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으로 본 얼굴을 감추고 있으니 수상해 보일지 언정, 진정으로 후배를 아끼고 도우려는 선배가 아님을. 그런 당신이 궁기임을 춘 사감을 통하여 알고 있는 것인데. 뻔뻔하게도 짐짓 슬프다는 목소리로 말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질려오는 것이라. 연은 불만스럽다는 듯 궁기를 보다가는 제 팔짱을 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미소 짓는 것 따라 연 역시 초승달 꼴 휜 눈으로 웃는다.
"평범한 선배라면 수상하다 여기지 않았겠지. 하지만 선배가 누구인지 알면, 무슨 숨기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걸?"
그 호의에 숨겨진 본 목적이 무엇일지. 저를 통해서 사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서도,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일지. 당신에게 놀아나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들. 연은 최근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에 두통이 일어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말 대신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답을 대신한다.
감정은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명확한 동기가 있지 않은 이상 탈 수가 없었다. 북부의 차가운 눈발이 온몸을 휘감은지 오래라, 이런 곳에 와서 쌓인 눈이 죄 녹아버린 나머지 젖어 불에 탈 수 없게 된 지 오래라. 아니라고 말하듯 말을 더듬는 부분에서 지독한 염증을 느낀다. 대화가 적었다. 아니, 서로를 알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교우란 것을 그리 깊게 파헤치지 못하여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다 이 사달이 났다. 어디서부터 꼬였느냐 책망하기엔 책망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떠올리는 상황에 웃음도 뱉지 못했다. 대신 가끔 툭 튀는 불똥처럼 노기 서린 일갈이 목을 찢듯 먼저 튀어나왔다.
북부의 방식으로, 외면하는 것을 옳다고 받아들인 자신도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하다. 아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했어야 하지? 당신의 감정을 고려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떠한 수도 떠올릴 수 없었다. 노성에 멎었다가 다시금 물기 어리기 시작하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모든 수분을 다 눈물로 쏟아내고 말라 바스라져 저 호수에 뿌리는 유골처럼 흩어질 듯 위태로워 아회 또한 잠시 입을 다물었다.
"……."
능력 있는 자가, 머리 있는 자가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저리 애걸복걸한다. 다만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현실을 일깨워주기도 안타까울 정도로 처참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 아회는 머리에서 순식간에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붙잡는 이 손을 뿌리쳐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잃어버릴 것이다. 다시금 전부 잃어버릴 것이다. 세상이 잔인하게도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번엔 가족도 아닌 타인이네. 너도 참 대단하구나. 허하는 순간 죽을 터인데 고민하고 말이다. 주변이 참 잔인하게 네 심정과 정 반대로 행동하는구나. 받아들여라. 네 운명이 그러한 법이다. 아회의 입이 일자로 곧게 다물린다. 무언가 얘기하기엔 혀가 묵직했다. 겨우 입을 벌렸을 때는, 당신이 바라는 따스한 말을 도저히 뱉을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보였더냐. 소중하여 그리도 쉬이 맹세를 하려 들었어."
다그침. 내뱉는 말은 그리도 매정했으나 붙잡힌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때 당신이 무언가를 얘기했다가, 그대로 굳어 침묵을 유지했던 순간처럼. 손은 잔뜩 긴장해 핏줄이 돋은 상태였다. 잃어버린다, 죄다 잃어버린다. 차라리 잃을 것 없는 자와 함께하며 끝내 남은 모든 것마저 잃어버린다 한들 회한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모를까 당신은 잃을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 사실이 차마 손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한다. 멀어지면 잃을 것이라는 비수에 대한 두려움과, 대체 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지 모를 안타까움.
"신께서 뒤집어진 것엔 연유가 있던 모양이구나."
뜻 모를 이야기를 홀로 중얼거린다. 뒤집어진 것이, 혼란 추구하는 것이 옳게 된 것에 이유가 있었다. 악인은 정명하며, 전란의 혈운이 다가올 것이다, 그 사실에 다시금 손 뿌리치고 싶다가도 애걸복걸하는 당신 보며 자유로운 한쪽 손든다. 머리에 손 얹어 어색하게 쓸어주려 하면서도, 허리 숙이듯 하며 고개 푹 숙인 당신의 귓가에 나지막이 목소리 꽂아 넣으려 들었다.
"부디……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지척에 깔린 위험에 발 들이기엔 여리고도 너무 많은 것을 쥐었어. 아직 여명 밝을 시간 충분한 네게 무엇이 남았는지 기억하여야지. 그런 네가 맹세해버리면 내가, 너의 주변 사람들을 볼 낯이 없지 않더냐. 너는 싸움을 잘 하며, 머리가 좋고, 도술을 잘 쓰되, 기이한 검을 가졌다. 인간성을 아직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를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네 아직 여기에 발 들이기엔 지나치게 순수하지 않더냐. 하니 울지 말아라, 네 뺨을 왜 치겠더냐. 내 너를 내치지 않으마. 네가 그리 맹세하지 않아도 나는 졸업하기 전까지 떠나지 않을 터이니 이제 그치려무나."
한 수 무르기로 했다. 조건을 가진 채로. 당신과의 선후배 관계를 끊어버린다고 그 사람이 당신에게 신경을 끌까? 아니, 오히려 떨어졌으니 쓸모가 없다며 제거하려 들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중대한 사실을 알아버렸고, 사지에 몰렸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두어 방법 찾아 살려 보내는 것이 맞다.
이벤트 때마다 벌어지는 유혈사태...(아득) 분명 요괴나 타 적들도 쟤네 왜 싸워 어어 싸우지 마 어어 다친다 하면서 말릴 정도로 싸우지 않을까...하고 예상하고 있어요 (손톱 물어뜯)(닥닥닥) ㅋㅋㅋㅋㅋ 아악 다갓!!!! 다갓 떡밥 너무 많이 털어가!!! ;0;!!! 맛있지만 괴로워!!!!
자칫하면 허공 휘젓다 바닥으로 낙화했을 온화의 손이 그렇지 아니하고 아회의 손 잡았다. 잡았을 적 떨리고 있는 쪽은 온화였다. 떨림에 놓칠까 자꾸 힘 주면서도 그 힘 과할까봐 몇 번이고 느슨해졌다 다시 쥐기 반복했다. 울음 잦아들 즈음 겨우 갈팡질팡 하던 것 멎었지만은.
문득 생각한다. 제가 이렇게 볼썽사납게 소리 내어 울었던 것 얼마만인가. 눈물은 간혹 흘렸지만. 그 언제고 흐느낌 없었다. 눈물이란 것도 간혹 과하다 싶을 만큼 몸이 힘들 적에나 반사적으로 흘렀다. 아픔에 무뎠기에 울 필요도 없었나. 그렇다면 지금은 왜 이리도 울어대었는가. 보이지 않는 비수에 제 심장 저며서? 단지 그 때문에? 아. 제가 이리 울었던 마지막이 어떠했더라...
저만 두고 가려는 아회 붙잡고 남은 말 죄 쏟아내고나니 이제 우는 것도 힘겨워졌다. 힘든데도 눈물 계속 흘러서 이따금 숨 들이쉬어야 했다. 숨 겨우 쉴 적 굽은 등 들썩이면서도 잡은 손 굳게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침묵. 긴 침묵 끝에 들린 아회의 목소리는 다시 다그치는 말 제게 꽂았다. 요지부동인 혹한의 목소리가 서러워 또 큼지막한 눈물 떨어뜨리면서도 이번엔 즉각 고개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그리 쉬이 하려 했던 것 아니라고. 제게는 삼 년의 시간 끝에 딱 한 번 내딛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뒤숭숭할 때 그런 상황 오지 않았으면 아회 졸업할 적까지 영영 있을 수 없는 시도였다. 설령 그것 본질이 끔찍한 이기심이라 해도. 남들 보기에 추한 것이라 해도 결코 쉬운 마음도 가벼운 말도 아니었다.
여지껏 다그쳐놓고 실은 흔들리고 있던 것일까. 붙잡은 아회의 손이 역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 가려주려는 듯 온화 손에 힘 주었다. 힘겨워 고개마저 떨구어놓고 손은 참 단단히도 쥐었다. 손 끝에 핏줄 느껴지리만큼 긴장한 마른 손 꼭 잡고서 그 손과 기척 만으로 아회 살핀다. 고개 들어 어떤 표정인지 보고 싶은데 아직도 그 차가운 눈일까봐 무섭다. 혹시 이 다음 할 말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잔인한 말이라면. 가장 아픈 말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머릿속은 자꾸 최악을 가정한다. 도중 들린 한 마디- 전혀 의미 모를 그 한 마디가 불안 가중시켰다. 신이 뒤집어진 것이 지금 어쨌다는 걸까. 창조신마저 뒤집히는데 제 마음이라고 진실되었느냐 꾸짖을까. 이런 혼란한 세상에 고작 한 인간 마음이 오롯하겠냐며 내칠까.
눈 한 번 깜빡일 사이 수많은 생각 오가는 가운데 아회 움직였다. 잡히지 않은 손이 제 머리 위 툭 닿았다. 요동치던 수면에 나뭇잎 한 장 내려앉은 듯 그 손짓에 머릿속 조용해진다. 어색한 쓰다듬 쫓아 고개 조금 들었다. 아직 눈 마주칠 정도는 아닐 쯤. 먼저 숙여온 아회 조곤한 목소리 들려왔다.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지만 더 이상 책망하지도 다그치지도 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조금- 아니. 지금까지 중에 가장 크게 저를 꿰뚫었다. 덕분에 뱃속도 머릿속도 식어 울음의 잔재조차도 싹 그쳤으니. 아회에겐 어설픈 달램 통하여 그친 듯 보였을 것이다. 여즉 숙인 고개에 눈이며 입이며 그 표정- 어떠한지 비추지 않았으니.
졸업할 적에는 떠날 것이다. 라는 조건부 내건 말 끝으로. 그대로 잠시 시간 지났다. 그 사이 온화 손으로 얼굴 슥슥 문질러 그 꼴 수습하려는 듯 했다. 그래봐야 임시방편이겠으나 느릿느릿 고개 들자 어느 정도는 봐줄 만 했다. 눈물에 푹 젖었는데 문질러서 부르튼 눈가와 뺨 벌겋고 잔머리 여기저기 들러붙은데다 뭐가 불만인지 입술 삐죽 튀어나와 있었지만. 아회 한 수 물러준 것 알았다는 듯 고개 천천히 끄덕였다. 비죽 내민 입술로 하는 말은 조금 퉁명스러웠긴 했다.
"내 뭘 안다고 재주가 좋느니 순수하다느니 하는가 싶지만은. 정말이지. 나는 말 잘 하는 사람이..."
밉다던가 싫다던가. 평소라면 장난스레 그런 말 쉬이 했겠지만 지금은 그리 해선 안 될 것 같았나보다. 기껏 하던 말 그대로 끝 흐려버리며 흥. 하고 불퉁한 소리 내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울고 불고 난리 치던 것 반대로 극히 얌전해졌달까. 입 다물고 아회 손 꾹 쥔 채 바닥 널브러진 두루마기 쥐고 비틀대며 일어나는 것 보니 더는 말 안 하려나 싶어 보이기도 잠시. 삐딱하게 서서 부은 눈으로 용케 아회 흘겨보며 종알댄다.
"이제 앞으로 안 참고 안 무르고 죄다 물어볼 거야. 내가 말은 안 했지 이미 엮여있던 거나 다름없으니까. 혹시 몰라 입 다물려고 했는데. 이제 사정 안 봐 줘. 지난 삼 년분까지 졸업 전에 다 털어갈 거야. 대신 나도 묻는 것 정도는 대답할 테니까. 궁금하다면야 뭐."
물어보고 싶은 것 아주 아주 많았다. 지난 시간 분에 오늘로써 그 영이인지 하는 호위까지. 탈탈 털어주겠다며 조금은 평소로 돌아온 듯 말했다. 언제 흘겼냐는 듯 희미하게 웃음 짓는 얼굴도 그랬다.
그 웃는 얼굴로 생각한다. 제가 궁금한 만큼 아회도 저를 궁금해 해줄까. 저를 지나치게 순수하다 했던 아회가. 제 본질을 알아버린다면. 제 본성을 알게된다면. 그 때에도 저를 순수하다 말해줄까.
여즉 손 잡고 있다면 이제 편하게 고쳐쥐려 했을 것이다. 한결 힘 풀고 장난스레 깍지도 끼려 하면서 잔뜩 운 탓에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장난기 어린 말 꺼내었다.
"오랜만에 울어서 그런가 기분이 영 밍숭맹숭하네. 내 방에서 꼴 좀 수습하고. 간만에 오라비 방 가서 하룻밤 같이 잘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려나?"
부은 얼굴로 히- 하고 웃으니 못난이도 저런 못난이가 따로 있으랴. 누가 들으면 상습적으로 동침하였을 것 같은 말 뻔뻔히 내뱉으니 어쩜 그리 기분 전환 빠를까 싶을 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그런 말 하며 그리 웃으며. 속으로는-
아회가 제 치부를. 이전에도 그리 소중하다 아낀다 하였던 존재를 온화 손으로 직접 목 꺾고 그 충동에 취해 입에 담았던 것 안다면. 그 일로 인해 제게 남은 시간 이제 찰나의 황혼과 무한한 심야 뿐임을 안다면.
그 때엔 제게 무어라 말할까. 어떤 표정 지을까. 그런 생각 하고 있었다. 맹세하리까 입에 담았던 그 순간보다 더한 무언가를 품고.
선행을 쌓아서 한 단계 더 올라가자! 취지의 일환으로 오늘도 하늘섬 주민들이 학당에 의뢰를 넣었습니다. 학생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냥꾼의 밤 협회장 최씨: 요괴 사냥을 도와줄 학생 급구! 신체 능력 뛰어난 학생 원함!] [천선 려㒧: 천선들을 도와주게나...] [TOOK TO TOOK 카페: 가게 오픈을 도와줄 학생 구함] [????: 선물 고르기를 도와주세요. 령도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중간에 피로 쓰인 의뢰서와 누가 부탁한 건지 모를 눅눅한 의뢰서 하나가 끼어있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다.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유념하지 않고 지내었더니 어느덧 새로운 의뢰가 도착할 시기가 되어 있었다.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생각하면서도, 매번 남의 일 도우려 먼 곳까지 가는 일에 그리 큰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로서도 조금은 번거롭단 느낌이 드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학당에 다니는 이상 학생의 역할에 소홀할 수도 없으니 그나마 덜 번거로워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편이 덜 수고로울 테다. 그런 생각에 가장 만만한 의뢰를 고르고자 의뢰서를 뒤적거리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칫 주춤거렸다. ……그런데 이 수상한 의뢰는 뭐지? 정확히 무엇을 도와 달라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척 보아도 의심스러운 재료로 쓴 글씨가 떳떳하게도 섞여 있었다. 그것 눈에 담던 유현이 미미하게 눈가를 좁힌다. 번거로운 의뢰 피하려 마음 먹었건만 이렇게 써 두면 백룡 인간인 그가 두고 넘어갈 수가 없게 되어버리잖는가. 턱 괴듯이 얼굴에 올린 손끝, 손가락 느릿하게 제 볼 톡톡 두드린다. 그대로 생각을 정할까 하던 그때 맨 아래에 있던 의뢰가 눈에 들어왔다. 령도의 바다가 목적지였다. 그에게는 아마 영영 낯설고, 필연히 반기지 못할 소금과 모래의 해원. 불현듯 얼마 전의 기이한 꿈이 떠올랐다. 무언가 의미는 있었던 듯했으나 어째서인지 도중에 끊어져 버리고 만 그 꿈이. 마음 바꾸었다. 그는 바다에 가 보아아겠다 생각했다. 유현은 의뢰서를 내려두고 곧장 걸음을 돌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온 봉사의 시간.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디로 향할까 고민하던 그의 눈에 피로 쓰인 의뢰서와 눅눅해보이는 의뢰서가 보였다. 이런건 누가 보낸거람. 눅눅한건 바닷가라 그렇다고 생각해도 피로 쓰인건 누가봐도 나 불길해요, 하고 얘기하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의뢰서에 눈이 가는걸 느낀 그는 결국 피로 쓰인 의뢰서에 적힌 곳으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다.
" 이번 생은 편하게 살긴 글렀구만. "
조용히 살아도 되는 인생이거늘 언제나 자신에게 혹독한 선택만 골라하는 그 자신을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미련없는 삶을 누군가 일찍 끝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걸지도 모른다.
이마에 손차양 만들고서도 눈이 부신지 가늘게 뜬 눈 거의 감다시피 한다. 비릿하면서도 짠, 습기 머금은 축축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혹자는 그것을 아름다운 정경 정취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통 그러지 못하겠다. 물비린내부터 익숙지 않음은 둘째치고, 가뜩이나 여름이라 더운 와중에 해안 인근은 겨울탑 출신인 그의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습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까지 다 감안하고 정한 선택인 것을. 이제 와 후회하지는 않으나,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우선 그늘 자리부터 찾았다. 화유현 같은 인간일지라도 생리적 불쾌감만은 생생하게 느낄 줄 알아서다. 거리가 복잡하니 어디에 발 걸리거나 누구와 부딪히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고.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온 봉사의 시간.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디로 향할까 고민하던 그의 눈에 피로 쓰인 의뢰서와 눅눅해보이는 의뢰서가 보였다. 이런건 누가 보낸거람. 눅눅한건 바닷가라 그렇다고 생각해도 피로 쓰인건 누가봐도 나 불길해요, 하고 얘기하고 있는듯 했다. 아무래도 이런곳은 좀 곤란하지.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그는 오랜만에 평범하게 가게 오픈을 해보기로 했다.
주변 살피며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태반이 생선 이야기이니 뭍사람이고 물고기 따위에 관심 없는 그에게는 무의미한 내용들이었다. 잠깐 쉬었으니 바다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불쑥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돈 있냐고? 대뜸 이런 말부터 하면 일반적으로 무슨 의미더라? 갈취? 아니면 사기꾼이거나,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있는 자이거나, …어쩌면 단순히 돈 꾸어 가려는 행인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리고 사실 어느 쪽이든 유현이 돌려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눈 느릿하게 깜빡이며 상대를 쳐다보다, 고개 느긋하게 기울였다.
"없네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없다. 그야 의뢰 수행하려 나온 길인데 거금 지니고 있을 리가……. 물론 만일을 대비해 몇 푼 정도는 소지하고 있긴 하지만, 넉넉한 수준은 전혀 아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도저히 알 수가 없고, 알 도리가 없다. 그냥 눈을 감고 모르는 척, 지나가 버리면 되는 것을 또 이렇게 고민하게 된다. 타인의 죽음 따위 자신에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곁의 사람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그 명을 달리하고, 사라지고. 혹은 자신의 명을 꺾어내기 위해 기를 쓸 텐데. 어째서 자신은 그런 타인 앞에서 자신의 결정을 망설이는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생각하게 된다. 신이 뒤집어진 이유를 떠올리고, 자신이 앞으로 해낼 일을 합리화했다. 뒤집힌 것은 정명하지 못한 것을 정명하다 받들게끔 하기 위함이리라,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현재 심상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쓰다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곳이 머리구나, 이곳이 머리카락이구나. 바스라질 것 같았던 목소리 탓에 쓰다듬는 손길이 영 자연스럽질 못하다. 뻣뻣한 손길을 뒤로 두 번째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화가 나거나 괴롭지 않다. 체념의 감정도 아닌, 기묘한 감정의 연속이었다. 무엇인지 정의하기엔 지나치게 평온하여 마땅한 이름 붙일 수 있나 거듭 생각하게 되는.
"……꼴이 엉망이구료."
사실 모른다. 그렇지만 꼴이 엉망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울음을 그렇게 쏟아냈는데 엉망이지 않을 리가. 고개를 끄덕이듯 살구색 빛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모습 눈으로 담아보다가, 아회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은색 눈동자가 세상을 다시금 거부하고 암흑이 드리우자 평온함이 얼굴에 깃든다. "이길 수 없겠지?" 어딘가 뻔뻔하게 흐려진 말의 끝을 정의하고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떼었다.
"그리 셈 치겠다면야. 이쪽 또한 원껏 물어보도록 하지."
아직 감정의 여파는 다 흩어지지 못했다마는, 한결 평온할 수 있었다. 재의 잔불이 꺼지는 것 쉬운 탓이다. 편하게 고쳐쥐는 손길에 이걸 어쩐다 싶다가도 가만히 손 놔둔다. 그래, 무르기로 했으니 봐줘야지. 그러다가도 결국 한숨 푹 쉬어버리는 것은, 당신의 장난스러운 이야기 때문이다.
"에이잉, 신수 님이 기거하고 계시니 적당히 간식거리나 챙겨 오거라."
동침은 잘 모르겠고, 간식 먹을 거면 오든지. 그런 느낌이었나? 제법 얄궂은 사람이다. 아회는 느릿하게 남은 손 허우적거려 손가락 두어 번 까딱였고, 지팡이는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앙상한 손아귀에 안착하듯 나타났다. 지팡이를 땅에 한 번 짚고 디딤대 삼듯 두어 번 툭툭, 땅을 쳐보더니 이내 자리 떠나기 전 하지 못한 말 있었다는 듯 입 벌렸다.
"네 탓이 아니다."
늘 그렇듯 어떤 의미인진 알 수 없다.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마찰 빚었던 일에, 혹은 당신이 보여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깜깜한 카페 내부를 보며 그는 이마를 짚은채 중얼거렸다. 불을 꺼놨다고해도 주변은 한낮. 창문으로 태양빛이 들어가서 밝아야할 이곳의 내부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이거 정말 괜찮은걸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필연적으로 커다란 키일 수밖에 없다. 제 눈높이에서 고개 돌렸다가 얼굴이 아닌 목언저리부터 보게 된 그가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입가 슥 닦는 모습으로부터 대단한 위협이 읽히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갈취는 아닌가? 그는 미련 있어 보이는 상대를 멀뚱히 바라보다 제 품을 뒤적였다. 이내 동전 두어 푼이 나와 유현 손에 쥐인다.
이런 종류의 도술은 그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쉽사리 실패했고, 그는 그저 그을음에 뒤덮여있는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살짝 웃을뿐이었다. 여기서 딱히 뭐라고 할만한 말도 없었고 말이다. 연기를 밖으로 빼내려는 남자의 행동에 윤하도 덩달아 연기를 바깥으로 빼내며 인사했다.
"그러셨죠. 저 역시 티가 나기는 마찬가지라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제 쪽도 첫인상에서 제법 짐작이 가던가요?"
역시나 빈말 할 줄 모르는 자답게, 그저 그럴 마음 먹지 않을 뿐인 인간답게 멋쩍어하는 상대의 반응에도 부정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는 이전보다는 조금 매끄러웠을 테다. 그런대로 담소에 어울리는 말로 되물었으니. 그렇다 해도 조금만 틈이 생겨도 불쑥 튀어나와 버리곤 하는 이 비정상적인 심리를 감추어 내기엔 부족했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흥분이다. 그는 한발 늦게서야 자신이 또 자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나 이상한 것은 싫다. 그로 인해 인지하지 않으려던 제 심상 다시금 느끼게 되는 상황 역시도. 불쑥 다가갔던 걸음 한 발짝 뒤로 물린다. 이미 드러난 본질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무작정 달려들어 캐묻는 듯한 행태는 이로써 조금 덜해졌으리라. 그래도 상대가 크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라 다행인가. 들릴 듯 말 듯 맥없는 숨 한 번 내쉰다. 그 이상으로 괘념한단 티는 내지 않았다.
"질문했던 의미가 없네요. 방금 참 백룡처럼 굴었으니까요."
앞선 행동도 전부 기숙사 탓이라 돌려 버린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변명과는 별개로 늘봄의 설명이 상세했기에 그는 그 이야기 경청하고는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물론 되짚는다 해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따스한 비유들은 그에게는 아름다운 표현이 아닌 지나치게 현실적인 직설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간지럽고 두근거리는 날갯짓으로부터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이 연상되기보다는, 내장 안을 꿈틀거리는 기생충 따위의 심상이 떠오르고 만다. ……그런 것들이 꿈틀거린다면 불쾌할 듯한데.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별달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표현력이 좋으시네요." 결국 전달 잘 안 되었어도 그건 늘봄의 탓이 아니다. 그는 적당히 고개 끄덕이며 잘 들은 체를 했다.
물건을 찾은 후에는 썩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그것도 자칫 거꾸로 엎어질 것만 같다. 그는 영문은 모르겠으나 뾰로통한 저 시선에 담긴 감정이 무엇일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용들에게서 들이밀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친밀감 때문이 아니고서도 청룡을 선호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런 식으로 극단적이기에 오히려 감정을 읽기가 편해서.
"반말은 무척 친한 친구나, 일말의 예의마저도 차릴 가치 없을 사람에게만 써서 말이죠. 아직은 이쪽이 더 편하네요. 제가 듣는 건 상관없지만요."
어김없이 빈말 절대 하지를 않는다. 그다지 완곡하지도 않은 거절이었다. 이 인간도 소갈머리없단 말 들어도 할말 없다.
답변을 들으니 이 사람이 의뢰자가 맞는 모양이었다. 배고파하다 못해 아예 주저앉아 버린 상대를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의뢰를 받은 학생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음식 대접도 나쁘지 않겠네요."
굶주려 아무한테나 돈 없냐 묻다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면 그냥 사 주고 대화를 진행하는 쪽이 더 편하겠다. 그 이유 아니더라도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고, 바다까지 걸어야 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수고도 던 셈이다. 그나저나 살 만한 음식이 있나? 령도 사정은 잘 몰라 어디로 향할지 쉽사리 정하지 못하겠다. 해서 안내는 급한 쪽에게 맡겨야겠다 생각했다. 그는 얼른 일어나라는 듯 상대에게 눈짓했다. 상대방 내려다보면서도 끝까지 일으켜 줄 생각 않으니 참 매정하다. 친절한 손길 내미는 대신 유현은 동전 몇 개 조금 더 꺼내어서 살살 흔들며 일어나라 무언의 종용을 했다. 꼭 강아지풀 흔들어 고양이 꾀기라도 하듯이.
"고작해야 푼돈뿐이라 제대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든 괜찮으니 만판 드시죠."
대수롭지 않게 뱉은 말에 돌아온 반응이 괴이하다. 사람의 틀을 순식간에 찢어내고 변모하는, 무어라 지칭하기에도 난감한 무언가, 혹은 어떤 것. 저것 사람이 아니었군. 드물게 한쪽 눈썹 비딱하게 올리며 눈살 조금 찌푸린다.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불만 표출이다.
"아뇨? 상식적으로 사람은 품목에서 제외죠."
제법 태연하게 대꾸하지만 당장 피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답이라도 한 까닭은 방금까지는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 혹시나 거절한다면 말 통할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뒤돌아 달아나려 했다. 참 새삼스럽게도, 이 세상은 참 살기가 힘들다. 곳곳에 불합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실수 조금 했다고 이런 불운에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체력 관리를 더 해둘걸 그랬다. 당연하게도 후회는 언제나 때늦기에 후회인 법이다.
