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는 걸음은 조용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을 적 어깨 위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은 어느덧 녹기 시작해 옷깃을 적시나 두루마기에 팔을 꿴 것이 아니라 걸쳤기 때문인지 속의 한복까지 젖지는 않았다. 용은 고고하여 인간사에 관심이 없고, 네 마리 다 독기를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라.
"독기, 라."
그 사실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든다. 배배 꼬인 성격 탓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못 되는 존재임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용만 당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작 지고하신 용이란 것들은 독기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니 남은 희망마저 삽시간에 식어버리는 느낌이다. 애초에 그것을 희망이라 정할 수 있겠냐마는 어찌 되었든.
"인간에게 신경을 쓸 거라곤 생각도 안 했습니다. 신도 애증하는 존재를 그 휘하의 미물들이 어찌 품겠습니까? 구석에 적당히 처박힌 먼지처럼 보는 것이 이롭지요."
더 말을 해? 말아? 잠시 고민하듯 무릎 위에 올려둔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더듬듯 매만진다. 어차피 북부 사람이다. 신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미움부터 받는데, 저 사감에게 어떤 취급을 받든 두렵지는 않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이 다음의 일이다. 아직 자신은 학생이고, 자신의 취급을 정하며 훗날 거사를 위한 길을 막아세운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감당할 수 없어도 저지르고 봐야 한다.
"본디 사감님의 대답만 듣고 가고자 하였으나 현재 질문에 대하여 제법 흥미가 생기는 군요. 기숙사에 제 이름까지 내건 주제에 정작 이득에만 집착하여 관리는 하지 않는 존재라……."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길을 확정짓지 않으면 사냥 당한다. 이제 제대로 길 걸을 터인데 방해물이 남으면 안 된다. 지금은 증오가 필요했다. 더 많은 증오가. 이 모든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끝내 그 길이 온전함을 합리화할 시간이. 내가 누구인지 직시해야 한다……. 아회 당신의 속을, 혹은 누군가의 속을 긁어버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이 덤덤하게 입 벙긋거린다.
"어찌…… 천하의 고매한 용도 결국 실리에 집착하는 인간과 하등 다를 바가 없나 봅니다. 한가지 청이라도 간곡히 빌고자 하였는데 안타깝군요."
고민하는 기색이 짙게 서린 채 저 멀리로 돌아간 각자 색깔 다른 한 쌍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늘봄은 이윽고 몸짓으로 돌아온 긍정의 답변에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아주 밝게 웃었다. 정말 훤히 보이는 인간이다. 감정 숨기는 법도 모르고 그럴 이유도 모른다는 듯 여과없이 드러내는 태도가 안일하달 만큼 솔직하다. 때문에 뒤이어진 발언에는 또다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지만.
"흥... 그치만 또 모르지? 어릴 때는 10년이지만 다 커서는 더 짧을 수도 있잖아?"
이번에는 정말 괜한 오기를 한번 부려본다. 어린애 같은 짓을 마구마구 해 대고 있지만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늘봄의 정신은 유현이 막역지우라고 부르는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게 꽂힌다. 음, 누군지는 몰라도 부럽습니다. 매우 부럽네요. 이렇게 부러워 할 일인가 싶지만 어릴적 친구라는 게 없다시피 한 늘봄에겐 부럽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아이 늘봄에게 친구는 베틀과 실과 천과 장식 구슬과 인형이었고 살아있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이제 만날 엄두도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현의 10년간 이어져 왔다는 우정의 길이가 오랜 노력을 들여 잘 짠 비단처럼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나 그래도 곁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은 사람이거든? 곧 '그냥 친구'에서 '특별히 재밌는 친구'정도로 승급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 그럴 걸? 두고 봐!"
몸소 광대라도 되어 보이겠다는 말일까. 짐짓 허리에 손을 턱 얹고 당당하게 선포하는 모습이 황당하게도 보인다. 여기까지만 봐도 유현과 늘봄의 성격 차는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이 우정, 괜찮을까. 하지만 괜찮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원래 사람은 사람끼리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도담도담 살아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소 예상 기간이 10년이긴 하지만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인생은 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건 눈 앞의 가인에게도 다를 바 없겠지!
"응? 딱히 바라는 게 있어서 친구 하자고 한 건 아닌데... 으으으음, 굳이굳이 따지자면 마주칠 때 인사 해 주기! 선물 주면 받아주기! 가끔 같이 시간 보내기~ 정도?"
