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복도 좀 걷고 계단 좀 오르내렸다고 숨이 차는 날 올 줄은 몰랐다. 아. 적어도 저번 수업 때 그리 뛰고 맞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보단 나았겠지. 덕분에 방 돌아오자마자 다시 침대에 엎어져야 했다. 푹신한 이불에 엎어지는 것 조차 뼈와 살 울려 괜히 눈물 핑 돌았다. 몸이 고달프면 마음도 쉬이 흐트러진다 하던가. 술도 다과도 다 꺼내놓았지만 먹을 기미 없이 그대로 침대에 다시 파고들려 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힐끔 눈만 들어 문 바라보았다. 제가 찾아갔을 때엔 숨소리도 안 들리더니. 안에 있긴 있었나 보다. 이번엔 제가 없는 척 아니면 자는 척 침묵할까 했지만. 더는 예의 차리지 않는 것. 제 말을 똑같이 돌려주는 것에 입 꾹 다물곤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알고 저러는 것이다. 정말 치사하지. 흘러내린 두루마기 휙 벗어 침대에 던져놓고 저벅저벅 걸어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열 것이지만 괜히 그 앞에서 조금 뜸 들이다가 한 뼘 만큼만 열고 아회에게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치사하긴."
아. 다른 건 참아도 그 말은 했었어야 했나 보다. 그리 종알댄 후 방문 마저 열었다. 희미하게 경첩 맞물리는 소리 나며 열린 방에선 굳이 코를 세울 것도 없이 독한 약냄새와 진한 담배향이 진동했다. 그리고 아회의 예민한 코엔 선명히 느껴졌을 것이다. 짙은 두 향취 아래 숨겨진 비릿한 철내음을.
"내 기침으로 오라비 잠 깨웠다니 그것만큼 기쁜 소리도 없겠구려. 들어오소."
편히 들어올 만큼 문 열어주고 온화 앞서 안으로 슥 들어갔다. 창문은 열었으나 두터운 커튼 드리워 방 안 어둑하니 잘 뵈지 않겠지만. 바닥에 걸릴 것 없으니 걱정 말고 들어오라는 말 있었다. 휘적휘적 들어간 온화 앞서 차려둔 술상 앞에 턱 하니 앉으며 아회 향해 그런 말도 했다.
"대답 없길래 혼자 술잔 기울이던 중인데. 어찌. 오라비도 한잔 할 테요? 싫음 거 앉아서 안주거리나 먹든지."
아회가 예의 차리길 그만둔 만큼 온화 또한 방자하게 나갈 셈인지. 혹은 몸 아프고 정신머리 마땅치 않아서인지. 툭툭 내뱉듯 말하고 술 잔 두 개 소반에 올렸다. 한 손에 딱 들기 좋은 크기의 둥근 술잔은 어느 것도 아직 비어 있었다. 술병 역시 큼지막한 소주 됫병이 마개도 열리지 않은 채 옆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온화는 아회 보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기엔 별일 아닌 것 같던 일이 못내 거슬렸던 차다. 아니, 애초에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이 언젠 자신에게 이리 굴지 않았는지 괜히 유난 떨며 청승맞게 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럴수록 약점만 늘어날 뿐이다. 무너지는 것도 지금은 안 된다. 유령 같던 발걸음과 함께 문 두드릴 적에는, 이미 악착같이 무너지려는 자신을 속으로 채근하며 유예기간을 줘버린 지 오래였다.
문 앞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예민한 귀를 타고 들려온다. 아회는 얌전히 그 앞에서 기다리며 지팡이 위에 두 손을 모두 올렸다. 잠시간의 정적 뒤로 문이 한 뼘 정도 열렸을 때, 중얼거리는 당신의 소리에 아회는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이었는데, 그런 의도로 한 번 고개를 까딱인다.
문이 열렸을 적, 아회는 자신의 감긴 눈을 희미하게 떴다. 남령초 태운 냄새는 익숙하지만 약 냄새와 비릿한 냄새는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생활이 있거니와 자신이 간섭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니. 다시 문 닫아버릴까 싶은 것도 한몫하였으리라.
