가 마음에 안 들었냐며 꼬리 무는 것 봤을 때는 그대로 다시 이성의 끈 놓아버릴 뻔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찌어찌 참아내고 나니 옆에서 아회도 상황 깨달은 듯 물었던 꼬리 폭 떨어... 꼬리가 폭...
"...으아아..."
다시금 치솟는 번뇌에 그만 얼굴 가리고 작게 앓는 소리 내고 말았다.
이럴 때 뭐라 그러더라. 정신 나갈 것 같애? 진짜 그 말 대로다. 더이상 저 모습 보고 있다간 지금보다 더한 일 생길 것 같다. 끝끝내 커다란 호랑이 쓰다듬고 말 거야! 안 되지. 그건 진짜 안 돼. 그러니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후."
얼굴 가린 채 심호흡 한 번 하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도 같다. 그래. 이제 마실 만큼 마시기도 했으니 이만 자리 파하자고 해야겠다. 결심 딱 먹고 손 내린 다음 한 손으로 아회 어깨 살포시 잡으려고 했다. 기필코 다시 쓰다듬을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손으로 엄지를 치켜들며 그런 말을 한 것은 조금 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냐는- 꼬리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지. 이 말을 차마 그냥 넘기지 못 했음이리라.
"오라비의 꼬리. 완전 최고였어. 어. 진짜."
음- 말 나온 다음에 망했다고 생각하면 뭐하니. 이미 저지른 것을.
이미 쌓은 업보에 한 획을 더해버렸지만 온화 후회는 없었다. 그래. 후일은 후일의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다. 까짓거 좀 뻔뻔해지자. ...마주하고도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 사감실은 가지 말어. 응. 수업도 그 쪽은 피하고."
그 쪽이라 함은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라 믿겠다. 그렇지만 저는 가야 하는데. 언제 가지... 뭐라도 들고 갈까... 당장 고민해봐야 답은 안 나오니 저나 아회를 위해서도 자리부터 파해야겠다. 하여 아회 어깨 두어번 툭툭 두드려 주려 하며 말 덧붙였다.
"허면 오늘은 이만 할까. 오라비도 충분히 많이 마신 듯 하고. 아. 갈 적에 이것 줄 테니 가져갈테요? 그늘진 곳에 두기만 하면 맛 상하지 않고 오래 가거든."
온화 말하며 가리킨 것은 직전까지 마시고 있던 금빛 술병이다. 이미 아는 맛이고 절반 이상 남았으니 졸업 전까지 홀짝홀짝 마시기에 좋을 것이다. 단지 이것이 아회 생애 마지막 술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지... 아. 저도 포함인가.
치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는 화난 것 같으면서도 슬픈 것 같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 무슨 말이야?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거? '
당신의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혹은 질문 내용이 황당했던 건지 치미의 미간이 구겨졌습니다.
' 내 눈은 요괴들도 알아채지 못해. 만약, 알아챘다면... 그거 태초의 어머니 아니야? '
설마, 자신들을 만든 창조자가 귀히 여기는 생물이 있을까. 그는 무언갈 생각하다가 누군가가 생각난 듯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 천부에 있는 빵집 주인은 볼 수 있을 걸? 그 인간은 태초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것도 설명이 되거든. '
그러면 말이 된다고 말하듯 그가 말했습니다.
' 너, 지금 그 여자 보고 있어? '
응? 방금 당신이 본 사람은 남자 아니었던가요?
치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 ...... '
남자는 말 없이 손을 까딱였고 뱀 한 마리가 기어와, 발치에서부터시작해서 어깨로 휘감고 올라갔습니다. 그가 만족한 듯 미소지었고 쓰러진 남자를 치우라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였습니다. 코가 말린 불가살 가면을 쓴 남자가 들어오더니, 쓰러진 사람을 끌고 어디론가 걸어갔습니다. 바닥에 끊겨진 피로 된 붉은 길이 이어졌습니다.
' .... '
남자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팔걸이에서 손가락 태핑을 잠깐 하더니만은, 종이에 무언갈 적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감긴 눈이 곱게 휘었습니다.
종이가 팔락이며, 당신의 눈에 보이는 위치에 펼쳐졌습니다. 글씨체를 감추기 위해서인 것처럼, 굉장히 크고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보는 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의미였는데. 보길 원한다면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게 있어. 조만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거야. 어느 쪽이 더 네게 가치있는 판단일까.
그는 그 종이를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습니다. 다른 곳을 봅니까, 눈을 감습니까, 더 봅니까?
학당을 특정하여 보지 못하게 한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곳은 치미에게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무언가가 얽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쉬이 분간하기 힘든 표정을 짓는 치미를 바라보았다. 저 자 인간이 아님에도 생동한 감정을 탐하는 그로서는, 이 물음을 도저히 넘길 수가 없다.
"그건 무슨 감정인가요?"
……묻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시선 저편으로 고정하고 있다. 피와 뱀, 가면을 쓴 다른 남자. 그리고 조금 전의 장면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양 정확하게 자신을 겨냥한 전언. 유현은 직감했다. 저 남자는 위험한 자다. 나름대로는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는 중인─용납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이긴 했다.─ 치미와는 달리 허튼수작이라곤 전혀 통할 것 같지 않다. 저 자가 누구인지, 재미있는 일이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이기에 치미의 눈을 간파할 수 있는지. 의문은 많았으나 우선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 재미있는 일 곧 닥칠 것이라면 기회는 언젠가 다시금 다가오리라.
"빵집에 들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런 모양이네요. 신께 미움 사긴 싫으니 제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만 보아야겠군요."
그는 거짓을 고하기로 했다. 때마침 신의 집착이라는 좋은 핑계도 있으니 둘러대기도 편했다. 정체 모를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기엔, 조금 전에 말했듯 치미에게는 신뢰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말했다가 도리어 치미가 그 남자 유심히 보라 명령하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강제 당하게 된다면 그는 거부하지 못하리라. 유현은 푸른 머리 남자를 응시하던 시선 이번엔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만하면 적응도 되었으니 이번까지만 시험해 보기로 했다.
1:1:1:1(우와...)은 찬성하지마는, 이전 기수의 경우에는 친목 문제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1:1:1:1이 성립된다는 조건 하에 어장을 세우고 나서 천천히 토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요즘엔 그 기준이 유해지고 캡틴의 권한이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괜찮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