>>15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적극적이라서 좀 웃겨버렷음,,,,, 다이스가 협조적이라서 정말 다행...(심장 쫄깃해짐) 평소에 나쁘게 떠 주는 대신에 각 캐릭터 별로 중요한 순간에 잘 떠준다는 걸로 생각해 보자구요~ 나중에 온화가 굴릴 때도 잘 나올 거예요!(*´▽`*)
마음 같아선 팔은커녕 머리카락 몇 가닥까지 줘도 되는 것 하나 없다 대답하고 싶었으나, 가뜩이나 체력 부족한 그가 도망치는 와중에 길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빈약한 호흡 온존하며 살길 고민해 본다. 한편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부터 그는 썩 좋지 못한 가정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 선물이란 것, 당초부터 건전하지 못한 무언가였나 본데. 어쩌면 말실수가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저럴 작정이었을지도 모르지. 달리는 도중에도 이런저런 생각 바쁘게 돈다. 아, 꼭 나여야 하나? 저것이 굶주린 게 문제라면 다른 대상으로 배 채운단 선택지는 없나? 이를테면 길에 널린 것이 사람인데 아무나 하나 대신 던져주면 해결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런 생각도 해결책으로 떠오르긴 했으나 확실하지 않으니 아직은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을 듯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과연 사람 있기나 할지. 이 세상은 괴상히 돌아가니 이 자리에 있는 인간 자신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우선은 계속 뜀박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발길은 자연스레 제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 발 빠지는 바다나 지리 모르는 골목길로 달려갈 수는 없으니, 가장 잘 아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왜 안 괜찮느냔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설명할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인간 아닌 존재에게 인간끼리 통용되는 상식 들이밀어 봤자 무엇하겠나. 한편으론 역설적이다. 제 타인과 같지 못하다 자조해 봤자 정말 인간 아닌 것의 괴이함에 비할 바는 아닌 듯해서. 그 사실 같잖아 실웃음 샌다. 폐가 터지고 다리가 꺾일 것만 같아도 경각에 달한 목숨 살리고자 본능이 몸을 이끌어 간다. 그 순간에조차 머리는 끈질기게도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와 생존욕구를 이렇게 시험하게 될 줄이야. 대상이 저 자신이 결과값이 보편적이지 못해 아쉽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긴박한 순간에도 인간이니 무엇이니 생각할 여력 있던 머리인데, 하물며 조금 여유가 생긴 상황에 몸 사릴 리 없다. 그는 사감이 시키는대로 얌전히 자리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사감의 뒤로 돌아가 우뚝 멈추고는, 저를 쫓아오는 그것과 사감을 한 번씩 일별했다.
"아우요?"
그는 설명을 요구하듯 제 사감을 빤히 쳐다보았다. 목소리에서 반가운 기운 물씬 묻어 나오는 걸 봐선 평범한 사이는 아닌 모양인데. 문득 지난날 사람의 탈을 벗어던지던 사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추 사감은 아직 그런 모습 보인 적 없으나…… 저 괴이한 것이 아우라 부른 시점에서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어쩌면 그 선물이라는 것도 사감들, 혹은 다른 사람 아닌 무언가에게 줄 예정이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야 옛날에 사람 먹곤 했다며 인육 좋아할 거란 소리 일반적인 인간에게 들어맞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침 인간 죽이는 게 일이었다던 어디 사감 이야기도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제동을 걸자 뛰던 도중보다도 숨이 더 거칠게 차오른다. 호흡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유현이 짧게 물었다.
본디 궁금한 것이라면 절대 참지 못하곤 하는 유현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자제하기로 했다. 지금은 객기 부릴 때가 아닌 듯하고, 사감의 경고에서부터 추후의 가능성을 읽어내었기 때문이다. 묻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지금'은 갖지 않는 게 좋다고 했으니 어쩌면 나중에는 물어 볼 기회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은 기대해도 된단 말씀이겠죠?"
싱긋 그려진 미소가 왜인지 얄미운 미소를 닮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발 돌려 학당 안으로 들어선다. 수상하다 생각하기야 했지만, 설마 저 무엇인가가 직접 언급했던 존재가 추 사감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 해서 끔찍하단 생각이나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감들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이며 저 형제란 존재들이 대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사실들이 궁금해졌을 뿐이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유유히 그들을 등지고 자리를 떠난다.
자신이 누구냐는 반문, 그에 궁기 당신의 이름을 말하려던 연은 입을 벙싯대다 그만 다문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서 침묵한다. 역으로 당신에게서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며 가현과 이야기했던 것. 아무렇지 않게 당신을 대해야 했던 것에 또 멍청하게도 제 감정을 다루지 못하고 이렇게 나서버렸으니. 연은 고개를 젓는 궁기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가 답한다.
"나도 알아. 그냥 그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서 그래."
학당의 문이 닫혀, 오랫동안 열리지 않음에 밖에서도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테니. 또다시 진심일지 모르는 달콤하고 따뜻한 말을 속삭임에 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위험한 사람이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더욱 짜증이 나는 요소였을까. 연은 앓는 소리를 내다간 말한다.
"정말 내가 위험에 빠지는 걸 원치 않는 것 뿐이야? 궁기, 당신을 쉽게 믿을 수 없어서 그래."
하고서 연 고개를 들며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본다. 말 끝을 흐리며 연은 시선을 제 발치로 내리깐다.
덕과 선행을 쌓으면 언젠가는 등선하리니. 다만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가 등선할 수 있는가? 아마 안될 것이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등선할 생각은 없다. 땅신령의 선택을 받았으니 지선 되고자 한다면 그 앞날이 수월할 터인데도 큰 관심은 없으니 지선의 자리를 바라는 자가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리라. 그렇지만 어찌, 이미 막중한 삶이 주어졌는데 그 길을 회피하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운명을 피하는 것은 겁이 많은 자의 발악에 불과하다는,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고집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
하여 땅의 일이든 하늘의 일이든 일절 관심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억지로 관심을 주니, 요괴 사냥은 신체 능력이 커버가 안 되고, 카페는 한때 있었던 일로 다시는 발 들이지 않은지 오래고, 선물 고르기는 령도라서 싫었다.
천선을 위해 도달한 곡옥. 아마 그 순간부터일 터다. 그는 거부감이란 것을 흑룡에게서 주로 느끼곤 하였으나, 오늘은 유달리 그 거부감이 심했던 것이다. 어째서?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든 생각이 있었다. 제사장. 제사장의 호위 가문이었기 때문인지, 그리고 겨울탑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피 깊은 곳에서 각인된 무언가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
지금이라도 물러서는 것이 좋을까. 어차피 다른 누군가 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 또한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겨울탑 사람, 천선은 어떻게 보면 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 겨울탑인 자신을 보면 죽이려 들까? 그렇게 죽으면 학당은 역시 아무렇지 않게 사람 하나 죽었다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자신은 그 사실에 미련이 없는가? 정녕 미련이 없는가? 거사를 치르지 못하고, 제 형에게 뇌까렸던 그 저주를 정녕 속에 담지 않고 편히 눈을 감을 것인가?
"…하."
놀랍게도 아무련 미련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질 것을 알기 때문인가. 이미 신의 진노는 자신의 핏줄로 한 번 샀고, 두 번은 몸에 받아들였다, 신은 필히 부정한 자신이 발 들이면 죽이려 들 터이지. 그렇다면 그 뜻대로 죽어주는 것이 옳을까. 어차피 인간이 날뛰는 것이라 신의 손에 죽으러 가면 당신은 쓸모가 없었노라 생각하며 어련히 잊지 않을까……. 애초에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싶은건 아니었는데. 나도 남들처럼 령도에서 유유자적 살아가거나 곡옥에서 축복 받으며 살고 싶었는데, 하물며 천부에서 시끌벅적하게─ 가만히 문 바라보며 한때 수도 없이 했던 생각만 하다 돌아섰다. 어찌해도 태생은 바꿀 수 없다.
"북부 전체를…… 산제물로 바쳐도 머잖아 흥미를 잃고 새로운 북부를 만드실 것을 감히 압니다."
당신의 이름을 말할 적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이, 못 들었을 것도 아닌데. 뭐라도 반응을 해줬으면 하여 연은 고개를 들어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마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면 당신의 가면 뒤 숨겨진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마냥. 정말 자신의 눈앞에 있는 당신이 그렇게나 유명하다던 궁기라니. 연은 당신의 말에 투덜 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조언과 선물이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잖아."
당신이 궁기인 걸 알게 된 이상, 어떻게 그 호의를 순순히 믿을 수 있겠어? 연은 다시 한 번 당신의 이름을 강조하여 말하고선 당신의 반응을 살핀다.
그 말대로 품었던 예상은 당신의 이어진 행동들에 확신으로 변한 듯싶다. 참 백룡답게 굴었다는 말에 늘봄을 고개 끄덕임으로 동의했다. 새하얀 머리카락 만큼이나 새하얗게 물든 듯한 속내가 방금 몰아친그 질문들로 인해 겉으로 온전히 드러나는 것을 가감없이 목도한 기분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늘봄은 유현의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대체 염치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정확한 이유를 듣고 나서도 샐쭉한 기색이 가시질 않는다. 빼도 박도 못하게 성가신 인간 확정이다. 정작 본인은 그런 걸 신경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백룡인 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방금 그 말로 확신... 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백룡의 화유현 씨. 아무리 그래도 후자는 별로 되고 싶지 않고, 너랑 친밀하게 말을 놓고 싶으면 더 친해지면 된다는 거지?"
딱 부러진 거절에 불만이 잠시 불꽃처럼 일렁였으나 몇 초 사이 심경에 무슨 변화가 일었는지 늘봄의 눈은 곧 파동이 멎은 샘처럼 안정을 되찾는다. 뒤이은 목소리는 사뭇 활달하다. 오락가락이 초 단위로 진행되니 당신이 따라가기 버거워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늘봄 본인조차 스스로 날뛰는 감정을 정리하고 가다듬기 어려울 때 많았기 때문에.
"그럼, 그으럼... 아직 진짜 무척 친한 친구는 무리지만, 그냥 친구부터 시작하는 건 어때? 만난 것도 인연이겠다. 구슬 찾아준 것도 고맙고. 친구는 많을 수록 좋고... 그렇지 않아?"
짐짓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직설적으로 친분을 요청하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쑥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늘봄은 머쓱한 듯 제 볼을 한번 긁적였다가 눈을 또렷하게 뜬다. 나름 용기 내서 말한 건데 거절은 거절이다! 푸른 눈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짝였다. 성가시기 이를 데 없다. 질려서 떠나가도 이해될 수준이다. 정말 그 말대로 동갑이 맞나 의심될 만큼 유현과 늘봄의 정신 연령은 한없이 차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그리고 너도 내가 표현력 좋다며? 표현력 좋은 친구 하나쯤은 둬도 괜찮지 않아? 으으, 이건 너무 억지였나. 사실 내가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 다른 기숙사 친구 있으면 재밌잖아? 재밌을걸?! 난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의도치 않게 애원에 가까워진 기분이다... 늘봄은 볼이 약간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데, 뭔데! 어떡해, 나 또 도 넘게 날뛰어 버렸다아!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뱀은 싫다. 괜히 팔 언저리가 욱신거리는 듯하며 감았던 눈을 가늘게 뜬다. 어디로 가야 할까, 학당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지금 갔다가 어떤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천부? 아니다. 곡옥? 미쳤다고 그 잘난 제사장들 있는 곳으로 가겠나? 겨울탑? 숲?
"……."
검붉은 부적이 불탔다. 흰 털을 가진 무언가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훌쩍 땅을 박차더니, 이내 사라진다. 소금기 가득하던 그 불쾌한 감각이 떠올랐던 탓이다.
령도의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몸을 감싸는 것만 같다. 스미는 끈적한 불쾌함에 몸을 한 번 털어낸 그는 그제야 자신의 뒤를 쫓는 존재가 없음을 깨달았다. 풍성한 꼬리의 끝이 위로 슥 올라가다 바닥을 퉁퉁 두드린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 꼬리는 그가 생각을 멈출 때까지 계속해서 풀썩대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는다. 첫째, 곡옥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그는 곡옥에 좋은 감정이 없지만 그래도 덕을 쌓고자 하였다. 둘째, 그는 악의를 눈치챘다. 정확히는 몸을 돌릴 적 들린 혀 낼름거리는 소리에 깨달았다. 오로지 그가 북부 출신이라는 이유일 것이 뻔했다. 그쪽에선 본디 북부를 경멸하였으니.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이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를 끝없는 수렁에 빠뜨리는 것만 같았다. 피해의식은 무럭무럭 커지더니, 어느덧 학당에 돌아갔을 적 적룡 기숙사의 동문이 자신을 보며 덕을 쌓지 않았다며 비웃고 시비를 거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럴 일이 없을 텐데도!
그렇다고 곡옥으로 돌아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가 만일 한때의 과거처럼 노력하여 북부 출신도 언젠가는 용서를 받거나, 신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속 편한 삶을 살 충분한 환경이 주어졌다면, 진작 제 아비를 산제물로 바치고 형님에게 차라리 자기 손에 죽어달라 애걸복걸하다 수틀리면 불시에 찔러버리거나, 어떻게든 상처라도 입혔을 것이다. 지금처럼 학생이라며 인내하고 때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 그냥 북부로 돌아가고 싶다. 이대로 북부로 돌아가서 대문짝이나 신명나게 박살낸 뒤 터덜터덜 방에 들어가 몸 웅크리고 잠들고 싶다. 아, 어차피 돌아가도 혼사 소리만 들을 것이지. 어쩌면 무준서 그 작자가 고드름 숲을…….
"……하하!"
자조하듯 웃는 소리에 땅이 가볍게 흔들렸다. 큰 덩치 탓이다. 이내 육중한 앞발 움직여 터덜터덜 어디론가 향했다. 시비 거는 녀석이 있다면 무시하고 지나치면 되겠지. 늘 그랬듯이. 언제는 안 그랬나. 명료하고 무력한 답안을 도출하며 돌아가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독 느리다.
당신이 실긋 입매를 당기며 웃는 모습에 연은 눈을 크게 떠내며 자신이 실수를 했음을 깨닫는다. 당신의 이름을 말하며,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음을.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어 놀란 연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 되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다. 멍청한, 바보, 위험한 사람을 바로 눈앞에 두고 너무나 경솔했으니. 얌전히 있고 싶다는 당신의 말에 살짝 몸을 떨던 연은 슬금슬금 시선을 내리깔며,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호랑이로 변한 아회의 꼬리는 아주아주아주 풍성하답니다. 예전에도 말했지마는 집채만한 흰 호랑이여요. 줄무늬가 머리카락 색과 동일하고요, 눈썹이나 갈기, 꼬리털이 긴 편이라 움직일 때마다 안개가 일렁이는 느낌이어요. 색이나 털 길이 때문에 동물 보다는 신수에 가까운 듯한 외형인데 푹신푹신 따뜻하답니다... 가끔 목화를 품고 모닥불을 쬐면서 잘 때가 있대요~ 0.<
앗 그거 설표였구나 :ㅇ 아회가 북부 출신이라서 헷갈렸나보아~ 그래도 가끔은 그러고 있을 거라니 귀여웟 ヽ(✿゚▽゚)ノ 물고 있다 들키면 툭 하고 떨궈줄거지 그렇지?!(끌려감) ㅋㅋㅋㅋㅋㅋ 와아 딥따 큰 호랑이한테 앵긴다~ 푹신푹신 최고~~ (온화 : 이것이 내 오너라니(이마짚)) 푹신범 아회 덕분에 쓰던 독백에 의욕 뿜뿜된다~
ㅋㅋ 꼬리 팡팡 꼭 무안해서 그런거 같다~ 히히히ㅣ 보고 놀려줘야 하는데~ 어머 무 오라비 귀여우셔라... (카구야짤) 해줘야 하는데~ ㅋㅋㅋㅋ 독백 내용이 너무 주저리가 되어가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써재끼는 중~ 중간에 떡밥 오지게 낑겨넣어야지~ 아회랑 일상 말미에 나온 것도 슬쩍 풀릴~지도~?
온화는 진행 도중 극한 상황에 몰릴 때, 특히 정신적으로 몰릴 때 자신의 감각을 무시하려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특히 눈과 귀와 입을 주로 언급하는데. 이건 그 유명한 세 원숭이에서 따온 것. 눈감고 귀막고 입닫고. 이것의 비중 높은 해석인 악을 멀리하려는 의미와 서브적 해석인 자유에 대한 억압의 의미가 함께 내포된 설정. 상징하는 도구로 안경과 귀걸이와 목의 띠를 매치했다. 추가로 목의 띠는 온화에게만 이러한 의미가 있다. 다른 남매(수일, 예온, 온령과 일령)의 것은 띠 본래의 기능을 하고 있다.
고향의 추위는 괴로웠다. 손늘봄은 태어나길 연약하게 태어났고 북부의 냉기는 그런 허약함을 감싸 안아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늘봄은 병치레가 찾아 자주 앓아눕곤 했고, 이는 곧 부모의 과보호로 이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외동딸인 것만 해도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안달복달 하기 알맞은 조건인데, 몸까지 약하니 걱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죄 지은 선조의 업보로 살 에일 듯한 칼바람이 부는 이곳에 살고 있으나 그들과 우리는 다르기에 그 처지를 비관한 적은 특별히 없었는데 아픈 딸아이는 처음으로 과거 과오를 저지른 조상들에 대한 울화가 터져나오게 하였다. 시작부터 집안을 이토록 뒤흔든 늘봄은 학당으로 갈 나이가 될 때까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불면 날아갈라 쥐면 터질라, 늘봄이 병을 떨쳐내고 몸을 단련해 건강해진 뒤에도 부모의 걱정은 가실 줄 몰랐고 이는 필연적인 제한을 낳았다. 나이가 차며 반항도 불만도 토해내는 일이 잦아졌으나 부모는 그 모든 것을 받아줄지언정 늘봄에게 자유를 주지는 않았다. 피차 고통스러운 한때였지만 기저에는 애정이 깔린 그 행위를 서로간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억압 안에서 가족은 도담도담 살아나갔다. 유수같은 세월이었다.
이전 휴일. 류 가의 남매들은 일제히 천부의 본가에 다녀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었고 가문에서 주기적으로 여는 잔치가 있어서 였다. 그 날은 류 가에 속한 모두가 모여 다같이 먹고 마시며 노는 자리인지라 온화를 비롯한 남매들도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빠지고 싶지도 않지만은.
아무튼 그런 일 있어 집에 다녀온 그 날. 온화 제 방에서 저녁잠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나보니 창 밖 컴컴한 밤중이었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 하며 몸 일으키는데 방 한 가운데 둔 물건 힐끔 보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9칸 도시락이었다. 층층이 다른 음식 담고 붉은 비단 보자기로 곱게 쌓인 높다란 도시락 옆에는 청주 댓병도 셋 있었다. 딱 보면 그저 온화 야식으로 먹기 위해 있는 듯 했으나- 침대 걸터앉아 머리 긁적이는 것 보면 아닌 것 같다.
"하- 이거 참."
평소라면 벌써 청주부터 깠을 터인데 오늘은 술 앞에 두고 한숨부터 푹푹 쉰다. 저걸 어째야 하나- 하는 눈으로 도시락과 술병 째려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에휴! 큰 한숨 다시 내쉰 온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나갈 채비 했다. ...채비래봐야 세수하고 머리 묶고 두루마기 걸친게 끝이었지만.
그리하여 오밤중에 도시락과 술병 들고 옆구리엔 역린 끼고 찾아간 곳 어디냐. 두 말 할 것 없이 하 사감 방이렷다. 꽤나 간만에 찾은 방 앞에서 방문 잠시 째려본다. 그러나 역시 본다고 문이 저절로 열리진 않지. 마지못한 듯 손- 아니 발 끝으로 문 쿵쿵 두드렸다. 그 문 열리면 양 손에 먹고 마실 것 한 가득 들고 선 온화 정면으로 보였을 것이다.
문 열리기 전 아니 그보다 문 앞 다가갈 적. 어쩐지 기척이 평소보다 많은 듯 했다. 저보다 먼저 찾아 온 누가 있는 건가? 왠지 학생은 아닐 것 같고 다른 사감일까 싶었다. 그래서 잠깐 돌아갈까 했지만 이미 발은 하 사감 방 앞이었다. 정말로 생각 안 따라주는 몸이다. 마침 방 앞에선 기척 줄은 듯 해 그대로 문 두드렸다. 조금 후에 문 열리자 익숙한 하 사감 보였다.
"언제 와도 거 참 쉽게 열리는 문이구만-"
인사 대신 그런 건방진 소리 툭 내뱉으며 낄낄댔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알고는 있었다. 제가 역린 가졌으니까. 그러니 이럴 뿐이라고. 그리 생각하면 마음 제법 가벼워졌기에 평소와 같은 표정 지을 수 있었다. 목소리도 말도 똑같이.
"어- 아. 이것 말이오? 집에서 잔치 있었소. 다녀오는 김에 한 보따리 싸가지고 왔지."
저보다 손에 든 도시락에 먼저 관심 보이는 하 사감에 태연히 그것의 경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한 말은 사실 예정에 없던 말이었다.
"내 수 오라비랑 같이 먹으려고 오라비 방에 간다는게 실수로 여를 와버렸네. 오밤중에 실례했소. 마저 쉬시게."
실은 그에게 줘볼까 싶어 왔지만 막상 마주하니 마음이 바뀐 것인지 혹은 다른 생각 들었는지. 의중은 온화 본인만 알 일이다. 어쨌거나 뻔뻔하게도 방을 잘못 찾았다고 말하고 온화 휙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하 사감 등지고 방 앞에서 떠나려 했다. 음식도 술도 고스란히 들고서.
하 사감이 아무런 반응도 취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 자리를 떠나 버릴 생각이었다. 제 방으로 돌아가든 정말 수일의 방으로 가든 둘 중 하나는 했겠지. 그러나 다행이라 할지. 뒤에서 저 잡는 소리 들렸다. 온 김에- 라길래 슬쩍 걸음 멈추며 힐끔 뒤 보았다.
"흐음- 선물이라. 우리 하 사감님 이쁜 구석이 없는데 내가 뭘 보고 선물을 줘야 하나-?"
선물의 구실이야 찾으면 되지만 괜히 그런 소리 한 번 해 본다. 그리고 다시 갈 듯 하다가 다급한 목소리에 발 내딛으려다 말고 흐음- 소리 냈다. 먹을 거 진짜 좋아하긴 하나보다. 들고 와선 안 주고 가는게 안 좋은 짓이라니. 술도 제가 이미 갖고 있는데 준다며 저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이 도시락이 먹고 싶나 보다.
어쩔까- 한 번 튕겼으니 그냥 들어갈까? 아니면-
잠깐의 고심 끝에 온화 괜히 짧은 한숨 내쉬며 어깨 으쓱였다. 저는 정-말 생각 없었지만 하 사감이 하도 간곡하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감님이 그리 들어오라는데 내 순순히 들어드려야지. 거 참 피곤하게 가는 사람 붙잡고 그러나-"
그러면서 하 사감이 활짝 연 문 안으로 슬슬 들어갔다. 들어가 익숙하게 소파 찾아 앉아선 경망스러운 양반다리 하곤. 무릎 위에 도시락 올려놓고 그 위에 턱 괴었다. 그리고 얄밉게 능글능글 웃으며 하 사감 보았다.
"내 들어오래서 들어온 거지 이것 준다고는 안 했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 사감은 가지 말라던가 들어오라고만 했지 달라거나 먹자던가 그런 말은 안 했으니까. 안경 없이 붉은 눈 휘어 웃으며 도시락 감싼 보자기 끄트머리 만지작거렸다. 열 생각은 없는 듯이.
귀기 무 씨의 상징은 검푸른 색이요, 야밤에도 상징인 푸른 불꽃과 샛노란 등불들 환히 켜져 그 모습이 도깨비불이 모인 것 같기도 하였기에 북부에서 귀신이 머물다 가는 곳, 혹은 혼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들 하였다. 그런 밝은 곳에서 유일하게 호롱불 하나에 의지한 방이 있으니, 이곳은 다른 곳보다 유달리 조용하며 사람들 잠들 시간엔 쥐 죽은 듯 고요하니 이는 가문의 사생아요 현재 남은 유일한 직계인 아회를 위한 배려이다. 아회 요구하기를 휘황찬란한 등불 때문에 눈이 시리니, 밤에는 편히 잠들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실 아회가 유일한 직계가 된 이후 입지를 다지고 입학한 이후 4학년까지는 호롱불이라 하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5학년이 되고 나서 요괴의 개체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하자 평소엔 아무리 불을 끈다손 쳐도 신경도 않았던 사람들도 아회가 본가에서 잠들던 날이면 귀신같이 나타나 불을 켜며 횃불을 들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아회가 불을 끌 적이면 요괴가 밤중에 어둠을 틈타 들어올 수도 있다느니, 위험한 북부라느니 오늘만 넘어가면 그리 좋아하시는 양과자를 드리겠다느니 청지기가 몇 번이고 어르고 달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불 켜기를 강행하면 아회는 드물게 인상을 찌푸리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 잠들었다. 그럴 때면 아회는 평소보다 더 수척한 몰골로 터덜터덜 학당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홀로 속으로 앓던 아회가 학당에서 잦은 소란으로 인해 밤을 며칠간 새우고 본가로 불려온 날이 있었다. 피로하지만 특유의 기감 때문에 아무리 이불을 뒤집어써도 푹 잠들지 못해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 때, 결국 아회는 등불을 켜려는 청지기의 멱살을 잡아끌고 가 가주의 방 안에 던져 넣고, 자신도 척척 방에 들어갔다. 호위들은 아회의 돌발행동에 제각기 부적과 검에 손을 올렸으나 가주인 준서는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앞발에 만두처럼 눌리던 녀석 아니냐. 홀로 요 말썽쟁이를 해결할 터이니 나가보아라."
혼자 있어도 된다 호언장담하던 준서의 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청지기의 비명과 칼 맞대는 소리가 들리자, 호위들은 급히 칼을 빼들었으나 문은 도술 탓인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거세게 내리치는 소리를 뒤로 문이 열렸을 때, 호위들은 일제히 칼을 겨눴으나 막상 나타난 것은 곤히 잠든 아회를 한쪽 어깨에 들쳐매고, 다른 손으로는 칼을 쥔 채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준서였다. 앞섶을 다 풀어헤쳤지만 멱살이라도 잡혔는지 옷이 구겨지고, 늘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쳤으며, 옷소매는 찢어진 데다 칼 쥔 손에는 피까지 흘렀으니 준서의 몰골은 그야말로 전장에서 이제 막 살아 돌아온 듯싶었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 "가주님!" "다시는……." "가주, 님?" "……다시는 이 아이 방에 등불을 달지 말거라." "예?" "아이들은 숙면이 중요하지, 암, 그렇고말고…… 키가 클 때지." "괜, 괜찮으신…." "어떻게 잠 못 자면 앙칼지게 굴던 점까지 화련이를 빼닮아선……."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중얼거림과 걷는 모습에서 고된 육아의 끝을 본 듯한 사람이 언뜻 비치자 호위들은 서로 당황스러운 시선을 교환했고, 터덜터덜 걷는 낡고 지친 걸음 뒤로 방구석에서 제발 이 집안에서 은퇴 좀 하고 싶다며 청지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호위 하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방 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남은 호위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천하의 가주님도 힘겨워 하고, 울지 않던 청지기가 울기까지 했으며, 칼 맞대던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으니 당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서로 눈치만 보다 아회를 데려가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무영이 나타나자, 준서는 걸음을 멈췄다.
"가주님." "쉿." "으응……." "그래, 그래. 더 자라. 푹 자서 아침까지 깨지 말거라. 제발." "……그, 가주님." "……지금까지 이런 고생을 하였구나." "…예?" "네가 고생이 많을 터인데 휴가라도 보내주랴……?" "그랬다가 도련님께서 못 주무시면 학당이 뒤집어질 겁니다……." "네 쉬는 날은 죽는 날이겠구나." "……."
준서는 무영을 진심으로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다시금 터덜터덜, 최대한 조용하고 어두운 방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무영에게 나지막이 일렀다.
"애가 깨거든." "예." "……오늘 치 가배는 압수해라…." "어……." "아니, 아니다. 나흘은 주지 말거라…… 아니야, 이레는 주지 말거라. 알겠느냐?" "예."
그 하루 아회는 숙면하였으니 날을 훌쩍 건너뛰고 다음날 동이 틀 적에야 일어났으며, 의문의 가배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로는 다시는 등불 켜는 일이 없었고, 대신 작은 소문이 와전되어 돌기 시작했다.
밤마다 작은 도련님 방에 있는 등불을 켜면 나타나는 요괴가 있는데, 그것이 어찌나 귀기로운지 같은 요괴도 찢어버리고 천하의 가주님도 고전하였기에 차라리 그 방의 불을 꺼버렸다…… 하는.
