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세상 속에서 정명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공정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정상적이지 못하단 취급받을 것이요,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사람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서글서글 웃는 낯짝이 보드랍다. 그리고 분위기는 다시금 급변한다. 어차피 이 분위기 계속되면 좋지 아니함을 술김에도 알았던 것인지, 아니면 본디 제 본성을 절제하는 것이 무의식에 각인된 존재였는지. 서슬 퍼런 칼날이 비단도 아닌 복슬복슬한 귀와 꼬리에 가려졌다.
"아, 응……? 그, 그러니까."
귀걸이를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겠다. 꼬리를 입에 합 물던 것을 급히 뗀다. 역시 이런 꼬리와 귀가 흉측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람 이외의 존재로 보이는 것이 어찌나 흉측한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반 푼의 눈에다 술기운에 시야가 일렁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눈빛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위험의 신호가 머리 한구석에 뒤늦게 켜졌으나, 이미 늦은 찰나였다. 도망치려는 몸보다 대뜸 끌어안는 팔이 더 빨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잔을 겨우 사수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몸은 사수하지 못해 둥글게 뜨인 눈동자는 작아지고 당황에 입 뻐끔거리기를 반복했다.
"자, 잠깐, 잠깐만…! 수, 술. 술 쏟아, 그러, 그, 그게─"
심히 놀랐던 것인지 꼬리가 펑, 부푼다. 무아회 인생 대략 20년 채 될까 말까. 그 나날 동안 이렇게 무자비한 꼬리와 귀의 습격이 있었냐면, 없었다. 아니,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어머니라도 꼬리와 귀가 톡 튀어나온 자신을 보고 새된 비명을 지르더니 어쩜 이리 사랑스럽냐며 끌어안고 무자비한 입술 세례를 보냈어도, 이렇게까지 폭격 수준으로 귀여워 세례를 보내지는 않았다! 하물며 아직 형님도 손을 못 댄 꼬리인데! 대답은 해야 하는데, 쏟아지는 문장 중에서 뭘 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술기운은 고사하고 당황스러움에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나, 난, 귀엽지 않아……."
겨우 뱉은 말을 뒤로 가까운 시야 사이에서 보이는 얼굴이 행복해 보여 혼을 내지도 못하겠는지 입술만 꾹 다문다. 그래, 행복하면 되었지. 물끄러미 당신 보던 아회는 눈 감았다. 행복 위해서야 뭐, 수치스러움 정도는 내어줄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펑 부푼 꼬리 끝이 느릿느릿 흔들리기도 했고. 다른 것보다 중한 것 있지 않은가. 술기운 속에서도 떠오른다. 아… 난 이제 사감님께 죽었다.
자캐는_원칙주의vs융통성 : 유동적이에요. 기본적으로 원칙을 고수하려 하지만 가끔은 융통성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 하지만 원칙주의인 면이 조금 더 깊어요. FM이라고 해야 할까요...
후회한_선택의_상황을_꿈속에서_다시_마주한다면_자캐는 : 어차피 꿈에서 깨면 모두 희망고문이라나 뭐라나,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사람이라서요, 다시금 후회하는 선택을 한답니다. 달라지는 일 없이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뭘 저질렀는지 제대로 곱씹고 가슴 속에 새겨야 한다면서요.
자캐가_최종보스인_던전의_이름 : 몽환포영
이지 않을까요~ :D 지역 이름은 빛이 닿지 않는 설산이고,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은거하며 플레이어를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감각으로 지켜보는 컨셉일 것 같아요~
어차피 쉬이 벗어나지 못하리란 것 알지만, 적어도 거리라도 두면 심적인 대비는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 특별히 음험한 짓 더 하려는 속셈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보단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한 발짝 물러나고 싶은 욕구부터 참아야 했다. 한쪽 눈이 가려지고,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귓가에 들려온다. 그는 짧은 사이 그 모든 것 유념하려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눈 속 깊은 곳을 불로 지지는 듯한 격통이 몰아쳤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무감각한 생각 짧게 스친다. 이럴 거라면 처음부터 눈꺼풀을 고정하기라도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반사적으로 눈 감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통은 한순간이었기에,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버티는 일은 고되기는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일순간 멎었던 숨 내쉬며 아래로 숙여지는 상체 버텨 세운다. 그는 통증에 흘러난 식은땀을 대강 훔쳐내고는 가장 먼저 제 왼쪽 눈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았다. 본래부터 희뿌연 눈앞이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없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지난번 일시적으로 눈이 잠겼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다. 눈을 감은 것과도 어둠을 응시하는 것과도 다른, 암흑이되 검지 않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각. 가뜩이나 눈 시원찮은데 하나만 남았으니 무언갈 가늠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직까지도 거친 숨 천천히 고르며, 유현은 눈살 가늘게 좁히고 상대를 쳐다보았다. 감정 담아 찌푸린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함이었다.
