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식히기 위해 북부에 왔어도 속은 여전히 뒤숭숭하다. 그래, 최근 뒤숭숭한 일이 너무나도 많이 생겼다. 옳지 못한 꿈자리, 격한 싸움, 감정 소모와 누군가를 더러운 집안싸움에 끌어들이는 행동, 그리고 끈적하게 느껴지던 악의와 북부 사람은 덕을 쌓을 수 없노라 선을 긋는 듯하던 현실까지. 세상은 공교롭게도 단 하나의 길을 가리키며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고, 아회라는 인물은 자신이 선택할 때가 다가왔음을 익히 직감했다.
"이리 길을 알려주는 이유 또한 있겠지."
자리를 떠나는 걸음이 가볍고 여전히 눈보라는 매서웠기 때문일까, 소리도, 족적도 모두 묻히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유령이 배회하는 것과 같았다. 그 사이에서 작은 휘파람 소리를 뒤로 형체를 잃은 무언가 쓰러지긴 했지만 더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학당으로 돌아와 사감의 방으로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여러 사람을 마주치고,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학우의 시비를 무시해야 한다는 점이 있으나 늘 하던 일이거니와 오늘은 유달리 수월하였다. 평소 자신을 자주 건드리던 제사장 가문의 학우도 아회를 마주하곤 무언가 얘기하기 전부터 저번 싸움으로 부러졌던 코를 이젠 뭉개줘야 정신을 차리겠냐는 무언의 손짓을 이해한 듯 시선을 피했고, 엽 씨 가문의 여식은 복도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다 어깨에 쌓인 눈더미를 보고 나설 때가 아님을 판단했는지 살그머니 자리를 떠났으며, 땅신령은 데굴거리며 별사탕을 갉아먹고 있을 것이 뻔했다. 지팡이가 멈춘다. 그리고 아회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지난번 청했던 대화를 하고자 찾아뵈었습니다. 늦긴 하였지만 여유가 나신다면 담소라도 나누지요."
이전에 하 사감 제압한답시고 쥐어팼던 날을 뜻하는 듯하다. 또한 물을 것이 있었으니 문 열지 아니한다면 기다렸을 터이며, 기다림도 통하지 않는다면 문 부수고 들어갈 생각 또한 가득하였으니 필히 적룡의 좋은 표본이라.
사실 윤하는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뿐 자기 자신의 피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 흑룡의 포용심이냐! 아니면 본인의 증오냐! 이게 지금 절묘한 균형 상태란 말이지. 사실 포용심이 이겨도 그것은 꽤나 뒤틀린 상태라서 이러든저러든 가문 사람들에겐 결과가 심히 안좋겠지만 ...
있어요~!!!XD 주말은 3명 이상 체크해야 진행 가능해요! 금요일 진행은 조금 생각해봐야하는게...... 수업이벤트나 개인진행을 만들어도 다들 현생에 치이셔서 오후~저녁 쯔음부터 오시더라구요.. 그럼 시간 내에 못하는 일이 발생해버려서 잠식간은 금요일은 조금 고민 단계입니다!
작은 소란이라도 있는지 안이 시끌시끌하다. 대화라도 하는 건가? 그래서 할 말을 멈출 것 같냐면 그건 또 아니다마는. 어찌, 문을 부서야 할까. 아회는 지팡이 위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얌전히 기다리다 허락이 떨어지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문이 열렸을 적 느껴진 다른 인기척에 누구인지 가늠하던 아회는 먹지 말고, 라는 언질에서 손가락 하나를 슥 들어올려 지팡이를 툭 건드렸다.
먹지 말고, 라. 거기다 막내니 뭐니 하며 처음 듣는 목소리가 귀를 찌르니 부정적인 생각부터 머리를 잠식하고 본다. 또 학당에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군가 죽게 된다면? 그게 또 누군가와 싸울 명분이 되면? 방해하는 자가 있나? 아마 형님이겠지……. 뿌리 깊은 의심과 피해의식이 함께 스멀스멀 기어오던 중, 아회는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생각을 접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뒤 아회는 단안경을 고쳐 쓰더니 손에 들린 술을 보며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권유만 안 하면 됐으니. 하고자 했던 말이라면 많다. 대체 당신과 동 사감은 뭐길래 인간이니 뭐니를 운운하는가, 당신이 말한 태초의 어머니는 어렴풋이 알겠으나 정확히 무엇인가, 학당이 안전하긴 한 것인가…….
"일전에 하셨던, 적룡이 신경 쓰지 않을거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지만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적룡이 일전에 하 사감을 별것도 아닌 학생들에게 얻어터졌던 상황을 보고도 탄식하지 않을 거라고? 적룡의 기개는 어디에 있는지가 급선무였다. 그 이후에 간곡히 하고자 하는 말이 있으니. ……이제 남은 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협박이 아니라고, 자신과 눈높이까지 맞춰주며 다정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그 미안하다는 표정은 달리 이물스럽게 느껴지는지라, 지금 놀란 감정에 아무런 위로조차 되지 못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궁기임을 숨기는 것. 여전히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궁기를 바라보던 연은 점점 줄어드는 목소리로 묻는다.
"밖에서? 무엇을?"