"사람이 잠을 자게 둬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웃어른을 던지면 쓰나.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니."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였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집안입니까, 언젠가 제사장의 호위될 자가 경계 서지 못하고 쪽잠도 채우지 못하여 주군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눈치없이 구니 죽을 죄는 맞는 것 같습니다." < 검 빼들고 있음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싶고... 자아 특... 갑자기 칼 빼들고 맞서싸움(?) 이에요....는 네? (동공지진)
>>383 꼬, 꼬리를...! 어버버, 어버버법. 평소에는 앞발 그루밍도 하고... 꼬리팡팡도 하고... 골골골골도 하고... 쭈욱이도 하고...(?) 가만히 호수를 바라볼 때가 많답니다! 아니면 적당히 푹신한 방 러그에 앉아서 벽난로를 쬐곤 해요. 아마 목화를 폭 감싸듯이 털에 파묻어줄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사냥도 나간답니다. 가계 도술이 발동됐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만능은 아니니, 이 모습도 충분히 연습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가~~~~끔 사람 모습일 때 앞발 그루밍 하려고 손등 굽히고 혀 끝을 댔다가 흠칫한다나 뭐라나~😏
아회: (앞발...이 아니네?)
>>384 골골... 가르릉가르릉~ >:3
음~ 규칙적이되 불규칙한 편이에요. 귀가 특히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리만 들려도 깊게 잠들어도 자연스럽게 눈이 뜨이니 여간 고생이 아닌가 봐요~ 조금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잠에 들까 싶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귀가 트이며 눈이 뜨이는 그 순간을 잘 겪는답니다... 긴장 상태라서 그렇대요~ 물론 소리나 빛공해가 없으면 푹 자요. 4~5시간 정도만 자도 눈을 뜨는 편이라서... 음~
일주일 중에서 악몽으로 깨는 건 사흘 정도 이틀은 적당히 자고, 하루는 건너 뛰듯이 자면서, 나머지 하루는 앞서 말한 건너 뛰듯이 몰아서(17시간 이상을 자요) 잔 뒤 일어나는데 시간을 다 쓴대요. 수면향이나 도술의 도움은 쓰지 않고 있어요.
당장에 화를 낼까. 어이없어 하며 쫓아낼까. 그도 아니면. 이것저것 떠오르는대로 머릿속에 주워넘기기를 잠깐. 곧 하 사감의 반응 볼 수 있었다. 단번에 인간의 것으로 돌아온 눈과 당황한 아니 황당한? 목소리였다. 순간 조금 웃겨서 킥킥 웃어버렸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일단 크게 당황 시키는 건 성공한 거 같으니. 어찌 재밌지 않을까. 그 재미에 실실 웃다가 이어진 말에 고개 갸우뚱 기울였다.
안 되면 안 되지 공물로 안 되는 건 뭐람. 또 또 놀리네.
하 사감이 손짓했을 때는 얌전히 그 앞까지 갔지만 무릎 두드릴 때는 가만히 서서 빤히 보기만 했다. 그러니까 대답은? 된다 안 된다도 말 안 해주고 대뜸 모를 소리나 하는 것 보라. 이래뵈도 저 역시 적룡은 적룡이라 오래 못 참는데 말이다. 그냥 빨리 대답이나 해주지. 뭘 아네 마네 하길래 대뜸 불퉁한 소리 툭 내뱉었다.
"그러니까 싫으면 싫다고 곧장 얘기를 하던가! 뭘 그리 빙빙 둘러대길 둘러대!"
평소라면 그 한 마디에서 끝났겠지만- 이미 한 번 터진 전적이 있어서일까. 욱 하고 치솟은 말 참지 못 하고 냅다 질러버렸다.
"공물로 되느니 안 되느니 내가 무얼 알어! 무게니 뭐니 내 알 바인가! 그래 나 꼬맹이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 나부랭이올시다. 뭐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음서 이러니 저러니 딴 말만 많어! 내가- 내가 이게 맞나 고민하고 안 하던 짓까지 하고서야 이리 들고 온 건데. ...하. 이러려고 온게 아닌데."
짜증난다. 동시에 후련하다. 아무래도 좋으니 이제 제대로 된 대답이나 들었으면 싶다. 그리고 도시락 던져주고 가버릴테다. 숨 한 번 고르고 재차 쏘아붙였다.
"그래서 대답은? 설명할 거 있으면 것도 해보시던가."
고개 삐딱하게 기울이고서 제 앞의 하 사감 흘겨보았다. 쓸데없는 말 말고 딱 할 말만 하란 듯.
그가 재차 앉으라고 해도 두 다리 빳빳하게 세우고 서 있었다. 말은 다 쏟았어도 아직 속의 화 조금 남은 탓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예상하고 있기도 했다.
어차피 안 된다 하겠지. 저는 알지도 모를 소리 구구절절 해가며 안 된다는 말 빙빙 돌려 하겠지. 뻔해. 고작 인간 나부랭이 하는 소리 무얼 진지하게 들어주겠어. 그것도 불량품인 저인데. 제 까짓게 무얼 바라.
그러니 더 꾿꾿하게 버텨야 했다. 또 무너지지 않고 제 발로 걸어나가려면 정신 꾹 붙들어야 했다. 무너져도 방에 가서 무너질 테다. 이번이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다. 그리 다짐한 것 무색하게 하 사감 말했다. 괴롭게 할 거니 살육에 눈이 돌아갈 거니 할 때는 거 보라며 입술 지그시 깨물었지만 작은 중얼거림에 귀가 쫑긋했다. 지금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대답 들었다. 앞서 했던 말 괜찮다면 그래도 괜찮으면 반려 되겠단다. 머리 새하얘졌다. 고개 돌린 하 사감 멍하니 보다가 도시락 놓칠 뻔 할 정도로.
"아. 아니. 뭐야 그게. 인간 싫다며. 그렇게 질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어?"
되려 제가 어이없어졌다. 싫다매 인간! 뭔데? 갑자기 태도 바꾸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 아- 망할...
"...쳇."
다시 재촉하는 말에 미간 찡그리고 혀 찼다. 휙 돌아 탁자로 뚜벅뚜벅 걸어가 가운데에 도시락 턱 하니 올려놓고 역린도 그 옆에 두고서 다시 걸어와 하 사감 앞에 섰다. 곧장 앉지 않고 또다시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물러서면 다 없던 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중한게 뭔지 모르지만 받기 전이면 늦지 않을 것인데. 아. 문득 눈 앞이 흐려졌다. 동시에 눈가도 뜨끈해지는게 느껴져 두루마기 소매로 쓱 문지르곤. 크게 숨 골랐다. 그런 다음 하 사감 무릎에- 앉았다. 꽤나 조심스럽게 앉아 중얼댔다.
하 사감 말하는게 무언지 저도 알지만 괜히 그리 툴툴댔다. 다시 일어나버릴까보다. 그럴 마음 전혀 없으면서 또 괜히 그런 생각 해보고. 한숨 쉬는 것 보곤 흘기듯 눈 가늘게 좁혔다 떴다. 그럼에도 얌전히 앉아있었지만은.
그래서 뭘 주려나 했는데 대뜸 넘겨줄테니 삼키란다. 넘겨? 삼켜? 질문 해야 하는 입은 가까이 온 하 사감에 의해 가려졌다. 정확히는 하 사감의 입이었다. 난데없는 입맞춤 하며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 것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켰다. 동그란 구슬 같은 것 두 개였는데. 구슬? 심장? 연이은 의문의 상황에 순간 멍한 얼굴로 하 사감 보니 웃고 있었다. 그 얼굴 보자 저도 모르게 얼굴 확 붉어져 고개 홱 돌리고 종알댔다.
"그- 그런 거 이렇게 막 주고 그래도 되는 거요?! 역린 뺏기더니 이제 그냥 막 주고 그러네. 뭔지 말이나 해줘야지. 아 긴장한 거 아니거든요!"
결국은 또 투덜대며 떨리던 손에 힘 꾹 주었다. 떨림은 그걸로 막았는데 얼굴 홧홧한 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보이지 않게 필사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 고작이었다. 살면서 상황이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흐른 적은 많지만 이 정도로 저를 당혹스럽게 만든 적은 없었다! 으아아아.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 지르고 눈만 힐끔 굴려 하 사감 보았다. 어쩌다 꿰였냐느니 중얼대길래 질세라 저도 대꾸했다.
"어쩌다 꿰이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이왕 저지른 거. 고백하고 차이고 깔끔히 정리할랬더니 괜히 미련 철철 넘치게 해..."
흥.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가볍게 숨 내쉬며 눈도 돌려버린다. 심경이 복잡했지만 돌이키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었다. 엎질러진 물이라면 수습이라도 잘 해야지. 히유. 한숨인지 뭔지 모를 소리 작게 내고. 뭔가 원하듯 하 사감의 옷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래서 방금 준 거 뭐에요? 내가 가지고 있으면 뭐 좋나? 수명이 늘어난다던지."
냉정히 생각해보면 가장 큰 문제였다. 수명. 안 그래도 짧은 수명인데 저는 단명할 팔자도 있었다. 그 구슬이 뭔지 몰라도 수명이나 늘려줬음 좋겠다. 아예 하 사감과 비슷해지면 좋을 텐데. 현실적인 생각 조금 했더니 얼굴 금방 식을 듯 했다. 덕분에 무슨 얘기든 흘리지 않고 들을 수 있을 듯 했고.
여의주면 그 여의주? 뱀이 용 되기 위해 만든댔나 하는 그거? 그런 터무니없는 물건을 그렇게 홀랑 넘겨준다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어이 없는 표정 지으면서도 쓰다듬 얌전히 받았다. 처음엔 무슨 목각 마냥 어색하더니 이제는 좀 자연스러운 거 같기도 하네. 뭐. 나쁘지 않다 이거다.
"그런 뭐가 있을 지도 모르는 걸 잘도 주네요. 내가 인간도 신수도 뭣도 아닌 것이 되면 어쩌려고."
하 사감은 섞이긴 했어도 신수의 격은 그대로이니. 아. 부디 그런 재미 없는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슬쩍 제 배 쓸어내리다가 다시금 목소리 크게 내버렸다. 제 말에 하 사감 놀리듯 말한 탓이다.
"당ㅅ. 그. 댁이 그 동안 누누히 인간 싫다느니 짜증난다느니 했었으니까 그렇잖아요! 다른 사감님들도 그렇고 인간을 그저 그런 관찰 대상 같은 걸로 보는데 무슨 기대를 해. 원래 끝까지 말할 생각 없었네요! 요즘 하도 뒤숭숭하니까 거기에 영향 받아서 깜빡 실수한 거지. 내뱉었다고 홀랑 그러자고 한 쪽도 어이없네요-"
메롱이다. 어이없어 하는 하 사감 향해 혀 길게 빼물었다 쏙 집어넣었다. 이러고 있으니 술 뜯으러 올 때랑 별반 차이가 없는데. 번개에 콩 볶아먹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려서 그런가보다. 이래도 되는 건가? 에라 모르겠다. 괜히 제 머리카락 빙글빙글 꼬며 시선 이리저리 굴리다가. 도시락 먹여달라는 말에 입술 비죽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순순히 일어나 도시락 가지러 갔지만.
"한게 뭐 있다고 지친대요. 이거 들고 온 건 난데. 아. 혹시 신수들 사이에서 반려라는 거 뭐 시종 같은 의미는 아니죠? 그럼 이거 무르자고 할 거야."
인간과 같은 의미로 반려라는 말을 쓰는지- 애초에 신수들도 별개의 반려를 두는지? 생각해보니 궁금한게 한둘이 아니다. 큰일났네. 좀 알아보고 저지를 걸 그랬나. 이미 늦었지만.
붉은 보자기 열어보니 도시락통 제일 위에 나무 젓가락 두 개가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딱 두 개. 마치 둘이 먹을 걸 예상한 듯한 갯수에 잠시 뺨 긁적였다. 먹여달랬으니 하나면 되겠지. 젓가락 하나 들고 제일 윗칸만 똑 떼어 들고 다시 하 사감에게 돌아왔다. 이번엔 머뭇거리지 않고 그의 무릎에 앉아 젓가락으로 통에 든 음식 집어 내밀었다.
"자요."
온갖 고기 요리로 꽉 찬 통에서 먹음직스런 떡갈비 집어 내미는데 뭐랄까- 딱히 귀염성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젓가락 들고서 멀뚱한 얼굴에 얼른 먹으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
"역린 뿐이겠나요. 아무튼 수명 느는 거면 환영이네요. 이왕이면 같은 날 눈 감을 만치?"
가능할 지 모르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엉결겁에 이뤄진 거라 해도. 먼저 떠날 생각 티끌 만큼도 없으니.
"흥. 괜히 마음 졸이게 만들긴. 안 그래도 잘 사리고 다니네요. 요전에도 수업 조심하래서 말 잘 들었는 걸."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 하고 있었지만 짧은 경고에 묘한 불안감 피어올랐다. 굳이 당분간이란 건 꼭 무슨 일 일어날 조짐 아닌가. 정말이지- 이 난리통은 언제야 끝날까. 보이지 않는 앞날은 그저 불안하여 잠시 밀어두기로 한다. 그나저나 신수도 반려를 두긴 두는- 잠깐. 여럿 두는 신수도 있다고?
"...그러기만 해 봐..."
도시락 챙기며 혼자 작게 중얼거리는데 일순 분위기 스산해진다. 그러다 제가 던진 말이 웃겼는지 웃는 소리 들리길래 힐끔 봤다. 뭐가 재밌다고 웃는담. 만날 미간 구기고 다니더니 지금은 저렇게 잘만 웃어. 왠지 얄밉다. 그러니 표정 뚱할 수 밖에 없다. 하 사감이 도시락 가리키며 짝이랄 땐 무슨 소리냔 듯 고개 갸웃 기울였다. 별 것일까 싶어 그냥 음식이나 집어줬더니 이번엔 귀염성이 없다나. 멀뚱하던 얼굴에 뺨 오동통하니 부풀어오른다. 불만으로 양 볼 가득 채워 못난 얼굴로 하 사감 째려보다가 칫. 하고 다시 뺨 홀쪽해졌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야 대뜸 중간 다 잘라먹고 그래 반려 되어주마 하고 이래 됐는데 불만이 없겠어요? 물론 내가 먼저 꺼낸 말이지만. 그래도 달랑 여의주 주고 끝인게 뭐냐구."
조금 해석을 곁들이자면- 인간들 하는 것 마냥 표현하는 것 없어 서운하다 이 소리렷다. 말했다시피 그리고 온화 저도 잘 알다시피 먼저 그리 들이댄게 저였지만은. 뭐. 여자의 심리가 그런 것이지 않나. 괜시리 삐딱하게 굴어 관심 끌고 싶어하는 그런 것 말이다. 온화도 그리 망나니처럼 굴고 다녔어도 결국 그 나이 또래 여자애인 것이다. 잠시 입 다물고 젓가락으로 애꿎은 음식 쿡쿡 찌르다가 슬금 말 꺼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였어요? 나를 그- 런? 눈으로 본게. 어. 음. 신수에게 반려라는 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맞- 긴 해요?"
평소의 온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거 저거 내숭이 하늘섬을 위아래로 뚫겠다며 기겁할 모습이지 않았을까. 아무 죄 없는 도시락 괴롭히다가 허공에 젓가락 휘적이고 또 힐끔 하 사감 본다. 어렵게 어렵게 목 끝까지 차오른 말 입 밖으로 내어본다.
"나- 좋아, 해요? 그. 반려적인 의미로?"
이미 일 다 치러놓고서 무엇을 묻는가 싶겠지만. 여자란 그런 생물이다. 무엇을 주든 단 한 마디 말을 간절히 바랄 때도 있는. 어쩌면 조금 많이 치사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얌전히는 있었으니까요.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생각하던 그는 일순, 스산해진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 내 심장과 다름 없는 걸 줬는데, 무엇을 그리 원하는지. 그렇게 따지면, 너도 그리 망나니처럼 이리저리 활개치지 않았나. 나에게 반려가 되어달라 한 것도 단순히 억겁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역린을 갖고자 한 거냐. 설마? '
夏사감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바를 인간이 아닌 것이 전부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작게 내쉬었습니다.
' 시작은 내 역린에서부터였는지도 모르지. 본능적으로 그 주인에겐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니까. 일종의 생존 본능일수도 있고. 그리고 착실하게 내 욕구를 잘 채워주지 않았냐. '
정확하겐 자신의 반절이 지닌 욕구였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던 夏사감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기댔습니다.
' 그리고 네가 기억을 못할 때도 나에게 왔지. 그 때 다른 학생들과 같이 가지 않고 내 옆에서 계속 있더군. 겁이 없는 건지 오만한 건지. ' ' 반려적인 의미로 소중하다. 네가 올 때마다 내가 왜 너에게 주의할 것을 일러줬고 내 형제들이 네 목숨을 노릴 때마다 거기서 신경끄도록 방향을 틀었겠냐. 이번만 해도, 누이와 형의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얼마나....! .... 나는 신수지만 성격이 좋지 못해. 마음도 넓지 않지. '
현저히 얌전해진 夏사감이 말했습니다. 그는 문득, 무언갈 생각하듯 입을 다물었다가 턱짓으로 도시락을 가리켰습니다. 더 달라는 의미인 듯 합니다.
하 사감이 그저 역린 갖기 위해 반려가 되어달라 한 것이냐 물었을 때. 눈 옆으로 굴리고 시선 피한 건 괜히 해본 짓이었다. 단순히 그것 뿐일 리가 없잖은가. 저도 여럿 할 말 있지만 일단 먼저 듣고 나서 말하려고 조용히 있었다.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쭉 듣고보니 어쩐지 제가 더 부끄럽다. 그냥 말할 땐 빙빙 돌려가면서 직언으로 꽂을 땐 확실히 꽂는 그의 화법이 아직은 적응이 안 된달까. 기껏 식은 얼굴 은은히 붉어져선 하 사감이 여럿 두면 어쩌구 했을 때 삐죽한 반응 내보였다.
"흥이다! 걱정할 거 없네요. 이래뵈도 정조는 지켜가면서 놀았는 걸. 입맞춤도 좀 전에 한게... 처음이고. 아무튼 그건 걱정 마요. 놀이도 이제 그만둘 거에요."
정착할 수 없으니 허랑방탕하게 굴었던 것인데 안정할 곳 생긴 지금 더는 그리 굴 필요 없어졌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할까. 기묘한 감각이었다. 잠시라도 이리 편안해진 적 없었기에. ...그래서인가? 그런가 봐. 이제야 알 것 같다. 제법 풀린 얼굴 하고 조잘조잘 얘기했다.
"나도 처음엔 그저 어떻게든 나를 위해 이용할 수 없을까 싶었는데. 역린 때문이라도 대해주는 모습에 정이 시작된 거 같네요. 이상하지. 인간 아닌 꼴도 보고. 죽을 만큼의 위협도 느꼈는데. 당신 품이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당신에게. 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제 팔자에 대한 자포자기가 불러온 이상이라고 여겼으나 일전 아회 앞에서 꼴사납게 무너졌던 것을 계기로 제가 진정 원하는 것 무엇인지 깨달았다. 줄곧 무시하고 외면해왔으나 한 번 알아버리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생각과 고민 꽤 많이 하긴 했다. 오늘 갑자기 실수 삐끗 해버려서 그렇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래도 좋을 만큼 좋은 거였더라. 수명 늘리고 싶었던 것도 역린 놓기 싫은 것도 다- 그래서였네요. 이래뵈도 욕심 엄청 커서 하나 아닌 전부를 갖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 하거든. 헌데 나도 참. 어쩌다 이런 신수한테 꿰여선."
키득키득. 그제야 좀 웃는 얼굴 드러내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잠시 웃곤 살짝 가까이 다가가 그의 뺨에 입맞춤 하려 했다. 망나니처럼 굴던 모습과 정 반대로 얌전하고 가볍게. 그리고 젓가락으로 음식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자. 낭군님. 아-"
얘기 충분히 들어 기분 제법 좋아졌는지 아까의 귀염성 없는 모습은 싹 사라지고 애교 띈 목소리로 낯간지러운 호칭까지 붙인다. 정말이지.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학당 들어와 여태 망나니로 불렸던 온화가 이리도 내숭쟁이였을 줄은.
예상 이상으로 적극적인 반응에 그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양 눈썹 미미하게 오르며 눈을 키운다. 조금은 놀란 것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친구 하자며 다가오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대략적으로 파악한 늘봄의 행동양상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저건 오기인가?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그 말에는 동의했다. 인간관계는 어느 수준을 유지해야 편하고 친구라 해도 둘 정도밖에 없는 유현에게는 마다할 이유도 없었으니. 하지만 친구가 많으면 재미가 있나? 하물며 많아서 무조건적으로 좋기라도 한가? 그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제 성격 어떠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살갑고 다정할 수 없는 인간이라 이 말이다. 늘봄에게 좋은 인상 심어주고자 친절하게 굴었다지만 조금은 이상했을 텐데. 아니, 애당초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어울리고자 하는 동기를 알 수 없었다. 세상 사람 모두 저와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제 기준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상대에게 혹시나 어떤 목적이라도 있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러나 화유현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로부터 선뜻 다가오는 사람에게 약해지곤 했다. 특정 방면에서는 주관 모호한 기질이라 밀어붙이면 휘말리고 마는 것이 당연했다. 끝은 좋지 않았다지만 어렸을 적 잠깐 저를 챙겨 주었던 '누나'가 그랬고, 처음 만났을 적 온화 또한 꼭 그랬었다. 심지어 늘봄은 그 둘보다도 기분이며 태도 변화무쌍하니 따라잡기까지 힘들다. 상대편 응시하던 눈길도 의지를 불태우는 눈 마주하자 잠시 허공 어딘가로 도망간다. 누가 보아도 고민하는 기미 역력하게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결국 순순히 고개 끄덕였다. 못 이겨서 마지못해 내린 결정은 아니다. 늘봄의 말에 틀린 데 없고 거절해야 할 마땅한 이유도 명분도 없었으니. ……아니, 누가 친구 사귀는 데 이렇게까지 명분 실리를 따진담? 이 인간 친구 없는 이유 뻔히 보인다.
"그래요. 절친한 사이는 아닌 '그냥 친구' 하기로 하죠. 막역지우라 해도 좋을 친구들은 저와 최소한 10년은 알고 지냈으니, 반말 듣기는 여간 쉽지 않겠네요."
마무리는 참혹한 사교 능력 돋보이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곧장 눈치챌 수 있었다면 그도 친구가 열 명은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는 이미 제 어폐보다는 완전히 다른 주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요청을 받아서 친구가 된 건 아마 처음인데, 바라는 것 있으신가요?"
이 인간, 친구를 뭐라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그에게도 변명할 거리─유현은 변명할 생각 없었지만─는 있었다. 그는 친구가 둘밖에 없다……. 온화나 암호의 경우엔 긴 기간 어울리며 자연스레 친구라 여겨도 좋을 관계가 되어 있었을 뿐이라, 오늘부터 친구 하자며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이는 처음이었다. 늘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친구하자는 실수 우스워하기엔 유현도 헛발질 상당히 만만찮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북부에 왔어도 속은 여전히 뒤숭숭하다. 그래, 최근 뒤숭숭한 일이 너무나도 많이 생겼다. 옳지 못한 꿈자리, 격한 싸움, 감정 소모와 누군가를 더러운 집안싸움에 끌어들이는 행동, 그리고 끈적하게 느껴지던 악의와 북부 사람은 덕을 쌓을 수 없노라 선을 긋는 듯하던 현실까지. 세상은 공교롭게도 단 하나의 길을 가리키며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고, 아회라는 인물은 자신이 선택할 때가 다가왔음을 익히 직감했다.
"이리 길을 알려주는 이유 또한 있겠지."
자리를 떠나는 걸음이 가볍고 여전히 눈보라는 매서웠기 때문일까, 소리도, 족적도 모두 묻히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유령이 배회하는 것과 같았다. 그 사이에서 작은 휘파람 소리를 뒤로 형체를 잃은 무언가 쓰러지긴 했지만 더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학당으로 돌아와 사감의 방으로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여러 사람을 마주치고,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학우의 시비를 무시해야 한다는 점이 있으나 늘 하던 일이거니와 오늘은 유달리 수월하였다. 평소 자신을 자주 건드리던 제사장 가문의 학우도 아회를 마주하곤 무언가 얘기하기 전부터 저번 싸움으로 부러졌던 코를 이젠 뭉개줘야 정신을 차리겠냐는 무언의 손짓을 이해한 듯 시선을 피했고, 엽 씨 가문의 여식은 복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다 어깨에 쌓인 눈더미를 보고 나설 때가 아님을 판단했는지 살그머니 자리를 떠났으며, 땅신령은 데굴거리며 별사탕을 갉아먹고 있을 것이 뻔했다. 지팡이가 멈춘다. 그리고 아회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지난번 청했던 대화를 하고자 찾아뵈었습니다. 늦긴 하였지만 여유가 나신다면 담소라도 나누지요."
이전에 하 사감 제압한답시고 쥐어팼던 날을 뜻하는 듯하다. 또한 물을 것이 있었으니 문 열지 아니한다면 기다렸을 터이며, 기다림도 통하지 않는다면 문 부수고 들어갈 생각 또한 가득하였으니 필히 적룡의 좋은 표본이라.
사실 윤하는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뿐 자기 자신의 피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 흑룡의 포용심이냐! 아니면 본인의 증오냐! 이게 지금 절묘한 균형 상태란 말이지. 사실 포용심이 이겨도 그것은 꽤나 뒤틀린 상태라서 이러든저러든 가문 사람들에겐 결과가 심히 안좋겠지만 ...
있어요~!!!XD 주말은 3명 이상 체크해야 진행 가능해요! 금요일 진행은 조금 생각해봐야하는게...... 수업이벤트나 개인진행을 만들어도 다들 현생에 치이셔서 오후~저녁 쯔음부터 오시더라구요.. 그럼 시간 내에 못하는 일이 발생해버려서 잠식간은 금요일은 조금 고민 단계입니다!
작은 소란이라도 있는지 안이 시끌시끌하다. 대화라도 하는 건가? 그래서 할 말을 멈출 것 같냐면 그건 또 아니다마는. 어찌, 문을 부서야 할까. 아회는 지팡이 위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얌전히 기다리다 허락이 떨어지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문이 열렸을 적 느껴진 다른 인기척에 누구인지 가늠하던 아회는 먹지 말고, 라는 언질에서 손가락 하나를 슥 들어올려 지팡이를 툭 건드렸다.
먹지 말고, 라. 거기다 막내니 뭐니 하며 처음 듣는 목소리가 귀를 찌르니 부정적인 생각부터 머리를 잠식하고 본다. 또 학당에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군가 죽게 된다면? 그게 또 누군가와 싸울 명분이 되면? 방해하는 자가 있나? 아마 형님이겠지……. 뿌리 깊은 의심과 피해의식이 함께 스멀스멀 기어오던 중, 아회는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생각을 접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뒤 아회는 단안경을 고쳐 쓰더니 손에 들린 술을 보며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권유만 안 하면 됐으니. 하고자 했던 말이라면 많다. 대체 당신과 동 사감은 뭐길래 인간이니 뭐니를 운운하는가, 당신이 말한 태초의 어머니는 어렴풋이 알겠으나 정확히 무엇인가, 학당이 안전하긴 한 것인가…….
"일전에 하셨던, 적룡이 신경 쓰지 않을거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지만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적룡이 일전에 하 사감을 별것도 아닌 학생들에게 얻어터졌던 상황을 보고도 탄식하지 않을 거라고? 적룡의 기개는 어디에 있는지가 급선무였다. 그 이후에 간곡히 하고자 하는 말이 있으니. ……이제 남은 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협박이 아니라고, 자신과 눈높이까지 맞춰주며 다정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그 미안하다는 표정은 달리 이물스럽게 느껴지는지라, 지금 놀란 감정에 아무런 위로조차 되지 못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궁기임을 숨기는 것. 여전히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궁기를 바라보던 연은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로 묻는다.