아무리 '그냥 친구'라 할지라도 이름만 친구인 건 싫으니까,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되겠지? 아니아니, 요구랄 것도 없지 않나? 원래 친구들은 이 정도 하잖아? 아닌가... 적절한 거리감을 찾기 어렵다. 의외로—의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늘봄 또한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늘봄이 선택한 것은 사교 활동의 욕망에 따른 무한 돌진이다. 부담스럽다고 해도 이미 친구를 수락한 이상 어쩔 수 없다.
해가 서른 번 뜨고 지는 동안 매일매일이 바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의욕이 너무 넘쳐서 일향이 되려 쉬라고 권할 정도였다. 종자가 주인에게 되려 쉬라는 말을 듣는다니. 다른 가문이었다면 종자 실격이겠지만 류 가에선 그저 평범한 걱정에 불과했다. 말이 주종이지 거의 의형제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조금 자제하며 제대로 휴식도 취했다. 또 걱정하게 하면 안 되니 말이다.
그 사이 류 가에 대해 몰랐던 것도 새로이 여럿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궁금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일향에게 물을 수 있었던 것. 그건 류 가에서 죄인의 취급에 대해서였다. 모든 죄인을 나처럼 데려와 일꾼으로 쓰느냐 물으니. 일향은 웃으며 전부 다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죄인이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잡는 것 데려오는 것 대하는 것 모두 다르지요. 당신은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않아 최소한의 구속으로 데려온 것이고. 제 물음에 새 삶을 살겠다 했으니 지금 이리 있을 수 있는 것이네요."
그렇다면 나와 같지 않은 부류도 있다는 얘기구나. 아. 죄를 지은 자라면 다 비슷할까.
이어서 그 붉은 장속들에 대해 물었다. 일향은 그것 역시 흔쾌히 답해주었다.
"당신을 데려온 이들은 류 가에서 연선화홍이라 부르는 이들이에요. 류 가는 요괴잡이가 근본인 집안이란 것은 전에 얘기 했지요? 연선화홍은 평상시 수렵 위주로 활동하다가 죄인 제보를 받으면 곧장 반을 꾸려 죄인 확보에 나선답니다. 아무래도 죄인이다보니 거칠게 나오거나 도망치는 이들도 있어 가끔 험한 꼴을 보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살려서 구속하지요. 그리고 이곳으로 데려와 일단 지하 감옥에 가둡니다. 가둔 뒤 머리가 식을 시간을 얼마간 주고. 죄인에 맞는 적임자가 내려가 대면하여 제가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하고.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죄인의 처우가 달라지네요."
아하. 내 때가 별난게 아니라 그게 보통이었구나.
대강의 구조가 이해되어 고개 끄덕이니 일향 덧붙였다. 그 말에 조금 소름 쭈뼛 돋아버렸다.
"참고로 묻는 것은 처음 딱 한 번 뿐이니. 그 때 끝까지 거절했으면 당신도 지하에 갇혔을 것이랍니다."
끝까지 거절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것 말고도 물은 것 있지만 거진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현재 류 가의 구성에 대해서라던가. 가주를 비롯한 인적 관계도나 기타 등등. 일단 종자로서 알아야 할 것들은 들어뒀다.
여차저차한 일들이 지나며 어느덧 흐른 나날에 새삼스럽게 시간 참 빠르다고 느끼던 어느 날. 그 날은 새벽 일찍부터 집 안이 소란스러웠다. 아. 불온한 일로 소란한 건 아니었다. 소란을 궁금히 여기는 내게 일향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오늘은 류 가 만의 작은 잔치가 있는 날이에요. 이 날은 가게도 가마도 닫고 정 급한게 아니면 하던 일도 내려놓고서 온 집안 사람들이 다같이 준비를 하지요."
그 말인 즉. 나도 평소의 저주 연구와 종자 노릇 대신 잔치 준비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매일 보는 일향과 연구반 사람들 외에는 아직 낯가람이 좀 있던 나였지만. 일향은 오늘이 모두와 조금 더 나아지기에 좋은 날일 거라며 나와 함께 잔치 준비를 도왔다. 정원. 부엌. 마당. 한 곳에만 있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 돕다보니. 오전 만으로도 거한 잔치상과 놀자판이 류 가 마당에 펄쳐졌다. 늘 뭔가를 준비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는데. 혼자가 아니니 이런 것도 즐겁구나 느껴졌다. 묘한 성취감에 들떠있는 나에게 일향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고생한 만큼 먹고 마시며 놀 일만 남았네요. 그 전에 조금 쉬다 오셔도 괜찮아요. 저는 잠시 저 앞에 나가 제 동생들 마중을 갔다 올 테니."
동생. 아. 아직 학당에 다니는 동생이 다섯이나 있다고 했었지.