"에잉, 만일 목화까지 깨었으면 경 치러 왔을 텐데 기쁘기는."
남의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형님의 방을 제외하면 육 년의 시간 동안 처음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아회는 이제 보니 몰골이 영 좋지 못했다. 머리도 묶지 못했고, 귀에는 난데없는 검은 술 달린 귀걸이 달려있으며, 눈 밑에 드리운 푸른 그늘과 더불어 옷차림까지 평소처럼 한복 차림이지 않았으니 소매 너르되 길고 허리춤 끈으로 동여매는 차림인지라 동방 어딘가의 복식 섞어둔 것만 같은 약식이었다. "실례하지." 어둑한 방이라지만 쉬이 들어서며 신발은 제대로 벗는다. 그제야 희미하던 눈 가늘게 뜬다. 술상 때문이다.
"……."
술. 입에 대본 적 일절 없고 예비함에 있어 의존과 흐트러짐을 경계하였기에 멀리하던 단어가 오늘은 퍽이나 가까이 다가온다. 아회는 잠시 가만히 서있더니만, 이내 자리에 털썩 앉으며 지팡이를 제 몸 옆으로 아무렇게나 내려두었다. 이 와중에도 한 가지 나은 점 있다면, 비록 격식 내려둔 언사였으나 앉는 자세만큼은 평소와 같이 예 차렸단 점이다.
"네 내가 술 마셔본 적 없음을 알면서도……. 그래, 한 잔 주려무나."
실로 의외다. 사건이라고 칭해도 좋다. 청렴하기로 소문나다 못해 무소유의 경지에 이른 것 아니냐는 천하의 무아회가 흔쾌히 대작하겠노라 하니 아마 내일 해는 서쪽에서 뜰 모양이다. 아회는 반쯤 눈을 뜨며 당신을 마주 봤다.
"……최근 기호품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고 말이오."
돌려 말하지만 뜻은 명료했다. 학당 일로 마음이 심란하다고. 서로 술잔 기울이며 대화하고 싶노라 청하는 목소리는 그제야 평온해졌다. 덤덤하지만 방금 전과 같이 어딘가 불온한 기색 없고, 평시와 다를 바 없이.
치사하다 하니 누가 할 소리냔 듯 고개 까딱이는 것이나 실없는 제 말에 실없는 소리로 대꾸하는 것이나. 전과 다른 것 조목조목 눈에 밟히니 그 날의 난리통이 새삼 대단했구나 싶다. 하기사 저도 마찬가지만은. 보이지 않게 눈 감았다 뜨며 한 손 들어 까딱 움직였다. 아회 방 안으로 들어오거든 그 뒤에 문 닫혔을 것이다. 끼익. 철컥.
"고 쪼매난 것 깨었으면 오지도 않았겠지. 아예 한 소란 내고 올 걸 그랬나?"
아회 보며 하는 말이었으나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 듯 혼자 낄낄대었다. 말 좀 했다고 그새 목이 풀려 웃음도 나오고 그런다. 언제는 뭐라도 넘겨야 소리 내고 그러더니. 십수년을 함께 한 제 몸뚱이인데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목 재차 간질여지기 전에 웃음 그치고 방에 들어온 아회 보았다. 어둠에 눅은 눈은 굳이 좁혀 뜨지 않아도 아회 모습 온전히 담아내었다. 이제보니 평소와 다른 옷에 저- 귀에 단 것은 귀걸이인가? 어허. 별 일인 것은 저 뿐만이 아닌가 보다. 찬찬히 물어야겠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는 것까지 물끄러미 응시했다. 가까이 오니 눈밑까지 푸르스름한 것 보여 아이고. 보면 볼 수록 물어야 할 것이 늘면 늘었지 줄지를 않는다. 느슨히 이어진 대화에서 또한 그러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라 그러나. 한 번 해본 소리인데. 드시겠다면야 못 드릴 것 없지."