"밖에서? 무엇을?"
대체 자신에게 사감들의 비밀을 알려주려고 하는 건 왜인지. 그 정보들로 하여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은 당신의 의도를 알 수가 없으니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느낀다.
자리에 앉는 걸음은 조용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을 적 어깨 위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은 어느덧 녹기 시작해 옷깃을 적시나 두루마기에 팔을 꿴 것이 아니라 걸쳤기 때문인지 속의 한복까지 젖지는 않았다. 용은 고고하여 인간사에 관심이 없고, 네 마리 다 독기를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라.
"독기, 라."
그 사실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든다. 배배 꼬인 성격 탓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못 되는 존재임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용만 당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작 지고하신 용이란 것들은 독기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니 남은 희망마저 삽시간에 식어버리는 느낌이다. 애초에 그것을 희망이라 정할 수 있겠냐마는 어찌 되었든.
"인간에게 신경을 쓸 거라곤 생각도 안 했습니다. 신도 애증하는 존재를 그 휘하의 미물들이 어찌 품겠습니까? 구석에 적당히 처박힌 먼지처럼 보는 것이 이롭지요."
더 말을 해? 말아? 잠시 고민하듯 무릎 위에 올려둔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더듬듯 매만진다. 어차피 북부 사람이다. 신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미움부터 받는데, 저 사감에게 어떤 취급을 받든 두렵지는 않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이 다음의 일이다. 아직 자신은 학생이고, 자신의 취급을 정하며 훗날 거사를 위한 길을 막아세운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감당할 수 없어도 저지르고 봐야 한다.
"본디 사감님의 대답만 듣고 가고자 하였으나 현재 질문에 대하여 제법 흥미가 생기는 군요. 기숙사에 제 이름까지 내건 주제에 정작 이득에만 집착하여 관리는 하지 않는 존재라……."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길을 확정짓지 않으면 사냥 당한다. 이제 제대로 길 걸을 터인데 방해물이 남으면 안 된다. 지금은 증오가 필요했다. 더 많은 증오가. 이 모든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끝내 그 길이 온전함을 합리화할 시간이. 내가 누구인지 직시해야 한다……. 아회 당신의 속을, 혹은 누군가의 속을 긁어버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이 덤덤하게 입 벙긋거린다.
"어찌…… 천하의 고매한 용도 결국 실리에 집착하는 인간과 하등 다를 바가 없나 봅니다. 한가지 청이라도 간곡히 빌고자 하였는데 안타깝군요."
고민하는 기색이 짙게 서린 채 저 멀리로 돌아간 각자 색깔 다른 한 쌍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늘봄은 이윽고 몸짓으로 돌아온 긍정의 답변에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아주 밝게 웃었다. 정말 훤히 보이는 인간이다. 감정 숨기는 법도 모르고 그럴 이유도 모른다는 듯 여과없이 드러내는 태도가 안일하달 만큼 솔직하다. 때문에 뒤이어진 발언에는 또다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지만.
"흥... 그치만 또 모르지? 어릴 때는 10년이지만 다 커서는 더 짧을 수도 있잖아?"
이번에는 정말 괜한 오기를 한번 부려본다. 어린애 같은 짓을 마구마구 해 대고 있지만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늘봄의 정신은 유현이 막역지우라고 부르는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게 꽂힌다. 음, 누군지는 몰라도 부럽습니다. 매우 부럽네요. 이렇게 부러워 할 일인가 싶지만 어릴적 친구라는 게 없다시피 한 늘봄에겐 부럽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아이 늘봄에게 친구는 베틀과 실과 천과 장식 구슬과 인형이었고 살아있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이제 만날 엄두도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현의 10년간 이어져 왔다는 우정의 길이가 오랜 노력을 들여 잘 짠 비단처럼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나 그래도 곁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은 사람이거든? 곧 '그냥 친구'에서 '특별히 재밌는 친구'정도로 승급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 그럴 걸? 두고 봐!"
몸소 광대라도 되어 보이겠다는 말일까. 짐짓 허리에 손을 턱 얹고 당당하게 선포하는 모습이 황당하게도 보인다. 여기까지만 봐도 유현과 늘봄의 성격 차는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이 우정, 괜찮을까. 하지만 괜찮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원래 사람은 사람끼리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도담도담 살아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소 예상 기간이 10년이긴 하지만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인생은 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건 눈 앞의 가인에게도 다를 바 없겠지!
"응? 딱히 바라는 게 있어서 친구 하자고 한 건 아닌데... 으으으음, 굳이굳이 따지자면 마주칠 때 인사 해 주기! 선물 주면 받아주기! 가끔 같이 시간 보내기~ 정도?"
아무리 '그냥 친구'라 할지라도 이름만 친구인 건 싫으니까,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되겠지? 아니아니, 요구랄 것도 없지 않나? 원래 친구들은 이 정도 하잖아? 아닌가... 적절한 거리감을 찾기 어렵다. 의외로—의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늘봄 또한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늘봄이 선택한 것은 사교 활동의 욕망에 따른 무한 돌진이다. 부담스럽다고 해도 이미 친구를 수락한 이상 어쩔 수 없다.
해가 서른 번 뜨고 지는 동안 매일매일이 바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의욕이 너무 넘쳐서 일향이 되려 쉬라고 권할 정도였다. 종자가 주인에게 되려 쉬라는 말을 듣는다니. 다른 가문이었다면 종자 실격이겠지만 류 가에선 그저 평범한 걱정에 불과했다. 말이 주종이지 거의 의형제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조금 자제하며 제대로 휴식도 취했다. 또 걱정하게 하면 안 되니 말이다.
그 사이 류 가에 대해 몰랐던 것도 새로이 여럿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궁금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일향에게 물을 수 있었던 것. 그건 류 가에서 죄인의 취급에 대해서였다. 모든 죄인을 나처럼 데려와 일꾼으로 쓰느냐 물으니. 일향은 웃으며 전부 다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죄인이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잡는 것 데려오는 것 대하는 것 모두 다르지요. 당신은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않아 최소한의 구속으로 데려온 것이고. 제 물음에 새 삶을 살겠다 했으니 지금 이리 있을 수 있는 것이네요."
그렇다면 나와 같지 않은 부류도 있다는 얘기구나. 아. 죄를 지은 자라면 다 비슷할까.
이어서 그 붉은 장속들에 대해 물었다. 일향은 그것 역시 흔쾌히 답해주었다.
"당신을 데려온 이들은 류 가에서 연선화홍이라 부르는 이들이에요. 류 가는 요괴잡이가 근본인 집안이란 것은 전에 얘기 했지요? 연선화홍은 평상시 수렵 위주로 활동하다가 죄인 제보를 받으면 곧장 반을 꾸려 죄인 확보에 나선답니다. 아무래도 죄인이다보니 거칠게 나오거나 도망치는 이들도 있어 가끔 험한 꼴을 보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살려서 구속하지요. 그리고 이곳으로 데려와 일단 지하 감옥에 가둡니다. 가둔 뒤 머리가 식을 시간을 얼마간 주고. 죄인에 맞는 적임자가 내려가 대면하여 제가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하고.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죄인의 처우가 달라지네요."
아하. 내 때가 별난게 아니라 그게 보통이었구나.
대강의 구조가 이해되어 고개 끄덕이니 일향 덧붙였다. 그 말에 조금 소름 쭈뼛 돋아버렸다.
"참고로 묻는 것은 처음 딱 한 번 뿐이니. 그 때 끝까지 거절했으면 당신도 지하에 갇혔을 것이랍니다."
끝까지 거절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것 말고도 물은 것 있지만 거진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현재 류 가의 구성에 대해서라던가. 가주를 비롯한 인적 관계도나 기타 등등. 일단 종자로서 알아야 할 것들은 들어뒀다.
여차저차한 일들이 지나며 어느덧 흐른 나날에 새삼스럽게 시간 참 빠르다고 느끼던 어느 날. 그 날은 새벽 일찍부터 집 안이 소란스러웠다. 아. 불온한 일로 소란한 건 아니었다. 소란을 궁금히 여기는 내게 일향이 친절히 알려주었다.
"오늘은 류 가 만의 작은 잔치가 있는 날이에요. 이 날은 가게도 가마도 닫고 정 급한게 아니면 하던 일도 내려놓고서 온 집안 사람들이 다같이 준비를 하지요."
그 말인 즉. 나도 평소의 저주 연구와 종자 노릇 대신 잔치 준비를 도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매일 보는 일향과 연구반 사람들 외에는 아직 낯가람이 좀 있던 나였지만. 일향은 오늘이 모두와 조금 더 나아지기에 좋은 날일 거라며 나와 함께 잔치 준비를 도왔다. 정원. 부엌. 마당. 한 곳에만 있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 돕다보니. 오전 만으로도 거한 잔치상과 놀자판이 류 가 마당에 펄쳐졌다. 늘 뭔가를 준비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는데. 혼자가 아니니 이런 것도 즐겁구나 느껴졌다. 묘한 성취감에 들떠있는 나에게 일향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고생한 만큼 먹고 마시며 놀 일만 남았네요. 그 전에 조금 쉬다 오셔도 괜찮아요. 저는 잠시 저 앞에 나가 제 동생들 마중을 갔다 올 테니."
동생. 아. 아직 학당에 다니는 동생이 다섯이나 있다고 했었지.
같이 고생했는데 혼자 보내기도 좀 그래서 같이 가겠다고 하니. 일향은 웃는 얼굴로 괜찮으니 조금이라도 쉬었다 나오라고 해주었다. 세상 어느 주인이 종자를 이리 편하게 대해줄까. 그 점이 고맙기도 하고. 직접 마중 나가는 걸 보면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알겠다고 하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가니 일향이 준비해 준 새 옷이 있어 새로이 감동 받기도 했다.
그 날의 잔치는 오찬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오늘을 위한 옷 멀끔히 차려입고 나와 모두 함께 차린 잔치상에 앉았다. 일향은 가주 가까이에 앉고 나는 내가 속한 연구반과 함께였다. 따로 정해준 건 아니지만 이럴 땐 아무래도 평소에 가까이 하는 이들끼리 뭉치는 법이었다. 이 잔치가 처음인 나와 달리 익숙한 연구반 사람들은 이게 그렇게 재밌다며 나도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놀라고 했다. 모두가 그리 들떠있으니 어쩐지 나도 어깨가 들썩였다. 오늘내일 걱정 없이 그저 즐겁던 학당 다닐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 앉는데도 한참 걸려 전원 한 자리씩 차지하고 하니. 일향의 아버지이자 현재 류 가의 가주인 류 온일이 상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루한 일장연설을 할까 싶었으나. 온일은 잔을 높이 들며 마당이 울릴 만치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이 얼마나 마시고 놀기에 좋은 날인가! 내 식구들이여. 오늘은 낮도 없고 밤도 없는 날이다. 술 솟는 화수분에 바닥 찍고 싹싹 긁어 구멍까지 내어보자꾸나!"
가문의 가주가 하기엔 너무나 호탕한 언사였으나. 그 거침없다는 점이 여기 류 가의 가주다운 모습이라 느껴졌다. 가주가 저러하니 속한 이들도 그리 시원털털 한가보다.
온일의 언사만큼이나 시원하게 잔 비우는 것을 신호로 모두 왁자지껄 떠들며 먹고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연구반과 주로 얘기하며 조금씩 홀짝였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여러 사람들이 잔 들고 이 상 저 상 옮겨다니며 고루고루 말을 텄다. 나는 아직 그것까진 어려워서 처음 앉은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해도 재밌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장 먼저 온 건 덩치 큰 사내와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어이 형씨! 일향 도령의 수족 되었다믄서? 그려 잘 생각했어- 거 사연 들어보니 안타깝드만!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보게. 이 집 좋네- 맡은 일만 열심히 해도 한 사람 분 인정해주니 말일세!" "형님. 너무 시끄럽습니다. 아무튼 형씨도 식구 되었으니 잘 지내봅시다."
살갑게 말 걸어오는 통에 순간 당황했지만. 알고보니 이전 날 나를 구속하러 왔던 그 붉은 장속들- 연선화홍의 사람들이었다. 덩치 큰 사내가 류 가 사람이고 동행한 사내는 나와 같은 죄인이었으나 류 가에서의 삶을 택한 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이미 다 아는 듯 앞으로 잘 살아보자 여기서 잘 지내보자며 술 한 잔씩 나누었다. 붉은 장속 차림일 때는 위압감이 컸는데. 이리 보니 그저 인상이 좀 강하고 성격이 개성적인 호쾌한 인물들이었다. 나중에 그들과 차라도 한 잔 해볼까. 술기운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따라주고 간 술 홀짝이고 있으니. 이번엔 일향이 동생들과 함께 왔다.
"즐기고 있나요? 모처럼 저희 남매가 다 모였으니 당신에게 인사 시켜주고 싶어서요."
술냄새 살짝 나지만 전혀 취한 기색 없는 일향이 같이 온 동생들을 한 명 한 명 알려주었다. 나이 순으로 수일, 온화, 예온, 온령과 일령 이었다. 일향도 그렇지만 동생들도 하나같이 미인들이라. 여섯이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 남매들끼리 갖춰입은 예복이 그야말로 선녀의 날개옷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내가 넋을 놓고 아이들을 본 것으로도 모자라 위와 같은 감상을 입 밖으로 흘려버려서 여섯 남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 가장 큰 아가씨- 온화라는 아가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향이 오라비 아니랄까봐 별난 사람을 들였구려. 듣자하니 본래 가진 이름도 버려서 형씨요 아무개요 애들한텐 울보 아저씨라 불린다지?"
아. 그랬다. 이 때의 나는 내 지난 과거가 끔찍이도 싫어 성도 이름도 버리고 적당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걸 언급하는 온화 아가씨의 말에 나는 어쩐지 머쓱해져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러자 왠 손이 다가와 내 턱을 쥐어들었는데. 그렇게 든 내 얼굴 앞에 눈부시리만치 희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온화 아가씨의 얼굴 있었다. 그녀는 붉은 눈 휘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처럼 별난 사람이 내 취향이라 말일세. 어떤가. 새로운 이름 내려줄 테니 내 종자가 되는 것은?"
어. 엇. 아니 그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른 반응하지 못 하고 얼굴 벌개져선 버벅대었다. 그러자 일향과 수일 도령이 같이 온화 아가씨 잡아 뒤로 끌어냈다. 일향은 순진한 사람 놀리지 말라며 웃고. 수일 도령은 기지배 나이가 찼으면 좀 조신히 굴라며 화를 냈다. 거기에 온화 아가씨 지지 않고 무어라 했는데. 어. 어... 이 부분은 술기운에 제대로 못 들은 걸로 하자. 아무튼 큰 아이들이 떨어져 옥신각신 하는 동안 작은 아이 셋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특히 령 쌍둥이는 나와 같은 흑룡이라길래 조금 더 반가운 것도 있었다. 내게도 동생이 있었다면 형처럼 굴지 않고 잘 챙겨주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내 대용품이 되었을지 모르니 없는 편이 낫다. 대신 이곳 아이들이나 잘 챙겨주자고 생각하며 술잔 기울였다. 잠시 지나니 일향도 남매들을 데리고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오찬을 겸한 먹고 마시는 장으로 시작한 오후는 곧 놀이의 장으로 바뀌었다. 때가 무르익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가운데를 크게 비우더니. 제각기 악기를 든 사람들이 그 가운데에 정렬했다. 따로 불러 온 악사들이 아닌 방금 전까지 마시고 놀던 사람들이었다. 어안이 벙벙해 보고 있으니 맑게 현 튕기는 소리 신호로 경쾌한 마당놀이 곡조가 펼쳐졌다. 아까 잘 보라던게 이런 것인가 보다. 적당한 취기에 어깨 들썩이는 곡조 더해지니 세상 천국이 따로 있을까.
음악으로 듣는 귀를 즐겁게 한 후에는 춤으로 보는 눈을 즐겁게 하는 순서였다. 반투명한 베일로 얼굴 가린 여러 처자들이 희고 붉은 무복에 나실나실한 천 걸치고 나와 막 피어난 꽃마냥 살랑살랑 추는 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새빨간 긴 머리에 다른 처자처럼 머리장식을 달았지만 천 대신 검집 씌운 검 들고 있었다. 아. 온화 아가씨인가. 그런데 왠 검이지? 화무 아니었나 싶어 보고 있으니 좌우의 처자도 곧 잘 만든 모조 검을 들며 검무로 이어졌다. 온화 아가씨는 언행이 좀... 방정맞지만 저렇게 춤 추는 모습 보니 아가씨는 아가씨구나 싶다. 베일 살랑일 적 눈 마주치니 찡긋 눈짓 하는데. 음. 수일 도령 말처럼 조금 조신해주며 좋겠다...
성숙한 처자들의 춤 다음은 어린 아가들이 우르르 나와 꺄륵대며 재롱 부렸다. 가문에 사람이 많으니 아이들도 한 바구니다. 예쁜 꼬까옷 입은 아가들이 서로 손 잡고 기우뚱 뒤뚱 춤을 추고 서로 재밌어 하며 웃는 소리가 참 곱기도 하다. 열심히 준비한 재롱 마치자 상석에서 가주가 친히 일어나 아가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 알록달록 사탕 쥔 아가들 우다다다 놀러가버리면 한 시진 정도 더 먹고 마시고. 해가 저물기 전에 오후의 잔치는 마무리였다.
차릴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합심해서 차렸던 것 꾸몄던 것 치우고 나면 각자 쉬는 시간이었다. 나도 이 때는 잠시 방으로 돌아가 쉰다는게 그만 깜빡 잠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과음에 종일 일하고 놀고 했으니 어련할까. 그야말로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보니 늦은 저녁이었다.
>>560 원망...? 우리 말랑아기곰돌이에게 원망이란 감정이 있다고요? >:0 지켜보겠어요! 스포일러가 내용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와중에 신청서 보고 쒸익거리는 거 귀여워서...ㅋㅋㅋㅋ 응 이거 너무 귀엽다... 미소녀란 말에 기분 좋은 듯 웃는 것도 늘봄이의 성격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어서 사랑스러워요...🥹
>>563 류 씨 집안의 잔치, 온화의 검... 역린이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시점은 현재란 걸까요? :0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재라니...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연선화홍에 대한 정보도 흥미롭고, 언젠가 또 쓰일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유심히 보게 되는데 온화 요 요망한 아이...(쓰러져요!)
아회는 눈 내리는 날을 싫어했다. 싫어한다 직접 표한 적은 없으나, 꾸물거리는 하늘을 노려보듯 하다 미간을 옅게 구기곤 쯧, 혀를 차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신기하게도 눈이 쏟아졌으니, 귀신같이 알아채는 기감 덕분에 눈과 연 많은 북부 사람임을 증명하곤 했다. 마침 지금도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머잖아 눈이 내려 세상을 희게 뒤덮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미간을 옅게 구기고 혀를 차는 이 순간이, 곧 눈이 내릴 하늘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무영은 알기 때문이었다. 사시사철 겨울인 탓에 눈이 채 녹지 못해 바삭바삭하고 새하얀 백지 같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참 시선을 고정했을 때, 아회는 뒷짐을 졌다.
"영아."
무영은 손을 말아 쥐었다. 차라리 노성을 냈더라면 좋겠다. 찢어질 듯, 발음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존엄성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말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조로 친근하게 영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무영의 속을 뒤집어놓기 충분했다. 자신이 벌인 일엔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그저 그런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 심장이 벌렁거렸다.
"예." "내가 너를 어찌해야 좋을까?"
한줄기 흐르던 식은땀이 겨울바람에 차게 식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모두 얼려버리기로 유명한 겨울탑이니 땀도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얼굴과 등골의 모든 모공이 송연했다.
"나는 상심이 크단다. 내가 믿던 너는 중한 순간에 나타나지 않고,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이가 그 자리를 꿰차 나를 농락했으며, 그 마지막 순간까지 너는 한 번도 내 그림자에서 나오지 않았다. 믿었던 네게 배신 당한 느낌이니 충심을 의심하고 있지. 그리고 내가 끝없이 가라앉는구나."
무영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일전 류 씨 가문의 여식과 마찰이 있던 날, 부디 즐거웠길 바란단 말이 괜히 귓가에 맴돌았다. 자신에게도 했던 말은 아닐까, 그때 나서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드려야 할까?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일 때, 아회는 지팡이에 올린 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리더니, 이내 검지를 일정한 박자로 두들겼다.
"하지만 영아." "예!" "나는 네게 내가 느낀 감정을 전가하지 않을 터다. 그리하면 내 진작 너와 야반도주라도 했겠지 않으냐?" "……." "내 너를 소중히 생각하다마는, 네게 그럴만한 가치를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면 아직 많이 미숙하구나."
덤덤한 어조와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무영은 잔뜩 긴장해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몇 번이나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손가락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소리 때문도 있으나 그 의미가 더 날카롭게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미숙하다니, 팔 년을 모셨는데 여전히 자신은 처음 만났을 때의 불신을 지우지 못했다. 야반도주라니, 주군께서 그럴 정도로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단 반증이다. 동고동락하며 지옥에 같이 가자 한 분이 전가하지 않는다니!
"영아."
자신을 아예 쓸모가 없다 생각했으니 그야말로 끔찍한 말이다. 무영은 달달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려 애썼다. "예." 벌써 세 번째 대답이지만 세월은 팔 년이 지난 것만 같다. 아회는 그런 무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네게 세 가지의 기회를 주마."
무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란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번엔 자신이 불경한지도 감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회는 그런 무영을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폈다.
"첫째는 가문의 방식대로 너를 처분하는 것이고, 둘째는 너의 신의를 전적으로 믿는 것이며, 셋째는 네 진정 그림자가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무영의 말아 쥔 주먹이 가느다랗게 떨리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서 기회라지만 모두 개죽음이다! 하나는 남들 앞에서 명예까지 박탈 당하는 개죽음, 다른 하나는 자결, 남은 하나는…… 무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지금껏 가져온 모든 사상을 부정하고 스스로 때려 부수는 일. 그 셋의 공포를 익히 셈할 수 없으니, 차마 대답할 수 없는 난제만 가득했다.
무영의 눈이 커졌다. 천하의 제 주군이 두렵다고? 마른침을 삼키던 것도, 식은땀이 식어 덜덜 떨리던 몸도 순간 굳어버렸다. 제 주군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드디어 노성을 지르듯 존엄성을 찢기 위해 발톱을 드러냈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어느 날 잠들다 그대로 곱게 죽는 것도, 누군지도 모를 놈이 내 몸에 칼을 찔러 박는 순간을 상상하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나의 삶을 다른 무언가가 끝장내는 것 아니더냐! 영아, 역사에 적히는 위인들이 무어냐, 정절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하지만 이 난세에서는 더 지키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처음으로 빙빙 돌리지 않고 확실히 드러낸 속내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자신이 예상만 하던 것이, 설마 그러겠는가 생각하던 모든 것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새하얀 폭풍이 지천을 뒤덮겠지만, 무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점차 자신의 몸이 발끝부터 얼어붙어 마침내 동상이 된다고 해도.
"하여 나는 위인이 아닌 전란의 폭군이 되고 싶다. 나는 회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니요, 죽음을 수단으로 쓰고자 한다. 죽음 뒤의 길이 없다 한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일순이라도 난세를 호령하고자 한다. 그런데 너는."
아회는 눈을 떠 무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영 본인은 굳어버렸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몸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꾸물거리던 구름은 어느새 어둡게 하늘을 가려 세상이 어둡고 하얗다. 아회는 지팡이를 쥔 손이 새하얗게 될 때까지 힘을 주었다.
"정녕 그림자 속에 숨은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느냐? 아니, 너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으냐, 영아. 너는 내가 장난으로 죽음을 논하는 줄 아느냐, 이 북부에서 그런 장난을? 그 어떤 북부의 광인도 죽음을 장난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너 또한 그러리라 믿었다. 나는 죽고자 하여 모든 각오를 다졌다. 죽기 위해 살아왔고, 죽기 위해 마지막 한순간이라도 타오르고자 한다. 그런데 너는, 너 스스로 보기에 너 자신이 부끄럽지 않으냐?" "……."
깨달음을 얻은 듯 무영의 떨림이 멎었다. 그랬다. 주군을 위하겠노라, 목숨을 바치겠노라 했으나 제 주군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감히 헤아리지 않았다. 폭군이 아니라 유유자적 살아가길 바라고, 부디 마음의 짐을 덜기를, 그렇게 하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감히 소망했다.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호랑이를 우리에 가두고 길들이려 했으니 어찌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을까! 아회는 섬찟할 만큼 탁한 은색 눈으로 무영이 있는 곳을 정확히 응시했다.
"영아, 나는 악인이 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악인으로 몰아간다. 태어남이 죄인 녀석, 가문을 말아먹은 자, 북가에서 태어난 자, 무 준서의 아들, 궁기의 동생, MA의 악의를 받은 자라며 손가락을 겨누고 입방아를 찧는다. 가문의 영달을 위해 소임을 다 하려고 해도 악인이기에 가문을 이을 수 없고, 덕을 쌓아 등선하려 해도 악인이라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진정 악인이요 폭군 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제 주군은 길들일 수 없다. 앞길을 막는 것이 있다면 부수고, 저항하는 것은 목을 매달아 그 시체를 발밑에 두어야 직성에 풀리며, 잡고자 하면 맹렬하게 포효할 터이니. 마침내 눈발이 거세지며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을 때, 아회는 눈을 휘었다.
"그러니 정하라. 어찌하겠느냐?" "그림자에게 어찌 자아가 있겠습니까." "옳지, 그래야지. 내가 네 거둔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구나." "어리석었나이다." "그러니 영아, 잘 듣거라." "예." "엽 씨 가문의 여식은 직설적이고 욕심이 있다. 가주인 제 어미에 대해 존경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일한 딸인 자신을 선택하지 않고 방계를 널리 보며 후계자를 택하려는 이 상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겠지. 그리하니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터이다." "……예." "무엇을 그리 걱정하느냐? 네가 할 일을 망설이지 말아라."
새하얀 입김과 함께 웃음이 흘렀다.
"그 집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산 제물로 바치겠노라 싸우다 자멸할 것인데 어찌 너와 나의 탓이겠느냐? 비록 신께서 제사장 가문 하나를 잃겠으나, 미물들이 그만큼의 여흥을 보여주는 것인데 재롱과 산 제물을 마다하시겠느냐?"
무영은 그대로 머리를 조아렸다. 눈더미에 파묻힌 머리가 차게 식었다. 한때 자신의 가문이 무 씨 집안의 가주 준서에 의해 멸문당한 방식 그대로 엽 씨 집안이 멸문지화 된다! 이젠 자신 또한 똑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아니, 악이 되어야 했다. 그깟 악행은 덮을 수 있는 더 큰 악이.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을 때, 무언가 배를 거세게 파고드는 감각에 무영은 크게 휘청였다.
"주, 군……?"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영아. 살아 돌아오는 것이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임무일 테야. 죽는다면 내 너를 금술을 써서라도 사용할 터이니 그리 알아라."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붉은 피도, 쓰러지는 인영이 금세 묻히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얄궂은 날씨를 지켜보던 아회는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이제 가서 언제 오나. 흥얼거리며 족적 하나 남기지 않던 것이 점차 가사가 변했다.
"이제 가면 어디로 가나, 어디로도 가지 못한 내가 왔습니다. 북부의 이 아회가 살아 돌아갑니다……. 호위 찌르고, 아버지의 목을 매달고, 어머니 가시는 길 편안히 보내드리고, 형님 목 비틀어도 살아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설산 요괴 아가리 속에, 어머니는 령도에, 형님은 땅 밑으로 그 조각 던지려 하니 갈 곳 없는 나는 어디로 떨어질까……."