대체 자신에게 사감들의 비밀을 알려주려고 하는 건 왜인지. 그 정보들로 하여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은 당신의 의도를 알 수가 없으니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느낀다.
자리에 앉는 걸음은 조용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리에 앉을 적 어깨 위에 소복하게 쌓였던 눈은 어느덧 녹기 시작해 옷깃을 적시나 두루마기에 팔을 꿴 것이 아니라 걸쳤기 때문인지 속의 한복까지 젖지는 않았다. 용은 고고하여 인간사에 관심이 없고, 네 마리 다 독기를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라.
"독기, 라."
그 사실이 심사를 뒤틀리게 만든다. 배배 꼬인 성격 탓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못 되는 존재임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용만 당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작 지고하신 용이란 것들은 독기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니 남은 희망마저 삽시간에 식어버리는 느낌이다. 애초에 그것을 희망이라 정할 수 있겠냐마는 어찌 되었든.
"인간에게 신경을 쓸 거라곤 생각도 안 했습니다. 신도 애증하는 존재를 그 휘하의 미물들이 어찌 품겠습니까? 구석에 적당히 처박힌 먼지처럼 보는 것이 이롭지요."
더 말을 해? 말아? 잠시 고민하듯 무릎 위에 올려둔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더듬듯 매만진다. 어차피 북부 사람이다. 신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미움부터 받는데, 저 사감에게 어떤 취급을 받든 두렵지는 않다. 다만 걱정하는 것은 이 다음의 일이다. 아직 자신은 학생이고, 자신의 취급을 정하며 훗날 거사를 위한 길을 막아세운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감당할 수 없어도 저지르고 봐야 한다.
"본디 사감님의 대답만 듣고 가고자 하였으나 현재 질문에 대하여 제법 흥미가 생기는 군요. 기숙사에 제 이름까지 내건 주제에 정작 이득에만 집착하여 관리는 하지 않는 존재라……."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길을 확정짓지 않으면 사냥 당한다. 이제 제대로 길 걸을 터인데 방해물이 남으면 안 된다. 지금은 증오가 필요했다. 더 많은 증오가. 이 모든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끝내 그 길이 온전함을 합리화할 시간이. 내가 누구인지 직시해야 한다……. 아회 당신의 속을, 혹은 누군가의 속을 긁어버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이 덤덤하게 입 벙긋거린다.
"어찌…… 천하의 고매한 용도 결국 실리에 집착하는 인간과 하등 다를 바가 없나 봅니다. 한가지 청이라도 간곡히 빌고자 하였는데 안타깝군요."
고민하는 기색이 짙게 서린 채 저 멀리로 돌아간 각자 색깔 다른 한 쌍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던 늘봄은 이윽고 몸짓으로 돌아온 긍정의 답변에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아주 밝게 웃었다. 정말 훤히 보이는 인간이다. 감정 숨기는 법도 모르고 그럴 이유도 모른다는 듯 여과없이 드러내는 태도가 안일하달 만큼 솔직하다. 때문에 뒤이어진 발언에는 또다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지만.
"흥... 그치만 또 모르지? 어릴 때는 10년이지만 다 커서는 더 짧을 수도 있잖아?"
이번에는 정말 괜한 오기를 한번 부려본다. 어린애 같은 짓을 마구마구 해 대고 있지만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늘봄의 정신은 유현이 막역지우라고 부르는 정체 모를 누군가들에게 꽂힌다. 음, 누군지는 몰라도 부럽습니다. 매우 부럽네요. 이렇게 부러워 할 일인가 싶지만 어릴적 친구라는 게 없다시피 한 늘봄에겐 부럽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아이 늘봄에게 친구는 베틀과 실과 천과 장식 구슬과 인형이었고 살아있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이제 만날 엄두도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현의 10년간 이어져 왔다는 우정의 길이가 오랜 노력을 들여 잘 짠 비단처럼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나 그래도 곁에 있으면 심심하진 않은 사람이거든? 곧 '그냥 친구'에서 '특별히 재밌는 친구'정도로 승급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 그럴 걸? 두고 봐!"
몸소 광대라도 되어 보이겠다는 말일까. 짐짓 허리에 손을 턱 얹고 당당하게 선포하는 모습이 황당하게도 보인다. 여기까지만 봐도 유현과 늘봄의 성격 차는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이 우정, 괜찮을까. 하지만 괜찮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원래 사람은 사람끼리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도담도담 살아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소 예상 기간이 10년이긴 하지만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인생은 가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건 눈 앞의 가인에게도 다를 바 없겠지!
"응? 딱히 바라는 게 있어서 친구 하자고 한 건 아닌데... 으으으음, 굳이굳이 따지자면 마주칠 때 인사 해 주기! 선물 주면 받아주기! 가끔 같이 시간 보내기~ 정도?"
아무리 '그냥 친구'라 할지라도 이름만 친구인 건 싫으니까,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되겠지? 아니아니, 요구랄 것도 없지 않나? 원래 친구들은 이 정도 하잖아? 아닌가... 적절한 거리감을 찾기 어렵다. 의외로—의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늘봄 또한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늘봄이 선택한 것은 사교 활동의 욕망에 따른 무한 돌진이다. 부담스럽다고 해도 이미 친구를 수락한 이상 어쩔 수 없다.