말투는 바뀌었어도 자리한 모습만큼은 변함이 없어 술 권해도 손도 대지 않을 듯 하더니. 선뜻 한 잔 달란다. 제가 그리도 기호품이라며 권할 적에는 학을 떼놓곤. 그래도 왜 그러는가 만큼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의미겠지. 그 잿더미이자 적룡에서도 현자라 불리는 아회조차 술 한 잔 걸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주변 소란하다는 것임을.
어차피 잔도 둘 놓았겠다 달리 준비할 것 없었다. 손바닥만한 팔각 소반 위에 풀어놓은 다과 꾸러미 조금 더 넓게 펼쳐놓고. 제 옆의 됫병 덥석 잡아 끌어와 뚜껑 열었다. 이익. 하고 뚜껑 돌릴 적 작게 소리 내었으나 못 열지는 않았다. 병에 들은 술 평소 향취 좋은 물건 찾아다니던 것과 달리 무색 무취한 맑은 소주다. 그저 한없이 들이키고 정신 놓아버릴 수 있는 술이었다. 역시나 답지 않게 두 손으로 병 받쳐 아회의 잔과 제 잔 번갈아 술 따르고 다시 옆에 쿵 내려놓는다. 작게 숨 내쉰 온화 손 그저 늘어뜨린 채 말했다.
"나한테는 물이나 다름 없으나 오라비에겐 제법 독할 거요. 천천히 드시게. 거 앞에 입가심 할 것 있으니 것도 같이 들고."
서로 잔을 맞대는 것은 하지 않을 셈인지. 아회 잔 들어도 온화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청하다면 손을 움직였을 수도 있지만. 첫 잔 그리 내어두고서 역시나 느긋하게 대화의 물꼬 한 번 틀어보려 하였지.
"그래- 무슨 바람이 불어 천하의 무아회가 술까지 자시게 되셨나? 내 그리 들쑤신 후에 누가 또 부지깽이 들고 들이닥치기라도 하였소?"
낄낄. 웃는 소리 만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박하였다. 저 헐렁한 차림으로 삐뚜름히 앉은 것도 그러하고 말이다.
학당에서 목숨을 부지할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 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남았을지를 되새기면 저도 모르게 속내 뒤틀리기 마련이다. 뒤틀릴수록 일탈을 바라게 되고, 일탈을 바랄수록 오히려 차분해진다. 그리고 끝내 내린 결론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만인이 알 터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당신의 모습 보아하니 딱 그렇다.
"너도 참. 허튼 소리를."
대답 바란 것 아니었어도 툭 대꾸하곤 이전처럼 웃음뱉는 모습에 안도한다. 생각한 것보다 큰 부상은 아닌가, 혹은 참는 것인가, 글쎄. 알 수 없다. 정보는 부족하고 알다가도 모를 것이 세상이니. 자리에 앉자 긴 소매가 바닥으로 흐른다. 이를 가볍게 정리하던 아회는 손 다소곳이 모았다. 예 갖추는 모습과 달리 해 서쪽에서 뜰법한 발언 뒤로 상 차려지고 맑은 소리 들린다. 잔에 따르는 무색 무취의 액체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아회는 그제야 손을 들어 잔을 쥐었다.
"……고맙구나. 선뜻 잔 따라주어서."
거절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리 잔 따라주니 고마울 뿐이다. 다음 잔은 자신이 따르는 것이 맞겠구나 싶었으나 반 푼의 눈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든다. 또한 잔 맞대지 않길 바라는 것 같으니 얌전히 있는다. 지금은 분위기가 설익어 영 좋지 못하니, 무르익으면 자연스레 나올 것임을 알았기에 행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래."
아회는 순순히 대답했다. 짧은 대답이었으나 누군가 부지깽이 들고 들이닥쳤음을 시인하니, 그날 크게 불 붙어버리고 졸업 전까지 오라비 노릇 하겠다는 약조가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입가에 잔을 가까이 가지다 댔을 적, 잠시 멈춘다. 아직 잔 마시지는 않는 탓은 도전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행위였을 터다. 아회는 심호흡을 하듯 한숨을 푹 쉬었다.
"……네 반려와 입씨름 한 판 붙었다. 그 이후로 춘 사감한테 듣도보도 못한 소리 듣고, 수업에서는 처음 보는 신수가 달라붙던지라 그 뺨 쳐올렸고."