요리하믄서 아회 독백 곱씹어봤는데~ 그래서 아회 최종 목표는 북부로 향하는 모든 증오를 자신이 짊어지고서? 현 북부? 혹은 무 가문과 함께 파멸하려는 걸까? 아니면 무 가문만 몰락시키고 아회 자신은 음... 빈털터리?가 되려는 걸까~~ 내 빈약한 뇌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우우우 ;ㅅ;
"감히란 소리 들을 정도의 미물일지언정 한때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니 이 정도는 뻔뻔해야지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적룡 기숙사의 무아회라는 사람은 어떠한 싸움이 나도 그러려니 넘기고, 세상사 모두 그럴 수 있다며 넘기던 자였다. 초연했고,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과묵하게 입 다무는 것이 본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 의무를 저버린 듯이, 오늘의 아회는 맹랑한 소리를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들리는 이름에 지팡이를 매만지던 손이 멈춘다. 손가락 하나가 올라서더니 지팡이를 두들기듯 툭, 소리를 낸다. 소지부터 검지까지 물결치듯 토독토독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였다. "백룡이 아닌 적룡이라." 심사가 뒤틀린다. 한때라고 한들 같은 용의 선택을 받을 뻔했다는 사실이 속을 뒤집히게 만든다. 그 작자가 대체 속내 끓어오를 것이 무엇 있다고? 좋은 곳에서 살았고, 좋은 취급을 받았고, 좋은 삶을 살았으면서 무엇을 증오한다고. 자신처럼 밑바닥에서 기었기라도 한가? 아니면 자신의 존재로 인해 뭐, 화라도 났던 것인가? 백룡으로 돌아서버린 것이 낫지마는 적룡이 한때 관심을 가졌다고 하니 그 사실에 대한 순간적인 역정을 참을 수 없었다.
"공물이라면 많지요."
상체를 가까이 들이밀 적, 아회는 눈을 휘었다. 외형은 닮지 못했지만 그 결만큼은 제 형을 빼닮은 듯하다가도 어딘가 타인을 닮은 듯 애매모호한 미소였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날 적, 아회의 손가락도 우뚝 멈춘 지 오래였다. 시작은 탄식하듯 짧게 뱉은 일소였다. 그 이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약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이었다.
"하, 하하하! 그쪽이 들어줄 수 있는지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죽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취하는 것을 바라지도 아니하고, 얻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면 어찌하겠습니까!"
한참을 웃던 아회는 배가 당기는지 흐, 흐흐, 짧게 웃음을 뱉으며 숨을 길게 뱉었다. 오래간만에 듣는 얘기가 즐거웠던 탓이다. 눈이 뜨였다. 은빛 아스라한 눈동자가 부릅 뜨여 당신을 응시했다.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죽이고, 취하고, 얻는 것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진흙밭 그 밑에서 기어 올라와 일구어내고, 쟁취할 수 있습니다. 뻔한 것으로는 어림없지요. 그대는 잃어버린 내 눈을 되찾아줄 수 있습니까? 나의 유일하던 버팀목을 살려줄 수 있는지요? 내 형님에게 인간의 생을 초월하듯 영생에 가까운 삶을 줄 수 있냔 말입니다. 그렇게 그분께서 내 처참하게 타인의 손에 도륙 당해 죽는 것을 보며 본인은 죽지 못하고 그 광경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농질처럼 기어이 미치게 할 수 있는지요?"
어디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내가 지금까지 북부에서 살아남고, 귀기 무 씨에서 살아남으며 쥘 것을 쥐고 있는데 고작 그런 것으로 공물 바쳐서 이름 드높여주면 어디 성에 차겠는가? 그러기 위해 악인이 되고자 하였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밟을 것이다, 불태울 것이며, 끝내 자신까지.
"할 수 있다면 내 북부에 기고만장하게 고개 쳐들고 다니는 것들의 목을 베어 바칠 것입니다. 생면부지의 타인의 숨과 살을 바란다면 도륙할 것이며, 쑥대밭으로 만들길 바란다면 기꺼이 부적 불태워주지요. 아니면 내 숨은 어떻습니까? 계약 조건이 끝나는 대로 내 육신과 혼은 분리되어 혼은 지옥 불구덩이에 처박히는 겝니다."
잿더미가 되어서라도. 세상을 굽어살핌으로 보아 내게 바라시는 것이 그것인 것 같으니 내 아무리 죄악이라 한들 행해야 함이 옳지 않겠나. 아회 환히 웃었다.
죽이고, 취하고, 얻는 것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진흙밭 그 밑에서 기어 올라와 일구어내고, 쟁취할 수 있습니다. > 죽이고, 취하고, 얻는 것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진흙밭 그 밑에서 기어 올라와 일구어내고, 이젠 쟁취할 수 있단 말입니다.
창 밖 어두운 것 보고 정신 차리려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마침 마당에서 도란도란 말소리 들려 가보니. 종이등 여기저기 켜놓고 드문드문 자리 만들어 술잔 기울이는 사람들 있었다. 낮에 술이 아쉬웠던 사람들끼리 하는 뒤풀이란다. 멍하니 서있으니 저어기 마당 한 켠에서 누가 부른다. 일향이었다. 불렀기에 그리로 가까이 가니 혼자가 아니었다. 낮과 달리 편안한- 아니. 너무 편한 차림의 온화 아가씨도 함께였다. 그런데. 어. 낮의 예복은 정말 조신한 축이었다. 은은한 종이등 불빛 만으로도 맨살이 너무 보여 눈 둘 곳을 모르겠어서 일향만 쳐다보게 되었다. 일향은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잘 잤어요? 아까 부르러 갔었는데. 너무 잘 자고 있어서 먼저 나와 있었어요. 저녁 생각은 없을 거 같고. 차에 떡이나 몇 개 들어요." "그려- 아까 보니 제법 마시드만. 빈 속으로 내일 앓고 싶은 건 아니지 않소?"
남매가 같이 웃으며 권하니 차마 거절하기 그래서 엉거주춤 둘 사이에 앉았다. 둥근 소반 가운데 두고 셋이 마주보게끔 앉으니 기분이 묘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쪽으로는 눈 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일향이 건네주는 찻잔 받아 한 모금 마시니 텁텁했던 입 안과 속 갈증 부드러이 풀려간다. 마신 후에 올라오는 고소한 곡물의 향이 머릿속도 개운히 해주었다.
예전엔 홧김에 술 마시고 나면 그 뒤엔 뭘 먹어도 게워내었는데. 이제는 술도 그 후도 즐길 수 있을 만치 내 삶이 회복되었구나.
여즉 남은 술기운 탓인가. 또 눈물 글썽이려 하니 옆에서 웃음 소리 터졌다. 살짝 높게 올라간 목소리. 온화 아가씨였다. 소리에 이끌려 돌아보니 나를 보고 환히 웃는 여인의 얼굴 있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안경 걸친 것 이제야 알았다. 투명한 안경알 너머에서 웃는 눈으로 나를 보는 온화 아가씨 말했다.
"그래. 이제야 신세 좀 풀린 거 같소?"
나도 모르게 고개 끄덕끄덕 하다가 시선 힐끗 아래로 내려가길래 황급히 고개 돌렸다. 옆에서 낄낄- 방정맞은 웃음 소리 들렸다. 뒤이어 일향도 조금 웃고. 각자 차 마시곤 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그리 하면 안 된대도. 에헤이. 오라비가 누이 믿질 못 해?" "아무렴. 네가 나보다 잘 알겠니? 당신 생각은 어때요?" "오호라. 그리 나온다 이거요? 보소. 내 말이 맞지? 응?"
온화 아가씨 말투는 굳이 표하자면 과거 형의 비아냥과 비슷했지만 형처럼 기분 나쁘진 않았다. 놀림의 기운이 다분하다는게 사람에 따라서는 얄밉긴 하겠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너무 좁다! 일향과 언사 티격태격하다가 불쑥 다가올 땐 내가 어깨 떨릴만치 흠칫 놀라며 물러나자 와하하 웃는다. 그러면서 곱게 휜 눈으로 나 보는데. 장인이 심혈 기울여 그린 듯 길고 둥글게 늘어진 눈매가 뭇 남자 홀렸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재차 시선 피하면 피식 하는 소리 들려왔다.
"이 오라비 재밌구만. 그리 고개 돌리고 있으면 목 안 아프오? 편히 있으시게. 편히-" "어허. 놀리는 것 적당히 하렴. 그러다 또 울면 어쩌려고." "어? 그거 좋은데?"
아니 믿었던 일향마저!
배신당했단 얼굴로 일향 보니 그도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역시 남매는 남매인가 보다. 내 형과도 이런 사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의 잔재는 조용히 뒤로 밀어버린다. 그 날 나는 다 내려놓고 새로이 살기로 했으니. 더는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티 안 나게 표정 정리하고 미지근히 식은 차 천천히 마셨다.
한 주전자로 셋이 마시다보니 찻주전자 비는 것 금방이라. 마침 제 차례에 물 떨어지자 일향이 새로 가져오겠다며 일어섰다. 내가 가려 했지만 나는 조금 더 쉬라며 일향 훌쩍 가버렸다.
아니. 실은 둘만 있으면 무슨 장난을 당할까 싶어 내가 가겠다 한 건데!
야속하게 가버린 일향 보며 작은 한숨 내쉬고. 이제 무슨 일 일어나도 놀라지 않으리라 마음 다잡는데. 예상 외로 온화 아가씨는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둘만 남겨지면 그 틈 타서 분명 장난질 쳐올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지나도 평온한 분위기에 힐끔 힐끔 온화 아가씨 살피고 있으니. 문득 그녀의 무릎 위 보였다. 아까부터 시야에 걸리긴 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보았다. 거기엔 낮에 춤 출 적 들었던 붉은 검이 제법 귀히 올려져 있었다. 검 위에 한 손 올려져 있어서 그 손 가끔 움직여 검 쓰다듬었다. 마치 반려동물 어르듯이. 신기한 모습에 잠시 그것 보고 있는데 킥- 하고 웃는 소리 났다. 흠칫 놀라 시선 돌리니 가는 웃음 지은 온화 아가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게 그리 신기하오? 그저 검일 뿐인데."
그저 검이라기엔 온화 아가씨가 다루는 것이 여간한 물건 아닌 듯 싶었다. 저 범상찮은 외양도 그렇다. 붉은 검집에 늑대 머리 장식이라니. 검의 정체가 궁금해 물을까 말까 하고 있으니. 먼저 선수치듯 말 들려왔다.
"그리 쳐다보지만 말고 물어보면 될 것을. 이것 내 아는 신수에게서 잠시 빌려온 물건이요. 말이 빌린 것이지 강탈에 가까웠다만. 언젠가는 돌아갈테니 빌렸다는 것이 맞겠지. 그리 신기하면 어디 한 번 뽑아보겠소?"
내 생각 꿰뚫은 듯 말 하는 걸로도 모자라 검 들고 가까이 오려 하길래 이번엔 크게 기겁하며 옆으로 비껴났다. 그런 내 반응 재밌었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뒤로 물러난 온화 아가씨 말했다.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오라비에겐 손 안 댈 거요. 내 아무리 방탕해도 임자 있는 건 안 건드니."
임자?
"그렇소. 오라비는 향이 오라비 사람이잖소. 아니오?"
맞긴 맞는데...
내가 일향의 종자인 것과 온화 아가씨가 손 대지 않는 것이 그렇게 근접한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경박한 소리지만 사용인에게 손 대는 고용인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각오 다진 것이었는데 너무 당연한 이유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 되려 이상하다. 어딘가 아귀가 안 맞는 듯 해 고개 갸웃 기울이며 생각에 잠기니. 그런 나를 살피던 온화 아가씨 매우 짖궂은 표정 짓는 것 보였다. 이제 장난 걸어오려는 건가. 나도 모르게 어깨 살짝 빼니 그런 거 아니라며 또 웃었다. 웃고 무릎에 턱 괴더니 그런 말 해주었다.
"향이 오라비가 앵간히도 오라비 챙기나보오. 달이 지나도록 종자로 두는 걸 보면."
무슨 얘기지...?
"아직 말도 안 해주었소? 어이구야. 오라비 조만간 종자 노릇 떼내고 공방이나 연구반 전속으로 바뀌것소. 류 가에서 달 넘게 종자로 둔다는 건 그런 의미나 다름 없으야. 향이 오라비는 그저 적응할 시간을 주려고 했나 보구먼."
...온화 아가씨는 지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일향이 나를 버린다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 연구반이 많이 바쁘고 할 것도 많지만 그것보단 일향의 종자로 있는게 제일 좋다. 예전 형처럼 가혹하게 대하지도 않고. 늘 내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부담시켜주고. 오늘 잔치용 옷 말고도 평소에도 잘 챙겨주는 사람을 떠나고 싶을 리가 있나. 하지만 일향이 나를 떼어낸다면 그건...
"오호. 이거 표정 한 번 걸작이네. 그래서 오라비야. 오라비는 향이 오라비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게지. 그치?"
그걸 말이라고 할까. 이곳에 와 처음 정 준 사람인데.
"그럼 내가 절대 떠나지 않게 될 방법을... 어. 어라. 오라비. 울어? 어? 어어?"
좀 전 잘 참았던 눈물이 갑작스레 몰려온 서러움에 왈칵 터졌다. 그 탓에 옆에 있던 온화 아가씨 당황하고. 때마침 찻물 새로 떠온 일향도 나를 보고 당혹스러워하며 손수건 꺼내주었다. 나는 손수건 받는 대신 일향의 손 잡고 제발 나 버리지 말라며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더 잘 하겠다고 히끅히끅 우니 일향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단 표정 하다가 고개 돌리고 상황 외면하는 온화 아가씨 보고 무슨 일인가 알아챈 듯 했다. 그래도 우는 나를 달래는게 우선이었는지 등 두드려주며 옆에 앉았다.
"무슨 소리 들었는지 알 만 한데.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요. 계속 울면 내가 설명을 못 하잖아요. 응?" "그려- 울음 뚝 해야 하고 싶은 말도 하지- 어여 그치시게. 이 밤에 그리 울면 뱀 나와 뱀."
두 사람의 연달은 말에 겨우 울음 그치자 그제야 일향이 온화 아가씨 타박했다. 왜 그랬냐며 조곤히 혼내는 소리와 이마에 딱밤 놓는 소리 제법 경쾌했고 그거 맞고 짧게 아파하는 소리도 어쩐지 우스워서 눈물 젖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걸 보고 울다 웃으면- 이라며 경박스런 말 하려는 온화 아가씨 입을 일향이 막았다. 그렇게 잠시 조용해지자 일향이 내 찻잔에 곡물차 따라주고 본래 앉았던 자리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음. 보나마나 왜 아직도 종자에 두는지. 이대로면 다른 곳으로 보내질 거라느니 들은 듯 하네요. 확실히 말해주자면 아직 보낼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계속 옆에 둘 확신도 없지요."
일향의 말에 다시 눈물 차오르려하니 이번엔 손수건으로 직접 내 눈 덮어주었다. 조금 누른 채로 들으라며 일향 말을 이었다.
"당신을 계속 옆에 두려면 류 가에서 행하는 의식을 치러야 해요. 알기 쉽게 말하자면 류 가의 금술을 행해야 하는데. 이것이 당신의 정신적 외상을 건드릴까 봐 말을 아끼고 있었답니다." "오라비. 본래 태어난 집에서 지독하게도 괴롭혀졌다지? 부모에겐 자식이라는 이유로. 형제에겐 아우라는 이유로. 노비마냥 몸도 정신도 예속되어있지 않았나. 지금이야 다 벗어나서 평온해지고 있지만 다시 그런 상태에 놓였을 때 제정신을 유지할 자신은 있을지 걱정한게요. 향이 오라비는."
말을 고르고 아껴가며 하던 일향의 목소리 사이에 온화 아가씨 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딱밤 맞고 악 하는 소리도 났다. 설명 조금 보탰다고 이러냐 너무하다 궁시렁거리길래 작게 흐흐. 웃으니 나 보고 맹추가 따로 없단다. 잠시 그리 오간 후에 일향이 마저 말했다.
"류 가의 금술은 주인 저와 종인 당신의 피를 섞어 물리적으로 예속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었던 주종관계를 넘어 혼이 연결된 듯 가깝게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또한 주종간 충성심 역시 남달라진다고 하지요. 보통은 종자로 들인 후에 보름 정도 가문에 적응할 시간을 주고. 그 뒤에 설명을 하고 받을지 아닐지를 정하게 합니다만. 당신은 워낙 정신의 피폐도가 심했으니까요. 조금 더 시일을 지켜보려 했던 것이지요." "하여간 앵간히도 걱정이 많어-" "씁. 화야." "이잉."
남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나는 들은 것이 믿기지 않아 잠시 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고맙게도 일향과 온화 아가씨는 내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겨우 생각 정리되자 눈가에서 손수건 거둔 뒤 일향 보며 물었다.
내가 바란다고 하면 해줄 것인지.
"그야 당신이 바란다면 거절할 이유 없지요. 하지만 잘 생각하세요. 금술이 금술인 이유가 있는 법. 한 번 맺으면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정신 온전치 못 한 죽음을 맞을 수도 있어요. 혈통으로 맺는 것이 아닌 인위적인 피의 결합이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광증의 씨앗을 품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류 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해주지만. 위험이 아주 사라지진 않아요."
그렇게 미쳐서 죽는. 아니. 죽여지는 사람이 여지껏 수십수백이었다고. 일향은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그 말 나온 순간. 어쩐지 온화 아가씨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저 조용히 차를 마시는 듯 했지만 낮게 내리깐 눈이 안경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나는 그저 이 금술이 그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라 왈가닥 온화 아가씨도 진중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고. 그래서 고민 없이 고개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고 일향 작게 한숨 쉬었다.
"그렇게 단호하다면야. 더 말리진 않겠지만 사흘 정도 시간을 줄게요. 그 뒤에도 그 생각에 변함 없으면 그 때 가서 진행합시다. 괜찮지요?"
나는 당장도 되지만 일향이 기껏 배려해주는데 거절하는 것도 좀 아닌 듯 했다. 하여 그러자고 고개 끄덕이고 식은 차 마셨다. 그러다 문득 온화 아가씨도 같은 것 되는가 싶어 물어보았다. 일향의 남매이니 무심코 그렇겠거니 생각해버린 것이다. 허나 그 물음 입에 담는 순간. 일향 얼굴 희게 굳고 온화 아가씨 역시 쓴 웃음 지을 줄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거둘 수 없는 말이라. 조용해진 가운데 온화 아가씨 쓰게 웃으며 그녀의 목을 진득히 문질렀다. 손끝이 목에 걸친 검은 끈 유달리 깊이 만지는 듯 했다. 살결 뻑뻑하게 밀릴 정도로 목 어루만지던 온화 아가씨 나즈막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아니되오. 이미 광증에 한 발 잠긴 것이나 다름 없기에. 아니지. 이제는 허리쯤까지 잠겼을 지도 모르겠구려. 이런 내가 누군가와 이어진다면 그를 내 광증에 전염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소. 그러니 나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고 무엇도 남기지 않고 그저 살다 갈 것이오. 오래도 아니지. 약관 맞이하여 금주 풀리는 날이 곧 내 기일 될 것이니."
너무나 차분하게. 너무나 담담하게. 그저 예견된 일일 뿐이란 듯 말하는 온화 아가씨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터졌다. 자포자기한 모습에 과거의 내가 겹쳐보였기에.
"어째서요?"
"응?"
"내가 보기에 온화 아가씨는 조금... 조금 많이 경박할 뿐이지. 광증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설령 금주로 막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 해도 금주를 풀지 않으면 지금처럼 살 수는 있는 거 잖아요."
"허나 이 금주는 성년 이전까지만 효력이 있소. 이후로는 무슨 수를 써도 전부 풀리거나 되려 광증 돋구었다는 기록 밖에 없는데. 어찌 한단 말이오?"
"그. 그럼 내가! 내가 만들어줄게요! 성인에게도 효력 있는 금주! 아. 아니면 광증 가라앉히는 저주라도 만들 테니까! 어떻게든 만들어 낼 테니까! 그렇게! 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 말하지 마요... 아가씨도 분명. 더 살고 싶잖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에요. 자기 죽음을..."
이렇게 강하게 말해본 것 여기 와서 처음이었다. 일향도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무례한 말 했음을 인지했으나 그렇다고 빈 말로 한 소리도 아니었다. 다 큰 듯 보이지만 온화 아가씨는 아직 학당도 나오지 않은 어린 아이다. 이리 좋은 집에서 나보다 훨씬 잘 자란 아이가 고작 집안 사정에 휘둘려 벌써부터 생 포기하는 모습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목소리 내어 내가 만들어주겠다고. 새 금주든 저주든 만들어서 살게 해주겠다고. 그러니 스스로의 죽음을 그리 쉽게 말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떨려 말끝 흐려지자 일순 분위기 가라앉았다. 말 다 한 후에야 내가 뭘 저질렀나 싶어 동공지진 일으키고 있는데. 옆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작게 숨 죽인 웃음은 이내 큰 웃음 되어 어둑한 밤공기와 마당 한켠 울렸다.
"아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아- 나 정말 간만에 이리 웃어보는구려! 으하하! 무얼 그리 심각하게 그려. 으이? 흐흐흐. 오라비 일로도 벅차면서 무어? 새 금주? 저주? 하하! 하- 이거 참 보면 볼수록 재밌는 사람일세. 새 금주에 광증 가라앉히는 저주라. 그리 말하면 내 혹하지 않소. 나도 사람인 것을."
흐흐. 웃음의 여운 흘린 온화 아가씨는 찻잔 들어 식은 차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후- 하고 숨 한 번 고르더니. 붉디 붉은 눈 가늘게 좁혀 뜨며 나를 보았다. 여태까지의 경박함 전혀 없이 압도하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몸 굳히자 금새 씨익 웃으면서 표정 풀고 말했다.
"오라비가 그리 하지 않아도 방법 아주 없는 것은 아니오. 단지 내가 그렇게까지 해가며 살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헌데 오라비 하는 말 들으니 없던 오기가 슬금 생겨버리는구만. 그러니 적어도 시일 전에 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은 다 해봐야겠소. 하다 보면 달리 방도가 생기거나 할 지도 모르지. 그 사이 오라비는 어디 한 번 만들어보시게. 내 기대 걸 테니. 실망시키지 말게나?"
어느새 온화 아가씨 얼굴엔 쓴 웃음 사라지고 나를 향한 환한 미소만 있었다.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더이상 온화 아가씨에게서 내 옛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서든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혼자 끄덕이며 속으로 다짐하는 내 앞에 따끈한 차 일렁이는 찻잔 두 개가 보였다. 그리고 내 찻잔에도 새 차가 담겨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여태 듣고만 있던 일향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도 화 누이도 목표가 생긴 듯 하니. 서로 꼭 이루자는 결심의 의미랍니다. 제가 증인이 될 테니 당신도 화 누이도 노력하길 바라요." "헤엥- 난 적당히 할 거니까 오라비도 너무 힘 쓰진 말어-" "어허. 화야." "이이잉."
방금 전까지 무거웠던 공기 무색하게 평소마냥 구는 남매들 보고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어쩜 이리 귀한 사람들일까.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같이 잔 들어 가볍게 잔 맞대었다. 각자 한 모금씩 마시고. 한 숨 돌린 후에. 언제 무거운 얘기 했냐는 듯 다시 도란도란 대화 나누었다.
밤 깊어짐에 따라 마당의 모두가 들어간 후에도 남아 한참을 더 얘기했는데. 그 중 온화 아가씨가 한 질문 하나가 의미심장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그- 듣자하니 오라비. 연인이 있었다믄서? 아. 내 놀리려는 것 아니고 물을 것 있어서 그랴! 그게. 그것이- 음- 조금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 나한테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 가 아니고! 그게 아니고! 그 사람? 취향이 조금 독특해서 어찌해야 하나 싶어서! 듣기로는 노는 것 좋아하고 먹고 마시는 것도 좋다는데 내 도통 뭘 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네! 응."
"...고민할 필요가 있나요? 노는 걸 좋아하면 같이 놀러가면 되고. 먹고 마시는 거 좋아하면 맛있는 음식 가져가서 주거나 같이 먹으면 되잖아요."
"그러... 그러면 되는 건가? 정말?"
"알고 있는게 그것 뿐이면 아는 것부터 해봐야죠. 호감 살려면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거에요. 아가씨."
"어... 오라비가 그리 말한다면야 음... 헌데 왜 그렇게 웃나? 어? 내가 이런 것 물으니 웃겨? 우스워? 아잇 웃지 말란 말이네!"
"하하하!"
이 얼마나 귀여운 아가씨일까!
끝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나도 일향도 웃어버려서 웃지 말라며 달려들려는 온화 아가씨 피하느라 작은 소동 일었다. 이리도 생생히 살아있으면서 어떻게 그리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는지. 그 모습 보며 다시금 속으로 다짐했다. 꼭 도움 되리라고. 온화 아가씨에게. 그리고 이 집안에게.
우여곡절 많은 잔치날 지나고 일향의 남매들은 각자 짐 하나씩 들고 학당으로 돌아갔다. 온화 아가씨는 특히 큰 찬합과 술병 들고 가던데.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향과 함께 저자거리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렇게 돌아온 뒤에는 나도 내 일상으로 돌아갔다. 조금 할 일이 늘어난 나의 일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더 입에 담지 말라며 자신에게 경고했던 당신이 위협을 가한 건 하나도 없다고 하다니. 방금 전 자신에게 하였던 말과 행동은 당신에게 일상적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인지. 연은 겁먹지 말라는 말에 짐짓 고개를 끄덕일 뿐. 당신에 대한 경계를 유지한 채, 더 많은 의문만 내보이는 당신의 말에 우물쭈물 더 따져 묻지도 못하니 앓는 소리만 낸다.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야 춘 사감이 말해주어 알게 된 것인데. 연은 말끄러미 당신을 보다 한숨을 내쉰다.
"그건 춘 사감이 말해줬는걸...."
잠시 생각에 잠긴다. 더 피할 길도 없으니, 여기서는 이제 당신의 조언을 듣고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류 가의 금술은 종속이군요……. 물리적으로 예속하는 것, 거기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니, 와중에 온화의 광증이라면 저번에 보여줬던 그 사냥...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0... 읽다 보니 작은 가설이 세워지긴 하는데 꽁꽁 숨겨둘래요! 온화에게는 온화의 새 길이 개척되었으니 어쩐지 저 뒤에 알콩달콩이 불투명도 28%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광증은 응, 해결 되리라 믿고 있답니다...(지이이) 나락가지 마... 나락은 아회가 갈게...(???: 깔깔)
夏사감이 끌끌 혀를 차듯 웃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공기가 뒤바뀝니다. 그의 몸 절반이 인간의 것이 아닌 형태로 바뀝니다. 목에 지느러미가 솟아나며, 입의 절반이 기이하게 찢어졌습니다.
' 인간아,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들어준다 하면, 네 무엇을 바칠테냐. 지금 당장 네 육체를 내가 한 입에 삼키게 할 것이냐? 네 바라는 걸 다 들어주기 위해 이 학당의 인간들의 육체를 원한다 하면 바칠테냐. 미치길 원하나? 그건 지금 당장에라도 해주마. 누가 되고 싶나? '
夏사감인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생물이 쇳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날카로워진 손으로 당신의 목을 쥐려 했습니다.
' 보는 것은 내가 아닌 지금 와 있는 형님이 더 잘할테니 그 쪽에게 준다 하면, 너는 네 장기를 내게 바칠테냐. '
그는 정확하게 아회의 배와 목을 손가락으로 툭, 툭 가리켰습니다. 이무기가 히죽 웃었습니다.
도철은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먹는 걸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애자는 살생을 좋아했다고 전해지죠! 온화와 일상 때는 도철이 튀어나왔어도 夏사감이라는 자아가 조금 더 강했는데 지금 아회와의 일상? 夏사감이라는 자아를 거의 누르고 도철로서의 자아가 튀어나왔어요:)
오래 사감으로 있었다. 공기가 뒤바뀌자 본능이 속삭인다. 당장 사죄하라고. 그렇지만 그럴수록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신수이든 무엇이든 맹랑하게 대하는 자신이 얼마나 우스울까. 격이 다른 존재임은 안다. 자신은 아무것도 될 수 없음도 안다. 그렇지만 가끔은 객기를 부려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격과 위치가 다른 존재라도 소신을 굽히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아회는 그 순간을 절실하게 바라왔고, 마침내 겪고 있었다. 이미 죽을 준비를 마쳤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처절하게 짓밟힌다 해도 괜찮다. 목이 떨어진다 해도.