오해를 당한 것 같으나 굳이 절절하게 변명할 필요는 없겠다. 그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곧 입 안으로─ ……방식이 상당히 불쾌했다. 내가 온화한테도 이런 추행은 당한 적 없건만. 그는 주먹 들어 상대를 후리고 싶단 충동을 느꼈지만 능히 참아내었다. 해봤자 제 주먹이 종잇장 접듯 찌그러질 게 뻔했고, 지금 이 행동이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것이 입 안에 들어찬 감각이 느껴진다. 한순간 뱉어서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으나, 그랬다간 그저 눈 하나 잃은 인간 될 듯하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이 달갑지 않은 상황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명령을 따라야 했다. 유현은 그것을 얼른 삼켜낸 후 입 떼어내고선, 제 입술 박박 닦기부터 했다. 물론 눈은 감은 채로.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태도 당당하니 어떻게 보면 사실로 보일지도 모르나, 그냥 잡아뗐다는 뜻이다. 나름 생각했다 어쩐다 해도 사실상 강매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유현이 눈 깜짝할 리 없었다. 강매 아닌 선의라 해도 이 양심 없는 인간에겐 무의미했을 테고. 여하간 격하게 입 닦아낸 그는 치미의 말이 떨어지자 내리감았던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한순간에 달라진 시야가 낯설다 못해, 아직 거리감이 맞지 않는다. 담을 수 있는 정보량 역시 다소 과하다. 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 치미를 마주보았다. '넘겨준다'라는 어휘에 걸맞게 상대에게서 변한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도 무언갈 식별할 수 있으니 확실히 쾌적하다 느껴진다.
"제가 빌린 정도로 쓸 수 있는 범위는 당신 시야의 일부인가요, 아니면 전부?"
시야에 익숙해지기 위해 천천히 여러 방향으로 눈을 굴려 보았다. 가장 멀리, 그리고 높이 보는 눈이라 했던가. 아직까지는 그만한 체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보다 더 멀리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유현은 제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눈으로 더 먼 어딘가를 보고자 해 보았다.
온화 그 동안 살면서 억누르던 것은 비단 사람을 향한 애정 뿐 만이 아니었다. 금주로 광증은 막았대도 그 여파로 인한 제어가 안 되는 힘 탓에 무언가 잡거나 만지는 쉬운 것도 하지 못 하는 시절 있었다. 특히 손의 아귀힘이 어찌나 셌던지 어른 손의 손가락 골절 정도는 쉽게 일으켰다. 그러니 그보다 어린 아이 혹은 동물은 오죽했을까. ...그대로 살 수는 없으니 힘 다루게 하기 위해 쉬이 망가지지 않을 무기와 악기로 힘 조절을 배웠다. 1년여간 용 쓴 덕에 어찌저찌 보통 사람에 가까운 구실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었으면 학당은 고사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내력으로 저보다 약한 동물은 의식적으로 멀리 하고 살았는데. 힘조절이 용이한 이 시점에 귀엽디 귀여운 귀와 꼬리를 단 사람이 있다? 그것도 제가 아끼는 사람이? 이걸 눈 돌아가지 않고 참을 수 있을까! 다른 의미로 꾹 눌러온 욕망 그야말로 마음껏 발산하는 온화였던 것이다.
"우후후- 후후 후후후 귀여워라- 산만한 덩치도 위엄 넘쳐서 멋있지만 요로코롬 귀랑 꼬리만 나온 것도 최고야- 온갖 내숭 다 떨어놓고 이런 귀여운 걸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귀여워- 아회 오라버니 너무 귀여우셔요-"
놀란 아회가 무어라 중얼대긴 했지만 욕망 뿜뿜 중인 온화에게 제대로 들리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놀란 탓에 부푼 꼬리가 온화의 그... 형용 못 할 웃음을 더 짙게 만들었다. 잘 쳐서 황홀한 표정 지었다고 하자. 몹시 행복하고 황홀한... 그런 웃음 띄고서 능수능란한 손길로 폭신푹신한 꼬리 쓰다듬고 털결 훑었다. 귀를 만질 때는 어떠했다. 민감한 선홍빛 살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귀 뒤쪽을 살살 긁어주고 엄지로 털의 결 따라 쓸어주며 실로 어마어마한... 행동 이어가고 있었다.
"어허. 오라버니가 귀여운지 아닌지는 이 화야가 정하는 것이어요- 히히- 꼬리 이렇게 통통하게 부풀려놓고 그런 말 하긴- 귀여워 귀여워 엄청 귀여워요- 하루 종일 옆에 두고 꼬리만 만지고 싶을 만큼 귀여워- 꼬리에 빗질도 해주고 응- 절대 못 집어넣게 하고 온종일 옆에 둬버릴까보아-"
범상치 않은 말들까지 술술 나오니 이제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을 쯤. 온화 문득 어디선가 시선 느껴졌다. 어쩌면 기분 탓일지 모른다. 하지만 눈이 저절로 그 시선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니. 거기엔 때마침 역린이 있었다. 침대에 기대 세워둔 채로 늑대 조각이 정확히 이 쪽을 향한.
그러고보니 역린으로 제 상황 볼 수 있다고... 아... 이런 걸 혹시... 망했다. 라고 하나...?
"아. 하하..."
역린의 존재인지 시선인지 깨달으니 붕 떴던 정신 제자리로 착 돌아오며 단숨에 흥이 싹 식었다. 식기 뿐일까. 등골 쭈뼛해지기까지 했지. 아회 입장에선 금방이라도 넘어뜨릴 듯 달라붙던 온화 갑자기 뚝 멈춰서 헛웃음 흘리더니 또다시 돌변해버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 보이는 것처럼 어색한 웃음 흘린 온화 아회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만지고 쓰다듬느라 흐트러뜨린 머리나 옷깃 같은 건 제대로 정돈해주고 말이다.
"무어... 내가 원체 털 많은 짐승 좋아하다 보니 오라비에게 실례를 했구만. 놀라게 해서 미안허이...? 하하. 하..."
어쨌거나 귀여워와 쓰다듬 폭격은 멈췄으니 아회로서는 다행인- 건 아닐까. 부디 다행이길 바란다. 온화 다시금 옆으로 떨어져 앉아선 빈 잔에 술 가득 채워 마셨다. 이미 취기는 거의 날아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