와중에 당신의 반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인지, 하물며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안다는 듯 술술 이야기 뱉고는 술을 망설임없이 털어넣었다. 목으로 넘기기가 무섭게 비강을 타고 독한 증류주 내음 가득 느껴지며 속내로 독한 느낌 든다.
"으."
쓰다! 잠시 아회는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난생 처음 겪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다. 다만 처음 술을 마신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각종 걱정이 너무 컸던 탓일까, 거부감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두 눈 온전히 뜨며 술잔 한 번, 당신 한 번 쳐다본다.
"틀린 데 없는 말씀이지만, 당신의 사고는 한낱 인간인 저의 방식과 괴리가 커서 말입니다. 지난번처럼 모르는 사이 중한 것을 걸어버릴지도 몰라 우선은 안전선을 두어 보았죠."
밥이나 사주려 했더니 대뜸 너도 먹어도 되냔 소리 했던 것 아직 잊지 않았다. 인간 중에선 괴상하단 평 자주 들었던 자신도 그런 식으로 비약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전적이 있으니 최소한의 경계는 하지만 그 태도에서 뾰족하게 곤두선 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무덤덤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네, 모르죠. 하면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건 그렇고 백룡은 여성격이었나 보다. 맞장구 바란 말은 아닌 듯해 유현은 물끄러미 상대방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느덧 가까워진 남자를 피하고 않고 고갯짓 까딱 해 보이며 묻는다.
"영혼은 정확히 얼마나 원하시죠? 영혼을 바친다면 저라는 존재에게 어떤 작용이 뒤따르게 되나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영혼은 고작 교과 과정 돕는 일로 내어주기엔 다소 거창한 대가라 생각하는데, 당신도 더 좋은 것 내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문장 한 번에 질문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인간은 보통 이런 경우 도망가기 마련인데 이 자는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영혼 운운하고 백룡을 안다는 듯 말하는 것으로 보아 격 낮은 존재 아니리란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것치곤 늘 입맛을 다시셔서 말이죠. 학생은 사감들이 말린다 해도 바깥 인간은 상관없지 않나요?"
……땅 흔드는 것도 그렇고. 유현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조금 비틀거리다가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 시선이 무언의 질책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저 자가 알아들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당신이 어떤 것들을 선호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예시를 들어주신다면 좋겠네요."
원하던 결과 나오지 않았음에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지난번 장난과 비슷한 부분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제 다시 병을 찾으려 가면 되겠는데……. 시선이 잠시 흐릿한 시야 너머 문 있을 방향을 향했다. ……이 종이인간, 나가기 귀찮아진 모양이다. 유현은 느릿느릿 일어나 제 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방 안에 병이 있기를 바라며 편향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뜻이다. 다행히 그 행동엔 소득이 있었다.
병을 뒤집어 안에 든 것을 꺼내 먹는다. 별사탕의 맛 느끼며 이변 일어날지 천천히 기다려 본다.
.dice 1 4. = 1
1. 과거를 환상으로! 2. 숨겨진 진실을 한 번! 3. 무지개를 토해보자! 4. 동물의 귀와 꼬리가 뿅!
대답 바라지 않은 말에 허튼 소리라며 기어코 한 대꾸 던져주는 것에 웃음 조금 더 났다. 이것도 전과는 다를까. 이전이었으면 저 한 마디 더 없어서 뭇내 서운하면서도 그런 티 내지 않았을 것이다. 딱 그만큼의 거리 가까워졌다는 걸까. 그 이후로.
아회 앉고보니 저 차림새 더욱 독특하다. 소매가 두루마기와 비슷한 줄 알았더니 옆으로 길게 퍼지는 것이 옷이 아니라 날개깃 같기도 하다. 날개- 달린 호랑이? 혼자 삼천포로 생각 빠질 뻔 한다. 이 오래된 버릇은 현실에서 눈 돌리고픈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언젠가 닥쳐올 운명 조금이나마 잊고픈 마음에 생겨버린.