"나를 삼키고 싶다면 삼키시오, 도륙하길 바란다면 그리하리다."
덤덤히 이야기하며 아회는 지팡이를 쥔 손을 떼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지팡이는 어찌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떨어지지 않는다. 뗀 손으로 멱살이라도 잡아볼까 했으나 괜히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다.
"미치는 것이라면 내 버려진 북부의 사람인데 오히려 환영할 따름이지. 그쪽은 당최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게요? 객기에 미쳐 떼쓰는 학생? 바라는 것 많은 어리석은 인간? 그 어리석고 떼쓰는 새파란 애송이가 무슨 짓을 벌일지도 기대하지 않을 터이니 내 여기서 일어나겠소. 내 가치는 셈할 수 없을 만큼 하자가 많을 터이니 홀로 정산하러 가야지."
육 년이면 됐다. 언제는 인생이 자신의 마음대로 된 적이 있었나,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의지를 수긍해 준 날이 있었나. 오늘 죽는다 하여도 이젠 미련 없다. 무영은 자신이 깊게 찔렀으니 아마 죽었을 것 같고, 혼자서도 괜찮을 것이다. 길동무 두어 명 데려가는 것이면 그걸로 족하다. 진정 내 가치라도 있었더라면 형인지 뭔지가 자신 대신 뭐라도 해주거나 그 작자 속이 뒤집어지겠지. 저번에 봤던 얼굴을 떠올리니 그 꼬라지 한 번 좋겠다…….
"하나 정정하지. 나는 죽고자 하외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이 학당에 왔소. 한때는 살아남고자 했으나 세상이 날 죽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다니 그 뜻에 따라야 하지 않겠소?"
멀어버린 두 눈, 아니, 이젠 겨우 기능할까 말까 싶어 희미하게 세상을 보는 눈 한쪽이 당신을 온전히 담는다. 당신이 목을 쥐던 순간에도 덤덤했다. 속내가 끓어오르는 것을 천천히 식혀내듯 입이 잠시 굳게 다물린다. 지고하신 것들은 아래에 있는 것의 사정을 알려 들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안다 해도 이해하지 않는다. 아마 저것도 비슷하겠지. 신수라 하였지? 그리하면 인간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애초에 자신의 삶을 누가 이해하려 든다고. 뭘 안다고 저것들은 모조리 기고만장한가. 혹여 알아서 기고만장 한 것이라면 죽기 전에 신에게 간곡히 빌어나 봐야겠다.
"이미 일찍이 모든 것을 잃어 더 잃을 것이 없는 자이기에 그 작자 속 긁고 뒤집기 위함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어찌, 무엇을 바쳐드릴까? 내 배를 가르고 속내를 꺼내고자 하시오? 개*같은 삶을 살아왔으니 취향이 그쪽이라면 장기 하나는 끝장나겠지. 독에 당해 상해버린 위를 줄까? 아니면 지고한 신수 만나도 아랑곳 않는 부어버린 간이라도 줄까? 인간 취급도 못 받아 제대로 뛰지 못할 심장은 어떤가."
저쪽의 속을 긁는 만큼 이쪽도 내 속을 긁는구나. 제 형이 적룡의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무언가 떠오른다. 부정하고 싶다. 만일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비롯된 것이라면, 하는 그럴 일도 없을 멍청한 가정을 누가 좋아하겠나. 그럴 일도 없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모든 일을 자신으로 결론짓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또 어리석니 뭐니 비웃기라도 하겠지.
그리고 이제 풀 시간이군요, 응. 사실 저는…… 시트가 두 개랍니다. 캡틴에게 제출한 비밀설정 시트 하나랑요... 어장에 낸 시트요... 그럼 이제 진짜 성격란의 일부를 볼게요...
(중략) …아회 과묵하나 강자에 대처하는 것이 유연하되 굴하지 아니하고, 한계를 넘어서면 호승심 불타며 눈동자는 호기로움 발한다. 손속에 가차 없고 잔악하다. 피 보는 것 두려워 하지 않으며 자신을 불태울 생각 만만하다. 난세에서도 제 할 말을 막힘없이 쏟을 터이며, 그리하여 제 눈을 이미 한번 잃은 전적이 있다. ……본디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원래 이런 얌전한 애들이 눈 돌아서 총기난사 한다고. 아회가 딱 그런 부류에 속했다.
어린_시절의_자캐가_미래의_자신에게_하는_질문은 : "저, 저는…… 그러니까요, 저도 무 씨 집안의 일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어요……?" "아니면, 그게, 형이 저를 미워하지는 않나요?" "려, 령도에는 가봤어요? 바다는 어떤 곳이에요? 정말 파랗고 소금맛이 나는 비린 물이 가득해요?"
아회는 '그렇다'고만 답할 거랍니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 형이 미워하냐는 질문엔 한참이고 입을 다물다가 어린 자신을 쓰다듬으면서 "기대하지 마. 넌 사생아잖니?" 이렇게 얘기해버리겠지...👀
자캐가_병적으로_좋아하는_것 : 어…… (갑자기 얻어맞아요) 무영이요? (절대 아님)(진짜 아님) 형님이요. 죽음에서_부활하게_된다면_자캐는 : 아 왜 이래~!! (뼈의 개수가 짝수가 됨) 몸을 비틀비틀 일으키면서, 한참이고 상황을 파악하다가 깔깔 웃을 것 같네요. 결국 내가 바라던 것도 이루게 두지 않는구나! 하면서 한참을 울고 웃다가 결국엔…… (이하 스포일러)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날 배신했구나, 아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당신은 냉혹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센 빗줄기가 내리꽂혔습니다.
#날배신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54250 아회, 어서오세요. 오늘 당신이 표현할 대사는...
1. 『꺼져』 :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드는구료. 옳은 판단이긴 하나 어리석은 행동이오." "내 두 번 이야기 하지 않겠소. 있을 자리로 돌아가시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내가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부디 나를 긁어내리려 했던 모든 행동에서 재미라도 봤길 바라오."
"네가 여길 왜 오는데. 당신이 무슨 염치가 있다고, 어떻게 여기에…… 꺼져. 다시는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 우와아~
2. 『이걸로 나한테 빚진거다』 : "적당히 갚으시오." "가배 한 잔이면 되겠구료."
"……후일을 기약하지."
3. 『원수를 갚았다!』 : "드디어 북부에도 봄이 오는구나."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지? 어떠한 의미가 있냔 말이야…… 어차피 이리 될 것인데 나는 무얼 하려고 이렇게 애를 썼지, 당연하게 다가왔는데 왜 받아들이려 기를 쓰며 객기를 부렸지." "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으니 허망하구나." "어머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 석 자 부르면 뭉클해지는 나의 어머니." "……령도로 가자, 령도로. 바다로 가자…."
"이제 가면 어디로 가나, 언제 오나…… 어디로도 가지 못한 내가 왔습니다. 북부의 이 아회가 살아 돌아갑니다……. 호위 찔러 죽이고, 아버지의 목을 문에 매달고, 어머니 가시는 길 고통 없이 편안히 보내드리고, 형님 목 비틀어 품에 안고 살아 돌아갑니다. 호위는 선계에, 아버지는 설산 요괴 아가리 속에, 어머니는 령도에, 형님 몸뚱이는 방방곡곡 땅 밑으로 조각조각 던지려 하니 갈 곳 없는 나는 어디로 떨어질까……."
삼켜라. 이대로 삼켜 내 쌓아온 한이라도 그 대가로 풀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묵묵히 자신을 삼키려던 날선 이와 쩍 벌린 아가리를 기다리던 아회는 눈을 다시금 온전히 떴다. 이것 봐라. 세상은 언제라도 내 편을 들어준 적이 없다니까. 김새는 소리에 한쪽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우습군."
슬퍼하는 인간이 무슨 소용이지? 그게 무슨 상관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슬퍼한다는 이유 하나만이면 자신도 이미 수많은 비극을 막고도 남았을 터인데 그깟 알량한 감정과 이유로 인내한다고? 어차피 사람은 죽고 그런 정에 연연하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본인 또한 위협받기 마련인데. 타인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있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언사를 뒤로 아회는 눈을 흘겼다.
결국 그 감정 때문인 건가.
집안을 파국으로 이끄는 감정놀음에 천하의 신수도 자신을 먹지 않을 정도니 퍽 대견하기도 하다. 알량한 감정들을 가져봤자 사냥 당할 터인데, 저쪽은 사냥 당할 걱정도 없으니 저리 편히도 놀음에 이끌리는 것인지. 새삼 자신의 성격이 꼬일 대로 꼬였구나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반려의 슬픔과 자신의 죽음이 대체 무슨 상관인지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사랑으로 대판 망해버리고 슬픔을 호소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집안에서 자란 아회가 상황을 이해하기엔 별세계 이야기였다.
"……."
아회는 한참을 침묵했다. 정적이 일고, 굳게 다물린 입은 열릴 기마를 보이지 않았다. 겨울탑을, 늘린다고. 누구는 그렇게 그 많은 죄를 떠안고 어떻게든 속죄하려 드는데 자신은 겨울탑을 늘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나를 지금까지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그 조그마한 애새끼가 형, 형 하고 병아리처럼 졸졸 따르며 비밀인데요, 저는 북부에도 봄이 올 거라 믿어요. 같은 헛소리를 지껄였을 때면 얼마나 같잖았을까.
"하하."
메마르고 바람 빠진 웃음이 감정 없이, 허탈하게 쏟아진다. 적룡이란 것도 이젠 우스울 지경이다. 심연 속에서 겨울탑을 늘리려 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어찌 가만히 두었나? 흥미가 있어서? MA의 진노를 산 행위로 비롯하여 생겨난 지역이 어디인지 생각하면 먼저 처리를 하든지 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어찌, 신수라는 것들도 결국 이득이 먼저고 혹시 모를 상황에 놓인 신의 안위는 뒷전인 건가? 결국 저쪽들도 신앙심 없고 반목하는 녀석들이 있는 건가. 신수를 향한, 실로 북부인 다운 불경한 생각을 뒤로 아회는 입속의 연한 살을 짓씹었다.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음식이 썩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안 먹는다고 해서 내가 안도하며 긴장을 놓고, 어리석은 간원을 멈출 일은 없을 터인데. 그런 뜻이었을 터다.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지 않은가. 희박한 확률로 자신이 멈춘다 쳐도 제 형은 그러지 아니할 것이다. 아마 더 박차를 가하겠고, 결국 자신은 패배하겠지.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못한 아회는 애꿎은 지팡이만 매만졌다.
"……영험한 신수이니 하나 물어봄세. 그대는 영원한 것이 있다고 보시오?"
마지막 질문이라는 듯 아회는 엉거주춤하던 자세에서 몸을 온전히 일으키곤 허리를 곧게 폈다. 영원한 것이 있는가, 영원한 겨울과 악의 속에서 자란 자가 물었다.
예전 윤하와의 일상에서, 온화가 윤하를 탐탁찮게 여겼던 건 윤하의 흑룡 특유 광적인 포용력과 오만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마음가짐 때문으로 보였지만, 사실 하나가 더 숨어있었다. 대화 중 윤하는 어떠한 연유의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따라야만 하는 것 같았으나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며 뒤틀린 모습을 보였고 그런 윤하에게 온화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온화도 가문 금술에 의한 필연적인 단명을 어찌 해볼 시도도 않고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방탕하게 삶을 허비했으므로) 그로 인한 자기혐오로 윤하와 더는 마주하지 않고 싶어졌고 그래서 일상 막레에 윤하가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일방적으로 급히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신체적으로 한계일 때의 너는?" 류온화: 혼자 버틴다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하다만. 류온화: 내 몸이 고달프면 정신머리 같이 고달파지는 것이 골치 아프지. 이미 봤잖아? "네 말투 중 가장 특이한 점은?" 류온화: 말투 그 자체 아니겠소? 내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소만 이리 말하는 것 예삿 것은 아니지 않나. 류온화: 허세 부리기에 딱이지. 나도 평범하게 말할 줄 알아. 흥이다.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만나면?" 류온화: 어- 아직까지는 없어서 말이네. 앞으로도 없을, 아. 류온화: 그건 장담할 수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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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온화의 오늘 풀 해시는 아침에_일어나니_눈이_와있다면_자캐반응 눈! 눈이다! 놀자! 눈사람! 눈싸움! 눈집 짓기! (꼬리붕방) 어릴때도 지금도 동생들 데려다가 신나게 놀거래~
자캐_별_판도라의_상자 음~ 역시 가문 금술이랑 과거사 관련이지? 과거사래도 사건 하나인데 그 사건에 엮인 키워드가 여럿이라~ 전에 독백으로 떡밥 풀었던 부숴버린 동경. 아회랑 일상 말미에 나온 소중하다 말했던 이를 제 손으로 해친 것. 요 두개가 메인일까~
자캐의_몸에_있는_점_위치를_말해_보자 세에상에 진단 그런거 물어보고 그러는 거 아니에욧 >:3 오른쪽 허벅지 안쪽. 왼쪽 옆구리와 쇄골 아래.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류온화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중 하나를 양보한다면?」 맛있는 걸 양보하겠지~ 지금의 온화에게 음식의 맛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데 양보해야 하는 대상이 밉상이다? 응 절대 안줘 맛없는거나 먹어라 엣퉤퉤
2.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아직 아무도 모른다면?」 ^^... 누군가 눈치채기 전에 수습한다! 으아아! 하지만 혼자 안 되는 거면 고민 없이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할 듯~ 그야 혼자 안 되는거 붙잡고 있어봤자 시간 낭비 잖아?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라면 곪아버리더라도 주변에 도움 청하지 않을 가능성 매우 높음~
3. 「외로울 때에 누구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음~ 그냥 그러려니 할 거야~ 외로움이란 건 갑자기 불쑥 찾아오는 건데 누가 그걸 알고 귀신같이 연락을 해줄 수 있겠어~ 딱히 시무룩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직접 찾아갔는데도 없으면 이제 지옥의 숨바꼭질 시작되는 것이여 절대 안 만나줌 ^오^
안 먹은 지 오래라며 거의 시선도 주지 않으니 아회는 입은 곧잘 다물고 생각 속에 깊게 빠져들었다. 형님에게 물어보라는 것도 그렇지만, 이젠 졸업하고 그러라고? 허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말이다.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심보가 괘씸하기까지 했다. 생각하면 모두가 그랬다. 그럴 여유가 없는데, 졸업하고 나면, 이번 학년이 끝나면- 하고 속 편하게 뱉었다. 그럴 때면 속이 뒤집어졌지만, 아회 또한 그 사이에 섞여 졸업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졸업하고 그 일이 가능할까? 그 이전에 죽을지도 모르는 게 삶인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걸까?
"그렇소? 그래, 영원한 것은 없지."
언제까지 영원한 것에 고통받는 타인을 보아야 할까, 언제까지 영원할 것만 같은 악명을 떨칠까. 신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영원이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입을 다물고 신경질을 내는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던 아회는 눈을 감아 영원한 어둠 속에 세상을 가뒀다. 스스로의 시야를 덮자 불타오르던 모든 생각에 누가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머리가 시원해졌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불탈 것이라는 듯, 그 여지를 남기듯 온기를 가졌던 속도 전부 식은 듯했으나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마주하기 두려워 회피하던 현실은 그렇게까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이게 전부요."
아회는 지팡이를 쥔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창백한 피부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될 때까지 꽉 쥐었던 손잡이를 괜히 손으로 매만지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아둔한 자 하나랑 입씨름하느라 고생이 많았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고요한 어조에는 어딘가 후련한 것 같은 감정도 서려있었다. 사실 후련한 것이 맞았다. 죽을 날이 다가왔구나를 명확히 깨달으니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러니 남은 하루 동안 푹 쉬길 바랍니다, 사감님."
……내 나의 삶을 망친 자와 같이 지옥에 떨어지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부디 그 순간에 유의미한 타격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경미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만 있더라면.
어릴 적엔 형님은 학당을 조기졸업한 천재에, 자신은 사생아라면 가문 내부에서 제 형님을 보필하기 위해 이바지해야 옳다며 좋은 성적을 받아도 혼나며 자라고, 애초에 어머니를 둘째 부인으로 맞았으면서 자신은 막상 혼외임신이란 이유로 사생아가 되어버린데다, 열두살 되어 호적에 들어왔을 적엔 어머니가 아닌 이름도 모르고 일찍이 죽어버린 방계의 아들로 입적이 되어 있으니 얼마나 열등감이 심하겠나요... 좋은 곳에서 살았고, 좋은 취급을 받았고, 좋은 삶을 살았으면서 무엇을 증오한다고. 자신처럼 밑바닥에서 기었기라도 한가? 라는 지문이 특히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본인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아요.
물론 그것도 있겠지마는 더 환장할 점은 아회가 그 열등감이 절대 가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일상에서도 여럿 지문에 썼겠지만 '저것들은-' 하고 뭔가 얘기하는 점을 찬찬히 보면, 아회가 '북부 바깥 출신'과 '졸업 이후라고 말할 정도의 여유로운 삶'에 지대한 부러움과 환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어요. 나는 빌어먹을 북부의 피를 가지고 태어나 이런 삶에 놓였는데 저것들은 그런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유유자적 살기나 하는구나! 라나 뭐라나. 아회도 분명 타인의 삶과 사정도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수용하며, 포용하고 있지마는, 가끔은 그런 꼬인 생각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마음에 여유가 없고 세상에 크게 데여 비틀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이요.😗
이것 때문에 목화를 어떻게든 선물 가게에 되돌려주겠다 생각하는 지문이 많은 편이에요. 아회는 상술했듯 북부의 사람이고, 최근에는 천선의 일을 도우려다 곡옥에서 MA의 악의를 그대로 받았으니 자신이 대체 무슨 지선이 되고 신수의 인정을 받느냐…… 라고 단념했으니까요. 애초에 아회는 하나에만 정신이 팔려있어서, 지선이 될 생각도 없었지만요.😏
그리고~ 또~ 음~ 아회는 정확히 말하자면 체념과 도전 그 사이에 있어서 많이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신수에게 간청해보고자 했으나 자신은 능력도, 가진 것도, 그 어떤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고 객기만 부리는 존재이니 절대 그 검 끝이 닿을 수 없겠구나, 어떻게 해서라도 나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구나~ 하고 체념했지만, 그래도 멈추기엔 너무 멀리 왔고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고 의미가 없다손 쳐도 본인의 멍청한 가치 셈했을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도전의 길이라도 걷고자 한다나 뭐라나? 오만함도 어딘가 공존하고 있지요~😧
이런 애들이 좀 더 세게 눈 돌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만의 합리화에 빠져 살더니 다짐하던 의무 모두 내팽개치고 멋대로 자기가 왕일 수 있는 곳에서 호가호위하며 살다 타인이 현실을 일깨워주면 추하게 발악하다 결국 처절하게 무너지던데...(아회 봄)(아회: 날 대체 무슨 캐릭터로 만드는 게요?) 아아냐 넌 안 그럴 거라고 믿어 내 손을 믿을게...!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눈앞에 있는 이 상대, 청룡 중에서도 상당히 솔직하고 알기 쉬운 면모 보이고 있다고.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벽은 있기 마련이다. 혹자는 그 공고한 거리감에 더러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하나 달리 말한다면 벽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데 늘봄에게선 그것을 뚜렷하게 찾아보기가 힘들다. 괴팍한 사고방식 지닌 유현에게는 오히려 수상하게 여겨질 만큼.
"……네, 그 말도 합당하네요. 저는 도전하는 인간의 정신을 높이 산답니다."
다 컸으니까 짧을 거라고. 그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것 있는지 들이는 뜸이 조금 길었다. 일반적으론 그렇겠지만 그에게 있어선 조금 다르다. 그저 어렸기에, 상황적 조건이 그리 맞아 떨어졌기에, 벽을 두르고 감추는 법 모를 시절의 인연들이기에, 제 본질과 양태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사람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인연 둘이나 있는 것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제 인간성에 환멸을 느끼는 판에 만약 이제 와 그 둘에게 이런 인간과 사귀어 보라 하면 과연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늘봄에게 당신 생각 이뤄질 리 없다며 딱 잘라 말하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기도 하며, 이미 단념했으니 마음대로 해 보라는 식의 대답이었다. 서로 관계가 얼마나 가까워질지는 아직까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에게는 그 생각 끊어줄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 온갖 고민에 골몰하는 화유현 같은 인간에게는 늘봄 같은 사람은 꽤나 상성이 잘 맞는 편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시시각각 몰아치는 활달함에 그는 몰두할 틈도 없어졌다. 난 아마 당신이 뭘 하든 재미있어 하지는 못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계획이라도 있느냐 물어야 할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 결국 어물쩍 때를 놓쳐 버리고 멀뚱히 눈만 깜빡이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뒤에야 대답할 정신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좋아요. 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네요. 하면 그 조건들은 오늘부터 적용하나요? 저는 슬슬 제 용무 보러 갈 생각이라, 분명히 정해 두는 쪽이 나을 듯해서요."
친하게 지내자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정없는 소리 잘도 한다. 그동안 꺼내었던 무심한 언사는 그저 본연의 성격 잡아두지 않고 내뱉은 것에 불과했으나 이번은 명백하게 의도한 것이다. 먼저 친구 하자고 했으니 알아서 잘 받아들이겠지. 사실 할일 하러 가야겠다는 말만은 진심이었다. 그는 타인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상호작용에 피로를 느끼는, 조합 어긋난 번거로운 체질이라. 일조 조건 까다로운 화초처럼 나약하다 이 말이다. 내향인 사이코패스는 슬슬 혼자 있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화유현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들의_술버릇 본인 관심사에 과몰입하는 투머치토커가 돼서 재미없는 이야기 주절주절거려요... 평소에도 가끔 이러긴 하지만 아무래도 취했을 때는 더 심해지죠👀 상대방 말 무시하고 본인 할 말만 쭉 하는데 그 말이 30분 넘게 끝나지 않음... 마찬가지로 본인이 무시당해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음... 취한 사람치고는 꽤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편이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밑바닥까지 보여줄 정도로 취한 건 아님!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상황이라면 그... 3초 이상 눈 마주치면 공격하는 원숭이 짤 같은 느낌으로()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이런저런 돌발행동을 하게 되고요. 상황 따라 구체적인 행동은 다르겠지만 필터 안 거친 언행이 튀어나오거나, 심하면 평소엔 자제하고 있던 불건전한 행동이 튀어나올지도요?🤔🤔 아직 취할 정도로 마셔 본 적이 없어서 본인은 아직 술버릇을 모르지만요! 아는 음주 학생 류모 씨(😉)에게 얻어 마신 적은 있지만 꼬맹이일 때 일이라, 당시 소감은 '이런 거 대체 왜 마시지? 속 쓰리고 맛없음.'이었대요~
자캐의_간호하는_방식 평범하고 정석적인 방법이지 않을까요? 증상 따라 필요한 약 먹이고 눕혀서 쉬게 하고 열이 나면 물수건 얹어주고... 그럭저럭 잘 돌봐주는데 백룡맨 기질은 어디 안 가서 간호 대상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찰할 거예요.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병의 경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 단위로 살펴보다가 지금 소감이 어떤지 인터뷰 하고(?) 사실 정상적인 간호를 해 주지 않아도 뒤탈 없을 상대라면 간호를 빙자한 이런저런 수작질을 할 거예요... 출처와 효능이 의심되는 약(이 아닐지도 모름)을 먹인다거나 일부러 방치한다거나 병이 더 악화되도록 한다거나...🤦🏻♀️🤦🏻♀️🤦🏻♀️
자캐가_잠을_깨는_법 체력부족이지만 병약은 아님+아직 어리기 때문에 수면시간만 잘 지키면 딱히 일과 중에 졸 상황 자체가 잘 없어요. 그래서 잠 깨는 방법 같은 건 딱히 없고 졸리면 그낭 자는 편... 그래도 꼭 잠을 깨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어서 있는다거나 걸어다닌다거나 하면서 움직이는 방법을 먼저 시도할 거예요.
유현이 진단 오랜만이야~ (오물오물) ㅋㅋㅋㅋ 술주정 너무 자세하잖아? 어느 학생 류모씨의 뇌내 메모에 화유현이 꽐라 만들기 저장합니다~^^ 인사불성 유현이 함 보고 싶다 어디까지 할까 궁금ㅎ(끌려감) 간호할 때도 우리 백룡맨 어디 안가지~ ㅋㅋㅋ 혹시나 있었을지 모를 뒤탈없는 상대에게 애도를...(X 꾸욱) 유현이 서서 졸거나 하고 있으면 온화가 들쳐업어버린대~ 조심하래~
>>761 >>763 잘 와닿고 표현이 잘 읽힌다니, 가장 기쁜 칭찬이네요!😇 늘 글을 꼬아 쓰는 버릇이 있어서 혹시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뇌에서 혼자 펼쳐둔 내 사전을 남에게 전가하기...라고 하죠 이걸...🤦♀️ 그래도 잘 느껴지니 뿌듯하게 받아들이겠어요! >:3 히히
유현이의 술버릇 자세하네요... TMT 되는 건 괜찮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 주절거려도 그 정도 되면 취한 사람들도 다 재밌다고 받아들이는 게 술판인걸요 뭐...(?) 그런데 30분ㅋㅋㅋ 넘게 ㅋㅋㅋㅋ 으악 유현아~ 인사불성이면 돌발행동... 이거 되게 귀여운데 당하면 비명 나오는 그거군요... 최고야... 한번 애들 다 거하게 취한 게 보고 싶어졌어요~ 와중에 류모 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설폭행 류모 씨가 또~!
정석적인 방법...에 백룡맨 기질을 끼얹다니 이거 제가 앓아누우면 될까요? 소감 인터뷰 좀 유현이답다? 싶은데 그 뒤가 살벌하네요... 역시 예전에 풀어주셨던 매싸기질 유현이는 어디 가지 않는군요... 유현아 우리집에 뒤탈 없을 애 하나 있는데 수작질 부려주라(???: 세상이 말세니 이러다 내 먼저 죽겟쏘)
움직이는...? 잠을 깨기...위해... 유현이가...? 어버버 종이맨으로 본 나머지 이마저도 놀랍다는 무례한 발언을 하고 말아요...:ㅁ
간만의 진단이 알차고 맛있네요~ 이제 제가 하나하나 다 메모했어요! 내가 간직할거야!! >:3
류모 씨 뇌내 메모장 뭔데요~!!! 앗 근데 그거 흥미로운 상황이야🤔 사실 본인도 술취하면 어떻게 될지 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만약 온화가 제대로 권한다면 승낙할지도요? 하찮은 인사불성이라면 대뜸 다른 사람 무릎에 머리 대고 뻗어버리기... 상대가 친한 사람이라면 갑자기 자기 좀 안아 달라고 하기(🤷🏻♀️?) 좀 안 하찮은 인사불성이라면 으음~ 갑자기 남을 공격하거나 어디에 불을 지른다거나 하는 식의 큰 사고를 치지 않을까요? 딱히 큰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평소에도 한 번쯤 이런 거 해 보고 싶었는데 취하면 자제력이 풀어지니까요...🤦🏻♀️
아회주랑 캡틴 일상 수고하셨어요~ 앗 맞다! 그러고보니 진짜 현진 도사님은 아직도 안 보이는 상황인가요?🤔
>>769 히히 아회주 더 뿌듯해하세요!!!당신은 떡밥풀이와 묘사의 천재이며 유잼서사맨이에요!! 자 그러니까 얼른 캐썰을 더(?)