같이 고생했는데 혼자 보내기도 좀 그래서 같이 가겠다고 하니. 일향은 웃는 얼굴로 괜찮으니 조금이라도 쉬었다 나오라고 해주었다. 세상 어느 주인이 종자를 이리 편하게 대해줄까. 그 점이 고맙기도 하고. 직접 마중 나가는 걸 보면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알겠다고 하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가니 일향이 준비해 준 새 옷이 있어 새로이 감동 받기도 했다.
그 날의 잔치는 오찬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오늘을 위한 옷 멀끔히 차려입고 나와 모두 함께 차린 잔치상에 앉았다. 일향은 가주 가까이에 앉고 나는 내가 속한 연구반과 함께였다. 따로 정해준 건 아니지만 이럴 땐 아무래도 평소에 가까이 하는 이들끼리 뭉치는 법이었다. 이 잔치가 처음인 나와 달리 익숙한 연구반 사람들은 이게 그렇게 재밌다며 나도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놀라고 했다. 모두가 그리 들떠있으니 어쩐지 나도 어깨가 들썩였다. 오늘내일 걱정 없이 그저 즐겁던 학당 다닐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 앉는데도 한참 걸려 전원 한 자리씩 차지하고 하니. 일향의 아버지이자 현재 류 가의 가주인 류 온일이 상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루한 일장연설을 할까 싶었으나. 온일은 잔을 높이 들며 마당이 울릴 만치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이 얼마나 마시고 놀기에 좋은 날인가! 내 식구들이여. 오늘은 낮도 없고 밤도 없는 날이다. 술 솟는 화수분에 바닥 찍고 싹싹 긁어 구멍까지 내어보자꾸나!"
가문의 가주가 하기엔 너무나 호탕한 언사였으나. 그 거침없다는 점이 여기 류 가의 가주다운 모습이라 느껴졌다. 가주가 저러하니 속한 이들도 그리 시원털털 한가보다.
온일의 언사만큼이나 시원하게 잔 비우는 것을 신호로 모두 왁자지껄 떠들며 먹고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연구반과 주로 얘기하며 조금씩 홀짝였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여러 사람들이 잔 들고 이 상 저 상 옮겨다니며 고루고루 말을 텄다. 나는 아직 그것까진 어려워서 처음 앉은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해도 재밌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장 먼저 온 건 덩치 큰 사내와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어이 형씨! 일향 도령의 수족 되었다믄서? 그려 잘 생각했어- 거 사연 들어보니 안타깝드만!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보게. 이 집 좋네- 맡은 일만 열심히 해도 한 사람 분 인정해주니 말일세!" "형님. 너무 시끄럽습니다. 아무튼 형씨도 식구 되었으니 잘 지내봅시다."
살갑게 말 걸어오는 통에 순간 당황했지만. 알고보니 이전 날 나를 구속하러 왔던 그 붉은 장속들- 연선화홍의 사람들이었다. 덩치 큰 사내가 류 가 사람이고 동행한 사내는 나와 같은 죄인이었으나 류 가에서의 삶을 택한 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이미 다 아는 듯 앞으로 잘 살아보자 여기서 잘 지내보자며 술 한 잔씩 나누었다. 붉은 장속 차림일 때는 위압감이 컸는데. 이리 보니 그저 인상이 좀 강하고 성격이 개성적인 호쾌한 인물들이었다. 나중에 그들과 차라도 한 잔 해볼까. 술기운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따라주고 간 술 홀짝이고 있으니. 이번엔 일향이 동생들과 함께 왔다.
"즐기고 있나요? 모처럼 저희 남매가 다 모였으니 당신에게 인사 시켜주고 싶어서요."
술냄새 살짝 나지만 전혀 취한 기색 없는 일향이 같이 온 동생들을 한 명 한 명 알려주었다. 나이 순으로 수일, 온화, 예온, 온령과 일령 이었다. 일향도 그렇지만 동생들도 하나같이 미인들이라. 여섯이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 남매들끼리 갖춰입은 예복이 그야말로 선녀의 날개옷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내가 넋을 놓고 아이들을 본 것으로도 모자라 위와 같은 감상을 입 밖으로 흘려버려서 여섯 남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 가장 큰 아가씨- 온화라는 아가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향이 오라비 아니랄까봐 별난 사람을 들였구려. 듣자하니 본래 가진 이름도 버려서 형씨요 아무개요 애들한텐 울보 아저씨라 불린다지?"
아. 그랬다. 이 때의 나는 내 지난 과거가 끔찍이도 싫어 성도 이름도 버리고 적당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걸 언급하는 온화 아가씨의 말에 나는 어쩐지 머쓱해져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러자 왠 손이 다가와 내 턱을 쥐어들었는데. 그렇게 든 내 얼굴 앞에 눈부시리만치 희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온화 아가씨의 얼굴 있었다. 그녀는 붉은 눈 휘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처럼 별난 사람이 내 취향이라 말일세. 어떤가. 새로운 이름 내려줄 테니 내 종자가 되는 것은?"