눈 한 번 깜빡일 시간만큼 생각 옆길로 샜다가 돌아와 술 따르고. 뜻밖의 말에 고개 살짝 기울였더란다.
"받겠다 했으니 주었지요. 무얼. 별 것도 아닌 걸."
반쯤 농이었다곤 하나 아회가 제 권유 받아들였는데 주지 않을 이유 없었다. 받겠다 했으니 주었고. 마실지 말지도 아회 기분따라 였다. 온화 한 마디 한 어절도 채근하지 않았다. 희고 가는 손이 술잔 들어올리는 것 멀거니 보며 무슨 연유로 그러느냐 물었다. 누가 또 들쑤셨느냐. 하니 그렇단다. 아 그렇구나.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술잔 들고 우물쭈물 하는 것이 저 처음 술 마실 적 떠올라 웃음이-
"!!!"
아이고. 술잔 안 들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 입도 안 대서 다행이야. 들고 있거나 마시는 중이었으면 분명히 엎거나 뿜었다. 제 반려와 입씨름이 붙었다니. 저건 완전히 다 알고 하는 소리 아닌가! 아니. 아니지. 거기에만 집중하지 말자. 침착하게 놀람을 가라앉히고 다시 대화에 집중하려 한다. 한 손으로 지그시 명치 언저리 짚고 아회 보다가 결국 참지 못 하고 웃음 터뜨렸다.
"하하! 그래. 첫 술이 제법 쓰지. 오라비야?"
아하하. 한 잔 마시고 쓴 맛 못 참는 그 반응 보고 어찌 웃지 않으랴. 저도 처음엔 저랬으니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남의 모습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터진 웃음 치고 그 소리 오래 가지 못 했다. 큭큭대던 것이 도중 큭. 하고 누가 목 쥔 것 같은 소리로 바뀌고 이내 문 두드릴 적과 비슷한- 더 격한 기침으로 바뀐다. 기침에 못 이긴 듯 옆으로 기울어지려는 몸 한 손으로 짚어 버티고. 제 손으로 명치 아래 쓸어내리며 숨 고른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음에도 도움 청하지 않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매우 익숙한 행동이었다. 거센 기침 점차 가라앉으며 이윽고 시익대는 숨으로 바뀌자 그제야 살겠다는 듯 긴 날숨 내뱉었다.
"후... 아이고. 미안허이. 내 몸이 성치 않아 기침만 해도 이러네. 별 것 아니여. 응."
제 상태는 별 것 아니라 하며. 온화 또한 술잔 집어들었다. 떨어뜨릴새라 얼른 마셔버리고 옆에 둔 됫병 다시 들었다. 그 병 아회에게 건네지 않고 다음 잔도 제가 채워주며 그리 말 이었다.
"내가 어떤가는 조금 뒤로 미뤄두고. 오라비 얘기 먼저 해봅세. 내 반려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무슨 얘길 했는지. 춘 사감에게 들은 말은 그것이지? 오라비네 선조가 신수를 꼬여냈느니 하는 것. 그것 관해서는 뭐 알아낸 것 있는지. 그리고- 수업 중이라면. 크흠. 그 요상한 남정네 말하는 듯 한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뺨까지 쳤는지."
한 잔 더 들이키고 천천히 풀어보시게. 그리 말하고 소반 위 다과 꾸러미도 톡톡 두드려준다. 여 입가심 할 것 있으니 쓴 것 참지 말고 달래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은근히 제 얘기 뒤로 밀어두려는 듯이.
>>858 토론의 전제사항에서 회빙환의 추락사 과로사 묻지마 살인이 아닌 트럭과 같은 교통수단의 방법만으로만 보낼 수 있다면~이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트럭 발명 이전 시대에는 무엇으로 보내는 것이 보편적이었는가? 하자마자 당당하게 "소 달구지." 하길래 울듯이 웃었어요...
김첨지의 아내를 잃은 감정에서 비롯된 분노의 질주에서 두 배로 울었고요...😂
물론 교통수단 아닌 기본 클리셰라면?은 온화주처럼 절벽이 압도적이긴 했답니다.🤔 애초에 한국인 설화에서 절벽설화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