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다들 취하면 TMT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앗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해요!! 이거 술 취한 아회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잖아~!!!😏 아니 근데 그... 뒤탈 없?을? 애한테서 왠지 익숙한 말투가 읽히는데요?? 캐적으로도 오너적으로도 미안하고 뒤탈 완전 있을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에잇 얘를 뭘로 보시고!! 그냥 서성거리는 건 별로 안 힘드니까 하는 거라구욧!(?)
>>779 앗 그...그런가???? ㄴ(*゚ロ゚*)ㄱ 음~ 하지만 말투나 태도가 왠지 현진 도사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뇌내 메모장 그것은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 (아무말) 어라 그럼 유현이랑 진★심 술자리 일상 한번 해야겠는걸~? ㅋㅋㅋㅋ 무릎베개하고 앵기고 진짜 하찮으면서 귀여워~~ 온화는 다 받아줄거라구~ ♪(´▽`) 안 하찮은거 그것도 흥미롭다~ 막 마시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일 치러 갈거 같은데 온화 그냥 보고 있을 듯 ㅋㅋㅋㅋㅋ 따라가서 뭐하나 구경하고 일나면 유현이 업고 튀어야지~ ㅋㅋㅋㅋ
오~ 그럼 이것도 다음 일상 소재로...📝 평소에는 안으면 뚱함! 불편함! 아무튼 자유를 달라는 캣 표정!인데 사실은 싫지 않았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 말리고 구경만 하냐구요ㅋㅋㅋㅋㅋㅋ역시 이게 진짜 친구지! 이 우정 아름다워라...😊 온화야 나중에 유치장에 잡혀가면 찾아와 주기다...?(?)
아참 일상 소재하니까 생각났는데, 지난번 의뢰 때 살아돌아오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는 관계로... 부상으로 앵기는 건 안 되겠지만 과도한 달리기로 인한 근육통으로 앵기는 건 가능한가요?(?) 집고양이력 만렙이면 저항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그냥 체념한대요~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얄미워 진짜~!!! 사실 하나 더 숨겨놓고 장난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다가, 만약 진짜로 다 먹은 게 맞다면 배고파서 기력 부족으로 누워버릴 거예요...😇
꺄아아악 형님 편식 좀 하세요2 근데 어쩔 수 없는지도... 갓 튀긴 치킨들이 걸어다니고 있으면 한 입 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Secret[I LOVE YOU]무아회 "내 죽더라도 너 만큼은 길동무로 삼고 싶다. 그러니 고통 받아줘, 괴로워 해줘, 날 저주하고 끝없이 깎아내려줘. 그렇게 네가 비참하게 내 이름을 부르짖는 순간, 너의 마지막을 보며 웃는 자가 있다면 오로지 내가 되었으면 해." "나와 같이 죽어줘. 지옥으로 가자."
전 진짜 에휴 🤦♀️
SR[이상의 모습]무아회 "눈이 녹으면 봄이 오겠지."
눈이 살짝 녹아내려서 지면이 드러나는 그런 땅을 즈려밟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SSR[1주년 기념]무아회 "1년이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머리 묶는 아회 구도랍니다~ 음~ 머리 틀어올리는 남캐는 늘 귀하죠~
R[일상]무아회 "인간이 늘 그렇지 뭐."
평온하게 차 한잔 마시는 아회겠네요~ <:3
SR[동그란 무지개]무아회 "거봐, 흉조랬지?"
검붉은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눈 가늘게 뜨며 미소짓는 아회인데...😏
SR[요정]무아회 "별사탕은 두 개만 드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목화 삑삑! 이랍니다! 별사탕을 손에 하나 집고 있을 느낌이에요.
N[메이드복]무아회 "남사스럽구료……."
거절하는데요……
SR[메이드]무아회 "……이, 이런 남사스러운 것을 입으면서… 마, 맛있어지는 주문은 또 뭐요? 모... 뭐? 그, 그러니까, 모, 모, 모에, 모에…… 큥……?"
과도한 달리기로 근육통이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캣휠 너무 돌려버린 고양이 삐걱대는거 같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물론 괜찮지 환영이지~ 대신 근육통 난 근육 콕콕 찌름 히히 각오해랏 ㅋㅋㅋㅋ 잔뜩 약올려놓고 유현이 누워버리면 그 때 하나 더 꺼내는거지 짜잔~! 삐져서 안 먹는다 하면 어 진짜 안 먹어? 진짜? 그럼 나 간다? (갈랑말랑) 얄밉얄밉 최대치로~!
갓 튀긴 치킨들이 걸어다녀 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가르쳐야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케 참어 ㅋㅋㅋㅋㅋㅋㅋㅋ
>>790 호옹이 그때 하 사감이 공물로 빌만한게? 아니라 했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그럼 공물 찬스 아직 남았다는 뜻? (아님) ㅋㅋㅋ 근데 그건 하 사감이 개인적으로 그랬던거야 아니면 다른 신수들도 공물 안 받고 소원 들어주고 그러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캣휠 너무 열심히 돌린 나머지 힘들다고 누운 채로 왜옹왜옹 수발 들라며 요구하실 것 같고...(?) 근육통을 그렇게 험하게 다루다니 크아아아악😇 그럼 근육통이 다 낫기 전에 찾아가도록 할게요~😙 아 근데 그러려면 일상 시간이 맞아야 하는데...!(절-망) ㅋㅋㅋㅋㅋ에잇 나빠~ 그런 장난은 다 어디서 배운 거야잇! 그렇지만 일어나기 싫어서 누운 상태로 손만 내밀 거래요~ 안 주면 뭐... 누워서 굶는 걸로..._(:3」∠)_
>>800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세상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맛있어져라 모에모에큥이...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웃겨요ㅋㅋㅋㅋㅋㅋㅋ >>796 아회 사랑 고백에 짜릿해졌는데 터져서 까먹어버렸잖아욧!!!
>>801 ㅋ ㅋㅋ ㅋ ㅋ ㅋ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A님도 넘 황당해서 한번 더 뒤집혀 360도 돌고 원래대로 돌아오실듯(?)
>>804 원래 사랑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게 망사랑이라던데~ 아름답지 않은 사랑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입니다₍ᐢɞ̴̶̷.̮ɞ̴̶̷ᐢ₎ 아회는 좋지 못한 가정사에 그런 마음 품을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보니 사랑이나 애정 같은 감정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막상 본인이 누군가 사랑하게 된단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진단 답변이긴 하지만 본인의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상당히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805 아니 개비스콘맨들도 백정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흠... 안타깝지만 그래도 소화불량은 용서할 수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얘가 처음 구상 때까지만 해도 이런 뻔뻔캣이 아니었을 텐데 정신 차리고 보니 스스로 집냥이 어필을 하기 시작한 거 있죠... 업고 다니는 거 진짜로 프로 짬밥이잖아요 그럼 이제 승차감이랑 무빙 가지고 잔소리함🤦🏻♀️ 저기 온화주 녹?고?계신데요??? 저도 그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근육통이니까 시간 상 다 낫기 전에 찾아가야 할 것 같아서 헤헤...(〃´𓎟`〃) 암튼 그래도 부담 가지진 않으니까요! 나중에 타이밍 맞으면 노려 보자구요!😉
ㅋㅋㅋㅋㅋㅋ엔딩은 훈훈하게 났지만 이 모든 사달이 찐한 우정(술마시고 기행하는 썰)에서 비롯돼서 웃겨졌어요... 유현아~ 앞으로는 사고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다~!(동물농장 엔딩 톤)
앗 왜 벌써 3시지~ 큰일났다~ 저는 이제 자러 가볼게요... 남아계신 분들도 모두 이따 푹 주무시기~(~˙∇˙)~
>>806 아야!!!!!!!!!! 사람이 순살이 되었잖아요...! 역시 순애가 이상성욕인 세상이군요...(이런 발언)
음~ 사랑이나 애정을 꺼리는 것이 맞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처음엔 그 사실을 끝없이 두려워할 거예요. 자신의 집안에서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고 자신도 그렇게 될 거라 막연히 생각해버린답니다. 내가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해도요, 결국엔 가장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더군다나 사람마다 무언가에 대한 역치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불안 또한 오랜 시간 누적되고 유지되면 그 상태가 디폴트가 되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면, 다시 그때의 불안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아회는 현재 사랑이란 감정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감정을 불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넘치는 불안감을 승화하기 위해 어떻게든 현 감정과 반대되는 일을 하다 결국엔 아회 특유의 '그럴 수도 있지'라는 회피적인 성향으로 수긍하면서도 자기가 가장 편안해질 수 있을 불안의 역치, 사랑의 한계를 새롭게 선택할 것 같아요. 그게 아회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생각하는? 방법인데... 아... 음...
>>808 유현주랑 썰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오늘도 재밌었어~ 잘 자 유현주~
>>809 ㅋㅋㅋㅋㅋㅋㅋㅋ 황당해도 산제물은 잊지 않는 우리 MA님~ 우효~! 아휴 손님 입에 맞으셨슴까? ^^ (굽신굽신) 차이나복 픽크루가 보고 싶다ㅏ면 그런 파츠가 있는 걸 찾아줭... 은근 귀해 차이나복~ ㅋㅋ 음 뭔가 현 시점으로 예상컨데 사감들 제외한? 다른 용생구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쟤 언제 먹냐고 물어댈 거 같아서 알콩달콩은 무리?아닐까 싶고? ㅋㅋㅋㅋㅋ 서바이벌인데 연애를 끼얹은? ㅋㅋㅋㅋㅋ
이건 스레외적인 요소도 들어가있는데 제가 온화가 관캐였습니다 ㅇ/////ㅇ 夏사감 자체는 자기 기숙사 학생이고 자신의 역린 주인이니까 언제 한 번 지나가듯이 자신은 역린과 연결되어있다는 식으로 언급 했을 거예요. 자기 형제들이 (계약자 죽여서)역린 계약 깨면 되잖아? 했을 때도 본인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응을 못 써서 그렇지, 온화가 물어보라 했을 때 물려다가 그만둔 것에 스스로 내가 미쳤나(..) 이러기도 했고 온화가 갑자기 기억 역행했을 때도 자기가 안고 있었지만, '내가 왜 인간을 품에 안고 있지. 아, 내가 사감이지...' 이러고 멍때리기도 했고.... 정작, 夏사감이 "난 온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자각한 건 반려로 맞아달라 했을 때 입니다:)
스레 외적으로 제가 夏사감으로 일상, 독백을 굴릴 때 얘(=夏사감) 왜이래? 싶었던 건 폭주 직후..
>>819 w(゚Д゚)w 어 에 정말요...? 세상에 이 무슨 뜻밖의 맞관 :ㅁ 뭐지... 뭐지...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폭주 직후면은 그 온화가 역린 뺏은 후잖아 ㅋㅋㅋㅋ 사실 역린이 공략 포인트였던 것이다? 어? 헤에에 ╰(*°▽°*)╯ 나는 그동안 하 사감 행동들이 그냥 역린 계약자니까 이 정도는 해주는갑다~ 했고 중간에 계약 깨란 말 못들은척 하고 말돌리고 그런 것도 걍 연장선인가~ 했는데 세에상에 뜻밖의 공략이었다니 갑자기 잠이 확 깨네... 어어 그럼 반려해달라고 안 했으면 하 사감 영영 못 깨달았을라나? 만약 반려 안 되고 데플()났으면 어땠을까... 히히...
캡틴 공부 화이팅~! 오늘은 좀 선선한데 그래도 더우니까 냉방 신경쓰구~ ㅋㅋ 미룬거 한번에 한다고 무리하지말어~
>>825 (만족)(다시 늘어짐) >>826 밤의 바다라 ... 흑룡이니까 시꺼매서 잘 안보일 것 같(아님) 밤바다에선 그냥 멀뚱히 쳐다보고만 서있을텐데, 누군가 왜 그러고 서있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살아온 지금까지 중에 가장 고요한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답해줄 것 같네!
561 자캐가_갑자기_쓰러졌다면_이유는_무엇일까 : 형님 때문에+극악무도한 비설털이 커플 때문에 뒷목 잡고 쓰러진 거예요...(?) 농담이고, 잠을 못 자서 결국 잠충전 하려고 셧다운 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더위가 살인적이다 보니 더위에 지쳐 쓰러졌을 수도 있지요... 북부사람은 여름이 버겁다...
88 자캐_앞으로_도착한_수상한_택배_열어본다_vs_버린다 : 수상한 택배(만쥬) 버리면 천벌을 받으니 열어본답니다...🥲
수상한 택배(형님이 준 초콜릿) 열어보기가 무섭게 버린답니다...🤦♀️
328 자캐는_고여있는_물_vs_나아가는_파도_vs_가라앉은_심해 : 가라앉은 심해 속 거세게 몰아치는 속파도. 겠지요?
무아회, 이야기해주세요!
#자캐썰주세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90034 무아회: 162 본인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 음... 일단, 아버지는 말 그대로 생물학적 아버지에 불과해요. 사실상 현재 자신의 보호자긴 해도 남남인 느낌이죠? 어릴 적엔 아버지가 아니라 가주님이라고 부르라며 사용인에게 교육 받고 자랐거니와 제대로 얼굴 맞대고 대화한 것도 형님이랑 같이 가계 도술 배울 적이니. 자신에게 유전자만 물려주고 이것저것 알려주기만 한 남이에요.
어머니는 가장 큰 버팀목이어요. 아회가 지금까지 버텨온 원동력이자, 자신이 그 어떤 순간에도 잊을 수 없고 마음에 품는 영원한 사랑이지요. 그리고 영원한 봄날이고요. 아회가 지닌 광기의 끝이기도 하지요. 277 그가 죽을 때의 상황은? : 크아악 (다갓과의 합의에 실패한 사람) 크아아악 이거 진짜 풀어야해요?! 크아아아악 진짜 윤리적으로도 망했고 맵다 못해 님 요즘 왜그렇게 매운맛만 먹여 이거 분조장 어장에 스코빌지수 조작 논란으로 올라가야해 하면 어떡해요! (뼈맞고 쓰러짐)
066 주요 이동수단은? : 걸어다녀요! 한때는 말 위에 오를 줄은 알았지만, 눈이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니 지금은 안 타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미래엔 네 성격과 말투가 어떻게 바뀔까?" 무아회: "……아, 잘 모르겠소. 미래란 것은 늘 유동적이니." "단지 바뀔 일이 없길 바랄 뿐이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 지목!" 무아회: "……." "……유감스럽구려."
"네가 원하는 최고의 하루의 내용은?" 무아회: "어느 쪽의 하루를 바라고 그런 질문을 하였소?" "……현재든, 미래든 내 숙원을 이루는 하루가 최고이지 않겠소." "쉴 여유는…… 이젠 없다고 생각하외다."
>>833 헤에에 아회 더위에 약하구나...? (못된생각하는얼굴) 아회방에 시원한 대리석 깔아주면 아회가 호랑이 모습으로 올라가서 골골거려줄려나~ ㅋㅋㅋ 이익 잠못자서 셧다운 안돼! 제때 자란 말이얏! >:3 ㅋㅋㅋㅋㅋㅋㅋㅋ 택배 반응 상응되는거 재밌네 ㅋㅋㅋㅋㅋ MA표 만쥬는 맛있으니까 버리면 안돼~(?) 근데 그거 뭘로 만들었을까...? 선물 보내는 족족 버려지는거 궁기가 알면 시무룩 할까? ㅋㅋㅋㅋ 심해 속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라~ 왠지 헤치고 들어가보면 의외의 일면이 있을 거 같아~ 하지만 닿기 전에 파도에 휩쓸려서 닳아버리겠지... 혹은 뚫었거나~ (긁어봄) 아버지도 어머니도 결국 음... 아버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어머니가 의외네. 응 뭔가 좀 의외야 음... 설명부족 으윽... ㅋㅋㅋㅋㅋ 진단이 사람 팬다! 다갓이랑 콜라보하고 아회주 잡는다! ㅋㅋㅋㅋㅋ 아 결국 안풀었으니 궁금해지잖아 아회가 죽을떄의 상황이 대체 어떻길래~~ ㅋㅋㅋ 오 아회 말 탈 줄 아는 구나! 하지만 지금은 못 탄다니 이잉 ;ㅅ; 어 근데 아회 눈 다친거 푼 적 있아? 나 못 본거 같은데 내가 못 본건가...? :ㅇ 성격과 말투가 바뀔 일 없길 바란다는게 그만큼 살 일이 없길 바란다는 것 같구만... 으음. 에에잇 미래 아회는 북부대공 탈피했다에 내 적금 배팅한다! 말투도 성격도 싹 바뀔만치 오래오래 살아줫~~ 위에 부모님 보고 사랑하는 사람 지목 보니 기분이 또 묘해~ 왜 어머니는 아닐까~ 혈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랑으로만 대답했을때인 걸까~ 궁금쓰~ 숙원을 이루는 날이 최고의 하루일거라. 우리 아회~ 꼭 숙원 이루고 푹 쉬자~ 날 좋을 때 어머니랑 바다 가서 여유로운 휴식... 꼭 그런 날 오기를...!
>>839 북부에서 자라서 더위는 쥐약이래요~😏 골골골... 골골골골...(대왕 식빵 아회가 보여요) 어어... 만쥬는 알면 다치지 않을까요...(식겁) 시무룩하라지~ 핫하 >;3!!(나쁨) 어머니는 의외죠? 의외로... 응? 얘가...? 싶은 면모가 보이긴 하지만 모 공백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써야 하는데 손도 타이밍도 안 따라줫...🫠 궁금..... 하신가요?😇 앗, 눈은요...
"뻔한 것으로는 어림없지요. 그대는 잃어버린 내 눈을 되찾아줄 수 있습니까?"
멀어버린 두 눈, 아니, 이젠 겨우 기능할까 말까 싶어 희미하게 세상을 보는 눈 한쪽이 당신을 온전히 담는다.
이 부분이요! 이번 일상에서 털렸어요. 사실 이전부터 상대가 아닌 그 너머 허공을 본다는 묘사도 있었거니와, 예ㅔㅔㅔ전에 그림 연성으로 올렸던 어린 아회랑 지금 아회의 눈 색깔이 다른 것도 있고... 떡밥은 이곳저곳 풀었답니다~👀 앗. 말투도 성격도 싹 바뀔만치...(((응애아회 리턴즈))) 그건 비밀이에요! >:3 아회가 쉴 수 있길 바라자구요~ 0.< 온화주도 조심히 다녀오시구 캡틴도 다녀오세요~~~~
화유현: 220 개vs고양이 음~ 멍파인지 냥파인지 묻는 질문인가 고양이계인지 강아지계인지를 묻는 질문인가...🤔 일단 캐는 동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 보니 캐릭터 이미지로 답변하겠습니다 확신의 고양이형이죠! 인간 좋아하는데 싫어하고(?) 뻔뻔하고 성깔 조금 있음... 근데 귀찮음이 더 커서 할퀴거나 물지도 않음... 맨날 누워 있음... 무력함... 털 북슬북슬한 추운 지역 장모종 고양이일 거라고 생각해요~
177 겉 모습과 성격,행동의 갭은 어느정도? 오너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얘가 어떤 앤지 다 알고 있다 보니 겉모습과의 갭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생각해 본다면 별로 없는 편이 아닐까 해요. 왠지 모르게 쎄한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온화하고 접근하기 쉬워 보이는 인상은 아니거든요.
296 화를 삭히는 방법 이미 몇번 답한 건데 애초에 분노도 잘 느끼지 못하는 체질이다 보니까 화를 삭일 필요 자체가 없는 편... 그래서 드물게 화가 나게 된다면 오히려 자제하는 법을 모를 거예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화유현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순수한 호의가 명백한 적의와 악의로 돌아온다면?」 흠... 애초에 이 인간한테 호의가 있을 수는 있어도 '순수한' 호의는 없는데요(?) 아무튼 결과가 그렇게 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해요. 인간관계에서 무지로 인해 민감한 부분을 잘못 건드려 파탄 낸 경험이 브동안 꽤 많았어서...🤦🏻♀️ 가장 먼저 상대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추리하거나 직접 물어볼 것 같네요. 그것 때문에 상대가 더 열받을지라도 어쩔 수 없음...
2. 「싫어하는 사람이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보면?」 애초에 누군가를 극심히 싫어하는 경우가 없 이하생략 그냥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라 가정하고 답해 볼게요😉 마찬가지로 그러려니 하고 구경이나 해요. 저 사람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에 관해서나 한 번쯤 생각해 보고요. 선행에 목적이 있어선지,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은 존재이니 그냥 성질 더럽게 구는 건 자기 한정인가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생각을 조금 거듭한 결과... 결론적으로 속 긁어주고 싶어져서 선행하는 사람 훼방 놓으러 감(?)
3. 「기념일 선물은 아름다운 것과 실용적인 것 중 어느 쪽?」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완벽하게 실용적인 쪽에 치중되어 있어요. 그야 아름다운 것의 가치 잘 모르겠는걸~
우우~ 사람은 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배고프지만 입맛은 없어서 냉장고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갱신이에요...._(:3」∠)_ 앗 눈 색이 다른 것도 떡밥이었다니! 시력 얘기는 예전에 간접적으로 언급해서 오오 그렇구만!했지만 색깔도 떡밥일 줄은~ 저는 그거 그냥... 픽크루/네카랑 타협한 건줄 알아 버렸고...😇(바보)
>>845 아아앗 대왕 식빵! 당장 가서 쓰다듬을테으윽 (온화 : (온화주 목덜미 잡고있음)) 만쥬... 다쳐도 알고싶다 그 레시피...! >:3 오오 어머니 관련으로도 뭔가 더 있구나! 언젠가 나올 것이라 믿겟쏘... 나눈 존버한다...! 눈은 시력 거의 없다는거 떡밥 뇸뇨ㄴ묘해서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가 궁금한거라~ 시력 땜에 사람을 향취나 목소리로 구분하거나 거리감 재려구 혀 차는 소리 내는거 등등 다 알고 잇었지(찡긋)
>>846 ㅋㅋㅋㅋㅋ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게으름과 귀찮음 그 자체인 유현냥이~ 딱 최적의 자리에 누워서 가장 편하게 누워잇을때 번쩍 들어다가 옮겨버리고 싶다 ㅋㅋㅋ 애옹거리던 말던 그래놓고 튀어야지! ㅋㅋㅋㅋㅋ 유현의 갭이 느껴지는 건 아마 시선이 제일 크지 않을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고도 하고 유현이가 따로 시선 감추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갭이 없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있는 건 아마 눈과 시선이 이유일듯~ 오... 오오... 유현이 빡치게 하지 말기... 하려면 튈 준비 하고 하기... (메모)(?) 궁금하긴 해~ 진심으로 화가 나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ㅋㅋㅋㅋㅋㅋㅋ 호의가 적의로 돌아와도 왜 그런지가 궁금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본투비 백룡맨... 열받아서 화를 내도 왜 그러냐고 되묻겠는 광기가 보인다...! 아니 선행 방해하러 왜 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지맛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온화야 나 말고 유현이 목덜미나 잡어~~ ㅋㅋㅋㅋ 주든 받든 실용적인 쪽의 선물? (흠터레스팅) 현 시점의 유현이가 주변에 선물을 준다면 각각 누구에게 뭘 줄지 궁금해지는걸~
>>846 알찬 진단을 보자마자 확신의 고양이형에서 행복해졌어요... 털 북슬북슬한 추운 지역 장모종 고양이 유현이...? 유현이는 놀웨숲이다... 귀여움의 뽀뽀~ (샴괭이가 역정내는 짤) 겉모습이 미인이라고 해도 쎄하니 접근하기 쉬워 보이는 인상이 아니란 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요... 온화하지 못한 미인상 너무 좋아... 그런데 화가 나면 자제하는 법을 모른다니, 이것까지 완벽하니 역시 크레이지백룡맨은 '흰색'이군요... 모든 색을 완벽하게 포용하는 완벽한 존재...
와중에 순수한 호의 없다고 하면서도 백룡맨 나오는 거 너무 ㅋㅋㅋㅋ 너무 좋아요 의도치 않은 인성질캐는 늘 최고죠... 극찬을 여럿 올고 싶어요🥹🥹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론적으로 속 긁어주고 싶어져서 선행하는 사람 훼방 놓으러 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북부 사람 특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마이크 들이밀기) 실용적인 것...(메모)
유현이는 어쩐지 T일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장 대다수가 T일지도... 온 세상이 T다(대체)
>>847 역시 고양이 괴롭히기는 집사의 국룰(?) 안 내려주면 몸부림 치다가 뛰어내리는데~ 흠... 어째 인간 버전보다 고양이 버전이 더 신체능력 좋으시네...? 앗 제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부분이 바로 그거인 것 같기도?🤔 역시 캐해천재 온화주예요! 눈빛 부분도 그렇고, 웃는 얼굴을 자주 보여주긴 해도 진심이 아니다 보니 눈까지 웃지는 않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예방이 아니라 찔러보고 튈 준비부터 하냐고요~!!! 근데 저라도 그럴듯😏 으음~ 화가 난다면 아마 폭력적인 행동부터 나오지 않을까요?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제거하고 싶어지는 게 분노의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형태니까요. 성숙한 사람은 화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지만, 말했다시피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화모 씨는... 오늘도 유치장 행인 걸로(?) 아니 그치만 착한 일 하는 와중에 본인 등판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어케 참아요😗 음~ 평소에 선물을 잘 안 챔기는 타입이기도 하고 선물 주는 노하우도 좀 부족해요... 지금 시점에서는 역시 온화랑 아회, 그리고 선물 교환을 약속한(🤦🏻♀️) 늘봄이한데 주지 않을까요? 실용성 중심적인 사람답게 일단 뭐가 필요한지 당사자한테 직접 물은 다음에 대답에 맞춰서 주거나, 아니면 '실용'으로는 가장 최고인 현금을 주지 않을까요... 이...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양철나무꾼아...!!!!🥺
>>848 캣유현: (앞발로 입술 밀기!) 흠흠... 아회주 앞에서 이런 썰 풀려니 왠지 쑥스럽네요 아회야말로 원조 털뿜뿜 시베리아 고양이인데~ 아 호랑이도 고양이라고 암튼 그럼!😗 히히히 역시 다른 사람이 해 주는 캐해가 최고로 맛있다~ 흰색이라는 표현 마음에 들었어요 캐해에 참고해야지! 의도치 않은 인성질ㅋㅋㅋㅋㅋㅋㅋ 궁금해서 그런 거기도 하고 이유를 알아야 다음번에 같은 실수 안 하는 거기도 하고~라는 이유가 있긴 한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성질인 편이죠. 아니 근데 아회도 그러냐고요~!! 아회 믿었는데!!🥹 ㅋ ㅋㅋㅋㅋㅋㅋㅋT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세계관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 그냥 살아남기가 힘든 세계관이었지🫠
이보쇼! 거기! 그래, 당신 말이야! 날도 추운데 털가죽 좀 보고 가소. 날도 추운데 두르고 다니기에 어디, 때깔이 곱지 않나? 하하!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소? 범 가죽이요. 그것도 희귀하다는 흰 범 가죽이지! 그 악명 높은 설산의 산군일세. 구미가 당기지 않나? 솜씨 좋은 사냥꾼 수십이 몰려들어서 겨우 사냥한 놈이라우. 내 그쪽에게 특별히 열 냥에 드리리다. 산군이라 불리던 놈 가치가 당신 손에 넘어가면 열 냥밖에 하는 게요. 거, 얘기 듣는 당신 눈을 보아하니 이 호랑이랑 연이 있는 것 같거든. 이 정도면 아주 싸게 파는 게요! 다른 사람이면 백 냥엔 팔았어.
허허, 그러고 보니 우리 딸이 말이야… 내가 범 얘기를 하니 학당에서 졸업한 선배 중에 친절하게 대해준 북부 사람이 있었다고 발을 동동 구르지 무언가? 인상착의 듣고 호랑이 배를 가르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봐도 정작 그 학생이 없더군. 어디에 있든 호환은 피했겠다마는 당최 어디로 갔을지. 혹시 땅으로 꺼졌남? 이곳은 그런 곳이니.