어. 엇. 아니 그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른 반응하지 못 하고 얼굴 벌개져선 버벅대었다. 그러자 일향과 수일 도령이 같이 온화 아가씨 잡아 뒤로 끌어냈다. 일향은 순진한 사람 놀리지 말라며 웃고. 수일 도령은 기지배 나이가 찼으면 좀 조신히 굴라며 화를 냈다. 거기에 온화 아가씨 지지 않고 무어라 했는데. 어. 어... 이 부분은 술기운에 제대로 못 들은 걸로 하자. 아무튼 큰 아이들이 떨어져 옥신각신 하는 동안 작은 아이 셋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특히 령 쌍둥이는 나와 같은 흑룡이라길래 조금 더 반가운 것도 있었다. 내게도 동생이 있었다면 형처럼 굴지 않고 잘 챙겨주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내 대용품이 되었을지 모르니 없는 편이 낫다. 대신 이곳 아이들이나 잘 챙겨주자고 생각하며 술잔 기울였다. 잠시 지나니 일향도 남매들을 데리고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오찬을 겸한 먹고 마시는 장으로 시작한 오후는 곧 놀이의 장으로 바뀌었다. 때가 무르익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가운데를 크게 비우더니. 제각기 악기를 든 사람들이 그 가운데에 정렬했다. 따로 불러 온 악사들이 아닌 방금 전까지 마시고 놀던 사람들이었다. 어안이 벙벙해 보고 있으니 맑게 현 튕기는 소리 신호로 경쾌한 마당놀이 곡조가 펼쳐졌다. 아까 잘 보라던게 이런 것인가 보다. 적당한 취기에 어깨 들썩이는 곡조 더해지니 세상 천국이 따로 있을까.
음악으로 듣는 귀를 즐겁게 한 후에는 춤으로 보는 눈을 즐겁게 하는 순서였다. 반투명한 베일로 얼굴 가린 여러 처자들이 희고 붉은 무복에 나실나실한 천 걸치고 나와 막 피어난 꽃마냥 살랑살랑 추는 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새빨간 긴 머리에 다른 처자처럼 머리장식을 달았지만 천 대신 검집 씌운 검 들고 있었다. 아. 온화 아가씨인가. 그런데 왠 검이지? 화무 아니었나 싶어 보고 있으니 좌우의 처자도 곧 잘 만든 모조 검을 들며 검무로 이어졌다. 온화 아가씨는 언행이 좀... 방정맞지만 저렇게 춤 추는 모습 보니 아가씨는 아가씨구나 싶다. 베일 살랑일 적 눈 마주치니 찡긋 눈짓 하는데. 음. 수일 도령 말처럼 조금 조신해주며 좋겠다...
성숙한 처자들의 춤 다음은 어린 아가들이 우르르 나와 꺄륵대며 재롱 부렸다. 가문에 사람이 많으니 아이들도 한 바구니다. 예쁜 꼬까옷 입은 아가들이 서로 손 잡고 기우뚱 뒤뚱 춤을 추고 서로 재밌어 하며 웃는 소리가 참 곱기도 하다. 열심히 준비한 재롱 마치자 상석에서 가주가 친히 일어나 아가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알록달록 사탕 쥔 아가들 우다다다 놀러가버리면 한 시진 정도 더 먹고 마시고. 해가 저물기 전에 오후의 잔치는 마무리였다.
차릴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합심해서 차렸던 것 꾸몄던 것 치우고 나면 각자 쉬는 시간이었다. 나도 이 때는 잠시 방으로 돌아가 쉰다는게 그만 깜빡 잠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과음에 종일 일하고 놀고 했으니 어련할까. 그야말로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보니 늦은 저녁이었다.
>>560 원망...? 우리 말랑아기곰돌이에게 원망이란 감정이 있다고요? >:0 지켜보겠어요! 스포일러가 내용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와중에 신청서 보고 쒸익거리는 거 귀여워서...ㅋㅋㅋㅋ 응 이거 너무 귀엽다... 미소녀란 말에 기분 좋은 듯 웃는 것도 늘봄이의 성격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어서 사랑스러워요...🥹
>>563 류 씨 집안의 잔치, 온화의 검... 역린이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시점은 현재란 걸까요? :0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재라니...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연선화홍에 대한 정보도 흥미롭고, 언젠가 또 쓰일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유심히 보게 되는데 온화 요 요망한 아이...(쓰러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