하하, 농이요, 농! 어디에서든 잘 살겠지. 자, 자. 가져가소. 열 냥이나 하는 범 가죽이외다!
277. 그가 죽을 때의 상황은? (if버전) 이에요... 실제로 이럴 확률은 아주아주 드무니까 걱정 마셔요...🤦♀️
그 비단 주머니를 누가 주었냐고 물었을 때, 오래전 졸업한 선배가 주었다는 자신의 답에 바로 당신의 이름이 나왔던 것을 생각한다. 사감님들이 감추려는 비밀을 전부 알고 있을 당신이니, 경계하며 그들에게 역린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잊을 수 없었겠지. 연은 당신의 조언을 듣고서 심각하게 어두운 표정이 된다. 우리를 보호해 줄 어른들은 없고, 그나마 기대어 볼 만한 존재가 사감님들이었던 것인데. 근래의 일들. 당신의 조언을 통해 알게 된 정체를 두고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을, 학생인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상황에 연은 지친 듯한 표정이 된다.
".... 오래 사는 건 바라지 않아.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길 바랄 뿐이야."
연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불안, 체념에 빠져가는 그런 표정으로 연은 당신을 올려다본다. 그렇다고 여전히 믿을 수 없을, 범죄자인 당신에게 기댈 수도 없는 것인데. 무력한 허탈감에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난 그냥.... 평범한 학생인데. 믿을 어른도 한 명도 없고.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쩐지 말 앞에 공백이 길다. 늘봄은 그 부분에서 심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는지, 혹은 정말로 도전 의식이 건드려졌는지 이글이글 불타는 눈을 한다. 물 같이 차가운 빛깔의 눈동자에서 열기가 다 느껴질 정도로 의지를 불태우는 게 아무리 무딘 자라도 다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훤히 보인다. 당신 예상대로 이쪽은 벽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마 남의 벽 또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게 유현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나쁜 쪽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이미 이 녀석을 받아준 이상 당신이 때때로 피로해질 거라는 건 확정된 일인 것 같다.
"앗,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미안미안. 응, 오늘부터 그렇게 하는 거야! 오늘부터~"
하지만 불꽃 튀는 눈빛도 이제까지 그랬듯 금세 사그라들고, 이후 유현의 말에 대꾸하는 늘봄의 얼굴은 확연히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고는 뭐가 좋은지 허허실실 웃음을 흘리며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양팔을 앞뒤로 가볍게 몇 번 흔든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그럼~ 나도 이제 돌아가서 얘를 완성시켜줘야 하니까 여기서 이만 안녕 하자. 다음에 만나면 완성된 거 보여줄게! 유현이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고, 만나면 인사해줘야 해! 꼭이야! 꼭!"
팔 휘두르는 짓을 멈춘 뒤 손에 들린 인형을 유현에게 한번 들어보인 늘봄은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자리를 떠나는 와중에도 간간히 뒤돌아 손을 머리 위로 휘젓는 등 길디 긴 작별 인사를 보냈겠지만, 그것도 한때다. 늘봄의 콩알만한 인영이 저 끝으로 꺾여 들어가 사라지면 당신에게는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축하합니다!
저에게 유일하게 남은 동아줄이 당신이라니.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 거라는 것이 분명한데. 웃으며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 또한 교활하게 느껴질 뿐이라.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하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으니. 연은 당신의 조언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말해주는 조언을 듣고서 연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물을 갖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니. 물병 하나 정도면 되는 것인지.
>>920 선풍기 지금 사도 늦지 않아~ 열대야는 9월까지 이어질테니까... 히히히... 더웟
여의주 받고 든 생각이라~ 이거 먹엇는데 소화되도 괜찮은건가 아니 그 전에 소화는 되나...?(?) 받은 당일은 벙벙해서 별 생각 안 들었는데 한 다음날쯤 되서는 대체 무슨 일이 제 몸에 일어날지 궁금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글고 역린이랑 여의주 다 온화가 가지고 있으니까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 영향이 하 사감에게 가진 않을까 걱정도 좀 들고~ 복잡다양하대~ 근데 여의주 생각할 때마다 넘겨줄 때도 같이 생각나서 혼자 부끄러워하는거 안 비밀~ 히히~
숨이 많이 섞여선 소곤소곤한데, 그 안의 감정이 지나치게 덤덤한 듯한 목소리가 일품이지요... 애증이란 감정도 내가 가지고 있으나 이 무력감이 애증을 이겨버릴 정도다, 같은 느낌이라 더 좋은 것 같아요. 아회에 대입하면 잿더미란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고요...🤔 이렇게 한명 더 입덕 시켰다!(?) >:3
헉 지옥 들으셨구나....... 그것도 너무 좋지요~ 이상하게 트랩은 있으면 듣고 없으면 안 듣게 되는데 그건 듣게 된 이후로 아른거려서 한 번은 찾아 듣게 되더라고요... 음악감상은 새벽이 최고다! 그러니까 온화주도 캐입곡 있으면 주세요! >;3 (뻔뻔!)
하나하나 듣고 왔어요~ 역린이 밥 주는 독백... 응, 확실히 그 특유의 종용하는 광기가 있어서 좋네요. 내친김에 원곡도 듣고 왔더니 역시나 이런 감성은 보카로곡에서만 나오죠~ >:3 묘하다는 느낌이 어떤건지 팍팍 와닿네요.
캐입곡도 확실히, 응, 온화 느낌이 드는데 특히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로 먹이를 기다릴 뿐이야~ 이 부분에서 정말이지 소름이 쫘악... 이거 온화잖아요!! >:ㅁ 온화의 가치관이 되는 세상을 이 노래에서 만들고 특유의 박자와 음에서 온화 특유의 그 방탕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염세적인 행동을 표현한 것 같아요... 뚝딱뚝딱 멋진 온화 뇌로 마구 상상하며 백 번이고 더 들어주겠어요! >:0 (돌려주기!!!)
종용하는 광기 캬 그거거든요~ 이거 들으면서 독백 써서 그런가 그때마다 빨강빨강유혈 묘사에 너무 진심이 되버리더라구~ 지금도 들으면 독백 내용 떠올라서 묘한 소름이 오소소 돋아~
사실 캐입곡은 어장 진행 중에 찾은 건데~ 내 무의식에 이 노래가 있어서 이걸 반영한건가? 싶을 정도로 잘 맞더라구~ 방탕한 듯 염세적인. 그거 딱이거든요~ 다 내던지고 마음가는대로 춤추다 픽 쓰러져 그대로 끝나버릴 것 같은 인상이 찰떡이지~ 후후후 온화 캐입곡도 맛있게 즐겨준거 같아서 기쁜걸~ ♪(´▽`)
천부의 한 주점. 탁자 하나 두고 둘러 앉은 세 사람 있었다. 그 중 둘은 붉은 기 도는 긴 머리의 사내와 여인이요 하나는 짙게 검으면서도 푸른 빛 감도는 머리의 사내여라. 이 셋은 일찌감치부터 모여 느긋히 술잔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래. 식은 잘 치렀소?" "물론. 아직 몸이 나른하다만. 머릿속은 개운하니 좋다." "하루를 쉬고도 여즉 몸이 나른하다니. 거 힘조절은 하셨어야지. 월 오라비야."
풉-
그러다 해 슬금 저물어갈 쯤. 문득 나온 화두에 붉은 머리 여인이 검푸른 머리 사내에게 농을 치자 그걸 들은 사내 사레 들려 켁켁대며 숨 넘어간다. 그 모습에 여인 낄낄대고 붉은 머리 사내가 사레 들린 이 등 툭툭 두드려주며 달래었다.
"이 녀석. 농은 적당히 해야지. 다음부터는 잔 들기 전에 하렴." "켁. 일향 도령!" "하하. 저도 농입니다. 농. 자자. 천천히 물 좀 드세요. 혜월 형님."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들이 누구더냐. 달리 말 할 것도 없다. 붉은 머리 남녀는 류 가의 일향과 온화였고. 검푸른 머리 사내는 얼마 전까지 일향의 종자였으나 이제는 의형제가 된 류 혜월이었다. 류 가의 금술을 치른 이후 일향이 직접 혜월이란 이름을 주어 이제 더이상 아무개로 불리지 않게 된 그 사내였다.
혜월은 일향이 건네주는 물잔을 받아 따끔한 목이 시원해지도록 물을 마셨다. 겨우 기침이 멎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자 앞서 농을 쳤던 온화 향해 불퉁한 소리 내뱉었다.
"크흠! 아가씨. 제발 말조심 좀 해주세요. 곧 시집 가셔도 될 만큼 큰 아가씨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어요!" "으잉? 아이고- 수 오라비가 둘이 됐나- 농을 농으로 못 받아주는구만-" "농이라기엔! 그... 남사스럽잖아요! 항상 옷 차림새도 그렇고. 그러다 혼담도 안 들어와요!" "잉. 혼담? 필요없네-" "필요 없긴요. 아가씨 졸업하면 분명 가주께서 짝을 찾으시려고 할-" "...혜월 형님. 그 얘기는 잠깐-" "에잉. 필요 없대도. 나 이미 반려 있네." "네?" "뭐?"
온화와 혜월 투닥대는 말 사이 일향이 잠시 중재하러 끼었으나. 온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한마디에 두 사내 모두 얼어붙었다. 그것도 엄청난 표정을 띄우고서 말이다. 단지 혜월은 놀란 표정이었다면 일향은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두 사내의 얼굴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홀짝 비워낸 온화 작게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또 한 잔 마시니.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연 건 일향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화야...? 이미 반려가 있다니. 집에서 식 치른 적도 없는데...?" "아. 당연하지. 식 없이 그렇게 됐거든." "아니. 하지만 들은 것도 없는데...?" "그것도 당연하지. 집에서 맺어준 것이 아니니."
어버버. 연달아 묻던 일향 기어코 입 뻐끔대며 할 말 잃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어째서 이런 일이? 온화의 막힘없는 대답에 다시금 어이가 출가했으나 금방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일단 침착해지자며 스스로를 진정시킨 일향. 그래도 역시 충격인지 술 두어잔 연거푸 마시고서 다시 말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일향은 해맑게 웃는 온화 얼굴 보고 다시 어이출가를 느껴야 했다. 반려가 누구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니! 대체 제 누이는 무얼 하고 다니는 겐가! 당장 캐묻고 싶지만 한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어 쉬이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향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넋 나간 혜월 깨우는 온화였다.
"아이. 걱정 마시게. 내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 아이고. 혜월 오라비야. 거 턱 늘어져서 넋 다 빠져 나가겠네. 으이?" "어... 어? 어어?" "히히히. 저 얼빠진 표정 좀 보게. 정신 차려 오라비야- 벌써부터 취해가지고 넋 빼고 있으면 밤에 힘은 어찌 쓰려구?" "뭐. 뭣?! 아니 그럴 일 없어!" "하하하!"
또다시 혜월과 온화 투닥대는 소리에 일향도 겨우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수 빠르게 일어난 온화 품에서 서신 꺼내어 일향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 이게 뭐니?" "아버지께 전하는 것. 오라비 알고 싶은 것도 거기 다 적어놨으니 가져가서 같이 보시게. 난 이만 가보려니." "언제 서신까지 준비를 했대. 어. 그런데 벌써 가려고? 더 안 마시고?" "응. 충분허이." "반려도 반려지만 네가 술을 줄이다니 그것도 놀랄 일이구나. 아무튼 알았다. 조심해서 들어가렴." "응- 오라비들도 신혼밤 알콩달콩하시게-" "그러니까 그런 사이 아니라니깟!"
으하하하!
호탕한 웃음 소리 남겨두고 온화의 모습 설렁설렁 주점 나섰다. 그 뒷모습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일향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작은 한숨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버지...한테 어떻게 말씀드리지. 이걸..." "그...러게 말이에요...?" "하. 고민해서 무얼 할까. 남은 술이나 비우고 갑시다. 형님." "어... 그래요. 도령."
주점 밖으로 나오자 아직 세상이 환했다. 노을- 황혼이 곧 내릴 듯 서서히 하늘 붉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푸르스름한 부분도 남아있었다. 이렇게 빨리 자리 파하고 나온 적이 있었던가. 어쩐지 나오면 안 될 시간에 나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시 들어가지 않고. 앞을 향해 걸음 내딛었다.
가뿐히 내딛은 한 걸음이었으니 그 다음 또 그 다음으로 이어지기도 어렵지 않았다. 느긋하게 천부의 거리 걸으며 학당 향하는 귀로에 들었다. 제 맞은편에서 와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 유유히 지나치는데 문득 그런 생각 든다.
내가 첫 술 들었던 날이 언제였던가.
그것은 분명. 학당에 들어와 적룡에 배정되었을 때였다.
붉은 두루마기 내 어깨에 얹어진 그 무렵부터.
열 살도 되기 전. 아직 어린 나는 주변으로부터 항상 듣는 소리 있었다. 화야는 학당에 가면 흑룡에 가겠구나. 학당에 가게 되거든 흑룡님의 간택을 받을 거란다. 무수했던 그 말들. 그 말들을 듣고 자란 어린 나는 훗날 학당에 들어가 흑룡탑에 들어가는 것을 동경하게 되었다. 마침 어머니도 흑룡 출신이라시니.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함은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나이가 차 학당에 들어가게 되면 곱디 고운 검은 두루마기 걸치리라고. 모두가 그럴 거라 말해주니 그렇게 되리라고. 어린 아이는 참으로 순진하다. 그리고 시야가 좁다. 그런 일을 겪은 후에도 그 바람 만큼은 놓지 않았으니.
열 두 살 무렵-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내 목소리지만 내 것이 아닌 목소리가 줄곧 속삭였다. 넌 변했어. 넌 이제 열 살 난 그 류온화가 아니야.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였고 나는 내 소리를 무시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변하지 않았어. 나는 그대로야. 나는 여전히 류온화고 아버지 어머니의 딸이고 류 가의 자식이고 언젠가 도화 학당에 들어가 흑룡님의 간택을 받을 거고- 스스로에게 주입한 그 말들은 대부분 지켜졌다. 대부분이 집안과 가족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들은 이전과 다를 것 없이 나를 대해주었으니. 그렇기 때문에 학당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학당에 들어가 검지 않고 붉은 두루마기 받았을 때. 나는 한 번 무너졌다.
붉은 색.
정말로 좋아하지만. 정말로 싫은 색.
갓 입학했을 그 시기. 흑룡 아닌 적룡인 것은 어찌어찌 이해를 하긴 하였으나. 달리 문제 있었다. 선명히 붉은 두루마기 두르고 있으면 종종 환영 보았다. 새빨간 두루마기에서 피가 베어나와 나를 적시고 피가 떨어져 내가 거하는 모든 곳을 붉게 물들이는 환영. 그 날의 악몽도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방 붉어지고 종당엔 나조차도 그 붉은 정경에 삼켜지는 꿈. 미칠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세상이 붉었다. 하루 종일 코끝에서 비릿한 향내 돌아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더는 붉은 것 보고 싶지 않은데. 빠지고 싶지 않은데. 온 세상이 나를 철향 비릿하게 나는 새빨간 웅덩이로 밀어넣으려는 착각까지 들었다. 일시적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곪아들어가는 나에게 아버지는 술을 주셨다. 내 정신이 너무도 또렷하여 세상을 그리 볼 수 밖에 없으니. 술 마셔 내 눈을 흐리라 하셨다. 그리 해야만 내가 살지 않겠냐며. 이리 살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명 끊어주겠노라. 그 때 아버지 말씀에 단명 아닌 술을 택한 것은. 결국 나는 살고 싶었다. 당시에는 어찌하든 어차피 단명할 팔자이니 이판사판이란 생각 앞섰지만. 지금에라면 알 수 있다.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술에 찌들어 변변찮은 꼴이 되더라도. 몸을 망치더라도. 당장 살고 싶어 그 때의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익히 알고 있는 나였다.
술 진탕 마시고 늘어지면 더이상 세상 붉지 않았다. 두루마기는 두루마기일 뿐이고. 코끝에선 다 마신 술병에서 나는 술향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술 접하고부턴 다시 식사도 하게 되니. 부모 닮아 키 쑥쑥 크고 몸도 제법 일찍 영글었다. 몸 따라 머리도 크니 그런 생각 들었다. 어차피 내 끝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그 전에 하고픈 것 할 수 있는 것 다 해봐야 미련 아니 남지 않겠나. 그래서 주변 사람들 건드리기 시작했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본디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나다. 기숙사가 어찌 되든 쉬이 다가가는 것 어렵지 않았다. 남녀 가리지도 않았다. 상급생이든 하급생이든 가리지 않고 손 대었으나. 모순적이게도 순결 만큼은 지켰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소가 학당이라서. 상대가 학생이라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한 번 넘겨주고 나면 마음 편했을 것을. 늘 직전의 아슬아슬한 선 까지만 허용했다. 상대가 넘어오는 것 허락치 않고 내가 선을 넘지도 않았다. 미련하게도. 지켜서 무엇하려고. 남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모순으로 두었다. 그 모순에 그 마음 있었다는 것.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한 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을 적.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더는 무엇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원하지 않고. 그리 살다 가겠노라. 술 접하게 된 이후에도 다짐은 변함 없었다. 늘 순간 순간 내키는 대로 굴었다.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않았다. 내게 그런 것 바라면 가차없이 내쳤다. 내 하는 것 저해하면 주저없이 밟아주었다. 하지만 뒤늦게 유현이 학당에 들어왔다. 내 무구한 시절 만을 아는 유일한 그 시절의 벗이. 해가 세 번 지났을 쯤엔 수일이 벗이라며 아회 소개시켜주었다. 새빨간 정경에 고고히 빛나는 새하얀 사람을. 이미 정 준 사람에게서 정 떼는 법을 나는 몰랐다. 새로이 나타난 동경에 빠지지 않는 법 나는 정녕코 몰랐다. 알았다면. 하나라도 알았다면. 나는 내 다짐을 끝까지 지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몰랐고. 다짐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부서지는 다짐 새로이 할 생각 들지 않았다. 제법 시간 지난 후였으니 적잖게 해탈했던 듯 하다. 남은 시간 동안 전부 무너진들 무엇이나 될까 싶었다. 그렇게 내 마음조차 방치한 채 무용한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섯째 해. 올해도 역시 그리 흘러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비웃듯 학기 초부터 여러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일 중 하나였다. 이 불길한 붉은 검. 역린 얻은 것. 그리고 그 때가 시작. 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의식하게 된 것.
공교롭게도 나는 학당에 들어와 올해가 되기까지 사감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저 그들은 사감이고 나는 학생일 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소속된 적룡의 하 사감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항상 화가 나 있건 학생들을 쥐잡듯이 잡건 내 알 바 아니었다. 내가 거기에 휘말려도 뭐 어쩌라고 싶었다. 그런 나였으니. 폭주하는 하 사감을 잡으러 갔을 때도 타 사감들 공인 하에 하 사감 한 대 때려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소 그리 기세등등했으니 어디 학생들한테 맞고 어벙해지는 꼴이나 보자 했다. 그렇게 보게 된 하 사감의 실체에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두 머리를 달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모습을 보고도 말이다.
처음엔 그냥 간만에 몸도 쓰고 그런 검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겼다. 세간에선 얻지 못 할 귀한 물건 얻은 것이다. 어찌 가슴이 뛰지 않으랴. 게다가 하 사감의 심장이라니. 이것 있으면 저 성질머리 나쁜 사감도 순순해지는 건가. 그것 참 재밌겠다. 그런 감상 뿐이었고. 정말로 그럴까 싶어 대뜸 찾아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래 전 묻어두었던 무언가 조금씩 나오는 줄도 모르고.
연이은 궤변에 나는 또다시 무너져갔다. 차츰 무너지던 중 쐐기를 꽂은 일 생겼다. 그 호수 앞 아회와의 일이었다. 무아회. 내가 다짐마저 외면하고 가까이 했던 사람. 삼 년간 줄곧 가까이 했으나 단 한 순간도 가깝다 느껴본 적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나는 무너졌다. 일방적인 감정을 터뜨리는 와중 그것 깨달았다. 아. 나는 그를 그리 보는구나. 내가 그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아회를 향해 아회에게 바랐던 것 외치며 절규하며 나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아무 것도 포기하지 못 했고. 남은 건 그런 척 굴다 쌓인 미련 뿐인 것을. 하지만 이미 늦은 것 아닐까. 이미 나는 5학년인데.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그 사이 무얼 한들 미련이 더 남으면 남았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다. 무얼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러던 중 그 일갈을 들었다. 왜 포기하느냐는 말. 왜 그리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냐는 말. 나 역시 살고 싶지 않느냐며.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냐고. 그것들을 왜 포기하느냐고. 할 수 있게 해 줄 테니 어떻게든 방법 찾아 줄 테니 포기하지 말란 말이 참. 왜 그렇게도 와닿던지. 느닷없는 말들이 너무나 시원하게 내 고민을 날려버렸다. 날아간 고민 뒤에는 순수한 내 감정 있었다. 고민 없이 그것을 마주하기로 했다. 뭐- 그러기로 하자마자 반려가 된 것은 사실 노린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긴 생각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학당 앞에 다다랐다. 늘 통금 아슬할 때나 지나던 문을 이리 환할 때 지나니 참으로 기분 묘하다. 정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곧 걸음 떼어 안으로 들어선다. 여태 걸은 듯이 느긋하게 걸으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하 사감. 용의 아홉 자식 중 다섯째와 일곱째가 섞인 신수. 그래. 그는 신수다. 그것도 두 존재가 섞여 이도 저도 아닌 신수다. 나는 그런 그의 반려가 되었다. 그의 반쪽 심장을 내 손으로 쥔 채 그에게서 여의주를 받았다. 반려의 의미로 소중하단 말도 들었다. 그의 모든 행동 모든 말에 가슴이 뛰었다.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처음이기에 낯설고 낯설기에 불안한 마음이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가슴 속이 소란해지고 손발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여의주 넘겨줄 적 맞췄던 입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애정이 맞는가? 사랑. 이라 불러도 될 것인가? 외면하던 것 마주했다고 해서 냉큼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아니다. 이해와 납득은 별개인 것처럼. 그동안 너무 오래 진심을 외면하고 아닌 척 굴었던 탓이다. 이제야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얻었으면서. 막상 쥐어지니 무섭다. 당장은 그리 들떴으나 이제 어찌 대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 뒤로 슬금슬금 과거가 발목 붙잡아온다. 아회 앞에서 무너져 내릴 적 깨달은 것 하나 더 있지 않은가. 내 과거. 내 입으로 소중하다 했던 이를 내 손으로 부순 그 전적. 그것이 그에게도 향할까봐 덜컥 겁이 난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으니 놓으면 될 것을. 쥔 손 덜덜 떨면서도 놓을 수 없다. 내 이기심에 환멸 나면서도 내가 전에 없이 이리 군다는 것에 환희 느낀다. 동시에 그를 향한 마음 떠올라 가슴 속도 머릿속도 크게 휘저어버린다. 결국 걸음 멈춰 크게 숨 고르고 얼굴 한 번 쓸어내리면 내 안의 소란함 조금은 가라앉는다.
마침 멈춘 곳이 각 기숙사로 향하는 갈림길이라. 잠시 선 채로 각 방향 보았다. 흑. 백. 청. 마지막으로 본 곳 아니나다를까 적룡탑이다. 늘 불과 함께하는 새빨간 기숙사. 이제는 내 일부가 되어버린 붉은 거처. 그곳 향해 걸어가며 복잡하던 생각에 살짝 갈피를 집어넣는다.
인정하자. 나는 분명. 당장은 내 감정을 애정이니 사랑이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 논할 수도 없고. 대신 정해준다 한들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것이 가까운 미래가 되든 먼 미래가 되든. 알고 있는 방향이든 혹은 전혀 다른 방향이 되든. 내 손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어떠한 형태가 된다 하더라도.
길고 긴 생각 끝에 당도한 적룡탑 기숙사 문을 얌전히- 가 아닌 벌컥 열어제꼈다. 요란한 등장으로 모두의 이목을 끌며 그 안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며- 싱긋 웃었다.
아아!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뭐!
그 날 밤. 술 잔뜩 마시고도 저녁 내내 고민하던 일향은 달 휘영청 뜨고서야 겨우 온화의 서신을 아버지께 올릴 수 있었다. 미리 온화의 어머니도 뫼셔와 다 같이 읽은 그 서신은-
[아버지 어머니 전 상서 온화에요. 저 반려 맞이했어요. 누군지는 비밀이에요. 나쁜 사람? 은 아니에요. 아마도? 그리고 저 옷 좀 보내주세요. 기숙사에서 입을 건데. 아무튼 그런 걸로요. 뭔지 아시리라 믿어요! 당분간 잘 못 갈지도 몰라요. 별 일 있는 건 아니니 걱정 마시구요. 제가 두 분 늘 사랑하는 거 아시죠? 서신 또 할게요. 화야 올림]
"이. 이게 무슨. ...아이고- 대체 뭔 일을 벌이고 다니는게야- 이것은. 반려라니. 거 참..." "어머어머. 호호호. 마침 새로 지은 옷이 있으니 그것 보내줘야겠네요. 이 참에 머리 올릴 것도 보내줘볼까-"
말 안 한 것 다 적혀 있을 거라더니 일향에게 말했던 것 이상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도 새로이 서신 읽은 부부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서신 내려놓은 뒤엔 아비 온일의 깊은 한숨소리와 어미 시화의 웃음소리 동시에 났다고 하더라.
얼굴을 적실 정도의 물. 여차하면 기우제로도 비를 내리면 될 것이었다. 헌데 그 물을 왜, 어떤 이유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에 잠겨있을 때. 연은 혈액이 섞이면 더 좋다는 당신의 말에 일그러진 표정이 된다. 이 얼마나 불결하고, 부정스러운 이야기인지. 마치 어떤 주술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당신과 다르게 아래로 내려앉힌 연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춘 사감의 경우를 생각하면 내키지 않는 것이었지만. 조언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그런 것이 대체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지를 당신에게 묻는다.
"내 피를 섞어도 돼? 근데 대체 그것을 왜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 누구에게 사용할 일이 생기기라도 하는 거야?"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에 연의 얼굴에 동요가 스치다 사라진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면, 지금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연을 앓는 소리를 낸다.
가뜩이나 밤에는 깊이 잠들지 못 해 뒤척이기 일쑤인데. 오늘 밤은 아예 못 자게 괴롭힐 모양이었다.
"더...워..."
때아닌 폭염에 침대도 아닌 바닥에 요 한 장 깔고 드러누워 앓는 소리 흘린다. 더위도 추위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지만. 지금은 견디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워서 머릿속조차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거 아닐까 싶으니! 그나마 혼자 뿐인 방이었으니 최소한의 의복만 갖추고 다 죽어가는 사람마냥 빌빌대고 있었다.
겨울탑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있어 가장 낯설고도 견디지 못할 계절, 여름이다. 여름엔 날씨가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로 폭염이 유난히 극심해지는 날도 있기 마련이고. 그러니 오늘도 무더워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유현은 방바닥에 뻗어 축축한 반시체가 되어 있었다. 더워도 어쩔 수 없다. 날씨가 이런 것을 어찌하리…….
한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결국은 그의 인내심도 바닥나는 때가 오고 말았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이고 밖이고 똑같이 더울 게 뻔하니 차라리 바람 부는 밖에라도 가자 생각해서다. 음, 그렇게 곧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생각에만 그칠 뿐이다. 너무 더워 일어날 기력이 없다……. 너무 더워서 더위를 피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일어나고자 몇 번쯤 꿈틀거리는 몸부림을 끝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찌는 날이 있던가. 아무리 북부에서 자라 여름이 버겁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방은 벽난로를 자주 태우지 않기 때문에 차가운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마는 지금은 아니다. 결심을 굳힌 이후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지,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덥든 말든 완벽하게 초연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지만 논외의 전재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목화 님, 괜찮으십니까?"
목화의 존재다. 그는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면서도 나지막이 묻는다. 청룡에 가기 전에 땅신령이 쓰러지게 생겼으니 어디 갈 수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